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주
지은이 :손성호
‘한수’가 한 동안 전화기를 부여잡고 놓지 못한다. 그리고 마치 오랜 사람과 이별의 약속이라도 주고받은 듯 닭똥 같은 눈물을 떨어뜨린다.
“엄마... 저 이번에도 원고료 받기에는 글른 것 같아예.”
그의 깊은 목소리는 이미 어머니의 귀에 울리고도 남았을 텐데 아무런 답장도 주지 않는다. 이젠 그도 이러한 반응이 익숙한 지 할 말만 하고 자기 방으로 들어가 한 동안 아무런 기척 없이 나오지 않았다.
벌써 이런 전화는 수없이 받아왔다. 아무리 한수가 지극정성을 들여 글을 써내고 원고를 내도 퇴짜를 맞은 게 이번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여러 출판사에게 의뢰해봤지만 돌아오는 답은 똑같았을 뿐이다.
방 안에선 그가 지독한 담배 연기를 내뿜고 있다. 원래는 그도 어린 시절 엔 보수에 연연하지 않고 자신만의 색채를 섞어 낸 문학을 만드는 것이 꿈이자 로망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당장에 어머니와 자신은 고통스러운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렇게 한수가 택할 수 있는 길은 오직 하나였다. 사람들에게 명작이라 불릴만한 작품까진 아니어도 돈이 떨어지는 작품! 즉 원고료가 필요했다.
그러나 그에게는 어떠한 길로 가도 끝없는 절망만이 기다리고 있었다. 다시 자신만의 세계를 가진 순수한 문학을 내놓아도... 세속적인 이류 삼류 소설을 내놓아도 결과는 똑같았다. 그저 자신의 재능만을 한탄하는 길만이 유일하게 지독한 생활고와 이에서 오는 분노에서 냉정하게 눈을 돌리는 방법이었다.
이제는 정말 포기할 때가 되었나라는 한탄스러운 생각에 펜이 아닌 마우스를 잡았다. 당장에 취직하여 어머니부터 먹여 살릴 방법을 찾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글밥을 먹겠다며 덤빈 세월이 4년이다. 그 동안 다른 친구들과는 다르게 자신은 아무런 업적도 쌓지 못했다. 당연히 번듯한 직장을 가지는 꿈을 가지는 건 사치에 불과했다.
그렇다고 막노동으로 덤비고자 하니 한수의 아픈 기억이 가로막게 되었다. 그는 한 때 가난을 이기지 못하고 글 쓰는 것도 잠시 포기한 채 일용직 노동자로서 인생을 살기로 결심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실제로 이 안타까운 상상을 모두 받아들이고 실행에 옮겼던 적이 있다.
하나 얼마 지나지 않아 ‘한수’는 공사장에서 막노동을 하던 도중 떨어지는 철근에 다리를 강타당하는 큰 사고를 당하고 말았다. 이로 인해 그는 없는 병원비까지 깨져야만 했다. 아니 엄연히 말하면 자신의 인척들이 돈을 대주는 바람에 그나마 치료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결국 한수는 다시 경건한 마음으로 펜대를 잡아야만 했다. 자신 때문에 고생하시는 어머니를 위해서라도 그리고 위기의 순간 도와준 인척들에게 푼돈이라도 갚기 위해서 말이다.
그러나 이 확실한 결심은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3년이 넘게 지났음에도 다시 그에게 전해진 소식은 이런 소설들에는 원고료를 줄 수 없다는 잔인하고도 냉정한 메시지들뿐이었다. 인생은 정말 암울하고 독하게만 느껴지는 것이 한수의 심정이 아닐 수가 없었다.
다시 깊은 생각에 잠긴 한수는 끝내 아까 전부 흘리지 못한 눈물들을 한없이 쏟아내고 있었다. 지독한 담배 연기로도 그의 마음을 달래지는 못해서였을까? 자신의 수척해진 얼굴을 우연히 놓여져 있는 탁자거울을 통해 바라보니 그 마음은 더욱 찢어질 것만 같았다.
취직을 하는 것도... 평범한 노동자로 사는 것도 불가능 하다는 것을 느껴서 선택한 길이었다. 한데 신께서는 그에게 글쓰는 재능이라는 축복조차 내려주지 않고 있었다. 이미 노력이라면 보일러조차 제대로 틀지 못하는 차디찬 방 안의 공기를 마시며 수만 번은 다짐하며 반복하고 또 반복했다.
