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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10 10:42

타인의 명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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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명예

    

  

  고양이는 좀처럼 도망칠 생각이 없어보였다. 사람의 손을 탔던 녀석인가. 녀석은 나에게서 1m 떨어진 곳에 앉아 아까부터 나를 쳐다보고 있다. 먹이를 주려고 주머니를 뒤졌지만 마땅히 줄 것이 없다. 손에 잡히는 것이라곤 기다란 못 하나뿐이다. ‘야옹녀석이 울었다. ‘멍멍나는 화답하였다. 녀석이 송곳니를 내보이며 다시 야옹할 때, 핸드폰이 울렸다.

  “, 제대로 보고 있지?”

  나는 서둘러 맞은편에 건물로 시선을 돌렸다. 다행히 아직 나온 사람은 없어 보였다.

  “. 아무도 안 나왔어.”

  “아 존나 춥네. 빨리 나올 것이지.”

  입김으로 손을 녹이는 건지 후후바람 부는 소리가 핸드폰 너머로 들려왔다. 성민이는 작업 끝나고 순두부나 먹으러 가자고 했다. 마침 나도 몸이 오슬오슬하던 차다.

  “그래.”

  “야 잘 보고 있어라. 이따 봐.”

  전화를 끊고 나는 바닥에 내려두었던 카메라를 들었다. 괜히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시늉을 하다가 앞에 있는 고양이를 한 방 찍었다. 내가 이 일에 가담하여 돈을 버는 건 이번이 세 번째다. 사실 첫 번째 일은 일이라고 할 수도 없지만, 아무튼 보수를 받았으니 나도 공모자인 셈이다. 지난번 지지난번과 마찬가지로 오늘도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뭐든 일이 끝나면 알게 되겠지.

  남자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아침에 산 신문을 뒤적였다. 신문 기사 대부분은 얼마 후 열릴 시의원 선거에 대한 것이었다. 사설도 후보자들에 대한 논평으로 채워져 있었다. 강력한 당선 후보자는 김 씨와 박 씨였다. 최근 박 씨는 탈세 의혹을 받으며 위기를 맞고 있고, 김 씨는 친근한 이미지로 꾸준히 강세를 이어가고 있다. 나는 김 씨의 사진을 유심히 보았다. 그는 웃을 때 눈과 입 주변에 주름이 졌다. 눈매가 성민이와 닮은 듯도 했다.

  ‘야옹고양이가 다시 울었다. 빵이라도 사서 나눠 먹어야지, 신경이 쓰여 안 되겠다. 잠깐 정도는 자리를 비워도 괜찮을 거다. 나는 고양이에게 잠시만 기다리라고 말한 뒤, 골목 안에 자리한 슈퍼로 빠르게 뛰어갔다.

 

  

  그와 내가 다시 만난 건 육 개월 전이다. 당시 나는 모르는 번호로 걸려온 전화를 받았었다. “, 잘 지냈냐?” 상대는 인사 없이 말했다. “누구세요?” “나야, 성민이. 박성민.” ,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박성민은 고등학교 동창이다. 내가 재수를 하고, 그가 대학에 가며 자연스레 끊어졌던 연은 4년 후 그가 전화를 걸며 다시 이어졌다. “, 성민이. 오랜만이다.” “그러게. 반갑지? 연락 좀 하고 살지, 새끼그는 다른 동창들을 통해 가끔 내 안부를 들었다고 했다. “P대학 들어갔다며.” “.” “, 성공했네.” 그는 빠른 시일 내에 한 번 보자고 제안했다. 내가 좋다고 하자 당장 그 주 주말은 어떠냐고 물었다. 안 될 이유가 없었다. 그는 주소 하나를 알려주었다. “우리 형 일하는 사무실이야. 주말에 잠깐 형이랑 할 일이 있어서. 일단 여기서 만나자.”

  성민이 형이 일하는 사무실은 시내 한 복판에 있었다. 1층에 유명한 주꾸미 체인점이 있는 건물이라 찾는 게 어렵지 않았다. 성민이는 12층으로 올라오라고 했다. 마침 엘리베이터는 1층에 멈춰있었다. 나는 위로 올라가는 동안 엘리베이터 안에 붙어있는 게시판을 보았다. 게시판에는 건물의 상호명이 적혀있었는데, 이상하게 11층부터는 아무런 이름도 없었다. 나는 성민이가 말한 대로 12층에서 내렸다. 내리자마자 보인 건 긴 복도에 열을 지어 붙어 있는 20개 남짓의 문들이었다. 나는 개중 1208호 앞으로 가 문을 두드렸다.

