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미

by gin posted Jun 05,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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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시린 바람이 휘몰아 쳤다. 가을은 금세 고개를 집어넣었고 찬 공기가 하늘 아래를 가득 메웠다. 내쉬는 숨에 입김이 한가득 뭉쳐나올 때 쯤 겨울방학이 왔다

아이들은 왁자지껄 대며 교실을 빠져나갔다. 아이들이 줄지어 나가는 교실에서 미미는 멍하니 앉아있었다. 오백 원짜리 동전 마냥 큰 눈은 항상 반 쯤 감겨있었다

짙은 쌍꺼풀이 보였다. 미미는 시꺼먼 손끝으로 나무책상을 규칙적으로 두드리며 교실을 빠져나가는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아무도 미미를 쳐다보지 않았다.

손톱과 책상이 부딪치며 내는 소리가 빈 교실을 메울 때쯤 미미는 천천히 일어나 책가방을 멨다. 유성매직으로 휘갈겨 쓴 이름은 닳아 거의 보이지 않았다

미미는 새끼발가락이 밖으로 훤히 들어나는 운동화를 질질 끌며 운동장을 가로 질렀다. 추위에 서로를 부둥켜안은 운동장의 흙은 작은 먼지조차 날리지 않았다.

교문에 삼삼오오 몰려있던 아이들은 미미를 보곤 수근 대며 자리를 피했다. 미미는 죄인처럼 고개를 푹 숙인 채 걸었다. 작은 체구가 더욱 작아보였고 마구잡이로 길게 자란 검은 머리가 햇볕을 가렸다. 햇볕에 비친 머리칼이 유난히 갈색 빛으로 빛났다. 미미는 주머니에 넣은 손을 꼭 쥔 채 땅을 보고 걸었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기침이 나왔지만 입을 틀어막지도 않았다. 꼭 쥔 주먹 안에 땀이 삐질 하고 흘러나오면 미미는 손을 꺼내 두 볼에 가져다 댔다

벌게진 두 볼을 녹이며 미미는 옅게 웃었다. 30년이 넘은 시민 아파트는 버려진 논의 허수아비처럼 서있었다. 깨진 창문들은 흉측한 모습을 띄고 있었지만 교체되지 않았고 여기저기 휘갈겨 쓴 현수막이 붙여져 있었다. 대부분의 현수막은 찢겨졌고 온전한 몇 안 되는 것들은 바람에 나뒹굴었다

아파트는 패잔병들의 천막 같았다. 미미는 엘리베이터 버튼에 손이 닿지 않았다. 계단을 오르려 난간을 움켜쥐자 얼음을 쥔 것 마냥 손이 시렸다.

지하로 내려가는 어두운 계단 에는 쥐들이 추위에 떨고 있었다. 아파트의 보일러실은 가동을 멈춘 지가 한참이었다. 미미는 다가가 떨고 있는 검은 쥐에 손을 뻗다 식어버린 자신의 손을 보곤 다시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계단을 오를 때마다 해진 바지 무릎 춤 사이로 바람이 새어 들어왔다

대문 앞에 선 미미는 문에 귀를 바짝 갖다 댔다. 숨을 들이 마시고 귀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멈췄던 숨을 입김과 함께 내뱉은 미미는 대문 옆에 있던 몸통만한 화분을 낑낑대며 끌고 왔다. 화분의 자갈 속에서 열쇠가 나왔다. 미미는 화분에 올라가 문고리에 열쇠를 넣었다. 녹이 슨 문고리는 열쇠를 잘 받아주지 않았다. 좁은 집 안에서는 퀴퀴한 냄새가 가득했다. 철거반대라 붉게 적힌 현수막이 집의 유일한 창문을 틀어막고 있었다. 현수막은 집안에 햇볕을 허락하지 않았다.

미미는 신발을 신은 채 집안으로 들어섰다. 미미의 기침소리가 집안에 울렸지만 반응 하는 사람은 없었다. 티비를 틀자 시끄러운 소리가 집안을 가득 메웠다 미미는 가방도 내려놓지 않은 채 거실에 널브러진 이불 속으로 기어 들어갔다. 원색을 잃은 이불에서는 악취가 진동했다. 죽은 벌레 시체와 굳은 토사물이 거실 곳곳에서 나뒹굴었다. 매서운 소리를 내며 바람이 불때마다 바깥의 현수막이 흔들리며 집안에 잠시 동안 햇빛이 비췄다. 미미는 머리끝까지 이불을 덮었다.

