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내골 호랑이
권형균
우리 부모님은 자주 싸우셨다. 그러다가 어느 날, 엄마 말로는 아빠와 이제 만날 수 없다고 했고 엄마 홀로 나를 키우기 어렵다고, 엄마의 엄마 집이 있는 시골에 보내시며 언젠가는 돌아올테니 꼭 기다려달라고 내 손등에 눈물 도장을 찍으시며 떠나가셨다. 엄마는 정말 내가 8살 때가 되니 돌아오셔서 눈물 도장을 찍으신 손등 위에 ‘참 잘했어요.’라고 속삭이는 다른 눈물 도장을 찍어주셨다. 그 후 엄마 손을 꼭 잡고 도착한 곳은 범일동에 위치한 교통부라는 곳이었다. 그곳에 자리한 새 우리집은 시골 할머니 집과는 다른 아늑한 향기가 났다. 오랫동안 떨어져 있었으면서도 어색함 없는 엄마처럼.
“엄마, 이곳이 범일동이란 곳이야?”
“응, 앞으로 우리가 살게 될 곳이야. 잘 기억해둬.”
엄마는 짐을 정리하시면서 문득 생각이 나신 듯 뒤를 돌아보시며 나에게 말씀하셨다.
“범일동이란 지명의 이름이 어디서 유래된지 알아?”
“몰라.”
“아들, 범일동이란 지명의 이름은 호랑이에서 유래되었어요.”
“호랑이?”
“응. 호랑이. 예전에, 아주 오래전에 이 곳에는 호랑이가 많이 있었대. 그래서 사람들이 이 곳을 ‘호랑이 범’자를 써서 범일동이라 불렀고, 그 외에도 범내골이라는 지명의 이름도 그런 유래였지. 아마?”
“범내골? 호랑이? 엄마, 정말 이곳에 호랑이가 살았어요?”
“물론이지, 옛날에는 요즘처럼 바닥에 돌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나무와 풀이 무성했지. 그래서 호랑이가 살기에 적합했을 거야. 하지만 지금은 못살지.”
이유는 무엇인지 물었는데 엄마는 ‘우리’때문이라고 말하셨다. 나는 알 듯 말듯한 의문을 품은 채 창문 너머로 보이는 노을을 바라보며 엄마와 같이 저녁을 먹었다. 노을이 숙어들어가는 모습은 마치 호랑이 같아 보였다. 범내골이 어디에 위치하는지 묻자, 엄마는 노을이 지고 있는 풍경의 한 빌딩 숲을 가리키셨다.
다음날 점심을 먹고 나는 아직 초등학교에 입학 하기 전이라 시간이 많았기에, 심심해서 밖에 나갔다 온다고 엄마에게 말해드린 후 범내골을 향해 걸어나갔다. 육교를 건너면서 시골에서 돌다리를 건너던 것과는 다른 밑의 풍경에 신기해하고, 자동차길을 향해 손을 뻗으면 다시는 되돌아올 수 없을 듯한 느낌을 체험할 수 있었다. 육교를 건너니 커다란 나선을 그리는 웅장한 철구조물을 볼 수 있었다. 저 위에는 아마 나비가 쓰러져 있을 것 같았다. 나비를 구해주러 시골에서 나무타기를 했듯이 올라가고 싶었지만, 구조물에는 나뭇가지가 없었기에 오를 수 없었다. 자동차 지나가는 소리는 정말 시끄러웠고, 구조물 밑에는 기찻길이 있어 가끔씩 이곳은 마찰과 마찰이 맞붙어서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질 것 같았다.
새우등 터지기 전에 얼른 그곳을 지나 저 끝에 범내골역표지판이 보이는 쭉 뻗어있는 길을 따라 쉬엄 쉬엄 걸어갔다. 더 가까이서 표지판을 보니 내가 선 이곳이 바로 범내골임을 알 수 있었다. 왜 호랑이들 살지 못하는지 눈을 뜨고 확인할 수 있었다. 시골에서 많이 보았던 풍경과는 달리 시끄럽고, 차들이 막 지나가고, 사람들이 아무렇지 않게 침을 뱉고, 호랑이는 가만히 못있는 성격일텐데 빨간불이 켜지면 멈춰서 있어야하고……. 아무튼 도시란 곳은 매우 복잡한 곳이었다.
