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자위(自慰)를 시작했다

by 비행기 posted May 24,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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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자위(自慰)를 시작했다

 

물줄기를 맞은 유리창이 흘러내린다. 수만 개의 물방울들이 오래된 먼지를 안고 낙수하는 풍경이 오마쥬처럼 보인다. 호스 끝으로 오래된 욕구를 분출하는 듯 뿜어져 나오는 수돗물에 씻겨져 봄은 나른함을 씻고 햇살을 품은 이슬들이 유리창에 무늬를 만들었다.

- 서훈아, 전화 왔어

가계부를 쓰느라 사장은 자신의 고개를 들 정신조차 없는 것 같다. 6개월 째 매출이 줄고 있다며 닷새 전부터 그는 내게 눈치를 주기 시작했다. 내가 카페 바닥을 걸레질 할 때 먼지털이로 쓸데없이 보이지도 않는 먼지를 털며 이 놈의 카페, 접든지 해야지.’ 하며 툴툴거리는가 하면 화장실 변기 청소를 하는데 타이밍을 맞춰 오줌을 누러 화장실에 들어와 큰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나는 그가 나를 해고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는 내 머리 위에 걸린 메뉴판에 써 있는 30가지가 넘는 커피 메뉴 중에 제대로 만들 수 있는 것이 채 5개가 되지 않는다. 그리고 내 후임 직원을 뽑았다가 자신의 등쌀에 밀쳐 한 달도 안 돼 그 직원이 앞치마를 벗고 가게를 나가는 걸 본 이후 새로 사람을 뽑는 것을 두려워했다. 무엇보다도 카페에 사람이 없어 자신의 골프 약속에 펑크 나는 것을 극도로 질색하는 사람이었다. 최근 들어 그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 대신에 나에게 직무를 하나 더 추가하기로 결정한 듯 틈이 날 때마다 카페를 홍보할 수 있는 좋은 아이디어를 생각해 보라고 한다. 내가 이력서에서 적어낸 마케팅 관련 공모전 수상 경력을 그가 상기한 모양이다. 블로그나 트위터 같은 것을 이용하면 되지 않겠냐는 나의 제안은 그런 식으로 성의 없게 일을 하지 말라는 잔소리로 묵살되었고 뭔가 그럴 듯하고 어메이징한 기획안을 자신에게 가져다 주기를 바라는 말투로 나의 휴식 시간까지 껴들어 자신이 원하는 홍보 컨셉에 대해 설명하곤 했다.

 

- , 여보세요.

 

- 진서훈씨? 윤수화라고 합니다.

 

윤수화? 들어본 적이 없는 이름이다. 생각을 되뇌어 그녀의 이름을 나의 기억 속에서 찾으려고 한다. 순간 그녀가 부가적으로 말을 붙였다.

 

- 이해준씨 아시죠?

나는 그녀가 해준의 전 부인이라는 걸 직감했다. 해준의 부모님은 일찍이 돌아가셨고 그녀의 목소리는 해준의 이모 같은 친척의 관계, 쉽게 말하면 우호적인 관계에 있는 사람의 목소리가 아니라는 듯 신경질적이고 거만했다. 그녀는 내게 3시까지 자기의 집으로 와줄 수 있겠냐고 물었다. 그녀가 얼굴 한 번 보지 못한 나에게 무슨 볼일이 있는 것일까? 하지만 나는 그녀의 얼굴을 보고 싶었다. 나는 선뜻 알았다고 대답을 했고 그녀에게 집 주소를 가르쳐 달라고 했다.

 

 

택시를 타고 한참을 갔다. 그녀의 집 주소와 인접한 지하철역까지 지하철을 타고 가서 택시로 갈아탈 수 있었지만 나는 해준을 생각하고 싶었다. 어떤 택시 기사들은 내가 심심하지 않도록 나의 춘추를 묻거나 무슨 일을 하냐고 물어서 번번이 나를 귀찮게 했는데 다행히 이 택시의 기사는 내게 아무런 질문도 하지 않았다.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시간을 정한다는 것은 웃긴 일이었지만 나는 내 자신을 위로하는 시간도 필요한 사람이었으며 죽은 자보다는 산 자의 삶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살아 왔다.

택시를 내리자마자 내 눈에 보인 것은 담장을 넘어 가지를 길게 구부린 개나리들이었다. 부자들이 산다는 집의 이미지는 며느리를 시도 때도 없이 구박하는 시어머니가 나오는 아침 드라마를 통해 이미 눈에 많이 익혀놓아서 놀랄 것이 없었지만 남편이 죽은 지 3개월 만에 결혼을 하고도 궁전 같은 집에서 히히거리면서 사는 윤수화를 상상하니 도대체 그녀가 어떤 사람이고 어떤 이유로 해준과 결혼을 했었는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그녀는 시퍼런 루비 액세서리를 한 아주 파렴치한 여자일 것이며 포켓몬스터에 나오는 페르시안 고양이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재수없는 미소를 짓는 늙은 귀부인의 얼굴을 하고 있을 것이라고 나는 대문 앞에서부터 초인종을 누르는 그 짧은 시간 동안 그녀의 모습을 상상하고 조롱했다.

 

윤수화의 흰색 블라우스는 너무도 위선적인 광채를 내뿜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인상을 찡그렸다. 그녀는 삐딱하게 기운 얼굴로 질문을 계속했다.

 

- 당신이 결혼을 안 한 이유가 그거 아니에요?

 

그녀가 한 쪽 입술을 올리며 말했다. 독을 머금은 듯한 윤수화의 입술은 그녀의 흰 피부와 대조되었다.

갑자기 뱀파이어로 변신해 내 목을 이빨로 뜯어 버릴 것만 같은 위협감이 그녀에게서 느껴졌다.

 

- 제 성취향이 어떻든 그게 댁과 무슨 상관이죠?

 

나는 그녀에게 쏘아붙이며 말했다. 그리고 이 역겨운 대화를 마칠 마지막 말을 생각해냈다.

- 당신 같은 여자하고 결혼할 바에야 차라리 성취향을 바꿔보는 것도 좋을 것 같네요.

 

그녀가 깔깔거리며 웃더니 양손으로 파마를 한 머리를 만지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 요가 갈 시간이에요.

 

나는 아쉬울 것 없다는 듯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니스칠을 여러 번해서 미끄러질 듯한 거실을 눈으로 대충 훓고서 그녀의 삶에 대한 평가의 의미로 한숨을 크게 내 쉬고는 그녀의 집에서 나왔다.

정원 한 쪽 끝에 파여진 연못에 오줌을 싸고 도망갈까.’ 라는 생각도 했지만 죄 없는 잉어들의 목숨을 앗아가는 것이 마음에 걸려 그냥 나왔다.

