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

by phantoml posted Nov 05,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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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


 ‘나도 한때는 저랬었지.’


 내가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나이가 되리라는 걸 예상은 했지만, 이리도 빨리 올 줄은 몰랐다. 책상에 앉아 공부한답시고 책을 펴고서는 실제로는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던 게 어제 같은데 시간이 야속하게도 벌써 이 만큼 늙어버렸다.


 이런 내 생각을 입 밖으로 내뱉었다면 지나가는 어르신들이 호통을 치셨겠지만 그래 봤자 지금의 나도 저 앞의 교복을 입은 학생들에 비해서는 시시하고 재미없는 ‘어른’일 뿐이었다.


 한겨울에도 짧게 줄인 교복 치마와 분명 부모님께 졸라서 산 것이 분명한 요즘 유행하는 상표의 겉옷을 아무렇지 않게 입고 있었다. 연예인이나 성적 고민 등을 얘기하며 쉽게 울고 웃고 자신의 얘기를 마음껏 펼친다. 그 모습이 얼마나 빛나고 부러워 보이던지 나도 모르게 그 아이들을 한동안 뚫어지라 쳐다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러다가도 시간에 치여 발걸음을 다시 움직였다. 높은 굽의 구두에 발이 아팠다. 학생 때는 그렇게 예쁘고 좋아 보였던 구두였는데 이제는 신고 걷기 편한 운동화에 더 마음이 갔다.


 그런데…… 이제는 이걸 신고 또 뛰어야 할 것 같다.


 “잠시만요!”


 버스를 놓칠세라 소리를 지르고 부리나케 달려가 입구에서 카드를 찾았다. 어디 보자…… 지갑이 지갑이…… 안이 보이지 않는 가방 안을 뒤적이며 필사적으로 지갑을 찾았다. 시간이 조금씩 지날수록 버스 안의 사람들에게 끼치는 민폐가 늘고 점점 탑승객들의 시선이 내게 몰리는 듯한 착각이 일었다.


 꼭 필요 없을 때는 잘만 보이더니 정작 이렇게 급할 때는 보이지를 않더라!


 “아, 찾았다.”


 속으로 가슴을 쓸어내리며 교통카드를 단말기에 대는 순간 나는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띠딕, 잔액이 부족합니다.


 정말 되는 일 하나 없네.


 ***


 우리나라 기업들은 참 친절한 게, 직장인들이 퇴근하는 밤길에 위험할까 봐 사람을 새벽에 보낸다. 지금이 새벽 3시인가. 밤길에 낯선 사람 만나 위험할까 봐 늦게 보내준 건 고마운데 이제는 귀신을 보게 생겼다. 이 나이에 귀신을 믿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야근을 마친 뒤의 어두운 거리가 야속해 뭐라도 미워할 명분이 필요했다.


 물론 지상의 환한 가로등 빛과 밤이란 무대의 주인공이신 달이 어우러져 그런 으스스한 이야기를 만들지는 않았지만 나는 혼자서 유치한 억지를 부리기로 한다.


 하지만 밤의 어둠과 손을 잡고 춤을 추는 바람은 적당히 시원해서 좋았고 동네의 흔한 골목길에는 사람이 별로 없어 무섭다기보다는 가로등이 조명을 만들어 낭만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


 이런 기분 좋은 상태 그대로 집으로 갔으면 하건만, 세상일이란 언제나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빠각


 “꺅! 뭐야?!"


 쑥하고 한쪽의 균형이 무너지자 그대로 굳어버린 나는 사건의 발생지를 찾아 고개를 천천히 밑으로 내렸다. 꼿꼿이 자신의 자태를 뽐내는 싸구려 구두 한 짝이 자신보다 못한 굽이 나간 구두를 깔보았다. 좀 전까지 참아 온 한숨이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언제나 하루는 이딴 식이지만 구두 때문에 수선비가 나갈 생각을 하니 더욱 싫다. 돈 문제는 늘 사람 감정을 좌지우지하는데 다른 사람한테는 어떨지 몰라도 나에게는 부정적인 요소만 가져다주었다.