하지만 그의 인생은 한 줄기의 빛조차 내려오지 않고 있었다. 오히려 더 큰 어둠만이 닥치고 있었다. 얼마 전 들었던 어머니의 기침소리가 그렇게 거슬리지가 않을 수가 없었다. 이젠 어머니의 나이도 충분히 생사를 왔다 갔다 하고도 남을 나이였다. 오히려 지금까지 이러한 생활고를 버티며 살아오신 게 한수 입장에선 감사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어머니마저도 자신의 곁을 떠난다고 생각하면 벌써부터 숨이 막히는 한수였다. 그렇기에 지금에라도 당장에 그녀의 손에 작은 돈이라도 쥐어 드리며 병원이라도 가보는 게 어떻겠냐고 권하는 게 자식으로서의 도리이건만... 아무리 깨달아도 행동으로 옮길 수 없는 자신의 모습을 보며 더욱 자괴감에 젖을 수밖에 없었다.
고독과 좌절을 씹으며 얼마동안 방 안에 갇혀 있었던 한수였을까? 그의 귀에는 어머니에게서 밥 먹으라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지금의 심정으로는 밥숟갈조차 제대로 넘어가지 않을 한수였지만... 가난한 한수 입장에선 밥을 먹지 않는 것도 사치에 불과했음에 분명했다. 만약 기껏 차려놓은 끼니를 거부한다면... 전부 다 남겨지고 쓰레기가 될게 뻔하니깐 말이다.
얼마나 남자답지 못한 울음을 쏟아 내었던 한수였을까? 그는 눈이 퉁퉁 부은 채로 앉은뱅이 식탁에 앉았다. 그러자 어머니가 아들의 모습을 유심히 살펴보신다. 한수는 그 시선이 거북해 끝내 눈을 돌려버리고 만다.
“너 또 울었나? 사내새끼가 그런 거 가지고 우는 거 아니레이!”
어머니는 한수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괴로운 눈물 좀 쏟아낸 걸 가지고 잔소리를 한다. 하지만 그의 입장에선 이게 더 가슴이 미어진다. 차라리 왜 원고료를 받지 못하냐면서 자신의 무능함을 탓하면 덜 부끄럽기라도 할 텐데 말이다. 그럼에도 어머니는 차마 아들의 자존심 하나 건들지는 못하나 보다. 그저 아들이 금쪽같나 보다. 이렇게 마음이 전해지니 한수의 가슴은 미어지기만 한다.
그래도 차마 사랑하는 어머니 앞에서 눈물 보이긴 싫어 억지로 끅끅대며 참는다. 여기서 울어버리면 그녀의 타버린 가슴은 진짜로 재가 되어버릴 것만 같아서였다. 밥숟갈도 억지로 삼키며 애써 태연한 척을 한다. 배고픔은커녕 속에선 거북한 독기만 차오를 텐데도 말이다.
식사를 다 마친 그는 다시 방으로 들어갈라 한다. 어머니는 조용히 설거지를 하기 위해 앉은뱅이 식탁을 부엌으로 옮겨놓고 수돗물을 튼다. 한수는 다시 한 번 담배를 하나 입에 문다. 좌절은 하더라도 자신이 정한 오늘의 할당량은 채우기 위해서였다. 바로 펜대를 잡는 것에 대해서다.
자신의 분노스러운 감정을 감히 펜대에서 종이로 옮기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한다. 당장에 죽고 싶어도 내일의 희망은 밝을 거라 이야기 하는 소설을 써내고 싶었다. 그렇지 않고 조금이라도 암울한 주제가 들어가면 자신의 인생을 오마주로 담는 것 같아 도저히 글자로 진행이 되질 않길 때문이다.
마치 우울증 걸린 자가 억지로 웃는 것과 같다고나 해야 할까? 그의 소설들은 모두 거짓된 웃음을 하염없이 짓고 있었다. 한 때는 자신이 느낀 절망도 하염없이 글로 토로하던 때가 있었지만... 이제는 먼 나라 사람의 이야기가 되어 버리고 말았다. 오랜 좌절감이 주는 폐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래도 이 순간만큼은 한수의 자그마한 행복이 솟구치려 하고 있었다. 그렇게 글에 대해 상처를 많이 받았음에도 항상 글을 쓰는 순간이 가장 기쁘다고 말하는 그였다. 이 정도면 거의 짝사랑을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아무런 긍정도 희망도 받지 못함에도 그는 그저 바라만 보는 걸로도 기쁨을 느낀다. 정말 글과 사랑에 빠졌다는 말이 그에게는 무색하게만 보인다.