 

 

해준이 죽은 뒤, 윤수화는 그녀의 볼품 없는 가슴이 드러나는 야한 드레스를 입고 재혼했다. 돈이 많은 그녀에게 올 남자는 이 세상에 많을 것이다. 역겨운 바디 샴푸 냄새를 참는 것이 고역이겠지만 그녀가 가진 재산의 규모를 고려할 때 그건 먹기 싫은 반찬을 한 번 집어 먹는 것보다 쉬운 일일 것이다. 그녀가 다시 날 부른 건 내가 해준과 동성 연인 사이였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그녀의 속셈은 동성 연인인 나를 검찰에 넘기고 그녀의 결혼 생활이 비극적으로 끝난 원인을 나에게 모두 돌리려는 것이었다. 그녀는 해준의 죽음에 대해 무감각했다. 그녀와 대면하고 나서 그녀가 내뱉은 첫 마디는 나도 그 남자의 죽음에 대해 안타깝게 생각해요.’ 였지만 나는 그것을 믿지 않았다. 해준도 그 시건방진 여자가 자신을 안타까워한다는 것을 기분 좋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 뻔했으므로 그녀가 해준에 대해 향수 따위를 갖지 않는 것이 해준을 위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지구의 나이에 비하면 사람의 인생도 하루살이처럼 짧은데 자신의 삶에 대해 너무도 심각하게 고민하는 사람들을 보면 정말 할 일이 없는 사람들이라고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살면서 버스를 타고 가는데 이번 정류장은 어디입니다.’ 이 소리가 너무 듣기 싫을 때가 종종 있다. 전화벨 소리는 돈을 내면 언제든지 바꿀 수 있기라도 하지. 버스에서 나오는 안내 멘트는 내 마음대로 바꿀 수도 없다.

몸이 건조한 날이면 도덕이든 윤리든 다 제쳐두고 쭉쭉빵빵한 여자, 아니 여자들이랑 방 안에 신음이 쩌렁쩌렁 울리도록 섹스를 하고 싶을 때가 있다. 성욕이 치밀어 올라서가 아니라 단조로운 연못 같은 인생에 돌을 던져 파장을 일으키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세상에는 법칙이란 게 있다. 법칙이란 말보다 무서운 법이란 게 있다. 법의 테두리 안에서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아니 벌금을 내고 감옥에 가지 않기 위해 법을 준수하며 살아가야 한다. 그것만이면 다행이지만, 사람은 성공을 하고 싶고 다른 사람에게 박수 갈채를 받고 싶고 명예를 얻고 싶어한다.

 

인생은 복합쇼핑몰 같은 것이다......

 

 

해준의 죽음은 나에게 슬픔을 생각하게 주었다. 내가 슬픔을 느꼈다고 말하지 않는 건 나는 그의 죽음을 슬퍼하며 눈물을 뚝뚝 흘려보기는 커녕 눈동자에 눈물을 머금어 본 적도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그의 죽음에 대해 무감각했다는 것은 아니다. 그의 죽음 이후로. 내 기억 속에서 꺼내 그를 억지로 꺼내 슬픈 시를 짓는 등의 적극적인 추모 행위는 하지 않았지만 내 마음 어딘가에서 그는 분명 샘솟고 있다. 다만 나는 나의 샘솟는 감정에 온천을 건설하는 등 내 감정을 활용하는 일에 소극적이었을 뿐이다.

사람의 죽음을 은은한 아련함으로 남기는 것이 가능한 가에 대한 질문에 나의 대답은 그렇다.’ . 물론 그것을 가능하게 했던 건 그가 남긴 편지의 영향이 크다.

편지 속에서 그는 멋진 문체를 사용하지도 그럴듯한 문학적 비유도 상징도 사용하지 않았다. 그의 편지를 객관적인 분석해 볼 때 그의 편지는 그저 자기 불평을 나한테 전달하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힘들어서 너에게 추악한 부탁을 하려 했고 그것은 세상에 대항해 내가 하고 싶었던 실험같은 일들의 하나였다고. 그는 말하고 있었다.

 

 

더운 여름에 어울리지 않게 그는 검은 바바리코트를 걸치고 와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입속에서 잘그락거리는 소리를 내며 얼음을 부수는 소리가 카페에 울렸다. 얼음을 부수는 동안에 그는 창 밖을 한 번 내다보다가 테이블을 보고 한 숨 내쉬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그 패턴의 단조로움을 끊기 위해 중간에 몇 번씩 마주 앉아 있는 나를 쳐다보았다.

IT 회사에서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해준이 점심시간마다 회사 앞에 있는 내가 일하는 카페로 출석한 지가 벌써 7년이나 다 되어 간다. 신입 사원 시절에는 흡연실에 들어가서 연신 담배를 피워가며 거래처 사람들과 통화를 하거나 프레젠테이션 자료에 침을 발라가며 일에 몰두하는 전형적인 비즈니스맨의 모습을 볼 수가 있었다. 일에 대한 그의 열정 때문이었는지 그는 에어콘이 잘 나오는 카페 안에서도 땀을 흘리곤 했다. 어떤 날은 해준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전화 통화를 하는 바람에 손님이 내게 컴플레인을 걸어 왔다. 그는 늘 일에 취한 사람처럼 쉴 새 없이 노트북의 자판을 두드렸고 그런 그를 보며 일주일에 서 너 번씩 놀러 오는 고등학생 조카에게 인생을 저렇게 열심히 살아야 한다.’ 라고 나는 조언을 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1년 전 쯤 대리를 달고부터였을까? 해준은 변해 가고 있었다. 병아리 신입들에게 일을 떠맡긴다 한들 자기 할 일이 있을텐데도 점심시간마다 카페에 찾아와 얼음 들어가는 걸로 아무거나 한 잔 줘하더니 테라스 의자에 축 쳐져서는 오늘처럼 입 속에서 얼음을 깨부수거나 테이블 위에서 담배곽을 돌리다가 엎드려 자곤 했다. 그러다가 점심시간이 20분가량 남을 때쯤이면 카페 옆에 있는 편의점으로 가서 사발면을 들이키고 바지 양쪽에 손을 끼운 채 회사로 돌아가곤 했다. 나의 고등학교 친구이자 해준의 대학 동창인 석주를 통해 듣기로는 해준이 동기들이 부러워할 만한 연봉을 받으며 일을 한다고 들었다. ‘해준이 열심히 일을 하지 않아도 될 만큼 능력 있는 사람인 건가.’ 하며 나는 회사로 돌아가는 그의 뒷모습을 자주 바라보았다. 그것은 고등학교 시절, 시뻘건 머리로 학교를 다니며 열심히 공부를 하지 않은 내 자신에 대한 한탄이면서 해준에 대한 부러움이었다.

