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가에서 보내는 크리스마스

by 기억의끝 posted Apr 26, 2015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창가에서 보내는 크리스마스


1225

 

크리스마스

 

그것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1년에 한번 씩 주어지는 겨울 이벤트나 다름없다. 어떤 사람들은 연인들끼리 모여서 거리를 배회하며 서로 사랑을 나누고, 어떤 사람들은 집에 앉아서 가족들과 따뜻한 하루를 보내고는 한다.

 

하지만 나는 달랐다.

어렸을 때부터 나에게는 연인 따위는 없었고 친구 따위는 없었다. 그렇다 고해서 같이 따뜻하게 이야기를 나눌 가족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나는 외롭지 않았다.

 

창가에서 보내는 크리스마스만큼은.

 

20081224

 

“...........다녀오겠습니다.”

 

아무도 없는 거실에 홀로 인사를 하고서 가방을 둘러메고 집을 나선다. 언제 나와 다를 것이 없는 하루다.

오늘은 1224

크리스마스이브 이다.

하지만 평일과 다를 것이 없다. 그저 나는 아무런 생각 없이 학교를 향해서 가방을 둘러메고 앞을 나아갈 뿐이니까.

학교운동장을 지나서 복도를 걸어 4학년 3반에 도착했다. 초등학교에 들어와서부터 벌써 4년째가 끝나가고 있다. 아직 철이 들지 않은 나이지만 주변아이들과 조금 다른 점이 흠이었다.

그럼 수업을 시작하겠어요.”

담임선생님의 말과 동시에 수업이 시작되고 어느덧 4교시가 끝나 점심시간이 된다. 급식당번들은 황급히 뛰어가서 급식을 나르고 그것을 배부하기 시작한다. 아무 말 없이 밥을 다 먹고 나면 어느새 인가 5교시가 시작되고 정신을 차리고 보면 모든 수업이 끝나 종례시간이 되어있다.

정말 아무 의미 없는 하루였다. 반장의 인사가 끝나고 가방을 메고 집에 돌아가면 나를 반겨주는 것은 아무도 없었다. 부모는 있지만 대화를 하지 않는다.

저분들은 나에게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다. 그래서 나도 그들에게 관심이 없다.

그렇다 고해서 저 두 분이 싫다거나 그런 것은 아니다. 딱히 저분들에게 대해서 아무런 감정이 없을 뿐이다.

아무래도 저 두 분은 서로 사이가 안 좋은 모양이다. 무슨 일 때문인지 모른다. 언제부터 저 두 사람은 서로 말도 안거는 사이가 되어 버린 것이다. 그저 같이 밥이나 먹고 바로 흩어지는 그런 사이. 가족이지만 가족이라고 할 수가 없었다.

아무리 두 분이 나에게 관심이 없다고는 하지만 어린 나의 마음에는 내가 관심을 받는 것보다도 저 두 분이 사이가 좋아지기를 원했다.

몇 번이나 두 분에게 말을 걸어보았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모두 행복하게 지내보자고.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서로 웃으면서 지내보자고.

 

하지만 나의 목소리는 저 두 사람에게는 닿지 않았다.

방안의 침대위에서 멍하게 누워 있을 때였다.

한소녀의 목소리가 나의 귓가에 울리는 것은.

 

크리스마스 선물은 뭐가 좋겠어?’

 

신비한 목소리에 벌떡 일어서면서 주위를 훑어보았지만 그 누구도 보이지 않았다. 처음에는 환청 이러니 하고 무시했지만 그것이 환청이 아니라는 것은 1225..크리스마스 때 알게 되었다.

창가에서 크리스마스를 보내는 그때에……

 

 

1225.

 

아침부터 꺼두지 않은 자면 종 때문에 아침 일찍부터 눈을 떠버렸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오늘은 학교를 가지 않는 날이었고, 벽에 달린 달력을 보고서 오늘이 일 년에 한번 있다는 크리스마스라는 것을 깨달았다.

친구들과의 약속 따위 없었다.

