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8차 창장 콘테스트 단편소설 부문 - 우체통

by noonim posted Apr 08,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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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체통 



습한 공기가 폐부를 지배하고 숨을 막는다. , 또옥 하는 소리에 맞추어 고개를 흔든다. 한쪽이 찌그러진 모양새를 한 아치 모양의 동굴 입구는 별이 하나도 뜨지 않은 밤하늘을 비추어내고 있는다. 달조차도 보이지 않는다. 나는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 것인지 동굴 구석에 쪼그려 앉아 해변에 왔다 가는 파도만을 눈동자를 굴려 좇는다. , 또옥 하고 떨어지는 물방울에 맞추어 고개를 앞 뒤로 흔들고, 솨아, 솨 하고 움직이는 파도를 눈으로 좇는다. 파도에서 눈을 떼지 않고, 계속해서 좇는다.


 1년에 두 번 열리는 길은 바다 한 가운데의 암초를 향해 뻗어있다. 암초 위에는 언제인가 우체통이 비스듬히 박혀있다. 이리저리 박고 긁혀 우체통의 모서리는 한쪽을 뜯어먹은 솜사탕마냥 찌그러져있고, 편지를 꺼낼 수 있는 문은 위쪽 이음새가 빠져 바람이 불 때마다 끼익, 끼익하고 소릴 낼 것처럼 힘없이 흔들린다. 저 놈의 파도가 어느 마을을 덮치고 우체통을 저 암초에다 박아 놓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저 우체통을 잃은 마을도 참 운도 없지.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바닥과 이음새가 맞지 않아 흔들거리는 버스정류장 표지판을 발로 슬 민다. 끼이익하고 긁는 소리가 나더니 퍽 하고 넘어져버린다. 급히 주위를 두리번 거리다가 봉을 잡아 세우곤 서툴게 다시 박아놓는다. 오전 9시부터 항상 여기서 버스를 기다리지만 오지 않는다. 오지 않을 것을 알고 있지만 기다린다. 사람들이 지나가며 버스 표지판을 보곤 마저 갈 길을 간다. 예전에 크게 넘어져 푹 패인 한쪽 머리를 긁적인다. 분명 버스가 오지도 않는 버스정류장에 서있는 나를 이상하게 보고 떠난 것이 분명하다. 아니면, 버스가 목적지에 도착하는 시간이 애매하거나, 석연치 않았을지도 모른다.


 아침으로 언제 돌아온 것인지도 모를 아버지가 끓여둔 된장국을 떠서 밥에 말아 먹은 뒤, 아버지가 박차고 나간 이불을 차곡차곡 개어서 벽장에 집어넣는다. 아버지는 한 번도 돌아오신 적이 없었다. 돌아오신 적이 없었다기 보다는 돌아 오신 것을 본 적이 없다. 어딜 나간건지 내가 잠들고 난 뒤에 들어와서 내가 깨기 전에 집을 나선다. 아래가 떨어질 것같은 녹색 책가방에 도서관에서 빌린 책들을 우르르 밀어넣고 딸랑 연필 하나와 지우개 하나가 든 필통을 책 위에 던져 넣는다. 지퍼를 잠근다. 연필이 달그락거리며 필통에 부딪치는 소리가 난다. 끄응차 하고 가방을 매고 집을 나선다. 얼마 지나지 않아 버스 표지판이 보이고 다시 기다린다. 맞은 편에는 여전히 바다가 파도를 보내 모래를 쓸어가고 있다. 멍하니 눈을 꿈뻑이면서 표지판의 기둥을 또다시 발로 툭툭 찬다. 끼이익, 하고 넘어갈 듯한 소리가 들리자 깜짝 놀라 다급하게 기둥을 잡는다. 다시 제대로 세워두고 가만히 서있는다. 부우웅하고 자동차 소리가 들리자 고개를 돌려 보기도 전에 바로 앞에 작은 승용차가 선다.

 

 “여기서 또 뭐하고 있냐?”

