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8차 창작 콘테스트 소설 부문_취업에 성공하다

by 파랑거북이 posted Mar 31,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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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에 성공하다

4 15일 일요일, 날씨는 맑음, 오늘은 평소보다 조금 늦게 일어났다. S사 직무적성검사가 있는 날이다. 말이 직무적성검사이지, 필기시험이나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한다. 언어영역, 추리영역, 수리영역 등등의 직무적성 검사를 가장한 필기시험과 인성검사, 언어나, 수리영역은 정말 고등학교 수능시험이랑 유사한 느낌이다. 이것도 몇 년째 같은 회사에서 동일한 유형의 시험을 치르다 보니 별도의 문제집도 시판되고 있고, 여러 가지 자료도 이제는 많이 있다. 심지어 학원까지 있다고 하니, 원래의 취지에서 너무 벗어난 것이 아닌지 안타까울 따름이다. 주입식으로 기출문제를 외우고, 반복, 숙련하는 방식으로 21세기를 살아갈 수 있을까? 대한민국 안에서는 남을 밟을 수 있는 훌륭한 방법이 되겠지만, 다른 나라 사람들과의 경쟁에서 과연 이길 수 있을까? 난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비겁하게도 나는 S사 서류 전형에 합격하고 나서 바로 문제집을 사서 풀어보고, 준비하였다. 나 또한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없는 사람이다.

이러한 교육에 대한 문제점은 창의성을 기를 수 없다는 단점과 함께, 과거의 죽은 지식만을 배우게 한다는 정말 중대한 문제가 있다. 고등학생들이 3년 내내 과거 수능시험에 맞춰서 공부한다면, 분명 고등학생 수준의 문제인데 출제유형만 바뀌어도 대혼란이 올 수 있다. “이거 수능에 나와요?”하고 물어보고 수능에 나올 것 같으면 그 부분만 외우고, 나오지 않을 것 같으면 아예 쳐다보지도 않으니 살짝 바꿔도 문제를 풀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도 고등학교 교과과정에서 매번 중요 과목, 주요 부문은 똑같지 않냐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까봐 얘기하는데 매 순간 지금 이 순간에도 지식은 살아있는 생명처럼 자라고, 변하고 있다.

지동설이 나오기 전에는 다들 천동설을 공부하였지만, 지동설이 증명되고 나서 천동설은 죽은 학문이 되었다. 그건 너무 오래된 이야기라고? 지금 교과 과정은 다 과학적으로 증명된 것만 배운다고? 아니, 그렇지 않다. 아이작 뉴턴은 시간은 상수로 정의하였지만, 아인슈타인에 의해 시간도 변한다는 것이 증명이 되었고, 정설로 받아지고 있다. , 중력 가속도가 얼마라고 가정하고, 어떤 무게의 공을 몇 도 각도로 얼마의 힘으로 던졌을 때 몇 초 뒤에 땅에 공이 떨어진다는 문제는 시간을 상수로 두었기 때문에 문제 자체가 틀린 문제가 된다. 가속도에 의해 시간도 변해야 되므로 가속도와 시간의 관계에 대해 증명부터 되어야 한다.

그런 건 대학교가서 배우면 되지 않냐고 할 수도 있는데 대학교에서 물리를 배우는 학과는 몇 개 밖에 없다. 나머지 90% 이상의 학생들은 그냥 시간은 상수라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살아가게 되고, 대다수가 평생 그 고정관념을 가지고 살아갈지도 모른다. 이것이 태양계의 중심이 지구라고 알고 있는 것과 무엇이 틀릴까? 대한민국의 교육은 정말 최악이다.

아침에 간단히 시험준비물을 챙기고, 일찍 길을 나서 고사장에 도착했다. 고사장에 들어가는 길에 학원에서 나와서 전단지를 돌리고 있었다. 외국어 학원, 공무원 학원, 심지어 말로만 듣던 인적성검사 포함 대기업 필기시험을 위한 학원들까지. 그런데 전단지를 돌리는 한 아저씨의 말이 충격적 이었다.

, 시험 보시고, 한 문제 베끼거나 사진 찍어서 주시면 만원, 시험지 가져다 주시면 5만원 드립니다.”

참으로 개탄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수단, 방법 가리지 않는 것은 취업에 절박한 수험생만이 아니었다. 그 혼란의 틈바구니에서 최대한 이윤을 남기려는 학원들의 더러운 경쟁은 이제 시험 문제를 훔쳐서 돈으로 사고 팔고, 그것도 수험생을 상대로 돈을 미끼로 파렴치한 거래를 하고 있으니, 정말 뭔가 잘못되어도 크게 잘못된 일이다. 우울한 기분으로 고사실에 들어가서 수험번호를 확인하고, 내 자리에 앉았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는 얼굴이 많았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에서 본 듯한 얼굴들이 너무 많다. 신기한 노릇이다. 아니다, 그렇지 않다. 대한민국의 남자로 살아가다 보면 이런 경험을 몇 번 하는데 군대 가기 위해 병무청에 신체검사 받으러 갈 때가 그렇다. 생년월일로 사는 주소지 기준으로 나눠서 신체검사를 받기 때문에 평소에는 우리 동네 사는지도 모르고 지냈던 예전 친구들을 한꺼번에 만나게 되는 것이다. 신검 때는 그래도 반갑게 인사도 하고 했는데, 지금은 서로 마주쳐도 아는 체 하지 않는다.

시험에 대한 긴장감, 그리고, 지금 당장 내 코가 석자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 신경 쓸 여유가 없다. 내 세 칸 뒤 자리는 내 친구 K군의 자리이다. K군도 일찍 고사실에 들어왔는데 지금은 화장실에 가고 없다. 시험 감독관들은 다 정장을 멋있게 입고 있었고, 감독관 패찰도 아주 멋있게 보였다. 부럽기도 했다. S사 정 직원들 아닌가. 그들이 볼 때 우린 어떤 존재로 보이는지 궁금했다. 긴장은 하였지만 의외로 인적성검사는 간단히 끝났다. OMR 답안지에 매 교시마다 정해진 문제를 풀 수 있는데 까지만 최대한 정답을 표기하여 제출하였다. 크게 어려운 문제도 그렇다고 쉬운 문제도 없었다.

