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팽이

by 단내 posted Jun 03,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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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

 

서아름

 

 

*

 

사람은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기 마련이라는 말은 너에게만큼은 완벽한 명제가 아닐까 싶다. 나는 매일을 그 말에 공감한다.

달팽이…….

부스스한 뒷머리를 긁적이며 너는 한 쪽 벽면을 가리킨다. 네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을 따라 시선을 옮겨보지만 달팽이는커녕 작은 얼룩도 한 점 없다. 신음 같은 너의 목소리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재채기처럼 튀어나오곤 한다.

나는 다시 들고 있던 마늘을 내려다본다. 꺼슬꺼슬한 껍질을 몇 겹이나 뒤집어 쓴 둥글둥글한 마늘 끝을 작은 칼로 흠집을 내 껍질을 벗겨낸다. 껍질 끝을 잡고 몇 번 벗겨내다 보면 껍질과는 상반되는 매끈한 마늘 알갱이가 톡 튀어나온다.

힘없는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너를 다시 바라본다. 내 손은 여전히 마늘 껍질을 벗기고 있다. 초점 없는 너의 눈알은 이리저리 굴러다닌다. 데굴데굴. 마늘 알갱이가 손에서 미끄러져 바닥에 떨어진다. 두어 번 바닥에서 튈 뿐 굴러가지 않는다. 반들반들한 마늘 표면으로 형광등 빛이 반사된다.

사람들은 너를 꺼려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너의 말과 행동 하나하나가 그들에겐 공포로 다가오는 모양이었다. 이웃도 친척도, 어느 순간부터는 부모님마저도 너를 가까이하고 싶지 않아했다. 어떤 이는 네게 귀신이 들렸다고 했다. 하지만 그것은 실상과는 거리가 멀었다. 물론 너는 남들이 볼 수 없는 것을 보곤 했지만 그것은 그들이 생각하는 그러한 것이 아니었다. 너는 무당들처럼 귀신을 보는 것도, 그러한 것들과 교류를 하는 것도 아니었다. 너는 그저, 항상 달팽이를 보고 있었던 것뿐이다. 비록 나 말고는 아무도 그 사실을 알지 못했지만.

좁은 단칸방에서 네 식구가 살을 맞대고 뻣뻣하게 눕노라면 너는 항상 내 옆에 자리했다. 네 식구가 나란히 누워 오지 않는 잠을 청하노라면 묵직한 침묵이 우리를 내리눌렀다. 온종일 몸을 움직여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가슴을 무겁게 짓누르는 그 정적에 아무도 쉽게 잠들지 못했다. 시간을 삼켜낸 끝에 부모님이 고른 숨소리를 내며 잠이 들면, 나 또한 긴장을 풀고 밀려오는 노곤함에 어렴풋이 잠이 들었다. 그러면 종종, 네 목소리가 들렸다.

……천장에……달팽이 지나간 자리가 있어. 반짝반짝.

너의 말에 깜빡이는 의식 속에서 눈을 뜨면 보이는 것은 그저 새카만 천장. 달려들어 날 덮치는 적나라하기 그지없는 밤의 냄새. 무너져 내리는 눈꺼풀을 이기지 못하고 이내 눈을 감아버리고 나면 들렸던 달팽이를 부르는 나지막한 너의 목소리. 달팽이가 되고 싶어. 수천 번의 밤이 지나도 지워지지 않을 달팽이를 부르는 그 목소리.

너는 이불에서 몸을 일으킨다. 무릎이 튀어나온 추리닝과 목 부분이 늘어난 색 바랜 티셔츠가 눈에 거슬린다. 몇 번을 세탁기에 넣고 돌려도, 참다못해 화장실 바닥에 쪼그려 앉아 손빨래를 해도 여전히 때가 끼어 후줄근한 너의 옷은 나를 진절머리 나게 한다. 이번 달 월급을 받으면 네 옷을 가장 먼저 사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어기적어기적 창가로 다가가더니 쪼그리고 앉는다. 달팽이 점액보다 더 많은 물기를 머금어 빛나는 네 눈에 비치는 건 아무런 무늬도 없는 흰 벽지. 그리고 거기에는 분명히 달팽이가. 너는 한참을 그러고 앉아 있다. 이십년이 다되도록 보아온 것일 텐데 질리지도 않는지 매번 이런 식이다. 너는 언제나 달팽이 외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너의 시선을 사로잡는 것은 달팽이, 오직 달팽이 뿐. 그래도 괜찮다. 달팽이라면. 달팽이는 어쩔 수 없으니까. 나에게 보이지 않는 그것은 내 힘으로는 도저히 어찌할 수 없으니까. 하지만 근래의 너는 조금 다르다. 예전의 너는 분명 다른 어떤 것에도 관심이 없었지만 요즘 너는 그렇지 않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평생을 네 옆에서 함께 해온 나지만 요즘의 너는 익숙하지 않아 낯설다. 낯선 것과의 접촉은 두려움을 낳는다.

