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8차 창작콘테스트 단편소설 부문 [ 여름의 나 ]

by Cherry930 posted Mar 19,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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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나

 

 

 

 

 

 

 

목차

 

01 14.7

02 1.0714

03 210000000.5

04 10.3

05 18.8384.20

06 1109.1837.1915_11.0919.15.1989

07 N.0203

 

 

 

 

 

 

 

 

 

01 14.7

 

 

언제부터였는지 모를 기억의 나날이었다. 나는 학교 운동장의 한 가운데에 서 있었고, 학교는 넓은 들판 가운데에 있었으며, 들판은 내가 모르는 사실 아무도 모르는 곳에 놓여져 있었다. 나는 내가 누군지 모른다. 하지만 그것에 대해 의문점을 가지지 않는 것이 나의 무언의 원칙이자 약속이다. 내 기억은 더 이상 진행되지 못한다. 굳이 진행시키려 하지 않는 건 나의 의지임에 나는 내 기억 속에 살지 못하고 추락한다. 날개를 잃은 새가 날지 못하듯이, 기억을 잃고 버림받은 나는 추락하고 있다. 그게 내 운명인 듯 양 받아들이는 나는 A.

 

 

, , , , , , . 6월의 여름은 내가 제일 싫어하는 여름이다. 후덥지는 않으나 애매하게 더운 것이 사람의 신경을 긁어놓는다. 5월에 들어서고 더위를 가장 많이 타는 7번 여자애가 하복을 입고 부채를 들고 나서부터 2학년 3반은 벌써부터 여름 준비를 하기 시작한다. 나는 부채를 꺼내 들었다. 학교 앞에서 받은 학원 부채는 한 번 쓰고 버리기에 아주 좋다. 조그맣고 가벼운 게 오늘 하루 딱 쓸 수 있는 상태다. 팔락, 팔락, 팔락, 팔락. 이곳저곳에서 부채를 부치는 소리가 들려온다. 개중에는 집에서 가져온 커다란 부채로 애들과 다 같이 부치는 애들도 존재했다. 나는 맨 뒷자리에 앉아 미술 학원 이름이 써져있는 면으로 부채를 움직이기 시작한다. 창문 쪽에 앉은 건 내 의지가 아닌 제비뽑기였을 테다. 창문 반까지 올라간 블라인드가 바람에 못 이겨 펄럭거린다. 좀 더 낮은 위치였다면 내 앞자리의 14번 남자애의 머리를 쳤을지도 모른다. 나는 아무래도 상관없다 아직까지는 차가운 나무 책상에 얼굴을 들이밀어 협의 온기를 찬찬히 낮췄다. 선풍기라도 가까우면 부채질 따위 하지 않아도 좋을 텐데 어째 된 건지 한 번도 나는 선풍기 쪽에 앉은 적이 없다. 이건 내 손이 문제인지 뭐가 문제인지 한 번 더 선풍기 가까이에 앉은 적이 없다. 앉았다고 해도 겨울이었으니 나는 운이 없는 게 분명하다. 누가 봐도 불편한 자세로 엎드려 오른 손으로 부채질을 천천히 수동적으로 움직인다. 삼 분만 움직여도 귀찮고 팔이 아픈 건 나만 그런 건 아니 였는지 애들 모두 양 손을 번갈아 움직인다.

 

 

배고프다.‘

 

나도.“

 

지금 몇 교신데?“

 

몰라.“

 

앞자리의 14번 남자애와 짝인 7번 여자애가 서로 부채질을 해주며 재잘거린다. 재잘 거린다 보단 일방적으로 7번이 14번에게 물어보고 그 대답을 기다리는 형식이다. 14번은 말 수가 없다. 아마 2학년 3반에서 가장 말 수가 없는 사람을 고르라고 하면 14번일 터이다. 그 와 다르게 7번은 말 수가 많다. 여름을 가장 빨리 알아차리고 준비를 하는 7번에게 부채는 필수 용품이었다. 14번이 말 수가 없다고 해서 낯가림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친구가 많은 편에 속했고 그런 14번만큼 7번은 활발한 성격에 친구가 항상 옆에 존재했다. 가만히 엎드려 14번의 등을 눈에 담았다. 14번은 농구를 했다. 키가 큰 편에 속하는 14번은 중학생 때부터 농구를 했고 그 덕에 고등학교에 와서도 농구부에 들어 농구를 지속했다. 운동도 잘하고 얼굴도 되고 성격까지 괜찮다고 소문난 14번은 학교에서 인기 있는 애들 중 하나이다. 나는 그런 14, 7번과 한 번 대화를 나눠봤던 걸로 기억한다.