가족들과의 하루계획도 없었다.

나는 머릿속은 그저 새하얗게 빛나고 있을 뿐이었다. 집안은 너무나도 조용했다. 시계초침이 재깍재깍하고 이동하는 소리가 들려오고 그것이외에는 아무런 소음도 들려오지 않았다. 시계초침 소리마저 없었다면 나는 이미 미쳐있을 지도 모른다.

천천히 1초마다 움직이는 초침에 귀를 기우리며 나는 다시 눈을 감았다.

 

크리스마스 선물을 원해?’

 

나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줄 사람 따위 존재하지 않는다. 애초에 나에겐 가지고 싶은 것이 없으니까.

머릿속에 들려오는 목소리는 아름답게 울려 퍼지고 나는 그 목소리에 의심 없이 대답했다. 어째서일까. 저 목소리를 들으면 이렇게나 안심되는 이유가.

“..........”

눈을 뜨고 보니 저녁 11시를 넘어서고 있었다. 커튼도 쳐져있는 창밖에 우연히 눈길을 돌려보니 바깥에는 눈이 내리고 있었다.

화이트 크리스마스였다.

종종 격어보기가 쉽지 않은 화이트 크리스마스. 아름답게 창밖을 꾸며주는 눈을 보고서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 창가에 뛰어갔다.

 

눈이 내려 시간이 지났는지 꽤나 바닥이 새하얗게 쌓여있었다. 그저 머릿속에는 아름답다는 생각만이 지나가고 있을 뿐이었다. 그 순간 이었다.

 

나의 눈앞에 눈보다 아름다운 소녀가 지나간 것은 말이다.

 

흑발의 머리카락을 휘날리면서 늦은 겨울 밤길을 홀로 걸어가고 있는 그녀의 모습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눈보다 훨씬 더 아름다웠다. 매료당한 듯이 넋을 잃을 정도로 소녀를 바라보는 나의 시선은 그렇게 오래가지 못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소녀는 나의 눈앞에서 사라지고 없었다.

어두운 방안에 시계를 보니 12시가 넘어있었고 이미 크리스마스는 끝나있었다.

단 한 번의 시간. 그때 창가에서 본 소녀의 모습은 5학년이 되어서도 계속 머릿속에 남아있었다.

 

 

20091225

 

어제도 추운 바람이 불고 모두들 두껍게 옷을 차려입고서 수업을 진행했다. 녹색칠판에 적혀지는 글자들은 언제 봐도 즐겁지가않았고. 그저 지나가는 시간을 무의미 하게 보낼 뿐이었다. 괜히 떠들다가 선생님에게 야단을 맞는 아이들이 있는 반면에 꾸벅꾸벅 졸고 있는 아이들도 있었다.

이렇게 5학년이 되어서도 그때의 기억이 잊히지 않는다. 작년 크리스마스 밤에 창가에서 보게 된 한 소녀의 모습이. 그것은 마치 마법에 걸린 것처럼 머릿속에서 좀처럼 잊히지 않았다.

수업시간이 되어도 점심시간이 되어도 학교를 마치고 집에 하교 할 때도 그 소녀의 대한 일이 잊히지 않았다. 왜 이렇게 신경이 쓰이는 걸까. 그 소녀가 왜 이렇게 신경이 쓰이는 걸까.

자신의 마음을 잘 이해 못하겠다. 내가 어째서 이렇게 까지 몇 초밖에 보지 못한 그 소녀에 대해서 이렇게 신경을 쓰는 지를...

 

일요일과 다름없는 크리스마스. 학교에도 가지 않는 이 지겨움은 뭐라고 말로 표현 할 수가 없다. 그래서 나는 방안에 들어가서 조용하게 시간을 지내다가 너무나도 지루한 나는 천천히 눈을 감고 잠을 취했다.

 

크리스마스 선물을 원해?’

 

들려온다. 그때처럼 나의 머릿속에서 아무 이유 없이 울려 퍼져간다. 그리고 나는 그녀의 말에 이렇게 대답하고 있었다.