들어오세요.”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따라 나는 문을 열었다. 어두운 방. 책상 하나. 마주 놓인 소파 두 개. 책상 뒤에는 성민이가 앉아 있었고, 소파 하나에는 성민이의 형으로 추정되는 남자가 다른 소파에는 누군지 짐작도 할 수 없는 여자가 앉아 있었다. 성민이는 나를 보자 자기 쪽으로 오라는 손짓을 하였다. 나는 소파에 앉은 남녀에게 인사를 꾸벅하고 친구 옆에 가 앉았다. 나의 등장으로 생긴 정적은 성민이의 형이 입을 열며 곧 깨졌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결과는 장담할 수 없어요.”

  마주 한 여자도 원래 하고 있던 것으로 보이는 이야기를 계속하였다.

  “만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면 가격을 낮춰줘야죠.”

  “그럴 순 없어요. 결과하고 상관없이, 어차피 우리가 하는 일은 다르지 않으니까요. 반대로 결과가 기대 이상이라고 해서 돈을 더 받지도 않고요.”

  여자가 아무 말도 않자 형이 대화를 이어갔다.

  “진행하실 건가요?”

  나는 핸드폰 메모장에 여기가 뭐 하는 곳이야?’라고 써서 친구에게 보여주었다. 성민이는 그냥 서비스업을 하는 곳이야.’라고 써서 나에게 보여주었다. 잠시 후, 여자는 생각을 좀 해보겠다고 하며 일어섰다. 형은 언제나 편하게 찾아오라고 하곤 악수를 청했다.

 

 

  성민이는 웃을 때 눈이 반달 모양으로 휘었다. 여자 동창들은 하나같이 눈웃음이 그의 매력이라고 말해왔다. 성민이의 형도 웃을 때 눈이 반달 모양으로 휘었다. 그는 휘어진 눈으로 내게 주스 하나를 건네주었다.

  “성민이 친구라고? 반가워.”

  나는 두 손으로 주스를 받았다. 사업을 한다기에 적어도 서른 중반일 거라고 예상했는데 그는 의외로 어려 보였다. 대학생 같은 차림을 감안하고 보더라도 서른은 안 된 것 같았다.

  “무슨 사업이에요?”

  “사업?”

  그는 나에게 준 것과 똑같은 주스를 까 마시며 웃었다.

  “아니야. 그냥 아르바이트 같은 거야. 잘 되면 확장하겠지만 아직은 그냥 놀면서 하고 있어.”

  그리고는 명함 하나를 꺼내 건네주었다. 나는 두 손으로 명함을 받았다. 명함에는 박성준, 기자라고 적혀있었다. 그는 포털 기사를 쓰는 신입 기자라고 자기를 소개했다.

  “본업으로는 공적인 기사를 써. 여기서는 부업으로 사적인 얘기들을 써주고. 방금 여기 있던 여자 봤지? 의뢰가 들어오면 그냥 글 몇 줄 써주는 게 다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의뢰를 왜 하는 지 알 수 없지만 세상에는 별 사람들이 다 있으니까. 성준이 형은 책상 끝에 걸터앉아 너도 하고 싶은 얘기가 있으면 언제든지 말하라고 했다. 나는 생각해보겠다고 대답했다.

  “, 그런데 너는 무슨 일 해? 학생?” 나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어느 학교?” 그의 물음에 나보다 성민이가 먼저 답했다. “P대학. 재수하고 성공했어, 이 새끼.” 성민이가 내 어깨에 자기 팔을 둘렀다. 성준이 형은 -’하고 감탄의 소리를 내더니 갑자기 멋쩍게 웃으며 -’하고 말을 망설였다. 내가 왜 그러냐고 묻자 그는 초면에 미안한데, 라며 말을 꺼냈다.

  “혹시 너희 커뮤니티에 네 아이디로 글 하나 올려도 될까? 의뢰받은 게 있는데 커뮤니티는 그 학교 학생 밖에 이용을 못하니까. 사례는 할께.”

