빨간 사람

by 닐리리아 posted Apr 06,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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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사람



1

 7시 40분 ㅡ 늘 이 시간에 일어난다. 누가 정해준 것은 아니지만 이 시간에 일어나는 것이 학교에 지각하지 않는 것과 내 아침잠을 끝까지 받아줄 수 있는 한계치의 시간이다. 천근의 등을 떼고 침대에 걸터 앉는다. 바로 씻으러 가지는 않는다. 걸터 앉은 상태로 남은 잠을 달래주어야 한다. 다시 누워서 자고싶은 욕망이 머리부터 천천히 몸으로 퍼져나간다. 하지만 익숙한 싸움이다. 조금만 있으면 잠은 어디론가 사라질 것이다. 그리고 이때쯤이면 일어나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 있다. 내 아랫도리가 그것이다. 오줌을 참아주느라 힘껏 발기가 되어있다. 게으른 주인을 만나서 아침이면 이렇게 성이 나있다.

 '그래 알았다. 알았다고'

 이불은 정리하지 않는다. 어차피 또 오늘밤이면 엉망으로 덮고 잘테니까. 나를 덮던 그대로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 다시금 나를 유혹하는 것 같다. 적당히 눌러둔 채 화장실로 간다. 아침밥을 바라지도 않고 있어도 먹지 않는다. 그 시간에 잠시나마 몽롱한 상태에 있는 것이 나에겐 더 이득이니까. 성난 놈을 먼저 달래야겠다. 속옷과 바지를 같이 내리고 성난 놈의 고개를 고꾸라트린다. 무의식적으로 뒤꿈치가 올라간다. 성나있는 놈의 고개를 고꾸라트릴 때에는 으레 이렇게 뒤꿈치가 올라간다. 

 "흐으..."

 오래도 참은 모양이다. 아랫도리가 찌릿할 정도다. 남아있는 오줌을 다 내보냈다고 생각될 때, 적당히 털어주고 속옷과 바지를 올린다. ㅡ 아니다 샤워를 해야한다. 올렸던 속옷과 바지를 한꺼번에 다시 내리고 위에 입은 난닝구도 벗는다. 천천히 샤워기를 잡는다. 몸을 뒤로 빼고 실험대상이 된 왼손만을 샤워기에서 나오는 물에 갖다댄다. 손 끝으로 톡톡 물을 건드린다. 온도를 체크하는 것이다. 안심하고 왼손을 다 적시는 것은 이제 몸에 물을 뿌려도 된다는 신호이다. 천천히 뒷목으로 샤워기를 가져간다. 뜨듯한 물이 목을 타고 제 멋대로 여기저기 흘러내려간다. 적당히 적셨으면 이제 머리를 적셔야한다. 샴푸를 해야하니까.

 "스읍!"

 흐르는 물이 굴곡을 거치는 곳이 비단 코나 광대같은 곳만 있는 것은 아니다. 김이 서린 거울을 손으로 스윽 닦아본다. 어제 맞았던 얼굴이 하루가 지나고 나니 파랗게 멍이 든 곳도 있고 혹처럼 불룩 튀어나온 곳도 있다. 타박상을 입은 곳도 있다. 상처가 난 곳에는 조심스레 물을 뿌려야 하는데...... 나의 잘못이 크다. 오늘은 세수를 하는데 시간이 조금 걸릴 것 같다. ㅡ 오늘만 그런 것은 아니지만 ㅡ 몸도 여기저기 멍이 들어있다. 어디를 무엇으로 맞았는지 일일이 기억하지는 못한다. ㅡ 그냥 딱딱한 무언가로 맞았겠지 ㅡ 하지만 샤워는 해야한다. 머리를 감고 양치를 하고 얼굴은 부분부분 고양이 세수를 하고 몸은 얼굴보다는 비교적 수월하게 닦아낸다. 걸려져 있는 수건을 손으로 잡아채고  몸의 물기를 닦아낸다. 약간 서둘러야한다. 세수하는데 생각한 것보다 더 많은 시간을 소비한 탓이다.