그렇게 오늘도 놓여 져 있는 원고지를 100장을 넘게 찢고 쓰고를 반복하는 그였다. 이로 인해 방구석에 있는 쓰레기통이 금세 가득 차는 일은 매일 마다 있는 일이었다. 이젠 행복한 작업을 반복하는 것도 지쳤는지 무거운 눈꺼풀로 이불을 바라보며 이부자리를 깔고 있었다.
왠지 이대로 잠들었다간 또 다른 악몽을 꿀 것 같은 느낌의 한수였지만 이미 쏟아지는 졸음은 이성의 선을 더 이상 유지시켜주기 못하고 있었다. 편안하게 잠들지는 못하겠지만 쪽잠이라도 자고 싶은 게 그의 심정이었다.
결국 얼마 쓰지 못한 원고를 보면서 한숨을 짓는 그였지만 아직 다른 출판사의 마감일이 많이 남아 있다는 것을 애써 위로의 발판으로 삼으면서 깔아놓은 이부자리로 들어가며 잠을 청한다. 이상하게도 세상은 춥기만 한데 이곳은 따뜻하기만 하다. 그리고 언젠가는 자신에게 다가올 세상도 이렇게 따뜻했으면 좋겠다는 소원을 자신도 모르게 빌게 되었다.
다음 날 아침. 한수 어머니의 기침소리가 심상치가 않다. 건조하게 들리는 마른기침과 가래가 섞인 기침을 번갈아가며 반복하고 있다. 결국 한수도 이 요란스러운 소동에 일찍 깨고 말았다. 그리고 일어나자마자 곧바로 방문을 박차고 어머니에게로 달려갔다.
“엄마! 괜찮은 거 맞아?”
그의 목소리가 초조해졌다. 아무래도 상태가 심각해 보였기 때문이었을까? 한수는 기침을 멈추지 않는 어머니의 손을 부여잡고 한참을 곁에 있었다. 겨우 어머니의 기침이 멈추고 주변이 고요해지자 그때서야 꼭 잡았던 손을 놓는다.
“엄마! 이게 어떻게 된거여? 빨리 병원 가야 하는 거 아니여?”
“야! 이 놈아... 병원 갈 돈이 어디 있다고 그려. 별 거 아니니까 걱정 마.”
그의 마음이 미어질 것만 같았다. 돈을 벌지 못해 제대로 효도는커녕 끼니 값도 못 가져다주는 게 안 그래도 서러워 죽겠는데 이제는 어머니가 아파도 병원 한 번 제대로 못 데리러 가는 것이 도저히 자식으로서 할 짓이 아닌 것 같았다.
이럴 때마다 자신의 미천한 재능은 더욱 원망스러워졌다. 만약 자신이 글재주가 있었다면 어머니가 늙어서까지 끼니를 걱정할 일도... 그리고 이렇게 아플 때 애써 괜찮다며 병원도 마다할 일도 없었을 것이다. 모든 게 다 자신이 인생의 빛을 보지 못해 생긴 일이었다. 차라리 막노동꾼으로라도 희망을 보았다면 지금처럼 이러한 상황은 일어나지 않았을 거라며 마음속의 한탄을 금치 못한다. 한수의 다쳤던 다리가 지금에 와서 후유증처럼 유난히 아픈 이유다.
병적인 기침으로 기력을 전부 소진한 어머니는 한수의 아침을 차려주는 것도 잊어버린 채 누워 있었다. 그 역시도 감히 이런 그녀의 모습을 보고 밥을 먹자는 소리를 할 수가 없다. 아니 엄연히 이야기 하면 그도 그녀를 보며 우러나오는 슬픔에 속이 울렁거렸다. 그러니 밥 생각 따위는 당연히 날 이유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수는 벽에 있는 시계를 보더니 어머니 병수발 드는 걸 그만두고선 자신의 방으로 훌쩍 들어가선 문을 닫았다. 바로 글을 쓰기 위해서였다. 물론 한수도 잘 알고 있었다. 지금의 병든 어머니와 함께 옆에 있으며 병수발하기는커녕 글을 쓰겠다며 어머니를 홀로 놔두고 방으로 돌아가 틀어박히는 일이 얼마나 큰 불효를 저지르고 있는 짓인지를 말이다.