  나는 평소 학교 커뮤니티를 잘 이용하지 않았다. 그는 그냥 부탁이니까 거절해도 괜찮아.”라고 말했다. 하지만 주스까지 얻어 마시고 굳이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괜찮아요. 쓰세요.”나는 포스트잇에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적어주었다.

  주스를 다 마시자 성민이가 그만 나가겠다며 일어났다. 형은 문 앞까지 우리를 배웅해주었다. 그는 지갑에서 지폐 몇 장을 꺼내 동생에게 건넸다. “친구랑 맛있는 거 사 먹어.” 성민이는 거절 없이 돈을 받아 챙겼다. 내가 고개 숙여 인사를 하자 형은 웃으며 악수를 청했다. 그의 눈이 예쁘게 반달로 휘었다.

  며칠 후, 나는 문득 성준이 형이 쓴 글이 궁금해졌다. 그래서 학교 커뮤니티에 접속하여 내 아이디로 쓴 글을 찾아보았다. 글은 하나였고, 내용은 상투적이었다. 영문학과에서 3년 된 CC커플이 깨진 이유에 대한 그렇고 그런 종류의 이야기였다. 교묘하게 남자를 욕 먹이는 방향으로 쓰인 것으로 보아 의뢰인은 여자 쪽인 것 같았다. “이런 이야기를 돈 주고 의뢰해?” 학과와 3년 된 CC, 기재된 인상착의만으로 알 만한 사람은 누구 이야기인지 다 알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댓글이 하나도 안 달려 있는 것으로 보아 별 문제가 있을 것 같진 않았다. 나는 안심하고 로그아웃하였다. 어차피 성준이 형에게서 사례금으로 받은 5만원은 그저께 술값으로 다 써버렸다.

 

 

  성민이와 다시 만난 건 그로부터 두 달 후다.

  “너 아르바이트 안 할래?”

  그는 전화하여 대뜸 말했다. 때마침 친구들과 여행을 가려고 렌터카를 빌렸다가 서울을 벗어나기도 전에 사고를 낸 나는 돈이 필요하던 차였다.

  “귀신같은 새끼. 딱 맞춰 전화하네. 뭐든지 한다.”

  우리는 강남에서 만났다. 만나기로 한 건물 앞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는데, 내 앞에 차 한 대가 멈춰 섰다. 창문이 내려오더니 손을 흔드는 성민이가 보였다. 나는 조수석에 올라타며 물었다. “웬 차야?” 그는 하나 샀다고 말했다.

  내가 할 일은 간단했다. 성민이와 함께 PC방을 돌아다니며 그가 다는 댓글 바로 아래에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는 댓글을 다는 거였다. 그는 유명 커뮤니티들을 알려주며 거기에 가입부터 하라고 했다. “SNS는 하지?” 그는 내가 가입하지 않은 SNS에도 가입하라고 했다.

우리는 강남 일대에 15군데의 PC방을 돌아다녔다. 그가 옳다고 하면 나도 옳다고 썼고, 그가 그르다고 쓰면 나도 그르다고 썼다. 그가 좋은 사람이라고 하면 나는 세상에 다시없을 좋은 사람이라고 썼고, 그가 나쁜 놈이라고 하면 나는 때려 죽여도 시원찮은 나쁜 놈이라고 썼다. 작업을 마치고 우리는 호프집으로 갔다.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더니 눈이 빠질 것 같았다. 나는 맥주를 들이 마시고 이것도 형의 일이냐고 물었다. 성민이는 그렇다고 했다.

  “누가 부탁한 건데?”

  “나도 몰라. 그냥 여기저기서 의뢰받은 거 같아.”

  “글 써주는 건 그렇다 치고. 달랑 댓글 두 개는 뭐야. 하나면 하나고 백 개면 백 개지.”

  “멍청한 새끼. 그 머리로 P 대학은 어떻게 갔냐.”

  성민이가 혀를 쯧쯧 차며 잘 보라고 했다. 그는 서비스로 나온 뻥튀기 하나를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다른 뻥튀기를 집어서 나란히 옆에 놓았다.

  “댓글 하나는 소용이 없어요. 백 개까지도 필요 없고. 진짜 중요한 건 두 번째 댓글이야.”