 잘 다린 교복을 입을 필요는 없다. 어차피 또 엉망진창으로 구겨지거나 찢어질테니까. 아무렇게 벗어놓은 어제의 교복을 다시 입는다. 많이 찢어진 곳은 없으니 교문은 무사히 통과할 것 같다. 하지만 학생에 대한 선도열이 높은 선생이 교문에 서있는 날이면 교복이 조금 찢어진 것에도 와보라고 부르기 일쑤다. 오늘은 그냥 평범한 선생이 교문을 지켰으면 좋겠다. ㅡ 얼굴은 어떻게 할꺼냐고? 걱정하지마라 봄에 황사란 불청객이라고들 하지만 나에게는 마스크를 쓸 수 있는 좋은 핑계가 되어준다. 여러 개 사둔 마스크 중에 오늘은 새 마스크를 하고 갈 것이다. 천천히 귀를 감고 바로 눈 밑까지 마스크를 올려쓴다. 신말만 신으면 준비완료다. 슬프게도 얼마전에 끈으로 묶는 신발을 잃어버렸다. 그래서 오늘은 새로 산 찍찍이 신발을 신고 간다. 끈을 묶지 않아도 되니 참으로 편한 신발이다. 툭툭 앞꿈치를 두 번 친 후에 현관문 앞에 선다. 열림버튼을 누르면 이제 영락없는 학생으로 밖을 거닐게 된다. 잠깐의 망설임이 마음 속에서 피어올랐다.

 '이 열림버튼이 고장나면 학교에 못가지 않을까?'

 '현관문이 혹시 고장나서 열리지 않을 수도 있지 않나?'

 조심스레 열림버튼에 검지를 댄다.

 "삑ㅡ 띠로릭. 문이 열렸습니다."

 그래 그럴 일은 없겠지. 친절하게 문이 열렸다고 도어락 주제에 제법 상냥하게 말한다. ㅡ알았어 알았다고 가면 되잖아ㅡ

오늘도 망설임 반 두려움 반으로 학교에 간다.



2

 허름한 상가를 끼고 있는 이 사거리를 지나야 학교에 도착할 수 있다. 허름한 상가쪽 에서 횡단보도를 건너는 것이 유리하다. 학교에 가는데 한 번만 신호등을 받으면 되니까. 나는 그 유리한 쪽에 속하는 부류였다. 아마 반대편에 신호를 기다리는 저 애들은 내가 부러울지도 모른다. ㅡ 신호를 한번만 받으면 그만큼 지각할 확률이 줄어드니까 ㅡ 내 쪽에서 학교로 가는 횡단보도의 신호등은 빨간불이다. 덕분에 반대편 쪽에 있는 애들이 내 쪽으로 넘어온다. 같은 교복을 입고 있지만 누군지는 모른다. 내가 아는 애들은 한 명도 없지만 아침부터 끼리끼리 무리를 지어 떠들며 이쪽으로 넘어온다. 나도 넘어간다. 그 횡단보도를 건너면 학교에 가는데 총 세 번 횡단보도를 건너게 되는 것이지만 나는 내 유리한 고지를 그들에게 넘겨주고 가장 불리한 쪽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중간쯤에서 애들과 마주치게 될 것이다. 의아하게 쳐다보는 것이 벌써부터 느껴진다. 더러는 일찍 나왔나싶어 시계를 보는 아이도 보이지만, 이내 또 자기들의 이야기로 복귀한다. 나는 그 찰나의 관심거리가 된 것이 부담스러워 핸드폰을 보는 척하며 그들의 관심가시거리를 최대한 평범하게 지나간다. 노벨이 다이너마이트가 살상무기에 쓰이는 것을 전혀 몰랐었듯이, 핸드폰이 이렇게 민망함을 달래주는 용도로 쓰일 줄은 핸드폰 발명가도 몰랐을 것이다. ㅡ 그런데 핸드폰은 누가 발명했지? ㅡ 또 문득 호기심이 들지만 아마 무슨 '폰'이 들어가는 외국인이 발명했겠지라는 생각에 호기심은 이내 죽어버린다. 

