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

by 리망 posted Apr 09,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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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





 햇살이 따뜻한 이불마냥 포근한 게 상당히 기분이 좋습니다. 제가 파놓은 이 모래 구덩이도 들어와 보니 아득한 게 참 좋네요. 몇 시간 누워있지도 않았는데 벌써 볼에 모래가 쌓였습니다. 손으로 살짝 스윽하고 문지르기만 해도 하얀 모래가 까슬까슬하게 묻어나오네요. 졸음이 절 안아 저를 재우려는 것 같습니다. 분명 좋은 징조겠지요.

 그저 누워만 있으려니 제 무덤 판다라는 말이 생각나지 않을 수가 없네요. 제가 왜 제가 파놓은 모래구덩이에 누워있는지 궁금하실 테죠. 지금 여기에서는 마땅히 할 일도 없으니 말씀드릴게요.

 무인도에서 처음 눈을 떴을 때, 도대체 며칠이나 파도에 치이고 모래밭에 누워있었던 건지 몸이 움직이질 않더군요. 모래가 전부 자석이라도 된 것 같은, 아니면 몸에 있는 힘이란 힘은 모래가 다 빨아먹은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그래서 전 한참동안 눈만 껌뻑거리며 누워있었습니다. 고개도 돌아가지 않아서 줄곧 한 곳만 쳐다보며 말이죠. 가끔 눈에 모래가 들어가는 바람에 따가워 죽겠는데 손을 못 움직이니 정말 미칠 것 같기도 했었지요.

 계속 가만히 있기에는 불안해서 일단 목소리라도 내보려 했습니다. 저 말고도 혹시 다른 사람이 섬에 떠밀려왔는지 궁금했거든요. 목소리만큼은 제대로 나올 줄 알고 겨우겨우 입을 벌렸는데 금붕어처럼 뻐끔뻐끔 거리는 것만 가능할 뿐 소리는 나오지 않더군요. 게다가 뻐끔뻐끔거리기만 했을 뿐인데도 볼이 얼마나 땅기던지, 몸 상태가 말이 아니라는 것을 그때 한 번 더 실감했습니다. 괜한 힘 빼기다 싶어 뻐끔대는 것을 그만두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무인도에서 살아남을 계획을 생각하려면 오래 걸릴 줄 알았는데 의외로 그렇게 오래 고민할 것이 없더군요. , , 음식. 그것들만 구하면 되는 거였으니까요. 그것 들을 구하는 방법이랄 것들도 이미 볼만큼 봐둔 덕에 고민할 게 없었습니다. 간접 경험을 너무 많이 한 탓인지 덕인지 돼야할 긴장도 되지 않더군요. 제가 생각해도 이상할 정도로 그 때는 무감각했습니다.

 다른 사람은 없을까, 나 혹시 죽어있는 건 아닐까, 여기가 어디일까, 가족들은 잘 있을까 같은 생각들을 하며 전 그 상태로 몇 시간정도 누워있었습니다. 노을이 져 하얗던 모래들의 색이 주황색이 될 즈음에 파도가 제 쪽으로 밀려들어오더니 그 파도를 맞은 제 발이 무의식적으로 움찔하고 반응하더군요. 그렇게 발에서 다리, 다리에서 허리, 허리에서 목, , 손까지 전부 감각을 되찾았습니다. 겨우 몸을 전부 움직일 때가 되니 날은 이미 어둑해져 있더군요. 당장 잘 곳을 구하는 건 무리라고 생각해 그날은 그냥 그 근처 야자수 나무에 기대어 바로 곯아떨어져 버렸습니다. 그렇게 기절해 있었으면서도 신기하게도 잠은 또 오더군요.

 다음 날 일어나보니 해가 중천에 떠 있었습니다. 언뜻 보니 오후 한 두시쯤이겠더군요. 몸은 움직일 수 있었지만 움직일 때마다 생기는 고통이 장난 아니었습니다. 무릎을 짚고 일어나는데 일어나는 것뿐인데도 근육 하나하나가 찢어질 듯이 아프더군요. 몸 마디마디에서 사이렌소리가 울리는 듯했습니다.

 근육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위도 찢어질 듯이 아프더군요. 고슴도치 한 마리가 뱃속에서 뛰어다니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며칠 동안 굶었으니 이상한 일도 아니었죠. 일단 이 배를 진정시키기 위해 뭐 먹을 게 없나 주위를 둘러보았습니다. 제 바로 위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야자수 열매가 보이더군요. 그걸 먹으려 했습니다.

