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의 발
Written by 김day
달빛이 있었는데도 유난히 어두웠던 밤이었다. 슬픔이 말하는 건지, 술이 말하는 건지도 모를 언어들이 마구잡이로 튀어나와 전화 너머에 있는 당신에게로 갔다. 당신은 곧장 내게로 달려왔다. 헝크러진 머리가 눈에 보였는데도 나는 그걸 가다듬을 시간조차 주지 않고서 당신을 내 앞에 앉혔다. 그리고 미리 시켜둔 소주를 잔에 따르고 입에 털어 넣었다. 술에 취하면 이상하게 모든 소리들이 눈에 보였다. 그래서 숨을 가다듬는 당신의 호흡도 눈에 보였다. 나는 당신의 호흡을 빤히 바라보다가 느리게 눈을 껌뻑였다. 당신이 보이다가 사라지다가 또 다시 보이기를 반복됐다.
“오랜만이네요.”
당신은 호흡을 다 가다듬지도 못한 채 오랜만이라는 내 말에 어이없다는 듯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당신에게 있어 일주일 만에 보는 게 오랜만이 아니란 걸 나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삼일 만에 보는 것도 내게 있어 오랜만이기에 나는 늘 당신을 보면 오랜만이라는 말을 습관처럼 내뱉었다. 꼭 삼일만이 아니라 당신은 몇 시간 만에 봐도 항상 오랜만에 본 사람 같았다. 그만큼 내가 당신을 그리워하고 있었다는 건지, 아니면 사람을 그리워하고 있었다는 건지 잘 모르겠다.
“천일야화 해줄까요?”
당신은 꽤나 놀란 얼굴이었다. 급하게 부른 것과 달리 태연한 얼굴로 천일야화를 해주겠다는 말을 지껄이는 것도, 늦은 시간에 당신을 부르는 것도 처음 있는 일이었다. 더구나 당신은 내 앞에 누군가가 앉아있는 걸 극도로 싫어한다는 사실 또한 알고 있었다. 당신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다시 느리게 눈을 껌뻑였다.
“한 꼬마가 있었는데 그 꼬마의 엄마가 엄청 아픈 사람이었대요. 얼마나 아팠냐면, 꼬마를 낳은 이후로도 계속 병원에서 못 나올 정도로 아팠대요. 꼬마가 병원이 제 집인 줄 알만큼.”
나는 또 다시 소주를 입에 털어 넣었다. 여전히 맛이 없었다. 이 맛없는 걸 사람들은 힘들 때 혹은 기분 좋을 때마다 찾는 걸 보니 괜스레 쾌락이란 이리도 무서운 거구나 하는 같잖은 생각이 떠올랐다. 나는 새 잔에 소주를 부어 당신에게 들어보였다. 당신은 고개를 내저었다.
“그러던 어느 날 꼬마가 난생 처음으로 엄마와 바다를 가게 됐대요. 엄마가 가자고 했거든요. 처음 본 바다는 멀리서 보면 푸른색이었고 가까이서 보면 투명했는데, 그 괴리감이 꼬마는 무서웠대요. 그래서 바다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엄마와 같이 모래사장에서 모래성을 쌓으며 놀고 있었는데, 그걸 그만 바다가 삼켜버린 거예요. 그리고 그게 너무 충격이었는지 엄마는 쓰러졌어요. 엄마가 참 마음이 약해요. 모래성은 다시 쌓으면 되는데.”
당신의 미간이 점점 찌푸려져 갔다. 아니다. 당신은 여전히 무표정이었다. 어떠한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당신한테서 그 무엇도 읽어낼 수 없었다. 읽히지 않아, 대본이 없어. 그래서 당신 앞에서면 나는 항상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런 내가 답답했는지 아니면 내게 흥미가 있었는지 당신은 천일야화라는 이야기를 꺼냈고, 어느새 살기 위해라는 가짜 명분을 만들어 내고서 이야기를 내뱉고 있는 내가 보였다.