  나는 이해가 가지 않아서 나란히 놓인 뻥튀기를 그냥 바라보았다. 그러자 성민이가 대단한 비밀이라도 알려주는 것처럼 낮춘 목소리로 말하였다.

  “옛날에 쉐리프라는 놈이 있었어. 그 놈이 사람들 몇을 데려다가 깜깜한 방에 앉혀놓고, 벽을 보게 했어. 그리고 그 벽에 레이저로 점 하나를 쏜 거야. 사람들은 얼마간 그 점을 바라봤지. 나중에 쉐리프는 불을 켜고 사람들에게 물었어. 지금 본 점이 얼마나 움직였냐고. 사람들은 모두 자기 생각대로 수치를 말했어. 그런데 사실 그 점이 얼마나 움직였는지 알아?”

  “얼마나?”

  “안 움직였어.”

  “장난 하냐?”

  “들어봐. 재밌는 건 사람들이 움직였다고 말한 수치가 대체로 비슷했다는 거야. 사실은 안 움직였는데도. 무슨 말인지 알겠어?”

  성민이는 테이블에 둔 뻥튀기 하나를 집어먹었다.

  “사람들은 혼자서 다른 의견을 내는 걸 좋아하지 않아. 가령 첫 번째 놈이 3cm라고 말해. 두 번째 놈도 3cm라고 말해. 그럼 세 번째 놈은? 그냥 3cm라고 말하게 돼있어. 그런데 만일 첫 번째 놈이 3cm라고 말한 후, 두 번째 놈이 움직이지 않았다고 하거나 10cm라고 말하면 어떻게 될까?”

  “어떻게 돼?”

  “세 번째 놈은 무슨 소리든 할 수 있게 되지. 앞에 둘에 의견이 다르니까, 이견을 내는 것에 대한 부담이 없어진단 말이야. 그러니까 중요한 건 두 번째 놈의 의견이야.”

  성민이가 다른 뻥튀기 하나도 마저 집어먹었다.

  “고로 오늘 너의 역할은 아주 중요했다는 얘기야.”

  성민이의 말에 따르면 성준이 형의 부업은 잘 돼가고 있다고 했다. 남의 이야기를 교묘히 써 주는 일을 넘어, 반응을 만들어 내기까지 하니. 가끔은 연예인 기획사에서 찾아와 소재를 주고 가기도 한단다.

  “근데 사람들이 정말 그렇게 단순해?”

  나는 아무래도 찜찜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성민이는 나만큼 심각해보이지 않았다. 그는 차키를 빙빙 돌리며 말했다.

  “자기 일이면 안 그러지. 남의 일이니까 깊이 생각들 안 하는 거야.”

  호프집에서 나와서 성민이는 계좌번호를 문자로 보내달라고 했다. 돈은 바로 다음 날 통장으로 들어왔다. 하루 치 수당치고는 많은 금액이었다.

 

 

  우리가 다시 만난 건 다음 해 일 월, 한 살을 더 먹고서다. 나는 그를 만나러 가기 위해 패딩을 꺼내 입었다. 우리가 함께 PC방을 전전하던 날, 얇은 셔츠를 입고 있던 걸 생각하면 꽤 오랜만에 보는 거다. 그 사이 성민이는 바빠 보였다. 그는 연말 동창회에도 나오지 않았다. 성준이 형은 본업이었던 기자 일을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했다고 들었다.

  이번 만남은 내 쪽에서 먼저 전화를 해 성사되었다. 방학동안 일본 여행을 하려고 아르바이트를 했었는데, 막상 떠날 날이 가까워지니 여유 금이 부족한 듯하였다. 성민이에게 그 얘기를 하자 그는 당장 지난번에 왔던 사무실로 오라고 했다.

  “잘됐네. 안 그래도 재밌는 판이 벌어지려고 했는데.”

  사무실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1층 주꾸미 집은 여전히 번창하고 있었고, 엘리베이터에 상호명은 붙어있지 않았으며 어두운 조명, 책상 하나, 소파 두 개까지 그대로였다. 내가 도착했을 때, 성민이는 책상에 앉아 노트북을 보고 있었고 성준이 형은 통화 중이었다.