말을 듣지 않는 몸 덕에 쉽진 않았지만 큰 문제없이 야자수 나무를 타고 기어올라 야자열매까지 닿을 수 있었습니다, 손으로 몇 번 내려치니 열매가 하고 떨어지더군요. 몇 개를 더 떨어뜨린 뒤 전 다시 조심조심 나무를 타고 내려왔습니다. 그리고 열매를 깰만한 어느 정도 크기가 있는 돌을 찾아다녔습니다. 주위를 둘러보니 파도를 맞고 있는 검은 바위들이 보이더군요. 저기에 내려찍으면 열매가 한 방에 깨질 것 같았습니다. 전 바위를 보자마자 그곳으로 걸어가 열매를 내려찍었습니다. 너무 쌔게 찍은 탓인지 열매는 튕겨나가고 손과 팔이 저려오더군요.

 튕겨나간 야자수 열매를 주워 허겁지겁 마셨습니다. 마시고 다 마시면 깨고, 마시고 다 마시면 깨고. 그렇게 한 4개를 먹었습니다. 씹을 것도 없이 배를 채우긴 했지만 우선 배를 채우고 나니 좀 살 거 같더군요.

 그 뒤로는 별로 어려울 것이 없었습니다. 나무와 나뭇잎으로 집을 만들었고, 나무로 불을 지피고, 물고기와 열매로 식사를 때웠습니다. 스스로 이렇게 살아갈 수 있 는 능력이 있었다는 게 신기하고 자랑스럽기까지 하더군요. 저도 제가 이 섬에서 이렇게 살아나갈 수 있을지는 몰랐거든요. 그런데 문제가 하나있었습니다.

시간은 흘러넘치는데 그 흘러넘칠 시간을 혼자서 써야하니 정말 그게 사람을 돌아버리게 합니다. 아주 빠져서 질식사라도 할 것 같이 답답하더군요. 누가 없다는 게 이렇게 괴로운지 몰랐습니다.

 몇 번이고 새나 물고기를 키워보려 했는데 번번이 실패했습니다. 물고기는 금방 죽어버리고 새는 바로 도망가 버리더군요. 옛날에 본 영화의 주인공은 사람은 아니었지만 친구라고 여길 놈이라도 있었으니 그게 그렇게 부러울 수 없었습니다. 저도 야자수나 돌과 친구가 돼보려고 했지만 오히려 더 비참해지기만 할 뿐이더군요. 겨우 한 달, 돌로 바위에 날짜를 표시하기 시작한 지 겨우 한 달인데 아무도 없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크고 두렵게 다가왔습니다.

 넘치는 시간이 두려워 몇 시간 동안 풀숲을 헤매본 적이 있는데 풀숲에 기어 다니던 그 기다란 뱀을 보고서부터는 풀숲 깊은 곳까지는 발을 들이기도 어려워졌습니다. 풀숲에서 조금만 더 들어가면 완전 정글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그늘에 앉아서 배고프면 먹고, 울고 싶으면 울고, 마려우면 내보내고, 몇 주를 그렇게 살았습니다.

 무인도에 조난된 지 두 달 정도 지났을까요. 여느 때처럼 가만히 그늘아래서 앉아 있는데 저 멀리서부터 파란 덩어리가 이쪽으로 둥둥 떠서 오는 게 보이더군요. 파도에 실려 제 가까이 오기 전까지는 영락없이 비닐덩어리인 줄 알았는데 주우려고 다가가보니 사람이더군요. 계속 이쪽으로 떠밀려 오더니 결국 바위에 걸려 멈춰버렸습니다. 전 그 사람의 허리를 들춰 올려 바위에서 떼어내고 제 등에 업었습니다. 차갑고 딱딱한 게 확실히 죽은 사람이라는 게 느껴졌습니다. 들쳐 업은 채로 겨우겨우 바다에서 빠져나와보니 제 옆에서 대롱대롱 흔들리는 팔이 사람 팔처럼은 안 생겼더군요. 깜짝 놀라 모래밭에 그대로 내팽개쳐버렸습니다.