 

 정장을 말쑥하게 빼어입은 남자가 창문을 내리고 말을 건다. 옆집? 아니, 앞집? 아닌가. 아마 바다에서 제일 떨어진 곳에, 그러니까, 바다보다 산에 가까운 집에 사는 사람이다. 차를 세워가며 말을 거는 사람에게 아무런 말도 없이 빤히 쳐다만 보고 있자 그 사람은 질렸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이런 것도 한두 번이지, 매번 하려니 질리는군. 그렇게 말하는 사람에게서 시선을 굴려 바다를 바라보았다. 멀리 보이는 암초에 붉은 칠이 벗겨진 우체통이 박혀있다. 박힌 우체통의 아래쪽 기둥은 흉하게 일그러져 새장마냥 갈라진 것처럼 보였다. 너무 멀어 보이지 않지만, 여튼 그런 것같았다. 제게 시선을 두지 않는 걸 알아차린 남자가 혀를 몇 번 차더니 신경질 적으로 기어를 움직이곤 휑하니 가버린다. 매연냄새가 코끝을 찌른다. 멀어져가는 자동차가 한 번 햇빛을 쨍하고 반사시키곤 사라진다. 재수없는 놈. 산하고 가까운 곳에 산다고 해봤자 거의 별장에 묵는 것밖에 더 되는가. 가끔 요양한답시고 이 마을에 지어둔 별장에서 살다가 가버리는게 전부이면서. 모든 걸 다 알고있는 것처럼 행동하는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직 저 사람의 이름조차 알지 못하지만, 물론, 알고 싶지도 않지만, 마을사람들이 차현, 차현, 하는 것을 봐서는 그게 저 사람 이름일 것이다. 가끔 저 사람처럼 정장을 빼어입고 깔끔한 승용차를 탄 사람들이 저 사람을 서 사장님, 서 사장님, 하고 부르는 걸 보면 성씨는 서 씨 일 것이다. 물론, 알고 싶어서 알아낸 정보는 아니다. 도서관에 살다시피 하면 사서와 많은 이야길 나누고, 많은 이야길 나누다보면 알고 싶지 않은 정보도 어느덧 내 머릿속에 흘러들어오는 법이다. 저 서차현이라는 사람도 나에겐 그런 정보쯤 밖에 되지 않았다.

 

 저 서 사장님이라는 사람이 가고 나서 다시 한창이나 그 자리에 우뚝 서있었다. 이 작은 마을에 있는 버스정류장이라고 해봤자 버스는 오지도 않고, 버스 표지판은 엉뚱한 시간과 장소를 알리고 있고, 의자는 할아버지가 햇빛을 쬐러 나왔다며 들고온 하얀색 플라스틱 의자 뿐이었다. 그 마저도 다리가 조금 휘어 흔들의자마냥 바람에 흔들렸다.

다시 부우앙하고 자동차 소리가 들려오다 방금 전 자동차와 마찬가지로 제 앞에 우뚝 선다. 붉은 색 오토바이에 검은 헬멧을 쓴 사람이 한쪽 다리를 받침대 마냥 내리고 오토바이를 비스듬히 기울여 선다.

 

 “오늘도 편지가 있니?”

 “여기요.”

 “수신인 주소가 없으면 우리도 못보낸다니까 그러네. 반송이라고 해봐야 어차피 네 집은 지나다니는 길이라 문제는 없겠지만...”

 “잘부탁드려요.”

 

 제 말에 우체원은 날 빤히 바라보다 겉옷 주머니에 편지를 집어넣는다. 그럼 수고하세요, 하는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우체원은 오토바이를 바로 세우고 부우웅하고 자리를 뜬다. 오토바이의 헬멧에도 햇빛이 쨍하고 반사되었다가 시야에서 사라진다. 손목시계를 확인한다. 딸깍, 딸깍하고 시침이 움직인다. 시침은 67사이에서 딸깍거리기만 하지 분침과 시침을 움직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손목시계를 풀 생각은 않고 눈동자를 데록 굴려 바다를 바라본다. 그냥 지금쯤 가면 문은 열었겠지. 짠 냄새가 나는 바람이 훅 끼쳐오자 그 자리를 피하기라도 하듯 발걸음을 옮겼다.

