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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향 (suhya85@naver.com)
010.4121.8219
오빠는 네 번의 자살시도 끝에 식물인간이 되었다. 오빠의 사고가 있던 날 엄마는 울지 않았고, 아버지는 소식을 전하는 내 전화를 조용히 끊었다. 오빠가 마지막으로 전화했던 사람은 나였다. 오빠는 술에 취해 있었고 나는 격앙되어 있었다. 그렇게 뒤지고 싶으면 곱게 뒤져. 뒤져버려. 내 눈에 띄지 마. 내가 너 죽여 버릴 거야. 오빠는 울지도 소리치지도 화내지도 않았다. 더는 참지 못하고 내가 수화기를 내려놓았을 때 일이 벌어졌다. 오빠는 달리는 승용차 앞으로 뛰어들었다. 그날 밤 의사는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했지만 오빠는 식물인간인 채로 살아남았다.
그 다음 날 엄마는 오빠가 뛰어든 승용차의 주인을 찾아가 무릎을 꿇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염불을 외우듯 말하고 또 말하는 엄마의 목소리가 낯설었다. 목에 기브스를 한 50대 중반의 여자는 엄마를 딱하다는 눈초리로 바라보며 합의로 끝내자 했다. 엄마는 여자에게서 계좌번호를 받아 곧장 은행 창구로 갔다. 입금을 마치고 명세서를 분쇄기에 넣으며 엄마는 아랫입술을 피가 맺히도록 물었다.
오빠가 식물인간이 된 지 넉 달이 지났다. 오빠와 친분이 있던 영화감독과 작가, 스태프들이 과일이나 주스, 꽃다발 따위를 들고 왔다. 그들이 다녀가는 동안에 나는 병실에 딸린 작은 티 테이블 앞에 앉아 어깨를 옹송그리고 노트북의 키보드를 두들겼다. 간혹 눈물을 보이는 사람도 있었다. 그럴 때면 더 바쁘게 손가락을 움직였다.
“이 감독, 차라리 완전히 가버리지 그랬어. 이 사람아, 이 몹쓸 사람아.”
“…….”
나는 자주 짧은 한숨을 뱉었다. 하지만 요 근래에는 사람들의 발길이 잦지 않았다. 누구도 찾아오지 않는 날들이 길어졌다. 그 대신 유진이가 왔다. 유진이는 오빠 옆에서 어린이집 숙제를 하고, 학습지를 풀었다. 오빠에게 동화책을 읽어주고 노래를 불렀다. 오빠의 미동 없는 손을 주무르고 발을 주물렀다. 조그만 그애의 따뜻한 손이 오빠를 덥혔다.
“고모, 울 아빠는 잠꾸러기야. 그치이? 잠꾸러기는 혼내줘야 해. 유진이가 아빠 혼내줄 거야.”
유진이는 주말을 제하고는 매일 같이 병실로 찾아왔다. 만삭인 새언니는 유진이를 데려 오갈 때 병실 문 앞에서 약하게 노크를 했다. 새언니는 지난 달 이민을 가겠다고 오빠에게 통보했다. 유진이의 새아빠가 해외 지사로 발령을 받았다는 것이다. 유진이가 초등학교를 들어가기 전에 모든 수속을 끝내겠다고 했다. 다음 달이면 유진이는 호주에 간다. 그애는 점점 이곳에 대해서 잊게 될 것이다. 유진이가 나를 가장 먼저 잊기를 바랐다.
*
오빠는 최초의 자살 시도를 내 집에서 했다. 2년 전 겨울, 오빠는 좋아하지도 않는 와인을 터무니없이 많이 사들고 나를 찾아왔다. 네가 뭘 좋아하는지 몰라서 직원한테 물어 좋다구 하는 건 다 사왔다. 오빠는 그렇게 말하며 쓰러지듯 집안으로 들어왔다. 오빠에게서는 담배 냄새와 술냄새가 진하게 났다. 기관지가 약한 유진이 때문에 담배를 끊었던 오빠였다. 의아함에 물으려던 나는 탁하게 풀린 눈동자를 마주하고서 입을 다물었다.
“은재야, 나는 병에 걸렸다.”