 아주 온몸에 멍이 든 것처럼 퍼런 게 무서워 죽는 줄 알았습니다.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보니까 웬 아저씨더군요. 대머리의 뚱뚱한 서양인이었습니다. 피부가 퍼랬지만 원래 백인이었음에 틀림없어 보였습니다. 길게 생각할 것도 없이 묻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것 말고는 뭐가 딱히 할 게 없었으니까요. 도마용으로 쓰던 넓고 평평한 돌로 개가 땅을 파듯이 땅을 파기 시작했습니다. 이곳은 제가 살아야했으니 시체를 두기엔 너무 뭐해서 걸어서 5분에서 10분정도 걸리는 곳에서 땅을 파기 시작했습니다. 땅을 파면서 갑자기 생각이 나더군요. 그 아저씨의 이름을 알아야 무덤을 만들 수 있는데 그 아저씨의 이름을 저는 모르고 있었던 겁니다. 전 땅을 파다 말고 제가 사는 곳으로 돌아와 그 아저씨의 바지주머니를 뒤졌습니다. 지갑과 라이터가 있었습니다. 담배는 없었습니다. 전 우선 지갑을 열었습니다. 물에 젖은 10달러, 100달러 몇 장과 가족사진과 카드와 신분증이 보이더군요. 젖었지만 코팅이 잘 되어있었는지 사진은 번지지 않았더군요. 지갑 안에 있는 그 아저씨의 가족사진을 보자마자 갑자기 울컥해졌습니다. 제 가족들이 생각나서 울음을 멈출 수가 없더군요. 한참을 소리 내서 울었습니다. 아홉 살이나 차이 나는 언제나 착한 여동생 지은이, 언제나 상냥하고 자상했던 엄마, 아빠. 그리고 첫 해외 출장에서 조난당한 나.

 슬프다기보다 억울하단 느낌이 터지듯이 올라왔습니다. 울음소리가 목구멍을 타고 올라오려는데 그걸 참아보려 끅끅대기까지 했습니다. 정말 그 상태로 울음밖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한참을 울고 나니 제 옆에 있는 이 아저씨에게 관심이 가더군요. 어떻게 살았을까, 가족은 어떤 사람들일까, 착하고 상냥한 사람이었을까. 분명히 죽은 사람이란 걸 알고 있었는데 그 아저씨와 이야기가 하고 싶었습니다.

 “이게 따님이시겠죠? 참 예쁘게 생겼네요.”

 대답이 올 리가 없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 말을 하고 싶어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가족 분들이 하나같이 전부 친절해 보이세요. 부인분도 참 아름다우시네요.”

 한 번 말을 트니 계속 말을 잇고 싶어지더군요. 평소 한 마디도 하지 못했던 입이 한 마디를 시작하자 저절로 나불나불 거리기 시작했습니다. 두서도 없이 그냥 막, 말을 했다기보다는 그냥 나오는 대로 뱉어냈습니다.

 대답 없이 혼잣말을 하는 건데도 정말 즐겁더군요. 마음속의 응어리가 녹아 흘러내리는 것 같았습니다. 그 아저씨 옆에서 이것저것 이야기를 하면서 몇 번이나 미친 사람처럼 울고 웃었습니다. 밤이 껌껌해질 때까지 가족, 직업, 취미, 영화, 저의 조난 과정까지 혼자서 나불댔습니다. 옆에 있는 그 아저씨가 분명히 시체인데도 무서운 감이 없었습니다. 전혀요.

 그렇게 이야기 할 것 다 하고 나니 더 이상 할 게 없더군요, 1시간을 말없이 앉아만 있다가 이게 뭔 짓인가싶어 또 혼자 훌쩍이고는 곧 그 아저씨를 묻어주었습니다.

 톰 아저씨더군요. 그 아저씨 성이 톰이었습니다. 이름은 지금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만 분명히 톰 아저씨였습니다. 아저씨를 묻고 난 다음 날, 일어나자마자 전에 없던 상쾌한 아침을 맞이했습니다. 하고 싶었던 말들을 다 해버린 덕인지 정말 개운하더군요.

 그리고 또 한 달을 외롭게 보냈습니다. 처음 일 주일 정도는 괜찮아졌나싶더니 또 외로움이 밀려오더군요. 배가 고파지면 먹고, 졸음이 오면 자고. 정말 할 게 없으면 아저씨 무덤 옆에서 혼자서 이야기하고, 나중에는 제가 살던 곳도 아저씨 무덤 근처로 옮겼습니다. 한 달을 그렇게 살았는데 또 누군가 저 바닷가에서 떠내려 오고 있었습니다.