 

 

해준과 내가 처음 만난 것은 석주 때문이었다. 석주가 나를 보기 위해 카페로 찾아 왔고 거래처 직원과 얘기하고 있는 해준을 발견했다. 둘은 대학 동창이긴 했지만 절친한 사이는 아니었다. 같은 과이다 보니 얘기를 몇 번 한 적이 있고 같은 수업을 듣기도 했었다지만 석주의 집이 경기도이다 보니 석주는 주로 고등학교 친구들과 어울렸고 그가 먼저 군대를 가는 바람에 1학년 이후로는 만난 적이 없다고 했었다.

오랜 만에 만난 그들은 악수를 하고 전화번호를 주고받았다. 재회 이후 카페에서 만나 3층에 있는 호프집으로 자리를 옮겨 술을 마시곤 했다. 그러나 세 달 쯤 뒤에 석주가 중국 지사로 발령을 받는 바람에 둘의 만남은 단절될 수밖에 없었고 지금은 가끔 문자를 보내는 정도의 사이가 되었다. 물론 석주와 나하고도 석 달에 한 번씩 전화를 할 정도로 왕래가 적어졌다.

 

해준은 카페에서 적지 않은 친구들과 만났다. 그의 훤칠한 외모에 걸맞게 여자 친구들도 안주 많았다. 하지만 해준과 가장 많이 대화하는 사람은 바로 나였다. 그와의 대화 량이 많아진 것은 얼마 되지 않았지만 해준은 석주보다 나랑 대화가 더 잘 통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 무슨 일 있어?

 

나지막한 목소리로 나는 대화를 시도했다.

 

- 아무 일도 없는데, ?

 

힘을 준 그의 시선이 내 눈에 들어왔다.

 

- 힘이 없어 보여서.

 

턱받침을 하고 있는 내 얼굴로 그의 얼굴이 다가왔다. 그는 입가에 주름을 지으며 싱긋 웃더니 손가락 끝으로 나의 눈매를 따라 눈 밑을 그렸다.

 

- 세월은 별 수 없다. 너도 늙네.

 

서른 일곱이면 아주 젊다고 말할 수 없는 나이일 것이다. 이십 대 후반에는 거울을 보며 자체 보톡스 견적을 내느라 바빴는데 마흔에 가까워지기 시작하면서 나이 먹는 것에 대한 오기조차 나지 않는다. 먹고 사는 게 바쁜 이유도 있겠지만 딱히 젊어질 이유가 없었다. 영어 한 마디 못 하는 내가 하버드나 옥스퍼드로 유학을 간다거나 에티오피아로 해외 봉사 활동을 가는 생각을 하는 것도 웃긴 일이고 한참 불어있는 스무살의 몸뚱아리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더욱 없었기 때문이다.

해준이 그의 얼굴을 내게 가까이 했을 때 나는 그의 얼굴에 있는 주름과 기미, 여드름의 흔적을 읽었다. 그리고 그가 빛났던 20대 시절의 얼굴을 상상했다. 해준은 학교에서 학생 회장이었고 과에서 수석으로 졸업해서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에 캐스팅 되었다고 한다. 요즘 신세대 애들 말로 엄친아였다. 공부를 제외하더라도 그는 175cm 정도의 그리 큰 키는 아니지만 운동으로 다부진 몸을 가지고 있었고 매력적인 외꺼풀 눈 때문에 카페에 오는 여자 손님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에 비하면 나는 비정규직 웨이터에 불과하다.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해서 불만을 가져본 적은 없지만, 적어도 이 일이 내가 정말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이라고는 생각해 본 적은 없다. 오래 전에는 넥타이를 목에 조르고 안경을 쓰고 있는 사람들을 보며 나 자신이 하찮게 느껴졌던 적이 많았지만 내 자신이 나의 능력의 한계를 인정한 순간부터는 그런 열등감은 무뎌졌다. 하지만 해준은 내게서 단 한 번도 질투의 대상이 된 적이 없었고 내가 불평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성공한 인물이라며 비난한 적도 없었다. 왜냐하면 그는 내게 대리만족을 가능케 하는 존재였다. 예를 들어 그가 노트북 자판을 두드리고 있을 때면 어느 순간 그의 얼굴이 나의 얼굴로 바뀌어 보였다. 물론 유치한 상상에 불과했지만 한적한 오후를 틈 타 어지럽게 놓여진 서류들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그를 바라보며 하는 상상들은 꽤 재미가 있었고 어떤 때는 낭만적이기까지 했다.

- 오늘 우리 집에 올래?

 

그가 제안을 했다. 나는 한 번도 그의 집에 가본 적이 없다. 물론 가정이 있는 집에 드나들 이유도 없었고 그의 집은 나의 집과 반대쪽 동네에 있었다. 그는 얼굴을 긁으며 내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 제수 씨는?

 

- 친정에 있어.

 

나는 그를 웃게 하기 위해 한 마디를 던졌다.

 

- 밥 차려달라는 얘기야?

 

그가 웃음을 터뜨렸다. 장대비가 쏟아져 옷이 젖을까봐 비가 그치기를 기다릴 때나 해준에게 서류 무더기들이 쏟아져 야근을 해야 할 때면 나는 그와 카페에서 밥을 지어 먹었다. 카페를 마감하고 커튼을 모두 내린 후 냉장고에서 줄줄이 소시지를 꺼내 후라이팬에 굽고 편의점에서 작은 팩에 든 김치를 사와서 밥을 먹었다.

 

- 오늘은 시켜 먹자.

 

나는 컨디션이 안 좋아 그의 초대를 거절하고 싶었지만 원룸으로 돌아가 밥을 안 해도 된다는 사실에 기뻐하며 동의를 했다.

손님이 없었던 터라 카페를 일찍 문 닫았다. 물론 내가 카페 주인이 아니기 때문에 영업 시간을 마음대로 해서는 안 되지만 카페 사장은 발리로 해외 여행 중이고 겨우 40분 정도를 앞당겨 가게 문을 닫았기 때문에 양심에 큰 가책이 들지는 않았다. 가게의 경비 장치에 보안을 거는 동안 해준의 자동차가 가게 앞으로 도착했다.

커피를 테이크아웃 하기 위해 가게 앞에 차를 세울 때 그의 자동차를 본 적은 몇 번 있었지만 타 본 적은 이번이 처음이다. 에쿠스 신형은 내가 별로 좋아하는 디자인은 아니었지만, 밤에 타보니 나름 운치가 있고 역시나 비싼 차가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부드럽게 운전을 했다.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떠올리게 하는 그의 향수 냄새가 차 안에 퍼져 있었다. 그는 아무 말이 없었다. 조금 졸려 보이긴 했지만 절제된 미소로 핸들을 돌리는 그에게서 판타스틱4’ 라는 영화에 나오는 여주인공의 필살기인 보호막 같은 것이 쳐져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30분 쯤이 지나자 음산한 기분이 들었다. 공포 영화를 봤을 때의 그런 음산함과는 달리 차가운 다이아몬드로 박혀 있는 동굴에 온 듯한 음산함이었다.

