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농담
여기 슬픈 농담이 있다.
“내가 널 왜 낳았을까?”
어릴 적, 엄마가 종종 하던 농담이었다. 농담이라는 건 대화를 매끄럽게 이어주는 것인데 엄마가 그런 말을 할 때면 공연히 서먹해지곤 했다. 하루 종일 우울하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농담을 할 줄 몰라서 그저, 이런 생각만을 했다.
정말 날 왜 낳은 거야, 엄마.
천장이 울렁거렸다. 사방의 벽이 적연히 흘러내렸고 침대는 서서히 나를 빨아들이려 했다. 어린 아이가 멋대로 가지고 논 아이클레이처럼 지저분한 색상이 산란하게 뒤섞인 방이었다. 나는 몸부림치며 침대에서 벗어났다. 그리고 젤리 같은 바닥을 걸었다. 걸음은 전신거울 앞에서 멈췄다. 벌거벗은 거울속의 나. 앙상하게 말라 갈비뼈가 훤히 들여다보였고 팔다리는 잔 나뭇가지 같았다. 살가죽은 붙어 있었으나 그뿐, 해골과 다를 바가 없었다. 머리는 부스스한 장발이었고 손톱과 발톱이 짐승처럼 길었다. 태어난 이래로 단 한 번도 보살핌을 받아보지 못한 모습이었다. 내가 다가가자 움찔했다. 나는 나를 따라하지 않는 거울속의 나를 꾸짖었다. “똑바로 해. 남들 다 하는 걸 너는 왜 못하냐는 말이야!” 거울속의 나는 웅크려 앉아 팔로 머리를 감쌌다. 그게 최선의 방법이라는 듯이. 저항이나 반박이란 단어는 알지도 못하는 것 같았다. 할 줄 아는 거라곤 숨고, 움츠리고, 자신을 부정하는 것뿐이었다. 나는 나에게 손을 뻗었다. 속절없이 파르르 떨기만 하는 나. 내가 다가갈수록 거울은 더욱 불안해했다. 표면장력을 넘어선 종이컵 위의 물처럼 마구 일렁이다가 쩌적, 소리를 내며 금가기 시작했다. 이어 날 선 유리조각이 얼굴로 날아들었다.
눈을 뜨자 천장의 하얀 벽지가 보였다. 당연하지만 모든 게 온전하게 굳어 있었다. 나는 상체를 일으켜 세우고 숨을 골랐다. 등이 축축했다. 꿉꿉한 침대를 가만히 쓸어보다가 잠옷을 훌렁 벗어 빨래 통 안에 던져 넣었다. 전신거울에 시선이 갔다. 거울 속에 비춰지는 내 방의 모습이 더없이 평온해보였다. 어쩌면 그런 척을 하고 있는 건지도 몰랐다. 나는 괜히 거울을 피해 욕실로 갔다. 욕실에서도 거울 쪽으로는 곁눈질조차 하지 않았다. 요즘 같은 꿈을 반복해서 꾸면서 거울을 보는 게 껄끄러워졌다. 처음에는 혹시나, 하며 확인하듯이 거울을 들여다보고는 안도하는 내 자신과 마주했지만 차츰 그 모습마저 한심하게 느껴졌다.
“얼빠진 놈.”
샤워기를 틀자 아버지가 어젯밤 했던 말이 쏟아져 나왔다. 거나하게 취한 상태에서도 어째서인지 정확한 발음이었다. 차가운 물줄기가 무방비한 맨몸을 후벼 팠다. 나는 흠칫하며 물의 온도를 높였다. “언제까지 네 형한테 가려져 살 거냐. 너는 뭐냐, 그늘이냐?” 이번엔 너무 뜨거웠다. 갑작스럽게 올라간 온도에 적응을 못했다. 서서히 수온을 맞춰가며 왜 아버지가 뜬금없이 그런 말을 했는지 생각했다. 별안간 비틀거리며 방에 들어와서는, 웃겨보라고 하던 아버지. 내가 입을 꾹 다물고 있자 난데없이 나를 힐난하기 시작했다. “재주도 없는 놈. 형처럼 공부라도 잘하면 말을 않지.” 드디어 딱 맞는 온도가 됐다. 아, 내가 웃기지 못해서 그런 거였구나.