그러나 자신의 작품이 등단하는데 성공해 원고료를 받기 전까지는 진정한 비극이 끝나지 않는다는 생각이 더욱 앞서게 되었다. 그리고 이것은 단순한 생각이 아니라 현실이기도 했다. 참으로 비참했다. 아니 너무나도 냉혹해서 한이 맺혔다. 그래서 담배연기를 태우며 얼어붙은 속을 녹이려는 한수였다. 이제는 담배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자각하면서 말이다.
담배를 태우니 그 향을 맡으며 영감을 떠올리려 애를 쓴다. 슬픈 현실이 눈앞에 계속 아른거리지만 기쁜 상상을 글에 담는다. 살아남기 위한 마지막 발악으로 거짓된 웃음을 짓는다. 괴리감은 더욱 그의 마음을 미궁 속으로 몰아넣지만 수행이라도 하듯 전부 참아낸다.
그렇게 오늘도 하루의 절반 이상을 보냈다. 그때동안 찢고 쓴 원고지가 다시 쓰레기통을 가득 채우게 되었다. 이래봐야 이제 작품의 반 정도만 완성되었을 뿐인데 벌써부터 진이 빠져 한숨을 짓는다. 출판사가 제시한 마감일까지는 얼마 남지 않았으나 맞추지 못할 불가능한 숫자는 아니었다. 한수가 다시 한 번 세상을 원망하듯 고독한 연기를 내뿜는다. 그 사이에 어머니도 간신히 없는 기력을 짜내어 자식의 저녁밥은 차려준다.
못난 자식은 또 차려준 밥은 아무 말 없이 꾸역꾸역 넘긴다. 아침의 일이 거슬려 뭐라 할만도 한데 말이다.그렇게 허기진 저녁을 먹고 나니 한수는 다시 마지막 에너지를 쏟아 붇지 않을 수가 없었다. 오늘의 자신이 쓴 글 내용들을 정리하기 위해 혼전의 힘을 가한다. 혹시 틀린 맞춤법은 없는 지 내용을 고쳐야 할 부분은 존재하는지에 대해서였다. 이 확인 작업을 하는 데만 또 다시 오랜 시간을 소비해야만 했다.
흔히 작가가 글을 쓰는 작업은 고뇌의 시간이라고도 불린다. 아무도 도와주는 사람 따위는 없다. 오직 자신만의 표현과 생각 그리고 주어진 원고지와 펜만이 글을 쓸 수 있는 유일한 도구이다. 그렇게 하여 작필이라는 전쟁에 뛰어드는 것이다. 정말 고독한 일이지만 더욱 정나미 없이 한 치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다.
이런 작업을 한수가 얼마나 반복한 지는 셀 수가 없을 정도였고 오늘도 역시 이 일로 하루를 거의 전부 보내다 싶이 했다. 그러나 한수는 이에 대해선 절대 투정하지 않았다. 원래 작가란 틀에 박히게 되면 이 모든 것을 감수해야만 함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현실로 돌아와선 찢어질 듯한 생활고도 그 중 한부분이라 여기면서 말이다.
다시 잠자리에 들려 이불을 피고 눕게 되었을 때 드디어 하루가 또 지나갔음을 그는 몸으로 느끼게 되었다. 오늘은 유난히 이불속도 추운 것 같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이미 추위에 너무 익숙해졌던 탓일까? 아니면 투정 부릴 힘도 없었던 것일까? 그저 모든 것을 받아들이기로 한다.
다만 어머니에게는 부디 무슨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소원을 빈다. 요즘 따라 한수에게 어머니의 존재는 더욱 더 부각되고 있었다. 내뿜는 기침소리가 그렇게 겁이 날 수가 없다. 밤이 되자 또 그녀의 기침소리가 심해진다. 그러나 한수는 아침에처럼 뛰쳐나가 어머니를 보살필 용기도 생기지 않는다. 이상하다. 그도 너무 지쳐서 그랬던 것인가? 아니면 공포심이 그를 묶어두고 있는 것인가?