끝나고 나서야 K군과도 제대로 대화를 할 수 있었다. 얼마만큼 풀었는지, 잘 모르는 문제는 서로 답을 비교하며 얘기하며 복도를 지나 계단을 내려오는데 한 수험생이 시험 감독관이랑 복도에서 반갑게 웃으며 이야기 하는 것이 보였다. 대화 내용으로 미뤄봐서 대학 선후배 사이인 것 같았다. 솔직히 부러웠다. 내가 아는 선배 중에 S사 직원은 없다. 우리 과에서 한 해에 몇 명 정도밖에 S사는 가지 못하고, 그 중에서 나랑 친한 선배는 없었다. 좋은 회사에 다니는 선배들이 많다면 취업할 때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자기소개서 작성, 면접 등등 실력도 중요하지만 노하우도 중요한 일이 많고, 지원하는 곳의 회사정보도 많이 알고 있을수록 유리한데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선배가 있다는 것은 정말 중요한 사항이다. 나는 그런 선배들이 부족해서 아쉬운 대로 취업게시판이나 취업카페에서 많은 정보를 얻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정보의 신뢰도가 떨어지고, 때로는 그저 정보를 얻기 위해 글을 올렸을 뿐인데 악플이 달려서 마음을 상하게 되는 경우도 많다.

다들 취업에 예민하기 때문에 누군가의 글이 고깝게 보이거나 오해를 살 수 있는 경우가 아주 많다. 이를테면 서류 전형 통과하고 면접 정보를 얻기 위해 글을 올릴 때는 신중해야만 한다. 서류 전형 탈락한 사람들 눈에는 좋게 보이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 회사와 저 회사를 비교하는 것도 주의해야 한다. 어느 회사가 좋아요?라는 글을 올리는 것은 '나에게 악플을 달아주세요.'라는 뜻이나 다름이 없다. K군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며 집으로 돌아왔다. 직무적성검사 합격여부는 일주일 후에 알 수 있다. K군과 약속을 하였다. 합격되든 안되든 발표되면 같이 술이나 마시자고, 그리고, 절대 결과 속이지 말고, 혹시나 서로 감정 상해서 서먹해지지 말자고 약속했다.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K군과는 꼭 이 약속을 지키고 싶었다. 취업도 중요하지만 친구도 중요하다. 둘 다 붙으면 좋은 일이고, 그 다음은 뭘까? 내가 붙고, K군이 떨어지는 것, 내가 떨어지고, K군이 떨어지는 것, 그리고 둘 다 떨어지는 것, 어느 것이 그 다음 좋은 일일까? 도저히 모르겠다.

그래도 시험인데 오늘 또 공부하러 도서관에 가는 것은 좀 그랬다. 그렇다고 한 낮인데 K군과 둘이서 놀기도 객쩍다. 집에 돌아와서 방안에 잠깐 누었다가 조용히 편한 옷으로 갈아 입고 근처 산에 올라보기로 했다. XX, 그렇게 높은 산은 아니지만 제법 산세가 험해서 산책하듯이 정상에 오를 수 있는 산은 아니다. 초등학교, 중학교 때는 매주 토요일 등산하는 아버지를 따라서 이 산을 오르긴 했는데 최근에는 몇 달 이상 가본적이 없다. 어릴 때는 그렇게나 등산이 싫었는데 지금은 마음이 울적할 때 산에 오르면 잠시나마 울적한 기분을 잊을 수 있어서 좋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아마 산이 주는 편안함 때문일 것이다. 누구에게나 익숙한 장소가 많겠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곳은 너무나 빨리 변한다. 금방 길이 생기고, 건물이 생기고, 또 부수고, 고치고, 하지만 산은 다르다.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올라가는 길, 내려오는 길 변한 건 하나도 없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지만, 내가 볼 떄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 여름, 가을, 겨울 이렇게 변해가며 산도 계절 따라 변하지만 다시 한 해가 지나면 똑같은 과정을 반복하며, 원래의 상태를 찾아가곤 한다.

산을 올라가는 길은 힘들었지만 그래도 보람 있었다. 힘들어도 한 발 한 발 이렇게 전진하면, 한 걸음씩 높은 곳으로 올라가는 것이 재미있었다. 내 인생도 더도 말고 딱 등산처럼만 되었으면 좋겠다. 올라가는 길에 약수터에서 잠깐 쉬면서 멍하게 경치를 구경하고 있는데 전화가 걸려왔다. B군이다.

시험 다 치지 않았나? 할 일 없으면 만나서 당구나 치자.”

갑자기 화가 났다. 물론 당장 B군이 취업에 뜻이 없는 것은 알고 있다. 그렇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본인의 결정이고,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 나에게 최소한의 배려는 하면서 얘기를 해줘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시험 다 쳤으면 빈말이라도 잘 쳤는지 예의상 물어는 봐 줄 수 있는 것 아닌가. 그리고 마치 본인은 당구 치고 싶은데 최대한 생각해줘서 시험 칠 때는 건드리지 않고, 기다려줬다는 뉘앙스로 얘기할 건 또 뭔가? 그리고 더 중요한 이유는 할 일이 없으면 이라니, 나도 할 일 많고 바쁜 사람이다. 짧게 그리고 B군이 듣지는 못하게 한숨을 내쉬고는 다른 일이 있어서 못 간다고 대답하고 전화를 끊었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혼자 등산 중이라는 말을 하기는 싫었다. 아마 그렇게 대답했다면 다음에 또 똑같은 전화를 계속 받게 될 것만 같았다.