<유머대백과>. 서점에 갔다가 그 책을 발견하고는 바로 이거다, 하고 집어 들었다. 그 책이 사회생활에 서툰 비즈니스맨들을 위한 자기개발서라는 걸 깨달았을 땐 이미 포장지가 너저분하게 뜯겨나간 뒤였다. 환불도 못하고 이걸 어쩌나, 하며 왼손으로 턱을 괴고 책을 훑어보다가 슬그머니 두 손으로 책을 잡게 되었다.
-감정표현이 서투른 당신! 우울하다는 소리를 듣는 당신! 표정의 변화만으로도 많은 것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당신! 이라고 할 때마다 내게 직접적으로 말하는 것 같아 혼자 뜨끔했다. 책에 의하면 웃음은 바이러스 같은 것. 크게 웃을수록 타인의 엔도르핀을 자극할 수 있다고 했다. 또한 칭찬은 전제조건. 상대방의 기분을 들뜨게 만들면 어설픈 농담을 하더라도 유쾌하게 웃어주는 상황을 연출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곧장 펜과 메모지를 꺼내어 한 문장 한 문장을 소중하게 받아 적었다. 메모지가 채워질 때마다 무언가 속에서 부푸는 것 같았다. “부장님, 오늘따라 더 멋지시네요? 하하하!” 껄껄 웃는 최 부장과 하하 웃는 김 대리의 캐리커처 그림이 꼭 아버지와 내 모습처럼 보였다.
1) 타이밍을 놓치지 말 것.
그날은 호시탐탐 배운 것을 써먹을 기회만 엿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손에 땀이 차 메모지가 하물하물했다. 하루 종일 머뭇거리다보니 어느새 저녁시간까지 오고 말았다. 숟가락이 밥그릇을 때리며 덜그럭거렸고 찌개가 보글보글 소리를 내며 끓고 있었다. 형은 피곤한 듯 눈곱 낀 눈을 끔뻑거렸고 아버지는 고집스럽게 오징어포볶음에만 젓가락을 가져갔다. 새삼스레 깨닫는 거지만 참 시시한 식사시간이었다. 아, 내가 이렇게 무료하고 딱딱한 분위기 속에서 밥을 먹고 있었다니. 드디어 나의 농담이 나설 차례가 온 것이다. 농담을 하는 거다, 내가, 사상 최초로. 그런 생각을 하자마자 갑자기 몸이 굳어가기 시작했다. 뭐 그렇게 대단한 일인가 생각하면서도 다리가 떨렸다. 은수저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식은땀도 흐르는 것 같았다.
탁,
그때 엄마가 된장국을 식탁에 내려놓았다. 나는 정신을 차렸다. 타이밍을 놓치지 말 것. 메모지에 적었던 문장들이 입 꼬리에 매달려 나와 줄다리기를 했다.
“와, 된장국이 맛있게 잘 됐는데? 가게 차려도 되겠어!”
덜컥 말해놓고 보니 생각보다 괜찮은 농담이었다. 타이밍에 군더더기가 없었다. 무엇보다 엄마를 칭찬했다는 점이 좋았다. 이로써 나도 유머러스한 사람으로 자리매김하게 된 것이다. 나는 엄마가 화사하게 미소 지으며 평범한 가족이라면 으레 주고받는 장난스런 말들이 오고 가기를 바랐다. 그러나 나를 바라보는 엄마의 표정은 화사하기는커녕 장마철 빨래걱정을 하는 사람마냥 우중충했다.
“지금 사람 놀리니?”
아뿔싸. 나는 아직 숟가락도 들지 않았다.
“아… 아니…….”
처음부터 잘 되길 바란 건 아니었지만 이건 가만히 있느니만 못했다. 덩달아 나를 뚱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던 아버지와 형이 다시 밥을 펐다. 잠깐 바닥에 깔려 있던 고요가 식탁보를 타고 올라와 더 짙게 떠다녔다. 나는 무안을 숟가락에 꾹꾹 담아 퍼먹었다.
“아들.”