하지만 그렇다고 하기엔 한수의 표정이 오묘하다. 슬픈 것 같기도 지쳐 보이는 것 같기도 한 파악하기 어려운 얼굴을 한 채 조용히 쏟아지는 졸음에 그저 몸을 맡기고 있었다.
다음 날 아침이 되자 이제는 그녀가 아예 몸져 누워버렸다. 어제 새벽동안 해기에 시달렸는지 도저히 기력을 차리고 일어날 생각을 하지 못한다. 한수는 그녀의 이러한 모습을 보며 한숨만을 짓는다. 이미 자신도 알고 있다. 이대로 가다간 정말 어머니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 그러나 자신이 할 수 있는 게 없다. 동네병원에 대리고 가는 것조차 생활비를 걱정해야 할 판국이라 쉽게 내릴 수도 없는 결정이다.
그저 심한 감기몸살에 좀 걸린 거라며 애써 현실을 부정한다. 물론 그는 마음 같아선 지금이라도 당장 막노동판에 뛰어 들어 하루의 생활비를 벌어 어머니를 병원에 데려가고 싶었다. 하지만 그의 아픈 다리가 또 하루가 멀다하고 쑤셔온다. 거기다 오늘은 추운 날씨와 어울리지 않게 비까지 오고 있다.
아무리 외면하려 해도 그는 점점 그녀의 모습을 볼 때마다 초조해 진다. 자신의 아는 지인에게 또 도움을 청해볼까 몇 번의 생각을 되새김질 하고 있다. 헌데 이것도 용기가 나질 않는다. 영겁의 시간동안 겪은 패배감이 도저히 자신의 곁에서 떠나질 않는다. 결국 모든 생각을 접어 버리고 겨우 자신의 지갑 안에 있는 만 원짜리 한 장으로 비 오는 거리를 헤치며 허름한 담배 가게에서 담배를 길모퉁이에 있는 약국에서는 감기약을 산다.
집으로 돌아와 다시 조용한 담배 연기를 머금고서는 어머니에게 약을 사왔다며 감기약을 내민다. 이미 그녀에게서는 약 먹을 기운조차 없어 보이지만 애써 먹어야 나아진다는 한수의 간절한 요청을 이기지 못하고 큰 알약을 물과 함께 벌컥벌컥 삼킨다.
또 한수는 얼마 남지 않는 부엌의 쌀로 죽을 끓인다. 이제는 자신이 어머니를 먹여야 하는 반대의 상황이 되어버리고 만 것이다. 맨 죽을 내온 그는 기력이 다한 어머니를 어떻게든 일으켜 세워 억지로라도 먹인다. 동시에 자신의 허기진 배도 이 희멀건 죽으로 달랜다.
다시 한수는 이제는 죽어간다고 봐도 좋을 어머니를 뒤로한 채 글을 쓰러 간다. 자신의 작품을 완성시키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이것에 대한 이유는 출판사로부터 원고료를 최대한 빨리 받기 위해서였다. 자신이 계획한 내용 일부를 자르면서까지 완결을 서둘렀다. 그만큼 그의 마음이 조급해졌음을 알리는 일이었다.
이후 한수는 또 방에서 나오질 않았다. 그 사이에 어머니에게 어떠한 변고가 생겼을 지도 모르는 일인데 거들떠 볼 여유가 없다. 그의 급해진 마음이 갈수록 기나긴 실수를 저지르고 있는 지에 대해 아무것도 인식하지 못하게 만들고 있었다.
낮에 비가 계속 내리더니 밤에는 기온이 떨어져 눈으로 바뀌었다. 이에 유난히 추운 밤이 계속되었다. 어머니의 기침소리가 이에 더 심해진다. 하지만 한수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다. 너무 과로했던 탓일까? 한수는 그 추운 자리에서 잠들었다. 방 밖에선 어떤 손길이 자리하고 있는 지도 모른채 말이다.
다시 그가 눈을 떴을 때는 완성된 원고도 옆에 같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에 정신을 차린 그는 급히 출판사에게 전화해 언제까지 원고를 보내주겠다는 약속을 한다. 그런데 느낌이 이상하다. 뒤에 아무런 기척이 느껴지지 않는다. 평소라면 있어야 할 무언가가 빠진 것 같다. 그 순간 한수의 머릿속을 지나가는 한 단어가 있었다. 바로 어머니란 단어였다.