 이렇게 학교를 가는데 구태여 두 개의 횡단보도를 더 건너는 것은 내 소원이 이루어지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혹시나 아침잠에 미쳐 못 깬 운전자가 있거나, 아니면 라디오에 너무 집중한 운전자가 있거나, 어떤 이유이던간에 상관없다. 적당하게 나를 치어만 준다면 나는 학교에 못 갈 좋은 핑계가 생긴다. 여태껏 그렇게 바라왔지만 그런 행운은 한번도 일어난 적이 없었다. 아예 대놓고 잘 달리고 있는 차 앞으로 뛰어드는 방법도 있지만 아쉽게도 나는 그럴만한 용기는 갖추지 못했다. 몇 번인가 노력해봤는데, 아찔하게 두려운 마음이 일어 작전을 바꾼 것이 '횡단보도 많이 건너기'이다. 하지만 작전을 바꿔도 겁은 없어지지 않았다. 초록불이 들어오면 걸었고 빨간불이 들어오면 걷지 않았다. 이 작전이 완료되기까지는 수많은 시행착오와 운이 있어야 할 것 같다. 

 신호에 민감하지 않은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횡단보도 신호등의 초록 사람과 빨간 사람을 보면 이런 사거리에서는 빨간 사람이 확실히 불리하다. 초록 사람은 잠깐 나와서 몇십 초간 일을 하고 들어가고 빨간 사람만 지겹게 나와서 일을 한다. 게다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빨간 사람을 싫어한다. 깜빡 거리던 초록 사람이 들어가고 빨간 사람이 나오면 아깝게 길을 못 건넌 사람이 빨간 사람에게 욕을 하기도 한다. 그래도 나는 빨간 사람이 좋다. 내가 학교에 가는 시간을 최대한 지연시켜주는 존재가 빨간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나마 내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이다. 멍하니 빨간 사람을 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없어지더니 초록 사람이 나타났다. 우스꽝스럽게 걷는 모양이라니 그렇게 걷는 사람이 없다는 것도 모르는 바보다. 하얀색 칸에 발을 디디며 횡단보도를 건넌다. 어느새 세번째 횡단보도였다.  




3

 다행히 오늘은 교문에는 국어 선생이 서있었다. 애들한테 전혀 관심없는, 항상 보아도 의욕이 없어보이는 선생이다. 황사를 피해 마스크를 한 평범한 학생으로 귀찮은 일 없이 교실로 들어왔다. 천천히 내 자리로 간다. 책상에는 오늘 새로운 방명록이 써있다. 

 ㅡ 에미없는 호로새끼 ㅡ

 혹시나 까먹을까봐 노파심이 일은 애가 있나보다. 말 안해도 아는 것을 구태여 이렇게 까먹지 말라고 친절하게 써준다. 책상에 낙서를 멍하니 바라보며 의자를 뺀다. 책상 옆에 가방을 걸치는 것과 동시에 앉았고 동시에 조용하게 신음을 냈다.

 "으읏!"

 반사적으로 의자에서 튕겨섰다. 압정이었다. 의자에 압정이 본드칠이 되어 거꾸로 솟아 날 기다리고 있었다. 언제부터 기다렸는지 본드는 바싹 말라있었다. 시계를 봤다.

ㅡ8시 43분ㅡ

 '등교하고 5분도 안되서 두 번이라니 너네 너무 부지런한거 아냐?'

 그래도 이런 것에 악을 쓰며 소리를 치는 일은 없다. 낙서야 뭐 지우면 되는 것이고 압정이야 떼어내면 되는 일이다. 괜히 소리를 지르고 난동을 부리면 안된다는 것을 오늘 아침 샤워를 하면서 느끼지 않았는가.

 학기 초에는 괴롭힘이 이정도까지 되지는 않았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4월쯤이 되어가자 날 모르는 애들도 나를 괴롭히는 것에 동참하고 있었다. 전부터 나를 괴롭혀왔던 애들은 여지없이 새 학기에도 날 괴롭혔고 다른 애들은 그것이 재미있어 보였나보다. 더하면 더 했지 전혀 덜 하지는 않게, 그리고 새로운 애들과는 달리 발전된 방식으로 나를 괴롭혔다. ㅡ 사물함에 개구리 사체 넣어두기, 신발 숨기기, 가방 변기에 쳐넣기, 체육복 찢어놓기, 침 뱉고 가기, 뒤통수 때리고 가기, 도시락에 흙 넣기 등등 ㅡ 하도 발전되고 새로운 것이 많아서 일일이 기억하기도 힘들었다.

