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8차 창작콘테스트 단편소설 부문- 우리의 담금질은 몇도에서 시작하는가

by wonli posted Mar 15,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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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담금질은 몇도에서 시작하는가



지겹다. 지긋지긋하다. 진절머리난다. 그리고 또 뭐가 있을까 내 일상을 표현할 수 있는 말이. 내가 20살이 되고 가장 먼저 이룬 것은 대학 탈락이다. 원서비 18만원을 써서 3개의 대학에 지원했지만 전부 떨어졌다. 정상적인 루트라면 재수 또는 도피성 입대를 선택할 것이다. 하지만 난 둘 다 선택하지 않았다. 이유라면 3년간 고생한 것에 대해 보상을 하나도 받지 못했다는 억울함 정도일까. 2월에는 졸업을 했다. 그리고 3월엔 알바를 알아봤다. 4월엔 친구들이 대학동기들과 벚꽃을 보는 모습을 sns로 봤다. 난 뭘했냐고? 놀았다. 집에서. 뒹굴뒹굴. 백수처럼. 아, 백수 맞구나. 알바는 정말 알아보기만 했다. 억울했으니까. 아까 내가 억울해서 재수도 입대도 하지 않았다고 말했잖은가. 난 그 억울함이 소진될 때까지 집에서 놀았다. 2개월 정도 동안 앞서가는 남들을 뒤에서 지켜보기만 하니 알게 된게 있었다. 남들은 나의 억울함 따위를 알아주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엄마는 언제부턴가 아파트 반상회에 나가지 않았다. 대신 그 시간동안 나에게 잔소리를 했다. 반상회 아줌마들이 내 안부를 존나게 물어보는 모양이다.

“성재야, 계속 그러고 있을 거야? 수능 치고 벌써 반년이 다 돼가 반년이. 놀만큼 놀았잖아? 이제 다시 수능준비를 하든 기술을 배우든 뭐라도 좀 해!”

하긴, 인생에서 가장 찬란하다는 20살에 집에서 빈둥대는 아들을 보는 엄마의 마음도 이해가 간다. 얼마나 안타깝겠는가. 사실 나도 3월에 알바를 알아보면서 학원을 같이 찾아보긴 했다. 심지어 별 생각이 없던 알바와는 다르게 학원은 꽤 진지하게 찾아봤다. 하지만 결국 아무 곳에도 등록하지 못했다. 학원을 다니려면 배울 분야를 정해야 한다. 분야를 정하려면 내 장래희망을 정해야 한다. 장래희망을 정하려면 내가 하고 싶은 걸 찾아야한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하고 싶은 걸 못 찾겠단 말이지. 대학원서 기간에도 그걸 찾질 못해서 대충 성적 맞춰 냈는데, 그걸 어떻게 놀면서 찾겠는가. 어쨌든, 그래서 놀았다. 5월까지. 사람이 매일매일 구박을 들으면서 아무것도 안하면 자존감이 하루하루 뚝뚝 떨어진다. 억울함은 이미 한참 전에 소진됐는데 이번엔 무기력함이 문제였다. 무기력함은 바닥에 떨어져있는 자존감을 먹으면서 크고, 그러다 보니 뭘 하려고 해도 의지가 안생기고, 결국 악순환이었다. 그러다 보니 하루하루가 지겹고, 지긋지긋하고, 진절머리가 났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대충 견뎌내다 보니 어느새 대학에 간 친구들이 여름방학을 맞이했다.



시내는 오랜만이었다. 고등학교 시절 매일 붙어 다니던 친구 놈들 중 모든 학생들의 숙원이라는 인서울에 성공한 놈이 하나 있었는데 그놈이 방학이라고 집으로 내려온 모양이다. 그래서 간만에 다 같이 술이나 먹기로 한 것이다.

“야, 성재야. 여기!”

만나기로 한 술집에 도착하니 이미 나 빼고 다들 모여 있었다.

“안주랑 술은 시켰어?”

“어, 어묵탕 하나랑 치킨 한 마리, 그리고 계란말이 시켰다. 술은 일단 소주 맥주 3병씩”

“딱 좋네. 야 이 씨바 서울 깍쟁이 이 새끼 이거. 존나 오랜만이다? 살아있었냐?”

“하하하. 새끼 만나자 마자 지랄이네. 존나 잘 살지 새끼야.”