이불 속에서 가방을 내려놓곤 가방 속에서 낡은 인형을 꺼냈다. 인형은 미미와 어울리지 않게 깨끗했다

갈색머리 칼을 조심스럽게 쓰다듬으며 미미는 옅게 웃었다. 보름달처럼 둥근 두 눈이 포개진 반달 모양이 되었다.

 

잘 있었어요. 안나?

오늘부터 방학이에요.

여긴 너무 추워.

 

맘대로 엉켜버린 머리를 넘기며 미미가 말했다. 이마에는 푸르죽죽한 멍 자국이 새겨져 있었다인형은 감기지 않는 두 눈으로 미미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불 속에서 나온 미미는 부엌으로 걸어갔다한 손으론 인형을 꼭 붙들고 다른 손으론 기침이 나오는 입을 틀어막았다. 기침과 함께 입안으로 튀어나온 가래를 도로 삼키고 손을 바지춤에 대충 닦아댔다. 책상만한 싱크대 속에선 음식들이 썩어가고 있었다. 원래 무슨 냄새를 가지고 있던 음식들은 썩어가면서 다 비슷한 냄새를 내뿜었다. 이미 다 썩어문드러져 사라져 가고 있는 것들도 있었고 아직 진행 중인 음식들도 있었다. 찌그러진 양은 냄비 속에는 원래 형상을 알 수 없는 음식들이 담겨 있었다. 썩어가는 것들에겐 원래의 모습은 중요하지 않았다. 세모 냈던 네모 냈던 썩기 시작하면 둥글어 졌고 그 주변에는 항상 파리들이 들끓었다. 파리들은 미미를 무시한 채 음식 주변을 배회했다. 미미는 발에 밝히는 굳은 토사물도 싱크대 속으로 던졌다. 기괴한 울음소리를 내는 냉장고를 열자 주황색 빛이 미미를 비췄다. 미미는 한쪽 눈을 찡그렸다. 냉장고 난간에는 항상 소주병들이 줄지어 진열되어 있었다. 물병에는 물이 얼마 남아있지 안았다. 미미는 인형을 잠시 바닥에 놓은 채 두 손으로 물병을 쥐곤 벌컥벌컥 들이켰다. 입술에 맺힌 물방울 까지 핥은 뒤 미미는 싱크대로 가 물병에 수돗물을 채웠다. 누런 녹물이 어둠에 자신을 감춘 채 물병 속에 채워졌다. 물병을 제자리에 두곤 미미는 냉장고 속을 뒤졌다. 휴지로 대충 덮어놓은 그릇에는 붉은 빛을 읽은 김치가 들어있었다. 김치에 코를 가져댄 미미의 미간이 휴지처럼 구겨졌다. 미미는 김치가 들어있던 그릇도 싱크대에 던져 넣었다. 유리가 깨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냉장고에는 먹을 수 있는 것들이 남아있지 않았다. 달걀에선 누린내가 진동했고 반쯤 남은 우유팩에선 하수구 냄새가 났다. 미미는 인형을 다시 꼭 쥔 채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티비에선 어른들이 웃고 떠들었다. 텔레비전의 웃음소리가 커질수록 미미는 인형을 더욱 꼭 쥐었다. 인형에 침이 튈까 고개를 돌려 기침을 했다. 지는 해처럼 천천히 감기는 눈으로 미미는 인형에게 말했다.

 

안나. 언제 와?

왜 안와?