 수업을 알리는 종이 울리고 수업이 시작된다. 하지만 다 알다시피 수업시간이라고 해서 모두가 수업을 듣는 것은 아니다. 누구는 자기도 하고 누구는 책을 예술적으로 세워서 핸드폰을 하기도 한다. 뭐 물론 공부를 하는 애도 있긴 하지만 많은 수가 되지는 않는다. ㅡ나는 뭘 하고 있냐고?  뒤에 나가서 벌을 서고 있다. 숙제를 안해와서 그런 것이다. 아니 숙제를 안해왔다기 보다는 없어졌기 때문이다. 가방 안에 있던 노트가 정말 감쪽같이 사라졌다. 선생들이 듣기에는 뻔한 핑계 중에 하나이겠지만, 내 노트는 정말로 사라졌다. 아마도 지금 내 앞에 앉아 착한 학생인 척 하고 있는 애들 중 한 놈의 짓이겠지. 아니 내 앞에 앉아있는 애들 짓이겠지. 그래도 뒤에 나와있으니 마음은 편하다. 대놓고 아파하질 못하는 수업시간에 당할 여러 괴롭힘을 피할 수는 있으니까. ㅡ 숙제내주셔서 고맙습니다. 선생님 ㅡ

 고마운 선생은 수업이 끝날 때까지 나를 뒤에 세워두었다. 수업을 마치는 종이 울리고 선생이 앞문으로 나가는 것과 동시에 나는 팔을 내렸다. 안돌던 피가 도는 탓인지 저릿저릿한 느낌이 든다.

 "흐으"

 조용한 신음소리와 함께 자리에 와 앉는다. 아까 떼어냈던 압정의 본드가 굳어서 약간 남아있긴 하지만 확실히 압정보다는 앉을 만 하다.

 수업 시간과 수업 시간 사이를 왜 쉬는 시간이라고 하는 건지 나는 학창시절 내내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처음으로 쉬는 시간이라고 이름을 붙였던 사람을 만나면 나는 그 사람의 면상을 후려칠 것이다. 쉬는 시간이 10분 밖에 되지 않는다고 툴툴대는 사람도 마찬가지로 면상을 후려칠 것이다.  

 쉬는 시간이 되니 애들이 주위로 몰려온다. 웃긴 건 나는 아무런 반항도 못할 것을 알면서 모두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 채 원을 만들고 날 가운데 가둬둔다. 그리고 순서도 없이 앞, 뒤, 옆, 대각선에서 툭툭 튀어나와 주먹을 날리고 발길질을 한다. 이럴 땐 팔짱을 낀 상태로 이마를 책상에 대고 엎드리는 것이 제일 좋은 자세이다. 뒤통수부터 시작해서 내 뒤는 완전한 무방비 상태 지만, 명치를 맞아 숨이 턱 막힌 경험이 있다면 이 자세가 최고의 자세라는 것을 인정할 것이다. 그리고 옆구리도 어느정도 보호해주는 자세이다.

 '그런데 지금 몇 분이지?'

 맞는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라도 알고 싶었다. 

 '그래도 5분은 지났겠지? 조금만 더 참자.'

 몇 대를 맞는지 세는 것을 포기할 때쯤에 수업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렸다.