“병원이 진짜 집이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되고, 이제 더 이상 병원에 있을 이유가 사라졌을 때 꼬마는 진짜 집으로 오게 되었어요. 진짜 집은 병원과 달리 추웠고, 아무것도 없었고 또 아무도 없었어요. 있는 거라곤 침대 하나와 그 위에 놓인 처방전뿐이었지요.”
싸늘하게 식어 있는 방 안이 아직도 뇌리에 박혀있었다. 마치 서늘한 여름이 깔려있는 것만 같았다. 몇 십 년 째 깔려있어서, 물로 씻겨도 씻기지 않고 수건으로 닦아도 닦이지 않는 곰팡이 같았다. 벽에 들러붙은 곰팡이가 점점 커지고 이윽고 나까지 집어삼킬 것만 같았다.
“엄마에게 칭찬 받으려고, 만약 엄마가 집으로 오게 되면 또 다시 밖으로 안 나가도 되게 하려고 꼬마는 처방전을 들고 약국으로 갔어요. 약사 아저씨는 처방전과 꼬마를 번갈아 보더니 꼬마에게 물었어요. 꼬마야 이 처방전 네 거야? 아니요, 엄마 거예요. 엄마가 아파서 제가 대신 왔어요. 아저씨는 알았다며 약을 주고 말했어요. 수면제는 자기 1시간 전에 먹으라고 어머니께 전해주렴.”
무엇이 그리 급했는지 뛸 때마다 약통에 담긴 약들이 촤르륵 소리를 냈다. 집에 가봤자 반기는 건 이제 침대뿐인데도 나는 죽을힘을 다해 집으로 뛰어갔다. 그렇게 뛰면 무언가 달라질 줄 알았다고, 무의식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집에는 역시 아무도 없었다. 나는 침대 위로 올라와 누웠다. 침대가 차가웠다. 푹신하지만 차가웠다. 괜스레 서러움이 물밀 듯 치고 올라왔다. 눈물이 침대로 떨어지려는 순간 누군가가 집 비밀번호를 치고 안으로 들어왔다. 엄마 하고 상체를 세웠지만 엄마가 아니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집으로 들어온 것은 오랜만에 보는 아빠였다.
아빠는 나를 한참 껴안더니 소리 없이 몸을 떨었다. 아빠의 검은 정장에서 낯선 향이 묻어났다. 낯선? 아니다. 낯설지 않았다. 병원 1층에서도 많이 맡아본 향이었다. 향은 1층 로비에서부터 지하 1층에 있는 장례식장으로 이어져있었다. 그렇게 이어져있었다고, 이어진 게 내 눈에는 보였다고, 나는 그래서 아빠에게 어디를 갔다 왔냐고 묻지 않았다.
“아이가 중학생이 되었을 때, 아이는 한 번 죽으려고 했어요. 그런데 막상 죽으려고 하니까, 뛰어내려서 죽는 건 너무 무섭고 손목을 긋고 죽는 건 나중에 남은 사람이 치울 때 불편할 거 같아서 할 수 없었대요. 그래서 생각해낸 게 수면제였죠. 근데 그것도 한 가지 문제가 있었어요. 수면제를 처방 받으려면 처방전이 필요했죠.”
처방전이 없던 나는 수면제를 구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냥 약국에서 수면유도제를 사서 바다에 갔다. 오랜만에 본 바다는 여전히 푸르렀고, 그래서 무서웠다. 아직도 내가 만든 모래성을 가져 갈거니? 그래서 난 너한테 다가가고 싶지 않아. 바다 앞으로 갈 수 없었던 나는 하루 종일 모래사장 위에 앉아 바다를 바라봤다. 모래사장 위에 있어도 바다는 푸르게 보였다. 사람들은 분명 저 겉모습에 속아 바다한테 다가갈 것이었다. 그리고 바다와 접촉한 바로 그때, 모래사장처럼 휩쓸려 갈 것임이 분명했다. 세이렌은 없었다. 바다 자체가 세이렌이었다.
“불쌍하네.”
당신의 입에서 아이에 대한 연민의 말이 흘러나왔다. 연민의 말. 아니다. 그건 동정이었다. 위에서 내려다보는 동정은 연민과 달라 언제 들어도 기분이 나빴다. 나는 못 들은 척 소주 한 잔을 다시 입에 털어 넣었다. 이번에도 소주는 썼다. 나는 아직 취하지 않았다. 아직 취하고 싶지 않았다.