 “정말……, 어렸을 때는 안 그랬는데…….”


 공허한 공간에서 들어주는 이 없는 신세 한탄을 하며 차근차근 구두를 벗어들었다. 걸을 때마다 덜렁이는 굽이 구두 바닥과 부딪혀 소리를 낸다. 그 리듬에 맞춰 걸으며 나는 속으로 계속되는 술주정뱅이와 죽지도 않을 거면서 구시렁거리기만 하는 이들과 같은 대사를 주절거렸다.


 부모님 쉴드라했던가. 학생일 적 독립하기 전까지만 해도 부모님의 보호 아래에서 살던 나는 아무 걱정 없던 철부지였다. 모든 문제는 부모님이 해결해 주셨고 난 말 그대로 학생의 의무인 공부만 하면 되었다. 뭐, 그 공부도 제대로 안 했지만……. 그래서 이 모양이겠지. 가끔은 나보다 성공한 주변인들을 보면서 후회도 해본다. 그때 더 공부를 열심히 했다면 나도 저렇게 될 수 있었지 않았을까 하는 헛된 상상을 말이다. 아예 흔한 판타지 소설들처럼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더는 바랄 게 없지만 이미 지나간 시간, 돌이킬 수도 없으니. 현재 내게 남은 거라고는 남의 사정 봐주지 않고 다가오는 시간과 현실과의 싸움이었다.


 차갑고 까끌까끌한 이 보도블록처럼 시간은 냉정했고 현실은 매끈하지 않았다. 분명 대학 때까지만 해도 창창 대로를 꿈꾸던 나였는데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바보처럼 자괴감만 늘어 내가 나를 깎아내렸다. 이러면 안 되는데 생각처럼 그만두기가 쉽지 않다.


 겨울 공기가 그런 나의 걱정과 만나 공중에서 새하얀 구름을 만들어 내었다. 춥고 시리고 얼 것 같은데 마음속은 방금 막 끓인 찌개의 두부를 삼킨 것처럼 답답할 정도로 뜨겁고 무겁고 욱신거렸다. 그게 너무 아파서 눈시울은 뜨거워지는데 눈물은 나지 못했다. 어떻게 울어야 했더라. 잊어버렸다. 시시한 어른이 되어버려서 내게 필요 없는 것들은 다 버려버려서 울 수 없었다.


 안 그래도 우울했던 게 더 저조해지며 초점 없는 눈으로 걸었다. 내가 신경 쓰지 않아도 발은 익숙한 곳으로 날 인도해줄 터였다. 질리도록 걸어온 길에 끔찍하도록 반복되는 일상에 또다시 날 제물로 바쳐 다음날에도 같은 고문을 겪도록 해줄 터였다.


 그런데 매우 익숙한 그 길 그 풍경에서 이상한 기둥이 흔들거리며 나의 익숙한 풍경을 흩트려 놓았다. 기둥은 유연하게 웨이브를 하며 주택가의 언덕배기에서 색다른 기행을 연출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건 비틀대면서 은근히 내 쪽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아무런 사고 없이 걷던 게 원인이 되었는지 내가 도로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그 기둥은 내게로 쓰러져 왔다.

퍽 하는 소리가 주위를 새카맣게 물들이며 둔탁한 음들이 내 위로 쏟아져 내려왔다.

천지개벽을 뒤로 돌리면 이런 느낌일까. 쓰러지기 직전에 생각하면서 나는 비명도 못 지르고 고스란히 기둥의 무덤에 파묻혔다.


 ***


 눈을 뜨니 뿌연 안개 뒤로 빛이 보인다. 다시 감았다가 뜨니 좀 더 선명하게 둥그런 탁자가 보였고 정신과 함께 눈도 바로 뜨니 나뭇결이 곱게 잘 살아있는 짙은 갈색의 원형 탁자가 보였다. 옆에는 흰 화분에 담긴 작은 레몬 밤이 있고 휴지와 메뉴 책자가 있었다. 고개를 들어 정면을 보니 거기에는 안도의 웃음으로 젖은 여자가 보였다. 그러나 여기가 어디이고 저 낯선 이는 누구인지보다 더 중요한 게 있었다.