감자조림에 젓가락을 가져갈 때였다. 형은 숟가락질을 멈추고 엄마를 바라봤고 엄마도 자기 아들을 바라봤다. 둘은 이번 시험에 관해 이야기했다. 나는 테니스시합 관중처럼 두 사람의 대화를 지켜보았다. ‘말’이라는 공이 식탁 위에서 오갔다. 나는 언제라도 공이 오면 칠 수 있도록 혀끝에 라켓을 달아놓고 있었다. 그러나 관중을 향해 공을 때리는 선수는 없었다. 형은 장남이니까, 형은 수험생이니까. 이해할 수 없는 건 아니었다. 다만 아들, 하고 불렀을 때 당연히 형이라고 생각한 내 자신이 싫었다. 감자조림을 입안에 넣고 씹었다. 싹눈이 났는지 약간 씁쓰레한 맛이 났다. 아버지는 나를 슥 보더니 내 컵에 물을 따르고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안방으로 들어가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눈으로 좇다가 물을 들이켰다. 씁쓸함이 조금 가셨다.
더부룩했다. 언젠가 종이를 씹으면 소화에 도움이 된다는 얘기를 들은 기억이 있었다. 나는 펼쳐져 있던 유머대백과를 조금 찢어 입속으로 구겨 넣었다. 종이는 금세 침에 녹아 눅눅하게 뭉쳤다. 나는 어금니에 달라붙은 종이뭉치를 윗니로 으깨며 찢어진 페이지를 읽었다.
-상대방의 농담에 웃어주지 않거나 진담을 농담으로 여겨 실없이 웃을 경우 최악의 사태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그 밑으로 진중한 표정의 최 부장과 천진난만한 미소를 한 김 대리의 캐리커처가 그려져 있었다.
“김 대리, 자네 해고일세.”
“하하, 부장님, 농담도!”
나는 김 대리를 가만히 응시했다. 눈치가 없는 것인지 생각이 없는 것인지. 아니면 속은 덜컥 내려앉았는데 애써 내색하지 않고 있는 것인지. 무엇이든 나는 김 대리의 표정이 싫었다. 묘하게 나를 닮은 탓도 있었다. 충동적으로 그 페이지를 구겼다. 주름 가득한 김 대리의 미소. 한결 나았다. 치이익- 경쾌한 파찰음을 내며 김 대리가 두 동강 났다. 나는 책을 찢고, 찢고, 또 찢었다. 이 쓸모없는! 작은 외침이 방안에서 메아리치다가 다시 내게로 돌아와 꽂혔다. 하릴없는 성가심이 몰려왔다. 나는 반쯤 찢겨 너덜너덜한 책을 바닥에 던져두고 침대에 쓰러졌다. 배가 살살 아파왔다. 입안의 종이는 어느새 다 녹아 사라지고 없었다. 졸음이 왔다.
쿵, 쿵, 쿵. 거대한 발소리 같기도 했고 무언가 무너져 내리는 소리 같기도 했다. 발작적이면서도 일정한 진동이 공간을 지배하고 있었다. 주변은 어둑했고 천장과 바닥의 경계가 모호했다. 나는 초승달모양으로 구부정하게 누워 공간의 크기를 헤아려보았다. 손을 뻗는 순간 부스럭 소리와 함께 벽면이 닿았다. 딱딱하지 않고 얇아 힘을 주면 뚫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검은 벽은 아무리 발버둥 쳐도 달라붙고 늘어나기만 할 뿐이었다. 벽면을 건드릴 때마다 싸르륵, 싸르륵 하는 소리가 고막을 괴롭혔다. 나는 몇 차례를 더 발악하다가 단념했다. 별안간 암모니아 냄새가 훅 끼쳤다. 이윽고 공간 자체가 크게 뒤틀리며 어딘가로 내던져졌다. 등허리가 휠 것 같은 통증이 느껴졌다. 그만 다 포기하고 싶었다. 손가락 하나도 꿈쩍하기 싫었다. 그때 어디선가 아기 울음소리가 들렸다. 응앙응앙. 가는 목소리는 갈수록 작아지더니 이내 들리지 않게 되었다.
2) 상대방의 상황을 배려할 것.