“이 새끼 아까 니 오기 전에 서울말 쓴 거 아냐? 미친 새끼. 우리가 존나 지랄해서 말투 바꾼 거야.”

안주가 나오고 차가운 술이 나왔다. 편한 친구들과 편한 대화자리. 내 몸집보다 커졌던 무기력함도 잊을 만큼 즐거웠다. 차가운 술이 몸을 데워주고 분위기가 무르익자 주제는 자연스레 대학생활로 넘어갔다. 하긴 6명중 5명이 대학생이니 당연한 수순 이었다.

“야, 우리 교수님 진짜 또라이 같아. 뭔 과제를 일주일에 한 번씩 내주냐? 존나 바빠 진짜.”

“우리 교수는 분명히 단답식으로 시험 낸대 놓고 시험지 받아보니까 싹 다 서술형이더라. 얼탱이가 없어서. 시험 시작하고 3분 만에 애들 절반 넘게 나갔잖아. 낄낄.”

“난 교수는 괜찮았는데 조별과제를 완전 미친놈들을 만나가지고. 아니 자료 조사하는 놈은 자료를 나무위키에서 가져오고 ppt 만드는 새끼는 한 슬라이드에 애니메이션을 5개씩 쳐넣어. 미친것들 아니냐?”

“새끼들 골때리네. 니 고생 좀 했겠다?”

“아니? 그래서 나도 그냥 배 쨌는데? 우리 조 전원 d 플러스 받았어.”

“크하하하하하하. d에 플러스 붙여주는건 뭔 심리냐? 쓰레기긴 하지만 재활용은 가능하다는 의미냐?”

다들 대학생활 한 학기동안의 재밌었던 일들을 이야기 하면서 겔겔거렸다. 물론 난 거기 끼지 못했다. 그냥 쓰린 속을 달래듯이 술잔만 연거푸 비웠다. 친구들이 이야기를 하며 한잔 먹을 때 난 두 잔을 먹고, 웃으며 한 잔을 비울 때 세잔을 비웠다. 친구들도 유독 말이 없어진 나를 신경 썼는지 일부로 화두를 돌려서 나에게 물었다.

“야 성재야. 요새 너는 뭐하냐?”

“나? 그냥저냥 지내지 뭐... 알바는 알아보는데 시작은 안하고, 하루에 두 번씩은 꼭 엄마한테 구박 듣고.”

“에이, 그래도 뭐 재밌는 일 하나쯤은 있었을 거 아냐.”

“음, 재밌는 거라. 어떤 이야기 해줄까? 동네 아줌마들이 나 쓰레기 버리러 나오면 존나 불쌍한 눈초리로 쳐다보는 거? 아님 신상명세서에 학생이 아니라 무직에 체크해야 하는 거? 어떤 이야기가 니들한테 재밌을까?”

따뜻했던 분위기가 나로 인해 순식간에 차가워진다.

“아니, 야 왜 그러냐? 그리고 아직 너도 그렇고 우리도 그렇고 스무 살인데 뭘 집에서 논다고 주변사람들이 이상하게 봐. 그거 피해망상이야 새끼야. 하하하.”

“그래, 인마. 집에서 좀 놀 수도 있지. 이제 스무 살인데 뭘. 낄낄낄.”

나 때문에 경직된 분위기를 풀고 겸사겸사 위로도 하기 위해 하는 이야기들이 오고 간다. 그래, 나도 안다. 아직 스무 살밖에 안된 청년이 집에서 조금 논다고 아무도 한심하게 보지 않는다. 그렇게 느끼는 것은 그저 나의 자격지심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그저 가족들만이 걱정 때문에 잔소리를 조금 할 뿐이다. 하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3년 내내 붙어 다니던 놈들의 일상적인 대화에 전혀 낄 수 없다는 사실이 너무나 절망적이었다. 나를 집어삼킬 정도로 커진 무기력함은 이제 자기 옆에 자괴감이란 자식까지 성실히 기르고 있었다.



눈을 떴다. 눈을 뜨자마자 두통과 갈증이 밀려왔다. 비틀비틀 대며 냉장고로 걸어가 생수를 마셨다. 집에 어떻게 들어왔더라. 간만에 만난 친구들 앞에서 자격지심을 한껏 뽐낸 이후로는 뭘 했는지 기억이 나지를 안는다. 다행히 단체카톡방 분위기가 평소와 비슷한 걸 보니 심한 실수는 하지 않은 모양이다.