“아이는 약을 한 알 한 알 뜯어서 손바닥 위에 올려놓았어요. 약은 바다를 닮았었죠. 겉은 푸른데, 정말 무서우리만치 푸른데 그 속이 훤히 보였거든요. 아이는 약을 먹기 전, 약을 바지 주머니에 넣고 모래성을 쌓기 시작했어요. 이제 뒤에 아무도 없는데도, 손을 내뻗고 있는 사람이 없는데도 아이는 혼자서 모래성을 쌓을 만큼 자라 있었지요. 엉성하게 쌓은 모래성이 완성되어갈 때쯤 바다는 혀로 아이가 만든 모래성을 핥으며 맛을 보다가, 냉큼 집어 삼켰어요. 모래성은 또 다시 사라지고 아이는 그저 그 모습을 바라봤죠.”
힘없이 무너지는 모래성은 꼭 나 같았다. 물에 닿으면 좀 더 단단해지면서, 너무 많이 닿으면 금방 사라져버리는 게 꼭 나 같았다. 물과 친하다고 과시하던지, 아니면 물이 무섭다고 말하던지. 지조 없게 뭐하는 짓이야. 나도 모르게 코웃음을 쳤다. 당신은 궁금하다는 듯 나를 바라봤지만 나는 그저 손을 허공에 휘저었다.
“이제 그만 약을 먹어야지, 주머니에 손을 넣은 아이는 울상을 지을 수밖에 없었어요.”
“왜?”
“주머니에 손을 넣었더니 약은 사라지고 한 알밖에 남지 않았거든요. 하나밖에 없어 더 푸르고 더 투명해서 한순간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대요. 그래서 아이는 하나 남은 악도 바다한테로 던졌어요. 그리고 그 날 집으로 돌아가서 왜 이렇게 늦게 왔느냐며 아빠에게 꾸중만 들었다네요.”
나는 입을 다물었다. 그때 그냥 죽었어야 했는데, 아쉬워요 라는 말이 절로 나올 것만 같았다. 당신도 내가 아직 할 말이 더 남아있다는 걸 알고 있는지 나를 빤히 바라봤다. 그러나 나는 그저 웃을 뿐 더 이상 말을 꺼내지 않았다.
“오늘의 천일야화는 여기까지예요.”
당신이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보다 짧은 시간이었다는 듯이. 나는 두 팔로 머리를 감싸며 책상 위로 상체를 눕혔다. 피곤했다.
“근데 말이에요. 아이한테 불쌍하다고 하지 말아요. 앞으로도 그렇게 말하지 말아요. 그 말 아이가 제일 싫어하는 말이거든요.”
나는 느리게 눈을 껌뻑이다가 그대로 눈을 감았다. 온몸이 멈춘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어떻게 보면 쓰러져서 자는 사람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아니다. 어쩌면 그대로 죽은 사람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그때 난 죽었어야 했어. 그랬으면 여기까지 오지 않았을 텐데. 아직까지도 나는 바다가 무서웠다. 엄마가 보고 싶었다. 그래서 바다가 무서우면서도 보고 싶었다.
상체를 테이블과 가까이 한 채로 손을 뻗어 소주를 들었다. 술이 다 떨어졌다. 나는 몸을 일으켜 세워 물 한 모금 마셨다. 술을 마시니 목이 타들어갈 것만 같았다. 당신은 내 이야기를 듣는 동안 그 무엇에도 손대지 않았다. 나는 턱에 손을 괴었다. 눈은 여전히 감고 있었지만 마치 뜬 것처럼 당신에게로 고개를 들었다.
“당신은 참 신기해요.”
“그런 소리 많이 들어서 이제 별로 감흥이 없어.”
“그런 것도 신기해요. 미안해요. 멋대로 불러서. 그리고 나와주니 고맙네요.”