 

너는 누구니?

 

내가 크리스마스 선물을 줄게?’

 

내말을 들은 걸까 들리지 않은 걸까. 그때와 다름없이 똑같은 질문을 되풀이 하고 있는 목소리였다. 그리고 조용하게 숨을 쉬며 천천히 눈을 뜨고서 침대위에서 일어났다.

그때와 똑같았다. 그때와 똑같은 목소리가 똑같은 질문을 하고 지금 나는 똑같은 시간에 일어났다. 이런 이상한 위화감 속에서도 나는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창문 앞에 서있었다.

아쉽게도 오늘은 눈이 내리지 않는 모양이다.

……

그때였다. 내 눈 앞에 아름다운 흑발의 소녀가 나타난 것은

“.........”

바라보았다. 아무 말 없이 응시할 뿐이었다. 단지 그녀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서 창밖을 지나고 있는 그 소녀를 바라볼 뿐.

하지만 그때 내가 어떻게 알았겠는가. 그때 그날에 그날 밤에 본 그 소녀의 모습이 마지막 이라는 사실을……

 

그때 소녀를 본 이후 나는 요 몇 년간 소녀를 볼 수가 없었다.

아니, 소녀가 나타나지 않았다.

 

20131225

 

그때부터 나는 기다렸다. 매년 1225일을 기다려왔다. 그 소녀를 다시 한 번 보기 위해서. 그 소녀를 한 번 더 보기위해서 이사도 가지 않고 나는 필사적으로 기다렸다.

그렇게 소녀를 기다리고 있는 사이 나는 어느덧 중학교 3학년이 되어있었다. 그때와 다름없이 부모님은 서로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물론 나는 이런 두 사람에 대해서 더 이상 생각안하기로 한지 오래되었다.

다시 한 번 소녀를 보기 위하여 이 창가에서 크리스마스를 보내온 지 벌써 약 5년이 지났다. 정확히 6년 전에 소녀를 처음 본 순간부터 나는 그 소녀에 대해서 잊지 않았다. 6년 이라는 세월이 지난 지금 나는 벌써 중학교 3학년이 되어서 몸도 자라고 알 것도 어느 정도 알 나이가 되었다. 그때 나의 창가에 스쳐지나간 그 소녀는 지금 어떻게 되었을까?

 

나는 오늘 하루도 아무런 계획도 없이 방안에서만 지낼 뿐이었다. 그렇게 창문 앞에 앉아서 바깥을 바라본지 몇 시간이 되어있을까, 이미 태양이 져버리고 어둠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었다. 지금 시각은 1150.

앞으로 10분만 있으면 크리스마스는 끝나버린다.

 

역시 오늘도 그녀는 나타나지 않는 것일까……

 

새하얀 세상이 보인다.

그리고 아무것도 없는 하얀 세상에서 홀로 서있는 소녀가 보였다.

크리스마스 선물을 원해?’

이쪽을 향해서 말을 걸고 있지만 소녀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분명히 소녀는 저 앞에 서있는데도 불구하고 그 모습이 떠오르지 않았다.

내가 크리스마스 선물을 줄게

글쎄, 너무 오랫동안 허무하게 지내오다 보니 그다지 생각나는 게 없는데 말이야. 그보다 도대체 너는 뭐하는 녀석이야? 어째서 계속 나에게 같은 질문만 해오는 거야.

어디 있니?’

이봐, 나의 질문에 대답해줘, 너는 왜 나에게 말을 걸어 오는 거야

그다음 소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이봐, 왜 대답하지 않는 거야? .. 다시 대답하지 않는 거야?

소녀는 멀어져갔다.

점점 멀어져갔다.

그녀를 향해서 손을 뻗었지만 닿지 않았다.

그녀를 향해서 달려갔지만 거리가 좁혀지지 않았다.

제길..제길..

“!!!!!!”

눈을 뜬다. 창문 앞에 앉아서 잠을 자버린 모양이다.