‘어휴, 병신, 병신. 죽어라 그냥.’

술이 깨니 어제 한 말들이 얼마나 한심한 소리였는지 조금씩 감이 왔다. 방에서 스스로를 책망하고 있는데 밖의 tv에서는 내 기분과는 반대로 유쾌함이 넘치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지금 제가 있는 곳이 어디일까요? 바로 천년의 고도 경주에 있는 건천 대장간입니다.”

“엄마, 무슨 프로그램이야?”

밖에 나오니 엄마가 생생정보통을 보고 있었다. tv속의 리포터는 발랄한 목소리로 대장간을 소개하고 있었다.

“이곳 건천대장간은 전국에 몇 안남은 전통식 대장간이라고 합니다. 이야 이거 정말 소중히 간직해야하는 우리나라의 보물이 아닐까 싶은데요. 어, 저기 대장장이 분이 망치를 들고 어디로 가시네요? 저기요 기술자님, 지금 어디를 가시는가요?”

“아이구, 담금질 하러 가야지요. 아가씨 망치질 한번 해보실텨?”

“오, 제가요? 그럼 한번 해볼까요? 자, 여러분. 여기 제 앞에 담금질을 한 쇠가 있는데요. 망치질을 한 번 해보겠습니다.

리포터가 망치를 들고 달군 쇠를 때릴 때마다 빨간 불똥이 주변에 튀었다. 그리고 쇠는 주변에 불똥을 튀면서 점점 형체를 갖추어갔다.

“이야, 이거 생각보다 힘든데요? 여러분 여기선 이렇게 모든 제품들을 하나하나 담금질과 망치질을 해서 만든다고 해요. 이렇게 때리면 때릴수록 쇠들이 더 날카롭고 튼튼해진다고 하니까 여기 물건들의 품질은 다 믿을 수 있겠죠?”

“이야, 요즘도 저런데가 있나보네. 성재야 엄마 약 좀 먹게 물 한 컵만 따라 줘. 성재야. 성재야?”

담금질. 명사. 쇠를 뜨겁게 달궈 액체처럼 만들었다가 다시 급랭시켜 굳히는 걸 반복하는 과정. 주로 대장간에서 쇠를 더 단단하고 강하게 만들기 위해 사용하는 방법이다. 또한 담금질 중간중간 망치질은 쇠붙이의 모양을 더 예쁘게 만들어주고 내구성도 올려준다. 엄마가 날 계속 불렀지만 난 내 신경세포들을 tv속 대장간에 올인한 상태였기 때문에 들을 수 없었다.

‘담금질과....망치질....’



“여보, 여보. 나와봐요. 성재가 갑자기 없어졌어요.”

“뭐? 무슨 소리야. 그 애가 갈데가 어디 있다고.”

“이거 봐요. 쪽지 하나 남기고 어디로 가버렸어요.”

‘엄마, 아빠. 오늘이 7월 1일이죠? 제가 수능을 치고 이런 생활을 한지 벌써 7개월이 넘었네요. 그동안 아무것도 안하고 집에서 빈둥대는 절 보며 많이 답답하셨을 거라고 생각해요. 물론 저 또한 스스로에게 많이 실망했고 힘들었고요. 그러다가 하고 싶은 일이 생겨서 마음먹었어요. 딱히 계획은 없는데 그냥 무대포로 부딪혀보려고요. 사실 하고 싶은 일 까진 아닌데, 왠지 이 일을 하면 어두운 현실에서 길을 비춰줄 무언가를 찾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너무 걱정은 하지 마세요. 그렇게 무모한 짓은 아니니까. 그럼 건강하세요. 저도 최대한 잘 지낼게요.’

“...이게 뭔 헛소리야? 여보! 당장 전화 걸어봐!”



아까부터 바지 주머니에서 진동이 끊이질 않는다. 전자파 맞으면 정자들 죽는데.... 엄마와 아빠에게서 한번씩 전화가 오고 있지만 받지 않았다. 지금 받으면 의지가 꺾일 것 같았고, 그러면 아무것도 못하고 또 다시 어두운 현실로 갈 것 같았기 때문에, 전화가 오고 있지만 받지 않았다.

“경주로 가는 무궁화호 제일 빠른걸로요.”