 “죄송하지만 오늘이 무슨 요일이죠? 시간은 어떻게 되나요?”


 갈라진 목소리로 몸을 덮은 담요를 걷어내며 묻자 낯선 여자가 답했다.


 “토요일이고 아직 오전 10시에요.”


 다행이다, 쉬는 날이구나. 조금은 마음을 놓으며 나는 이번에는 다른 걸 물었다.


 “여긴 어디고 당신은 누구죠? 제가 왜 여기 있죠?”


 속사포로 나오는 여러 가지 질문에 여자는 존조리 답해주었다.


 “여기는 생긴 지 얼마 안 된 SIESTA라는 카페에요. 저는 이 카페의 주인이고요. 언니는 어제 새벽에 제가 들고오던 책더미 아래에 깔려 기절하신 걸 제가 모시고 온 거에요.”


 여자가 흘끔 바라보던 곳을 따라 시선을 옮기니 거기에는 날 어젯밤에 깔고 뭉갠 것으로 추정되는 많은 양의 책 탑이 쌓여있었다. 그리고 시야를 넓혀 내가 있는 장소 전체를 스캔해 보니 딱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은 카페라는 게 느껴졌다. 내 앞의 있는 탁자와 같은 디자인의 새 탁자들과 푹신한 새 의자들은 가지런했고 바닥은 티끌 한 점 없이 깔끔한 나무문양 장판이었다. 한쪽 벽면을 차지하는 유리는 투명해서 아예 벽이 없는 착시를 일으켰고 나머지 벽들은 어제 날 깔고 뭉갠 책들이 꽂힐 빈 책꽂이들의 자리였다. 그리고 주방장들만의 공간과 계산대랑 앞으로 여러 디저트가 놓일 곳이 카페임을 여실히 증명해 주고 있었다.


 무엇보다 출퇴근하며 지나다니는 골목길이 내가 앉은 자리 옆의 유리 벽 너머로 잘 보였다. 스쳐 가듯 본 것이기는 하나 뇌리에 강하게 박힌 힐링 카페라는 간판의 작은 문구도 기억이 났다.


 한동안 시간도 잊은 채 내 발을 멈추게 했었으니 그 이유는 내 꿈 때문이었다. 어렸을 적부터 사람들을 돌보아 주고 위로해 주는 게 좋았던 나는 상담사가 되기를 꿈꿨다. 마침내는 대학에서 심리학과를 들어가 좀 더 가까이 사람들의 일상생활에 스며들어 어떻게 상담을 친근감 있게 만들 수 있을까 해서 나온 결과가 힐링 카페였다.


 거기에 대한 논문도 썼었고 교수님들께 칭찬도 많이 들으며 기대감도 한껏 받았었다. 그랬는데, 결말은 현실을 못 이기고 꿈을 접어서 취업난에 시달리며 겨우 얻은 직장에 들어가 월급을 받고 사는 인생. 흔히들 말하는 월급쟁이였다.


 그렇다고 지금 인생이 나쁜 건 아니지만 그래도 내게 있어 힐링 카페는 빛나는 꿈이었기에 실제로 그 꿈을 이룬 사람을 보며 부럽고 두근거리는 느낌을 받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힐링…… 카페였죠, 분명.”

 “네! 아시네요?”

 “간판에 쓰여 있던 걸 봤었거든요.”

 “와, 관찰력이 좋으시네요. 아, 그리고 말씀 놓으세요. 저보다 선배시잖아요?”


 나이가 많다는 것도 아니고 선배라니? 인생 선배라는 말인가. 아니, 그 전에 내 나이를 어떻게 알고 저런 말을 하는 거지. 설마 내가 기절해 있는 동안 가방이라도 뒤진 건가?


 포근한 의자와 따뜻한 햇볕에 취해 잠시 여자의 미소가 온화해 보였나 보다.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누굴 믿고 난 계속 여기 있던 거야. 순간 사라졌었던 경계심이 다시 나타나며 난 앞의 여자에게 날을 세웠다.