나는 역 바로 앞에 있는 신호등을 건너 앞의 커다란 병원을 지나 오른쪽의 마을 버스정류소 쪽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계셨다.
나는 대뜸
“저기 호랑이가 어디있어요?”
라고 말하자 할아버지께서는 눈을 동그랗게 뜨시며 반가운 표정으로 대답해주셨다.
“호랑이는 어두운 굴 속에 있단다.”
“어두운 굴은 어디에 있어요?”
“어두운 굴은 우리도 모르는 곳에 있겠지?”
할아버지는 수수께끼를 하듯 말씀해주셔서 호랑이가 어디사는지 정확히 알아낼 수 없었다. 하지만 그 옆에 계신 이 광경을 지켜보고 계셨던 할머니께서는 ‘호호호’ 하시며 새로운 정보를 말씀해주셨다.
“밤이 다 될 때 쯤에 호랑이가 나타나는데, 그 때가 되기 전까지 애야, 얼른 집에 들어가렴. 호호호”
나는 두손 모아 고개 숙여 ‘네, 알겠습니다’라고 말대답을 한 후 할머니의 말씀과는 정반대로 밤이 될 때까지 호랑이 굴을 찾기로 결심했다. 그 때가 될 때까지 찾지 못한다면 굴에서 조용히 잠자고 있던 밖으로 나온 호랑이를 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범내골역 주변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범내골의 큰길, 많은 길이 붙어 있는 길, 골목길만큼 작은 길의 풍경을 눈에 익혔다. 그러면서 시골 산 속에서 놀면서 보았던 큰 동굴을 기억해냈다. 그곳은 춥고 어두운 곳이라 끔찍하게 느껴졌다. 그런 곳에서 잠자고 있을 가여운 호랑이를 생각하니 나는 지칠줄 몰랐다. 하지만 왠지 불길한 기운이 엄습했고 그것은 초라해 보이는 낯선 길목에 다다랐을 때였다.
“어어? 이곳에 왜 집만 있을까?”
나는 이러한 의문을 품고서 이상한 썩은 냄새가 나는 하수구를 바라보며 저곳에 호랑이가 사는 것은 아닌지 의심을 하였다.
“호랑아 거기 사니?”
하지만 아무리 귀기울여 보아도 호랑이의 숨소리 또는 코고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혹시 지나쳐온 하수구 속에 호랑이가 사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에 왔던 길을 다시 천천히 되돌아가면서 고개 숙이며 소리에 집중하였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차가 많이 다니는 큰 길의 하수구 속에는 잠을 자지 못할 것 같았고, 비가 내릴 때마다 온 몸에 쓸려내려간 오물과 더 심한 악취가 묻을텐데 그곳에서 잠을 자지는 않을 것 같았다.
해는 하늘 높이 솟아 있었다. 책이나 말로만 들어보았던 사막이 떠올랐다. 나는 마치 어린왕자 이야기 속의 여우를 만나러가는 중인 것 같았다. 왠지 이야기를 나누면 호랑이와 친구가 될 것 같고, 나의 마음과는 다르게 흘러가는 도시 속에서 사람과 사람이 친해진다는 것의 마음을 일깨워줄 것 같았다.
나는 절대 호랑이가 뱀은 아닐 것이다 생각했다. ‘분명 호랑이는 사막의 여우일 것이야, 왜냐하면 색깔도 주황색이고 귀도 있고, 물론 뱀이 스며든 것 같은 검은 줄무늬가 있어서 무섭긴 하지만 간사하지 않고 용맹하니까... 분명 여우처럼 따뜻한 존재일 것이야’
“그리고 분명 나를 좋아하겠지...”