 

안나 는 빛나는 갈색 머리칼을 한 것 뽐내고 있었다. 기품이 넘쳤고 항상 눈을 똑바로 떴으며 술도 마시지 않았다. 아이들에게 친절했고 요리도 잘했다. 검은색 가죽재킷이 누구보다 잘 어울렸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울고 있는 미미의 얼굴을 닦아 주었고 끌어안아 주기도 했다. 안나 에게 선 항상 달콤한 향기가 났다. 미미는 안나의 품에 안겨 하염없이 울었다. 안나 는 울고 있는 미미의 등을 두드려 주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달콤한 목소리로 귀에 노래도 불러주었다. 미미는 눈을 비비며 안나의 두 눈을 거울삼아 손끝으로 눈물을 닦았다. 미미가 울음을 그치자 안나 는 미미를 둔 채 빛 속으로 걸어 나갔다. 미미는 쫒아가려 했지만 두 발이 족쇄라도 찬 듯 땅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미미는 다시 울음을 터트리며 안나를 불렀지만 안나 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미미는 멀어지는 안나에게 욕을 해댔다. 악을 지르며 욕을 하고 금세 다시 사과를 해도 안나 는 뒤 돌아 보지 않았다.

 

눈을 뜬 미미는 텔레비전 불빛에 얼굴을 찡그렸다. 이불속을 휘저으며 인형을 찾았다. 베개 밑에서 나온 인형을 침을 발라가며 정성스레 닦아댔다.

 

녹이 슨 문고리가 격하게 흔들리는 소리에 미미는 몸을 떨었다. 문 앞에 둔 화분이 옆으로 쓰러지는 소리가 났다. 미미는 얼른 이불 속에서 빠져나와 안방으로 들어가 문을 잠갔다. 2평 남짓한 방에는 작은 탁자와 옷장만 이 덩그러니 자리하고 있었다. 바닥은 시멘트 바닥마냥 찼다. 미미는 옷장 속으로 들어가 눈을 감았다. 옷장에는 아직까지 여자 옷이 몇 벌 걸려있었다. 색이 변질 된 가죽재킷에선 싱크대 속과 비슷한 냄새가 났다. 밖에서 냉장고가 열리는 소리와 유리병이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미미는 칠흑 속에서 손을 휘저었다. 아무거나 잡히는 옷가지로 기침이 나오는 입을 틀어막았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옷가지에서 곰팡이 내가 났다. 옷가지를 입에 물고 두 손으론 인형을 쥔 채 미미는 두 눈을 꼭 감았다. 거실의 괴물은 티비를 보며 술을 병째로 들이켰다. 땅콩을 씹어대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괴물은 소주를 들이켜다 말고 안방으로 다가와 문고리를 흔들었다. 문이 열리지 않자 문을 두들기며 소리를 쳐댔다.

 

애비가 왔는데 인사도 안 해?

무서운 년 지어미랑 똑같은 년.

너 같은 거 낳는 게 아니었어.

 

유리가 깨지는 소리가 나고 쾅쾅대는 소리와 함께 문이 흔들렸다. 미미는 입을 더 세게 물었다. 옷가지가 침에 흠뻑 젖었다. 부서질 듯 흔들리던 문은 몇 분 뒤 잠잠해 졌다. 괴물은 지쳤는지 거실로 돌아가 새 소주병을 땄다. 술은 언제나 냉장고에 있었지만 항상 부족했고 괴물은 술이 부족해지면 잠을 잤다. 잠에서 깨면 다시 술을 사러 나갔다. 그것의 반복이었다. 미미는 어둠속에서 귀를 쫑긋 세웠다. 텔레비전소리만 계속해서 들리자 조심히 옷장 안에서 나왔다. 한기가 미미를 덮쳤다. 미미는 옷장 속에서 냄새나는 가죽 재킷을 꺼내 몸을 넣었다. 팔을 다 넣었지만 옷의 팔꿈치 부근 까지 밖에 닿지 않았다. 발목 언저리까지 옷이 길게 늘어졌다. 미미는 작게 기침을 했다. 소매를 최대한 끌어올려 손을 간신히 빼냈다. 문을 열고 거실로 나가는데 유리 조각들이 발에 밟혔다. 미미는 신발 끝으로 그것들을 한데 모았다. 초록색 유리조각들이 바닥에 흉터를 남기며 모였다. 미미는 모인 조각을 손에 담아 싱크대 안으로 던졌다. 거실에선 술에 취한 아빠가 코를 골며 자고 있었다. 미미는 반쯤 남아있는 소주병의 뚜껑을 찾아 닫곤 바닥에 널브러진 땅콩들을 집어 쪽쪽 빨아먹었다. 티비의 볼륨을 최대한으로 줄이고 미미는 살금살금 집을 빠져나왔다. 조심스럽게 대문을 닫고 쓰러진 화분을 피해 발을 떼었다. 밖에는 땅거미가 지고 있었다.