정상에 올라서 산 아래를 내려다 보았다. 우리 마을이 보인다. 산에서 내려다 볼 때 모든 것들이 작게 보여서 마치 내가 더 높은 사람이 된 것 같은 느낌을 받고는 하는데 오늘도 그렇다. 기분이 좋다. 신선한 공기 탓인지 머리도 맑아지는 느낌이다. 조용히 앞으로의 계획을 정리해 본다. S사 인적성검사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J사와 N사 서류 전형 결과가 나오니까,(J사는 인적성검사가 없고 서류 전형 이후 면접을 보고, N사는 면접 때 인성검사도 같이 한다.) 다음주까지 세 번의 당락이 결정되고, 최소 한 군데는 붙는다고 했을 때 면접 준비를 하면서 그 동안 또 다른 곳 취업공고 뜨는 게 있으면 최소 두 곳 정도 지원을 하자. 그리고, 면접 보게 되면 교통비 명목으로 부모님께 용돈도 충분히 받아두자. 나중에 돈이 부족한 일이 생길지도 모르니.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산 정상에서 느끼는 기분도 좋지만 산에서 내려올 때의 기분도 나름 괜찮다. 산을 내려가면 무언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예감이 들고, 올라갈 때보다 빠르고, 쉽게 내려가기 때문에 내가 뭔가 더 강해진 것 같은 느낌도 든다. 땀에 젖은 얼굴로 날아드는 바람도 경쾌하다.

4 19일 목요일, 아침 7, 오늘은 서울에 있는 여관에서 눈을 떴다. J, N사 모두 서류전형 합격 하였고, F사 면접을 위해 어제 밤에 서울에 올라왔다. 새벽 기차를 타고, 올라올 수도 있지만, 혹시나 컨디션 조절에 실패해서 면접을 망칠까 두려웠다. 언제나 느끼는 일이지만 우리나라는 기업들 마저 서울이나 수도권에 편중되어 있고, 나처럼 취업이 절박하고, 능력 없는 사람은 이렇게 뭔 이동거리를 감수하면서 지원을 하고, 면접을 응할 수 밖에 없다. 재빨리 샤워를 하고, 냉장고에서 어제 미리 사두었던 샌드위치와 우유로 아침을 먹는다. 옷걸이에 걸어 둔 와이셔츠와 양복을 꺼내 입고, 옷가지와 소지품은 소형 캐리어 가방에 넣은 다음 길을 나섰다.

지하철 역 사물함에 캐리어를 넣고, 면접을 보러 J사 본사로 들어왔다. 입구에 면접 안내문과 함께 화살표로 면접실이 표시되어 있다. 면접실에 들어가니 아직은 이른 시간이라 감독관 한 명만 보이고 아무도 없다. 여자 감독관인데 이것 저것 물품을 준비하고 있다. 평소의 소극적인 나 답지 않게 보이기 위해 가급적 크고, 쾌활한 목소리로

안녕하세요, 면접 보러 왔는데 여기서 기다려도 될까요? 바쁘신 것 같은데 혹시 제가 도울 일은 없을까요?”라고 말을 건넸다.

아니요, 괜찮아요. 다 끝났어요. 옆방 대기실에서 기다리시면 됩니다. 대기실 책상에 명찰 있으니까 본인 명찰 찾아서 목에 거시고, 책상 위 서류철에서 본인 이름 찾아서 사인해 주시고, 앉아계세요.” 눈도 마주치지 않고, 사무적이지만, 딱딱하지 않고, 빠르고, 또박또박하게 감독관이 대답했다. 나중에 알았지만 감독관이 아니라 J사 회장 비서였다.

옆방 대기실에는 두 명의 인사 담당자가 기다리고 있었고, 나는 명찰을 찾고, 사인을 한 다음 자리에 앉았다. 긴장은 되지 않았다. 아마 어제 밤에 서울에 일찍 올라와서 이것저것 생각하면서 마음의 준비를 한 덕분일 것이다. 아직 면접까지 시간은 많이 남았다. 머릿속으로 차분히 J사 회사 정보를 정리해본다.  J사는 우리나라 자동차 회사 중 가장 큰 H자동차 회사의 선대 회장 조카가 회장이며, 혈연 덕에 거의 H자동차 회사에 독점 납품을 하고 있으며, 국내 시장 점유율이 40%가 넘는 유망한 회사이다. 단점은 해외 수출은 거의 하고 있지 않으며, R&D와 마케팅 부문에도 투자가 인색한 회사이다. 연봉은 우리나라 대기업 중에서는 하위권이며, 중소기업 중에서는 상위권에 속하고, 매년 30~40명의 신입사원을 뽑는 곳이다. 면접 인원이 130명 정도 되니까 3~4:1 정도의 경쟁률이 예상된다. 본사는 서울에 있지만, 공장은 지방 K도시, P도시에 있다. 나는 이공계니까 아마 합격하게 된다면 K도시 또는 P도시로 가게 될 것이다. 회사 분위기는 보수적인 것으로 알고 있다. 복도를 지나오면서 창문으로 사무실을 봤는데 정말 보수적인 회사처럼 보였다. 모든 책상이 입구 쪽으로 오와 열을 맞춰서 입구 쪽을 향해 있었으며, 맨 뒤쪽 열 책상들은 크고, 공간이 넓은 것으로 미루어보아 관리자 급 사람들의 자리인 것 같았다. K도시, P도시의 공장은 이러지 말아야 할 텐데 하는 김칫국 마시는 걱정이 앞섰다.

곧 다른 면접자들도 속속 도착했고, 면접 시간이 되었다. 몇몇 빈자리도 보였는데, 일단 경쟁자가 시작도 하기 전에 줄어들었다는 것은 지금의 나에게는 호재임이 분명하다. 빈자리는 대략 10개 정도 되는 것 같았다. 면접은 빨리 끝날 것 같았다. 8명씩 한 조를 이뤄 한꺼번에 입장하는데 나는 5번째 조 5번째였다. 5라는 숫자는 나에게 좋은 의미가 있는 숫자이다. 군대 전역도 5월 달에 하였고, 내가 좋아하는 축구선수 등 번호도 5번이다. 잘 될 것이다. 힘내자.