 떠밀려온 사람들은 어떤 연인들이었습니다. 동양여자와 서양 남자였습니다. 이 둘도 피부가 파래지려 하더군요. 보통 익사체라면 몸이 퉁퉁 불어버려 만지기만 해도 피부가 문드러진다고 들은 적이 있었는데,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았거나, 바닷물이 차가워서 그랬거나. 둘의 몸은 불어있지 않았습니다. 서로 꽉 껴안고 있었습니다. 둘 다 잠에 든 것 같은 얼굴들을 하고 있더군요. 둘을 떨쳐내 보려고 했지만 굳은 몸은 절대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힘을 너무 주면 왠지 몸이 하고 떨어져 나가버릴 것 같아서 힘을 제대로 못 준 탓도 없잖아 있었겠습니다만 정말 둘의 몸은 단단하게 고정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전 그 둘을 떼어내는 것을 포기하고 우선 그들의 몸을 뒤지기 시작했습니다. 주머니에서 지갑과 열쇠와 담배, 라이터가 보이더군요. 뒷주머니에서는 쓰지 않은 콘돔 세 개가 나왔습니다. 당연한 거겠지요.

 남자의 몸을 다 뒤지고 나서 여자의 몸을 뒤지려는데 원피스를 입고 있어 옷 어디에서도 주머니가 보이지 않더군요.

 차림이 둘 다 여행을 온 차림이었습니다. 남자는 흰 와이셔츠에 청바지, 여자는 주황색 원피스. 어쩌다 이런 비극을 맞이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보는 제가 다 안타까워지더군요. 할 말은 톰 아저씨에게 다 하기 때문에 딱히 이 둘에게는 할 말도 없어서 바로 무덤을 준비하기 시작했습니다. 무덤을 보면서 또 생각이 나더군요. 또 묻을 사람의 이름도 모른 채 무덤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전 아까 남자의 주머니에서 꺼내놓은 지갑을 열어보았습니다. 물에 젖은 100달러짜리 지폐 두 장과 갖가지 카드, 신분증, 그리고 가족사진과 둘 만의 사진이 있었습니다. 또 가슴이 미어지는 듯 했습니다. 누가 제 심장을 주무르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울음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저 슬프더군요. 지은이는, 엄마는, 아빠는 잘 지내고 있을까. 내 걱정 때문에 누가 쓰러지기라도 한 건 아닐까.

 그렇게 멀리 바다를 바라보며 한참동안 가족들의 생각을 했습니다. 슬펐지만, 위로가 되더군요. 묵은 때를 벗겨내는 건 따끔했지만, 벗겨내니 좀 개운했습니다.

 전 뜨거워진 눈시울을 손등으로 비비고는 그 사내의 지갑을 열어 이름을 확인했습니다. James Burmark 그 사내의 이름이었습니다. 사내의 이름은 어떻게 알 수 있었지만 여자의 이름은 도무지 알 수가 없더군요. 여자의 이름을 알게 해 줄만한 증거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사진 뒤에 뭐가 적혀있긴 했지만 글자는 물에 젖어 번져있더군요. 하트는 어렴풋이 그 형태가 보였지만 다른 글자들은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번져있었습니다.

 그래서 물어봤습니다.

 “저기. 성함이 어떻게 되시나요?” 

 대답이 돌아올 리 없었습니다. 하지만 오랜만에 사람이 떠내려 오니 이것저것 또 풀어놓고 싶더군요. 죽은 사람이었지만, 그건 별로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전에 그랬던 경험이 있으니 이제 별로 거리낄 것도 없더군요.

 그렇지만 말을 걸어도 대답도 없고, 더 이상 할 말도 따로 없어서 그냥 그 둘을 쳐다보아봤습니다. 한 폭의 그림같이 서로 꽉 껴안은 채 흰 모래밭위에서 파랗게 죽어있는 연인 중 여인에게 이름을 물어보고 있었습니다.

 “버막 씨, 여자 친구 분 성함이 어떻게 되나요?”

 사내에게도 물어보았지만 당연히 대답이 올 리 없었습니다. 그런데 알면서도, 물어보고 싶어지는 건 어쩔 수 없더군요.