4

 등에 감각이 거의 없을 정도가 되면 점심시간이라는 뜻이다. 등받이에 닿는 등부분이 동상을 입은 것 같기도 하고 감각이 무뎌졌다. 우리 학교는 급식실이 있지만, 급식신청을 하지 않고 도시락을 싸와도 된다. 대게 끼리끼리 무리가 있으면 급식을 신청하지 않고 다 같이 도시락을 싸와서 뷔페처럼 먹는다. 나는 조금 다른 이유로 급식신청을 하지 않았다. 날 괴롭히는 대부분의 애들이 급식을 먹기 때문이다. 그리고 도시락은 자기가 원하는 곳에서 먹어도 된다는 최고의 장점이 있다. 내가 찾아낸 최고의 장소는 '교사용 화장실'이다. 간간히 들어오는 선생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이 화장실에 들어오지 않는다.  가방에서 꺼내온 도시락을 들고 '교사용 화장실' 앞을 서성인다. 주변에 선생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재빨리 화장실로 들어간다. 그리곤 비어있는 칸으로 들어간다. 재빨리 문을 잠그고 좌변기에 앉는다. 그나마 걱정없이 내가 있을 수 있는 장소이다. 특유의 화장실 냄새와 그 냄새를 없애겠다고 뿌려대는 냄새 제거제가 섞인 역겨운 냄새는 괴롭힘에 비하면 애교에 불과하다. 무릎을 모으고 조심스럽게 도시락을 차곡차곡 분리한다.ㅡ다행이다. 오늘은 흙을 뿌리지 않아서 흙을 일일이 골라낼 수고를 할 일이 없다.ㅡ 주머니에 있던 포크숟가락을 꺼내 밥을 한숟가락 뜬다. 밥이 덜 익었다. 쌀알을 튀긴 것처럼 딱딱하다. 밥을 하는 건 영 서툴다. 아까 책상에 있던 낙서가 생각난다. ㅡ에미없는 호로새끼ㅡ 애미가 없어서 그런지 호로새끼여서 그런지 이런 밥이라도 나는 다 먹을 수 있다. 싹 다 먹을꺼다. 

 도시락을 다 먹고 다시 도시락을 차곡차곡 조립한다. 빈 도시락통을 오른쪽에 조용히 내려놓는다. 포만감이 천천히 피어나고 있다. 적당히 다리를 벌리고 팔꿈치를 무릎에 괸다. 그리고는 힘없이 고래를 떨군다. 나만의 안전한 장소가 있다는 건 참 좋은 일이다. 점심시간이 끝날 때까지 이 칸막이에서 나가지 않을 것이다.


5



 내가 집단 따돌림을 받게 된 계기는 초등학교 5학년 때였다. 아는지 모르는지 모르겠지만, 초등학교에도 잘 나가는 애와 그렇지 못한 애가 나뉘어져 있다. 중학교를 가고 고등학교를 가면서 그들이 일진이다 찐따다 이름표가 붙게 되는 것이다. 내 옆 짝이 어린 일진이었다는 것이 내 생에 최고의 불운이었다. 내가 엄마가 없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뭐만 하면 말끝마다 ㅡ엄마가 없으니까 그런거야ㅡ 를 붙였다. 참다 못한 내가 주먹을 날렸고 초등학생답게 뒤엉키며 싸웠다. 선생은 소리치며 우리를 떼어냈고 우린 똑같이 교무실로 불려가 반성문을 썼다. 누가 뭘 잘못했고 왜 그랬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A4용지 2장의 분량의 반성문을 채우는 것이었다. 나는 다 적었다. 자꾸 걔가 나를 엄마가 없다고 놀렸다고 아주 상세하게 적었다. 2장의 분량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내가 먼저 반성문을 다 쓰고 선생에게 갔다. 선생은 짝을 기다리라며 복도에 세워뒀다. 몇 분 뒤 짝이 왔고 우리는 선생에게 갔다. 철이 없는 싸움이라고 생각했는지 선생은 우리를 마주보게 하고 서로 사과를 하라고 했다. 어이가 없었다. 내가 적은, 그리고 짝이 적은 반성문은 읽어보지도 않았다. 엉망진창이 된 상태로 우린 서로에게 껍데기뿐인 사과를 했다. 그리고 선생은 우리한테 교실로 가있으라고 했다. 그리곤 뭐가 그리 바쁜지 다시 컴퓨터를 두들겼다. 나오면서 짝이 내게 그랬다. ㅡ 넌 이제 뒤졌어 ㅡ 교실로 들어가자마자 내 짝이 같은 반 아이들에게 소리쳤다. 앞으로 나랑 말하지 말라고 했다. 누구나 말하면 뒤질 줄 알라고 소리쳤다. 그게 나의 괴롭힘의 시작이었다.

 처음에는 물론 짝의 말을 무시하고 나와 얘기를 하는 친구도 있었다. 하지만 짝과 그 무리들이 와서 얘기를 하지 말라며 으름장을 놨고 쪽수에 밀린 내 친구는 달아나듯 내 옆에서 사라졌다. 며칠이 지나자 나에게 찾아오는 친구는 싹 없어졌다. 내가 찾아가도 어물어물 거리며 자리를 피했다. 내 짝과 그 무리들은 그때부터 날 괴롭히기 시작했다. 냄새가 난다며 소리쳤고 지우개 똥을 뭉쳐서 던졌다. 일찍부터 나는 '찐따'라는 이름표를 달게 되었던 것이다.