  “결과는 장담할 수 없어요. 기대 이상일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고. 그건 다른 사람들의 몫이죠. 저희가 어쩔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에요. 그럼요. 물론 최선은 다하죠. 리스크는 걱정 마세요. 내가 본 걸 내가 얘기하겠다는데 누가 뭐라 할 수 있나요. 저희는 거짓말은 안 합니다. . 그럼 생각해보고 연락주세요.”

  10분 정도 통화를 한 형은 나를 발견하고 웃었다. “오랜만이네.” 그의 눈이 반달로 휘었다. 목까지 올라오는 파란색 니트를 입은 형은 박스 앞에 쭈그려 앉아 무언가를 주섬주섬 꺼냈다. 그가 꺼낸 것은 병으로 된 두유였다. 마땅히 줄 것이 없어서 미안하다면서, 그는 두유를 내게 건넸다.

  형과 나는 소파에 마주 앉았다. 성민이는 카메라 하나를 들고 내 옆으로 와 앉았다.

  “너희가 할 일은 간단해.”

  그는 나와 성민이를 번갈아 보며 말했다.

  “지금부터 이야기 하나를 만들어 내는 거야.”

  우리는 성준이 형의 계획을 잠자코 들었다. 형의 말대로라면, 확실히 일은 어려울 것 같지 않았다. 그런데 왠지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설명을 마친 후 형은 혹시 질문이 있냐고 물어봤다. 나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이거 범죄는 아니죠?”

  “그럴 리가.”

  그는 전혀 불쾌한 기색 없이 말했다.

  “우린 절대로 없는 이야기는 안 해. 이 사업에 철칙이지. 가족에게, 친구에게, 동료에게 할 수 있을 법한 이야기만 할 거야. 부끄러워하거나 감출 필요가 없는 떳떳한 이야기만.”

  그리고 그는 책상 위에 놓인 노트북을 손으로 가리켰다.

  “저기에다가.”

  형은 이제라도 내키지 않으면 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성민이는 왜 내키지 않느냐며 약간 짜증난 기색을 보였다. 나는 먼저 전화까지 한 처지에 안 한다고 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 이만한 일로 별일이 생길 것 같지 않았다.

  “아니에요. 할게요. 날짜 잡히면 전화주세요.”

 

 

  한 시간 째 남자는 나올 기미가 안 보인다. 나는 고양이와 빵을 나눠먹었다. 기분이 좋아진 녀석은 내 곁에 앉아 뒷발로 귀 뒤를 긁었다. 나는 녀석의 모습을 카메라에 몇 번 더 담았다. 비싼 카메라라더니 확실히 화질이 좋긴 하다.

  주머니에 넣어 둔 핫 팩은 식은 지 오래다. 추위도 추위지만, 지루함에 졸음이 밀려왔다. 언제까지 이러고 있어야 하는 거야. 그만 철수하자고 할까 고민하며 멍하니 건물을 주시하고 있는데 그때였다. 갑자기 무엇인가 눈에 들어왔다. 창문으로 언뜻 비친 그것은 사람 그림자 같았다. 5층 창문으로 보인 그림자는 잠시 사라졌다가, 4층에서 다시 보였다. 3. 2. 나는 그림자가 완전히 밑으로 내려오기 전에, 얼른 일어서서 골목 벽에 붙었다. 내 갑작스런 동작에 놀란 고양이는 순식간에 달아났다. 나는 카메라를 장전하고, 성민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준비해.”

  건물 밖으로 완전히 나온 남자는 사진으로 본 것보다 훨씬 늙어보였다. 나는 카메라 앵글에 그를 담고 그의 움직임에 따라 카메라를 움직였다. 남자는 건물 앞에 주차해둔 본인의 차 앞으로 갔다. 그리고 인상을 찌푸렸다. 나는 셔터를 눌러 그의 얼굴을 찍었다. 그가 소리쳤다.

  “아 어떤 새끼야.”

  나는 한 번 더 셔터를 눌렀다. 남자의 차는 좌우로 길게 긁혀 있었다. 마치 악의적으로 그은 것처럼, 자국은 일직선으로 곧게 나 있었다. 남자는 허리에 양 손을 얹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나는 주머니에 넣어 둔 못이 허벅지를 찌르는 느낌에 괜히 다리를 매만졌다. 그때 성민이가 나타났다. 오래 숨어 있던 탓인지 그의 코가 빨갰다. 성민이는 지나가는 척 차를 흘깃 보고 저런이라는 말로 운을 떼었다.

