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터

by rom posted Apr 11,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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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터

*

  봄 햇살이 나른하게 반짝이는 토요일. 나들이 나온 사람들로 한창인 동물원 중앙 광장에 한 소년이 서있다. 끝단을 접어 올린 청바지, 빨간 니트 사이로 보이는 체크무늬 남방, 남색 빛 코트. 아직 쌀쌀함이 가시지 않은 계절의 초입답게 소년의 옷차림도 도톰하다. 생김에 비해 단단해 보이는 손에는 풍선 두 개가 들려있다. 헬륨이 가득 든 풍선은 하늘 위에 둥실 둥실 떠있고, 소년의 표정은 딱 그만큼 설렌다. 그의 미소가 봄 햇살에 반사되어 눈이 부시다. 얼마동안 그곳에 서 있었을까. 멀리서 양 갈래 머리를 한 소녀가 그를 향해 뛰어온다. 소녀의 청색 주름치마가 바람에 흔들려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른다. 싱그럽게 웃는 소녀의 뒤춤에서 달콤한 솜사탕 향기가 난다. 솜사탕을 받아든 소년의 얼굴에서 또 한 번 봄 햇살이 반짝인다.

 

*

도대체가 복사 하나 제대로 못해서 어디다 써먹어. 당장 가서 다시 해와!”

 

  어디하나 써먹을 데 없는 하루의 시작이다. 간밤에 꾼 꿈과는 너무나도 대조 되는 일상에, 이제는 두꺼운 낯짝이 한숨을 대신한다. 억지웃음이 만연한 얼굴로 죄송한 듯 연기를 해도 이제는 진심처럼 보이게 되는 5년차 9급 공무원. 하루에도 수백 장의 인쇄물을 토해내는 복사기 앞에 서서 오늘도 내 자신을 반성한다.

  국어국문과에 들어가 평생 글을 써서 먹고 살겠다고 생각했었다. 자세히 말하자면 이것은 내가 열일곱 살 생일 초를 끄며 빌었던 소원이다. 하지만 우리 엄마는 해피 벌스 데이 투 유 대신 공무원 밥통 철 밥통이라는 노래를 불렀다. 나는 그 노래의 뜻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 했고, 틈만 나면 내 미래를 담보로 엄마와 치열한 전투를 치러야 했다.

  우리 집은 공무원 정년 65세를 꽉 채우고 퇴직하신 아버지 덕에 늘 넉넉한 편이었다. 공무원의 아내는 그래서 큰 딸에게도 그것을 물려주고 싶었나보다. 국어국문과 졸업반이 된 나는 계속되는 엄마의 세뇌에 꿈을 접어 넣고, 시험 준비를 시작 했다. 그리고 이름만 있는 4년제 대학을 졸업하던 해, 온 동네 사람 누구나가 예상했듯이 나는 9급 공무원 딱지를 달았다. 8급도 7급도 아니었지만 그냥 공무원이라는 이름에 엄마는 세상을 다 가진듯한 얼굴로 날 끌어안았다. 우리 딸 철 밥통 땄네. 철 밥통 땄어. 그때는 나도 그게 좋은 것 인줄 알았다. 그냥 밥통이 아니고 철 밥통이니 맛있는 음식을 먹을 기회가 더 많아질 줄 알았다. 하지만, 나는 늘 흰밥만 먹었다. 매번 생산적이거나 깊은 사고가 필요치 않은 똑같은 일만 했다. 어떤 날은 하루 종일 복사만 한 날도 있었다. 내 뇌는 그렇게 늘 흰밥에 김치만 먹으며 일했다. 그렇게 5년이 흘렀다.


덜컥. 삐이- 삐이-.

 

 또 복사기 고장이다. 오래 되서 덜덜 소리가 나는 거대한 기계의 위장을 열어 구겨진 종이들을 억지로 잡아 뺀다. 쾅하고 커버를 닫고 다시 시작 버튼을 누른다. 내 인생에도 시작 버튼을 다시 누를 수 있는 기회가 올까. 스물 셋 졸업반 그 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나는 절대로 시험 따위는 준비하지 않을 것이다. 다시 뿜어져 나온 인쇄물들을 스테플러로 정리하여 과장님 책상위에 올려 두고는 도망치듯 자리로 돌아 왔다. 컴퓨터 모니터에는 이번 주말에 열릴 노인정 행사에 관한 공문서가 떠 있었다. 창을 내리고 메모장을 켰다. 무엇이든 써내려가 볼 생각이었다. 하지만 10분간 자판 위에 손을 올린 채 내가 쓴 단어라고는 안녕하나뿐이었다. 쓸 만한 삶이 없어서일까. 텅 비어 버렸기 때문일까. 내려 두었던 노인정 행사 공문을 다시 켰다. 작성되지 못한 문구 끝에 커서가 깜빡인다. 익숙한 속도로 남은 공백을 매우며 오늘도 시간을 흘려보낸다.