 

 마을의 한가운데에 자리한 도서관은 책장이 열 개도 채 되지 않은 작은 도서관이었다. 아이들이 읽을 법한 동화책 몇 권과 마을에서 열린 작은 행사 때 찍은 사진들을 모아둔 앨범, 그리고 만화책, 오래된 소설책들 등이 꽂혀있다. 그것도 빽빽하게 꽂혀있지 않고 드문드문 잃어버린 책들도 있는 듯 5권이 없는 만화책 시리즈, 한쪽이 내려앉은 책꽂이 한 칸. 그런 책꽂이들이 벽에 다닥다닥 붙어있고, 도서관의 한가운데에는 돗자리같은 것을 깔고 앉은뱅이 책상을 크게 두세 개 붙여두었다. 그게 전부인 도서관이었다. 끼익 소리가 나는 문을 열고 들어가자 사서는 뒤로 고개를 한껏 젖히고 코를 골며 자고 있다. 조심조심, 문이 닫히는 소리조차 크게 들릴 도서관에 들어오면서 문을 조심스레 닫는다. 그러곤 가방을 내리면서 자리를 잡고 앉는다. 가방을 뒤적거리면서 편지지를 가져왔었나, 하는 사소한 불안감에 조금 크게 소리를 내어 부시럭거린다. 다행히 편지지를 가지고 오기는 했지만, 오늘은 평소보다 바다와 가까이 있는 버스정류장에 오래 서있었던 탓인지 편지지는 습기를 한껏 머금어 흐물흐물하게 늘어진다. 탁자에 편지지를 펴고 손으로 꾹꾹 눌러 편다. 손을 따라 세로로 주름이 졌다가 쭉 펴진다. 달그락거리면서 필통에 넣어두었던 연필과 지우개를 꺼내 탁자 위에 올려둔다. 크윽, 하는 소리와 함께 사서가 발작을 하며 잠에서 깬다. 나를 보곤 움찔 몸을 떨었다가 별 대수롭지 않은 듯 다시 고개를 뒤로 젖히고 아까보다 편하게 자릴 잡더니 코를 곤다. 연필을 들고 편지에 무언가 슥슥 써내려간다. 어머니, 저는 여전히 이 마을에서...

 

 

 편지를 다 썼을 때에는 벌써 점심이 훌쩍 넘어 저녁을 달려가고 있었다. 낭만스럽게 노을이라도 지는 것인지 하늘이 온통 붉게 물들고 구름 한 점 없었다. 편지를 급히 편지봉투에 넣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여전히 코를 골면서 고개를 꾸벅이고 있는 사서를 지나쳐 도서관을 조심스레 나온다. 내일도 똑같은 하루를 지낼 것이고, 편지를 아무리 써도 어머니는 편지를 읽지 않고 반송이 될 것이다. 아니면 우체원이 말한대로 발송될 주소를 적지 않아 우체국에서부터 항상 반송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마 후자가 맞겠지만 집에 다시 반송된 편지가 올 우체통은 들여다 보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까, 어머니가 반송을 시켰든, 우체국이 반송을 시켰든, 어머니는 집에 돌아오시지 않을 것이라는 걸 은연중에 알고 있는 것처럼 외면했다.

 

 평소처럼 집에 돌아오자마자 이부자리를 펴고 자리에 누웠다. 씻지않은 발이 찝찝함을 남기자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면서 다리를 양 옆으로 흔들었다. 잠이 몰려오는 것으로 보아서는 아홉시가 넘어간 것은 분명했다. 오늘도 아버지는 집에 들어오지 않았고, 식은 된장찌개 냄새만 방을 채운다. 술이라도 마신 것처럼 눈앞이 빙글 돌자 눈을 꾹 감는다. 이대로 다시 눈을 뜨기는 힘들 것 같아 벌써 잠에 빠져 꿈 속을 헤매는 사람처럼 숨을 고르게 내뱉는다.

 

 

 마을에 병원이 들어섰다. 언제부터인가 이리저리 공사를 하는 듯 포크레인 소리와 무언가를 부수는 소리가 들리더니 기어이 종합병원이 하나 들어선 것이다. 그래봤자 마을의 작은 병원일 뿐이겠지만, 여태껏 마을 회관에서 학교의 보건실 마냥 약을 받아와 쓰고, 잠시 누워있다 나가는 그런 병원이 아니라 제대로 된 병원이 들어선 것이니 그리 나쁜 반응은 보이지 않았다.