 

네가 처음 달팽이를 본 것이 언제였더라. 초등학교 3학년? 아니, 내가 중학교에 입학한 후였으니 초등학교 4학년 때였겠다. 그 때 네가, 너와 내가 봤던 것은 진짜 달팽이였다. 황금색 패각을 등에 업은 하얀 달팽이. 그것은 누워있던 너의 얼굴 왼쪽에서 제 몸집에 비해 긴 더듬이로 허공을 휘저으며, 열성적으로 네 몸을 탐하는 나를 비웃기라도 하듯이 유유히 기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뒤로 이어지는 유광의 점액. 점액 위로 너와 나의 형태가 뭉뚱그려져 보였다. 갑작스레 속이 메스꺼워졌다. 불같이 피어오르던 욕정이 순식간에 사그라지고 대신 그 자리에 욕지기가 차올랐다. 온 몸에 축축하고 미끄러운 달팽이가 기어 다니는 것 같은 착각이 일고 모든 감각이 곤두섰다. 도저히 견딜 수 없는 불쾌감에 나는 너를 내팽개치고 화장실로 달려가 변기를 붙잡고 저녁으로 먹은 것들을 게워냈다. 모조리 게워낸 후에도 계속되는 헛구역질에 나는 한참을 화장실에 주저앉아 있어야만 했다. 마침내 내가 입을 헹구고 나왔을 때, 가장 먼저 본 것은 너의 등이었다. 척추의 뼈 마디마디가 드러나는 너의 하얀 등. 내가 너를 범할 때의 발가벗은 그 모습 그대로 웅크려 앉아 손톱만한 크기의 달팽이를 보고 있었다. 그 어느 때보다도 조용히 숨 죽인채로. 나 따위는 안중에도 없이 오직 그 한 마리 작은 달팽이만을 향한 너의 눈, 빛나는 그 검은 눈동자.

그 날 이후로 너는 달팽이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이곳저곳에서 달팽이에 대한 내용을 찾아 정독하는 한 편 달팽이 사진을 모아 하루 종일 멍하니 보고 있기도 했다. 행여나 부모님이 그러한 것들을 빼앗으려하기라도 하면 너답지 않게 필사적으로 그것들을 부둥켜안았다. 그러한 나날들이 계속 되던 가운데 어느 날 문득 너는 내게 말했다. 눈에 보이는 모든 곳에서 달팽이를 보고 있다고. 밥을 먹을 때도 샤워를 할 때도 잠자리에 누울 때에도 달팽이가 보이고 느껴진다고. 네게 달팽이가 찾아왔노라고.

달팽이 패각은 연약해. 쉽게 부서져.

여느 때처럼 쏟아낼 곳 없는 나의 욕망을 네 몸에 토로하고 있을 때 너는 무덤덤한 어조로 말을 꺼냈다. 그 말이 마치 아침인사라도 하는 듯이 자연스레 공기 중에 녹아들어서, 나는 내가 더위를 먹어 환청이라도 들은 건가 싶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날은 숨을 쉬기도 힘겨울 정도로 덥고 습해서 누가 언제 쓰러지더라도 이상하지 않은 그런 여름날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생각을 하는 나를 눈치 채기라도 했는지 너는 다시 입을 열어 더듬더듬, 달팽이 패각이 얼마만큼이나 연약한지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얼마나 예쁜 색을 띄고 있는지를 설명했다. 너의 말에 나는 작게 웃었다. 마치 네가 너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아서.

너를 돌보는 일은 언제나 내 역할이었다. 너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데리고 오고 밥을 먹게 하는 등의 일. 더불어 새벽에 나가 한밤중에 집에 돌아오는 부모님을 대신해 청소와 빨래, 설거지 같은 집안일들도 당연하다는 듯 내가 해야 하는 일들이었다. 나는 언제나 할 일들에 치여 허우적댔다. 그리고 언제나 그런 내 뒤에서 너는 그저 멍하니 앉아있었다. 바쁘게 움직이는 나를 어느 순간에도 바라보는 일 없이.

달팽이보다도 연약한 패각을 가진 것은 너야.