 

 

너 자리 여기야?“

 

,“

 

창문 바로 옆이네.“

 

 

14번과 7번은 어쩌다보니 거의 항상 자리가 붙었고 이번이 4번째였을 테다. 나는 항상 14번의 뒷자리에 앉게 되었고 그 덕에 14번의 등을 항상 마주했고 웃는 7번의 옆모습을 자주 눈에 담을 수 있었다. 7번은 웃는 게 참 예뻤다는 것, 그게 나의 14.7번 기억이다.

 

 

 

 

 

02 1.0714

 

 

7번은 자주 웃었다. 7번은 웃을 때 입 꼬리가 샐쭉 올라가고 눈꼬리가 예쁘게 접힌다. 7번의 웃음소리는 듣기 어렵다. 웃을 때는 많지만 웃음소리를 내뱉지 않는 것이 7번의 원칙인 듯 했다. 언젠가 한 번 나는 7번이 우는 것을 눈에 담은 적이 있다. 2학년 7반쪽에 있는 계단을 올라가던 중 구석에 쪼그려 앉아 울음소리를 내는 7번을 나는 마주해 있었다. 7번은 울 때 소리를 낸다. 웃을 때조차 소리를 내지 않았던 7번은 울 때는 조그맣게 소리를 내며 운다. 7번은 매미를 닮았다. 여름의 한 순간에만 짝짓기를 하고 죽어버리는 매미. 7번은 울 때가 여름이다. 자신의 마지막을 아는 것 마냥 맴, , , 맴 우는 매미처럼 7번은 자신의 마지막을 아는 것처럼 울어버린다. 나는 그런 7번을 다만 눈에 담고 돌아선다. 7번에게 다가오는 1번이 눈에 보여 뒤 돌아 섰다는 건 내 속에 묻기로 다짐한다.

 

 

7번의 짝은 항상 14번이다. 4번의 자리를 바꿀 때 동안 7번의 짝은 14번이었다. 다른 애들 같으면 바꿔 달라고 난리를 쳤을 테지만 7번과 14번은 별 다른 말없이 자리가 정해진 대로 앉았다. 7번과 14번이 짝일 때 항상 7번의 오른 쪽 자리에는 1번이 앉아 있었다. 1번은 2학년 3반의 맨 처음 번호다. 출석 번호를 부르면 맨 처음으로 불러지는 것도 1번이다. 하지만 1번은 출석 번호를 부를 때 먼저 대답하지 않는다. 1번은 우리가 통칭 말하는 양아치다. 미성년자가 담배를 피거나 술을 마시고 친구에게서 돈이나 금품을 뜯거나 왕따를 시키고 학교를 나오지 않는 등 몰상식한 행동을 서슴없이 하는 사람 혹은 학생을 양아치 또는 비행청소년이라 부른다. 1번은 그런 비행청소년이라 한다. 1번이 학교에 나왔는지 안 나왔는지는 출석 번호를 부를 때 들어난다. 반의 가장 먼저 불러지는 번호를 가지고 있었다는 게 그래서 더 잘 들어난다는 게 그게 1번이 비행청소년 짓을 하는데 불편을 겪게 만들었다. 2학년 3반의 담임은 1번의 번호로 1번에 저장 놨다. 하도 자주 연락을 해서 그런지 2학년 3반의 담임이 교실에서 전화를 한다면 거의 1번에게 전화를 했을 터였다. 그런 1번이 학교를 꼭 나오는 날이 있었다. 한 달에 한 번 2학년 3반이 자리를 바꾸는 날 1번은 그 날 학교에 꼭 나왔다.

 

 

너 자리 여기야?’

 

.”

 

우리 또 짝이네?”