 여느 때처럼 밋밋한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갑자기 쉽사리 그치지 않을 것 같은 빗줄기가 쏟아졌다. 비를 피해 버스 정류장으로 허겁지겁 달렸다. 하지만 나는 이미 물 먹은 솜처럼 온통 비에 잠겼고 아무 생각 할 수 없을 정도로 무기력해져 있었다. 정류장 나무 의자에 앉아 내리는 비를 바라보았다. 줄곧 똑같은 모습으로 위에서 아래로 위에서 아래로 쏟아져 내렸다. 반복에 폭삭 젖은 꼴이 꼭 내 인생 같았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리고 5년 전 철 밥통 속에 넣어 두었던 꿈이 생각났다. 또 다시 당장에라도 아무 것이나 써내려가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다. 하지만 가방 속에는 영수증 몇 장만이 나뒹굴 뿐이었다. 강박 같은 조급증이 들어 바닥을 내려다 본 순간 낯익은 밥통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녹이 슨 철 밥통. 조심히 들어 올려 뚜껑을 움직여 보았지만 그것은 뻑뻑하게 함구할 뿐이었다. 이것이 없으면 나는 굶어 죽게 되는 걸까. 엄마의 말처럼 이게 내 인생 최고의 선택일까. 젖은 몸과 손으로 다시 한 번 힘껏 뚜껑을 당겼다.

 

덜컥.

 

  거짓말처럼 열린 철 밥통, 그 안에는 미동도 없이 웅크린 꿈이 있었다. 누구의 손 한번 탄 적 없는 듯 순결한 모습으로. 나는 그것을 꺼내 호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비오는 거리를 걸어 집으로 갔다. 가는 길 한 켠 재활용 쓰레기들이 모여 있는 전봇대 아래에다 철 밥통을 내려놓고 한 걸음 한 걸음에 무게를 실어 집으로 향했다.

 

*

  홀딱 젖은 모습으로 집에 들어가니 다 큰 여자애가 비나 맞고 다닌다는 엄마의 핀잔이 마중을 나와 있었다. 멋쩍게 웃으며 그러게 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사실 나는 좀 전부터 매우 마음이 급한 형편이다. 옷 갈아입을 새도 없이 책상 앞에 앉아 컴퓨터를 켰다. 언제부터인가 바탕화면 한쪽을 차지하고 있던 워드 파일 하나가 망설임 없이 열렸다.

 

 사직원.

 상기 본인은 위와 같은 사정으로 인하여 201435일부로 사직하고자 하오니…….

 

  지난 5년의 시간. 그 시간들 속에서 나는 딸꾹질을 참듯 숨 죽여 살아왔다. 아침상에 따듯한 국과 계란말이를 올려 주시는 엄마를 보아서라도 수백 번도 더 참으려 애썼다. 하지만 이것이 딸꾹질이 아닌 코끝을 간질이는 재채기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마침 오늘이 바로 그것을 알게 된 날인 게 문제라면 문제였다. 빗속을 걸으며 무언가를 써야겠다는 결심뿐이었고, 지금 나는 그동안 꼭 써야 했던 무언가를 써버리고 말았다. 드디어.

 

 ‘내가 엄청난 일을 저질렀구나!’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욕실로 향했다. 거실에는 엄마 아버지 남동생이 모여 TV를 보고 있었다. 과일을 먹으라는 엄마의 말을 배부르다 밀쳐내며 재빨리 등을 돌렸다. 왠지 모르게 엄마의 얼굴을 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공명이 가득한 욕실에 들어서자 괜스레 심장이 뛰었다. 내가 정말이지 엄청난 일을 저질렀어. 샤워기에서 흘러나오는 따듯한 물줄기에 한기를 덜어내면서도 같은 말만 되뇌었다. 오늘 밤도 쉽사리 잠이 오진 않겠구나. 뜨거운 보리차라도 한 잔 마시고 누워야겠다. 어쩌면 내일부터 나에게만 다시금 겨울이 시작될지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

  소년과 소녀는 솜사탕과 풍선을 들고 기린 우리 앞에 섰다. 목이 긴 기린은 높은 곳에 달린 나뭇잎을 먹기 위해 긴 목을 더욱 길게 뽑아 올렸다. 조금만 고개를 숙이면 그곳에도 맛 좋은 풀잎들이 가득하지만 기린은 좀처럼 고개를 숙일 줄 모른다. 살랑이는 바람이 풍선을 스쳐 솜사탕의 결을 따라 흘러도 소년과 소녀의 눈빛은 흔들릴 줄 모른다. 오직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을 때만 웃음으로 일렁이는 눈빛을 볼 수 있다. 둘은 우리 앞 벤치에 앉아 솜사탕을 먹는다. 손과 볼은 온통 봄으로 물들고, 입 안 가득 번진 달콤함이 바람을 타고 다시 풍선을 스친다.

 

*

  백수로써 맞는 첫 번째 아침. 나는 사직서를 제출한지 정확히 30일 만에 제대로 된 무직 상태가 되었다. 그리고 오늘, 가족들에게 이 사실을 말하고 독립을 선언할 예정이다. 이 날을 위해 그 동안 많은 시나리오를 써봤지만, 모두 다 해피엔딩은 아니었다. 우선 무뚝뚝한 아버지는 날 지지 하지도 혼내지도 않을 것이다. 그저 화를 내며 펄펄 뛰는 엄마를 바라보다 신문을 들고 방으로 들어가시면 그것으로 끝이다. 마음이 여린 남동생은 누나 정말 나갈 거야? 하고 어쩔 줄 몰라 할 것이다. 그리고 이제 내 시나리오의 하이라이트. 극의 갈등이 최고조로 달한다는 절정의 순간 엄마는 내 등짝을 때리며 이러려고 내가 니 뒷바라지 한 게 아니라며 눈물을 훔치실 것이다.