 “제 나이를 어떻게 아시고요?”

 “○○대학 ●●학번의 심리학과 이 하린 선배 맞으시죠? 저 바로 그 다다음 학번에 같은 과 후배였어요. 제 이름은 마 나민인데 들어보신 적 있으세요?”


 기억을 더듬어 본다. 글쎄, 누구더라. 나와는 그리 관계없는 인물이었는지 전혀 기억에 없었다. 그래도 대학 때는 꽤 마당발이었던 난데 알고 있는 마 씨 성 중에 나민이라는 이름은 없었다.

조심스레 고개를 저으니 나민이라는 아이가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실 줄 알았어요. 항상 선배님께 말도 못 걸어보고 멀리서 바라만 봤거든요.”

 “날?”

 “제 인생의 롤모델 같은 분이셨으니까요.”


 나민은 그렇게 말하며 주방으로 들어가 티세트를 꺼내왔다. 3단 트레이에 담긴 무지개색의 마카롱과 꿀이 잔뜩 발라져 윤기가 나는 스콘 등이 맛있게 제 빛깔을 무대 위에서 뽐내고 있었다. 게다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종류의 홍차까지 나오자 나는 침을 목구멍 뒤로 삼키며 눈을 그곳에 고정하지 않으려 애를 썼다. 그러자 나민이 그런 내 속을 알기라도 했는지 손으로 입을 가리고 웃으며 홍차 한잔을 따라 내 앞으로 들이밀었다. 향긋한 향이 코를 찔러 맡는 이를 노곤하게 만들었다.


 “드세요. 선배님께서 제일 좋아하시는 메뉴죠?”


 이번 거는 좀 소름 돋았다. 내가 누구인지 알았다고 했을 때 설명을 해줘서 조금 누그러든 긴장감이 다시 감도는 듯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따뜻한 홍차와 스콘의 재롱으로 부드럽게 넘어갈 수 있었다.


 “그건 또 어떻게 알았데…….”

 “언니가 쓰신 글들을 봤어요.”

 “글들?”


 대학 때는 선배들의 조언에 따라 여러 공모전에 나가려고 글을 무지막지하게 썼었다. 그중에서 대체 어느 글을 읽고 이리도 내 취향을 잘 아는지 궁금할 따름이었다. 글이라 해도 전혀 글쓰기를 못하는 티가 나는 문학성 0의 낙서뿐이었을 텐데 말이다.


 “이거요.”


 나민이는 자신의 옆에 있던 책들 사이에서 능숙하게 책 한 권만을 쏙 빼고는 내게 건넸다. 유난히 작가의 이름이 유별난, 내게만 유별난 책이었다. <힐링 카페>라는 멋들어진 글씨체가 은박이 씌워져 푸른색의 하드커버를 장식했고 그 오른쪽 구석에는 매우 작게 ‘작가 이 하린’이라 쓰여 있었다.


 음, 동명이인인가? 가 첫 감상평이었다. 그리고 안을 펴들어 조금 읽어 내려가기 시작하자 내 얼굴은 점점 황당함을 넘어 당황으로 번져나갔다.


 [내 꿈은 힐링 카페를 만드는 것이다. 내가 쓴 책들이 두 벽면을 차지하고 따뜻한 홍차와 달콤한 스콘의 냄새가 퍼지는 카페를 말이다. (비록 난 글을 잘 못 쓰지만 그래도 꿈이라도 꿔보고 싶다)]


 책의 문장들이 전부 내가 생각했던 것들을 읊어냈다. 잠결에 내가 썼다 해도 믿을 수 있을 것 같았고 그냥 내가 예전에 썼다 해도 믿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쓴 거야?”

 “네! 그 글을 읽고 이 카페를 차린 거예요! 어때요? 선배님의 꿈이었던 그 카페를 제대로 잘 재현해 냈나요?”

 “하지만……, 이 글을 어떻게?”

 “선배님 졸업하시고 나서 교수님께서 후배들한테 자료라면서 보여주셨었어요.”