단 한 번도 현실에 치여 본 적 없는 너는, 그래서 그것이 얼마나 무참하고 무자비한지 모르는 너의 이 하얗고 마른 몸뚱이는 바깥의 찬바람에 흔적도 없이 바스러져 버리고 말거야. 네가 가진 패각은 너를 지켜낼 힘도 없어. 너는 절대적인 약자에 불과해.

그렇게 말하며 나는 너의 가늘고 긴 목을 두 손으로 감쌌다. 너의 피부는 땀에 젖어 축축했지만 이상하게도 매끄러웠다. 마치 민달팽이처럼. 나는 두 손에 힘을 주었다. 네 목 안쪽으로 딱딱한 것이 만져졌다. 더욱 힘을 주어 네 목을 조르자 너는 괴로운 듯 양 팔을 꿈틀거렸다. 하지만 단지 그 뿐, 너는 그 이상의 반응은 보이지 않았다. 몸부림치지도 나를 저지하지도 않고 그저 내 행위를 받아들이고 있었다. 처음 내가 너를 범했을 때도 그러했던 것처럼.

네 눈의 흰자위가 보이고 양 팔의 떨림이 잦아들 때, 나는 아래서부터 올라오는 자릿함에 온 몸이 바르르 떨리는 것을 느끼며 눈을 감았다. 생에 처음으로 느낀 오르가즘이었다.

 

그녀는 유능한 사람이었다. 일처리도 공사 구분도 확실했다. 더불어 호감형인 외모와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사근사근한 성격 덕분에 남녀 불문하고 모두 그녀를 좋아했다. 나보다 두 살 어리지만 나와 입사 동기인 그녀는 내 대학 후배였다. 말이 좋아 후배지, 사실 그녀와 나는 전공도 달라 대학을 다니는 내내 서로 마주친 적도 없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녀는 같은 대학 출신이라는 사실만으로 나를 선배님이라 부르며 친근하게 대했다. 공원에서 마주친 날도 다른 날과 다르지 않았다.

선배님 동생분이세요?”

반가운 듯 내게 먼저 인사를 건넨 그녀는 바로 네게로 몸을 돌려 내가 아닌 너에게 물었다. 경계심을 품고 내 등 뒤에 선 너를 전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고 똑바로 마주보며 거리낌 없이 물어온 사람은 그녀가 처음이었다. 마치 아이와 같은 악의도 사심도 없는 순수한 호기심, 그리고 솔직한 호감을 표하며 그녀는 네게 다가섰다. 너는 그녀의 어떤 말에도 대꾸는 하지 않았지만 나는 네가 그녀의 말과 작은 움직임 하나하나에 반응하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무의미하게 굴러다니던 너의 눈이 봄바람처럼 들뜬 목소리로 쉴 새 없이 재잘거리는 그녀를 좇았다. 죽은 듯이 늘어져있던 너의 팔다리가, 온 몸이 그녀에게 반응해서 조금씩 살아 움직였다. 얼핏 보면 그녀 혼자서 일방적으로 이야기하는 것 같았지만 너와 그녀는 분명히 소통하고 있었다.

그 날 이후 그녀는 나와도 가까워지려 노력하는 것 같았다. 회사에서 출근, 퇴근 때에 말을 걸며 인사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점심시간에도 나와 함께 하려 했으며 종종 휴일에도 연락을 해왔다. 그녀는 자신의 동생도 많이 아팠다고 말하면서, 틈만 나면 너에 대해 물어왔다. 보통 나는 대답을 회피했지만 그녀는 쉽게 물러나지 않았다. 너에 대해 알고 싶어 했고 그러한 충동에 솔직했다. 나는 너와 나를 파고드는 그녀의 집요함에 몸서리쳤다.

가끔 생각한다. 그 날 공원에서 그렇게 마주치지만 않았어도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을 것이라고. 너도 나도 그녀도. 그 날 우연히 마주친 이후 그녀는 나와 네가 산책하는 시간에 공원에 나와 아는 체를 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흥미를 끈 것은 내가 아니라 너였다. 너의 흥미를 끈 것 또한 내가 아니라 그녀였다. 그녀를 마주할 때 너는 마치 예쁜 달팽이를 발견할 때처럼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봄이 오면 겨우내 얼어붙어있던 나무에 새순이 돋는 것처럼 그녀를 만나면 죽은 듯이 빳빳하던 너의 몸이 생기 있게 일어났다. 네 눈동자는 반짝반짝 빛이 났다. 그리고 나는 그 사이에서 그저 침묵했다. 내게 그 외에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그녀의 너에 대한 관심을 알면서도 크게 걱정하지 않았던 이유는, 아무리 그녀라고 해도 네가 달팽이를 보는 것을 알게 되면 분명 물러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안타깝게도 그것은 나의 안일한 착각에 불과했지만.