기침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고요하기만 하다. 마치 집에는 자기 자신 혼자 있는 것만 같았다. 이것이 한수를 지독한 공포로 몰아넣고 있었다. 그가 어머니가 있을 방문을 열었다. 갑자기 피비린내가 나기 시작한다. 피를 얼마나 토해 놨는지 방바닥 중앙에 넓게 붉은색 액체가 굳어 있었다.
한수는 그 자리에서 포효하면서 절규하듯 어머니란 이름을 외쳐본다. 엄마란 친근한 단어도 아니다. 어머니라는 세 글자를 절망하듯 부르짖는다. 항상 출판사에 전화할 때만 쓰던 전화기를 긴급 요청을 하기 위해 쓴다.
수 십 분이 지나가자 한수의 어머니를 구해줄 마지막 희망이 찾아온다. 앰뷸런스는 급히 그의 어머니를 태우고 그와 함께 길을 동행한다. 알 수 없는 기계음들이 한수의 귀에서 난무하고 있다. 아직 바이탈이 살아 있다는 알 수 없는 용어를 내뱉는 간호사만이 오직 떨고 있는 그를 위로해준다.
후회가 밀려온다. 절망이 밀려온다. 순간을 함께하지 못했던 자신이 바보같이 느껴진다. 이런 것이 죄책감이라는 것일까? 한수의 떨고 있는 손은 시간이 갈수록 더욱 심해진다.
응급실에 도착하자 온갖 사람들의 부산한 움직임이 한수의 앞에서 진행되었다. 그러나 그의 눈에 보이는 것은 오직 차갑게 누워 있는 어머니의 모습 뿐이다. 어느 세 그 풍경을 지켜보고 있자니 자신도 모르게 머리를 쥐어뜯게 된다.
한참의 시간이 흘렀다. 이제는 어제의 어머니처럼 절망할 기력도 남아있지 않는 한수였다. 거의 넋이 나간 채 쓰러져 있는 어머니만을 지켜보며 눈물을 삼키는 게 그가 할 수 있는 행동의 전부였다. 앉아서 흐느끼고 있는 그를 대상으로 백색의 가운을 입은 한 의사가 찾아오기 전까진 말이다.
“저기... 정숙자님 보호자님 되시는 분입니까?”
“네. 그런데요?” 그의 간절하면서도 절규와 같은 목소리가 울음기 속에서 진하게 드러나오고 있었다.
“혹시 아드님 되시는 겁니까?”
“네.”
의사는 진실을 알게 되자 한 동안 말을 잇지 못한다. 그에게도 마음을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렇게 긴 침묵을 깨고 한숨을 깊게 내쉰 그는 한수에게 차마 전하기 어려운 이야기를 비로써 하게 된다.
“당신의 어머니께선 오랜 기간 동안 결핵을 알아 오셨습니다. 그리고 지금 거의 말기의 상태라 저희가 손을 쓸 수 없는 단계까지 와 있습니다.”
“잠... 잠시만요? 손을 쓸 수가 없다니요?”
“네. 이제 어머님께서 주어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으신 것 같습니다.”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거의 일방적인 통보를 끝낸 의사는 백색의 가운을 다시 고쳐 잡고 멈춰있던 발걸음을 어디론가 옮기며 한수를 등졌다. 이 순간 한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왜 살리지 못하냐며 의사를 책망할 마음도 생기지 않았다.
모든 것이 자신의 잘못이었다. 늦어도 너무 늦었다. 아니 자신의 일 때문에 외면해도 너무 외면해버렸다. 자신에게 다가오던 폭풍 같은 직감을 전부 걷어차면서 말이다. 물론 이에는 전부 다 사정이 있었다. 지독한 생활고와 재능 없는 자신의 필력 그리고 지금도 묵직한 고통을 주는 공사장에서 다친 다리... 이 모두가 원인이었다.
결국 자신의 무능함이 어머니를 죽음으로까지 몰았다는 사실에 이젠 가슴이 미어지는 것이 아니라 당장이라도 타 들어갈 것만 같았다. 그에게는 심한 답답함과 당장이라도 토해버릴 듯한 구역질이 심하게 몰려왔다. 너무 오랫동안 울었던 탓일까? 아니면 이 현실들이 너무나도 받아들이기 싫어서 오는 정신적인 반응에서 오는 육체적인 몸부림이었을 지도 모른다.