“네, 10분 뒤 9시 20분에 출발입니다. 도착시간은 10시 40분입니다.”

기차값 오천원을 계산하고 표를 받아들었다. 대구에서 경주 까지 무궁화호로도 1시간 20분이면 가는군 이란 생각을 하며 승강장으로 갔다. 승강장엔 할머니 몇 분과 아저씨 아줌마들 그리고 커플로 보이는 남녀 한쌍이 있었다. 커플을 빼고는 모두 철도 한칸 뒤에서 기차가 올 방향만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나도 곧바로 그 대열에 합류했다. 기차가 오고 문이 열리고 타고 있던 사람이 먼저 내리면 기다리던 사람이 뒤이어 탄다. 승강장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사건들이자 약속들. 오늘은 이 모든게 특별해보였다. 이미 내 좌석에 앉는 순간부터 너무나 설렜다. 하긴 반년 넘게 아무런 자극 없이 살다가 난생 처음 이런 커다란 도전을 하게 되었으니, 난 지금 처음 세상구경을 하는 아기와 다름없었다. 그리고 그 설렘은 반년간 쌓아왔던 늦잠이란 생활패턴 때문에 곧 졸림으로 바뀌었다.



“이 기차는 곧 경주역에 도착합니다. 내리실 분은 미리 준비해 주시기 바랍니다.”

경주라는 말에 눈이 번쩍 뜨였다. 침을 닦고 가방을 챙겨 내리자 벽돌로 된 건물에 기와를 얹은 듯한 건물이 시야에 들어왔다. 경주역이었다. 경주역을 빠져나와 대로를 건넜다. 죽 늘어선 상가 건물을 따라 조금 걸어가니 버스정류장이 나왔다.

‘301번 버스를 타고... 1시간 10분 정도...’

전광판이 301번 버스는 10분뒤 도착이야 라고 말하고 있었다. 오늘 뭘 타는데 자꾸 10분이 걸리네 라는 생각을 하며 기다렸다. 곧이어 버스가 도착했고 그 안에 있던 승객들의 대부분이 내렸다. 내가 버스에 타자 승객은 한두 명 뿐이었고 자리 대부분이 휑하니 비어져 있었다.



버스를 타고 30분 쯤 지나고는 승객이 나 혼자였다. 그리고 풍경은 회색 콘크리트에서 초록색 수풀들로 바뀌었다. 45분 쯤 지나자 도로가 거칠어졌다. 그리고 구불구불한 산길이 시작됐다. 1시간 10분 뒤에는 버스에서 내렸다. 그리고 30분 정도를 더 걸었다.

‘도착했다.’

종아리가 조금씩 아파올 때 즈음 ‘화랑마을’이란 표지판이 보였다. 반나절을 혼자 인터넷에서 수소문해서 알아낸 마을이었다. 경주도심에서 버스로 1시간10분을 달리고 또 내려서 30분을 더 걸어야 나오는 산중턱에 있는 마을. 그리고 이 마을 안에는 3대째 이곳에 살며 대장간을 운영하는 아저씨가 계신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카카오맵을 켰다. 역시 화랑마을이라고 뭉뚱그려 표시되어 있을 뿐 마을 안의 자세한 지도는 입력되어 있지 않았다. 마을 주민분들께 물어보며 찾아가는 수밖에 없었다. 마을입구를 지나 조금 걸으니 할아버지 한 분이 논두렁에서 새참을 하고 계셨다.

“할아버지, 안녕하세요. 혹시 이 마을 대장간이 어디인지 알 수 있을까요?”

“잉? 대장간? 이 길 따라 주욱 가다보면 갈림길이 나오는데 거기서 오른쪽으로 가면 되.”

“아, 네. 감사합니다.”

할아버지는 외지인이 신기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설명해주셨다.

다행히 가는 길이 쉬웠던 덕분에 대장간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대장간 입구에 들어서기 전부터 망치질을 하는 소리가 귀를 때려왔다. 안을 들여다보자 30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아저씨 한 분이 쇠붙이를 마구 때리고 있었다. 내가 생생정보통에서 봤던 바로 그 장면이었다.

“뭐야? 장비 사러 왔어?”

“네? 아, 아니요! 그게...”

대장장이 아저씨가 나를 보셨다.

“음, 너가 그러니까... 저 파란지붕집 손자였나?”