 

- 이 동네였어?

 

나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면서 그에게 물었다.

 

- 이사한 지 얼마 안 됐어.

 

그가 살고 있는 아파트 단지는 화려했다. 조각상으로 물을 뿌리고 있는 분수대가 있고 전조등에 발광하는 꽃들이 심어져 있었다. 평행 이론을 거부하는 듯이 세워진 아파트 단지 속으로 해준의 차가 경비실을 지났다. 나는 그에게 이런 아파트들은 매매로 얼마 정도 해?’ 라고 물어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지만 어차피 내가 살 수도 없을 아파트들에 대한 헛된 꿈을 가질까봐 나는 질문하는 것을 꾹 참았다.

 

- 집 좋은데? 그런데 대리 월급 치고는 너무 과하지 않냐?

 

나는 차에서 내려 팔꿈치로 그의 배를 살짝 치며 물었다.

 

- 10년 치 대리 월급으로도 이 집 못 사.

해준이 차에 기대어 담배에 불을 붙였다. 담배를 빨아들이고 내뱉는 첫 숨이 어찌나 길었던지 나도 덩달아 한 숨을 내쉬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36층으로 갔다. 해준의 집 대문을 열자 내 원룸만한 신발장이 나왔다. 그리고 우리를 기다렸다는 듯 전등이 환하게 켜졌다. 그런데 이상했다. 신발장에는 해준의 구두로 보이는 두 켤레 말고 다른 신발은 없었다.

 

- 슬리퍼 신고 들어와.

 

그는 먼저 집 안으로 들어가더니 거실에 불을 켰다. 해준의 큰 집으로 들어가는 과정이 나에게는 신세계를 보는 듯 했다. 3D 영화보다도 더 한 어떠한 스릴감과 한편으로는 쾌감이 들었다. 나는 작은 소리로 돈이 좋긴 좋구나.’ 하고 혼잣말을 했다.

 

해준은 어디론가 전화를 걸더니 음식을 주문했다. ‘모듬우동이 들어가는 걸 보니 초밥집인가 보았다. 나는 행여나 비싼 대리석 바닥에 기스가 나지 않을까 조심스레 걸음을 옮겨서 가죽 소파에 앉았다. 통화를 마친 해준도 가죽 소파로 와서 앉았다. 그는 또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떨구었다. 답답한 마음에 나는 해준에게 말을 걸었다.

 

- 제수 씨랑 싸웠어?

 

그가 이를 가는 시늉을 내더니 작은 소리로 라고 대답했다.

 

결혼을 해보지도 않은 내가 부부 문제에 대해 무슨 해결책을 주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나는 해결책을 내놓는 것만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해준에게는 지금 단순히 위로가 필요한 건지도 모르는 것이었다.

 

- 왜 싸웠는데?

 

나는 해준의 대답이 나오기도 전에 말을 이었다.

 

- 부부 싸움은 칼로 물베기라잖아. 나는 잘 모르겠지만, 여자란 복잡한 동물 아니냐? 네가 이해를 하고 설령 제수 씨가 잘못한 게 있더라도 눈 감고 용서해줘.

 

그는 소파 위로 다리를 들어올리더니 무릎에 팔을 얹히고 얼굴을 파묻었다. 그리고 잠시 그는 무릎을 흔들었고 심호흡을 몇 번씩 했다.

 

- 왜 그래?

나는 입 안에 오돌토돌하게 나 있는 살점들을 이로 뜯으며 그의 대답을 기다렸다. 그는 아이돌이 격렬한 춤을 추기 위해 시동을 거는 듯한 정지된 동작을 따라하듯 멈춰 있었다.

 

그렇게 생산적인 움직임 없이 20분 정도가 흐르고 있을 쯤이었다. 나는 밥을 먹고 그의 고민을 들어주려고 했다. ‘그가 가지고 있는 고민이 무엇일까.’ 하며 나는 부부 사이에 있을 수 있는 여러 가지 경우의 수를 생각해보았다.

 

해준의 목이 움직였다.

그리고 그가 나를 지그시 쳐다보았다. 그는 소파에서 일어나더니 벨트를 풀고 바지를 내렸다. 나는 그때까지 그가 옷을 갈아입으려고 그러는 줄 알았다.

 

 

그리고

 

 

팬티를 드러낸 나에게서 시선을 때 딴 곳을 보며 잠시 머뭇거리는 가 싶더니 팬티를 내리고서 자신의 그것을 드러내었다. 그는 내가 놀라지 않게 하기 위한 듯 최대한 소리를 내지 않으며 소파에 다시 앉았다. 하지만 나는 이미 그가 무엇을 하는건지 생각하는 게 불가능할 정도로 머릿속이 하얘졌다.

그의 손과 다리는 격정적으로 떨리고 있었다. 떨리고 있는 것은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그의 동공은 무엇을 봐야 할지 결정을 못 내린 채 눈동자 속에서 요동치고 있었다. 나는 바짓자락을 붙잡은 채 해준의 다음 행동에 대해 대처하기 위해 내 몸의 근육들을 긴장시켰다. 쿵쾅대는 심장 소리가 판단력을 흐리게 할까 봐 두려워 나는 이마에 땀이 맺혔다.

 

 

그가 내 눈을 피한 채로 내 왼손 팔목을 잡았다. 나는 재빨리 그의 손을 뿌리쳤다. 그의 파래진 입술 사이로 나온 말은 꽤나 충격적이었다. 심장에 있는 판막에 피가 걸려 제대로 혈액 순환이 안 되는 듯한 정도의 충격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나는 해준의 성가치관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가 남다른 성가치관을 가졌을 거란 의심을 전혀 하지 않았으며 그의 이미지가 동성애자와 전혀 부합하지 않는 상남자의 모습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두려워졌다. 그의 협박같은 부탁을 거절했다가 그가 갑자기 부엌으로 가서 식칼을 꺼내 나를 찌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나 두려웠지만 나는 눈동자에 힘을 모아서 정신을 집중하려고 애를 쓰고 조심스럽지만 단호한 말투로 말을 했다.

 

- 너 이러면 안 돼.

 

그는 침을 두어 번 삼켰다. 그리고는 자신의 굵은 허벅지를 손으로 쓸어 내렸다 올렸다. 떨리는 그의 목소리가 말을 했다.

 

- 오해는 하지마. 나 그런 거 아니야.

 

- 알아, 나도 그런 거 아닌 거 알아.

 

나는 그를 안심시키기 위해서 그의 아니야라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내 말을 했다. 해준은 눈을 질끈 두 번을 감았다 떴다 하더니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 이번 한 번만 어떻게 안 되겠어......