나는 도시가 솔직히 무서웠다. 아이들과 친해지고 싶은데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겠고, 어떻게 친해질 수 있는지 등등 ‘길들인다’는 것에 대해 모르는 것 투성이었다.
나는 분명 할머니에게 길들여졌다. 할머니는 나에게 항상 다가와 주셨고, 엄마와 떨어져 많이 서운했던 나를 보며 밝게 웃어주셨다. 나는 요구하는 법을 알았지만, 먼저 다가가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할머니를 통해 어느정도 알 것만 같지만, 아는 것을 행동하는 것이 되게 무서웠다.
어느덧 시간은 오후 4시가 되어 있었다. 마치 시골에서 보물찾기 놀이를 했었을 때와 같이 시간가는 줄 몰랐기에, 시간이 이렇게 되어버린 것에 대해 신선했고, 그 신선함은 도시에 온 이후 처음으로 느낀 것이었다. 하지만 주변의 사람들을 보니 나만 재미있는 것 같았다. 무표정으로 걷는 사람들도 있었고, 옷이 많은 건물 안에서 따분한 표정을 짓고 있는 사람들고 있었고, 신나게 쌩쌩 달리는 차 안에서도 표정이 무거운 사람들이 있었다.
“호랑이는 어떤 표정일까? 도시 속에서는 누구나 행복한 표정이지 않은 것일까?”
말을 끝낸 순간 떠오른 사람들이 있었다. 아까 나에게 호랑이에 대해 알려주시던 마을버스정류장에 계셨던 할머니와 할아버지들. 그 분들은 나를 보시더니 환하게 웃으셨다. 나중에 집에 갈 때 피곤할 테니 마을 버스를 타기 위해, 그곳을 다시 한번 가봐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아마 지금 쯤 엄마가 나를 찾고 계시진 않을까 생각도 해봤지만, 역시 호랑이는 꼭 보고가야겠다고 다짐을 했다. 이렇게 오랫동안 집에 들어가지 않고 있으니 아빠가 떠올랐다. 아빠도 찾을 것이 많으셨나보다. 집에 들어오셨을 땐 늦은 밤이라 엄마에게 잔소리를 많이 들으셨고, 많이 싸우셨다. 그 때의 기억과 부모님의 이혼은 나에게 큰 상처가 되었다. 호랑이는 혹시 나같은 아이들을 위해서 밤마다 나타나는 것일까. 시골에서 생활할 때 외할머니께서 요즘 세상엔 이혼이 허다하니 부끄러워 여기지 말라고 일러주셨다. 나같이 상처받은 아이들을 위해 부모는 얼른 일찍 집에 들어가도록 밤에 나와 어흥거리나보다. 반드시 오늘 호랑이를 만나 고맙습니다라고 인사해줄 것이다.
다리는 지칠대로 지쳐있었고, 어딘가의 골목 집 앞에 앉아버렸다. 문득 시골에서의 생활이 그리워졌다. 그곳에서는 어떤 집 앞에 앉아있으면 그 집 어른들께서 나오셔서 먹을 것을 주시곤 하셨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주시곤 하셨다. 그런데 이곳은 분위기가 침침하고 으스스한데다, 산안개가 아니라 공장 매연이 섞여 있는 듯 했다. 나는 더워서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어졌다. 그 때 집 주인 아주머니께서 나오셔서 ‘집에가지 않고 집 앞에서 뭐하니’라고 물으셨다. 나는 ‘호랑이를 찾아요.’라고 밝게 말해드렸지만, 쓸데없는 짓 하지말라는 꾸중만 듣고, 주시는 시원한 물 한잔 마시고 그곳을 떠나버렸다.