여전히 버스정류장에 서있으면서 조금 일그러져 푹 패인 머리를 긁적인다. 병원이라면 이 머리도 고쳐줄 수 있지 않을까. 물론 큰 수술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아니면 의사가 용한 의사라 그냥 딱 하고 머리를 만지면 볼록, 하고 머리가 제 자리를 찾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희망은 품지 않기로 한다. 그도 그럴 것이, 그런 용한 의사라면 이 마을에 병원을 차리고, 아침 일찍 문을 열고, 언제 올지 모르는 환자를 기다리며 시간을 죽일리는 없을테니까. 용한 의사라면 지금 여기서 이러고 있을 것이 아니라 서울같은 곳으로 가서 대형 종합 병원을 하나 차리고, 원장 직을 꿰차고 앉아 굴러들어오는 환자들을 진단해주고, 처방전을 처방해주고, 그렇게 돈을 벌다가 언제 한번은 돈을 받고 어느 대학에 가서 강연을 해주는 것이 조금 더 윤택한 삶을 살 수 있을테다. 아니면 그런 삶들을 전부 뿌리치고 이 깡촌에 와서 의사 노릇을 하며 영웅적인 사람이 되는 것이 꿈이라든가.


 대충 갈 일도 없을 병원 생각을 하며 버스정류장에 서있자니 또 깔끔하게 빼어입은 서 사장이 앞에 차를 세운다. 창문을 내리는 꼴을 보아하니, 또 똑같은 말을 하겠지. 여기서 무얼하냐고. 어차피 오지도 않는 버스는 왜 기다리느냐고 하겠지.

하지만 그런 말은 들려오지 않는다. 여전히 바다의 우체통으로 시선을 꽂고 있다가 길게 한숨소리만 들려오곤 기어를 넣는 소리가 나지 않는다. 그제야 승용차의 열린 창문으로 시선을 굴린다. 서 사장과 눈이 마주친다.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쯧쯧 혀만 차댄다.

 

 “적당히 하고 들어가.”

 

 그러곤 서 사장은 창문을 냉큼 올리더니 휑하고 가버린다. 뭘 적당히 하라는건지. 재수없는 놈. 여태껏 시비만 잔뜩 걸어놓고 이제와서 뭘 걱정하듯이 말한담. 콧방귀를 흥, 하고 내었다가 얼마 뒤에 올 우체원을 기다린다. 바람이 훙, 하고 불어온다. 버스표지판이 끼익, 넘어간다. 끼이익, 기이익, , 쿵하고 넘어지는 그 순간까지 암초에 박힌 우체통만을 바라보다 으악! 하고 소리를 지른다. 이 버스표지판은 내가 힘만 있으면 달랑 들어 옆에 놓인 의자를 부술 수 있는 것이란 걸 잊었다. 표지판이 무너지면서 내 종아리를 쿵, 하고 후려쳤다. 비명을 지를 수 없을 정도로 아릿한 통증이 종아리에서 허벅지, 허리, 가슴께까지 올라올 무렵 으아악, 하고 더 크게 비명을 지른다. 버스표지판을 발로 밀어내곤 종아리를 감싸잡는다. 눈물이 찔끔 나온 눈가를 소매로 벅벅 문지르고 넘어진 표지판에게 시선도 주지 않는다. 인마, 넌 거기 그렇게 넘어져있어. 내 종아릴 치고도 여기 서있고 싶냐? 코를 훌쩍이며 다시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솟대가 된다.

 

 그러고보니, 우리 마을엔 우체통이 왜 하나도 없지? 우체원에게 편지를 건네주는 그 순간까지도 그것만 생각하다, 우체원이 자리를 뜨고나서 몇분이 지나고서야 절뚝거리며 발걸음을 옮긴다. 오늘도 도서관에 가서 오후 내내 편지를 쓰다가 저녁즈음에 돌아올 것이다. 그러고 대충 저녁을 챙기고 또 아버지가 들어오기 전에 자게 되겠지.