 또, 저번에 톰 아저씨에게 그랬던 것처럼 혼자서 말을 뱉어냈습니다. 날이 어두워지니 그 둘의 피부가 잘 보이지 않아 영락없이 자고 있는 것처럼 보이더군요. 그래서 그땐 좀 더 편하게 이야기 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가족, 친구, 내가 좋아했던 사람. 이야기를 하다가보니 또 서러워지더군요. 평상시라면 전화 한 통에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을 지금은 어떤 짓을 해도 만날 수 없다는 생각을 하니 눈물이 앞을 가리기 시작했습니다. 슬퍼져서, 그 둘이 잠든 모습을 한 번 스윽 쳐다보고 그대로 드러누워 하늘을 바라보다가 잠에 들었습니다. 또 말할 것 다 하고 불기운도 따뜻한 게 마음이 편안해지더군요.

 다음 날 아침, 바닷바람이 시려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모래위에서 자서 그런지 온 몸에서 모래들이 기어 다니고 있는 것 같더군요. 몸을 씻으려 풀숲 속의 계곡으로 가려 했는데 그 둘이 생각났습니다. 둘의 피부색이 하룻밤 사이에 변해있더군요. 어젯밤에 불기운이 그 둘에게 스민 모양이었습니다. 피부 군데군데가 갈색으로 물들어 있었습니다. 곧 있으면 구더기라도 나올 것 같더군요. 햇살이 따뜻한 게, 제 몸을 씻는 것보다는 그 둘을 묻어주는 게 더 급했습니다.

 평평한 돌을 찾아 들고 톰 아저씨의 옆에 구멍을 파기 시작했습니다. 여자의 이름을 알 수도 없고, 시체는 썩어가기 시작하니 묻는 것밖에는 다른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시체를 묻으면서. 사진이 생각났습니다. 두 개잖아. 버막 씨는 사진이 두 개잖아.

 둘이 같이 있으니까, 가족사진은 버막 씨가 가져요. 대신 이 사진은 제가 가지고 있을게요. 소중히 보관할게요. 혼자서, 물어보고 고민하면서 결국엔 지갑에서 슬쩍 그 사진을 뺏습니다.

 아, 역시 땅이 다 모래라서 그런지 눈에 자꾸 모래가 들어가네요. 잠시 눈 좀 비빌게요. 역시 계속 눈을 감고 있어야겠어요. 말 끊어서 죄송해요. 그럼 계속 이야기할게요.

 여하튼 사진을 슬쩍 한 다음에 몇 시간 들여 그 둘을 묻어주고 할 게 없어서 심심하면 톰 아저씨나 버막 씨에게 다가가 이야기하면서 살았습니다. 맞다, 버막 씨 애인의 이름은 그냥 Burmark's Girl Friend로 적어놨어요. 깜빡하고 말하지 않을 뻔했네요.

 그 둘을 묻은 후에도 저는 외로우면 가족 생각, 친구 생각을 해가며, 배가 고프면 물고기를 잡아먹고, 물이 마시고프면 풀숲의 강가에 들어가 물을 떠오고. 아무리 해도 우울하면 그 둘의 사진을 봤어요.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둘의 사진을 보고 있자면 이상하게 편해지던데요.

 그렇게 하루하루를 달래며 살았는데, 어느 날 악몽을 꿨어요. 그곳은 어두운 곳이었습니다. 좁고, 축축하고, 파도 소리가 들리는 어두운 곳. 조개껍데기 속이나, 소라껍데기의 속, 조개도 소라도 없는 그런 껍데기 속.

 제임스, 제임스. 누군가 그 남자의 이름을 계속 부르더군요. 바로 앞에서 들리는 듯한 그 소리에 저는 눈을 떠보았습니다. 눈을 뜨자 눈, , 입도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썩은 시체가 바로 제 앞에서 그 남자의 이름을 부르고 있는 게 보이더군요.

 그 얼굴을 보자마자 꿈에서 깨어났습니다. 거의 땅에서 튕겨나가다시피 등을 일으켜 세웠습니다. 온몸에 땅이 흥건하더군요. 아직 한 밤이었습니다. 바다는 고요하게 파도소리를 내고 있었고 구름은 소리 없이 밤하늘에서 흘러 다니고 있었습니다. 제가 헉헉대는 소리와 파도소리 말고는 주위에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아마 그녀였겠지요. 제임스를 부른 건.

 그날부터는 정말 하루하루가 지옥이었습니다. 그녀는 계속 제임스를 부르는데 그는 그녀에게 아무 대답도 해주지 못했습니다. 거의 매일, 그녀의 얼굴이 꿈속에서 보였습니다. 가슴 한 쪽이 썩어 떨어져버린 그녀가 자신의 이름을 불러달라며, 매일 밤 제임스를 불렀습니다.