계속해서 눈을 감고 있더니 잠이 쏟아져 내렸다. 술을 마시면 잠이 잘 오는 것도 있었지만, 당신이 옆에 있으면 유독 더 잠이 잘 왔다. 쏟아지지 않던 비가 당신을 만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장마처럼 비를 퍼부었다. 당신은 그런 사람이었다. 나를 궁금해 하는 것처럼, 나 또한 그런 당신이 궁금했다. 신경안정제 같은 사람. 어릴 때 바다 안에 뿌린 약들이 마치 지금 내 속으로 들어오는 것 같았다. 그것도 당신하고만 있으면. 잠이 드는 게 느껴졌다. 당신은 아무 말이 없었다.
“엄마, 바다는 왜 발이 없어?”
슬금슬금 내게 다가오는 바다가 답답해 한 걸음 다가갔다가 갑자기 뒤로 확 멀어져 나는 멍하니 서있었다. 엄마는 내 뒤에 서서 혹여나 내가 넘어지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두 팔을 살짝 내뻗고 있었다.
“바다가 발이 없어서 계속 내 발을 탐내.”
뒤로 간 바다가 그저께 새로 산 꽃이 달려있는 내 슬리퍼를 탐내는 건지, 아니면 그 슬리퍼를 신고 있는 내 발이 탐나서 그런 건지는 몰라도 다시 내게로 다가왔다. 내 발을 덮은 바다는 보기와 달리 차가웠다.
“바다는 왜 차가워? 파랑색은 따뜻한 색이잖아.”
엄마는 아무 말도 없었다. 그저 내 뒤에 서있을 뿐이었다. 엄마의 인기척이 바다 때문에 느껴지지 않았다. 인기척이 없어도 엄마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왜냐면 엄마는 한 번도 내 앞으로 온 적이 없었으니까. 늘 내 뒤에 서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으니까. 나는 쉽사리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내가 뒤를 돌아보면 엄마는 또 내 뒤에 있기 위해 바다 안으로 들어와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면 몸이 아픈 엄마는 쉽사리 감기에 걸릴 거란 걸 나는 알고 있었다.
나는 발로 바다를 찼다. 첨벙 거리는 소리가 다른 사람들 눈에는 물장구 치고 있는 걸로 보이겠지만, 아니었다. 나는 바다를 발로 차는 것이었다.
“내 슬리퍼 탐내지마, 바보야. 아까 만든 모래성만으로 만족하란 말이야.”
바다는 발로 차도 계속해서 내게 다가왔다. 뒤로 내빼는 건 잠깐뿐이었다. 재미없었다. 나는 다시 가만히 발을 놔뒀다. 이때다 싶어 바다가 또 다시 내 발을 덮쳤다. 바다가 핥고 간 슬리퍼 안으로 진흙이 들어왔다. 슬리퍼는 금세 더러워졌다. 아빠가 안다면 집밖으로 내쫓길 수도 있었다.
“아빠한테 혼나겠다. 슬리퍼가 너무 더러워졌어. 엄마 미안해. 엄마가 사준건데 말이야.”
엄마는 또 대답이 없었다. 여전히 대답이 없었다. 언제부터 대답이 없었더라. 너무 까마득해서 이제 엄마 목소리가 기억나지 않았다. 엄마는 부끄럼쟁이였다. 내가 뒤를 돌아보면 항상 어딘가로 숨어버렸다. 그래서 나는 막다른 곳에서 뒤를 돌 상황이 오면 항상 두 눈을 가리고 뒤를 돌아 몇 걸음 앞으로 걸었다. 엄마를 생각한 나의 배려였다. 이번에도 나는 두 손으로 눈을 가렸다. 바다를 등져 앞으로 몇 걸음 걸어왔다. 모래가 제멋대로 춤추고 있어 자칫하다 넘어질 것만 같았다. 그러나 여기서 넘어지면 엄마는 또 어딘가로 숨을 게 분명했다. 나는 조심히 걸었다. 엄마의 인기척은 여전히 들리지 않았다. 바다가 울어대는 소리만이 들릴 뿐이었다.
“위험하다고? 이게 다 엄마가 부끄럼쟁이라서 그렇잖아. 알았어, 조금만 더 가고 눈 뜰게. 조금만이야, 조금만! 이제 다 됐……앗!”