처치곤란이 된 와인병들을 냉장고에 아무렇게나 넣고 오자 오빠가 소파에 널브러져 말했다. 오빠의 목소리가 17년 전의 것과 맞물렸다. 은재야, 나 병에 걸린 것 같아. 키가 멀쑥하게 커지고 목소리가 걸걸해지기 시작한 오빠가 기말고사 공부를 하는 내 방문을 두드리며 그랬다. 나는 당장 펜을 던지고 방문을 열어젖혔다. 오빠는 창백한 얼굴로 곧 쓰러질 듯 위태롭게 서 있었다. 왜 그래, 오빠. 내가 오빠의 손을 끌어 침대로 이끌자 오빠는 거기에 조심스럽게 앉았다. 왜 그러는 거야, 오빠. 내가 재차 묻고 또 물은 후에야 오빠는 힘겹게 침을 삼키고 마른 입술을 뗐다. 가슴이 너무 두근거려. 뭐? 가슴이 너무 두근거린다구. ……. 가만히 있어도, 잠을 자려고 해도 두근거려 미치겠다. 오빠 심장병에라두 걸린 거 아냐? 그런 것 같아. 난 이제 얼마 안 있어 죽고 말거다. 내가 죽으면 나를 할아버지 산소에 있는 느티나무 밑에 뿌려줘. 그딴 재수 없는 소리 하지 마, 오빠. 언제부터 그랬어? 언제부터? 그래, 가슴이 언제부터 그렇게 두근거리기 시작했냔 말야. ……그앨 처음 본 순간부터. 뭐어? 뭐야! 난 정말 오빠가 병에 걸린 줄 알았잖아. 이게 병이 아니면 뭔데? 멍청하긴. 열일곱 살이 되도록 누굴 좋아해 본 적도 없어? ……좋아한다니? 그애가 누군데? 그앨 보고부터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며. 오빠는 그앨 좋아하는 거야. ……. 오빠는 그대로 내 방을 나가 밤이 깊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잠바도 걸치지 않고 12월의 새벽을 쏘다니고 온 오빠의 붉게 언 뺨은 아버지의 손찌검으로 검붉어졌다. 오빠는 울지 않았다. 소리치지도 않았고 그저 묵묵히 맞았다. 엄마는 아버지의 손을 붙들고 그만두라고 소리치다 떠밀려 허리를 다쳤다. 그날 나는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 새벽이 지나고 나서 달라진 것은 없었다. 오빠는 그날 하루를 제외하고는 여태껏 그래왔던 것처럼 모범생 장남이었고, 아버지는 여전히 엄했고, 어머니는 자식들을 살뜰히 아꼈다. 다만 오빠는 두 번 다시 나에게 가슴이 두근거린다는 말 따위는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날, 오빠가 최초의 자살 시도를 한 날 오빠는 17년 만에 내게 병에 걸렸다고 말했다.
“무슨 병?”
나는 몸을 함부로 늘어뜨린 오빠의 곁에 앉아 TV를 켰다. 오빠가 어서 잠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오빠는 입을 다물지 않았다.
“가슴이 너무 두근거린다.”
“…….”
“가슴이 너무나 두근거려.”
TV의 볼륨을 높였다. 몇 달 전에 봤던 속옷 세트였다. 저번보다 가격이 만 원 정도 줄었고, 사은품이 풍성해졌다. 나 당신 속옷 다 외웠어. 당신 요일 별로 정해진 속옷을 입는 거 알아? 그는 마치 그거 하나로 나를 다 파악했다는 듯 말했었다. 매진 임박이라는 글씨가 번쩍거리기 시작했다. 휴대폰을 열고 자동주문 번호를 입력했다.
“가만히 있어도, 잠을 자려고 해도 두근거려 미치겠다.”
통화음이 가는 동안 내 사이즈가 품절되었다는 쇼호스트의 시원스러운 목소리가 울렸다. 몸매가 드러나는 붉은 원피스를 입은 그 여자는 매력적인 미소를 가지고 있었다.
“ 내가 죽으면 나를 할아버지 산소에 있는……”
“그만해.”
“느티나무에 묻어줘.”
오빠는 울고 있었다.
“내가 무슨 말을 해주길 바라는 거야?”