면접이 진행되었고, 1조부터 차례로 면접을 보고 나왔는데 면접을 마치고 나오는 사람들의 표정이 어두웠다. 면접관들이 까다로운 질문을 하는가 보다 싶었다. 드디어 내가 속한 5조 차례가 되었고, 면접을 보러 면접실로 들어갔다. 나는 아침에 일찍 와서 들어가 봤기 때문인지 크게 긴장되지는 않았다. 면접관들이 일렬로 앉는 긴 책상에 7명의 면접관이 차례로 앉아 있었다. 그리고 맞은편에 우리가 않을 8개의 의자라 나란히 있었다. 신기한 것은 21C에 면접관들이 다 A4로 인쇄된 출력물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노트북이나 태블릿도 없이.

차례대로 자리에 앉았는데 앉고 나서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책상 제일 끝 쪽 창가에 앉은 면접관의 행동이 이상했다. 다리를 꼬고 앉았는데 구두도 벗겨져 책상 아래 아무렇게나 놓여져 있었다. 고개도 거만하게 45도 각도로 기울이고 있었는데 굉장히 귀찮은 표정 이었다. 단 한번도 이런 면접관을 만나본 적이 없기 때문에 나는 당황하면서도 이유를 찾으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얼굴이 낯이 익었다. 어디선가 본 듯한, 예전에 신문이나 뉴스에서 보던 H사 선대 회장의 얼굴과 많이 닮은 것이었다.

아하, 회장이 직접 면접하러 왔구나. 나름 신경 써서 면접하려는데 생각보다 지겹고, 하기 싫어져서 저러고 있는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회장을 제외한 나머지 6명의 면접관이 1번 면접자부터 압박질문을 퍼 붇고, 그 다음 2번 면접자에게 질문을 퍼 붇는 아주 잔인한 방법으로 면접이 진행되었다. 나는 5번째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유리한 측면이 있었다. 이미 내 앞의 4명의 면접자들이 압박질문에 당황해서 실수도 많이 하였고, 최소한 내가 실수 하더라도 부끄럽게 생각할 필요는 없는 분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해도 꽤나 만족할 수준의 무던하게 면접을 보았고, 그렇게 8명 모두의 차례가 지나갔다.

8번부터 일어서서 문을 나가기 시작하는데 면접 내내 핸드폰을 계속 들여다보던 회장이 갑자기 가기 앞의 서류를 홱 끌어당겨 훑어보고는 갑자기 볼펜으로 중간쯤에서 가로로 줄을 홱 그었다. 그리고는 위쪽으로 화살표, (내가 볼 때 틀림없이 화살표였다.)를 그어 올리고는 다른 면접관에게 서류를 건네주며 이렇게 말했다.

, 여기까지 합격시켜.”

나는 너무나 놀라서 충격을 받았고, 마침 회장이 그 말을 할 때 내가 문고리를 잡고 면접실을 나가려는 순간이었기 때문에 순간 너무 놀라서 잠시 동안 문고리를 잡고는 멈춰 서서 고개를 돌려 회장을 쳐다보았다. 이게 뭐란 말인가? 그럼 처음부터 뽑고 싶은 순서대로 명단을 작성하고, 이걸로 채용이 끝났다는 뜻인가? 그럼 지금 대기실에서 기다리는 80명 가까운 인원들은 어떻게 하라는 말인가? 그 사람들은 이 상황을 모르고, 아무 의미가 없는 면접을 보아야 한다는 뜻인가? 이건 정말 아니다. 난 문고리를 잡고 심호흡을 하였다. 4번 면접자도 이 말을 들었는지 문 앞에 서서 돌아서서 안쪽을 넘겨다 보고 있다.

이건 너무하다. 너무 화가 났지만, 나는 냉철하게 상황을 정리해 볼 필요가 있음을 알아차렸다. , 회장이 분명 중간쯤에서 줄을 그은 다음 위쪽으로 화살표를 하고, 여기까지 합격이라고 했으니, 저 서류에 면접자 전체 명단이 있다면 130명 정도 인원 중에 내가 37번째니까 나는 합격일 것이고, 만약 저 페이지가 우리 조 8명의 명단이라면 나는 8명 중 5번째니까 줄 위냐, 아래냐에 따라 합격, 불합격이 된다. 어느 쪽일까? 전자이길 간절히 바라게 되었다. 분노는 이미 사라졌다.

회장이 건넨 서류를 받은 면접관이

, 알겠습니다.” 라고 말하고는 앞으로 4장을 넘겼고, 그게 다였다. 4장 앞의 페이지는 없었다. 후자의 경우구나. 젠장. 50% 확률이네. 아니지 딱 중간에서 선을 그었으니 내 앞까지 합격이겠구나. 이렇게 생각하는데 8번째 면접자가 조용히 방안의 사람들이 귀를 기울이면 다 들을 수 있을 정도의 목소리로 그러나 나지막하게 씨발이라고 말하였다. 그 말 덕분에 나는 정신을 차리고, 문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세상에 이런 일도 있구나.

기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정말 길고도 피곤하게 느껴진다. 기억 나는 건 회장 비서의 예쁜 얼굴과 회장의 가로줄과 화살표 긋는 모습, 그리고. “씨발이것만 계속 머리 속에 떠오른다. 떨어지기만 해봐라. 취업게시판이란 게시판에는 후기 다 올려버릴 테다 이렇게 마음 먹었다.