미미는 계단을 내려오다 추위에 떨고 있는 쥐에게 땅콩을 하나 던져 주었다. 쥐는 눈앞에 땅콩을 그저 멍하니 바라보며 바닥에 축 늘어져 있었다. 1층에는 인부처럼 생긴 사람들이 안전모를 쓴 채 담배를 피워대고 있었다. 미미는 고개를 푹 숙이곤 그들 곁을 지나갔다. 인부들이 미미를 이상하게 쳐다보곤 저기 아이야 하고 불렀지만 미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뛰어 나갔다. 집 앞의 놀이터로 간 미미는 모래사장 위에 쪼그려 앉았다. 깜빡이는 가로등이 간헐적으로 미미를 비추었다. 두 개의 시소는 서로 다른 방향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미미는 모래위에 꿈에서 본 안나의 모습을 그렸나갔다. 단단히 얼은 모래는 안나의 손가락으로 잘 패어지지 않았다. 미미는 손에 입김을 불어가며 모래에 그림을 그렸다. 형체를 알아 볼 수 없는 그림 옆에 미미는 엄마라고 꾹꾹 눌러 썼다. 작은 돌 알갱이들이 손에 박혀 피가 흘러 나왔다. 미미는 손끝을 쪽쪽 빨며 미끄럼틀 위로 올라갔다. 세 칸뿐인 계단 옆에는 남자아이들이 좋아하는 그물망이 계단처럼 설치되어 있었다. 미끄럼틀을 기구의 양 끝에 나있었다. 하나는 코끼리의 코가 그려져 있었고 다른 한 쪽엔 기린의 목이 그려져 있었다. 기린의 목은 코리끼 코보다 높이가 조금 높았다. 두 미끄럼틀을 오갈 수 있는 곳에는 작은 징검다리가 놓여 있었다. 미미의 신발만한 작은 나무 발판은 쉽게 흔들렸지만 그 밑은 뻥 뚫린 대신 안전한 나무판자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미미는 징검다리를 건너 원형 통으로 생긴 코끼리 코 속으로 들어갔다. 철로 된 코끼리 코는 시리도록 차가웠다. 미미는 그 속에서 인형을 꼭 끌어안은 채 두 무릎을 가슴팍에 대고 쪼그려 앉았다. 꿉꿉한 냄새가 미끄럼틀 안에서 조용히 퍼져나갔다. 코끼리 코 속에서 미미의 옅은 숨소리가 울렸다. 그 속에선 작은 소리도 크게 울려 퍼졌다. 미미는 자신의 기침소리에 놀라며 감기던 눈을 떴다. 입김을 내뿜으며 발목에서부터 지퍼를 채워 올렸다. 낡은 재킷의 지퍼는 여기저기 삐걱대며 잘 올라오지 않았다. 미미는 모래가 묻은 손으로 낑낑 대며 지퍼를 올렸다. 재킷은 미미의 무릎을 가지런히 모으며 지퍼가 채워졌다. 미미는 재킷과 몸 사이에 인형을 넣어 놓곤 지퍼를 끝까지 올렸다. 인중까지 온 지퍼에선 쇠 냄새가 가득 했다. 미미는 쇠 냄새를 맡으며 피비린내를 떠올렸다. 혀끝을 지퍼에 가져가 댔다가 부르르 몸을 떨었다. 미미는 공처럼 몸을 웅크린 채 눈을 감았다.

 

안개가 뿌옇게 낀 놀이터에서 미미는 술래잡기를 했다. 술래는 코끼리 코 속에 있는 미미를 보고서도 그냥 지나쳤다. 아무도 미미를 찾지 못했다. 가만히 몸을 웅크린 채 숨어있던 미미는 아무도 자신을 찾지 못하는 것이 두려워

나 여기 있어.

하고 소리쳤다. 몇 번을 소리쳐도 아무도 미미를 찾아 내지 못했다.

나 여기 있단 말이야.

나 여기 숨어 있다고.

미미는 소리쳤다. 안나도 술래도 보이지 않았다. 미미는 울음을 터뜨렸다.