  하지만 지난 밤 꿈이 남겨둔 나른한 기분 때문인지 몰라도 이런 저런 걱정들이 모두 시시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꿈속에는 벌써 봄이 왔다. 늘 기억은 안 나지만 나른하고 기분 좋은 느낌에 잠을 깬다. 아마 따듯한 봄날이겠지. 누군가가 이 꿈 속에 나왔다면 그 사람은 분명 혼자가 아닐 거야. 밤새 뭉근하게 뒤섞인 몸을 펼쳐 기지개를 켠다. 거울 속에 눈썹이 반쯤 사라진 여자가 겨울 같은 얼굴을 하고 미소를 짓는다. 그래 아직 이. 아직 꿈처럼 봄은 아니지.

좀 전부터 들려오던 엄마의 도마 소리에 고개를 도리질 치고 거실로 나간다. 동생은 아침부터 어딜 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이미 식탁 위는 따듯한 음식들이 내뿜는 뽀얀 김으로 가득하다. 나는 심드렁한 듯 연기하며 식탁 앞에 앉았다. 하지만 늘 앉던 자리에는 역시나 가시방석이 놓여 있었다.

 

 “엄마, 콩나물국 맛있네.”

 “아침 먹다 말고 웬 시답잖은 소리야. 빨리 먹고 회사가. 5분만 더 있으며 지각이야

 “엄마 국이 너무 맛있어서 오늘은 회사 못 가겠다.”

 “어이구 회사를 왜 못가? 아픈 척이라도 하려는 거면 그만 두셔

 “아프기는커녕 콧물 한 줄도 안 나오네요. 근데 엄마, 나 오늘 진짜 회사 안가

 “. 연차 낸 거야?”

 

 엄마는 뭔가 이상한 낌새를 느꼈는지 설거지 하던 손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는 진의를 파악하려는 형사의 눈빛으로 내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무슨 소리야. 너 설마 아니지?”

 “맞아 나 앞으로도 쭉 회사 안가. 그만 둬버렸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엄마는 불을 뿜었다. 그리고 내 등짝을 때리는 대신 자신의 가슴을 치며 속이 터진다는 말을 몇 번이고 했다. 이 사단 중에 동생이 나타나지 않는걸 보니 정말 아침 일찍 나가고 없나보다. 내가 쓴 시나리오는 맞는 게 거의 없었지만, 단 하나 정확히 맞아 들어간 것은 아버지의 반응이었다. 정말 단어 하나 빚나감 없이 엄마의 화를 바라보시다 신문을 들고 방으로 들어가셨다. 생각했던 것 보다 조금 더 섭섭한 느낌이 들었다. 사실 꽉 막힌 엄마의 반응이나 먼저 외출해서 중대 발표를 듣지 못한 동생보다 아버지의 반응이 더 속상하게 다가 왔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스스로의 반응에 엄마의 소리는 어느덧 이명처럼 멀어졌다. 저 굳게 닫힌 문 뒤에서 혹시 날 위해 울고 계시지는 않을까 잠시 생각했다. 하지만 진실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우선 엄마의 불을 끄자는 쪽으로 의식이 방향을 트는 순간 이명은 다시 또렷한 음성이 되어 가슴에 박혔다. 이제 쓸모가 없는, 얌전히 시집이나 갈, 이제 뭐 먹고 살려고 라는 말들이 형상화 되어 정확히 한 곳으로 몰려들었다. 나는 엄마의 사랑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 사랑이 밧줄이 되어 날 묶도록 내버려 둘 수는 없는 노릇이다. 비 오던 날 밤 호주머니에 넣고 돌아온 그 꿈을 생각하면 독립은 이제 나에게 피할 수 없는 숙명인 것이다.


*

  보글보글 라면이 끓는다. 스프의 향은 작위적이면서도 동네 아저씨 같은 자연스러운 맛이 있다. 본인의 가슴을 턱턱 치면서도 엄마는 결국 김치를 싸주셨다. 그 마음이 어떤 것인 줄 잘 알기에 나는 더욱 정성으로 그것을 먹는다. 가위로 듬성 등성 자른 김치와 라면 냄비를 쟁반에 받혀 평상으로 나간다. 속이 탁 트이는 듯한 옥탑방 평상은 라면과 참 잘 어울린다. 지난 5년간 부어온 적금으로 얻은 작은 집에서 난 글과 함께 가난한 새 날을 시작했다. 그날 이후로 눈을 뜬 후 생기는 모든 시간은 꿈을 쓰는데 사용한다. 나지막이 내려다보이는 동네를 구경하다 그곳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글로 옮긴다. 그리고 가끔 방문을 닫고 들어간 아버지의 이후를 상상하기도 한다. 어째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자꾸 그날의 아버지가 궁금했다. 하지만 그것을 직접 묻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았다. 아마도 이것은 호기심이 아닌 궁금함 그 자체를 향한 단련일지 모른다.