..그보다 시간은?!

 

1158..

남은 시간은 2분이다.

 

그렇게 나는 창밖을 내다보았다. 그것은 우연이었을까. 지금 내 눈 앞에 그 소녀가 걸어가고 있는 소녀는 그때와 아무런 변함이 없어 보이는 착각은 몇 년의 세월이 흘러도 그때와 다름없는 작은 소녀의 몸을 하고 있는

저것은 환상인가?

저것은 거짓인가?

나는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건가?

아니, 이것은 현실이다. 진실이다. 지금 그녀가 내 눈 앞에 지나가고 있다. 어찌됐든 남은 시간은 2, 12시가 지나버리면 그녀는 사라진다. 왠지 모르게 그렇다는 예감이 들었다.

후닷!!

"기다려!!!!“

그렇게 나는 다급하게 방을 나가고 신발을 신고서 뛰쳐나갔다. 내가 왜 이렇게 까지 그녀에게 집착을 하는지는 모른다. 단지 나는 이렇게 해야만 한다는 그런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단지..

내가 그녀를 만나고 싶으니까..

후다다다다다다!!

"기다려!!"

터벅..터벅..터벅..

저 앞에서 흑발을 휘날리며 걸어가는 소녀는 아직 내말을 듣지 못했는지 계속 앞을 향해 걸어갔다.

기다려!!!"

 

소녀는 걷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달리고 있는 나는 그 소녀를 따라 잡을 수 없었다. 달리면 달릴수록 마음이 급해질 뿐이었다. 제길, 이렇게 그녀가 멀리 있었단 말인가!

다다다닷!

마치 밤하늘에 떠오르는 달을 쫓아가는 것처럼 가까워지지 않는 그녀를 보고 나는 몇 번이고 외쳤다.

그리고 소녀는 그때와 같이 내 눈 앞에서 사라졌다.

....”

공원에 있는 시계에서 12시를 알리는 종이 울린다. , 땡 하고 12번 울리고 있었다. 마치 신데렐라처럼 12시가 되자 나의 눈앞에서 사라지고 없었다. 한숨을 내쉬며 공원 근처의 벤치에 앉아서 휴식을 취하였다.

, 도대체 나는 뭐하는 건지.”

나는 환각을 본 것인가. 애초에 왜 내가 그 소녀를 기다리고 있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차라리 정신병원에 상담 해보는 게 나을까나……

낙심 하고 있는 사이에 나의 귓가에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

너 여기서 뭐하고 있어? 이런 늦은 밤에

그런 너야말로

지금 내 앞에 서있는 이 소녀는 김주연 이라고 해서 같은 반에 소속되어있는 클래스메이트 이다. 성적은 보통에 주변이 많이 의지하는 그런 스타일이라서 반에도 인기가 많다.

김주연은 여전히 고유의 한숨을 내쉬며 손에 들고 있는 것을 보여주면서 말했다.

부모님의 심부름이지 뭐겠니?”

, 그러셔

종이봉투에 든 것이 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굳이 내가 알 필요는 없는 거고 그녀도 크게 신경 쓰지는 않았다. 김주연은 방금했던 질문을 다시 되풀이해서 질문해왔다.

그나저나 너 여기서 뭐하고 있어? 이런 늦은 밤에 혼자서 이런 아무도 없는 공원 벤치에 앉아서 말이야.”

그냥 집에 있기 너무 심심해서 말이야, 잠도 안 오고


흐응.. 그래?”

잠시 옆에 앉아도 될까? 라는 그녀의 물음에 괜찮다며 내가 수긍하자 그녀는 옆에 살포시 앉는다. 나는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김주연에게 말을 걸었다.

너는 크리스마스 선물 뭐가 좋아?”

..크리스마스 선물?”

갑작스러운 질문에 당황하는 주연이었다.

무리도 아니다. 벌써 1225일 크리스마스는 이미 이번 12시를 경계로 하여 지나버렸고 이미 1226일이 되어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녀는 진지하게 생각하더니 나의 물음에 오히려 역으로 질문해왔다.