 한 달을 그렇게 살았습니다. 악몽에 시달리면서도, 살아서 가족을 만나야 한다는 생각으로, 울음으로 한 달을 보냈습니다. 울면서도, 죽고 싶으면서도 이대로 죽을 수 없다는 생각으로 악을 쓰고 한 달을 겨우 버텨냈습니다. 매일을 시달리면서 괴롭게 울다보니 1주일 정도 지나자 울음이 나오질 않더군요. 그저 멍하니 죽은 듯이 나무에 기대어 있었습니다. 이틀을 굶다가 갑자기 미친 사람처럼 바다에 뛰어 들어가 맨 손으로 물고기를 잡아 굽지도 않고 비닐까지 씹어 먹어 배를 채우고, 또 멍하니 앉아 있다가 울고 나서 미친 듯이 바다에 뛰어나가 배를 채우고, 그러다가 탈이 나 설사를 하고,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드러눕게 되면서. 그렇게 살았습니다. 다시 한 달을.

 그렇게 버티고 있는데 노을에 붉게 물든 바다 멀리서 또 누가 떠내려 오고 있더군요. 구명조끼를 입은 덩치가 작은 사람이었습니다. 화들짝 놀라서 두 눈을 커다랗게 뜨고 그 사람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습니다. 가까이 가서 보니 웬 꼬마아이더군요. 갈색 머리가 긴 게 여자아이 같아 보였습니다.

 채 파도에 떠내려 오기도 전에 제가 직접 헤엄쳐 아이를 건져왔습니다. 건져 와서 보니 역시 여자아이더군요. 피부가 하얀 여자아이였습니다. 죽었든 안 죽었든 사람이 왔다는 게 제게는 구원이었습니다. 너무 반가워서, 누구지도 모르는 꼬마아이를 꽉 껴안고, 아주 부서져라 껴안고 엉엉 울었습니다. 고맙고 반갑다는 생각 밖에는 들지 않더군요. 한참을 울었습니다. 집에 있을 여동생 생각에 한 차례 더 세게 끌어안자 영락없이 죽었다고 생각했던 그 아이가 물을 '왈칵뱉어내며 기침을 하더군요.

 전 깜짝 놀라 울음을 멈추고 곧 바로 그 아이를 모래에 눕혔습니다. 망설일 것도 없이 구명조끼를 벗기고 명치를 꾹꾹 눌러주고 인공호흡까지 했습니다. 더 이상 물은 나오지 않더군요.

 몇 분 지나자 아이가 천천히 눈을 떴습니다. 전 너무 기쁜 나머지 아이를 또 한 번 끌어안았습니다. 사람의 따뜻한 온기를 오랜만에 느끼니 정말 기쁘기 그지없더군요. 제 인생 최고의 시간이었습니다. 살면서 그 때보다 행복했던 기억이 떠오르지 않았으니까요.

 “대디?”

 너무 기쁜 나머지 소리 없이 눈물만 흘리고 있는데 아이가 저에게 힘없는 목소리로 묻더군요. 아이는 영어를 썼습니다. 영어를 잘한다면 잘했지 못한다는 소리를 들을 수준은 아니었기에 그 아이에게 막힘없이 대답해 줄 수 있었습니다.

 “, 아임 낫 유어 파더. 벗 유 윌 비 파인.”

 아이는 내가 아빠가 아니란 말을 듣고는 죽어라 울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리 달래려 해도 아빠, 엄마만 크게 울면서 불러대기만 했습니다. 달랠 길이 없어서 힘들었습니다. 하긴, 그 어린 나이에 엄마 아빠와 떨어져서는 낯선 곳에서 얼굴에 털이 덥수룩한 동양인에게선 위로는커녕 맘을 놓을 수도 없었겠지요.

 저녁이 깊어지자 아이는 그제 서야 지쳐서 잠에 들더군요. 자는 모습이 그렇게 귀여울 수가 없었습니다. 아이를 보고 있자니 제 동생 지은이가 또 생각나더군요.