  그래서인지 나의 이런 행위들에는 목표가 없다. 아침에 일어나면 라면을 먹었고 해가 잘 드는 옥탑방 옥상에 앉아 한 편 한 편 짧은 삶들을 만들어 내는 것이 전부였다. 그리고 해가 지면 아직 무엇이라 칭하기 어색한 그것들을 부둥켜안고 잠들어 버리는 것이다. 하루하루는 행복했지만 그것이 인생에 미치기엔 아직 이었다. 나는 무엇이 두려운 걸까. 내가 정말 두려워 지금의 시간까지 곧장 오지 못했던 사연은 무엇일까. 그리고 지금, 한발 더 나아가야 할 곳 앞에서 왜 이리 망설이게 되는 걸까.

  생각이 실구름만큼이나 길게 늘어진다. 평상 위에 누워 바라보는 5월의 하늘은 마약이 따로 없다. 휴대폰을 열어 시간을 확인하니 벌써 오후 6시다. 해가 많이 길어졌다고 생각하는 찰나 진동이 느껴졌다. 독립을 선언하며 집을 나오던 날 마지막으로 본 동생의 전화였다. 통화는 1분 정도로 아주 짧았다. 하지만 그것은 내 인생에서 가장 긴 이야기의 시작이었다.

                                       

*

  전화를 받고 서둘러 간 곳은 병원이었다. 건물에 들어서자마자 흘러드는 소독약 냄새에 나도 모르게 긴장이 됐다. 병실 앞 동생이 마중을 나와 있었다. 눈이 빨갛다. 잠깐 마주친 눈으로 알 수 없는 감정을 받아들고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불 켜지 않은 병실은 노을이 내려 앉아 붉게 물들어 있었다. 그리고 네모진 공간 끄트머리 즈음 시간의 결이 느껴지는 아버지의 등이 보였다. 한 달만 이었다. 내가 집을 나서던 그 날, 아버지는 어떤 말도 내게 건네지 않으셨다. 그리고 나는 그 뚝뚝함에서 어떤 감정도 찾아낼 수 없었다. 하지만 병실에서 마주친 아버지의 등은 달랐다. 두려움과 외로움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행스러움이 노을빛에 조용히 휘감겨 등을 타고 흘러내리고 있었다. 침대 곁에 앉았다. 나 또한 살가운 딸은 아니었기에, 괜찮으시냐는 말 한마디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아버지.


 어렵사리 건넨 한 마디가 아버지라니. 어떤 미동도 없던 아버지의 등을 또 얼마간 바라보았다. 한참이 지난 후에야 거대한 동굴을 가로 막았던 바위 문이 움직이듯 아버지의 등이 열렸다. 검고 짙은 눈썹 위에 반창고 하나, 왼쪽 광대뼈에 물든 푸른 멍, 거칠게 터진 입술. 나는 흔히 암이나 종양이라 말하는 큰 병이 찾아온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그것은 분명 아니었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아버지의 얼굴에서는 알 수 없는 미소가 흘렀다. 이내 그 미소는 사라졌지만 분명 그것은 즐거움의 일면이었다. 소독약 냄새로 가득한 4인실 병실에서 그가 찾은 즐거움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상처들 사이로 피어나던 아주 찰나의 미소를 다시 한 번 확인하기 위해 나는 아버지의 얼굴에 더욱 집중했다. 아버지가 걸음을 옮겨 침대 위로 다시 올라가 앉을 때까지 한시도 눈을 떼지 않았지만 좀처럼 그 장면을 다시 볼 수는 없었다. 노력 하면 할수록 제각각의 색감을 가진 상처들만이 더욱 도드라져 보일 뿐이었다. 나는 다시 한 번 굳게 닫힌 입을 열었다.

 

 “어쩌다 이렇게 되신 거예.”

 

 상처를 바라보다 새삼 놀라 어린 아이를 다그치듯 물었다. 그네처럼 부드럽게 아버지의 눈동자가 흔들거렸다. 나는 그 속에서 얼핏 두려움이나 긴장이 아닌, 쑥스러움과 멋쩍음을 읽어 내었다. 나에게 아버지는 거대하고 묵묵한 어른이었다. 그의 눈빛은 늘 무겁고 엄격했다. 단 한 번도 이렇게 쑥스러움 많은 10대 소년과 같았던 적은 없었다. 적어도 내 기억 속에는 말이다. 도대체 내가 없던 한 달의 시간동안 어떤 일들이 일어났던 걸까. 놀란 마음이 가라앉고 또다시 궁금함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어쩌면 내가 지금 시작하려는 한 마디는, 지난 29년간 유지해 왔던 부녀 관계를 다시 써 내려가게 되는 계기가 될지도 모른다. 다시 써내려 간다는 것은…….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필요한 일인지도 모른다.

 

 “아버지, 왜 내가 꼭 와야 한다고 하셨어요?”

 “꼭이라고는 안 했다

 

 병실에 들어선지 40분 만에 그의 입에서 나온 첫 번째 문장이었다. 첫 번째인 것도 중요하지만, 그 내용 또한 딱 들어줄 만큼만 유치하여 나는 문득 이 대화에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많이 안 좋으신 건 아니죠?”