 

 

7번과 14번이 짝이 되고 그 옆에는 1. 자리를 바꾸고 앉을 때가 되면 1번은 7번을 노려보고는 교실 밖으로 나갔다. 정확히는 학교 밖을 나간 게 맞는 말이다. 나는 창문으로 고개를 가까이 해 밖으로 나가는 1번을 눈에 담았다. 바람이 세게 불었다, 앞머리 때문인지 햇빛 때문인지 내 앞에 앉아있는 14번의 키 때문인지 1번이 눈에 들어오려다 벗어나버렸다. 하나 눈에 들어왔던 건 1번의 눈이 되게 슬퍼보였다는 것. 다른 곳에서 눈을 담았던 건 1번이 쪽지를 펼칠 때 7번의 이름을 중얼거렸다는 것이었다.

 

 

 

 

 

03 210000000.5

 

 

2학년 3반에는 연인이 있다. 5번과 21번은 1년 넘게 사귄 연인이었는데 전교 학생이 반 애들이 알만큼 이름이 있는 커플이었다. 아이들은 5번과 21번을 오작교라고 부른다. 자주 만나고 그럼에도 왜 오작교라는 부르는지 의문을 가지는 애들도 있었지만 그런 의문에도 5번과 21번은 오작교 연인이라 불렸다. 5번은 털털한 성격이었다. 활발하고 털털하고 사교성도 좋은 성별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인기가 많은 5번은 외모도 반반한 애다. 그의 연인인 21번은 5번과 달리 정반대의 성격을 가지고 있는데 키는 5번보다 크지만 이미지는 5번과 달랐다. 5번과 21번은 항상 같이 등교했다. 길고 흑색의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는 5번은 등교할 때는 머리를 푸른 상태였고 교실에 도착해서는 21번이 5번의 머리카락을 묶는 보기 드물었던 연인이었다. 나는 5번과 21번을 보며 21번이 5번을 더 좋아한다는 생각이 매번 들었다. 5번은 누구에게나 인기가 많아 보였으니, 이건 나만 든 생각이 아닐 터이다.

 

 

너 쟤랑 왜 사귀냐? 취향 참 특이해.”

 

여리 여리한 애가 좋지 않냐?”

 

5번이 아무리 인기가 많지만 그렇다고 21번이 아예 꿇리는 정도는 아니였기에 나는 21번이 다른 반의 친구들과 대화 하는 걸 들은 적이 있다. 쓰레기 소각장으로 가는 학교 뒤 편, 5번과 21번은 서로를 마주하고 있었다. 견우와 직녀는 77, 즉 칠석에 만날 수 있다. 견우와 직년 이 날 단 하루 오작교를 통해 만날 수 있게 되는데 그 날 단 하루만 만날 수 있고 다른 날은 못 만나고 이별하게 된다는 슬픈 이야기다. 5번과 21번은 견우와 직녀다. 말 그대로 견우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 21번과 직녀라는 이름을 가진 소녀 5. 애들은 그 둘을 슬픈 연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2학년 3반의 견우와 직녀 5번과 21번은 5번이 21번을 사랑하는 마음이 너무 커 오작교가 만들어지기 76일이 견우를 만나려고 해 떨어져버리는 바람에 21번은 5번의 사랑을, 애정을 모른다. 21번은 그런 5번의 마음도 모르고 기다리고 기다리다 다시 돌아오는 77일에 5번을 다시 마주한다.

 

 

있잖아 내가 많이 생각해 봤는데.”

 

까마귀 하나

 

소여 너는 애들한테 인기가 많잖아.”

 

까마귀 둘

 

나는 아닌 것 같아서 하는 말이야.”

 

까마귀 셋

 

내가 너한테 맞춰 갈 때까지 조금만 시간 좀 줄래?”