  “아 어떤 놈이 이런 거예요?”

  “그걸 알면 내가 이러고 있겠어요?”

  남자는 정말로 분해보였다. 성민이는 남자의 옆으로 바짝 다가가 두 손을 내밀었다. “아이구, 꼭 잡으십쇼.” 남자는 성민이를 아래위로 훑어보았다. 그리고 미심쩍은 얼굴로 내민 손을 잡았다. “. 고맙습니다.” 나는 두 사람을 한꺼번에 앵글에 담아 셔터를 눌렀다.

  우리는 십 분 후 순두부 집에서 만났다. 성민이는 대뜸 사진부터 보자고 했다. “어때, 잘 나왔어?” 나는 사진을 주며 우리의 안전부터 확인했다. 성민이는 그 건물 주위엔 CCTV가 없고, 블랙박스에 잡히지 않는 위치에서 자국을 냈으니 별 탈 없을 거라고 말했다.

  “게다가 차에 상처 낸 값은 물어줄 거야. 지금쯤이면 형이 그 사람을 만나고 있을걸. 어린 동생 놈이 장난을 친 거 같으니 변상하겠다고. 우린 절대로 물질적인 손해는 안 끼쳐.”

  성민이가 사진을 보며 감탄하는 동안, 나는 그를 보며 형제의 확고한 사업 철칙에 박수를 보냈다. 순두부 뚝배기는 주문한 지 5분 만에 나왔다. 우리는 김나는 두부국물을 퍼 마시며 냉기가 밴 몸을 녹였다.

  그로부터 일주일 후, 나는 여권을 들고 공항으로 향했다. 성준이 형에게서 받은 돈을 엔화로 바꾸자 여유 금은 충분히 채워졌다. 처음으로 혼자 가는 해외여행이다. 나는 핸드폰 배터리를 분리해서 가방에 넣고 비행기에 올랐다.

 

 

  시 의원 투표에서 강력한 당선 후보였던 김 씨가 떨어졌다. 대신 탈세 의혹으로 하향세를 타던 박 씨가 새 의원으로 선출되었다. 평소 친근하고 소박한 이미지로 대중적인 지지를 받았던 김 씨의 추락은 사회에 적잖은 파장을 일었다.

  수많은 기자와 블로거들이 낙선의 원인을 분석하고자 나섰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문제의 시발점을 122일로 꼽았다. 그 날은 한 커뮤니티에 출처 모를 사진이 게시된 날이다. 사진 속에 김 씨는 한 노숙인과 손을 맞잡고 있었다. 두 손으로 손을 뻗은 노숙인과는 대조적으로 그는 한 손을 대강 내밀고 있었으며, 심지어 얼굴에는 짜증이 가득했다. 잠시 게시되었다 사라진 이 사진 아래에는 오늘 지나가다 김 씨 봄. 진짜 다시 봤다.’라는 코멘트가 달려있었다. 사진은 다른 커뮤니티와 SNS로 순식간에 퍼졌다. 비난과 옹호, 앞뒤 없는 욕설과 판단을 보류하자는 의견이 뒤엉킨 가운데 김 씨 측은 발 빠르게도 이틀 만에 입장을 표명하였다. “물의를 일으켜 죄송합니다. 사진 속의 날이 언제인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확인 중입니다. 여러분께 언제나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그의 대처는 하나마나한 대처였다. 이후 인터넷상엔 김 씨의 기존 이미지와 반대되는 목격담들이 줄지어 등장했다. 그때마다 확인 중에 있다던 김 씨에게 남은 건 고배뿐이었다.

  나는 인천 공항에 도착해서, 공항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해당 사건을 모두 파악했다. 설마 했는데 정말 될 줄이야. 나는 최근 통화목록으로 들어가 성민이의 이름을 찾았다. 신호음이 가고 얼마 안 있어 그가 전화를 받았다.

  “돌아왔냐. 핸드폰 계속 꺼져있더라.”

  “. 아예 며칠 꺼놨어.”

  나는 그에게 빠른 시일 내에 보고 싶다고 했다. 그는 일이 바빠서 따로 시간을 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대신 사무실로 오면 같이 저녁은 먹을 수 있다고 했다.