그의 눈에선 이제 더 이상 떨어질 눈물도 없었다. 모든 것을 잃은 듯 허심탄회한 표정만이 그의 상태를 말해주고 있었다. 이젠 생각도 멈춰버린 것 같았다. 아니 어떠한 생각조차 하기도 두려웠을 것이다. 자기 앞에 있는 어머니가 죽어가고 있다는 것도 믿겨지지 않았을 것이다. 허나 그녀의 몸속의 있는 잔혹한 결핵균은 지금도 움직이고 있다. 다만 링거 방울에서 투약되고 있는 진정제가 발작 같은 기침만을 멈추게 해주고 있을 뿐이었다.
너무 지쳐버린 나머지 그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응급실에서 조용히 잠들게 되었다. 한 순간이라도 더 그녀와 함께 있고 싶겠지만 지칠대로 지쳐버린 그의 마음이 이를 허락하지 않는다. 아들로서 어머니를 지키지 못했다는 그 죄책감이 악몽에서도 깊게 베여 나타날 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그럼에도 어머니의 온기는 아직 남아있다. 한수도 이 온기를 놓치고 싶지 않았을 거다.
한수의 어머니가 쓰러지고 이틀이 지났다. 그의 어머니가 마지막으로 의식을 찾았다. 그러나 정말로 마지막이었다. 마지막 죽기 전 숨을 가파르게 내쉬며 유언의 의식을 치루기 위해서였다. 한수도 이를 알고 있었다. 지금의 그녀는 살아 있기 위해 깨어난 것이 아니라 이제는 하늘로 돌아가기 위해 깨어 있음을 말이다.
“한수야! 이 못난 어미 보살피느라 많이 힘들었제? 마음 고생도 많이 했고야.”
그가 차마 대답을 잇지 못한다. 마지막이니 자신도 하고 싶은 말을 모두 내뱉어야 하는데 도저히 쏟아지는 눈물에 숨이 막혀 그러질 못하였다.
“아들아! 그래도 난 니가 참 좋았데이. 못난 아들이어도 금쪽같았다.”
그녀의 숨이 안 그래도 가파른데 대화를 해서 그런 지 더욱 가파러 지고 있었다. 물론 한수는 그저 침묵을 지킬 뿐이었다. 괴로움이 서린 울음을 터트리며 말이다.
“한수야. 나중에 꼭 작가로 성공하믄 하늘로 편지 한 통 보내다오. 니가 쓴 글이 꼭 보고 싶구나.”
그녀가 한수의 손을 꼭 잡았다. 그도 자신의 손으로 가녀린 어머니의 손을 부여잡는다. 서로의 온기가 전해진다. 그러면서 한수에게는 놓치고 싶지 않은 그녀의 온기가 점점 사라진다. 조금씩... 조금씩...
그녀가 눈을 감았다. 한수는 작은 목소리로 어머니를 외쳐본다. 그러나 답이 없다. 이미 너무 늦었다. 그녀의 손은 이미 얼음장처럼 차가워졌다. 가지고 있던 예전의 온기는 더 이상 사라지고 없었다.
“미안해. 엄마! 사랑해요. 어머니 !”
그녀가 떠나기 전 그는 수많은 말들을 하고 싶었을 것이다. 마지막임을 알고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최소한의 함축은 이런 것을 두고 말하는 것일까? 그가 최종적으로 하고 싶었던 말은 사랑한다라는 그 한마디였다. 예전도 지금도 그렇게 낯설게만 느껴졌던 그 한마디를 그녀가 죽고 나서 겨우 내뱉었던 것이다. 그에게는 평생 후회될 일이였다. 적어도 마지막 그녀가 이승을 떠나기 전에는 꼭 해줬어야 하는 말이었다고 땅을 치며 독백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의 싸늘한 주검과 함께 장례식이 치러졌다. 한수는 맏아들이자 외동아들로서 그 자리를 지켰다. 여러 사람들이 슬픔을 가누며 장례식장을 방문했지만 많은 사람이 온 것은 아니었다. 그녀의 삶도 지금의 그의 삶처럼 쓸쓸한 삶이었기에 마지막 가는 길도 제법 외롭게 느껴졌을 것이다.
3일장이 끝났다. 그도 이제는 모든 것을 털고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어쩌면 아직도 어머니의 온기가 남아있을 그 집으로 말이다. 돌아오고 피곤한 마음에 한수가 책상 위를 올려다보니 출판사에 전화해 보내주겠다던 완결 원고가 올려 져 있었다. 아무런 생각 없이 한수는 다시 한 번 더 그 원고들을 읽어본다.