 

까마귀 넷

 

 

견우와 직녀 사이의 간격이 좁혀진다. 5번과 21번은 다시 77일이 되는 그 날 다시 만나기로 약속한다. 5번이 21번 손을 잡는다. 5번과 21번이 끼고 있던 반지가 빛났다. 나는 그 둘을 보고 견우와 직녀라고 더 이상 칭하지 않겠다. 둘은 둘일 뿐이다. 521번이 행복하기 위해서는 21번이 했던 말을 조금만 더 뒤로 미뤄두는 것이 예의라고 생각해버린다. 까마귀 세 마리를 더 찾기에는 그 둘에는 시간이 얼마 없으니. 21000000.5

 

 

*

 

 

A의 기억이 잠시 숨을 잃었다. 굳이 다시 쉬려고 하지 않았다. 눈을 겨우 뜬 A의 앞에 퍼즐 조각 하나가 시야에 들어왔다. A가 손을 뻗어 퍼즐 조각을 손에 쥐었다. A의 손에 잡힌 퍼즐 조각은 억지로 끼워 맞춰진 듯 A의 손에서 벗어나려 손을 계속해서 찔러댔다. A도 놓치고 싶지는 않았는지 퍼즐 조각을 손에 꽉 쥐었다. 그런 A가 다시 눈을 감는다. A의 기억 속에 누군가의 등과 하복을 입은 여자애와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와 까마귀들 사이의 연인이 지나간다. A는 그 기억을 쫓아간다. 느렸던 걸음을 서서히 빠르게 옮겨 거의 뛰듯이 따라간다. 조금만, 조금만 더, 조금, , .

 

 

누군가의 기억인지도 모르는데.”

 

그렇게 잡고 싶을까.”

 

네 기억이 아니 여도 속에 품고 싶을까.”

 

 

A가 의문의 목소리에 대답하지 않는다. 숨을 죽인다 그러면서도 웃는다.

 

 

 

 

 

04 10.3

 

 

여름이 지나가고 있다. 그렇다고 해도 겨우 6월 초라는 건 더위를 잘 타는 7번이 고통스럽게 학교를 다녀야하는 것도 아직 많이 남았다는 것이다. 나는 6월의 여름을 제일 싫어 했으므로 7번과 같은 생각으로 여름을 보내고 있었다. , , , . 매미는 질리지도 않은지 계속해서 울기를 반복했다. 창문 쪽이라 그런지 매미 소리를 더 크게 울려왔다. 선풍기 바람 한 점 오지 않는 자리지만 창가라 그런지 밖에서 가끔 불어오는 바람은 다행히 약간의 열기는 식힐 수 있었다. 6월의 열기는 7월과 8월 보다는 아니지만 애매한 열기가 사람을 더 짜증나게 하는 경향이 있다. 나 역시도 그게 싫어 6월을 싫어한다. 모두 붙기 싫어하는 애들 사이에서 딱 붙어 있는 3번과 10번은 반 애들의 이상한 눈초리를 받기 충분했다. 3번의 갈색 단발머리가 10번의 어깨에 걸쳐 졌다. 2분단의 중간에 앉은 3번과 10번을 보며 애들은 하나같이 선풍기 바람 덕분에 붙어 있는 거라고 입을 모아 말했지만 그 둘은 자리가 떨어져도 선풍기와 가까이 앉아있지 않아도 자주 붙어 있었다. 3번은 꽤나 왜소했다. 키도 작은 편이고 마른 것에 가까워 툭 치면 툭 쓰러질 것만 같았다. 그런 3번은 나에게 유독 관심이 많았다.

 

 

좋아하는 색이 뭐야?”

 

좋아하는 계절은?”

 

좋아하는 음식 있어?”

 

 

그런 자신의 물음에 대답을 하지 못하는 나를 보며 웃던 3번은 자신을 데리러 오는 10번의 손에 이끌려 나가는 경우가 많았다. 10번은 큰 키를 가지고 있다. 말 수가 적고, 무뚝뚝하며 감정 표현이 적은 애였다. 애들은 전혀 다른 성향을 가지고 있는 애 둘이 어떻게 저리 잘 지내지하며 궁금해 했지만 3번과 10번 둘 다 아무 말 하지 않았다. 10번은 맨 끝자리인 내 자라에서도 잘 보인다. 표정까지 세세하게 보이지는 않지만 가끔 7번이 뒤에 서서 선풍기 바람을 쐬러 가면 내 시야에는 10번의 표정이 눈에 들어온다. 10번은 3번을 되게 사랑스러운 눈으로 바라본다. 얼핏 보면 그저 친구를 바라보는 듯이 보지만 그 표정은 절대 3번 제외 아무에게도 보여주는 표정이 아니었다. 아무 소중한 것을 차마 만지지 못해 바라보기만 하는 사람의 표정을 10번이 하고 있었다. 6월의 열기가 10번과 3번에게는 통하지 않는지 둘은 꼭 붙어 있는다.