시린 바람에 미미는 눈을 떴다. 밖은 한층 더 어둠을 껴입고 있었다. 미미는 보도블록의 빨간색 벽돌만 밟으며 총총 걸었다. 다음 빨간색 벽돌이 너무 멀리 있을 땐 그 곳까지 깽깽이걸음으로 뛰어갔다. 아파트 단지를 벗어나자 미로 같은 골목들이 나왔다. 골목에는 집들이 머리카락처럼 촘촘히 붙어있었다. 집들 사이로 몇몇 가게들이 불을 밝히고 있었다. 간판이 없으면 그냥 집으로 보이는 가게들이었다. 미미는 슈퍼 앞에 서서 진열 된 호빵들을 바라보았다. 호빵 기계는 기관차처럼 김을 내뿜고 있었다. 미미는 멍하니 공중에서 사라지는 연기들을 바라보다 슈퍼 주인이 미미를 슬쩍슬쩍 바라보기 시작 할 때쯤 다시 걸음을 옮겼다. 가로등의 빛깔에 따라 골목들은 옷을 바꿔 입었다. 어느 골목은 붉은 색이었고 어느 골목은 주황색 이었다. 겨울의 골목길은 죽어가는 나무마냥 황량했다. 도둑고양이들은 쓰레기봉투를 사정없이 뜯어 거리를 더럽혔다. 미미는 어둠속에서 빛나는 고양이의 두 눈을 보곤 달려갔지만 달려가 보면 이미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미미는 골목을 몇 바퀴 돌다 집으로 돌아섰다. 엘리베이터 에는 강제철거로 시작되는 큰 대자보가 붙여있었다. 미미는 엘리베이터를 뒤로 한 채 계단을 뛰어 올라가다 다시 내려와 검은 쥐를 살폈다. 바닥에 너부러진 쥐는 끝내 미미가 던져준 땅콩을 눈앞에 둔 채 정지해 있었다. 죽은 쥐 주위로 파리들이 날아다녔다. 미미는 슬금슬금 걸어가 땅콩을 다시 주워 입안에 넣었다. 땅콩을 쪽쪽 빨며 계단을 뛰어 올라갔다. 대문 앞에서 귀를 기울이자 집안에서 티비소리가 흘러나왔다. 미미는 떨리는 손으로 문고리를 돌렸다. 집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미미는 웃으며 거실로 뛰어 들어갔다. 이불 속으로 들어가 몸을 한 것 웅크리자 따뜻함이 몸을 감싸 안았다. 미미는 이불을 몸에 둘둘 감은 채 이리저리 기어 다니며 바닥의 땅콩들을 주워 먹었다. 몇 개의 땅콩에는 소주 맛이 배여 있었다.

 

교실의 교사처럼 혼자 떠드는 텔레비전 속에선 드넓은 초원이 비춰졌다. 맹수들은 무료한 듯 거대한 송곳니를 벌리며 하품을 해댔고 독수리 들은 흉측한 날개를 활짝 편 채 하늘에서 아래를 노려보았다. 수를 가늠하기 힘들 정도의 누 때 들은 무질서 하게 몰려 다녔다. 시커먼 누 때 들은 빨간 신호등을 마주한 것 마냥 강가 앞에서 발을 굴렸다. 날리는 흙먼지가 강을 덮을 것 만 같았다. 악어들은 도둑마냥 눈을 물 밖으로 빼곤 유유히 헤엄쳤다. 새끼 누 한 마리가 강 속으로 달려들었다. 물보라가 휘 몰아쳤다. 다른 누에 비해 반 정도밖에 되는 않는 새끼 누는 몇 걸음 가지 달리지 못하고 악어의 입에 앞발을 물렸다. 톱니처럼 빼곡한 이빨은 누의 다리에 깊게 박혔다. 누는 울부짖으며 뒷발을 버둥거렸지만 버둥거릴수록 물가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악어는 몸을 이리저리 비틀며 누를 물속으로 끌고 들어갔다. 누는 커다랗고 둥근 눈으로 자신의 무리를 바라보았다. 그들은 물속으로 낙하하는 악어를 뒤로 한 채 힘차게 강을 건넜다. 새끼 누는 처량한 눈빛으로 어미를 바라보았다. 어미는 새끼에게 다가가 아직 성한 뒷다리를 한번 핥아 주더니 새끼를 뒤로 한 채 재빨리 강을 건넜다. 새끼 누는 멀어지는 어미를 보며 물속으로 침몰했다.