나는 차갑게 오빠를 바라보았다. 오빠의 눈물을 몇 십 년 만에 보았다. 오빠는 눈물을 감추지 않았다. 아이처럼 굵은 눈물을 흘렸다. 그때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했을까. 언제부터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냐고 물어야 했을까? 그애가 누군지 물어야 했을까? 오빠는 그앨 좋아하는 거라고 말해야 했을까? 나는 어떤 말도 뱉지 않았다. 입을 다물었다. 오빠는 한참동안 어깨를 떨며 눈물을 떨궜다. 마침내 오빠가 천천히 몸을 일으켜 욕실로 가는 동안 나는 쏘아붙이듯 말했다.
“유진이만 생각해.”
오빠는 잠시 멈추었다가 다시 느리게 욕실로 향했다. 곧이어 물소리가 들렸고, 나는 잠시 동안 고개를 들고 새하얀 조명등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눈이 시렸다. 눈을 꾹 감았다 뜨며 오빠의 속옷과 갈아입을 옷가지를 사와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파카와 목도리를 두르고 나가니 눈이 오고 있었다. 첫눈이야, 라고 작게 중얼거렸던 것 같다. 돌아왔을 때 오빠는 면도칼로 두 손목을 긋고 기절해 있었고 욕조 안에서는 피가 출렁였다.
새언니는 오빠를 이해하지 못했다. 서른셋이라는 젊은 나이에 작품성을 인정받고 신예 감독으로 떠오른 오빠가 왜 자살시도를 했는지 이해하지 못한 건 새언니뿐만이 아니었다. 모두가 오빠를 이해하지 못했다. 오빠의 자살시도는 전파를 탔다. ‘혜성처럼 등장한 신예 감독, 이은우가 자살기도를 한 이유는?’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수도 없이 쏟아졌다. 스크린에서 내려오기 시작하던 오빠의 작품이 스크린에 다시 오르기 시작했다. 새언니와 가족들은 기자들과 사람들의 관심에 치를 떨었다. 기자들은 유진이의 유치원까지 찾아왔다. 그들은 유진이를 ‘비운의 신예 감독 외동딸 L모양’으로 칭했다. 새언니는 바깥출입을 극도로 꺼렸다. 유진이의 눈만 검은 선으로 가린 사진이 나돌아 다니기 시작하자 신경쇠약 증세까지 보였다.
아버지는 병실에 딱 한 번 찾아왔다. 굳은 얼굴로 찾아온 아버지는 붕대가 친친 감긴 오빠의 두 손목을 말없이 바라보다 돌아갔다. 엄마는 울었다. 밤낮없이 눈물이 엄마의 눈에서 새나왔다. 엄마의 주름 사이사이로 그것들이 스며들 때마다 몸의 어딘가가 조금씩 바스라지는 느낌이 들었다. 느이 아부지 밤에 잠 못 드신다. 은우 어릴 때 쓰던 방 들어가서 한참을 있다가, 그러구 나오신다. 늬 오빠 왜 그랬는지 너는 알어? 은재야, 너는 아니? 어릴 때부터 늬 둘은 사이가 좋았잖여. 엄마는 하루에도 몇 번씩 그 소릴했다.
기자들은 나 역시 가만두지 않았다. 각종 신문사, 방송사 너나 할 것 없이 컨택을 요청했다. 잘 알고 지내던 영화지의 리포터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 작가님, 이 감독님 일 얘기 좀 들을 수 있을까요? 그 리포터에게서 온 문자였다. 문자를 지우고 번호를 스팸 등록하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 했다. 동료 작가들, 선배 감독들, 같이 작업한 스태프들이 간혹 찾아왔다. 그들은 울거나 굳은 얼굴로 내게 위로의 말을 건네고 조용히 돌아갔다. 다들 입을 모아 말했다. ‘이 감독님이 왜?’
“저 이혼하겠어요.”
새언니는 며칠이 있지 않아 집에 찾아와 그렇게 선언했다. 엄마와 아버지는 어떤 반발도 하지 않았다.
“서류를 보내드릴게요. 유진이는 제가 데려가겠어요.”
여섯 살 배기 유진이는 새언니 품 안에 잠들어 있었다. 새언니는 엄마나 아버지, 그리고 나와 눈을 마주치지 않고 뒤돌아섰다. 엄마는 숨죽여 울었고 아버지는 문을 쾅하고 닫고 방으로 들어갔다. 아이고, 내 새끼를 어찌할꼬. 내 새끼르을……. 엄마는 유진이가 좋아하던 토끼 모양의 봉제 인형을 끌어안고 울었다.