 

 

덥다.”

 

여름이니까.”

 

아이스크림 사먹으러 가자.”

 

내일 사줄게.”

 

아님 그냥 밖에 나가자.”

 

덥다면서.”

 

 

언제부터인지 3번은 10번에게 요구하는 것이 부쩍 늘었다. 요구하는 것 보단 이거 하자, 저거 하자라는 물음이 많았지만 10번은 그런 3번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듯이 그런 요구가 있을 시 족족 바람맞히기 일 수였다. 10번은 3번이 해달라는 것 모두 해줄 줄 알았던 것은 내 착각이었던 것 같다. 그런 10번이 그럴 때마다 틱틱 거리던 3번은 그럼에도 10번 옆에 꼭 붙어 있었다.

 

 

3번은 어느 날부터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정확히는 못했다가 맞는 말이다. 3번은 아픈 애였다. 3번이 없는 10번의 옆은 텅텅 비어 있다. 등교부터 하교 할 때 까지 붙어 있었으니 10번의 옆자리는 유독 텅텅 비어 있었다. 3번이 나오지 않기 시작한지 4일 째 하교 하는 내 시야에 들어온 건 3번과 10번이었다. 3번은 물이 뚝뚝 떨어지는 머리카락을 한 채 10번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10번의 협은 붉어진 채로 3번을 마주했다.

 

 

왜 아프다고 미리 말 안 했어.”

 

너가 알 필요는 없었으니까.”

 

내가 왜 알 필요가 없는데!”

 

 

10번의 언성이 높아졌다. 3번이 놀란 표정으로 10번을 응망하다 뒤로 주춤 물러섰다. 그런 자신도 놀란 건지 급하게 3번을 잡았다. 3번의 눈가가 점차 붉어지다 못해 새빨개졌다. 당황한 10번이 3번의 시야에 맞춰 무릎을 굽혔다. 3번의 목소리가 떨렸다. 작은 입을 열어 천천히 말을 내뱉는다.

 

 

네 미래에는 내가 없어. 나는 널 구원 할 수도 없어. 우리의 미래에는 내가 없어. 우리는 함께 할 수 없어. 더 이상 나한테 의지하려고 하지마 응?”

 

 

3번은 못 알아들을 것만 같은 말만 내뱉으며 10번의 협을 제 조그만한 손으로 매만졌다. 10번이 그대로 고개를 숙여버린다. 그런 10번을 3번이 끌어안는다. 조그만한 몸이 10번을 다 품에 안는다. 나는 차마 그 둘에게 다가갈 수 없다. 건들이면 무너질 것 같았던 건 3번이 아니라 10번이였기에. 10번의 구원은 3번이라고 한다. 그런 3번은 10번의 미래에 함게 할 수가 없어 구원하지 못한다고 한다. 3번의 품에 안겨 있던 10번이 3번의 어깨에 고개를 묻으며 웅얼거린다.

 

 

아무것도 안 해도 좋아 그냥 내 곁에만 있어줘 미안해.”

 

 

 

 

 

05 18.8384.20

 

 

체육 시간이었다. 6월의 체육시간이라니 그것도 운동장에서 하는 체육은 최악 중의 최악이다. 손을 뻗어 햇빛을 가려보지만 작정하고 여름을 끌고 온 건지 도통 가려지지 않는 햇빛이다. 운동장 벤치에 앉아 양반다리를 한 채 햇빛을 겨우 피했다. 여자애들, 남자애들 상관 없이 뛰노는 사이에 유난히 더 뛰어 다니는 두 명의 학생이 있었다. 18번과 20번은 누구보다 격렬히 운동장을 이리저리 뛰어 다녔다.

 

 

쟤네는 안 지치나봐.”

 

저러다 일찍 죽어.”

 

어우 더워 보기만 해도 더워 죽겠다 야.....”

 

 

순서대로 3, 10, 7번이다. 제 어깨에 기대고 있는 3번에게 부채질을 해주던 10번이 뒤에 앉아 있는 7번의 찡얼거림에 공감하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도저히 18번과 20번이 체력을 따라잡지 못하겠는 5, 21, 14번 등 여러 애들이 나가 떨어졌다.