 

 

그의 눈은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하지만 내 기억 속에 그는 성욕을 풀지 못한 성난 늑대가 아닌 울타리에 갇혀 자유를 호소하는 어린 양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빨간 신호등에 걸려 움직일 줄 모르는 광역 버스와

활주로가 짧아 날지 못하는 비행기

그리고

메말라가는 수면 위로 아가미를 드러내는 물고기들.

욕구가 존재하는 것은 생존을 위한 생명의 본능이다.

 

 

욕구라는 단어 자체가 언제부터 붉은 조명이 달린 안마방에서 여자와 떡을 치거나 대학 등록금을 내기 위해 키스방에서 일하는 대학생들의 기사로 신문과 인터넷에 덮여지면서 그 의미가 악의적인 것으로 변화되고 있다는 사실은 새롭지가 않을 것이다.

성희롱, 성추행, 성폭행의 성립 조건은 일방적인 것이다. 쌍방이 합의 하에 더듬거림이나 신체의 삽입은 애정 표현이 되고 사랑의 과정이 된다. 사람들이 벌거벗고 다니던 석기 시대 때에는 우리가 얼굴을 붉히며 보는 여자의 알몸을 보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었을 것이다. 욕구라는 단어를 언급하는 순간 그것이 추악한 성적인 것으로 연결되게끔 만든 것은 결국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이다.

우리는 퇴폐적인 문화를 만들어 내고 비난하는 위선 행위를 하고 있는 것이다.

 

- 안 되겠는데.

 

나의 목소리는 침착했다. ‘아닌 건 아닌거야.’ 라면서 나는 정신을 차리기 위해 애를 썼다. 해준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소파에서 일어나 자신의 팬티와 바지를 올렸다. 그는 세수를 하는 듯히 얼굴을 쓸어올리더니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 돌아서서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걸음을 옮기는 그의 뒷모습은 쓸쓸하다 못해 액체처럼 흘러내릴 것만 같았다. 마치 구멍이 나 물이 새는 호스처럼 그의 영혼이 일부가 빠져나가고 있는 듯 한 느낌이 들었다.

 

 

띵동

 

 

초인종이 울리자, 나는 부리나케 현관문을 열고 배달원에게 돈을 주었다.

 

- 아저씨, 남은 돈은 가지세요.

 

나는 음식을 가져와 식탁 위에 놓고 해준의 집을 나왔다. 엘리베이터를 타자마자 나는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았다. 버스 정류장까지 걸어가려는 데 도무지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나는 길바닥에 쓰러졌다.

경비 아저씨가 내게 다가와 어디가 아프냐고 물었다. 나는 너무 일을 많이 해서 피곤해서 그렇다고 했다. 콜로 부른 택시가 도착했다. 하지만 나는 중심은커녕 척추를 제대로 세우지도 못하겠다.

결국 나는 경비원 아저씨와 택시 기사의 도움으로 택시를 탔다.

 

 

집으로 가는 길이 너무 길었다. 빨리 이 악몽에서 탈출하고 싶었다. 도대체 해준은 왜 그런 행동을 한 것일까? 기가 막히고 분한 감정들 사이로 해준에 대한 측은함 때문에 눈에 눈물이 맺혔다. 택시 기사는 내가 실연을 당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줄 알고 세상의 절반이 여자다.’ 라며 혼잣말로 궁시렁 거렸다.

하지만 이건 내게 실연보다 더한 고통이었다. 실연보다도 복잡한 일이었다. 내가 행복한 인생을 살고 생각했던 사람에 대한 환상이 무너지는 순간 이었다

.

집에 도착하고 나서 나는 침대에 바로 누웠다. 치욕심과 수치심이 일어 당장이라도 경찰에 신고하고 싶은 마음도 일어났다.

해준의 눈을 보았던 순간이 지워지지 않는다. 유성매직으로 뇌를 색칠한 것처럼 너무나 뚜렷해서 미쳐 버릴 것만 같다.

자신이 독한 고독 속에 지쳐가고 있다고 말하는 그의 눈 때문에 나는 그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지금 내가 당장 그에게 전화를 거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나는 엄연히 성추행 피해자였다. 성폭행 피해자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었던 상황 속에 놓여 있던 심각한 사건 속의 성추행 피해자이다. 나는 그런데도 그에게 소리를 지르거나 욕을 하거나 인격모독적 발언을 한 적도 없었다. 나는 그저 그의 욕구 충족을 위한 봉사를 거절했을 뿐이었다.

 

해준이 자신의 요구를 거부한데 돌변해 식칼로 내 심장을 찌를 수도 있었을 거라는 고통의 상상으로 해준에 대한 증오감을 불러 일으키려고 나는 노력했다. 간신히 잠을 잔다고 노력을 했지만 아직 시간은 새벽 1시도 되지 않았다. ‘해준이 갑자기 내 원룸으로 와서 나에게 해코지를 하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이 순간적으로 든 나는 현관문이 잠겼는지 확인하고 핸드폰에 112를 단축번호 1번으로 저장했다. 하지만 내 마음은 더욱 불안해졌다. 현관문을 잠궜지만 도끼로 창문을 깨고 들어오면 어떡하지라는 불안과 초조함으로 엉킨 나는 후라이팬 위의 병아리처럼 이불 속에서 푸드득거리며 하루를 지새웠다.

 

 

카페에서 나는 내가 먹기 위해 원두를 내린 적도 테이블을 걸레로 닦는 것도 게을리 하지 않은 나름 성실한 남자였다. 카페 일이 아니더라도 나에게 이런 당황스러운 일이 닥쳐올 만큼 잘못한 적은 곱씹어봐도 없다. 철창에 아이를 가두고 나중에 크면 결혼하겠다는 엽기사육죄 사건을 신문에서 본 적이 기억이 났다. 사실 어제 내가 겪은 일도 자극성 기사에 목매다는 기사들에게는 최소 한 달 간의 이슈가 될 사건임이 확실했다.

 

 

해준에게서는 그 날 이후 연락이 없었다. 그가 카페로 찾아오지도 않았다. 나도 그를 만나면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몰라서 그와 당분간 연락이 안 되는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두 달이 흘렀다. 나는 3년 전 지갑을 소매치기 당했을 때 대처했을 때처럼 금방 일상을 회복했다. 사춘기에 접어든 청소년의 일탈들의 목격한 것과 내가 겪은 일은 크게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을 했다.

 

가끔 나는 대리 자위에 대해 인터넷 서치를 했다. ‘대리 자위란 명칭이 맞는 건지도 모른다. 차마 내가 알고 있는 추악한 단어를 언급하고 싶지 않다. 물론 그것은 속어일 것이다. 카페에 있는 노트북에 내가 알고 있는 단어를 입력하는 것은 그 노트북을 더럽히는 일이라 생각을 해서 나는 나의 원룸에서 잠이 안 올때 내 노트북으로 그것에 대해 검색을 했다.