“아니요, 아니요! 저기... 전 대구에서 온 김성재라고 합니다.”

“대구? 그 먼데서 여기까지 무슨 일로 왔어? 대구에도 대장간은 많을텐대 장비 필요하면 거기로 가지.”

“아뇨. 장비를 사려는 게 아니라요... 저기 실례가 될 수도 있겠지만 여기서 일을 하고 싶습니다!”

물을 한잔 따라 마시던 아저씨의 눈이 똥그래졌다.

“뭔 헛소리야. 젊어 보이는 놈이 이런 일을 왜 배워? 대학안가?”

“아, 전 대학을 다니지는 않고요. 그리고 꿈이 대장장이인게 아니라....”

“그럼 왜 여기서 일하려는 건데?”

“그게... 제 인생이 답이 없다고 느껴져서요. 그러다 tv에서 어떤 대장장이가 담금질이랑 망치질하는 걸 봤는데 왠지 그걸 실제로 해보면 답을 찾을 수 있을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쩌다보니 고백 비스무리한걸 하게 되었다. 역시 너무 무리한 부탁이었나.... 숙였던 고개를 슬쩍 들어 아저씨의 얼굴을 봤다. 아저씨는 턱에 손을 괴고 내 눈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먹여주고 재워줄 수는 있는데 돈은 못 줘. 그 이유는 너도 여기까지 오면서 마을을 둘러봤을 테니 알지? 이렇게 작은 마을에서 돈을 벌어봐야 얼마나 벌 수 있겠어? 그래도 괜찮겠어?”

“네! 먹여주고 재워주기만 해도 너무 감사합니다!”

“좋아 그럼 저 망치 들고 따라와.”

그제서야 대장간의 내부를 자세히 볼 수 있었다. 입구를 기준으로 왼쪽에는 완성된 제품들이 진열되어 있었고 오른쪽에는 집게와 망치 같은 작업에 필요한 기구들이 있었다. 그리고 입구 반대편 벽에는 화로가 있는데 아마 그곳에서 쇠붙이를 녹이는 작업을 하는 모양이었다. 화로 옆에는 냉장고처럼 생긴 알 수 없는 기구가 하나 누워있었다. 그걸 물어보려는 순간 아저씨가 입을 열었다.

“자, 내가 집게로 잡고 있을 테니까 망치질 한번 해봐.”

아저씨는 나를 아까 자신이 쇠붙이를 마구 때리던 자리로 데려와 망치질을 시켰다. 깡!깡!깡! 딱딱한 쇠를 더 딱딱한 망치로 때리는 둔탁한 소리가 공간을 가득 채웠다.

“음, 힘은 좋네. 1인분 구실은 하겠어.”

“하하하, 감사합니다. 그런데 저 냉장고같이 생긴건 뭐에요?”

“아, 이거? 니가 앞으로 여기서 같이 일 할 파트너. 아마 대부분의 일은 이 놈이랑 같이 할 걸? 말 나온 김에 한번 해보자, 저기 손잡이 보이지? 저기로 가봐”



그 놈의 이름은 풀무였다. 인공적으로 바람을 만들어 화로의 화력을 더 강하게 만들어주는 기구였다.

“성재야, 더 세게 당겨!”

아직까지 아저씨의 목소리가 귀에 맺혀있는 느낌이다. 풀무는 한쪽에는 구멍이 뚫려있고 한쪽에는 손잡이가 달려있다. 그리고 구멍을 화로 쪽에 두고 눕힌다. 화로에 불을 땐 후에 손잡이로 존나게 펌프질을 해서 바람을 밀어 넣어 주면 화력이 강해지는 그런 시스템이었다. 덕분에 30분동안 펌프질을 하느라 어깨가 나갈 것 같다. 작업을 빨리하려면 쇠를 빨리 녹여야하고 그러려면 화력이 강해야 하고 그러려면 풀무질을 계속해줘야 한다. 앞으로 매일 이 짓거리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엄마가 보고 싶었다. 공부 좀 열심히 할걸....

“힘들지? 그래도 하다보면 익숙해 질거야.”

아까까지 대인배로 보이던 아저씨가 악덕 고용주로 보였다. 월급도 못 받는다는데 이거 노동청에 신고라도 해야 하나.

“그럼 저 오기 전엔 아저씨 혼자 풀무질을 하셨던 거예요?”