  나는 다음 날 오후 사무실로 갔다. 그곳은 육 개월 전 처음 갔던 때와 비교해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어두침침한 형광등마저 그대로였다. 사무실에는 성준이 형 혼자 있었다. 성민이는 요 앞에 심부름을 갔단다. 나는 소파에 앉아, 형에게 일본에서 사온 디저트 상자를 내밀었다. “, 이런 걸 다 사와.” 형은 디저트를 그 자리에서 풀었다. “커피? 좀 전에 내린 건데.” 그리고 머그잔에 커피를 따라 권하였다. 나는 잔을 받아들며 말했다.

  “올라오면서 봤는데, 사무실 이름 아직도 안 붙어있더라고요.”

  “그렇지 않아도 슬슬 이름을 정할까 해.”

  “생각해 둔 게 있으세요?”

  “이야기 중개업소. 어때?”

  그가 웃었다. 농담인지 아닌지 구분이 가지 않아 나는 반만 웃었다.

  “괜찮네요.”

  “그렇지?”

  “형이 파는 건 이야기에요?”

  “표면적으로는.”

  그의 눈꼬리는 여전히 반달로 휘어있었다. 하지만 이번에 난 웃지 않았다.

  “형의 거짓말 때문에 선거 결과가 바뀌었어요.”

  “거짓말이라니. 상황이 안 좋았던 건 유감이지만, 어쨌든 그는 짜증을 냈잖아. 성민이에게. 정확히는 노숙자 차림의 성민이었지만. 아무튼 김 씨는 노숙자로 알았을 테니 그게 그거지.”

  “악의적인 소문이었어요.”

  “추문은 어디에나 있어. 어떻게 대처하는 지는 그들의 몫이야.”

  그는 커피를 죽 들이켰다. 나는 그가 빈 종이컵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을 때까지 잠자코 기다렸다.

  “형은 왜 이런 일을 해요?”

  “너는 왜 이제와 이런 걸 묻는 거지? 개의치 않았었잖아.”

  “그때는 별 일 없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형이 몇 초간 눈을 감았다 떴다. 그는 아주 천천히, 아이를 가르치듯, 천천히 말하였다.

  “맞아. 별 일 없었을 수도 있어. 사실 그게 이 사업의 맹점이야.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가 없어. 사람들은 변덕스러워. 나는 그들이 누구를 추앙하고, 누구를 짓밟고 싶어 하는 지 알 수 없어. 그냥 이야기를 할 뿐이야. 욕을 하는 것도, 음란한 얘기를 하는 것도 아니잖아.”

  “말도 안 돼요. 돈을 받고 일부러 남의 명예를 떨어트렸잖아요.”

  “내가 아니더라도 깨달은 누군가는 했을 일이야.”

  “뭘 깨달아요?”

  “사람들이 생각보다 쉽게 남의 명예를 판다는 거. 남의 몸을 다치게 하거나 물건을 빼앗는 짓은 상식적인 인간이라면 아무도 하지 않아. 하지만 험담이라면, 누구나 하지. 맥락 없는 사진, 증거 없는 말 몇 마디로 팔아 남겨지는 게 타인의 명예야.”

  “그게 형이 파는 거예요? 타인의 명예?”

  “내가 무슨 수로. 나는 이야기를 중개할 뿐이야. 결정은 사람들이 하지. 그들은 자기 말이 갖는 힘을 몰라. 너만 해도 별 일 아닐 거라고 생각했잖아. 하지만 이 세상에서는 아니야.”

  형은 옆에 놓인 노트북을 손가락으로 톡톡 쳤다.

  “아무렇게나 지껄이는 말들은 권력이 되고, 권력은 곧 돈이 돼. 그걸 깨달은 나 같은 놈들은 수혜를 입는 거고.”

  내가 할 말을 찾지 못하고 있을 때, 마침 성민이가 돌아왔다. 그는 한아름 들었던 봉지를 내던지고 나에게 달려와 와락 안겼다. “. 선물 사왔냐.” 그는 한국에 돌아온 기념으로 김치찌개를 먹으러 가자고 했다. 나는 무슨 유럽이라도 갔다 온 줄 아냐고 타박하며 서둘러 사무실을 나왔다. 성준이 형은 반달눈을 하고 문 앞까지 나를 배웅해주었다.