나는 순간적으로 손바닥으로 땅을 짚었다. 눈이 떠졌다.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엄마가 보이지 않았다. 엄마가 또 숨었다. 이번엔 바다에 숨었을 것이다. 나는 천천히 일어나서 옷에 묻은 모래를 털었다.
“엄마 이번에는 언제 올 거야?”
“손님, 저희 이제 마감시간이 다 되어서 그러는데…….”
눈이 떠졌다. 어느새 자고 있었나보다. 꿈을 꾼 거 같은데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별로 좋은 꿈이 아니었나보다. 나는 가만히 나를 바라보고 있는 당신을 물끄러미 보다가 직원을 바라봤다. 여기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머리가 아파서 아무런 생각도 하기 싫었다. 그런 나를 알아봤는지 당신이 입을 열었다.
“네, 이제 나갈 겁니다.”
당신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그런 당신을 또 물끄러미 바라봤다. 어떻게 하라는 거지, 나보고. 따라하면 되는 건가. 나도 당신을 따라 일어났다. 당신이 내게 손을 내밀었다. 나도 당신한테 손을 내밀었다. 당신이 공기 빠지는 소리는 내며 내 손을 잡았다. 손을 잡으라는 거였구나.
찬 공기가 몸 안으로 들어왔다. 그래도 나는 움츠려 들지 않았다. 움츠려 들면 더 추울 거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거리에는 사람들이 없었다. 하긴 이 추운 날에 안에 안 들어가고 밖에서 논다는 게 이상한 일이긴 했다. 나는 양팔을 옆으로 뻗었다. 마치 바람을 끌어안으려는 듯이 뻗었지만, 바람은 쉽사리 잡히지 않았다.
“이제 어디로 가게?”
“어디로 가야할까요. 어디 가고 싶은 곳 있어요?”
“춥지 않은 곳.”
“아쉽네요. 난 지금 추운 곳에 가고 싶은데.”
“그럼 어쩔 수 없고.”
“……바다 갈래요?”
당신은 귀찮다는 듯이 중얼거려도 곧바로 운전석대에 앉아 차를 몰았다. 여기서 속초까지 한 시간 가량 걸렸다. 수 십 개의 가로등 밑으로 차는 한 대밖에 없었다. 꼭 전세 낸 것만 같았다. 나는 계속 창밖을 응시했다. 당신과 나 사이에는 어떠한 말도 오가지 않았다. 그렇게 한 시간이 지나고 속초에 도착했다.
바닷가라 그런지 꽤나 쌀쌀했다. 나는 몸을 움츠리지 않으려 버텼다. 그러나 고개가 자꾸만 움츠려들었다. 나는 고개를 뻣뻣하게 세우고 바다를 둘러보았다. 사실 바다보다 모래사장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바다는 소리만 들릴 뿐 잘 보이지 않았다. 가까이 가서 보지 않으면 모래사장 끝으로 낭떠러지가 있는 걸로만 보였다. 나는 신발과 양말을 벗었다. 당신이 날 빤히 내려다보는 게 느껴져도 아량곳하지 않고 맨발로 모래사장 위를 걸었다. 당신은 모래사장 안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신발 안으로 모래가 들어오는 게 싫은 듯, 혹은 그저 관전하는 것 같이 모래사장 바깥에 서있었다.
“사실 처음부터 바다 가까이에 가서 혼자 놀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어요.”
나는 한걸음씩 바다 앞으로 다가갔다. 낭떠러지 앞으로 다가갔다. 내가 바다와 점차 가까워져가자 당신이 모래사장 안으로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잠시 걸음을 멈춰 당신을 기다렸다.
“바다 앞에만 가면 한없이 작아지는 내 모습이 싫었고, 그런 내 모습을 누군가 본다는 것도 싫었거든요. 어린애 같죠, 정말?”
바다가 모든 사람들한테 평등하게 다가오는 게 싫었다. 특별해지고 싶은 마음을 바다는 망설임 없이 쓸고 뒤로 물러났다. 마치 그런 마음 갖지 말라는 듯이. 혹은 절대 그런 일 없을 거라는 듯이. 그러면서도 내게 다시 다가오는 게 싫었다.