달팽이…….”

달팽이가 어디에 있느냐며 두리번거리는 그녀를 보며 너는 언제나처럼 벽돌로 이루어진 텅 빈 공원 바닥을 가리켰고 그녀는 웃었다.

달팽이가 보여요? 어때요? 어떻게 생긴 달팽이에요?”

네가 그녀에게 그렇게 길게 말을 한 것은 그 때가 처음이었다. 너는 네가 보고 있던 달팽이의 외형과 크기, 그리고 움직임을 느리지만 분명하게 묘사했다. 그리고 그런 네 말을 미소를 띤 채 가만히 듣고 있는 그녀가 네 옆에 있었다. 내게는 아무 것도 아닌, 그저 건조한 바람만이 굴러다니던 그 세계는 너와 그녀에게 자그마한 달팽이를 공유하는 또 다른 세계로 존재하고 있었다. 보이거나 혹은 보이지 않거나. 그러한 사실은 누구에게도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너는 기억할까. 네가 달팽이를 보던 어느 날, 그것을 보는 네 눈에 동경하는 빛이 서렸을 때 내가 저질렀던 죄악, 나조차도 놀랐던 그 우발적인 행위를. 나는 잊지 못한다. 그 때 내 발바닥 아래에서 들렸던 바삭하고 부서지던 소리와 물컹한 것이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터지는 그 불쾌한 감촉, 그리고 끈적이게 달라붙었던 달팽이의 점액을. 그리고 그 순간까지도 무심하던 너의 눈동자. 그 때 깨달았다. 내가 너를 강간하고 네 목을 조르고 달팽이를 밟아 죽여도 네게는 흥미 없는 일이라는 것, 너에겐 어떠한 의미도 없다는 사실을. 네 생활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나였음에도.

달팽이와 그녀. 그녀와 달팽이. 그치들의 어떤 점이 너의 시선을 끌었는지 나는 도통 알 수가 없다. 그녀는 달팽이처럼 유들유들하고 하얀 몸뚱이를 가진 것도 연약한 패각을 가진 것도 아니었다. 그녀는 전혀 부드러워 보이지 않는 삐쩍 마르고 까무잡잡한 몸을 가졌고, 유능한 그녀의 패각은 일반인의 그것보다 단단할 것이 틀림없다. 어디를 봐도 공통점 따위는 없는데 왜 너는 그녀를 바라볼 때마다 그렇게 생기 있는 눈을 보인 걸까. 그녀와 달팽이, 그 어느 쪽도 될 수 없는 나는 아마 평생을 살아도 답을 내지 못할 것 같다.

그녀의 얼굴을 유심히 들여다본다. 시속 70Km/h에 가까운 속도로 온몸을 부딪친 것 때문인지 항상 웃는 상이던 얼굴이 처참하게 구겨져있다. 그녀의 얼굴에는 차에 부딪혔을 때의 고통이 적나라하게 남아있다. 이곳저곳을 꼼꼼히 살펴보지만 역시나 그녀의 몸 어디에도 달팽이를 연상시키는 것은 없다.

그녀의 매끈한 도자기 같은 피부 위로 핏방울이 계속 미끄러진다. 새까만 아스팔트 위에 번져나가는 피 웅덩이 위로 그녀의 달콤한 흑발이 넘실거린다. 그녀는 헐떡이며 온 몸을 꿈틀거리고 붉은 입술을 뻐끔거린다. 그 모양새가 마치 어항 밖으로 나온 물고기를 보는 것 같다. 쌍꺼풀 라인을 따라 예쁘게 그려놓았을 아이라인과 공들여 바른 마스카라는 그녀의 눈물과 핏물로 인해 흉하게 번져 있다. 그 와중에도 반쯤 감긴 그녀의 눈은 나를 향한다. 그녀의 까만 눈동자가 내게 이유를 묻고 있다. ? 대체 왜? 나한테 이러는 이유가 뭐에요? 어디선가 그녀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지만 내 앞의 그녀는 계속 끅, , 하는 이상한 소리만 간헐적으로 내뱉을 뿐이다.