 

 굳게 문이 닫혀있다.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365일 내내 열려있던 도서관이 닫힌다는 소린 듣지 못했다. 설마 전날 사서가 내게 말을 해주지 못했던걸까. 어쩌면 항상 열려 있던 것이 아니라 운 좋게 내가 갈 때마다 열려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 어쨌든, 지금 당장 내가 갈 곳을 잃었다는 사실은 확실하다. 당장 집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벌써 식어버린 국과 온기가 가신 이불만이 난잡하게 흩어져 있을 것이다. 집에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누군가가 들으면 아무도 없는 집에서 한가롭게 취미생활을 즐길 수 있다고들 하겠지만, 차갑고 외로운 집은 그리 아늑한 공간이 아니었다. 차라리 도서관에서 자고 지내라고 한다면 그곳에다가 살림을 차리고 하루종일 편지를 쓸 수 있을텐데.


 도서관 앞에서 갈 곳을 잃은 채 굳게 닫힌 문만 빤히 바라본다. 유리문으로 밖을 막아두고, 안쪽 도서관으로 들어가는 문은 나무문이 도서관 입구를 막고 있다. 잠깐 이 유리문을 깨고 들어가서 나무문을 지겹도록 긁어내어 도서관으로 들어갈까 하고 생각을 했지만, 그렇게 했다가는 피투성이의 발과 손으로 편지를 써내려가야 할 지도 모른다. 물론 내가 지금 철갑옷을 입고, 단단한 망치가 있다면 크게 다치지 않고 들어갈 수 있겠지만, 이 도서관 방문이 마지막 방문이 되고 싶진 않았기에 조용히 굳게 닫힌 문을 바라보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

 

 결국 오랜만이지만 마을을 한 바퀴 돌아보기로 한다. 그렇게 되면, 몇 주간 얼굴을 비추지 않았던 아버지를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르고, 어쩌면 새로 병원을 들였다던 의사를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지금은 마침 다리를 다쳤으니 다리를 봐달라면서 머리도 좀 봐달라고 해야지. 아버지는 무슨 일을 하고 있는 거지. 우리 집은 어차피 서 사장같은 자동차도 없고, 있다고 해봤자 아버지는 면허증조차 없으니 이 마을을 벗어날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렇다고 아버지를 찾아 마을을 배회할 마음따윈 없으니 조용히 마을만 둘러보고 평소보다 일찍 집에 돌아가는 수밖에.


 도서관 앞에서 몇분을 그리 서있었을까. 이내 발걸음을 옮겨 어디론가 절뚝절뚝 걷는다. 바닷물 냄새를 머금은 바람이 산을 향해 훅 불어친다. 나뭇잎이 서로 부딪히고 얽히는 소리가 들린다. 사라락, 하는 소리는 생각보다 나쁘지 않다. 골목에 들어서자 그런 소리마저도 묻혀 고요해진다. 그 고요함 가운데에서 딸랑, 하고 이질적인 종소리가 들린다. 가게 문 앞에 걸어둘만한 종소리가 들리자 고개를 돌린다. 이끼가 한껏 올라온 건물에 맞지 않는 깔끔한 유리문이 달려있고, 유리문 안쪽으로는 깨끗한 내부가 눈에 띈다. 알고 싶든 그렇지 않든 일단 여기가 그 새로 들어온 병원이라는 것은 확실하다. 내 일그러진 머리를 고쳐줄 수 있는 그런 병원일까? 그런 것은 상관 없었다. 이 마을은 하도 작아서, 누군가 이사를 오거나 들어오면 이유없이 찾아가 이야기를 나누는 것정도는 자연스러운 일이니까.

딸랑, 하고 종소리를 울리면서 유리문을 열고 들어간다.

 

 

 “이 정도면 엄청 크게 다쳤는데요?”