 “아아, 진정한 자신에게 다가가려면 자신의 순수한 꿈을 먼저 알아야 한다는 오묘한 말씀을 하시면서 말이지?”


 나도 이미 한 번 당한 적 있는 일이기에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그래, 그때 나도 이미 졸업한 선배님들의 꿈을 적은 것들을 보며 내 꿈은 뭘까 골똘히 생각했었다. 심리상담을 좀 더 일상 속에 두어 사람들과 가까워지게 싶었다.


 하지만 그래 봤자 뭐하나. 꿈을 생각하고 적기까지 했어도 현실은 고작 한 달 먹고 버틸만한 월급으로 버티는 월급쟁이인 것을. 진정한 나 자신을 찾든 꿈을 찾든 이제는 나완 상관없었다.


 “그러니까 이 글을 읽고 내 취향도 알고, 카페도 차렸다고?”


 책을 조심스레 덮으며 나민에게 넘기고는 좀 가라앉은 목소리로 그녀가 했던 대답을 다시 정리해 말했다.


 “네! 선배님 덕분에 정말 괜찮은 사업 아이템을 발견했지 뭐예요. 아직도 심리상담은 정신이상자들만 받는 거라는 관념을 가진 분들이 계셔서 어떡하나~라는 고민이 있었는데, 선배님의 글 덕에 깔끔히 해결됐어요.”

 “다행이네…….”


 뭔가 내가 다 차려놓은 밥상에 다른 이가 숟가락을 들고 와 먹는 상황 같다. 그렇지만 어쩌랴, 내가 못 먹는 밥 남이라도 줘야 아깝지 않지.


 애써 그리 날 위로하고 난 홍차를 한 모금 들이켰다. 목이 답답한 게 눈도 약간 흐리멍덩하다. 곧 비가 올 것 같다…….


 “선배…….”

 “……응? 왜?”


 그 비를 억지로 핀 눈웃음으로 막고는 밝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런 가식쯤이야 직장 생활 3달이면 누구든지 마스터다. 하지만 상대도 나도 상대의 감정을 파악하는 데 능숙한 심리학과 학생이었기에 가면 뒤를 볼 요령 정도야 알고 있었다. 곧 울 것 같은 감정을 파악 당한 내게 나민이는 조심스레 제안했다.


 “혹시 저랑 이 카페 운영하실 생각 없으세요?”

 “어?”

 “이 카페를 처음 구상하신 건 선배님이시잖아요. 더 구체적인 계획과 아이디어가 필요해요. 그러니 이 카페의 창시자이신 선배님이 필요해요.”

 “갑자기?”

 “갑자기가 아니에요. 안 그래도 이 카페가 완공되면 선배님을 찾을 생각이었어요. 이렇게 만날 줄은 몰랐지만, 그래도 원래 목적은 이거였으니까요. 그러니까 저랑 같이 운영해요, 네? 선배님 꿈이시기도 하셨잖아요.”


 뜬금없는 그녀의 제안에 나는 속에 찬 먹구름도 잠시 잊고 눈만 말똥말똥 뜨고 있었다. 나는 분명 그녀를 알게 된 지 몇 시간 밖에 안되었는데 너무 급속도로 이야기가 진행되는 감이 없잖아 있었다. 무엇보다도 나민이의 표정이나 말투에 전혀 장난기가 없다는 게 문제였다.


 “같이 운영하자니? 설마 나보고 지금 직장을 그만두고 여기 직원으로 취직하라는 거니?”


 안정적으로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생긴 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앞으로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불안정한 곳으로 오라고? 그것도 내 아이디어에 숟가락만 얹어서 카페를 차린 같은 대학 후배 밑으로 취직해서?


 제안도 제안이었지만 자존심이 허락을 해주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입 밖으로 나온 말에는 약간의 가시가 박혀있었다.


 “아뇨! 아뇨. 제 말은 공동 창업자로 같이 사업을 하면 어떻겠냐는 거였어요.”

 “아니.”


 난 단칼에 제안을 거절하며 가방과 굽이 없는 구두를 챙기며 출구를 찾았다. 그런 내 모습을 보고 나민이가 차분했지만 아까보단 빠르게 얘기를 계속했다.