그러나 한수는 그 원고들을 전부 찢어 버린다. 마치 종이에 한이라도 맺힌 것 마냥 자비 없이 말이다. 출판사에 보내주겠다던 약속도 전부 잊어버린 듯 했다. 다시 눈물이 나올 것 같은 슬픈 표정을 지었지만 더 이상의 눈물을 흘리진 않았다. 다만 초췌해진 얼굴은 우중충한 기분을 지워내지 못했다.
한수가 다시 펜을 잡는다. 아직 몰골도 추스르지 못했을 텐데 뭐가 그리 급한지 새 원고지를 찾아 정신없이 무언가를 적어낸다. 그렇게 몇 시간이 흘렀을까? 이번에는 비교적 내용을 고쳐 쓰는 일도 줄어서인지 쓰레기통이 전부 차지 않았다.
잠시 숨을 고르고 허기진 배를 간신히 채우기 위해 얼마 남지 않은 부엌의 쌀을 가지고 죽을 끓여 먹는다. 내일은 라면이라도 사다놔야 하는데 그에게 주어진 돈도 없었다. 그 와중에도 어머니의 온기라도 느꼈는지 한참을 멍 때리며 자신에게 놓여진 앉은뱅이 식탁 앞을 바라본다.
원래는 어머니가 있어야 할 그 자리에 이제는 어머니가 없다. 다른 것보다도 그는 외로움을 느꼈다. 아니 그리움도 느꼈다고 해야 할까? 복잡한 감정이 다시 용솟음친다. 그렇다고 바보처럼 눈물을 흘리진 않는다. 마음속에 슬픔을 억누르기 위해서였을까? 눈가가 촉촉해 지면서도 억지로 참는다.
설거지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그릇을 대충 부엌에 놓고 다시 그는 작가가 되고 싶은 사나이로서 글쓰기라는 전쟁터에 나선다. 이 지독한 작업은 밤까지 계속되었다. 그러한 와중에 출판사에서 전화가 왔다. 내용은 보내주겠다던 완결된 원고를 언제 보내주냐는 독촉이었다.
그러나 전에 완성했던 원고는 이미 찢어버리고 없었다. 그런데도 그의 입가에선 미소가 피어오른다. 마치 아직늦지 않았다는 듯이...
전화가 온 후에도 그의 글은 느긋하게 진행되었다. 너무 느리지도 너무 빠르지도 않게 말이다. 예전에 쓰던 그대로 자신의 생각에서 우러나오는 표현을 잔잔한 물결처럼 적어내었다. 그렇게 글이 써진 원고는 영문 없이 쌓여져만 갔다.
다음 날 아침 한숨 눈을 붙이고 일어난 한수는 또 하얀 담배연기와 함께 작필을 시작하였다. 낯선 모습이 아니었지만 오늘 따라 이상하게 그의 표정은 조금 밝았다고 할 수 있었다. 이제는 실성이라도 한 것인가? 아니면 자는 사이 좋은 꿈이라도 꾼 것인가? 상황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게 희미한 미소를 띄고 있었다.
그리고 정오가 조금 넘어 드디어 그는 긴 인내의 작업이 끝났다는 듯이 기지개를 활짝 피고 끝났음을 알렸다.
약 200장 원고지 정도의 두께! 이틀 만에 쓰기에는 굉장히 버거운 양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정 작업이 그가 쓴 다른 작품들과는 달리 거의 없어서 이렇게 빠른 작필이 가능했던 것이다. 그리고 꽤 두꺼운 원고지 묶음 위에 제목을 상징하는 단어가 하나 써져 있었다.
‘오마주’
그가 200장 분량의 원고지를 들고 우체국을 갈 준비를 하고 있다. 그러면서 아무도 없는 방에서 일말의 말을 중얼거린다.
“소설이 아닌 진짜 이야기라...”
그러나 대답해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다시 의미심장한 말과 함께 미소를 지으며 밖으로 나선다.
“어머니가 하늘에서 보시면 엄청 좋아하시겠지? 이건 우리들의 추억의 기록이니깐.”
그의 오마주가 끝이자 시작을 알리고 있었다.
이름: 손성호
연락처 : 01094617083
이메일 : thstjdgh26@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