“그렇지, 그래도 쇠가 화로에 아예 빠지진 않게 중간중간에 확인해줘야 하니까 지금처럼 계속하진 못했지. 니가 왔으니까 작업속도가 훨씬 빨라지겠는데. 하하하.”

“하하하... 그러게요 잘됐네요.”

“그래, 니가 여기서 할 일은 저 풀무질을 포함한 날 돕는 모든 일이야. 사실 풀무질이 제일 중요하고 나머지 일은 내일부터 차차 가르쳐줄게.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너 지낼 곳으로 가자.”



아저씨의 집은 내가 대장간을 지나 5분정도 더 올라가니 나왔다. 벽돌로 된, 이런 시골에서는 나름 현대적인 집이었다.

“오, 벽돌집이네요?”

“왜? 초가집이 아니라 실망이냐? 자 오른쪽 방은 내 방이고 넌 왼쪽 방 쓰면 돼. 1년 전에 우리 아버지 돌아가시고 아무도 안 쓰긴 했는데 청소를 자주해서 깨끗할 거야. 그리고 너 옷부터 갈아입어라. 땀 냄새가 그냥, 어휴. 풀무질이 고되긴 했나 보네. 화장실은 저쪽에 있으니까 너 먼저 씻어.”

“넵, 감사합니다.”



씻고나오니 찌개 끓는 소리가 들렸다. 집은 방 두 개에 부엌이 하나 있고 현관 복도 끝에 화장실이 있는 구조였다. 화장실 입구 옆에는 책장이 있었다. 그리고 그 위에 흑백사진 하나가 있었다. 이 집 앞에서 찍은 사진이었는데 가운데 할아버지 한 분이 있고 주변에 마을 주민들이 서서 환하게 웃고 있는 사진이었다.

“야, 밥 먹어.”

“아, 넵.”

부엌에 들어가자 쌀밥에 된장찌개와 감자볶음이 기다리고 있었다.

“고기 없는데 괜찮지?”

“네, 저 감자 완전 좋아해요.”

“오, 그래? 다행이네. 여기 감자 엄청 많이 심어. 실컷 먹을거다. 내일부터 이제 본격적으로 일 할거니까 든든히 먹어둬.”

“네, 잘 먹겠습니다.”



이곳에서 지낸지 한 달이 지났다. 일은 생각했던 것 보다 고되지 않았다. 풀무질은 하다 보니 요령이 생겼고, 망치질도 그리 힘들지 않았다. 단지 한여름에 뜨거운 화로 앞에서 일을 하다 보니 땀을 너무 많이 흘렸다. 덕분인지 밥을 많이 먹는다고 생각하는데도 살이 5kg이나 빠졌다. 아저씨는 엄청 재밌는 사람이었다. 일을 하고 일주일쯤 됐을때는 정말 웃긴 삼촌처럼 느껴졌다.

“성재야, 오늘 작업 끝내고 한잔할까?”

아저씨는 어느 날 부터인가 거의 매일 나에게 술을 마시자고 졸라댔다. 하긴, 평균 연령이 70세인 이 마을에 어느정도 말이 통하는 술친구가 있을 리도 없으니, 이해가 된다.

이곳에서 알게 된 또 다른 사실은 여긴 내 생각보다 훨씬 더 시골이라는 사실이다. 여기서 일 한지 둘째 날에 할아버지 한분이 대장간에 들어와서 하신 말은 나를 적잖이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대장장이 총각, 낫이 하나 필요한데 고구마 세 봉지면 되려나?”

그렇다. 아저씨가 나에게 월급을 못 준다고 했던 이유는 벌이가 적어서가 아니라 벌이가 없어서였다. 물론 모든 거래를 이런 식으로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농작물을 농기구와 바꿔가는 손님들은 심심찮게 나타났다.

“아저씨, 아무리 그래도 돈으로 받는게 좋지 않겠어요? 21세기에 물물교환이 뭐야.”

“새끼야, 여기서 제일 가까운 마트 가려면 얼마나 걸리는지 아냐. 걸어서 30분 버스타고 30분이야 임마. 연장 판돈으로 거기까지 가서 시장 봐 올 바에야, 여기서 바로 음식으로 바꾸는게 누이 좋고 매부 좋지.”

“저기 대장간 총각 있는가? 쇠스랑 하나 사러 왔는디?”