오빠는 그 며칠 동안 잠에 들어있었다. 오빠가 눈을 뜨기 이틀 전, 한 남학생이 병실을 찾아왔다. 중간키에 조금 마른 체형의 남자애였다. 18살 정도 되었을까. 눈매가 둥그스름하고 쌍꺼풀 없는 눈이 크고 눈동자가 아주 새카맸다. 그애는 길고 예쁜 손가락을 가지고 있었는데 검댕이 묻어 더러웠다. 그앤 그 손가락으로 오빠를 가리키며 말했다.
“아직 안 깨어나신 거예요?”
“넌 누구야?
대답 대신 내가 묻자 그애는 손바닥을 교복 바지자락에 닦았다. 검댕이 바지자락에 묻었으나 그애는 신경쓰지 않았다.
“저는 유현이라고 하고요. 이은우 감독님한테 캐스팅 제의를 받았었어요. 아, 물론 저 같은게 무슨 연기를 하겠어요. 전 그런 거 하고 싶었던 적도, 해본 적도 없어서. 암튼 감독님 좋은 분인데 갑자기 이런 일이 생겼다구 해서…….”
“……”
“마음이 너무 아파요. 왜 이러셨을까, 생각해봤는데 저는 도무지 모르겠더라구요. 유진이를 많이 사랑하는 분인데. 감독님이 유진이 얘기 많이 하셨어요. 사진도 보여주셨었는데. 아주 예쁘더라구요. 감독님도 많이 닮았지만 아마 사모님을 닮아서 그렇게 이쁜 것 같아요. 감독님은 사모님 얘길 잘 안 하셔서 모르겠지만요. 아, 죄송합니다. 바쁘실 텐데. 저는 이만 가볼게요.”
그애는 버릇인 것처럼 자주 손바닥을 바지자락에 닦았고 자세히 보니 파카로 가려진 목과 귀 뒤쪽에 멍이 심했다.
“잠깐만.”
몸을 급하게 돌리던 그애가 나를 돌아보았다.
“밥은 먹었니?”
파카를 벗은 그애의 목에 더욱 선명하게 멍자욱이 보였다. 내 눈길을 알아챈 그애가 멋쩍은 듯 웃어보였다.
“아버지가 손찌검이 좀 심하세요. 감독님도 첨에 멍자국 보고 많이 놀라시던데. 감독님 동생분 맞으시죠? 많이 닮았어요.”
그애는 내 앞으로 수저를 놓아주며 말했다. 수줍은 듯 웃는 미소가 예뻤다. 곧이어 설렁탕 두 개가 나왔다. 그애는 파와 소금을 잔뜩 넣어 휘저었다. 후후 불어가며 바쁘게 먹었다.
“제가…… 알바를 가야 하거든요. 원래는 밥 못 먹고 가는데 사주셔서 감사해요.”
“알바?”
“네. 이것저것 해요. 좀전에 주유소에서 하구 왔어요. 쩌기 사거리 너머에 나이트 하나 있거든요. 밤엔 거기서 삐끼 일해요. 첨엔 좀 부끄러웠는데 돈벌이가 되거든요. 나중에 감독님 나으시면 같이 춤추러 오세요. 감독님은 제가 그 일 하는 거 싫어하시긴 하지만요.”
그애는 말이 많았다. 잘 웃고 잘 먹었다.
“감독님은 동생분이랑 유진이 얘길 많이 했어요. 두 사람 얘길 할 때 언제나 잘 웃으셨어요. 그래서 두 사람은 저한테도 좋은 사람들로 기억되어 있어요. 아, 맛있다. 여기 설렁탕 맛있네요. 다음에 오면 감독님이랑 같이 먹을래요.”
그애와 오빠는 지난여름 처음 만났다고 했다. 세차를 하다가 만났다고 했다. 열심히 차를 닦고 있는데 다짜고짜 차에서 내려 자기 영화에 출연할 생각이 없냐고 오빠가 물었다는 것이다. 그애는 처음에 오빠가 사기꾼이라고 생각해서 무시했다고 한다. 하지만 오빠가 며칠을 내리 찾아와 자신의 영화 시나리오를 보여주고 전작품의 DVD를 내밀었기에 진짜 감독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애는 오빠의 작품을 보고 감동을 받았다고 했다. 영화라는 게 대단하다고 생각한 게 처음이라고 했다.