바르르 떨리던 그녀의 손끝까지 잠잠해졌을 때야 비로소 나는 몸을 일으킨다. 혹시나 싶어 그녀의 가슴에 귀를 대보기도 하고 코 아래에 손을 대고 숨을 쉬는지 확인하기도 한다. 이제는 무의미해진 그녀의 눈동자는 여전히 나를 향해있다. 나는 굳이 눈을 감겨주진 않는다. 그녀가 보는 앞에서 주머니의 물티슈를 꺼내 손을 닦고 운동화 밑창에 묻은 핏물을 닦는다. 몇 십 분을 쭈그려 앉아 그녀를 지켜봤더니 다리가 조금 저리다. 시커먼 밤 속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져있는 그녀는 내가 봤던 그 어느 때보다도 매력적이다. 나는 운전석 문을 열고 차에 몸을 싣는다. 안전벨트를 하고 다소곳이 조수석에 앉은 너는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초점 없는 눈으로 앞을 응시하고 있다. 또 달팽이를 보고 있는지.

라디오에서는 오늘 밤 폭우가 쏟아질 것이라고 한다.

 

나는 너를 본다. 너의 시선은 여느 때처럼 천장에 고정되어 있다. 무엇을 보는 건지,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너의 그러한 행동에 의미가 있기는 한 건지, 나는 도무지 알 수가 없다. 하긴 언제고 내가 너에 대해 아는 것이 티끌만큼이라도 있기는 했는지.

두 손으로 너의 중심을 잡는다. 그것은 이미 단단해진 채로 곧게 서있다. 그 위로 올라가 그것을 천천히 내 안에 넣는다. 이물감이 생생하다. 나도 모르게 눈을 감고 하, 하고 탄식하듯 숨을 내뱉는다. 일순 눈앞이 온통 하얗게 빛나고 뒤이어 천둥소리가 귀를 잡아 찢을 듯이 달려든다. 눈을 두어 번 깜빡이니 다시 시야가 돌아온다. 번개도 천둥도 나에게만 들이닥친 건지 너는 조금의 미동도 없다. 이럴 때면 나는 어쩌면 네가 시각도 청각도 잃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너의 초점 없는 까만 눈동자를 가만히 들여다본다. 한참을 보다보면 어느 순간 불쑥 네가 보이지 않을까 싶어서. 눈을 깜빡이는 그 짧은 순간에 너를 놓칠까봐서, 혹시 모를 그 찰나가 나는 두렵다. 손을 뻗어 네 양 뺨을 감싼다. 서늘한 기운이 손바닥을 통해 전해진다. 언제나 차가운 네 뺨, 네 손, 네 몸마저도.

문득 오한이 든다. 너의 뺨에 닿은 손바닥에 축축함이 느껴진다. 손을 떼니 무언가 끈적끈적하게 묻어나온다. 네 얼굴에는 물기가 가득해 반들반들하다. 손바닥을 내려다보니 점액질의 액체가 덩어리져 묻어있다. 미끄럽고 끈적끈적한 그것은 마치, 아니, 분명 달팽이의 점액. 일순 현기증이 나 바닥에 손을 짚는다. 새삼스럽지도 않은 감촉에 힐끗 바닥으로 시선을 돌리니 주위에도 어느새 점액이 배어나와 있다. 그것은 어둠 속에서도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붉다. 흡사 그녀의 피처럼 붉은 점액이다. 그렇다면 여기에 누워있는 것은 정말 네가 맞을까.

분명 너라고 생각했건만 이제는 확신이 서지 않는다. 한 순간이라도 정말 네가 맞기는 했던 건지 어쩌면 내가 지금껏 쭉 착각하고 있던 것은 아니었는지. 지금 눈앞의 얼굴은 네 얼굴이었다가, 그녀의 얼굴이었다가, 그 날의 내 얼굴이었다가. 모든 것이 너무나도 익숙한 반면 이상하리만치 생소해서 이 순간마저도 현실이 맞는 것인지 그저 긴가민가하다. 이 모든 순간이 한낱 어지러운 꿈, 혹은 백일몽일는지.

문득 현관 벨이 울리는 소리를 들었다. 갓 귀가한 내가 땀에 젖은 교복을 벗으려 할 때였다. 처음 입게 된 교복도 익숙해질 즈음, 방학을 앞두고 있는 초여름이었다. 누구세요, 묻자 가스점검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현관문을 열고 그 남자를 부엌으로 안내했고 남자는 내 뒤를 따랐다.

그 때 그 이는 내게서 무엇을 보았는지. 내 무엇이 그 이를 그렇게 만들었는지. 교복 단추를 잡아 뜯고 치마를 들친 억센 손과 그가 내뱉는 후덥지근한 숨에 놀랄 틈도 없이, 나를 찢고 들어오는 생경한 고통이 머릿속 의문들과 엉킬 대로 엉켜서 나는 비명 한 번 제대로 내지르지 못했다. 발버둥 쳤지만 나를 짓누르는 몸뚱이는 꿈쩍도 하지 않았고 오히려 내 저항을 즐기는 듯, 그 이는 웃었다. 그리고 간헐적으로 새어나오던 흐느낌마저도 더 이상은 나오지 않았다.