 “그래, 보다시피 아주 건강하다.”

 “얼굴은 괜찮아 보이지 않아요. 그 상처들은 다 뭐에요?”

 “이건 신경 쓸 필요 없다.”

 “아까 보니 다리도 불편하신 것 같던데, 도대체 무슨 일이에요. 사고라도 나신 거예?”

 “......사고라면 사고지.”

 

 저기 백두산까지 돌아 올 수 있을 만큼 에둘러 말하는걸 보니 조금 답답하단 생각이 들었다. 시계를 보니 병원에 온지 벌써 한 시간이 흘렀다. 왠지 더 머물러 있다가는 엄마와 마주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는 아직도 내가 공무원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김치는 김치이고 이건 또 별개의 문제이니 말이다.

  

 “무슨 일인지 자세히 말 안하실거면 그만 가볼게요. 엄마랑 마주쳤다가는 꽤 시끄러워질 것 같아서요

 

 닥쳐올 폭풍우를 감지한 나는 잠시 느꼈던 흥미마저 접어두고 자리를 뜨려 했다. 그때였다.

 

 “놀이터

 

 나는 순간적으로 귀를 의심했다. 지나치게 의외였기 때문에 반문을 할 여지도 찾지 못했다. 다만 일어날 채비를 하던 나는 그 자리에 망부석처럼 서서 눈썹을 구부려가며 다시 한 번 그 말의 정체성을 확인하려 애썼다. 하지만 아버지는 천천히 자신의 손등만 쓰다듬을 뿐이었다. 그의 느리고 조심스러운 행동은 곧 이어질 어떤 결심의 예고편 같았다. 베개 밑에서 꺼낸 낡은 사진으로부터, 언제부터인지 알 수 없는 과거로부터, 한 편의 긴 이야기가 시작 될 징조로 그 것은 충분했다.

 

*

 “강 만복. 48년생 쥐띠. 나이 67. 사는 곳 서울시 마포구 아현동 763번지 맞죠?”

 “......”

 “말 안하실거에요? 이거 공무 집행 방해죄에요 할아버지

 “...............”

 “말 안하셔도 이미 다 조치 했어요. 곧 따님 오실 거니까 아이 엄마랑 잘 합의를 보세요. 아셨죠?”

 

 경찰서 안은 다양한 사연을 가진 사람들과 쉬지 않고 울리는 전화벨 소리로 가득했다. 그리고 그 속에 엉뚱하게도 아버지가 앉아 있었다. 전화를 받고 달려온 나는 그 상황이 좀처럼 이해되지 않았다. 멀뚱히 서있는 나에게 형사로 보이는 사람이 다가와 보호자냐고 물었다. 나는 잠시 망설이다 고개를 끄덕였다. 형사는 나에게 아주 간략하게 자초지종을 설명해 주었다. 아버지가 놀이터에서 어떤 아이를 데려가려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추가적으로 그의 입에서는 납치라느니 합의라느니 하는 날카로운 단어들도 나왔다. 하지만 나는 그 단어들이 매우 우스꽝스럽게 들렸다. 아버지와 도무지 매치할 수 없는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아이를 납치하려고 했다니. 동물원을 탈출한 코끼리가 도로에 서있는 바람에 지각을 했다는 이야기 보다 더 어이없고 우스웠다. 하지만 나의 기분과는 달리 상황은 매우 심각한 듯 보였다. 무릎이 까져 붉게 상처가 올라온 아이는 놀란 눈으로 의자에 앉아 있었다. 아이의 부모는 한눈에 봐도 화가 많이 나 있는 상태였다.

 

 “저기 형사님, 잠시 아버지와 나가서 이야기 좀 나누고 와도 될까요?”

  “지금 빨리 합의를 하셔야 하는 상황이라서, 10분 드리겠습니다. 서 밖으로 나가시는 건 안 되니 복도에서 이야기 하세요

  “. 10분이면 충분해요

 

 나는 아버지와 복도로 나갔다. 아버지의 발걸음은 그때조차 느릿했다. 시간이 없었고 이것저것 묻고 싶은 게 많았지만 잠시 기다렸다. 숨을 고른 뒤 이야기를 꺼내려는 순간 나보다 아버지의 입이 먼저 열렸다.

 

  “점심을 먹고 놀이터에 갔었다.”

 

 나는 이전에도 이와 비슷한 단어를 들은 적이 있었던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오늘따라 아이들이 많았어. 그래서 의자에 앉아 모두 돌아갈 때까지 기다렸지. 마지막 남은 아이까지 엄마 손을 잡고 집에 가는 걸 확인하고........”

 

  아버지는 또 말끝을 흐렸다. 나는 아버지가 그럴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순간 어쩌면 정말 안 좋은 일이 벌어진 것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 했다. 그러고 나니 조금의 화가 밀려왔다. 짜증 섞인 목소리가 나도 모르게 경찰서 복도를 울렸다.

 

  “확인하고 그리고요? 아이들이 돌아가길 기다렸다가 도대체 뭘 하신 거예요.”

  “....................”

  “아버지!”

  “....그네를 탔다.”