4 20일 금요일, 나는 J사 홈페이지에서 내가 최종 합격하지 못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불안한 마음에 그날 부랴부랴 H사에도 지원서를 냈다. 작년 4학년 상반기, 하반기 모두 나는 H사를 지원하였으나 서류에서 떨어졌다. 들리는 말로는 H사는 학벌을 중시하기 때문에 몇몇 명문 대학교, 그리고 국립대학 출신이 아니면 입사하기 어렵다고 한다. 웬만큼 큰 기업, 회사들은 실력위주로 인재를 뽑겠다고 하지만, 우리나라 같이 학연, 지연, 혈연을 중시하는 곳에서는 사실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대기업 인사과에 일하는 선배 K에게서 전해들은 이야기이다. 혈연, 지연, 학연 없는 나라가 어디 있겠냐 마는 우리나라는 특히나 더 심한 것 같다. 혈연, 지연이야 뭐 그렇다 쳐도 출신학교가 왜 그렇게까지 중요한지 모르겠다. 출신학교를 중시하니 대학도 서열화되고, 불필요한 경쟁만 부추기게 되지 않는가. 솔직히 지원은 하였으나 자신은 없다. 하지만, 서류통과만 되어서 기쁠 것 같다.

4 21일 토요일, 저녁 6시 나는 S사 홈페이지에서 계속 직무적성검사 통과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새로 고침 창을 누르고 있었다. 긴장하지 않을래야 긴장 안 할 수가 없었다. 저녁 6시에 결과가 나와야 하는데 5분 전부터 기다리고 있는데 아직 결과를 기다려 달라는 팝업 창만 보인다. 하기야 이제 6시 정각인데 좀 늦을 수도 있지만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나 싫다. 합격이든 불합격이든 빨리 결과를 알았으면 좋겠다. J사 탈락 이후 N사 서류전형 결과가 나왔고, N사 서류 전형은 다행히 통과하였다. 그리고, 탈락한 J사의 물량을 거의 전량 사주는 바로 그 H자동차도 공채를 시작하였고, 내일까지 서류전형이 마감된다. 떨어진다고 해도 취업의 모든 기회가 사라지는 것도 아니니까 너무 실망하지는 말자고 내 자신을 스스로 다독이며, 격려하였다.

6 10분쯤 팝업 창 내용이 바뀌었다. 결과 공지가 내부 시스템 문제로 지연되고 있으니 잠시만 기다려 달라는 내용이다. 내용이 바뀌어서 깜짝 놀라서 순간 초 집중해서 봤다가 한 순간 맥이 풀린다. 왜 인지는 모르지만 안도의 한숨도 나온다. 6 40분이 되어서야 결과 공지가 되었고, 수험번호를 입력하고 나는 내 합격여부를 확인할 수 있었다. 다행히 직무적성검사까지는 통과되었다. 한 고비 넘었다. 나는 멀리서 저녁식사 준비를 하면서 내 모습을 힐끔힐끔 보고 있는 어머니한테 통과했다고 얘기하고, 다음 최종관문인 면접 일정과 장소를 확인하였다. 또 서울에 올라가야 한다. S사 인재센터에서 30일 수요일에 진행이 된다.  

K군에게 전화를 걸면서 취업 카페에 접속한다. 항상 이런 결과가 나오면 탈락한 사람들의 글이 더 많이 올라온다. 하기야 합격한 사람보다 탈락한 사람의 숫자가 많으니 그런지도 모르겠다. 합격한 사람의 글도 보인다. 합격한 사람들의 글은 짤막하다. 합격했다. 여기서 도와주신 분들 감사하다. 다들 좋은 결과 있었으면 좋겠다. 면접 준비 같이 하거나 정보 공유 하실 분, 또는 궁금한 사항을 간단히 질문하는 내용이다. 나는 짤막하게 누군가의 합격 글에 리플을 달아서 나도 합격했음을 알렸다. 바로 축하한다는 리플이 몇 개 달린다.

K군이 전화를 안 받는다. 좀 불안하다. 혹시 떨어진 건 아닐까? 걱정이 되어서 잠시 의자에 기대어 공연히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고 있을 때, K군의 전화가 왔다.

.”

어떻게 되었는데?”

방금 확인했는데 나는 붙었더라.”

나도 붙었다.”

그래.”

초스피드로 우리는 용건을 말하였다. 아마 다 합쳐서 5초도 안 걸렸을 거다. 면접 때 같이 올라가기로 하고, 열차표는 내가 일단 결재하기로 하였다. 일주일 조금 넘는 기간 동안 준비할 시간이 있다. 솔직히 S사는 꼭 합격했으면 좋겠다. D, H, L사 줄줄이 탈락한 이후 올해 상반기에 갈 수 있는 회사 중 대기업이고, 내가 정말로 가고 싶은 회사는 S사와 H자동차 두 개 밖에 안 남았다. 그래서 그런지 정말 신경이 쓰인다. 솔직히 S사 최종합격만 된다면 다른 곳은 다 떨어져도 상관이 없다.

4 22일 일요일에는 어머니와 함께 백화점에 갔다. 면접 때 입을 양복과 구두를 사 주시겠다고 하셔서 같이 오게 되었다. 양복 가격이 비싸서 나는 놀랐는데 어머니는 계속 이것보다 더 좋은 것은 없느냐고 물어봐서 부담이 되었다. 이러다가 양복값도 못하고 면접에서 떨어지면 어떻게 해야 하나 싶다. 결국 나는 내 인생에서 가장 비싼 옷을 사게 되었다. 아니지, 어머님이 사 주신 거다. 아무튼 나는 양복과 구두를 양손에 무겁게 들고 그리고 더 무거운 마음으로 집에 돌아왔다.