 선생에게 찾아가 상담을 하고 싶다고 내 짝이 계속 괴롭힌다고 말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뭐 그리 바쁜지 수업하는 것 이외에도 업무가 많다며 다음에 찾아와 달라고 했다. 짝한테는 잘 타이를테니 조금만 참으라고만 했다. 아빠에게 말하려 해도 야근이다 뭐다 해서 집에 들어오는건 손에 꼽을 정도였고 주말에도 출장을 가거나 잠만 자기 일쑤였다. 상담과 선생을 찾아가도 자리에 없거나 다른 선생과 수다를 떠는 것에 바빴다. 나를 향한 괴롭힘은 점점 커져갔지만, 나를 향한 도움은 하나도 받을 수 없었다.

 괴롭힘은 점점 대범해졌고 대놓고 때리기도 했었다. 짝의 무리가 아닌 애들도 몇몇 끼어있었다. 용기를 내어 나에게 말을 건냈던 친구도 이젠 그 몇몇에 껴있었다. 나를 괴롭히는 것은 감기처럼 애들에게 옮았고, 자연스레 나는 그 기침과 재채기를 받아주는 존재가 되어있었다. ㅡ가래를 받아주기도 했었다ㅡ

 아예 다른 동네로 이사를 가버렸으면 모를까. 다 비슷비슷한 주변 동네에 살고 있기 때문에 몇몇 보균자를 제외하고는 나와 같은 학교에 진학했다. 그리고 그들은 새로운 교복입은 낯선 이들 앞에서도 나를 향해 기침과 재채기를 했다. 감기는 전염병이니까 새로운 애들에게도 잘 옮았다. 처음엔 이상한 듯이 쳐다보던 애들도 모두 다 보균자가 되었다.


6

 오후 시간에는 그래도 괴롭힘이 덜하다. 밥을 먹은 뒤 식곤증이 오는지, 대부분이 쉬는 시간을 틈타 엎드려 잠을 청한다. 나에게는 거의 첫 쉬는 시간이다. 군데군데 맞은 곳을 살피고 특별히 쑤시는 곳이 있으면 옷을 들추고 눈으로 살핀다. 오늘은 그래도 얼굴을 맞지는 않았다. 어제처럼 저항하지는 않았으니까. 그리고 이제 한 교시만 버티면 이 교실에서 벗어날 수 있다. 청소하는 날도 아니니까 빗자루로 맞을 일도 없고 얼굴에 마포질을 당할 일도 없다. 그렇다고 나는 바보처럼 바로 집으로 향하지는 않는다. 집에 가는 길에도 괴롭힘을 당하니까. 그래서 나는 늘 종례 후에 다시 그 '교사용 화장실' 칸막이로 들어가곤 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거진 2시간을 보낸다. 2시간이면 학생들이 모두 집에 있거나 학원에 있을 정도의 흐름이기 때문이다. 화장실 칸막이가 나에겐 급식소이고 '방과 후 활동' 교실이다.

 때가 타서 원래는 하얀색이라고 하면 안믿을 정도로 누래진 셔츠를 입은 담임의 종례가 끝나자 마자 나는 내가 점심을 먹었던 화장실 칸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가방을 벗는 것과 동시에 문을 잠갔다.

 "휴우..."

 무의식적으로 안도감에 한숨이 나온다. 침대에 걸터 앉는 자세와 똑같이 변기 위에 앉는다. 이제 2시간만 있으면 안전한 집으로 갈 수 있다. 긴장이 조금 풀린 탓인지 눈꺼풀이 조금씩 조금씩 무거워진다.


7

 한기에 눈이 천천히 떠졌다. 두 어번 꿈뻑꿈뻑하던 눈이 반짝 떠져 상황파악을 도와준다. 불은 꺼져 있다.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한다.