퍼뜩, 눈을 뜨고 몇 분을 멍하니 있었다. 핸드폰을 켜 시간을 확인했다. 1시 23분. 잠을 잘못 자서 허리가 뻑적지근한 것보다, 아침을 먹지 못한 것보다, 날씨가 우중충한 것보다, 이 시간이 되도록 아무도 깨우러 오지 않았다는 사실에 힘이 빠졌다. 그래, 학교도 빠지고 좋지 뭐, 스스로에게 위안의 말을 건네며 이부자리를 갰다.
형은 거실 소파에 앉아 있었다. 별 일이었다. 비가 오는 날이면 종종 학교를 가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긴 했지만 평소처럼 방에 틀어박혀 책이나 들여다보고 있을 줄 알았다. 나는 이 시간에 일어나 어기적어기적 기어 나온 동생을 보고 형이 어떤 잔소리를 할지 조마조마했지만 형은 내 쪽으로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나는 괜스레 무안해하며 슬그머니 형의 곁으로 가 앉았다. 형이 보고 있는 건 사진이었다. 테이블 위에 잡동사니들이 상자마다 분류되어 있는 걸 보니 방청소라도 한 모양이었다. 나는 슬쩍 사진을 들여다봤다. 어릴 적 찍은 가족사진이었다. 시골집이 배경이었고 초점은 짐을 한 아름 이고 있는 형에게 맞추어져 있었다. 그 오른쪽에서 엄마 아버지가 대견스러운 표정으로 형을 바라보고 있었고 나는 그 반대편에서 간신히 얼굴 반쪽만 사진의 틀 안에 들어와 있었다.
“가끔 네가 부럽다.”
형의 감상평이었다. 이 사진을 보고 어떻게 그런 말이 나오나 싶었지만 형은 지나치게 생각이 깊어서 내가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도 그 이유를 알아낼 수는 없었다. 보통 이럴 때면 의구심을 갖는 것 자체를 포기하곤 했으나 이번만큼은 도저히 그냥 넘어가고 싶지 않았다. 아버지가 종종 ‘못난 애비보다 네가 낫다’고 농담을 할 정도로 우리 집의 희망과 미래를 모두 짊어지고 있는 형이 내가 부럽다니. 못 가진 게 없는 형이 나에게 부러워할 게 뭐가 있는지 사진을 한참동안 들여다보았다. 그래봤자 알아낸 거라곤 형의 오랜 습관이 사진에서도 찍혀 있다는 것뿐이었다. 형은 힘든 것을 참을 때 오른쪽 눈을 찡그리는 버릇이 있었다. 잔뜩 짐을 짊어지고 아무렇지 않은 척하면서도 무심결에 버릇이 나온 것이다. 나로선 잘 모르겠지만 다 가진 사람만의 고충도 있는 거겠지.
“형은 이때랑 변한 게 없네.”
“너도 마찬가지잖아.”
그러면서 형은 허탈하게 웃었다. 설마 처음으로 내 농담이 통한 건가, 기연미연한 와중에 누군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아버지였다.
오늘따라 별 일이 쉽게도 일어났다.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새벽도 아니고 오후 두시에 알코올 냄새를 확 풍기며 귀가하는 가장이 바람직해보이지는 않았다. 아버지는 태연하게 집을 지키고 앉은 아들들을 꾸지람하기는커녕 반가워하며 달려들었다. 난생 처음 들어보는 “아빠 왔다.” 라는 말에 안방에 있던 엄마까지 뛰쳐나왔다. 엄마는 홍당무 같은 얼굴로 “밥 줘, 밥!” 하고 조르는 아버지를 질색하는 얼굴로 쏘아보다가 홱 부엌으로 들어갔다.
얼결에 점심도 저녁도 아닌 애매한 식사를 하게 되었다. 평소보다 더 어색한 분위기였다. 우리 형제는 딸꾹질을 멈추지 않는 아버지 눈치만 보고 있었고 엄마는 오늘따라 도마를 내리치는 칼부림이 사나웠다. 모르긴 몰라도 이 고요가 폭풍전야임은 틀림이 없었다.
“나, 일 관뒀어.”
이제 막 북엇국이 나와 식사가 시작되려고 하던 즈음이었다. 아버지는 뜬금없는 타이밍에 재채기처럼 한 마디 하고는 모르는 척 국을 떠 마셨다. 이제 막 숟가락을 들려고 하던 우리 형제는 물론 엄마까지 어안이 벙벙해져서 아버지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엄마는 애써 이 상황을 이해하려는 듯 찰나에 몇 번이고 표정을 바꾸더니 겨우 입 꼬리가 움찔거렸다. 하지만 채 말을 꺼내기도 전에 또 아버지가 선수를 쳤다.