 

 

견우야 너 얼굴 엄청 빨개 무리한 거 아니야?”

 

머리 다 풀어졌다 이리와.”

 

 

애들이 하나 둘 씩 벤치 쪽으로 모여들었다. 물을 마시거나 부채질을 하거나 서로의 어개에 기대 잠을 청하는 애들까지 휴식을 취한 애들과 달리 18번과 20번은 둘이 내기를 했던 건지 서로 공을 잡으려 흙먼지를 일으키면서 뛰어다니기 바빴다. 그러다 18번의 발에 걸린 듯한 20번이 데구르르 굴렀다. 순간적으로 벤치에 있던 애들도 입을 다물어 정적만이 흘렀다.

 

 

아 존나 아프겠다...”

 

야 괜찮아?”

 

 

걱정스러운 목소리의 7번과 14번이 20번을 향해 내질렀다. 넘어진 채로 가만히 있던 20번이 괜찮다는 듯이 손을 흔들었다. 애들은 모두 20번을 데리러 나가지 않았다. 옆에 서 있던 18, 18번이 없다.

 

 

야 물 있냐.”

 

 

18번은 어느 순간 내 옆에 앉아 뻔뻔시럽게 물을 달라는 듯 손을 뻗었다. 그런 18번을 바라보던 애들의 표정은 또 그래?, ? 라는 표정 즉 한 두 번도 아니라는 듯이 쳐다보고는 몇 명이 20번을 데리러 나갔다. 멀리서 들려오는 20번의 험한 욕은 못 들은 척 하자.

 

 

2학년 3반에서 아니 전교에서 18번과 20번은 천적으로 유명하다. 이름부터 천적 관계인 게 들어날 정도인데 그 둘도 그 사실을 아는 건지 복도든 어디든 잘만 싸운다. 둘이 가장 자주 싸울 때는 체육시간인데 어디서 계속 나오는 승부욕인지 끊임없이 붙는다. 그러다 시비가 붙는 경우가 있는데 그 시발점은 거의 항상 18번이다. 뛰던 애에게 발을 걸고, 공으로 맞추고 유치할 정도로 괴롭히는데 그걸 반응 하는 20번은 쉬지도 않고 반응한다. 그러다 다시 돌아온 체육시간 오늘도 마찬가지로 한바탕 싸우던 18번과 20번이 서로를 노려보다 20번이 먼저 그 곳을 벗어난다. 더 반응해야 하는 게 원래였을 텐데 6월의 열기가 18번의 열을 이겨버린 건지 20번이 순순히 18번과 떨어져 운동장 한 구석의 개수대로 발걸음을 옮겼다. 나는 그런 20번이 가는 걸 그대로 눈을 옮겨 따라갔다. 반바지를 입고 체육에 임하는 20번이여서 그런지 지금까지 넘어진 게 눈에 한 번에 들어왔다. 새빨개져서 이곳저곳 상처가 나 있는 무릎과 다리. 퍽 가까운 곳이 여서 그런지 한 눈에 들어왔다. 20번은 다리를 절뚝거리며 개수대로 가까이 걸음을 옮겨 녹슨 손잡이를 돌려 물을 틀어냈다.

 

 

.”

 

야 사람이 부르면 대답을 해.”

 

!”

 

 

18번이 20번의 뒤를 따라갔다. 가뜩이나 큰 목소리로 20번을 부르니 애들의 시선이 그 쪽으로 옮겨갔다. 그 시선이 느껴진 건지 18번이 큼큼 헛기침을 하다 20번과 간극을 좁혔다. 물이 나오는 곳에 거의 머리를 들이 밀어 넣은 20번은 18번의 물음과 부름에도 아무 말이 없다. 차가운 물이 20번의 목 끝까지 적셨다. 보기만 해도 차가운데 20번은 얼마나 차가운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 한참동안 물을 맞던 20번을 18번이 답답했던지 목덜미를 잡아 당겼다. 20번의 낯이 무감각했다. 아무것도 담기지 않은 표정으로 18번을 마주했다. 거의 귀찮아서 반응조차도 하기 싫다는 듯이 18번을 응망하다 벗어나려는 듯이 18번의 팔을 쳐 냈다. 한숨을 한 번 내쉬더니 개수대 위에 있던 제 겉옷을 챙겨 18번 어깨를 치고 지나갔다. 18번이 당황한 듯이 20번을 노려봤다. 긴 팔로 20번의 팔을 잡아 당겼다. 언제 온 건지 옆에 앉아있던 7번이 궁시렁 거렸다. , 저거 드라마에서 나오는 장면 아니냐?