 “왜요? 선배님의 꿈이셨잖아요. 같이 해봐요. 네? 분명 잘 될 거라고요.”

 “미안하지만 난 그런 단순한 로망 때문에 지은 카페가 잘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아. 무턱대고 도전하기에는 난 너무 시시한 어른이 되어버렸어…….”


 어른이기에 더 조심스럽다. 어른이기에 꿈보다는 현실을 직시한다. 어렸을 때처럼 내가 바란다고 다 되는 세상이 아니란 걸 알기에 난 나민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또,


 “게다가 너 말이지……, 나한테 왜 이렇게 잘해주는 거야? 넌 날 예전부터 알았겠지만 나는 네가 오늘이 처음이라고. 그런데 자신이 지은 카페를 그것도 오늘 처음 얼굴을 마주 보고 통성명한 사람한테 같이 공동 창업을 하자고? 말이 되는 소리를 해. 요즘 세상에 그런 걸 믿는 사람이 어딨다고?”


 눈을 치켜뜨고 나는 발견한 출구를 향해 걸어갔다. 그러자 나민이가 내 손목을 잡고는 딱 하나의 대답을 하곤 배웅을 해주었다.


 “선배님께서 이미 제게 선물을 주셨으니까요. 그에 대한 보답이에요. 원래 선물은 주고받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잘 생각해보시고 연락해주세요.”


 카페에서 나와 다시 익숙한 골목길로 재빠르게 들어섰다. 낯에 익은 곳이 나오니 마음이 편해졌다. 그리고 다시 발이 이끄는 대로 집으로 갔다. 마치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집으로 갔다.


 귀나 머릿속에서는 솔직히 듣기 좋았던 나민의 제안이 빙빙 돌며 무한 반복 재생을 거듭했지만 무시하려 노력하며 무거운 현관문을 열어젖혔다. 좁고 텅 빈 원룸 방에 내 무거운 몸을 들이밀어 넣으며 현관에서 드러누웠다.


 온몸이 쑤시고 힘이 없다. 지금 이 상태로 시체 취급받고 땅속에 파묻히면 아주 편할 듯하다. 그런데도 심장은 아까의 그 제안에 생동감 있게 뛰어서 소풍 가기 전의 어린아이 같은 기대를 하게 했다.


 그 제안이 진짜라면 하고 싶다. 누가 거절하겠는가! 자신이 원하던 꿈을 이룰 수 있다는데!


 하지만 그럴 수 없다. 내 뒤에는 이제 나이가 드셔서 내가 보살펴 드려야 하는 부모님이 계셨다. 나 하나만 책임진다면 괜찮겠으나 내게는 가족을 돌봐야 할 책임도 있는 거였다. 그러니 부모님을 생각해서라도 그런 모험은 안 하는 게 좋았다. 꿈도 꿈이지만 그로 인해 내가 가족도 못 먹여 살리는 건 싫었다.


 아쉽지만 나민이의 제안은 역시 못 받아들이겠다.


 ***


 “오, 자네가 연락도 없이 웬일인가?”

 “안녕하셨어요, 교수님.”

 “나야 언제나 안녕하지. 여기 앉게.”


 곱게 머리가 세신 백발의 할아버지가 정장을 입고 날 환영해 주셨다. 내가 졸업한 대학의 교수님이시자 내 평생의 멘토 같은 분이었기에 오늘처럼 머릿속이 복잡한 날이면 이따금 찾아뵙고는 했다.


 “이번에는 꽤 골머리가 썩나 보지?”

 “그렇게 보이나요…….”

 “내 눈은 언제나 틀리지 않지. 그래, 그래서 음…… 어디 한번 맞춰보지. 설마 마 나민양이 드디어 힐링 카페를 차린 건가?”

 “!”


 교수님 당장 이 바닥에 돗자리를 까셔도 될 것 같습니다. 웬만한 점쟁이 못지않은 교수님의 정확한 답에 나는 눈을 휘둥그레 뜨며 굳어버렸다.