“이야, 국물이 예술이네. 이참에 해장국집이나 차릴까?”
아버지의 농담은 허공에서 얼어붙었다. 타 이밍이 나빴다. 상대방의 상황도 배려하지 않았다. 빵점짜리 농담이었다. 곧바로 엄마의 호통이 날아들었다.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항상 중요한 일이 있을 때는 일 핑계로 빠져나가더니 이제 와서 관뒀다고? 돈은 누가 벌라고? 당신이 그러고도 가장이야? 냉랭한 기운이 식탁 아래에 가득했다. 형이 내 옆구리를 쿡 찔렀다. 어떻게든 해보라는 신호였다. 책에서 배웠던 기술을 써먹을 때가 됐다. 성공할지 어떨지는 모르겠으나 실패하더라도 화제전환 정도는 될 것이었다.
“아, 저기요, 그만들 하고 제 얘기 좀……”
“넌 왜 자꾸 우리 집에 있니?”
턱, 한순간에 숨이 멎어버리는 것 같았다. 엄마의 시선이 나에게 똑바로 날아왔다. 단호함마저 느껴지는 눈빛이었다. 뭔가 말하려고 했었는데 그게 뭐였는지 잊어버렸다. 엄마의 농담에는 말문을 막아버리는 힘이라도 있는 듯했다.
“아들, 네 친구 이제 좀 집에 가라고 해라. 매번 우리 집에서 밥 먹고, 자고, 누가 보면 우리 집 앤 줄 알겠다.”
엄마가 형에게 말했다. 엄마는 진지했다. 나는 진지한 말에 저도 모르게 웃어버리고 말았다. 하, 하, 하. 엄마가 나를 이상하게 바라보았다. "언제까지 그러고 살 거야! 애한테 그러는 거 이젠 지친다, 지쳐!" 아버지가 큰소리를 냈다. "당신은 뭘 잘했다고 소리를 질러?" 엄마는 그런 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더욱 격양된 말투로 말했다. 아버지는 엄마의 눈초리를 무시하며 내 팔을 낚아채 형에게 넘겼다. 사이에 껴서 눈치만 보던 형은 그제야 나를 데리고 자기 방으로 갔다.
문밖에서는 본격적인 싸움이 시작되려는 듯 날카로운 말들이 오고갔다. 형은 듣기도 싫은지 아예 문을 잠가버렸다. 침대에 쓰러져 앉아 노트북을 잡는 동작이 자연스러웠다. 방에 혼자 틀어박혀 마냥 공부만 한 것도 아닌 것 같았다. 이미 켜져 있던 노트북에는 초록색 검색창이 아련하게 빛나고 있었다. 무언가를 검색하던 형은 곧 내게 노트북을 건넸다. 임신거부증. 이게 뭐냐는 물음에도 형은 대답하지 않았다. 눈으로 직접 확인하라는 뜻이었다.
임신거부증은 정신질환의 일종인데 첫째 아이를 낳는 과정에서 난산을 겪은 산모가 다음 출산을 두려워하여 둘째 아이를 임신하게 되어도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병이다. 심지어 모체는 월경을 계속한다. 태아는 태동도 없이 아홉 달을 버티며 안쪽으로 숨으려 한다. 본능적으로 숨어서 지내는 것을 택하는 것이다. 때문에 임산부는 몇 달이 지나도 배가 부르지 않는다. 설령 출산일이 되어 아이를 낳더라도 자신이 부모임을 인정하지 않는다. 스스로의 기억을 왜곡하는 것이다.