그런 너는 뭐가 좋은데?”

?..”

그래, 크리스마스 선물은 뭐가 좋겠냐고

없어..그딴거

굳이 말한다면 말이야. 솔직히 인간이라면 뭔가 원하는 거 하나쯤은 있을 거 아냐

나는 망설였다.

인간이라면 그녀말대로 원하는 거 하나쯤은 있기 마련이다. 분명히 나의 마음속에도 내가 원하는 무언가가 존재한다.

하지만 나는 나 자신의 마음을 모르겠다.

나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조차 알 수가 없다.

뭐 지금 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천천히 생각해도 나쁠 건 없겠지. 크리스마스는 이번 한번뿐만이 아니니까

벤치위에서 풀썩 하고 일어서더니, 이쪽을 향해 획 돌아본다. 시계를 보고 시간을 확인하는 상당히 늦은 시간이라는 것을 깨달고 주연이는 가볍게 인사를 하고서 집을 향해 길을 떠나버린다.

“...그럼 나도 집에 들어 갈까나.”

그것이 2005년의 크리스마스였다.

 

 

20151225...

 

고등학교 2년생이 된 나는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꽤나 바쁜 삶을 지내고 있다. 인문계 학교로 들어와서 매일 저녁 9시에 하교하고 늦게 집에 들어와서 1시간가량의 시간동안 컴퓨터를 하다가 잠을 자는 이런 동일한 패턴의 매일이 반복되는 재미없는 삶을 나는 살고 있었다.

나는 결심했다. 그 소녀에 대해서 더 이상 신경 쓰지 말자고.

더 이상 내가 그 소녀에 대해서 신경써봤자 좋을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그래, 그것은 환상이니까.

 

모처럼의 휴일에 책상 앞에서 책을 펼치고 앉아 공부하기를 5시간째, 슬슬 눈이 지쳐오기 시작한다. 언제나 365일 긴장을 풀지 않고 공부를 꾸준하게 해둬야 시험을 잘 쳐서 좋은 대학에 갈 수 있다. 그래야만이 좋은 대학에 가서 어머니를 좀 더 편하게 해줄 수 있다. 지금 현제 이 집안에 있는 것은 나뿐이다.

아버지는 내가 중학교 3학년 크리스마스 날에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시다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시고, 어머님과 둘이서 살고 있다.

나는 잊지 않았다.

그때 아버지께서 병원에 실려 가실 때 어머님과 나에게 해주신 말씀을…….

화해의 뜻으로 크리스마스 선물을 몇 년 전에 준비 했는데. 아직까지 찾지 못했구나. 미안하다.”

아버지의 말에 슬픔을 감추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시는 어머니와 상냥하게 웃으시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슬프다가 보다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서로에게 관심 따윈 없었다.

그저 같은 집에 살고 같은 가족이라는 설정 하에 있는 자동인형 일뿐이었다. 하지만 그런 아버지가 잃어버린 크리스마스 선물을 찾고 계신다는 그 사실을 알고서 나는 난생 처음으로 눈물을 흘려버렸다.

병실에서 어머니는 아버지의 손을 잡고 말씀하셨다.

몇 년 전에 잃어버린 크리스마스 선물 따위 이제 잊으세요, 저희는 당신의 사랑이라는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았으니까요

얼마만 이었을까, 저렇게 어머니가 아버지를 향해서 따뜻하고 상냥한 미소를 짓던 것이. 그 모습이 아버지에게 있어서 얼마나 아름답게 보였을까.

그렇게 어머님의 미소와 나의 쓴웃음을 마지막으로 아버지는 조용히 눈을 감으셨다.

어째서 아버지가 몇 년 전에 잃어버린 크리스마스 선물에 그토록 집착을 하셨는지는 모른다. 다른 선물을 사서 주시면 되는데 어째서 그러셨는지…….