그 이가 몸을 움직일 때마다 내 몸도 따라 흔들렸다. 단단한 무언가가 내 안을 들어왔다 빠져나갈 때마다 생살을 찢는 고통이 찾아왔다. 바닥에는 피가 튀었다. 그 이가 움켜쥐던 모든 곳이 욱신거렸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견디기 힘들었던 것은 내 목덜미를 핥는 축축하고 미끄러운 그 이의 혀. 머릿속이 감전된 듯 번쩍번쩍해서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조차 할 수 없는 가운데 그 불쾌한 감각은 기어코 나를 현실로 잡아끌었다.

어느 순간 남자가 행위를 멈추었다. 내가 그 이유를 깨닫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현관에는 네가 서있었다. 언제부터 그렇게 서있었는지는 모르겠다. 너는 놀란 기색도 당황하는 기색도 없이 여느 때처럼 멍한 눈동자로 나와 그 남자가 짐승처럼 엉겨 붙어있는 방 한가운데를 보고 있었다. 남자는 그런 너를 보고 당황하는 듯 잠시 움직임을 멈췄지만 이내 다시 몸을 움직였다. 무수히 많은 말들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입 안에서 맴돌았다. 입을 열어도 그 안에선 습한 공기만 덩어리져 뱉어질 뿐이었다. 남자의 행위가 끝나는 영원 같이 긴 시간동안 안개가 낀 듯 뿌연 시야 속에서도 유일하게 선명했던 것은 무엇을 보는지 모를 너의 검은 눈동자였다. 암전.

나는 몸을 움직인다. 이제는 익숙한 쾌락을 좇아 기계적으로 허리를 흔든다. 내 손이 힘주어 잡은 네 어깨가 연체동물마냥 말랑말랑하다. 내 아래 깔린 네 다리도 물컹하다. 내 피부와 맞닿은 축축한 네 피부는 몹시 불쾌하다. 다만 내 몸 안에 들어차있는 너의 중심만이 단단하고 뜨겁다. 그것만이 나를 붙잡아 이게 꿈이 아님을 상기시킨다. 그 사실이 몹시도 이질적이어서 작게 코웃음 쳤다. 이젠 너마저 나를 기만하는가.

움직임에 속도가 붙자 네 숨소리가 거칠어진다. 네가 내뱉는 숨은 축축하기 그지없다. 그것은 허락도 없이 내 폐부 깊숙이 들어와 온 몸으로 퍼져나간다. 나의 혈관, 신경 그 모든 곳으로 끈적끈적한 네 숨이 흐른다. 손 끝, 발 끝, 이윽고 모든 털, 음모 한 가닥 한 가닥의 끄트머리까지도. 그리고 어느 순간 네가 짧게 신음하면 내 안으로 네가 흐른다. 내 몸은 그런 너를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짜내려는 듯, 한 치의 틈도 없이 네게 달라붙는다. 몸의 떨림이 멎지 않는다. 네 몸인지 내 몸인지 분간조차 할 수 없는 혼란 안에서, 언뜻 네가 미소 짓누나.

 

달라진 것은 없었다. 굳이 있다면 그녀의 부재로 인해 회사에서 처리해야할 일이 늘어나 귀가 시간이 평소보다 조금 늦어졌다는 정도였다. 피로감이 몸을 짓누른다. 어서 누워서 쉬고 싶은 마음뿐이다. 자정이 다 된 시각, 너는 자고 있을 것이다. 때문에 나는 네가 깨지 않도록 조심스레 현관문을 연다. 집 안이 온통 컴컴한 것으로 보아 너는 자는 게 분명하다.

습관처럼 거실 전등 스위치로 손을 뻗는데 어둠 속에 무언가가 있는 것 같다. 뒤쪽 베란다로 어슴푸레한 달빛이 비쳐 들어온다. 거실 한 가운데에 커다란 덩어리가 있다. 숨이 멎는다. 달팽이다. 사람 몸집보다 훨씬 더 큰 달팽이. 불빛을 받아 윤이 나는 살색 몸뚱이와 검은빛을 띤 긴 더듬이, 그리고 내 키보다도 더 큰 패각.