 

미미는 텔레비전을 꺼버렸다. 금세 집안이 고요해졌다. 윙윙거리며 울리는 냉장고 소리만이 소음을 내 뱉었다. 갑자기 박차며 열린 대문에 미미는 두 눈을 크게 떴다. 얼른 이불에서 빠져나와 안방으로 뛰어가는데 손에 인형이 없었다. 미미는 다시 이불 속으로 뛰어가 인형을 찾아 헤맸다. 인형을 손에 꽉 쥔 채 안방으로 뛰어가는데 미미의 뒤통수를 거친 손이 덮쳤다. 미미는 바닥에 널브러진 채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기침이 사정없이 튀어나왔다. 어둠 속에서 다시 손이 튀어 나왔다. 미미는 네발로 기듯이 거실로 도망쳤다. 이불속으로 들어간 미미는 울음 섞인 목소리로 울부짖었다.

잘못했어요.

잘못했어요,

다신 안 그럴게요.

다신 안 그럴게요.

이불 위로 발길질이 날아 들어왔다. 안나의 목이 꺾여나갔다. 미미는 목이 흔들리는 인형을 두 손으로 꼭 쥔 채 눈을 감았다. 괴물은 이불을 들춰내고 안나를 들어 올렸다. 괴물에 숨결에는 짙은 알코올 냄새가 배여 있었다. 초점 없는 두 눈은 흔들리고 있었다. 미미는 허공에 발을 휘저으며 몸부림 쳤다. 괴물을 미미를 이불위에 던져 놓곤 몇 번 더 발길질을 해댔다.

 

내 눈 앞에서 사라지라고 한 지가 언젠데 아직도 기어들어와.

네 년 눈을 볼 때마다 피가 거꾸로 솟아.

 

미미는 입천장에서 흘러내리는 피를 삼키며 이불에 고개를 파묻었다. 피 냄새와 악취가 코로 흘러 들어왔다. 괴물은 오랑우탄처럼 자신의 가슴을 퍽퍽 쳐댔다.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미미를 내려다보던 괴물은 미미의 손에 쥐어진 인형을 뺏어들었다. 미미는 자식을 빼앗긴 부모처럼 애절한 표정을 지으며 괴물에 다리에 들러붙었다. 괴물은 발을 거세게 휘저으며 인형을 싱크대 속으로 집어 던졌다. 미미가 비명을 질러대자 괴물을 미미의 턱을 거세게 걷어찼다. 미미는 악취 나는 이불위에서 정신을 잃었다.

 

눈을 떴다는 것은 인지하기에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미미는 어둠속에서 눈을 끔벅였다. 집안은 고요했다. 눈이 어둠에 익자 앞이 희미하게 보였다. 기침을 할 때마다 가슴 속이 쓰라렸다. 미미는 마룻바닥에 코를 박고 토를 했다. 역한 물과 피비린내가 입안을 가득 메웠다. 미미는 절뚝이며 싱크대로 걸어갔다. 싱크대에서는 여전히 썩어가는 음식들이 내는 냄새들이 협주곡처럼 뒤섞여 있었다. 미미는 서랍을 밟고는 싱크대로 기어 올라갔다. 싱크대로 손을 집어넣어 마구잡이로 헤집었다. 손에는 인형이 잡히지 않았다. 무엇에 찔린 건지 피가 손가락에서 맺혀 나왔다. 미미는 신경 쓰지 않고 고개를 처박고 싱크대를 뒤졌다. 머리의 무게 탓에 몸이 점점 앞으로 기울었다. 미미는 구겨지듯 싱크대 속으로 처박혔다. 싱크대 속에서 미미는 악어에 물린 새끼 누 마냥 몸을 바동거렸다. 이리저리 몸을 움직일수록 미미는 더욱 싱크대 속으로 구겨 들어갔다. 미미에게선 막 썩기 시작한 음식의 냄새가 풍겼다. 미미는 몸을 한 것 웅크리곤 눈을 감았다. 기침소리와 함께 엄마를 불렀다. 아무도 대답해 주지 않았다. 미미는 두 눈을 꼭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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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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