 

 

핸드폰이 울렸다.

휴가를 틈 타 귀국한 석주였다.

 

- 해준이 죽었다며? 너 왜 연락 안 했어?

......

여보세요?

 

 

 

베베 꼬아진 전화선을 타고 손가락이 올라갔다가 내려갔다가 한다. 숨을 한 번 뱉어야 하는데 어떤 시점에 내뱉어야 할지 모르겠다.

 

- , ...따가 전화할게.

 

 

몸에 닭살이 일고 카페에 앉아 있는 손님들이 뿌옇게 보인다.

 

 

- 안녕하세요

 

 

나는 톤을 높여 손님에게 인사를 했다. 가쁘게 뛰는 심장의 리듬을 느리게 하기 위해 가슴에 손을 얹고 침착이라는 단어를 끊임없이 말했다.

겨우 충격이 잠재워 있는 참이었는데 그의 사망 소식이 그의 집에서 있었던 일을 다시 내 머릿속에 불러일으켰다.

 

- 괜찮으세요?

 

들고 있던 커피를 놓치는 바람에 발에 커피를 쏟았다. 분명 뜨거워야 하는데 아무 감각이 없다. ‘심장이 놀라서 발의 감각이 안 느껴지는 거겠지생각을 하면서도 나는 괜히 겁이 나 발가락을 하나 씩 꾹꾹 눌러보며 감각이 살아있나 확인을 했다.

그가 죽었다. 예상치 못한 죽음의 소식이 내게 찾아온 것이다. 그가 활기찬 삶을 쉽게 회복할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나는 그가 강한 남자라고 생각을 했고 땅을 박차고 다시 날아오를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의 인생은 멈췄고 이제 그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한 사람의 인생이 종료되었다.

 

 

그가 바람이 세차게 불어오는 대지의 한 가운데 위태롭게 놓인 촛불이라는 것을 나는 왜 눈치 채지 못했을까?

석주의 전화를 받은 저녁, 죄책감이 각질처럼 일어나 나를 괴롭혔다. 달걀찜을 태우고 라면에 스프를 넣는 것을 잊었다. 저녁을 먹지도 않고 물만 벌컥벌컥 들이켰다. 물을 아무리 마셔도 갈증이 가시지 않았다.

새벽이 되자 고요해졌고 나는 정적이 내 몸을 뱀처럼 휘감고 나를 삼켜버릴 것만 같아 두려워졌다. 나는 집안에 있는 불을 다 키고 샤워기와 부엌의 수도꼭지를 틀어 정적을 밀어내기 위해 애썼다.

 

어둠은 무서웠다. 마치 응고된 검은 혈액들이 하늘에서 뚝뚝 떨어질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의 마음을 분산시킬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노트북을 켜고 검색창에 가슴’, ‘국산이라고 쳐대가며 야한 동영상을 다운 받았다. 하지만 나의 그것은 반응하지 않았다. 축 쳐진 나의 그것은 네가 지금 발기될 때가 아니라는 듯 시위를 벌이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이부자리에서 일어나 대문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는 땀으로 범벅될 때까지 미친 듯이 뛰었다.

 

 

내가 잘못한 것이 아니야.

 

나는 사창가에 들어가 20살도 채 되지 않은 소녀에게 오럴 섹스를 요구하지 않았어

 

나는 팔에 마약이 든 주사기를 찔러가며 쾌락의 밤을 춤추지도 않았어

 

내가 고통 받을 이유는 없는거야

 

 

하루 사이 내 얼굴은 피폐해져 있었다.

새까매진 얼굴을 가리기 위해 나는 중국인 점원들이 호객 행위를 하는 화장품 가게 속으로 들어가 선크림을 고르고 계산을 마치자마자 자외선을 받으면 몸이 타버리는 사람처럼 얼굴에 덕지덕지 선크림을 발랐다.

그리고 가게를 나와서 노점상에 파는 핫바를 세 개나 사서 입안에 틀어넣었다. 내 모습을 본 핫바를 파는 아가씨는 나에게 물을 건네며 천천히 드세요라고 걱정스러운 말투로 내게 말했다.

 

 

생존하기 위해 나는 자위(自慰)를 시작했다.

 

 

카페의 영업 종료 시간을 칼같이 맞춰 문을 닫고 BAR로 갔다. 그리고 양주와 열대 과일이 나오는 비싼 안주를 주문하고 불 쇼를 선보이는 바텐더에게 적지 않은 금액의 팁을 주었다. 술 맛이 맹맹하다. 독한 술을 위에 집어넣어 온 몸을 마비시키고 싶은 욕망이 들어 나는 쉴 틈 없이 술을 마시고 또 마셨다.

 

술을 그렇게 마셨는데도 나는 아침 7시에 눈이 떠졌다. 그것도 아주 자연스럽게. 더 자고 싶었다. 피곤해지기 위해 나는 욕구를 풀기로 결심했다. 노트북을 키고 아주 센 걸로 다운을 받았다. 동영상에 흐르는 살색으로 채워진 영상과 작위적인 신음 소리로는 그것을 세우는 데 역부족이었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추악한 상상을 했다.

그렇게 나는 나의 그것을 일자로 세우고 욕구를 풀기 시작했다.

숨소리가 가빠지고 돌림 노래를 부르는 듯 신음을 냈다.

 

내가 모르던 성욕이 눌러져 있었던 것이었는지 걸쭉한 정액은 멈출 줄 모르고 그것에서부터 흘러나왔다.

 

나는 규칙적인 호흡을 되찾으려 했다.

일을 끝내고 나는 화장실로 가서 찬 물로 얼굴을 씻었다. 그리고 거울 속의 나를 들여다보았다. 어디서 많이 보았던 눈이다. 해준의 눈동자에서 보았던......

 

 

색색조명이 발광하는 모텔에서 불륜을 저지른 사람처럼 자위를 마친 내 마음은 불편했다. 갑자기 감정에 파도가 일었다. 주체할 수 없는 그윽한 슬픔으로 가슴이 젖어들기 시작했다.

 

 

나는 아이처럼 울음을 터뜨렸다.

 

 

눈동자에서는 그 동안 참아왔던 욕구를 사정하듯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밤이 되자 심한 두통이 와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나는 약국으로 가서 진통제를 사 왔다. 새벽에 화장실로 뛰어 가 구토를 하고 빈속을 채우기 위해 쌀죽을 끓여 먹었다.

다음 날은 무단결근을 하고 하루 종일 누워 잤다.

 

해준에 대한 불편한 감정들을 정리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나는 고민 끝에 해준에 대한 감정들에 저항하지 않고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나는 이틀 뒤에서야 카페로 다시 나갔고 사장에게 잘리고 싶냐는 협박이 담긴 잔소리를 2시간이나 들어야 했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내 자신을 약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유니폼의 허리띠를 숨쉬기 불편할 정도까지 꽉 묶고 일에 집중을 했다. 유리창을 닦는 것도 일주일에 세 번에서 다섯 번으로 늘리고 사장이 원하는 컨셉에 따라 마켓팅 기획안을 ppt로작업하기 시작했다. 시간은 흘러갔다.