 

 

  이후, 나는 오랫동안 성민이를 보지 못했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그는 일을 하느라 바쁘다 했다. 그는 내게 전화하지 않았고, 나 역시 나름대로의 일상을 보내며 그에게 전화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 학교를 다니고, 영어 공부를 하고, 봉사 동아리에 회장을 맡고, 작은 회사에서 인턴을 하다 보니 시간은 금방 흘렀다. , 그리고 고양이 한 마리를 분양받아 정신이 팔린 것도 내가 성민이를 잊은 이유 중에 하나다. 그렇게 두 학기가 지난 어느 날, 고등학교 동창 중 한 명이 결혼을 한다는 연락이 왔다. 대학교 졸업도 못한 놈이 급하게 결혼을 하는 이유야 뻔했지만 일단 모른 척 축하의 말을 건넸다. 결혼식은 토요일이었다. 결혼식장에는 친했던 동창들이 대부분 와있었다. 아무래도 친구들 중 처음으로 치르는 결혼이다 보니 많이들 온 것 같았다. 그 중에는 성민이도 있었다.

  식이 끝나고, 동창들 열댓 명이 모여 근처 술집으로 가기로 했다. 성민이는 차를 가지고 가야 하니 우리더러 먼저 가 있으라고 했다. 친구들이 -’하는 추임을 넣자, 그는 어깨를 일부러 높이 들고 주차장으로 향했다. 나와 다른 친구들은 먼저 술집으로 가서 자리했다. 성민이는 안주가 하나 둘 나올 때쯤 키를 흔들며 가게로 들어왔다. 언뜻 보니 지난 번 보았던 차와는 다른 차키인 것 같았다. 그는 가장 끝자리로 앉은 내 옆에 의자를 끌고 와 앉았다.

  “야 진짜 오랜만이다. 잘 살았냐?” “그래. 너는 새끼야 좀 잘 나간다고 연락도 안 하냐.” 그는 키득 거리며 앞에 놓인 파절임을 집어 먹었다. “바빴다. 알잖냐.” “알지.”

  “형이 그러더라. 그때 네가 같이 일한 걸 후회하는 눈치더라고. 뭘 그 정도 일 가지고 너는. 김 씨 봐봐. 요새 다시 잘 나가잖아.”

  “그래. 다시 인기 좋아졌더라.”

  “그렇다니까. 비난하는 만큼 또 쉽게 용서하는 게 남이야.”

  성민이와 내가 둘이 속닥이자 앞에 있던 다른 친구가 같이 말하자며 끼어들어 왔다. 한동안 자리는 열댓 명의 친구들이 각자의 근황을 이야기하는 시간으로 채워졌다. 어떤 놈이 제조한 폭탄주가 몇 차례 돌며 분위기는 훨씬 무르익었다. 곧 소란 속에서 모두들 옆 사람을 붙들고 늘어져 얘기하기 시작했다. 나는 앞에 앉은 친구에게 시뻘게진 얼굴로 새 차에 대해 얘기하는 성민이의 팔을 잡았다. “야 너 근데 그거 알아?” 그는 파드득 움츠리며 말했다. “아 깜짝이야. 뭘 알아?” “옛날에 우리 학교에서 오래된 CC가 있었는데. 걔네가 헤어졌어.” “근데?”

  “근데 그때 여자애가 학교 게시판에 헤어진 이유를 올렸어. 남자애가 잘못한 걸로. 그 이유가 진짜인지 아닌지는 모르겠는데 아무튼 그게 과에 소문이 쫙 퍼져서 남자애가 결국 휴학을 했었거든. 그리고 이건 나도 얼마 전에 안 건데, 그때 그 남자애 자살 시도까지 했었대.”

  나는 성민이를 빤히 쳐다보았다. 성민이도 나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나는 그가 무슨 말을 할지 기다리며 눈을 더 부릅떴다. 한참 눈을 맞추고 있는데, 성민이가 말했다. “와 이 새끼 멀쩡해 보이는 데 취했네.” 그의 눈이 서서히 반달로 휘어지기 시작하더니 곧 소리 내어 웃었다. 그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가 계속 웃으며 내게 물을 건넸다. 나는 물을 받아 마시며 그냥 그런 일이 있었다고.” 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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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안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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