 

  내 성화에 떠밀려 아버지는 그의 인생에서 가장 커다란 고백을 준비도 없이 내뱉게 되었다. 그네라니. 칠순을 바라보는 노인이 놀이터에서 아이들이 다 돌아기만을 기다렸다가 그네를 타는 모습이라니. 나는 이 대화가 한 편의 꽁트 같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생각보다 더욱 또렷하게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사건의 전말을 이러했다.

  그네를 타던 아버지에게 일곱 살 쯤 되는 꼬마 아이가 다가왔다고 한다. 아이는 비어 있던 다른 그네에 앉아 아버지에게 친구도 없이 왜 혼자 그네를 타냐고 물었다. 아버지는 당황하여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아이는 자신이 그네를 밀어주겠다며 아버지 뒤로 향했다. 그렇게 두어 번 커다란 덩치의 친구를 위해 그네를 밀어주던 아이는 결국 넘어지고 말았던 것이다. 아이는 아이답게 곧바로 울음을 터트렸고, 그 소리를 들은 아이의 엄마가 어디에선가 부리나케 달려왔다. 왜 남의 아이를 다치게 했냐는 지나친 단정에서부터 아이를 데려가려고 한 게 아니냐는 무서운 오해까지 아버지는 한 마디의 대꾸도 없이 모두 듣고만 있었다. 아버지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아이의 엄마는 남편을 불렀고 이어 경찰을 불렀다. 그리고 모범 공무원은 평생 가볼 일 없을 줄 알았던 경찰서에 와 앉아 있게 된 것이었다.

  전말을 듣고도 나는 이 사건을 완벽히 이해할 수는 없었다. 더 많은 대화가 필요했다. 오늘 점심을 먹고 그네를 타러 오기 그 이전의 이야기들이 있어야 했다. 하지만 당장 합의가 급했기 때문에 아버지와 함께 형사가 있는 책상 앞으로 다시 돌아갔다. 우리가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그들 간에도 어떤 이야기가 오고 갔었는지 아까 보단 조금 차분해진 모습이었다. 나는 우선 아이 엄마에게 사과를 했다.

 

 “본의 아니게 놀라게 해드렸다면 죄송해요. 아이가 다친 부분에 대해서는 보상하겠습니다. 하지만 오해하신 부분에 대해서 저희 아버지에게 사과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사과의 꽁지를 잡고 따라 나온 것은 나도 예상치 못한 말이었다. 30년 넘게 공직 생활을 하며 길에 쓰레기 하나 버린 적 없는 아버지였다. 그는 살갑지 않았지만 내 마음 속 한구석의 기준이었다. 그런 아버지가 값싼 오해에 휘말리는 것을 참을 수 없었나보다. 이처럼 당당한 태도로 누군가의 눈을 바라 본 적이 또 있을까. 아이의 엄마는 조금 당황하는 기색을 보이다 이내 한 결 수그러진 태도를 보였다.

 

  “안 그래도 우리 애가 설명을 하긴 하더라고요. 다 믿을 수는 없지만 일단 제가 오해한 부분은 있는 거 같네요. 그래도 다친 부분에 대한 보상은 해주셔야 할 거에요. 진단서 끊어서 연락드릴게요.”

 “아니요. 보험 회사에서 전화 드릴 겁니다. 그럼 합의 하신 걸로 알고 돌아갈게요.”

  

  아버지와 나는 형사가 보는 앞에서 합의서를 작성하고 나서야 시장 통 같은 경찰서를 빠져나올 수 있었다. 해가 지고 아버지의 등에는 또 다시 노을이 내려앉았다. 처음은 한 걸음 정도 뒤 떨어져 걸었다. 그러다 그의 못 다한 이야기가 궁금해져 다시 반걸음이 좁혀졌다.

그리고.

 

 “아버지, 소주.... 한잔 할까요?”

 

  나의 한 마디가 건네지던 순간, 아버지의 걸음도 반걸음 멈춰 섰다.

 

*

 완연한 봄 날씨 덕에 포장마차는 초저녁부터 손님들로 북적인다. 사실 비가 오면 비가 와서 한잔, 맑으면 맑아서 한잔, 슬프면 슬퍼서 한 잔 하는 게 우리네 정서이다 보니 포장마차가 조용해질 날은 없지 않나 싶다. 아버지는 의외로 주좌의 분위기와 그럴싸하게 어울려 들어갔다. 나는 살다보니 이렇게 아버지와 술상을 마주하게 되는 일이 있다는 게 마냥 어색할 뿐이었다. 뜨끈한 우동으로 빈속을 달래고 잔 가득 소주를 부었다. 축하할 일 없는 하루였지만, 아버지와 나는 술잔을 부딪쳤다. 소주는 쓰면서도 달았다. 아버지는 안주도 없이 연거푸 석 잔을 마셨다. 나도 따라 한 잔을 더 마셨다. 그리고는 무언가 받을 것 있는 빚쟁이처럼 아버지를 들여다보았다. 잠시 뒤 잠바 안쪽 주머니에서 낡은 사진 한 장이 나왔다. 아버지는 내 앞에 그것을 내려놓고 술에 취한 듯 푸우 푸우 한숨을 내 쉬었다.