4 30일은 생각보다 아주 빨리 왔다. 그 동안 N사 면접도 보고, 또 다른 회사인 Q 1차 면접도 보았다. N사 면접은 J사와 함께 지금까지 본 면접 중 최악이었다. K군과 같이 면접을 보러 갔는데 면접 마지막에 감독관이 원하는 연봉이 얼마냐고 각자에게 질문을 하였고, 처음 질문 받는 면접자는 높지도 낮지도 않은 연봉을 말하였고, 그 다음 면접자는 더 낮은, 그리고 그 다음은 더 낮은 연봉을 말하였다. 급기야 저는 안 받아도 됩니다. 라고 대답하는 사람도 나왔다. K군과 나는 눈빛을 교환하고, 말없이 서로 고개를 끄덕거린 후 K군은 거만한 목소리로 국내 신입사원 최고 연봉에 준하는 금액을 불렀고, 나는 그것보다 더 높은 금액을 말하였다. 면접관은 어의 없다는 표정으로 우리 둘을 보더니

아니 그런 연봉을 받으시려는 분들이 왜 여기 오셨어요?”라고 말했고, 나는

경험 삼아 왔습니다. 듣던 것보다 회사가 많이 어려운가 보네요.” 라고 말했다.

K군은 내 말을 듣고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으며, 이렇게 말했다.

뽑아주시면 열심히 하겠습니다.”

우린 N사를 나오면서 서로 미친 놈이라 부르며, 한참을 웃었다.

4 30일 월요일, S사 면접, K군과 나는 29일 오후 기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왔다. 면접 장소에서 멀지 않은 여관에서 하룻밤을 자고, 아침 일찍 S사 인재센터로 향했다. 오래간만의 대기업 면접이다. 너무 일찍 도착해서 준비가 덜 된 면접대기실에 들어가게 되었다. J사와는 다르게 남자분이 준비를 하고 있었고, 우린 도와 드리겠다고 했다. 면접자들 명찰과 명패를 책상에 배치하는 일을 맡았는데 나는 그 일을 하면서 오늘 나의 경쟁 상대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다 마음속으로 읽어보며, 전의를 불태웠다. 토론면접, 영어면접, 발표, 임원면접 총 4개의 면접을 봐야 하고, 순서는 각 조마다 틀렸다. 한가지 면접이 끝날 때 마다 15분 정도 쉬는 시간 겸 다음 면접을 준비할 시간이 주어지며, 4시간 반 정도의 시간이 소요되는데 경우에 따라 조금 더 늦어질 수도 있다고 한다.

임원면접은 정말 쉽게 끝났다. 그저 백 번 넘게 써 온 입사지원서의 자기소개서의 내용과 수 십번 넘게 연습했던 면접 모의 질문과 답의 범위를 넘지 않는 선에서 진행이 되었고, 거의 모든 면접자들이 아주 자신 있게 달달 외워서 자신을 소개하고, 질문에 대답하고 하였다.

토론면접은 한 조 8명이 찬반 두 그룹으로 나뉘어서 토론을 진행하는데 주제 자체가 내가 잘 아는 내용이었고, 도서관에서 쉬는 시간에 옥상에서 커피 한 잔 하면서 신문에서 보아왔던 내용이라 사례까지 들어가면서 아주 여유 있게 얘기할 수 있었다. K군도 같은 조였는데 반대 그룹이었다. 나는 일부러 K군에게는 어려운 질문을 하지 않고, K군의 발언에 일부 동조하기도 하였다. 다른 면접자들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나도 모르게 지금껏 같이 고생한 친구를 모질게 몰아붙일 수가 없었다.

발표도 의외로 잘 풀렸다. 반 정도 발표했는데 4명의 면접관 중에서 한 명이 노트북으로 무언가를 계속 살피더니 내 전공과목과 실험실에서 프로젝트 한 것에 굉장히 큰 관심을 가지고, 하나 둘 질문하기 시작했고, 급기야 나는 프로젝트 발표는 다 마치지도 못하고, 뜻하지 않게 계속 내 피알만을 하게 되었다. 그 한 명의 면접관 때문에 다른 면접관들도 나에게 대해 우호적인 생각을 가지게 된 것 같았다. 심지어 합격하면 어떤 부서에서 일하고 싶으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는 정말로 기뻤다. 물론 혼자 김칫국 마셨을 수도 있지만, 최종 합격될 것 같은 예감이 확 들었다.

마지막 영어면접도 무사히 끝났다. 평소 영어회화 학원에 다닌 것이 빛을 발했고, 무난히 끝낼 수 있었다. 발음에 신경 쓰느라 끝나고 나서 입 안이 아팠다. 한 가지 이해 안 되는 것은 영어 면접관은 사설 학원강사 두 명이 와서 질문을 하고 옆에서 한국인 면접관 한 명이 채점을 하는 방식이다. 매년 영어시험 점수로 입사지원 커트라인을 두고, 몇 십 년 전부터 세계경영, 그리고 글로벌 경영을 외치는 대한민국의 대표기업인 S사가 왜 학원 강사들을 일용직으로 써 가면서 영어면접을 진행할 수 밖에 없느냐가 이해가 안 되었다. 그리고, 이미 토익 점수나 Opic 점수 다 지원할 때 기입하는데 왜 또 작년 크리스마스에 뭐했냐? 취미가 뭐냐? 가장 기억에 남는 영화가 뭐냐? 이런 질문을 하고, 대답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면접을 모두 마치고 우리 조 8명은 같이 늦은 점심을 근처 식당에서 먹었다. 삼삼오오 모여서 식사를 하고 있는 직장인들 틈바구니에서 먹는 점심은 상당히 어색하였다. 직장인들의 목에 걸린 사원증이 정말로 부러웠다. 사원증만 빼면 그들과 우리는 외관상 다른 게 없을 터인데 왜 이렇게 그 차이가 크게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합격률이 30%정도니까 여기 8명 중에서 두 명 또는 세 명 정도 합격하겠지. 나는 그 두 세 명 안에 들 수 있을까? 고민이 된다. 일단 나보다 좋은 대학, 그러나 같은 과인 K군이 나보다 앞 순위에 있을지 모른다. 그리고 저기 오늘 유난히 돋보였던 S군이라는 사람은 합격할 것 같다. 그 외에는 다 고만고만하다. 아니다. S군 옆의 또 다른 성씨가 똑 같은 S군은 절대 합격 못할 것 같다. 도저히 S사 서류전형과 직무적성검사를 통과한 사람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오늘 면접에서 질문에 대해 엉뚱한 대답을 하였고, 누가 듣더라도 지식이나 상식이 얕은 사람이다. 그래도 인연인데 우리 조에서 많은 사람이 합격했으면 좋겠다. 나도 나쁘지 않게 면접을 보았고, 면접관들 반응도 좋았으니 너무 비관적으로는 생각하지 말자.