왠지 시골로 돌아가고 싶었다. 집 앞에서 무언가를 얻어먹을 때마다, 집 안쪽에서 들렸던 정 많은 목소리도 들을 수 없었고, 집도 무척 높았고, 강과 산안개도 가까이서 볼 수 없었고, 무엇보다 시끄러웠고, 짙게 화장을 한 사람들은 마치 호랑이의 검은 줄무늬를 흉내낸 듯 공격적으로 보였다. 그리고 서로에게 으르렁거리듯 험담을 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고개를 숙이고 내가 여기 왜 왔을까 생각을 하였다. 엄마는 우리가 배우기 위해선 이곳에 꼭 와야한다고 이야기 하셨지만, 도시에서 배울 것은 책 속에만 있을 것 같았다. 시골에서는 책으로도 배우고 책 밖에서 사람들과 이야기하면서 배워나갔지만, 여기는 이야기 하기가 무서웠다.
좀 더 어두워진 골목길을 나와 도로변 다다르니 해가 숨 멎을 듯한 주홍빛으로 물든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 주변에는 검게 그림자가 드리워진 빌딩 숲들이 보였다. 엄마가 많이 기다리고 있을거라는 생각에 그냥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호랑이란 그냥 쥘 듯 말듯한 햇살처럼 결국은 손에 쥐어지지 않고 떠나가는 것이라 생각했다. 떠나가는 노을빛을 멍하니 바라보다 그곳에서 호랑이를 만날 수 있었다.
“어..., 저기 호랑이네”
노을빛 가죽에 검은 빌딩색 줄무늬 특징을 띈 종(種)이었다. 쇠창살 안에 갇힌 듯 얼굴을 드러내지 않았다. 얼굴을 보러 빌딩 숲 속에 다시 들어가려 했으나 또 다시 길을 헤매게 될까봐 선뜻 들어가기가 무서웠다. 그게 아니라, 그곳에는 호랑이에게 다가가는 길은 없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도시 최후의 빛이 점점 멀어져가자 마치 호랑이 가죽을 벗겨내고 색을 칠해서 만든 것 같은 빌딩의 노란 인공빛이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다. 혼의 껍데기는 다 벗겨진 듯한 노을은 도시를 어둠 속으로 침몰시켰다. 이제 호랑이도 보았겠다 내가 선택해야할 길은 오직 집으로 돌아가는 길 뿐이었다. 아까 전의 노을을 떠올리니 엄마 생각이 났다. 나와 떨어져 도시에서 지내시는 동안 가죽이 벗겨지는 것 같은 아픔을 겪을 셨을 엄마. 만약 아빠가 범내골에서 노을을 보신다면 다시 집으로 돌아오시지 않을까.
버스정류장은 어두침침했고 할머니, 할아버지는 보이지 않았다. 엄마가 보고싶어졌다. 도시 속의 밤은 너무나 외로웠고, 아빠도 계셨으면 좋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다시는 외롭지 않게 우리 가족이 모두 다 함께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부릉 부릉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가는 길에 창 밖을 내다보았다. 창밖은 여전히 자동차 바퀴 긁히는 소리에 시끄러웠고, 집으로 가는 길 또한 조용하지 못했다. 그래도 집으로 간다는 것의 아늑함은 맛볼 수 있었다. 마을버스에서 내려 좁은 골목길을 들어가 우리집에 다다르니 집 앞에서 울고 있는 엄마를 볼 수 있었다. 발소리에 얼룩진 얼굴을 천천히 드셨다.
“......아들! 어디갔었니. 흐...흑...”
“저 놀다 왔어요.”
나는 순진무구하게 그냥 그랬다고 대답해드렸고, 엄마의 눈물에 마음이 미안해졌다.
그날 나는 얼른 씻고 잠자리에 같이 드러누워 유리창에 보이는 별빛 초롱초롱한 밤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어린왕자가 생각이 났다. 마지막에 별을 바라보며 쓰러지는 어린왕자처럼 나는 어딘가 있을 나의 별로 돌아가고 싶었고, 나도 모르게 잠 들곤 호랑이 그림을 들고 도착한 작고 소박하지만 아늑한 나의 별에서 노을이 44번 지는 것을 본 후 나에게로 날아온 소리치는 철새 무리들의 음악처럼 경쾌한 울음소리에 기분 좋게 도시에서의 두번째 잠을 깨었다.
권형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