카페가 한가로운 순간에는 해준의 생각이 났지만 더 이상 괴롭지가 않았다. 그를 밀어낼수록 그가 내 마음에 더 들어오고 싶어한다는 걸 내 머리가 느낀 것인지......

 

주말을 이용해 나는 세정제와 걸레로 집을 말끔히 청소했다. 그리고 자극적인 영화를 보거나 섹시 댄스를 추는 걸그룹 뮤직비디오를 보지 않기로 마음을 먹었다. 구치소에서 나온 사람처럼 나는 내 앞으로의 삶에 대한 새로운 계획을 짜고 즐거운 상상을 하였다. 해준이 내가 가치 있는 삶을 살아가기 바랄 것이라는 상투적인 믿음과 함께 나는 회복되어 가고 있었다.

 

한 달이 지난 어느 날, 검은 가죽 재킷을 입은 건장한 체격 남자 둘이 카페를 찾아왔다.

 

- 진서훈씨 계시나요?

 

- 제가 진서훈입니다.

 

한 남자가 가슴팍에서 경찰 뱃지를 꺼내 내게 보여 주었다.

 

- 이해준 씨와는 어떤 사이시죠?

 

해준을 최근에 만났을 때 해준에게 느낀 이상한 점이 없었냐고 그는 내게 물었다. 하지만 그의 질문은 형식적인 것이었다. 이미 자살이라고 결론을 내리고 확인 차 물어보는 말투임이 분명했다. 해준이 어디서 발견되었느냐고 나는 그에게 물었다. 해준은 자신의 방에서 약물 과다 복용으로 사망했다고 했다.

하지만 그의 얼굴은 편안해 보였다고 한다. 인터넷 기사에서 보았던 선진국에서 안락사로 숨을 거두는 환자처럼......

커피를 마시겠느냐는 나의 물음에 그는 바쁘다고 하며 거절을 하고 그의 동료와 함께 카페를 떠나려고 했다.

 

- ,

 

그는 나에게 서 너번 접은 듯한 A4 용지를 뒷주머니에서 꺼내 나에게 건냈다. 나는 테이블 의자를 꺼내 앉아 종이를 펼쳐 보았다. 만년필로 쓴 낯익은 글씨체로 문장들이 써져 있었다.

첫 문장을 읽고 나는 해준이 나에게 쓴 편지임을 알아챘다.

 

내가 너에게 무슨 짓을 저지른 것이었을까......

 

그가 쓴 둘째 문장은 첫 문장과 Enter5번에서 6번 정도 누르고 쓴 거리만큼 멀리 떨어져 있었다.

 

나는 겁이 난다.

추악한 존재로 기억이 될까

나는 사실 내가 저지른 일에 대한 결과를 예상했었다

하지만

내 자신을 더 이상 찾을 수 없는

세상에 더는 발자국을 남기고 싶지 않다

그래서 나는

적어도 이 세상에 분풀이를 하고

나의 생을 마감하고 싶어

실험을 행했고

그 실험의 대상이 된 게

바로 너였다.

 

네가 만만해서가 아니었다.

널 믿어서였다.

그리고......

 

 

여튼 너에게는 아무 잘못이 없다.

나를 너무 비난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투박한 그의 말투가 생생히 느낌이 느껴져 소름이 끼친다.

나는 그가 나를 정말 좋아하는 친구로 묘사하기를 기대했었다. 하다못해 운율을 느낄 수 있는 형태의 글을 쓴다거나 소설 속에서 나오는 손이 오그라드는 문장 몇 개를 써주었기를 바랐다. 유서의 내용은 심심하다 못해 나에게 섭섭한 기분까지 들게 했다.

문학 작품 같은 예술적인 투영이 담긴 글을 쓰는 것이 죽음을 앞둔 사람들에게 가능할 것인가를 배제하고서도 그가 좀 더 자신의 마음을 얘기했으면 좋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버스를 3번이나 갈아탔다. 생선을 들고 버스를 탄 아주머니 때문에 나는 창을 열었다. 벚꽃잎이 부딪히는 소리는 쌀알들이 부딪히는 소리보다는 여리고 가늘게 들렸다. 고향에 있는 공동묘지로 가는 버스는 항상 녹이 슬어 있어서 음침한 기분이 들었다. 저승사자가 버스 맨 뒷 좌석에 앉아 내 뒤통수를 쳐다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섬뜩함이 느껴졌었다. 그래서 고개를 한두 번 돌려 뒷좌석을 돌아보고는 했었다.

 

해준에게 가는 길에 탄 버스는 생긴 지 얼마 안 되는 노선이어서 그랬는지 버스가 정갈해서 막 출고한 새 차량 같았다.

 

그를 만나러 가는 길이 따뜻하다.

묘자리를 잘 선택한 것 같다.

 

돗자리를 펴고 과일을 깎는다. 바람이 산뜻하게 느껴져 추모를 하러 온 건지 소풍을 나온 건지 긴가민가하다. 작가가 생각 나지 않지만, 누군가 인생은 소풍이란 말을 하지 않았던가? 아이스박스에서 나는 얼음을 꺼내 무덤 주위에 뿌리며 그에게 인사한다. 그가 얼음을 아그작거리며 부수기 위해서 관 안에서 일어나는 상상까지 해본다.

 

- 내가 안 올 동안 얼음 먹고 싶어서 어떻게 참았냐?

 

처음 그를 만나러 올 때는 가슴이 먹먹한 게 있었다. 지하철에 붙어 있는 유방암 증상 중의 하나인 가슴에 멍우리가 만져진다.’ 라는 말이 딱 내가 표현하고 싶은 것이다. 이제는 좀 덜하다. 몇 번만 더 오면 이제 그와 시답지 않은 농담을 주고받을 수도 있을 것만 같다.

턱을 만져보니 제법 수염이 자랐다. ‘이제 정말 내가 늙는구나.’ 라는 것을 규칙성 없이 난 턱 수염을 만지면서 느낀다. 고리타분한 철학 책을 몇 권이나 읽고 새벽에 일어나 청승맞게 일기를 쓰고 논문, 독서 감상문까지 쓰며 나는 내가 감상적인 사람이 되고 내 주위의 사람들의 시선에서 좀 더 감상적인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다. 하지만 그 실천이 요즘 들어 부쩍 힘이 든다. 책 보는 시간보다 대형마트 전단지나 새로 나온 보험 약관과 위약금에 대해서 읽는 시간이 더 늘었다. 체력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나는 더 이상 청춘이 아니었다.