서울역에서 기차를 타고 출발 전에 K군과 나는 햄버거와 콜라를 먹었다. 창 밖을 바라보니 벌써 퇴근하는 회사원들이 있었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당당하게 집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사람들, 나는 언제 저들과 같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생각하며 햄버거를 입 속에 우겨 넣었다. 눈물이 핑 돌았다. 오늘 먹는 햄버거의 맛은 평생 잊혀지지 않을 것만 같다.

기차 안 TV 뉴스에서도 청년실업에 대한 보도가 나왔다. 전 세계적인 문제인데 왜 유독 우리는 더 아프게 느껴질까? 내 생각은 이렇다. 밭에 당근을 심는 농부가 있다고 하자. 이 농부는 손바닥만큼 좁은 밭을 가지고 있어서 당근 씨앗을 빼곡히 심었는데 싹이 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부실한 싹은 싹 뽑아 버렸다. 잎이 날 때, 줄기가 자랄 때도, 부실한 당근 종자는 모조리 뽑아서 밭에 팽개쳐 버린다. 이 과정을 끊임없이 반복하여, 결국은 소수의 튼실한 당근만 남긴다.

애당초 밭이 넓다면 이 농부는 귀찮아서라도 부실한 당근을 제거하지 않을 것이고, 당근은 충분한 기회를 보장 받을 것이다. 또는 이 농부가 똑똑하고, 부실한 당근도 가엾게 여긴다면 새로 비료를 주던가, 다른 농법을 개발하여, 당근이 잘 자랄 수 있게 하였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교육열에 비해 너무나 시장 규모, 좋은 일자리의 숫자가 부족하고, 사회보장제도도 미비하여, 한 번만 경쟁에서 뒤처지면 다시 기회를 얻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충분한 기회를 보장 받았는데 취업이 안 된다면 절대 억울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당근에게는 가혹한 처사이다. 운이 나빠서 안 좋은 땅에 심겨졌을 수도 있고, 대기만성형 당근도 있었을 터인데. 제발 요즘 젊은이들은 노력을 안 해, 눈이 높아, 이런 얘기는 더 이상 안 들었으면 좋겠다.

S사 발표까지는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남았다. 일주일 동안 나는 언제나처럼 공부도 하고, 취업 정보도 보고, 입사 지원도 하고, 그리고 J사 면접을 다시 보았다. 화요일에 전화가 걸려와서 혹시 아직 입사한 곳 없으면 추가 TO가 있으니 면접 보러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J사의 지금까지의 행태를 생각하면 내심 괘씸하였지만, 딱히 할 일도 없고, 혹시나 하는 기대감이 생겨서 일단 가 보기로 하였다. 목요일 오후에 시간에 딱 맞게 J사로 다시 갔더니 면접 대기실에 이미 4명이 와 있었다. 그 중 두 명은 낯이 익었다. 같은 조 4번과 7번 면접자였다. 우리는 눈이 마주치자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낄낄대며 웃었다. 7번 면접자가 웃다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씨발이라고 하는 바람에 우린 정말 눈물이 나올 정도로 펑펑 웃었다. 다른 두 명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고, 우린 자초지종을 설명하였다. 그 두 명은 우리 다음 조 면접자들이었고, 우리는 한참 동안 우리의 신세와 J사 회장의 거만한 행태를 비난하였다. 결론은 우리가 아무리 취업이 다급하다고 해도 도저히 J사 본사에서 회장 얼굴을 보면서 일할 수는 없다. 본사가 아닌 K도시나 P도시 아니면 근무 할 생각 없다고 하자. 그러면 우리 전부를 불합격시키지는 못할 것이다. 설령 불합격 시킨다고 해도 우리는 우리 자존심을 지킬 수 있다. 이렇게 서로 뜻을 합치고도 한참을 기다렸다. 약속된 면접시간을 훌쩍 넘겨서 인사 담당자가 와서 한꺼번에 임원 면접만 보면 된다고 하며, 우리 전부와 회장실로 갔다.

역시나 거만한 포즈로 의장에 앉아서 우리를 본체만체 하면서 일렬로 쭉 늘어선 우리에게 본사에서 일할 사람이 필요하다. 근무 가능한 사람 있냐고 물어봤다. 우리는 모두 본사에서 근무할 생각 없다고 말하였고, 회장은 당황한 표정을 짓더니

, 이러면 안 되는데.” 라고 하더니 우리에게 수고했다고 다 나가라고 하였다. 그걸로 면접은 끝이었고, 우린 다 불합격이 되었다. 불합격이 되었을 것이다. 취업 공고가 다시 난 것을 보았고, 취업카페에서 4번과 7번으로 추정되는 사람이 나의 J사 면접 후기 글에 자신들도 불합격 되었다는 댓글을 달았으니까.