 

 의사가 제 머리를 더듬더듬 만져보더니 내린 진단이었다. 크게 다쳤든 그렇지 않든 지금 자신이 원하는 것은 바람빠진 풍선마냥 일그러진 이 머리를 고쳐줄 수 있느냐 없느냐인데, 그 외엔 아무런 말도 없이 사각사각 진단서만을 쓰고 있는다. 꽤 정없는 의사가 들어왔네, 하고 생각할 무렵 의사는 진료비는 괜찮다는 말과 함께 작은 약을 하나 건넨다. 이번엔 내가 아무말도 하지 않고 약을 주섬 받았다. 그러곤 앞으로도 이상한 점이 있으면 찾아오라는 말을 한다. 앞으로도 오늘 다리를 다친 것처럼 크게 다칠 일이 아니라면 오진 않겠지만, 여튼 그러겠다고 하고 병원을 나선다. 아직 점심시간도 채 지나지 않았다. 이상한 점? 이상한 점이라면 잔뜩 있었다. 저 의사가 하는 이상한 점이라고 해봤자 머리가 아프거나 뭐가 염증이 난다거나 하는 것이겠지만 이 마을의 이상한 점이라면 아주 많다. 하루종일 얼굴 한 번 비추지 않는 아버지, 이상한 암초에 꽂힌 우체통, 혼자서만 잘 사는 서 사장이라든가, 어떻게 다쳤는지도 모를 머리의 상처까지.

 

 

 “도서관은 그리 꼬박꼬박 나오면서 마을회관 공지는 읽어보지도 않아?”

 

 여느때처럼 도서관 문을 열자 책이 한 권도 꽂혀있지 않은 책장들과 카운터 옆에 서있는 사서가 눈에 들어온다. 마을이 개발될 것이라는 소식이라는데, 그런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표정으로 사서를 뚫어져라 쳐다보자 사서가 고개를 설레설레 젓는다. 마을 회관의 게시판이라도 보라는 듯 나를 밖으로 밀어내곤 도서관 문을 닫는다.


 마을이 개발된다는 것은 사실이었나보다. 그 병원도 마을이 개발되기 전에 마을 사람들의 검진을 위해 잠시 들어선 임시 의료시설이었고, 도서관도 이제 문을 닫고, 오늘 아침에도 늘 보이던 서 사장이 보이지 않았다.

 

 지진해일로 인해 마을이 크게 훼손되고, 마을 복구를 위한 개발을 실시합니다. 총책임자는 서 차현...

 

 그 남자의 이름이 왜 나오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서 사장이 이 일에 연관이 되어있는 모양이다. 내일 당장 서 사장을 찾아가 무어라 따지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지금은 가만히 게시판에 붙은 공지만 읽으면서 가만히 서있는다. 지진해일? 그건 또 무슨 소리람. 우리 마을은 지금 보는 것처럼 평화롭고 갈매기까지 날아다니는 해안마을인데. 이 공지에는 이상한 것이 한둘이 아니다. 곧바로 어디론가 발걸음을 옮긴다. 달린다. 숨이 턱끝까지 차오르고 넘칠 때까지 달려나간다.

 

 “아직 이사를 안하셨어요?”

 

 의사는 자리에서 일어나 나를 의자에 앉힌다. 숨을 들이쉬고 내쉴때마다 폐가 팽창하는 느낌이 든다. 의자에 앉자마자 여태껏 숨을 들이쉰 것이 말하기 위함인 것처럼 말들을 뱉어낸다. 지진해일이 무슨 의미예요? 개발은? 서 사장은? 당신은?

정리되지 않은 질문들이 주르륵 입밖으로 흐른다. 의사는 날 진정시키기라도 하듯 고개를 내젓다가 다시 한 번 머리의 상처를 살핀다.

 

 

 

 오늘은 이부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자리에 누워있는다. 그럼 다시 잠을 잘테고, 일어나면 아홉시가 훌쩍 넘어가 아버지를 볼 수 있겠지. 그럼 지진해일이 무엇인지, 내 기억을 다 날려버린 이 머리의 상처가 어떻게 생긴건지 전부 알 수 있을 것이다.

아버지는 열두 시가 넘어가도록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이부자리에 가만히 누워 아버지를 기다리고 있는다. 한 시가 다 되어갈 무렵 덜컹, 하고 문이 열린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아버지가 날 보면 뭐라고 할지는 궁금하지 않다. 그저 내가 궁금한 것을 물어보고 따져야지. 글으로라도 써서 메모를 남겼어야지, 하고 원망이라도 할 셈이었다.