이걸 보여준 형의 의도가 대충 짐작이 갔지만, 그래도, 설마한들. 문득 엄마의 행동들이 하나하나 스쳐지나갔지만, 그래도, 그래도 설마. 나는 엄습해오는 불안감을 애써 밀어내려 했다. 그러나 형의 눈빛은 결코 흔들리지 않았다. 갑자기 피가 빠르게 흐르는 것 같고 발가락 끝이 간질거렸지만 나는 형이 하려는 말을 듣는 것 외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엄마는 형을 혼자서 낳았다고 했다. 역아였던 형이 몇 시간 째 엄마를 괴롭히는 동안 아버지는 출장으로 바빠 병원에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아픔을 잊게 해달라는 게 아니라 같이 아파해달라는 건데. 마취주사가 엄마의 척추를 타고 아래로 퍼질 때도, 날카로운 메스가 엄마의 배를 가를 때도 엄마는 머리끄덩이를 잡아당길 사람이 없어 침대시트를 부여잡았다. 그렇게 힘들게 세상 밖으로 나온 아이는 메스에 눈두덩을 베여 울음조차 내지 않았다고 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웃을 수도 울 수도 없었다. 내가 깨어있는지 자고 있는지도 모를 이상한 감각이었다. 형은 슬쩍 오른쪽 눈을 감았다. 오래 눈을 뜨고 있으면 아프다는 것이었다. 특히 오늘처럼 흐린 날에는.
"의사가 되고 싶었어. 산부인과나 정신과 의사가 돼서 우리 가족이나 우리 같은 가족을 낫게 해주고 싶었다고. 근데 요즘 부쩍 눈앞이 흐려져. 두 눈을 뜨고 있는 것보다 차라리 한 쪽 눈을 감는 게 초점이 맞고. 이래서야……."
그럼에도 형이 공부를 놓지 못하는 건 미련 때문이었다. 나는 별안간 내가 부럽다던 형의 말을 떠올렸다. 형이 사진에서 보고 있던 게 짐을 잔뜩 이고 있는 본인이 아니라 나였다니. 정확히 말하자면 내 건강하고 싱싱한 오른쪽 눈을.
3) 진심을 담을 것.
내가 태어나던 날, 아버지는 모처럼 일이 일찍 끝나 고기를 사들고 퇴근하던 길이었다. 한손으로 핸들을 잡고 콧노래를 부르며 신호가 바뀌길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엄마가 횡단보도를 건너 어디론가 정신없이 가고 있는 게 보였다. 장을 보고 오는 길인지 낑낑거리며 검은 비닐봉지를 들고 가던 엄마는 근처 공중화장실로 허둥지둥 들어갔다. 아버지는 얼마나 급했으면, 하고 킥킥대며 엄마를 놀라게 할 심산으로 화장실 앞에 차를 댔다. 아버지는 엄마가 나올 때까지 담배나 한대 피우려 차에서 내렸는데 이제 막 불을 붙였을 때 엄마가 나왔다. 빈손이었다. 상쾌한 표정으로 나온 엄마는 아버지를 보고 흠칫 하더니, 모르는 척 제 갈 길을 가려고 시도하다가 금방 멈춰서 어쩔 줄 몰라 했다. 아버지는 무언가 꺼림칙한 기운을 느꼈다. 엄마에게서 비릿한 피 냄새 같은 것이 진동했고 어딘가를 다녀왔다고 하기에는 흐드러진 차림이었다. 아버지의 시선이 엄마의 종아리를 타고 내리는 붉은 물줄기에 닿는 순간, 여자화장실 쪽에서 아기 울음소리가 났다. 응앙응앙. 아버지는 담배 허리를 꺾으며 화장실로 뛰어들었다. 나는 몇 겹의 비닐봉지에 꽁꽁 묶인 채로 가장 안쪽 칸 쓰레기통에 버려져 있었다. 아버지가 나를 꺼내는 사이 엄마는 조수석에 두었던 돼지고기를 발견했다. 경악을 하며 제 핏덩이를 품에 안고 나온 아버지와 돼지고기를 든 엄마가 마주보았다. 엄마는 철없이 웃으며, "그건 또 뭐예요?" 하고 농담을 했다.
그 이후로 엄마는 몇 달간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 엄마는 싫은 내색도 없이 얌전히 상담을 받았다. 또한 내게 모유를 먹였고 정성스레 목욕시켰으며 울면 달랬고 귀저기를 틈틈이 갈았다. 의사는 엄마에게 아무런 문제가 없으며 태아를 버린 것은 갑작스런 출산으로 혼란을 받은 충동적 행동일 뿐이라고 진단했다. 아버지가 보기에도 엄마는 괜찮아보였다. 아니, 사실 괜찮은 건지 괜찮은 척을 하는 건지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아버지는 자기 일에 집중하기도 벅찼다.