휴대폰에서 벨이 울려온다. 발신자를 확인하니 휴대폰의 액자에는 김주연이라는 이름이 떠있었다. 나는 버튼을 누르고서 전화를 받았다.

주연아 왜?”

, 설마 나 혹시 방해 한 거야? 공부하고 있었어?”

아니, 그런 건 아니야. 휴일인데 5시간동안 공부하니까 학교에서 하는 것보다 너무 빡세서 말이야 잠시 쉬려고 하고 있었어.”

그래?”

..”

나 사랑해?”

, 사랑해.”

우리 연인 맞지?”

그래, 연인이야. 너는 나의 여자이고 나는 너의 남자야

그렇구나..”

휴대폰 너머로 들려오는 안심이 어린 목소리, 주연이와는 고등학교에 들어와서 고백을 받았다. 당시 많이 힘들었던 나는 마음의 쉼터를 원하여 주연이와 사귀게 되었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주연이의 존재는 나의 마음속에서 점점 커져갔다.

그 순간 이었다. 나의 머릿속에 그리운 목소리가 울려 퍼진 것은

내가 크리스마스 선물을 줄까?’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잊으려고 했던 과거가 기억난다.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잊으려고 했던 소녀가 기억난다.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나는..

 

“!!!! 잠시만 기다려줘!!”

바깥을 지나가는 그때의 그 소녀를 향해 뛰어 가고 있었다. 휴대폰을 내팽겨 치고서 두껍게 옷을 갈아입을 여유도 없이.

정신 따위도 챙길 시간 없이 미친 듯이 달렸다.

 

저 소녀는 도대체 무엇인가.

 

어째서 그때와 다름없는 작은 소녀의 모습을 계속 하고 있는 건가!

그리고 나는 저 소녀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 건가!

나는 자신의 마음을 확인하기 위해서 저 소녀에게 아무런 이유도 없이 마법에 이끌리는 듯 하게 뛰어갔다.

다다다닷!

그때와 같다. 눈이 내리고 있다. 마치 나에게 빨려 들어오듯이 눈들이 이쪽을 향해 날아온다.

그때와 같이 거리가 좁혀지지 않는다. 분명 저 소녀는 걷고 있을 텐데도 불구하고 전혀 좁혀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어째서?

어째서?..

이렇게 저 소녀는 멀리 있었단 말인가.

기다려줘!! 제발!!"

 

"........."

 

역시 내말은 들리지 않는 건가. 저 소녀는 도대체 나에게 무슨 말이 하고 싶었던 걸까.

 

크리스마스 선물은 뭐가 좋겠어?’

 

그 말의 의미는 도대체 무엇이란 말이야!

도대체 너는 나에게 무엇을 바라는 거야!

 

마치 귀신을 쫓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이렇게 전력으로 달렸는데도 불구하고 좁혀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포기 하지 않았다.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다리를 움직였다.

필사적으로 그녀를 향해 나는 손을 뻗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조금만!!

조금만 더!!!!!

 

그리고

나는 소녀의 어깨를 잡았다.

!..

..”

하아..하아.. 드디어 잡았다.”

소녀는 나를 향해 흑발의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돌아보았다. 새하얀 피부와 아름다운 갈색의 눈동자가 나의 시선을 매료시켰다. 창가에서 바라보는 그녀와는 조금 다른 분위기. 숨을 고르고서 나는 천천히 소녀를 향해서 말을 걸었다.

왜 맨 날 나에게 말을 거는 거지?”

크리스마스 선물..”

그 크리스마스 선물이 뭐란 말인데. 어째서 나에게 그런걸. 묻는 건데

내가 크리스마스 선물을 줄게

?.......”

그때와 똑같은 질문 이었다. 신비하게도 그녀는 나의 바로 앞에 있을 텐데도 불구하고 나의 머릿속에 그대로 울려왔다.

신비롭고 아름다운 목소리.

그리고 소녀는 빨간 입술을 움직이며 말했다.

크리스마스 선물을 주고 싶었으니까.”