들어온건 어머니였다. 몇 주전에 집을 나간 모양인지 어떤 날을 기점으로 보이지 않았던 어머니, 아버지도 그 날을 기점으로 보이지 않았던 것 같았다. 잠깐, 그 날이 무슨 날이었지?


 혼란스러움을 뒤로 하고 이불을 박차고 어머니에게 달려간다. 날 당혹스레 바라보는 어머니를 살핀다. 어머니, 왜 이제 돌아오셨어요. 하고 묻는다. 이제 짐을 싸야지. 하는 어머니의 목소리에는 힘이 없다. 지진해일이 일어나서 우리 이사가야한대요. 어머니, 이건 다 무슨 말이죠. 전 모르겠습니다. 아버지는 집을 나가신건가요. 그래서 어머니가 돌아오신 건가요.

 

 의미모를 말을 듣는 사람처럼 애매한 표정을 짓고 있는 어머니가 날 다시 이부자리에 앉힌다. 너희 아버진 돌아가시지 않았니. 나는 지금 일을 하고 돌아왔어. 아가, 이제 떠나야지, 언제까지고 여기서 편지만 쓰고 있을 수는 없잖니. 우린 지진해일로 네 기억과 아버지를 잃었고 얼른 여길 떠나야 우리라도 살지 않겠냐.


 어머니가 하는 말은 당연하게도 내 머릿속에 날아와 박히지 않는다. 오히려 튕겨내었다면 그랬겠지. 내 어깨를 붙잡고 있다가 짐을 챙기기 위해 자리를 뜨는 어머니의 팔을 붙잡는다. 그게 무슨 말인가요, 어머니. 그렇게 물음을 던져도 어머니는 묵묵히 짐을 챙기기 시작한다. 일주일 내외로 이 마을은 사라질 것이고 네가 그리도 편지를 보내고 싶어하던 어미도 돌아왔다며 어머니는 날 합리화 시키기 시작한다.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돌아오셨다.


 나는 편지지가 든 가방을 맨다. 달그락, 달그락 하고 연필이 필통에 부딪혀 소음을 자아낸다. 집을 뛰쳐나온다. 종아리의 상처가 걸음을 방해하는 바람에 다리가 휘청거린다. 끼익, 기이익하고 소리를 내는 것같은 착각이 든다. 어디로 가야하지, 우체통이 어디에 있더라. 암초에 꽂힌 그 우체통이 우리 마을 우체통이겠지. 버스가 오지도 않는, 버스 시간도 위치도 맞지 않는 그 표지판은 그저 장식일 뿐이고, 헐렁한 이음새는 분명 우체통의 이음새였기에 맞지 않는 거겠지.

 

 1년에 두 번 열리는 길은 바다 한 가운데의 암초를 향해 뻗어있다. 그 우체통에 편지를 넣으면 누구에게라도 닿지 않을까. 갑자기 들이닥친 현실을 피해서 어디론가라도 도피해있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저 우체통이 이 마을을 벗어나 자신의 섬을 만들어낸 것처럼.

 언제 길이 열릴지는 모르겠지만, 언젠가는 길이 열려 우체통에 편지를 넣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럼 어머니든 아버지든 편지를 받고 집으로 돌아올 것이고, 그 집에서 전처럼 평범하게 살 수 있겠지. 지진해일이 들이닥친 마을이 아니라 우리 집이 있는 마을에 전부 모여 평범하게 살 수 있을 것이다.


 한쪽이 찌그러진 모양새를 한 아치모양의 동굴 입구는 별이 하나도 뜨지 않은 밤하늘을 비추어내고 있는다. 달조차도 보이지 않는다. 나는 편지지를 꺼내 품에 안았다. 바닷길이 열리면 편지를 넣고 우체통의 옆에서 우체원을 기다릴 것이다. 우체원을 따라 가면 목적지에 도착할테고, 그 목적지에 있는 건 아버지와 어머니가 있는 우리 집일테다. 그럼 난 거기서 살면 되는 것이다. 여태껏 그래왔듯 아무것도 모르는 체하고 행복하고 평범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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