 ㅡ PM 9:48ㅡ

 화장실에 앉아 6시간 남짓 잠든 것이다. 수위 아저씨가 모든 문을 잠그기 전에 얼른 나가야한다. 어두컴컴한 학교는 언제나 공포감을 일으킨다. 게다가 나는 학교에 대한 좋은 추억이 없으니 공포심은 더욱 커진다. 가방을 부여잡고 화장실 문을 연다. 계단을 두 개씩 뛰어내려간다. 다행히 아직 문이 잠기지는 않았다. 부여잡았던 가방을 고쳐잡고 오른쪽 팔을 넣고 왼쪽 팔을 넣는다. 문을 열고 집으로 향한다. 2시간만 있으면 되는 것을 4시간이나 더 있었다. 이렇게 잠이 든 적은 처음이지만 학교에서 이렇게 편히 잘 수 있었다는 것이 신기하다. 제일 안전한 곳이라는 것을 내 의식이 확실하게 인식시켜주었다.

 집에는 아무도 없을 것이 뻔하지만 그래도 늦게 들어가는 건 왠지 모르게 잘못을 저지르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한다. 평소보다는 약간 서두르는 걸음으로 집을 향한다. 아침에 세 번이나 건넜던 횡단보도가 나왔다. 집으로 가는 길은 굳이 늦장을 부릴 필요가 없으니 최단으로 갈 수 있는 횡단보도의 신호등 앞에 선다. 몇 번이나 바뀌었을지 모를 빨간 사람이 보인다. 아침보다 왠지 더 빨개진 것 같다. ㅡ 어두워서 그런가?ㅡ 우스꽝스럽게 걷는 모양의 초록 사람이 나왔다. 나는 하얀색 네모칸을 발 끝으로 밟으며 길을 건너기 시작한다.

 '어?'

 "쿵!"

 찰나였다. 내 왼쪽을 환하게 비추던 어떤 것이 나를 덮쳤다. ㅡ끼이이익!ㅡ 브레이크를 거칠게 밟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공중에 붕 뜬 상태로 반대편 횡단보도에 떨어졌다. 화장실에 깼을 때와 같이 내 눈은 꿈뻑꿈뻑 상황파악을 하고 있다. 건너고 있던 사람들이 몰려와 나를 내려다 본다. 내가 쓰러져 있는 것이다. 나를 괴롭히는 애들과 마찬가지로 적당히 원을 그리고 적당히 거리를 둔 채, 나를 내려다 보고있다. 

 "학생! 괜찮아? 학생!"

 "구급차! 얼른 구급차 불러!"

 "꺄아악!"

 "대박.."

 "여보세요? 야 잠깐만 지금 여기 사고났어!"

 "119! 119불러 빨리!"

 거리를 두던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선을 넘지 않은 채, 정당 해야할 일을 하고 있는 듯이 보였다.

 아스팔트가 이렇게 차가운지는 몰랐었다. 4월이라도 밤은 아직 추운 탓이었겠지. 횡단보도의 하얀 네모도 내 피 때문인지 불규칙적으로 붉게 물들었다. 다급하게 뛰어오는 구두소리가 들렸다.

 "학.. 학생 괜찮아? 아저씨가 구급차 불러줄께. 미안하다. 조금만 참아다오. 미.. 미안하다."

 신호등의 초록 사람이 들어가더니 빨간 사람이 나왔다. 나와 비슷한 자세로 서있기만 한 채 나를 보고 있다.

 "학생 내 말 들려? 이제 조금 있으면 구급차 올꺼야. 조금만 참아."

 꿈뻑거리던 눈꺼풀이 화장실에 앉아 있을 때처럼 조금씩 무거워진다.

 "학생 괜찮아? 응? 학생!"

 빨간 사람은 초록 사람처럼 깜빡거리지 않은 채 나를 바라보고 있다.

 "학생! 말할 수 있겠어?"

 이제야 내가 원했던 바람이 생각난다. 한순에 이루어졌다. 눈꺼풀은 조금씩 더 무거워진다.

 "학생!"

 말을 하고 싶은데 생각대로 잘 나오지 않는다. 울먹거림과 비슷하게 겨우겨우 입 밖으로 말소리가 나온다.

 '이제 괜찮아요. 미안해요.'

 하고싶은 말은 저거였지만 잘 전달이 되었을지는 잘 모르겠다.

 내가 좋아한 빨간 사람은 얇은 눈꺼풀이 천천히 내려오면서 머리에서부터 천천히 없어져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