 ‘저 아이에게 잘해주고 말 거야. 꼭 잘해줄 거야. 한국말도 알려주고, 한국말을 할 수 있게 되면 오빠라고 부르게 해야 할까 아저씨라고 부르게 해야 할까.’ 그런 생각을 하고 어떻게 아이에게 다가갈까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선 지저분한 모습이 문제였습니다. 면도를 하고 이 너덜너덜한 옷을 어떻게 해야 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이가 무섭다고 도망갈 게 뻔해보였으니까요. 수염을 깎든 머리칼을 깎든 칼이 있어야, 아니 적어도 쇳조각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이 섬엔 쇳조각이 있을 리 없었습니다. 곰곰이 뭔가 방법이 없을까 생각하고 있는데 갑자기 벨트가 떠오르더군요. 벨트를 돌에 잘 갈면 면도날처럼 날카로워 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전 얼른 바지에서 벨트를 풀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벨트가 없더군요. 생각해보니 집 만들 때 나무를 엮는다고 나무줄기 대신 벨트를 거기에 묶어두고 있었습니다.

 전 당장 그 대충 만든 허술한 집에 가 벨트를 찾아보았습니다. 가운데에 아직도 짱짱하게 잘 묶여 있더군요. 전 머뭇거릴 것도 없이 바로 벨트를 풀었습니다풀어서 벨트를 보자마자, 힘이 쭉 빠지더군요. 쇠로 된 건 맞았지만 가운데가 빈 채 젓가락 두께의 쇠가 달린 벨트였습니다. 이걸로는 면도도 머리칼을 깎는 것도 불가능 했습니다. 잠시 털썩 주저앉아 낙심하고 있는데 다른 벨트가 생각나더군요. 이 다 해져서 너덜거리는 옷을 해결할 방법도 같이 말입니다.

전 톰 아저씨와 두 연인을 묻을 때 쓴 돌을 찾아 들어 그들을 묻은 곳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무덤을 파헤치기 시작했습니다. 우선 톰 아저씨의 무덤을 파헤쳤고, 그 뒤에 두 연인의 무덤을 파헤쳤습니다. 톰 아저씨는 완전히 썩어있었어요. 그런데 그런 것보다 벨트가 있는지 없는지가 제겐 더 중요했어요. 아쉽게도 톰 아저씨는 반바지 차림이라 벨트가 보이지 않더군요. 멀쩡한 옷을 얻을 수 있겠다 생각했었는데, 냄새가 정말 장난 아니었어요. 도저히 입을 게 못됐죠.

 버막 씨와 여자친구의 무덤을 파니 버막 씨랑 여자 친구 분은 아직도 서로 꼭 껴안고 있더군요. 버막 씨는 다행히 벨트를 하고 있었어요. 둘의 자세가 어정쩡해 팔을 좀 만졌더니 팔이 버막 씨의 몸에서부터 떨어져 나갔습니다. ‘와작하는 소리가 징그럽게 귀에 달라붙더군요. 하지만 그런 건 상관없었습니다. 전 벨트가 필요했으니까요.

 버막 씨의 허리춤에는 제가 원하는 모습의 벨트가 있더군요. 어느 하나 빈 곳 없는 직사각형의 쇠로 된 벨트였습니다.

 벨트를 챙기자마자 빠져나와 돌을 챙겨 벨트를 갈려고 했는데 이 시체들을 아이가 보면 겁에 질려 어떻게 돼 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시체만 보이지 않게 최대한 빠르게 그들을 묻어주고 저는 벨트를 챙겨 계곡으로 달려갔습니다. 땅을 팔 때 썼던 평평한 돌을 바닥에 놓고 땅바닥에 앉아 벨트를 갈기 시작했습니다.

 꽤 오래 걸릴 줄 알았는데 의외로 많이 걸리지는 않더군요. 제법 날이 서렸다고 생각이 되어 벨트를 가는 것을 멈추고 턱에 벨트를 가져다 댔습니다. 천천히 힘을 주어 밀었더니 작은 폭죽이 터지는 소리가 나면서 수염이 깎이더군요. 밤이라 제 몰골을 확인하진 못했지만 수염이 깎이고 있는 건 확실했어요. 수염이 어느 정도 깎였겠지 싶어 머리카락도 정리해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날이 잘 들지 않아 힘을 주어 끊어내듯이 정리하다보니 상처도 좀 생겼지만, 괜찮았습니다.

 얼굴의 털 정리를 다 끝마치고, 기쁜 마음으로 아이가 잠들어있는 곳으로 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이 정도면 아이가 겁을 먹진 않겠지, 충분히 친해질 수 있겠지, 앞 으론 외롭지 않아도 되겠지.