“아, 안녕하세요. 쇠스랑이요? 지금 만들어놓은 게 없는데 혹시 내일까지 만들어드려도 될까요?”

“아, 그래그래. 돈 대신 다른 것도 괜찮지? 오늘 우리가 돼지를 잡았는데 삼겹살을 조금 들고왔어.”

“오, 삼겹살이요? 성재야 삼겹살 왔다. 할아버지 그럼 내일 이 시간까지 만들어 놓을게요. 안녕히 가세요.”

삼겹살이다. 삼겹살은 내가 이 마을에서 가장 좋아하는 화폐단위다.

“아저씨, 화로에 불 때울게요.”

화로에 불을 강하게 땐다. 그리고 깨끗한 삽 위에 삼겹살을 한입 크기로 잘라서 올린다. 그 삽을 화로에 넣고 5초를 센다. 1...2...3...4...5!

“이야, 냄새 죽이는구만.”

아저씨가 오전에 받은 쌈채소와 물을 가지고 왔다. 화로직화구이 삼겹살은 아저씨의 인생 음식이다. 가스버너의 가스가 다 떨어져서 한번 시도해 본건데 너무 맛있어서 놀랐다고 한다. 나도 5일 차에 이걸 먹어보고 처음으로 여기서 일하길 잘 했다는 생각을 했다.

“야, 밑에 집 가서 밥 두공기만 얻어 와라. 배가 너무 고파서 밥을 좀 먹어야겠다.”

“네, 먹지 말고 기다려요. 아저씨.”

대장간 바로 밑에는 이장 할아버지의 집이 있다. 마침 그 집 안에 할머니가 계셨다.

“할머니 안녕하세요. 저 혹시 밥 두 공기만 주실 수 있을까요?”

“어, 그려. 저기서 퍼 가. 아 그것보다 아까보니 외지인이 마을에 왔던데, 혹시 아는 사람인가?”

“아니요. 웬일로 외지사람이 여기를 왔데요?”

“그러게, 곱상하게 생긴 젊은 여자던디. 모르면 됐어. 그냥 자네가 여기서 제일 어리니까 혹시 아는 사람인가 싶어 물어본거야.”

“하하, 네. 그럼 전 가보겠습니다. 밥 감사합니다.”



“아, 배불러. 근데 아저씨. 아까 이장집 할머니한테 밥 얻으면서 들었는데 마을에 외지인이 왔대요.”

“뭐? 외지인?”

“네 그것도 예쁘고 젊은 여자라는데요.”

“오, 그래? 여기 외지사람이 좀 귀하긴 하지. 벌써 동네에 소문이 좍 났겠구만. 이제 주문받은 쇠스랑이나 만들자. 저기서 쇠붙이들 좀 가져와라 성재야.”

쇠붙이들을 가져오니 아저씨는 화로에 장작을 넣고 있었다. 아저씨가 집게로 쇠를 잡아 불에 달구면 난 풀무질을 해 화력을 올린다. 그리고 쇠가 조금 연해지면 내가 집게를 잡고 아저씨가 망치질을 한다. 불똥이 몇 번 튀기고 나면 쇠는 우리가 만족할만한 외적 모습을 갖추어간다. 내적으로는 더욱 단단해지고 날카로워진다. 이런 과정을 3번에서 4번 정도 거치면 굴러다니던 쇠붙이는 하나의 농기구로 완성된다.

‘청년의 담금질은 몇도에서 시작하는가?’

언제부턴가 나에게 생긴 물음이었다.

“후,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 벌써 4시네. 너 먼저 가 오늘 뒷정리는 내가 할 테니까.”

“넵, 그럼 저 먼저 들어가 볼게요. 아저씨도 얼른 들어오세요.”



깜빡 잠이 들었다. 휴대폰을 켜 시간을 보니 5시 30분이었다.

“아저씨! 아저씨! 저녁 먹을 시간인데 어떻게 할까요?”

아무 반응이 없었다. 아직 안 오셨나? 뒷정리를 아무리 오래해도 30분이면 올텐대? 의문을 가지고 아저씨의 방문을 두드려 봤다. 역시 아무 반응이 없었다. 걱정되는 마음에 옷을 챙겨입고 대장간으로 출발했다. 6시가 다 된 시간이었지만 한여름이라 다행히 해가 지지 않았다. 대장간에 거의 도착하니 낯선 여자와 아저씨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엄청 예뻐졌네? 이러니까 마을 사람들이 못 알아보지.”