갑자기 다리에 힘이 풀려 벽을 짚고 주저앉았다. 심장이 요동친다. 눈앞이 아찔해서 성급히 움직일 수가 없다. 헛것, 혹은 신기루인가 싶어 눈을 비비고 다시 봐도 그것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네가 저것을 보면 분명 또 눈을 빛내겠지. 그런 꼴을 또 두고 볼 수는 없다. 비현실적으로 커다란 달팽이 따위는 아무렇지도 않다. 내가 두려운 것은 그런 것이 아니니까. 후들거리는 다리에 힘을 주어 몸을 일으킨다. 벽을 짚어가며 비틀비틀 걸음을 옮긴다. 부엌에서 식칼을 찾아 두 손으로 잡는다. 금방이라도 손에 힘이 풀려 식칼을 놓칠 것만 같아 더욱 단단히 부여잡는다. 천천히 거실로 걸어간다. . . 내 걸음 소리인지 심장 소리인지 모를 소리만 집 안에 울린다.

네가 항상 누워있던 이불이 그것의 점액으로 반질반질하니 빛난다. 이제 보니 온 집안이 전부 점액으로 뒤덮여있다. 나는 그것에게로 다가간다. 달팽이의 패각은 내 걸음 한 번에 바스라 질만큼 연약하다. 하지만 이것은 크기로 보아 패각도 두꺼울 것이다. 그것의 기다란 더듬이가 움찔거린다. 그것의 정면에 서서 크게 심호흡을 한다. 식칼을 높이 들어 달팽이의 더듬이 사이에 내리꽂는다. 말랑한 살을 파고드는 칼끝의 감각이 너무나도 현실적이다. 백색의 액체가 얼굴에 튄다. 끈적끈적한 것이 꼭 달팽이가 분비하는 점액 같아서 불쾌하다. 달팽이는 고통스러운지 온 몸을 꿈틀거린다. 문득 내 발치에서 떨고 있던 그녀의 모습이 떠오른다. 눈가에 묻은 것을 손등으로 대충 닦아내고 칼을 뽑아 그 자리에 몇 번 더 내리꽂는다. 그것은 발악이라도 하는 듯 더듬이를 허공에 휘저으며 그 커다란 몸을 어떻게든 움직여서 피하려한다. 하지만 나는 온 힘을 다해 식칼을 내려찍는다. 그녀를 차로 치었던 그 날처럼 내 모든 악을 끌어올려서. 죽어, 죽어, 죽어, 제발 죽어버려.

얼마만큼의 시간이 지난 것인지 모르겠다. 오 분이 지난 건지, 삼십분이 지난건지, 아니면 서너 시간이 지난건지. 어쩌면 하루가 꼴딱 지나가버린 것일지도 모른다. 오늘이 벌써 일요일로 넘어가는 밤일지도. 달팽이는 이제 움직이지 않는다. 몇 십번, 몇 백번을 반복한 칼질에 그것은 이미 너덜너덜하다. 몸 안을 가득 채우던 체액이 전부 빠져나가버렸는지 바람 빠진 풍선처럼 쪼글쪼글하다. 다만 그것의 패각만이 처음 본 그대로 그 색을 자랑하고 있을 뿐이다.

온 몸에 힘이 빠진다. 더 이상은 칼을 들 수도 없을 것만 같다. 지친다. 마지막 남은 에너지까지도 다 쥐어짜낸 느낌이다. 나는 아무렇게나 널브러진다. 뿌옇게 흐려지는 시야에 들어온 천장에는 달팽이가 지나간 흔적이, 그것의 반짝이는 점액이 가득하다. 점멸하는 의식 너머로 네 목소리가 들려온다. 달팽이 패각은 연약해. 쉽게 깨지고 부서져. 그렇게 말하던 너는 여느 때처럼 눈을 빛내고 있었지. 내일 네게 말해줘야겠다. 그것의 패각은 네 생각만큼 연약하지 않았어. 비록 달팽이는 죽었지만 그의 패각만큼은 내 칼부림을 모두 견뎌냈는걸. 생각보다 단단한 모양이야.

 

까무룩 잠이 든 모양이었다. 눈을 뜨니 머리맡으로 햇빛이 들어오고 있다. 온 몸을 짓누르는 피로감. 나른하다. 일어나고 싶지 않아. 그러고 보니 오늘은 휴일이다. 늦잠을 자도 된다는 안도감에 다시 눈을 감는데 문득 지난 밤 일이 떠오른다. 몸을 일으키고 주위를 둘러본다. 내 예상과는 다른 모습에 상황파악이 전혀 되지 않는다. 집 안에는 새빨간 피가 낭자하다. 어젯밤에 내가 본 것은 분명 백색의 피였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왜 그녀가 토해낸 것 같은 붉은색이 사방에 튀어있는 것일까. 그리고 네 이불 위 저것은 무엇인가.