 

 “전쟁이 있었지. 다섯 살 쯤 이었나? 폭격에 너희 할머니 할아버지 다 돌아가시고 나 혼자 고아가 됐어. 그리고는 거짓말처럼 전쟁이 끝났던 거여. 하지만 난 그때부터 하루하루가 전쟁이었지. 이웃집 아주머니가 날 데려다 지게질을 가르쳤어. 그리고 동네에서 제일 큰 기와집에서 머슴살이를 시작했지. 배운 게 지게질뿐이니 밥 굶지 않으려면 열심히 해야 했어. 새벽 4시에 일어나 집 근처 산에 가서 나무를 해왔지. 하루에 열다섯 시간씩 꼬박 일을 했어. 어느 날 나무를 하러 가는데 동네 어귀에서 또래 친구들이 삼삼오오 모여 놀고 있는 거여. 어찌나 같이 놀고 싶던지 지게를 벗어 던질까 몇 번을 고민 했나 몰러. 그런데 배가 고프더라고. 하필이며 그 때 배가 고플 것이 뭐여. 여기서 지개를 벗으면 밥도 없겠구나 싶었던 거지. 그게 내 나이 일곱 살 때 일이여. 일곱 살. 지개 지기에는 너무 어렸지. 그럼 어렸어. 그 날 부텀 놀고 싶다는 마음을 꾹꾹 눌러 담고 일만 했지. 그러다 열네 살이 되던 해 주인집이 쫄딱 망해버린 거여.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됐는데 운 좋게도 같이 머슴 살던 형님 하나가 도시에 가면 일도 많고 돈도 많이 벌수 있다고 하는 게 아니것어. 냉큼 따라 나섰지. 처음 들어간 곳은 방직 공장이었어. 줄 곳 시골에서만 살아온 촌놈한테 기술이 어디 있것어. 생판 할 줄 아는 게 없으니 바닥부터 시작했지. 5년간 평화시장과 공장을 오가며 지게 지던 깜냥으로 옷감을 날랐어. 그러다 보니 어느덧 열아홉이 됐고, 방직 공장에서 손이 제일 빠르기로 소문난 키 작은 아가씨와 연애도 하게 됐지. 그게 지금 네 엄마다.”

 

  아버지는 엄마 이야기에 쑥스러운 듯 머리를 긁적이다 또 한 잔의 소주를 입 안 가득 털어 넣었다. 처음 듣는 그의 모든 사연들은 마치 그 때의 아버지를 직접 만난 듯 한 착각에 빠지게 만들었다. 그 어린 나이에 지게를 지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단순히 배고픔만이 아이를 힘겹게 만들진 않았을 것이다. 다시금 아버지 앞에 놓인 빈 잔에 가득 맑은 술을 부어 드린다. 거칠게 굳어진 그의 인생이 한 잔 술로 위로 받을 수 있다면 나는 얼마든지…….

 

 “너한테 그러던 버릇 그거 나한테 먼저였다. 그 때는 공무원이 그다지 인기도 아니었는데, 웬일인지 공장을 그만 두고 공부를 하라는 거 아니여. 다섯 살 이후로 처음 생긴 가족 같은 사람이 하는 말이라 나는 그날로 공장을 나와 공부를 시작했어. 해본적도 없는 것을 하려니 죽겠는 거여. 그렇게 이 년을 꼬박 새웠지. 그리고 덜컥 농업직 공무원에 합격한 것이여. 지금 생각해도 참 신기한 것은 달랑 7명 뽑는 그 자리에 오백이 넘는 사람들이 모여들었다는 것인데, 그 중에서도 내가 한 자리 차지했다는 게 얼마나 놀랄 일이냔 말이여. 네 엄마는 그 날도 딱 네가 합격한 그날만큼만 좋아했었어. 그렇게 결혼해서 너희 둘을 낳고 기르느라 정신없이 또 이만치 살아 온 게지.”

 

  얼큰하게 취해 들어가는 부녀의 주위로 사람들이 빠져 나간 텅빈 테이블이 하나 둘 늘어났다. 시간은 어느덧 하루의 시작이 되었고, 아버지의 이야기는 어느새 멈추어 버렸다. 비워지지 않은 마지막 술 한 잔이 고요하다. 이만 돌아가야 할 때라고 생각했던 나는 자리에서 일어날 채비를 했다. 아버지는 고개를 숙이고 잠이 든 것처럼 보였다. 가만히 들여다 본 그의 이마에는 작은 흉 하나가 있었다. 전에 병원에서 봤던 반창고 속 사연이리라.

  먹고 사는 일이 바빴던 아버지에게 과거로 가는 차편은 늘 매진이었고, 그 시간 속 아이들은 더 이상 그를 기다려 주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다만 일곱 살의 그 때로 잠시 돌아가도 좋다고 생각했던 게 아닐까. 놀이터의 아이들을 보며, 더 이상 지게도 배고픔도 없는 지금, 함께 그들과 뛰어 놀아도 된다고 생각했던 게 아닐까. 이런 생각이 드니 그를 바라보는 내 눈에도 너울이 일었다. 술기운이 불러온 청승일지 모르겠으나, 잠시간 그와 함께 동물원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햇살이 좋은 봄날이니, 양 손 가득 풍선도 들고 부드러운 솜사탕도 먹어가며 깔깔대며 웃어봐야지. 그러니 지금은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요 우리. 지금 집으로 돌아가요, 우리.