 

크리스마스 선물이라니..”

그 소녀는 주머니에 갑자기 손을 놓더니 주머니 안에서 무언가를 꺼내들고서 나에게 내밀었다. 소녀가 내민 것은 어떤 수첩 같은 것이었다.

..이것은?”

일기장.”

..일기장? 누구의?!”

의사 선생님의 일기장

?!”

어째서 그 의사선생님의 일기장을 나에게.

의심 쩍인 면이 있었지만 나는 망설임 없이 그 일기장 안의 내용을 살펴보았다. 그 안의 첫 내용은 이러하였다.

 

20051225

 

오늘 아내와 크게 싸워버렸다. 화해를 하지 못하고 마치 서로가 안 보이는 듯이 행동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이렇게 싸우게 된 원인은 간단했다.

내가 너무 가족에게 관심이 없다는 것이었다. 평소에 무뚝뚝한 내가 늦게 집에 들어와서는 밥을 먹고 잠을 자 버리는 게 전부니까 불만이 쌓여버린 모양이다.

나 참..모처럼의 크리스마스 인데 이렇게 까지 싸워야 하는지..

하지만 그렇게 호탕하게 싸우고 나서 뒤늦게 후회했다. 설마 이렇게 될 줄은.

그 뒤로 아무리 말해도 그녀는 나의 말에 믿어 주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오늘부터 이 일기장을 써내러 가기로 했다.

 

그 일기장은 1997년 크리스마스를 시작으로 하여 매일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적혀있었다. 그리고 맨 뒷 페이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20081224

 

곳 있으면 크리스마스이다. 나는 이날을 위해서 여태까지 꾸준하게 매일 일기를 써왔다.

나에게는 따뜻한 가족이 있지만. 그 가족과는 사이가 좋지 않다.

이제 초등학교 고학년이 된 아들과 예쁜 아내는 나에게 관심을 가져 주지 않았고 나도 두 사람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이런 것을 원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이 일기장을 준비해왔다.

 

무엇보다 나의 진실 여린 마음을 보여주기 위하여

나는 두 사람을 사랑한다는 나의 마음을 알려주기 위하여.

이 마음만큼은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주렴. 이 초라한 일기장이 크리스마스 선물이라니 정말 하찮을 지도 모르지만.

 

여보, 아들아 나는 너희들을 진심으로 사랑한단다.

 

시야가 흐려진다. 일기장에 뜨거운 물이 떨어진다.

일기장을 꾹 손에 쥐고서 나는 호통 하고 있었다.

아버지.......크으윽!”

고작..고작 이런 일기장을 위해서 몇 년 동안 찾아 다니셨던 겁니까!

다른 선물 주시면 될 텐데 어째서 이런 일기장을 위해서!!

선생님은 상냥했어.”

상냥하게 소녀는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나는 소녀를 향해 고개를 들었다.

아버지가?”

, 병원에서 얼마나 나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주셨는데. 그때 선생님이 이걸 놔두고 가셔서 정말 곤란했어.”

..그래

그래서 나는 찾아 다녔어.”

찾아다닌 거야?”

나는 1225일에만 나올 수 있거든

어째서일까, 나는 저 소녀와 아는 사이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무언가 이상한 영상은, 머릿속에서 흘러 들어오는 영상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이야!

이것은 나의 기억 나의 행복 했던 시간.”

소녀는 병실에 누워있었다.

한 의사가 나타났다.

의사는 너무나도 상냥하고 따뜻했다. 그의 이야기는 너무나도 따뜻했다.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의 이야기가 가득한 상냥한 이야기. 하지만 어느 날부터인가 의사는 말했다.

 

아내와 크게 싸워서 화해를 하고 싶어

 

라고.. 그리고 소녀는 의사에게 말했다.

 

그럼 마음을 담음 일기장을 전해 주는 건 어때요?’

 

그것이 계기였다. 의사가 열심히 일기장을 쓰기 시작한 것은.