“감독님은 정말 좋은 분이에요. 저 아버지한테 맞아서 크게 다쳤을 때도 병원에 데려가주시고, 맛있는 것도 많이 사주시고. 저 처음으로 남자 어른이랑 친해졌어요. 약간 저한텐 아버지 같달까, 그래요.”
그애는 시계를 보고 늦었다며 웃고는 파카를 제대로 걸치지도 못하고 뛰쳐나갔다. 그애가 먹고 난 그릇을 보았다. 말끔했다. 계산을 하고 나왔을 때 그에게서 전화가 왔다. 받지 않았다. 휴대폰은 오래 울리지 않았다. 매서운 바람이 전신을 훑고 저만치 지나갔다. ‘그애’ ‘그애’ ‘그애’ …….
오빠가 눈을 떴을 때 나 혼자 병실을 지키고 있었다. 오빠는 눈을 뜨고 나를 가만히 보았다. 진도가 나가지 않는 시나리오 파일을 닫고 오빠와 눈을 마주했다. 오빠의 충혈된 눈은 나를 끈질기게 응시했다. 오빠의 입술은 허옇게 말라있었다.
“유진이 유치원에까지 기자들이 찾아갔어. 엄마는 반쯤 제정신 아니고, 아버지도 그래.”
“…….”
“또 그럴 거니?”
“…….”
“또 그럴 거면 이번에 죽었어야지.”
오빠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상처가 깊어 오빠는 두 손목을 몇 십 바늘이나 꿰맸다. 붕대가 감긴 오빠의 손목을 잡았다. 세게 그것을 눌렀다. 피가 천천히 배어나왔다. 오빠를 이해하고 싶은 생각 따위는 들지 않았다. 오빠에게 일종의 배신감이 들었다. 오빠가 이토록 쉽게 유진이를 져버릴 줄은 몰랐었다.
“미친새끼.”
오빠는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나를 보았다.
“그애, 유현이. 이틀 전 여기 찾아왔었어.”
오빠의 눈이 조금 커졌다. 오빠는 몸을 일으키려다 내가 붙든 손목의 통증 때문에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새언니가 서류를 보냈어. 유진이 양육권 가질 생각하지 마. 오빤 자격 없어.”
오빠의 면전에 서류 봉투를 던지고 병실을 나왔다. 오빠의 휴대폰을 뒤져 알아낸 유현의 번호로 전활 걸었다. 한참 후에야 받았다. 내가 누군지를 밝히자 유현은 기분 좋은 소리를 내어 웃었다. 감독님은 깨어나셨어요? 라는 물음에 저녁 사줄게, 라고 대답했다.
유현은 어깨를 바싹 모으고 병원 앞 벤치에 웅크려 앉아 있었다. 유현의 오른쪽 눈에 자줏빛 멍이 피어 있었다. 눈길이 거기로 향하자 유현은 손등으로 거길 가리며 웃었다.
“제가 맞을 짓 했어요. 아버지한테 좀 대들었거든요. 별 일은 아니구요. 자꾸 술을 너무 드시잖아요. 그래서 몇 마디 했다가.”
유현의 옆에 앉아보니 눈에만 멍이 든 것이 아니었다. 입술은 터지고 코에는 굳은 핏자국이 있었다.
“…… 왜 그렇게 맞고 사니?”
“그래도 내 아버지잖아요. 아버지 없으면 난 고아에요. 난 형제도 없고 엄마도 없어요. 세상에 나 혼자 뿐이라고 생각하면 외로워서 죽어버릴 것 같아요. 친구들도 있고, 감독님도 계시지만 그래도 다들 가족이 있잖아요. 나한텐 우리 아버지가 가족이에요. 가족이니까, 가족이니까요.”
유현을 데리고 내 집으로 갔다. 마트에 들러 산 두툼한 스테이크용 쇠고기와 가니쉬로 곁들일 채소를 식탁에 두고 우선 보일러를 켰다. 오래 비워두었던 집에서는 냉기가 흘렀다. 유현은 입김을 불며 김이 보인다며 웃었다. 점점 훈기가 돌기 시작하자 유현이 파카를 벗었다. 상을 차린 뒤 오빠가 사놓은 터무니없이 많은 와인 중 레드와인 하나를 골라 땄다. 유현은 술을 할 줄 모른다고 손사래를 쳤으나 곧 한 모금 마시더니 홀짝홀짝 마시기 시작했다.