5 7일 월요일, 어버이날을 하루 남긴 날 저녁 5시반 나는 초조하게 S사 최종 합격 결과를 컴퓨터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 수험번호를 입력해 보아도 아직은 발표날 때까지 기다려 달라는 팝업 창만 뜬다. 6시에 발표되는데 도저히 다른 일을 하고 있을 수가 없다. 간혹 발표가 빨리 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나는 거의 일 이분 마다 재확인을 하였다. 5 50분 정도쯤에 무심코 수험번호를 넣고 결과확인을 클릭했는데 기다려 달라는 한 줄짜리 메시지가 아닌 두 줄짜리 메시지가 있는 팝업 창이 떴다. 심장이 순간 터질 것 같았다. 나는 정말로 마음을 다 잡고, 팝업창의 글을 읽었다. 합격이다. 항상 불합격 이었기 때문에 믿기지가 않았다. ‘(합격을)축하합니다라는 글이 자꾸 ‘(지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글로 변할 것만 같아서 몇 번이나 다시 읽었다. 나는 두 번 더 내 수험번호를 확인하고, 한 번 더 사이트 접속부터 다시 해서 재확인을 하고, 다음 일정인 신체검사에 대한 안내사항을 확인하고서야 

합격이다.”라고 입 밖으로 말을 꺼낼 수 있었다. 무심히 내뱉듯이 말한 것인데 아버지, 어머니, 여동생 모두가 다 듣고는 축하한다는 말과 함께 사실이냐고 물었다. 확실하다고 얘기하고, 나는 정신을 가다듬고,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빠르게 생각해 보았다.

일단, K군에게 전화해서 합격했는지 알아봐야겠다. 그리고, 취업카페에 합격 후기라도 남겨야겠다. K군에게 전화를 걸었다. 긴장이 되어서 두 번이나 K군의 전화번호를 잘못 터치하였다. 평소보다 신호음이 길게 갔다.

여보세요.” 드디어 K군이 전화를 받았다.

좀 전에 합격 발표 확인했다. 너는 확인했나?”

아니, 아직 확인 안 했다. 니는 합격했나?”

갑자기 겁이 났다. 나는 내가 합격 했다는 사실에 기뻐서 소중한 친구가 합격했을지, 불합격 했을지, 불합격 되었다면 심정이 어떨지 깊이 생각하지 않고 무턱대고 전화를 한 것이다. 나는 짧은 심호흡을 하고, 최대한 내 목소리에 기쁜 뉘앙스가 풍기지 않게, 감정을 최대한 죽인 담담한 목소리로

나는 합격했다.”라고 대답했다.

그래 축하한다. 나도 확인해보고 전화 줄께.” K군이 대답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K군은 떨어졌구나. 나는 그런 확신이 들었다. K군이 나보다 더 늦게 결과를 확인한 적도 없었고, 무심한듯한 K의 말투, 그건 정말 정상이 아니다. 무언가 말하고 싶지 않은 것을 숨기는 그런 느낌이다. 고등학교 때부터 K군은 나보다 항상 성적이 좋았다. 언제 한 번 이겨보냐고 3년 내내 불평했었는데 오늘 드디어 이겼다. 하지만 하나도 기쁘지 않다.

5분 정도 지나서 K군의 전화가 왔다. 물론 예상한대로 불합격했다고 한다. 나는

장담하는데 너는 나보다 더 좋은 곳에 취업하게 될 꺼다. 나도 합격했는데 너는 당연히 취업된다. 걱정하지 마라.” 나는 내가 어디선가 들어봤던 말로 K군을 위로했다. 나도 안다. 하나도 위로가 안 되는 말이다. 하지만 다른 할 말이 없다.

나는 그날 핸드폰이 이렇게 무거운 물건인지 처음 알게 되었다. 팔이 자꾸 부들부들 떨린다. 전화를 끊고 나서 보니 핸드폰 액정에 차고 슬픈 것이 어른거린다.

파종할 때 당근은 무엇이 부끄러운지, 흙을 걷어내면 주홍빛으로 상기된 얼굴을 드러낸다. 아마도, 부실한 동료들의 자리를 빼앗고, 양분으로 삼은 자신에 대한 양심의 가책 때문일지도 모른다. 나는 정말로 내 자신이 한없이 부끄럽다.

 

S사 합격 후 친구들을 불러모아 저녁을 샀다. 메뉴는 삼겹살에 소주였고, 거의 대부분의 친한 친구들이 왔다. 물론 K군도 왔다. 친구들은 불합격한 K군에게는 위로의 말을 그리고 나에게는 축하의 말을 건네면서 열심히 맛있게 먹고 마시었다. 술이 몇 순배 돌자 언제나 그렇듯 군대 이야기, 여자 이야기, 게임 이야기 등을 하게 되었는데 나는 갑자기 재미가 없어져서 멀뚱히 앉아 기계적으로 맞장구만 치면서 이야기를 듣고만 있었다. 신기한 일이다. 나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일같이 느껴졌고, 과거나 현재보다는 미래의 일을 이야기 하고 싶었다. 그렇게나 바라던 회사원의 삶, 생각만으로도 마음이 설렌다. 친구들의 이야기가 시시하게 느껴졌고, 내가 마치 다른 사람이 되어버린 듯한 기분이었다.

술잔만 만지작거리다가, 친구들의 이야기에 대충 대꾸만 하며, K군의 얼굴을 계속 살폈다. 슬프다. 손을 내밀어서 K군을 잡고 내가 있는 곳까지 끌어올리고 싶은데 K군과 나 사이에 커다란 강이 있는 것 같다. K군이 저 멀리 보이지만 내가 어떠한 말을 해도 들리지 않을 것만 같았다.

그렇게 술을 마시고, 나는 어머니가 빌려주신 카드로 멋지게 결재를 하였다. 직장인들에게는 별 것 아니겠지만 정말로 이렇게 여러 사람이 같이 먹고 혼자서 당당하게 카운터로 가서 계산하는 것이 멋지게 보였었다. '일시불요' 이렇게 말할 때는 우쭐한 기분마저 들었다. 나는 이제 S사 임직원이다.

 

다음날이 밝았다. 아침에 늦잠 자는 게 도리어 어색해서 8시에 일어나서 컴퓨터를 켜고 H사 서류전형 결과가 발표되었는지 확인했다. ? 발표가 났다. 나는 탈락이다. 에이 씨. 까짓 H사 안 가면 되지. 나는 전혀 아무렇지도 않게 결과를 받아 들였고, H사의 존재를 머릿속에서 싹 지워버렸다. 나는 이제 S사 임직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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