그러던 어느 날 소녀는 병이 심해져서 수술을 받게 되었다. 의사는 그 소녀를 살리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수술에 임했다. 하지만 소녀를 살리지 못했다.

절망에 빠진 의사는 슬픔에 이기지 못하고 술을 마시다가 소중한 크리스마스 선물을 잃어 버렸다.

 

그리고 그 잃어버린 일기장을 손에든 소녀의 영혼은 지금까지 떠돌게 되었다.

 

흘러나오는 눈물을 훔치며 나는 소녀에게 말했다.

한번이라도 좋으니까 나의 질문에 대답해줘.”

“.........”

떨리는 목소리로 나는 소녀를 향해 외쳤다. 소녀는 나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더니,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더 이상 시간이 없어, 그리고 나는 너의 질문에 답 해줄 수 없을 거야.”

..큰일이다! 곳 있으면 12시가 된다. 5초만 있으면 크리스마스가 끝나버린다!

12시가 넘으면 저 소녀는!

..잠시만! 무슨 말이야!! "

 

5

 

갑자기 소녀가 흐려져 간다.

제길! 갑자기 왜?! !!

 

내말에 대답해줘! 어째서! 어째서 안 되는 거야! 내 질문에 대답해줘!

 

4.......

 

 

나는 더 이상 이 세상에 머물러 있을 수 없어 이제 내가 할 일은 끝났으니까.”

 

너는! 너는 어째서! 이렇게 까지 하는 거야!!”

 

3....

점점 사라지는 소녀.

그런 와중에 소녀는 마지막으로 밝게 미소를 지으며 나에게 아름다운 목소리를 울렸다.

 

2....

 

나에게 즐거운 추억을 주셨으니까 그것에 대한 작은 보답이야. 최소한 선생님이 보내지 못한 마지막 선물을 준 것뿐이니까.”

 

그리고 소녀는 나의 눈앞에서

 

1...........

 

일기장만을 나의 손에 남기고 영원히 사라졌다.

“............”

눈물이 볼을 타고 내려와 눈으로 쌓인 바닥에 낙하했다.

정말 저 소녀는 이걸로 만족했던 것일까. 나는 그런 의문을 품었지만 마지막에 보여준 그 미소를 다시 생각하며 그런 의문을 버렸다. 그녀는 분명 아버지와 함께 있었던 시간이 행복했을 테니까.

한지우, 너 뭐해?”

..주연아

뒤에서 들려오는 주연이의 목소리에 나는 눈물을 닦지도 못하고 뒤를 돌아본다. 거칠게 숨을 몰아쉬고 머리카락이 엉클어져 있는 모습을 보아하니 쉬지도 않고 뛰어온 모양이다.

..뛰어왔니?”

....아니..갑자기 전화를 내팽개치고 대답도 안하니까 걱정돼서, 그나저나 너 무슨일 있어? 왜 울고 있어?”

..흐하하..아무것도 아냐, 단지 아버지가 이렇게 우리가족을 사랑하고 있었다고 생각하니 너무 가슴이 아파서.”

“........괜찮아, 너희 아버지는 지금 천국에서 행복하게 지내고 계실거야

상냥하게 주연이가 나를 안아주자, 어째서일까. 무지 편안한 마음에 눈물이 미친 듯이 쏟아져서 호통하고 싶은 이유가..

울고 싶을 땐 울어..아무도 흉보지 않으니까 이곳에는 너와 나뿐이니까

..흐윽!! 흐윽!! 흐으으으윽!”

어느새 인가 비처럼 내려오던 눈이 그쳐있었고, 겨울에 어울리지 않는 따뜻한 바람이 불어왔다. 주연이의 품안에서 나는 눈이 부을 정도로 울었고, 나의 울음소리는 밤하늘에 울려 퍼졌다.

 

오랜 세월 동안 지내온 창가에서 지내는 크리스마스는

 

이번이 마지막이 되었다.

 

----------------------------------


응모자: 현창민

이메일: yzvvxkr@naver.com

연락처: 010-6715-16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