“누나 요리 진짜 맛있어요. 저 스테이크 첨 먹어봐요. 입에서 녹아요, 녹아.”
술이 들어가자 유현의 볼이 점차 발그스름해졌다. 한두 잔 더 들어가자 혀가 조금씩 꼬이는가 싶더니 눈이 풀리기 시작했다.
“누나, 감독님은 깨어나셨어요?”
“아니.”
“감독님은, 감독님은 왜 그러셨을까요?”
유현의 목소리가 조금 떨렸다.
“오빠는 병에 걸렸거든.”
“병이요?”
“그래, 병.”
“무슨 병이에요? 전 감독님이 건강하신 줄 알았어요.”
유현의 고개가 푹 꺾였다. 유현을 데려다 침대에 눕혔다. 스웨터와 양말을 벗기자 유현은 몸을 태아처럼 둥글게 말았다. 그 곁에 누워보았다. 유현의 숨결이 따스했다. 꼭 끌어안자 따뜻한 향기가 났다. 더 끌어안자 유현의 손이 내 등을 감쌌다. 유현은 작게 엄마, 라고 발음했다. 유현의 볼은 뜨거웠다. 입술에 손가락을 대자 달큰하고 따뜻한 입김이 새어나왔다. 거기에 입술을 대었다. 잠깐, 아주 잠깐 유현이 눈을 떴다. 누나, 괜찮아요? 라고 유현이 물었다. 나는 대답 대신 유현의 입술에 내 입술을 묻었다. 유현은 나를 세게 끌어안았다. 유현의 몸에는 상흔이 많았다. 가장 큰 상흔은 오른쪽 가슴에 있었다. 기다랗게 사선으로 그어진 자국이었다. 아버지가 던진 식칼에 맞았다고 했다. 아홉 살 때였어요. 엄마가 집을 나간지 얼마되지 않았을 때였어요. 아버지는 엄마를 죽일 거라고 날뛰고 있었어요. 그러다 칼을 쥐었고 나에게 던졌어요. 난 내가 죽는 줄 알고 울지도 않고 그 자리에 가만히 누웠어요. 몽글몽글 피가 나오는 느낌이 들었어요. 따뜻했어요. 너무 따뜻해서 아프지 않았아요. 유현이 이따금씩 내 눈가를 만지며 물었다. 누나 울어요? 나는 유현의 오른쪽 가슴의 상흔을 하염없이 쓰다듬었다. 유현은 처음부터 끝까지 따뜻했다. 내가 잠들 때까지 나를 안아주었다.
일주일 후, 오빠는 합의이혼을 했다. 오빠는 그 이후로 두 번 더 자살을 기도했고 매번 살아남았다. 그동안에 그는 다른 여자와 약혼했고 나는 가끔씩 유현과 내 집에서 밤을 보냈다. 유현은 오빠를 한없이 안타까워했다. 그리고 물었다. 감독님 병이 뭐예요? 그럴때마다 나는 유현의 따뜻한 입술을 빨았다.
17년 전 내 방문을 두드리는 오빠의 꿈을 자주 꿨다. 뭐어? 뭐야! 난 정말 오빠가 병에 걸린 줄 알았잖아. 이게 병이 아니면 뭔데? 멍청하긴. 열일곱 살이 되도록 누굴 좋아해 본 적도 없어? ……좋아한다니? 그애가 누군데? 그앨 보고부터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며. 오빠는 그앨 좋아하는 거야. ……. 그 부분을 아무리 바꾸려고 해도 바꾸어지지 않았다. 내 입술은 또박또박 발음 했다. 오빠는 그앨 좋아하는 거야. 오빠는 그앨 좋아하는 거야. 오빠는 그앨 좋아하는 거야. 오빠는 그앨 좋아하는 거야.