쾅쾅. 누군가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한두 명이 아닌 것인지 밖이 꽤나 소란스럽다. 꿈인가. 나는 몇 차례 눈을 깜빡거려 본다. 머리를 벅벅 긁어본다. 뭐가 어떻게 된 일인지 도통 알 수가 없다. 옆에 떨어진 식칼을 주워들고 내 눈꺼풀 위를 푹 찔러 본다. 아프다. 그저 살짝 찔러볼 요량이었는데 힘 조절을 잘못했는지 무언가 터진 것 같다. 눈에서 피인지 뭔지 모를 액체가 죽죽 흐른다. 그럼에도 도통 정신이 들지를 않는다. 눈을 떴을 때부터 줄곧 꿈인 양 그저 몽롱하다.

내 시야 안 모든 것들이 붉다. 애초에 이렇게 사방에 붉은 피가 가득한 것부터가 이상하다. 나는 꿈을 꾸고 있는 모양이다. 이상한 꿈이다. 나의 그 어떤 감각에도 힘은 없다. 환상과 현실, 그 어느 쪽으로라도 나를 이끌어주었으면.

나는 엉금엉금 네 이불로 기어간다. 네 이불 위에는 무엇인지 알아볼 수 없는 고깃덩어리가 널브러져 있다. 정육점에서나 볼 수 있는 고깃덩어리다. 이게 대체 무엇일까. 툭툭 건드려본다. 전혀 미동하지 않는다. 반쯤 걷힌 이불을 완전히 걷어 내본다. 고깃덩어리가 내가 얼마 전에 새로 사 준 네 옷을 입고 있다. 사실 피에 절어 얼핏 봤을 때는 네 옷인 줄 모르고 넘어갈 뻔했다. 울컥 화가 치밀어 오른다. 식칼을 들어 그것의 배로 보이는 곳을 내리찍는다. 두어 번 내리 찍으니 힘이 빠져 식칼을 내려놓는다. 피곤하다. 온몸이 축축 늘어지는 느낌이다. 밖은 여전히 시끄럽다. 쾅쾅 소리가 귀에 거슬린다. 저러다 현관문이 부서지기라도 할 것 같다. 근데 너는 어디에 있는 거지?

, 하는 소리와 함께 현관문이 열린다. 뒤이어 경찰복을 입은 사람들이 들이닥친다. 그들은 신발도 벗지 않고 집에 들어와 내게 총구를 겨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지? 나는 도통 영문을 알 수가 없다. 그들은 나를 빙 둘러싸고 그 중에 한명이 내 앞의 고깃덩어리를 확인한다. 나는 그저 어리둥절할 뿐이다. 사람들이 쉴 새 없이 입을 뻐끔거리는데 소리가 조금도 들리지 않는다. 정말 이상한 꿈이다. 눈이 아프다.

남자 둘이 내 팔을 잡아 일으켜 세우고 양 손목에 수갑을 채운다. 그들의 강압적인 행동이 별로 유쾌하진 않지만, 내게는 그들을 뿌리칠 기력은 물론 그 불합리함에 항거할 일말의 기운조차 없으므로 그들이 하고자 하는 대로 내버려둔다. 그들은 양쪽에서 내 어깨를 잡고 걸음을 재촉한다. 난 그들에게 이끌려 활짝 열린 현관으로 다가간다.

문득 왼쪽 검지에 기묘한 감촉이 느껴진다. 간질간질하기도 하고 미끈거리기도 하다. 시선을 돌려보니 손톱만한 달팽이가 있다. 연약한 몸뚱이를 가진 그것이 내 손가락을 타고 오르고 있다. 황금빛 패각. 이것의 패각은 손가락으로 누르기만 해도 박살나고 말 것이다. 어떻게 할까, 잠시 고민하다가 그냥 놔두기로 결정한다. 달팽이를 눌러 죽일 힘도 없을 만큼 나는 너무 지쳤기 때문이다. 그것이 매달린 손가락을 조심스레 들어올린다. 어디선가 본 듯한 달팽이다. 물론 달팽이야 다 비슷비슷하게 생겼지만서도 그냥 그런 생각이 든다.

네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아니, 어쩌면 내가 했던 말이었던가? 달팽이가 되고 싶어. 얇은 패각으로 자신을 지킬 수 있을 거라고 믿는 반짝반짝 빛나는 달팽이가. 네가 달팽이가 된다면 네 패각은 찬란한 금색일거야.



서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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