“멀리서 보면 한없이 푸르기만 한데, 가까이서 보면 공허하리만치 투명하다는 것도 믿기지 않았어요. 그 괴리감을 이해하기에 그때의 나는 무척 어렸을 뿐더러, 세상에 이해해야할 것도 많은데 굳이 바다까지 이해하고 싶지 않더라고요.”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기껏 쌓아올린 모래성을 욕심내며 휩쓸어가는 것도 미웠다. 엄마랑 같이 쌓아올린 건데, 엄마가 도와준 건데. 엄마와 쌓아올린 처음이자 마지막 모래성을 바다는 다음에도 기회가 있을 거라는 것 마냥 휩쓸고 갔다.
“제까짓 게 미래를 어떻게 안다고…….”
엄마와 함께 무언가를 했다는 건 내게 있어 중요했다. 엄마는 전보다 더 부끄럼쟁이가 되었기에, 이제는 나와 함께 내 옆에서 무언가를 한다는 일이 사라졌다. 그때가 마지막이었다. 같이 모래성을 쌓은 그때가 최초이자 마지막이었다. 내가 바다한테 다가가기로 한 건 엄마가 바다를 닮게 된 이후부터였다.
“엄마는 멀리서 본 바다를 닮았어요.”
태양을 집어 삼키는 모습도, 모든 걸 받아줄 것 같으면서 사실은 표면 위로 모든 걸 튕기는 모습도. 아니다. 그런 게 닮은 게 아니었다. 엄마는 멀리서, 모래사장으로 넘어오지 않고 도로 위에서 바라본 바다를 닮았다. 밑도 끝도 엇이 펼쳐져 그저 푸르기만 한 바다. 멀리서 봐야만 넓게 보이는 바다. 엄마와 나는 딱 그런 관계였다.
낭떠러지에 다가섰다. 낭떠러지가 내 발을 기점으로 내게서 멀어지기도, 날 밑으로 끌어당기기도 했다. 어느새 당신이 내 뒤에 서있었다.
“인기척이 느껴져요.”
“사람이 있으니까.”
“그렇죠. 이게 보통이죠.”
나는 뒤를 돌아봐 당신을 올려다봤다. 당신은 바다를 보고 있다가 나를 내려다봤다. 당신의 눈동자 안에 나와 바다가 동시에 담겨있었다. 숨이 막혔다. 내가 바다 안에 있는 것만 같았다. 순간적으로 숨을 크게 몰아셨다. 당신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나는 급하게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천천히 숨을 몰아쉬었다.
“……아마 나는 숨이 쉬어진다 해도 바다 안에서 살 수 없을 거예요.”
숨이 쉬어진다 해도 바다 안에 들어가지 않을 거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바다는 세상에 존재하는 가장 넓고 깊은 낭떠러지기에, 굳이 그 안에서 살 필요는 없었다. 나는 다시 당신을 올려다봤다. 이제 당신 차례가 왔다. 올려다 본 내 시선에서 생각을 읽었는지 당신이 모래사장 위에 털썩 앉았다. 나도 그 옆에 따라 앉았다.
“처음 본 건 12년 전 병원. 찾아간 건 작년.”
당신은 나와 달리 아무렇지도 않은 듯, 이제 다 과거에 불과하다는 투로 말을 이었다. 그러다 잠시 정적 속에서 파도가 두어번 치고 당신의 인기척이 사라지고 다시 나타났다. 당신은 요란 떠는 바다를 가만히 응시했다. 그리고 숨을 들이키는 것도 내뱉는 것도 아닌, 입을 다물고 숨을 멈춘 채 터뜨리듯이 입을 열었다.
“버림받았다는 건 언제 들어도 익숙하지 않더라.”
파도 소리가 크게 요동쳤다. 마치 당신의 말에 맞장구치는 것 같았다. 나는 당신한테서 시선을 떼고 눈을 감은 채 바다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 그러나 당신은 아무러했다. 바닷물이 발등을 쓰다듬었다. 온몸에 소름이 돋고 당신이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해할 수 없다는 걸 이해할 거야 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