 

산으로 올라올 때와 달리 이상하게 내려가는 발걸음은 양쪽 발에 모래주머니를 달아 놓은 듯 무겁다. 누군가 나를 붙잡고 있는 느낌이 든다. ‘나는 아직 죽고 싶지 않은데.’ 하며 웃기지도 않은 혼잣말을 해 본다. 죽은 사람이 산 사람에게 미련을 가질 수가 있을까? 하긴, 미련은 불가능한 것에 집착하는 헛된 마음이니까 죽은 사람이 하든 산 사람이 하든 상관은 없을 것 같다.

 

죽은 자에게 위로를 받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묻고 싶다. 그건 죽은 자에게 말을 걸고 죽은 자와 부둥켜안고 싶은 마음과 다를 게 없을 것이다. 죽은 자에 대한 미련이야 말로 공상소설 속의 주제 중 하나인 게 아닌가 싶다.

 

밧줄에 목을 매고 자가용에서 연탄을 터뜨려 자살한 사람들이 우리에게 보내는 메시지는 그들이 죽음을 앞두고 정성드레 쓴 것이라 할지라도 산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심심하기 그지 없는 찌끄레기 글에 불과해보일 수도 있다. 물론 처음은 그것을 보며 울부짖고 장례식 바닥을 손으로 내리치며 고인에 대한 예의를 차리곤 하지만 타이타닉을 처음 봤을 때의 감정과 타이타닉을 100번 쯤 봤을 때의 감정이 같기는 어려울 것 같다. 내가 해준처럼 조건 좋은 삶을 사는 것만으로도 행복할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 정도로 생각이 어리지는 않다.

하지만 가끔 카페에 출근하기 싫은 날이면 언제쯤 통장에 목돈이 모여들까 라는 생각을 한다.

 

 

그의 결혼 생활이 행복하지 않았다는 것은 편지를 통해 추측할 수 있다. 석주에게 들은 바로는 해준의 부부가 집안 행사 때문에 장인, 장모댁에 갔는데 해준이 윤수화의 오빠와 싸웠다고 한다. 윤수화의 오빠가 석주의 집안에 대해서 함부로 말을 지껄여 몸싸움이 났는데 장인은 해준에게 먼저 시비를 건 윤수화의 오빠에게 무릎을 꿇고 사죄하라고 하였고 열 받은 그는 윤수화와 살던 집에서 나와 아직 처분하지 않은 그의 오피스텔에서 지내게 되었다고 한다.

해준은 그 때 윤수화와 사는 집에 나를 초대한 것이 아니라 그가 혼자 살고 있는 오피스텔로 나를 초대한 것이었다.

그의 죽음을 철학적 논증 따위로 포장해 이해하는 것은 가능했다. 물론 거기에는 사건 사고 소식에 나오는 보편적이거나 이유가 픽션처럼 묘사되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진정으로 그가 죽음을 선택할 만큼 불행한 나날을 보냈는지에 대해서 나는 잘 모른다.

대단한 여자의 집으로부터 눈 밖에 나지 않기 위해 조상 대대로 지켜오던 자기 할아버지의 땅을 몰래 팔아 오피스텔을 샀다는 게 내가 아는 전부이다.

 

여자에 묶여 사는 남자가 동성을 좋아하게 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얼핏 들은 기억이 난다. 하지만 나는 그럴 가능성에 대해서는 조금도 해준을 의심하지 않는다.

 

추측은 얼마든지 할 수 있고 또 수소문을 통해서 해준의 결혼 생활에 대해서 알 수도 있을 것이지만 나는 그의 결혼 생활에 대해서 알고 싶은 마음이 없다. 또 해준이 죽음을 선택한 것이 결혼 생활에서 비롯되었을 거라는 확신도 없다.

같은 양의 고통을 주어도 누군가는 견뎌내고, 누군가는 좌절할 것이기에 그가 어떤 사건을 겪었는지는 이미 그가 이 세상 사람이 아닌 지금 시점에서 큰 의미를 부여하지 못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사시사철 무의미하게 커피를 끓이는 나의 삶에 대해서도 나는 심도 있게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구름이 흐르는 것에 대해 구름이 흐르는구나.’ 하고 단순하게 생각하면 되지. 그걸 꼭 과학적으로 철학적으로 분석하며 머리 아프게 살 이유는 없지 않는가.

 

 

해준이 나에게 친구 이상의 특별한 감정을 가졌다면 틀림없이 나는 피곤해졌을 것이다. 그건 해준이 남다른 성취향을 가지고 있어서가 아니라 내 인생이 두려울 정도로 낭만적인 인생이 되어갈 게 뻔했기 때문이다. 나는 이성애자로 위장한 동성애자로 스스로를 치부하여 해준의 사랑에 대해 고민을 해야 하고 그를 어떻게 그리워할 것인가를 연역적 방법과 귀납적 방법 등의 온갖 실험적인 시도를 했어야만 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가 자신의 상처받은 영혼을 쓰다듬어 주기를 원해 그가 나의 손을 잡은 것을 알고 있다.

어쩜 그는 단순히 내가 그의 손을 뿌리치지 않을 거라는 확인이 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어디까지나 산 자의 상상에 불과하지만......

 

 

봄이 끝나갈 쯤이면 늘 아쉬움이 든다.

생명의 계절이 끝나면 마치 인생이 끝나기라도 하는 것처럼 우울해져서 아무것도 하기가 싫어지곤 했다.

하지만 봄만이 존재하는 세상은 끔찍할 것 같다.

 

해준은 지겹도록 봄에서만 살아왔던 게 아닐까? 봄의 따스함이 자신을 편안하게 하는 동안 봄의 규율에 자기가 억압 당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미처 못하고......

 

변화 없는 안정된 삶을 살아가기 위해 결국 우리는 자신의 삶을 포기해 버리게 되는 상황까지 가게 되는 건 아닐까......

우리는 삶을 선택한다.

그리고

주기를 지니고 찾아오거나

가끔은 전혀 예상도 못한 고된 시기 속에서 위안을 받고 싶어한다.

하지만 그 누구도 자신마저도 백프로 만족할 만한 위안은 주지 못한다.

그것은 우리가 인간이라는 나약한 존재여서라기보다는

잘못된 사고 방식으로 세상을 살아가고

다른 사람으로부터 위안을 받기 위해

스스로 약한 존재가 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세상은 변해 가기에 의미가 있는 것이다.

장마철에 억수비를 맞아 셔츠가 흠뻑 젖기도 하며

낙엽이 떨어지는 길을 비로 쓸며 생각을 정리하기도 하며

폭설 때문에 버스가 움직이지 않아 도로 한 복판을 걸어서 집으로 돌아가는 일도 생길지 모른다.

 

 

그런 한치 앞도 예상할 수 없는 불안 속에서

 

우리는

 

고민하고

행복해하고

슬퍼하며

,

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