“언제까지 이런데서 썩고 있을건데? 이제 할 만큼 했잖아! 대구가 싫으면 경주시내로라도 나가자고. 제발!”

“여기 농사짓는 집이 10가구가 넘어. 그런데 내가 여기 일 관두면 할아버지들 할머니들은 농기구를 어디서 구해? 안돼...”

여자는 아저씨의 말을 듣고 울먹거리더니 욕을 했다.

“씨...나쁜새끼!”

그러고는 돌아서 나를 지나쳐갔다. 얼핏 봤을 때 아저씨랑 비슷한 나이의 30대 정도로 보였다. 게다가 제법 미인이었다.

“엄청 예쁘신데... 누구예요?”

“하... 술 한잔 할래?”

아저씨는 질문을 던져놓고서는 내 대답도 듣지 않고 냉장고에서 소주를 꺼내왔다.

“안주는 있어요?”

“아까 삼겹살이랑 먹다 남은 양파랑 고추 있어. 한잔하자. 잔 받어”

아저씨는 한달간 내가 봤던 얼굴 중 가장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한 잔을 따랐다. 그렇게 한 병 정도를 아무말도 않고 비워내더니 드디어 입을 열었다.

“아까 걔는 내 부인이야.”

“네? 아....네. 결혼하셨었어요?”

“어. 근데 지금은 따로 살아. 처음에 나한테 콩깍지가 제대로 껴서는 시골에서도 살 수 있다고 결혼하자더니, 작년에 이런 곳에서 더는 못 산다고 혼자 대구로 나갔어. 그래도 이혼 하자는 소리는 안하고 나보고 대구로 같이 이사하자는 거 보면 날 아직까지 좋아하긴 하나봐. 미안하게 시리... 하하하.”

“그럼, 그냥 아내분이랑 같이 대구로 가시는 건 어때요? 제 생각에도 아저씨 아직 젊으시고 시골보다는 도시로 나가시는 게 좋을 것 같긴 한 대.”

아저씨는 내 말이 끝나자마자 내 눈을 한 번 보시더니 종이컵에 가득 든 소주를 비웠다. 그리고 말을 이었다.

“너, 여기에서 내가 대장간을 한다는 정보는 어떻게 얻어서 찾아온 거냐?”

“네? 아 인터넷에 찾아보니까 엄청 후미진 마을에 3대째 대장간을 운영중인 사람이 있다고 하더라구요. 그거보고 찾아온 거죠 뭐.”

“그래, 맞아. 여긴 우리 할아버지 때부터 운영한 대장간이야. 처음 할아버지가 이 마을에 왔을 때는 일제강점기였는데, 당시에 일본인들이 군수물자를 만드는데 필요하다며 마을의 쇠란 쇠는 다 수탈해갔어. 그 덕에 남아있는 농기구가 없었지. 농업마을에 농기구가 없으니 먹고살 길은 막막하고 다들 어찌할지 모르고 있었는데, 그런 상황에서 대장장이였던 우리 할아버지가 여기로 온 거야. 그리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우리가 대장간을 운영하고 있는거지.

그래서 난 여기를 떠날 수가 없어. 4대 까지 잇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난 이 마을의 대장장이로서 끝까지 지키고 있을 생각이야. 그게 우리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나한테 남긴 마지막 숙제라고 생각하거든.”

아저씨는 말을 맺고는 불이 꺼진 화로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그는 이미 마음의 화로가 불씨를 잃고도 남을 나이였지만 아직까지도 강한 화력을 마음에 간직하고 있었다. 하지만 한켠에서는 차가운 슬픔이 느껴졌다. 하긴 자신의 꿈과 비전을 위해 많은 것을 내려놓은 그에게 슬픔이 느껴지지 않는 것은 오히려 이상한 일이리라. 아저씨의 담금질은 그렇게 현재진행중 이었다.

“이제 집에 가자. 오늘 기분도 싱숭생숭한데, 뒷정리 좀 해주라. 난 먼저 집으로 갈게.”

그렇게 말하고 아저씨는 비틀비틀 걸어갔다. 어두운 시골의 오르막길을 오르는 아저씨의 모습은 마치 밤하늘의 별들을 향해 올라가는 듯했다. 오늘따라 일찍 지는 시골의 해가 더욱 야속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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