17년 전 오빠의 그애는 오빠의 반에 전학 온 남자애였다. 오빠가 운동장에서 그애를 바라보는 모습을 보았다. 오빠는 그애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여느 아이들과 다를 바 없는 애였다. 중키에 약간 마른 체형. 다만 눈이 크고 쌍꺼풀이 없었다. 축구공을 차던 그애가 다가오자 오빠는 전에 없이 환하게 웃었다. 한눈에 알아보았다. 그애가 ‘그애’라는 것을. 그날 이후 나는 그애에게 말을 붙이기 시작했다. 우리 오빠 친구지? 난 이은재야. 저기 옆에 있는 여중 다녀. 내년에 졸업하면 이 학교에 다닐 거야. 넌 어디 살아? 나는 그애와 우리집 대문 앞에서 첫 키스를 했다. 오빠가 창문 너머로 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더 열렬히 그애의 목을 감고 혀를 깊숙이 밀어 넣었다.
내 방에서 그애와 첫 관계를 맺었다. 내가 고2 때 일이었다. 겨울 방학이었고, 그애는 서울의 명문대에 수시 합격을 한 상태였다. 부모님은 없었다. 오빠가 옆방에 숨죽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애는 내 작은 젖가슴을 세게 쥐고 서툴게 들어왔다. 그애는 나에게 사랑한다고 말했다. 나는 자꾸만 사랑한다고 말하는 그애의 입술에 입술을 포개었다. 그애가 움직일 때마다 더 큰소리를 내어 아파했다. 더 크게 교성을 냈다. 오빠는 나에게 화내지 않았다. 울지도 않았고 소리 지르지도 않았다.
다만 그애가 자취방을 알아보기 위해 서울로 가던 고속버스가 전복되어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비명을 지르며 내 목을 졸랐다. 그토록 비명을 지르는 오빠의 모습을 이전에도 이후에도 보지 못했다. 오빠는 마치 내가 그앨 죽게 만든 것처럼 나를 저주했다. 그애의 죽음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애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오빠의 억센 손이 내 목을 조르는 동안 나는 그애가 존재했음을 분명히 느꼈다. 그애가 꽤 상냥했다는 것도 선명히 기억에 새겨졌다. 그애는 그 고속버스를 타기 전에도 나에게 사랑한다고 했다. 사랑해. 내가 서울에 가도 달라지는 건 없어. 난 너 밖에 없다. 그애는 나와 눈을 맞추며 그렇게 말했다. 케헥…… 그만…… 그만…… 오빠…… 살려… 줘…… 오…… 빠…… 오빠는 내가 기절할 때까지 목을 졸랐다. 그 이후 오빠는 대학을 졸업하고 새언니와 결혼했다. 몇 년 후 유진이가 태어났다. 오빠는 일 년에 한 번, 그애의 기일에 납골당에 갔다. 나는 이따금씩 누군가와 함께 밤을 보냈다.
*
오빠는 육 개월 째 식물인간이다. 욕창이 생기지 않기 위해 간병인이 매일 네댓 번씩 오빠의 등을 뒤집고 닦았다. 몸이 굳지 않게 전신을 주물렀다. 간병인은 엄마 또래의 여자였다. 우리 아들이랑 나이가 같소. 어서 깨어나야 할 것인디. 내가 여 올 때마다 짠합니다. 여자는 질리지도 않는지 매번 나를 볼 때마다 그랬다. 엄마와 아버지는 오빠의 병실을 찾지 않았다. 이제 병실엔 나뿐이다. 아주 가끔 유현이 찾아왔다. 유현은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연극판에 뛰어들었다. 그애는 이번에 작은 배역 하나를 맡았다. 다 감독님 덕분이에요, 라고 그애는 오빠의 굳어가는 손등을 매만지며 말했었다. 유현은 밤늦게 연습이 끝나면 내게 전화했다. 다른 남자 만나면 안돼요, 누나. 그애는 제법 당돌해졌다. 내가 전화를 받지 않으면 집까지 찾아오곤 했다. 놀란 토끼눈을 하고서 나를 품에 안으면 그때서야 그애는 안도의 숨을 가쁘게 토했다. 그애의 몸은 언제나 따뜻했다. 