 

 

너 사람이 부르는데 왜 무시 하냐고.”

 

작작해 새끼야 그만 좀 건들이라고 피곤해 죽겠으니까.”

 

야 그딴 식으로 말하지 마 먼저 시작한건 너였어. 나 건들대로 건들여 놓고 이제 뭐? 그만 해? 나는 너 없으면 누구랑 있어야 하냐고. 애들이 그러더라 네 날개를 꺾은 건 나라고. 개소리 하지 말라 그래 네가 내 날개를 꺾었겠지 호.”

 

 

애들은 말한다. 둘은 이름부터 천적이라고. 나비의 이름을 가지고 있는 호와 꺾다 는 뜻을 가진 완. 애들은 완이 호의 날개를 꺾었다고 그래서 괴롭히는 라고 하지만 애들과 우리는 알지 못한다. 호가 완의 날개를 꺾었다는 것을. 나는 7번을 데리고 돌아가는 길 주저앉아 있는 완을 안아주는 호의 등에서 나비 날개를 본 것 같았다.

 

 

 

 

 

 

06 1109.1837.1915_11.0919.15.1989

 

 

한 번도 바다 위를 구경해 보지 못한 인어공주는 자신의 15번째 생일에 물 밖을 구경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고 바다 위 구경을 나선다. 공주는 마침 바다 위를 항해 중이던 왕자를 보고 첫눈에 사랑에 빠진다. 그때 폭풍이 일어 왕자가 탄 배는 침몰하고 공주가 정신을 잃은 왕자를 구해낸다. 인어공주는 왕자의 곁에 있고 싶어서 자신의 목소리를 마녀에게 주는 대신 사람의 몸을 얻어 왕궁에 들어가서 시녀가 된다. 그러나 왕자는 벙어리인 인어공주가 자신을 구해준 생명의 은인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 채 이웃 나라의 공주와 결혼하게 되고, 낙심한 인어공주는 슬퍼하며 바다 속으로 몸을 던져 죽게 된다. 이게 원작의 인어공주다. 하지만 아이들의 동심을 위해 만든 건 인어공주가 목소리를 되찾고 왕자와 결혼하게 된다고 한다. 사람들은 읽을 때 왕자와 인어공주에 대해서만 집중해서 읽는다. 하지만 나는 인어공주를 읽을 때 마녀와 이웃나라 공주에 대해 생각해보기로 한다. 마녀는 왜 자신의 마법 약으로 목소리를 예쁘게 만들면 될 텐데 왜 굳이 인어공주의 목소리를 담보로 했어야했던 걸까, 목소리만 있었다면 왕자에게 사실을 말하고 왕자와 결혼을 했을 텐데.

 

 