 갖가지 즐거운 생각에 저절로 콧노래가 나오더군요. 그때는 눈치 채지 못했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그때가 이 섬에 온 지 몇 달 만에 처음으로 웃은 날이었습니다.

그렇게 기쁜 마음으로 아이가 있는 곳까지, 아니 있어야 했을 곳까지 도착했는데 아이가 보이지 않더군요. 그 근처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더군요.

이름을 몰라서 웨얼 아 유!’라고 불러가며 사방을 찾아다녔습니다. 풀숲도, 동굴도, 모래밭에도 제가 알고 있는 곳, 갈수 있는 곳은 다 찾아봤습니다. 날이 밝을 때까지, 몸 여기저기 상처를 내가며 찾았는데. 그런데 없었습니다. 아무데도.

 ‘웨얼 아 유라고 몇 번을 외쳤을까요. 목에서 소리도 나지 않을 정도가 돼서야 제가 사는 곳으로 돌아와 엉덩이를 바닥에 깔고 두 무릎을 얼굴에 가져다 대고 엉엉 울었습니다. 이제야 누군가와 지낼 수 있게 됐다는 생각에 정말 기뻤는데 그게 다 날아갔다고 생각하니 서러워 죽겠더군요. 면도를 하면서 생긴 상처에 눈물이 들어가 장난 아니게 따끔거리기도 했습니다.

 다 포기하고 그냥 콱 죽어버리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저 바닷가에서 누가 또 떠내려 오더군요. 그 아이였습니다. 그렇게 아빠를 불러가며 울더니 바닷가까지 아빠를 찾으러 간 모양이었습니다.

 전 미친 듯이 달려가 그 아이를 건져왔습니다. 저번처럼 인공호흡과 심박운동을 해주면 살아나 줄 것만 같았습니다. 딱 보기에도 피부가 창백한 게 영락없이 죽은 모습이었습니다. 하지만 인공호흡도, 가슴을 두 주먹으로 꾹꾹 눌러주는 것도 수없이 반복했습니다. 포기하기 싫었으니까요. 혼자는 정말 미쳐버릴 것 같았습니다. 미쳤으니까 제가 지금 여기 누워있는 거겠지만요.

 여하튼, 이젠 살아나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들자 슬픔보다 화가 더 앞서더군요.

 “! 왜에!”

 절규에 가까운 소리를 지르며 그 아이를 발로 차버렸습니다. 그 아이를 발로 차 버리고, 저는 그대로 무릎을 꿇고 하염없이 울었습니다. 죽자. 죽어버리자. 그 생각을 하고 아이를 대충 묻어주었습니다. 미처 아이의 이름을 물어보지 못했기 때문에, 아빠를 찾다 죽었으니 무덤엔 딸이라고 적어주었습니다.

 아이를 묻어준 뒤 제 무덤은 아주 깊게, 다시 기어 올라갈 수 없을 정도로 깊게 팠습니다. 정신없이 미친 듯이 파다보니 어느새 꽤 팠더군요. 위를 올려다보니 꼭 우물에서 하늘을 보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정도로 깊이 팠다는 생각이 들자 저절로 몸이 누워지더군요. 그 상태로 이틀이 지났습니다. 깊게 파는 것만 집중해서 넓지 않은 탓에 니은자로 등을 기대고 누워있습니다.

 톰 아저씨도, 버막 씨도 여자 친구도, 그 아이도 차라니 죽었으니 잘 된 거지. 죽었으면 나처럼 고통스러워 할 필요는 없는 거지. 누워있으면서 그 생각이 들더군요. 빨리 죽어서 끝내고 싶다는 생각. 사실 이거고 저거고 다 포기하고 나니 아직 죽지는 않았어도 마음이 훨씬 편합니다. 그냥 잠을 잔다는 느낌입니다. 악몽도 꾸지 못 할 잠을 자는 겁니다. 지금은 목이 마르네요.

 온 몸이 뻐근하고 바늘에 찔리는 것같이 배가 고프긴 해도 그건 그것대로 좋은 징조겠지요. 아까부터 하늘이 노래 보입니다. 머리에서도 종이 울리는 듯이 어지러운 게 이제 다 끝인가 봅니다. 숨이 턱, 턱 막히고, 밖에선 누가 아빠를 찾고 있어요. 대디, 대디 하면서요. 맞다. 미안해요 제임스. 사진 돌려줘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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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 최재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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