 “하하하, 그런 눈으로 보지 말게나. 방금 나도 마 나민양에게서 연락을 받고 안 거니 말이야. 자네 번호를 알려달라던데. 드디어 선배님과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게 됐다면서 말이야. 참 열정적인 학생이지.”

 “네…….”


 교수님의 웃음기 가득한 말과는 정반대되는 내 힘없는 대답에 교수님이 잠시 말씀을 멈추시더니 화제를 딴 곳으로 돌리셨다.


 “내가 자주 하던 말이 있었지. 진정한 자신에게 다가가려면 자신의 순수한 꿈을 먼저 알아야 한다고 말이야.”

 “네.”

 “모든 학생이 그런 내 말에 각자의 답을 놓고 졸업을 했다네. 그건 자네도 마찬가지지.”


 힐링 카페를 차리는 것 말이죠. 난 교수님에 말씀에 일제히 머리를 위아래로 끄덕이며 다음 말씀을 기다렸다.


 “자네의 꿈은 분명 힐링 카페였지. 독특해서 기억하네. 하지만 그 카페를 왜 짓고 싶었는지는 기억하질 못하겠네. 왜 짓고 싶었는가?”

 “심리 상담을 지금보다 더 사람들과 가까워지게 싶었어요.”

 “그렇게 생각하게 된 계기는 뭐지?”

 “어렸을 적부터 사람들을 돌보아 주고 위로해 주는 게 좋았어요. 그래서 되도록 많은 사람의 상처를 위로해 주기 위해 그들 사이로 스며들고 싶었어요.”

 “소통의 문을 열고 싶었던 게로구나.”

 “네.”

 “네가 원했던 거였고?”

 “네.”

 “사람들을 보살펴 주는 게 좋았고.”

 “네.”

 “네가 좋아하는 걸 잘하기도 했나?”

 “네.”

 “그래. 그러니까 자네의 꿈에는 자네가 좋아하는 것 잘하는 것 원하는 것 다 들어가 있는 거로구먼.”


 나는 이번엔 좀 더 힘있게 고개를 끄덕였고 교수님은 온화하게 웃으시며 말씀을 이어 하셨다.


 “그럼 자네는 이제 그 꿈을 이루기만 하면 되는 것이네. 오직 자신의 의지로 만든 순수한 꿈을 이룬 게 진정한 자신이지. 진정한 자신이 아닌 남이 바라는 자신 그리고 편의를 위해 꾸민 자신으로 답답하게 탈을 쓰고 있으면 그게 편하겠나.”


 교수님의 말씀에 나는 놀라움의 탄성을 하면서도 곧 입을 다물었다가 힘겹게 떼었다.


 “하지만 그러기에 현실은 너무 팍팍하지 않나요.”

 “그럼 계속 탈을 쓰고 있어 보게나. 종국에는 답답하다 못해 숨이 막혀 질식할지도 모르지. 난 우리 과의 엘리트였던 하린학생이라면 자신이 자신을 갉아먹는 짓을 하지 않을 거라 보네.”

 “감사합니다, 교수님……. 안녕히 계세요.”

 “좋은 소식을 기대하고 있겠네!”


 마지막으로 교수님의 응원을 받으며 난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고는 다음으로 집으로 향했다. 그간 너무 바빠 나 혼자의 흔적조차 못 남겼던 원룸이 아닌 어렸을 적의 흔적이 가득 남아 있는 부모님이 계시는 집으로.


 ***


 -띵동 띵동


 남의 집도 아닌데 괜히 두근댄다. 머리가 너무 혼란스러워 급히 찾은 터라 연락도 안 하고 왔는데 괜찮을까. 그러고 보니 부모님께서 집에 계신지도 모르겠다. 언제나 연락을 드린다고 다짐만 하고 바쁘다는 핑계로 계속 미뤄왔었다. 혹, 괜히 온 건 아닐까…….


 “누구세요?”

 “엄마, 저 하린이에요.”

 “어머나!! 우리 하린이가 왔어?!”

 “뭐? 하린이가 와?”