애매모호하게 더운 6월이 지나고 본격적인 하기가 시작되었다. 아직 경복이 오지 않았을 터인데 더위를 심하게 앓는 7번은 죽을 지경이었다. , , , , , , . 마지막이 다가 오는 걸 알고 있는 것인지 매미가 더 심하게 운다. , , , , 드르르르륵, ! 시끄러운 매미 소리에 신경질이 난 14번이 내 옆의 창문을 탁하고 닫았다. 그 소리에 움찔거리는 내가 자신의 시야에 들어 온 건지 흠칫거리며 나를 잠시 바라보다 내가 아무 반응 없이 창문만 바라보니 몸을 돌려 다시 7번과 대화하듯 몸을 돌렸다. 매미 소리가 들리지 않아 잠시 적막해진 교실에 방금 틀기 시작한 에어컨이 돌아가는 소리가 반에 울렸다. 공기가 서서히 차가워져왔다. 아무도 나가지 않는 2학년 3반 반 애들 덕인건지 아무도 열지 않은 문에 차가운 공기가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한각이 느껴졌다. 살갗에 한기가 돌았다. 가만히 엎드려 창에 시선을 뒀다. 얼마 동안 가만히 유지되어있던 내 초점이 흔들렸다. 붉은 머리카락에 내 시야에 들어왔다. 아마도 이 머리카락의 주인은 9번의 소유일터. 9번은 붉고 긴 머리카락이 내 앞을 왔다갔다 거리다 멈춰 섰다. 9번의 까무잡잡한 팔이 내 시야에 들어왔다 나갔다. 드르르르륵. 블라인드를 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천천히 내려온 블라인드가 내 머리와 같은 높이에서 멈췄다. 몸을 천천히 일으켜 목을 천천히 돌렸다. 내 목의 뼈 소리가 들렸던 건지 놀란 표정의 9번이 나와 눈이 마주쳤다. 별거 아닌 듯이 9번을 바라보고 어깨를 으쓱였다. 그제서야 9번이 내 옆을 지나 7번 앞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나는 점심시간에 농구하러 간 14번과 그런 14번을 따라간 7번이 자리를 비우면 그 앞의 11번과 9번을 볼 수 있다. 11번은 교내에서 소문이 퍽 좋지 않은 아이다. 무슨 의미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닥 가까이 지내는 애들은 없어 보이나 최근엔 9번과 자주 붙어있던걸 볼 수 있었다. 11번이 과학실에서 개구리 실험을 하고 시체를 버리지도 않고 칠판이 테이프로 붙여놨다는 둥 이상한 소문이 많이 돌았다. 9번은 19번을 많이 좋아한다. 어쩌다 우연히 눈이 마주쳐 잠깐 동안 썸을 탔다고 했는데 19번이 아파서 보건실에 갔을 때 혼자 있던 19번을 챙겨 준건 9번인데 우연히 보건실에 들어온 15번이 자신을 챙겨준 거라고 생각해 그 전에도 19번에게 호감이 있었던 15번이 덕을 보게 되었다고 한다. 그때 혼자 보건실에서 울던 9번을 챙긴 게 11번이라고 하는데 그 때부터 붙어있었던 것 같다. 19번과 15번이 웃으면서 반으로 들어왔다. 그런 그들을 보던 9번이 책상에 자그마한 소리를 내며 엎드려버렸다.

 

 

어쩌다가 옥상 청소를 걸린 나는 빗자루와 쓰레기통을 들고 옥상으로 향했다. 무거운 철문을 열기 위해서 교복 셔츠에서 열쇠를 꺼냈더니 문이 열려있다. 같이 청소하기로 했던 7번이 왔나싶어 빗자루와 쓰레기통을 손에 쥐고 어깨로 무거운 철 문을 밀어열었다. 듣기 싫은 소리를 내며 열린 문은 녹슨지도 오래된건지 열린 상태 그대로 굳어버렸다. 쓰레기통을 옥상 창고 옆에 두고 빗자루를 오른 손에 잡아 쓸기 시작했다. 오 분 쯤 지났을까 사람의 말소리가 들려와 창고 모서리로 가 기웃거렸다.

 

 

이딴걸로 죽겠다고?”

 

너가 무슨 상관인데?”

 

내가 도와준다고 했잖아.”

 

너가 날 어떻게 도와줄건데.”

 

옥상 난간 끝에 선 9번과 그 앞에 선 11번이였다. 그 다음 내용은 들리지 않았다. 나는 그 둘을 냅두고 쓰레기통을 다시 주워 옥상을 벗어났다. 나는 그 둘을 인어공주와 마녀라고 칭하겠다. 마녀는 이번 생에는 인어공주를 살릴 수 있을까.

 

 

 

 

 

07 N.0203

 

내 기억 속에서 나는 내 모습을 볼 수 없다. 내 기억 속 나는 누구인지, 어디서 사는지 어느 것도 알 수 없다.

 

 

 

 

 

 

무더운 여름이었다. 내 옆자리에서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그 바람은 그 애가 웃을 때 불어온다.

나는 그 바람을 사랑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네 기억의 끝에는 내가 있어. 우리가 너를 찾으러 갈게 너는 그 곳에 있어.”



이유경

ruseon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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