 

*

 “만복아!”

  어느덧 저만치 달려 나간 소녀가 소년의 이름을 크게 부른다. 소년도 소녀에게로 달려 나갈 준비를 한다. 둘은 울려 퍼지는 총성도 없이 달리기를 시작한다. 제일 먼저 구름이 귓불을 스친다. 복숭아 꽃 향기는 코끝을 돌아 저 멀리 사라진다. 들숨과 날숨에도 봄이 들어 소년과 소녀의 마음까지 스민다. 내 딛는 발밑에 초록의 풀잎이 스친다. 둘은 달리기를 멈추고 잔디 위에 크게 눕는다. 팔과 다리를 온 세상으로 뻗은 채 반짝이는 햇살에 눈 감은 채 온 몸으로 활짝 미소를 짓는다.

 

*

 알람보다 더 따가운 시선으로 봄 햇살이 아침을 깨운다. 잔뜩 취한 다음 날치고 꽤 괜찮은 꿈을 꾼 것 같다. 처음 보는 동물원 같은 곳에 소년과 소녀가 있었다. 행복해 보였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느낌만 남을 뿐 자세한 기억은 나지 않았다. 오랜만에 들려오는 엄마의 도마 소리. 원해서 이곳을 나갔지만, 언제나 돌아오고 싶은 마음이 있었나 보다. 고작 한 달이었음에도 이 익숙한 냄새와 공간과 사람들이 그리웠다. 다만 이곳이 또 다시 나를 묶으려 한다면 나는 몇 번이고 탈출을 시도 할 것이다. 하지만 늘 돌아와 이곳에서 자유롭기를 기도할 것이다.

 

  “엄마. 오랜만. 오늘국은 콩나물이겠지?”

  “속 터지는 소리 좀 그만해. 어제는 술도 못 마시는 니 아버지 데려다 뭘 한 거야? 나이만 먹었지 하는 일이라고는 쓸 데 없는 것뿐이니 원

  “잔소리도 오랜 만이네

  “안 그래도 너 때문에 속상한데 요즘 니 아버지는 왜 그런다니. 안하던 소릴 다 하지 않나.”

  “무슨 소리? , 엄마한테 꽃놀이 가재?”

  “너 나가고 다음 날인가 그 다음 날인가 TV를 보고 있는데 갑자기 눈물이 그렁해서는 니가 왜 나간 줄 아냐고 묻더라니까.”

  “그래서?”

  “그래서는 뭘 그래서야. 난 니 얘기 꺼내고 싶지도 않아서 방으로 들어가 버렸지. 그런데 밖에서 우는 소리 같은 게 들리는 것 같아서 나가 봤더니, 사진 하나를 들고 서럽게 니 아버지가 울고 있지 뭐야. 내 평생 니 아버지 우는 건 처음 봤다. 그런데 울면서 하는 말이 더 가관이더라. 놀자. 이제 나도 놀아보자. 이러면서 울더라니까. 희한했어 아주.”

  “아이고 엄마. 밥은 어제 줄 건데 빨리 주세요. 배고프니까

 

  엄마의 말을 억지로 잘라내고 나는 평소보다 더 먹성 좋은 딸로 분해 밥을 먹었다. 밥 한술에 어제보다 더 진한 감정을 말아 마음 속 깊이 꾸역꾸역 밀어 넣었다. 그리고 마지막 한 톨을 먹어내며 한 숨을 탁 내 쉬었다. 그리고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안방 문을 두드렸다. 태어나 한 번도 두드려 본 적 없는 아버지의 방문은 생각보다 친근했다. 열린 문틈 사이로 이미 외출 준비를 마친 그가 보였다. 그의 등은 병원에서 보았을 때처럼 다양한 감정으로 둘려 있었다. 나중에 아버지의 입으로 직접 들은 이야기이지만 내가 나가던 날, 나의 어처구니없는 용기에 매우 놀라셨다고 한다. 그리고 사는 내내 굶을까 걱정 되어 쉬지 않고 일해온 자신이 미워졌다고 하셨다. 스스로를 찾을 시간이 좀처럼 없었던 삶은 그렇게 나이 육십 칠세에 처음으로 용기를 내었던 것이다. 어쩌면 나도 그도 이제 막 또 다른 삶을 시작한 어린 아이와 같을지 모른다.

 

 “아버지. 놀이터 가요.”

 

 어쩌면 나도 그도 이제 막 또 다른 삶을 시작한 어린 아이와 같을지 모른다. 우리는 그렇게 소년과 소녀가 되어 인생 위에 놓인 길을 마음 것 즐기며 나아갈 것이다. 햇살이 봄처럼 빛나고 바람도 달콤한 오늘. 처음으로 아버지의 삶이 담긴 손을 잡고 놀이터로 향한다. 아이들이 모두 돌아기까지 기다릴 필요는 없다. 내가 나를 찾는 시간. 놀이터로 가는 길 위면 그것은 충분하다.

    

응모자: 정새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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