그애의 오른쪽 가슴 상흔에 손바닥을 대고 있으면 눈이 지상을 덮는 것처럼 머릿속이 깨끗해졌다. 유현은 이따금씩 내게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우리 마당이 있는 집에서 살아요. 애들은 네 명 정도 낳구요. 누나만 좋다구 하면 난 더 많아도 좋아요. 아들이든 딸이든 다 좋아요. 누나랑 나 닮은 애들이 마당에서 뛰어 논다는 생각을 하면 너무 행복해요. 누나, 나 아기들 이름도 다 생각해놨어요. 궁금하죠? 그래두 절대 안 알려줄래요. 나중에 내가 출생신고하고 올 때까지 비밀이에요. 유진이가 여기 있으면 좋았을 텐데. 유진이는 분명 상냥한 큰 언니가 되었을 거예요. 그앤 감독님을 닮아서 참 착하잖아요. 감독님도 어릴 때부터 착했죠? 전 딱 보면 알아요. 누난 아마 좀 못됐을 거야. 하하. 알았어요, 장난이에요. 근데 감독님은 언제 깨어나실까요? 내가 연극 시작한 거 알면 좋아하실 텐데. 처음에 감독님이 영화하자고 할 때 할 걸 그랬나 봐요. 감독님한테 죄송스러워요. 이번에 깨어나시면 치료 제대로 받으셔서 다시 재개하시길 기도하고 있어요. 정말이에요. 나 밤마다 누나 잘 때마다 기도해요. 누나가 세상 모르고 잘 때 우리 감독님 무사히 깨어나게 해주시고, 우리 누나가 딴 남자에 눈독 들이지 않게 해주시고, 우리 유진이가 먼 곳에서 아프지 않고 잘 있게 해주시고, 불쌍한 우리 아버지 이제 술 그만 마시게 해주시고. 이렇게 매일 기도한다구요. 몰랐죠? 누구한테 기도하냐구요? 하느님한테도 하고, 부처님한테도 하고, 모든 신한테 하죠. 나 완전 기특하죠? 뽀뽀해줘요. 아, 뽀뽀해줘요.
유현은 사랑한다고 내게 말하지 않았다. 그애는 나를 깊이 알았다. 유현은 늘 잘 웃었다. 그앨 따라 웃는 동안 나는 오빠를 잊었다. 그러나 오빠는 매일 밤 꿈에 나왔다. 십 오년 전 내 목을 조르던 오빠, 이 년 전 욕조 안에서 눈을 감고 있던 오빠, 일 년 전 목을 매단 오빠, 육 개월 전 약을 먹고 중환자실에 입원한 오빠, 그리고 지금 식물인간이 된 오빠. 오빠는 매번 다른 모습으로 나왔다. 그 꿈속에서 나는 항상 오빠의 가장 가까운 곳에 있었다. 꿈속과 현실은 다르지 않았다. 나는 매번 오빠를 구하지 못했다. 아니, 구하지 않았다.
난 이제 얼마 안 있어 죽고 말거다. 내가 죽으면 나를 할아버지 산소에 있는 느티나무 밑에 뿌려줘. 열일곱 오빠의 목소리가 사라지지 않는다. 오빠는 왜 느티나무 밑에 뿌려달라고 했을까. 그 나무는 이미 베어진지 오래였다. 오빠에게 처음으로 묻고 싶은 것이 생겼다. 왜 느티나무 밑에 뿌려달라고 했는지. 오빠가 그 말을 다시 한 2년 전에는 그 나무는 이미 죽은 나무였는데도 왜 그 느티나무 밑에 뿌려달라고 했는지.
유진이는 한 달 전 호주로 떠났다. 그애한테서 일주일에 한 번 전화가 왔다. 그애는 이제 한 문장을 말할 때 영어단어 두어 개를 섞어 말했다. 유진이는 오빠에 대해 항상 물었다. 파파는 이제 잠에서 깼어? 그애가 그렇게 물을 때마다 아빠는 아직 꿈을 꾸고 있어, 아주 좋은 꿈이야, 라고 말했다. 그러면 그애는 투덜거리고는 제 새아빠와 오빠를 비교했다. 제 새아빠는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서 같이 운동도 하고 밥도 함께 먹고, 영어 공부도 시켜주고 주말이면 캠핑도 간다면서. 유진이는 이제 새아빠를 ‘파덜’이라고 불렀다. 그리고는 얼마 있지 않아 새언니의 재촉하는 목소리가 들리면 고모, 씨 유 어게인, 하고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그애는 점점 이곳에 대해 잊을 것이다. 그애가 나를 가장 먼저 잊기를 바랐다.
*느티나무의 꽃말: 운명
(200*7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