입사동기였던 이 대리가 이 과장님이 된 것이다.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아버지는 이 과장을 축하해주었다. 평생을 축하만 해주는 입장이 되리라는 건 꿈도 꾸지 못했다. 상사들은 하나같이 아버지와 이 과장을 비교했다. 동시에 회사에 들어왔는데 너는 뭘 하느냐고. 언제까지 멈춰 있을 거냐고. 그늘이냐고. 아버지가 생각하기에 이 과장이 자기보다 일을 더 잘하는 거 같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더 성실하고 더 노력하는 것도 아니었다. 단지 유머러스한 것. 이 과장이 할 줄 아는 거라곤 시시껄렁한 농담 몇 마디 던지면서 사원들을 웃길 수 있는 게 전부였다. 그런데도 이 과장은 눈 깜짝할 사이에 이 차장이 되었다. 아버지는 이 차장의 승진을 축하하는 회식자리에서 박수만 치다 닳아버린 손의 지문을 멀거니 바라보았다. 이 차장이 다가와 아버지의 술잔을 채웠고, “웃겨봐.” 라는 말이 귀가 아니라 가슴 언저리에 닿아 부딪혔다. 그리고 아버지는 안주머니에 찔러놓았던 사표를 꺼내기로 마음먹었다.
우리는 결국 약간의 빚을 내어 식당을 차렸다. 처음에는 아버지도 의욕이 넘쳐서 신메뉴를 만들겠다고 큰소리치더니 한 달도 못가 질렸는지 간간이 얼굴이나 내비치는 정도가 됐다. 예상대로 식당운영은 죄다 엄마 몫이었다. 그런데도 엄마는 군말 않고 일했다. 당장 갈라설 사람들 같았던 부부싸움도 어느 샌가 잠잠해져서 이상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아버지는 "어른에게는 어른의 방식이 있다." 라며 내 호기심을 일축했다. 나는 대번에 야한 농담을 알아듣고 얼굴을 붉혔다.
아버지는 내가 찢어 버렸던 유머 대백과를 테이프로 하나하나 붙였다. 두 동강이 났던 김 대리가 다시 살아났다. 아버지를 닮은, 그리고 나를 닮은 김 대리. 거대한 데일밴드처럼 테이프가 붙어 있을 뿐 상처가 아물지는 않았다. 아버지는 이제부터 손님접대를 해야 하니 이런 유머를 익혀두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내심 회사생활을 그리워하고 있다는 걸 나도, 형도, 엄마도 알고 있었기에 식당일을 소홀히 하는 걸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에잇, 심심한데 가족끼리 여행이나 갈까.”
나는 무료한 방학을 보내고 있었으므로 느닷없는 아버지의 의견에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아버지는 쇠뿔도 단김에 빼자며 공부하고 있던 형까지 불러 곧장 식당을 찾아갔다. 한참 손님이 몰려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엄마는 느닷없이 들이닥친 장정 셋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가족여행 갈 거니까 인수대로 도시락만 만들어서 가게 문 닫고 나오라고.”
아버지가 거의 명령조로 말하는 데도 엄마는 고분고분 따랐다. 남은 손님들 대접과 부엌일을 서둘러 정리하는 와중에도 엄마는 자꾸 아버지의 눈치를 살폈다.
엄마가 들고 나온 도시락은 세 개였다. 하나는 형의 것, 하나는 아버지의 것, 하나는 엄마의 것. 엄마가 그린 가족여행의 상상도에 내 자리는 없었다.
“엄마, 나도 엄마 아들이에요.”
엄마가 웃었다. 농담도 참 잘해. 나는 농담, 이라는 단어를 잘근잘근 곱씹었다. 그 놈의 농담. 농담이 이 세상에 어디 있어.
그때, 웩, 하고 엄마가 헛구역질을 했다. 엄마가 들고 있던 도시락이 바닥에 엎질러졌다. 형이, 아버지가, 굳어버렸다. 나는, 이상하게도, 웃음이 나왔다. 하하, 하하하, 이렇게 웃긴 농담이 또 어디 있담. 이렇게 슬픈 농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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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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