 그랬던 내 걱정과는 달리 문틈 사이로 흘러들어 간 내 목소리에 부모님은 버선발로 뛰어오시며 문을 열어주셨다. 문 너머에서도 알 수 있을 만큼 날 반겨주시고 내가 온 것에 기뻐해 주셨다.


 “에구, 올 거면 전화를 하지! 그래야 엄마가 우리 딸 좋아하는 걸 차리지!”

 “오는 길 힘들지는 않았고?”

 “요 앞에서 온 건데요 뭘. 그간 연락 못 드려서 죄송해요.”

 “됐어, 됐어. 배고프지? 엄마가 빨리 밥 차려줄게, 과일이라도 먹고 있어.”


 집 냄새가 난다. 어렸을 때 나뒹굴던 낡은 소파가 보이고 낙서 가득한 벽지와 가끔 지지직거려도 잘 나오는 TV가 있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얼굴은 그새 주름이 더 느셨고 잠깐 잡은 손에서는 더 단단하게 굳어진 사포 같은 손이 느껴졌다. 너무 자주 찾아뵙지 못했다.


 그렇게 내가 하나둘 과거의 흔적과 달라진 것들을 찾으며 고향에 돌아온 편안함에 몸을 맡길 때 어머니는 있던 반찬을 데우고 새로 만드시며 상을 점점 채워 나가셨다. 마지막에 완성된 임금님 수라상 못지않은 상은 무너지지 않은 게 기특했다.


 “옳지, 골고루 먹어. 골고루. 에구…… 고생 많이 해서 살 빠진 것 좀 봐…….”

 “자고 갈 거냐, 하린아.”

 “아뇨……. 그냥 부모님 보고 싶어서 온 거에요…….”

 “그래, 잘 왔어. 어서 먹어. 배고프잖니. 갈 때 반찬 싸줄 테니까 가져가고.”


 밥을 꾸역꾸역 넘겼다. 울컥하다 요즘 꽤 울보가 되어버린 것 같았다. 그래도 눈물이 나오지 않아 괜찮았는데 묘하게 그렇게도 안 나오던 눈물이 부모님 앞에서는 잘만 나왔다. 아무리 나이가 들어봤자 부모님 앞에서는 애라는 어르신들이 말씀이 뼈저리게 와 닿았다.


 갑자기 우는 딸을 당황하며 쳐다보시던 부모님은 이내 아무 말 없이 등을 쓰다듬어 주셨고 나는 눈물 반 밥 반으로 식사를 마칠 수 있었다.


 “이것도 챙겨가고 요거랑 요것도 가져가렴.”

 “너무 많아요.”

 “그럼 택배로 보내줄까?”

 “아, 아니에요. 그냥 가지고 갈게요.”


 분명 택배로 보내시면 무언가를 더 주고 싶으신 마음에 여기서 더 반찬이 늘어날 게 뻔했다. 그래서 나는 차라리 이 무거운 부모님의 마음을 가볍게 이고 가는 걸 선택했다.


 “그래 가는 길 조심하고. 힘든 일 있으면 말하고.”

 “네.”


 이제 가야 할 시간인데 발이 잘 떨어지지 않는다. 어렸을 때처럼 부모님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어리광부리고 싶은 마음이 슬금슬금 올라왔다. 그걸 꾹꾹 눌러 담으며 아파트의 엘리베이터에 몸을 실으니 뒤늦게 아버지께서 하시는 말씀이 들려왔다.


 “우리는 네가 뭘 하든 응원 한단다, 항상 널 믿고 기다려왔으니까, 우리 딸…….”


 불끈 주먹을 쥔 손, 아버지의 주름 진 얼굴 옆에서 잠시 시간이 멈췄다. 파이팅 우리 딸이라고…….


 두근두근 다시 심장이 울렁인다. 하지만 이번에는 눈물이 아닌 미소가 찬찬히 퍼져 나왔다.


 ***


 -딸랑 딸랑


 “죄송합니다. 아직 개업을 안했…… 선배!”

 “음……. 안녕?”


 동네 언덕의 맨 아래에 있는 아직 개업하지 않은 카페에 들어가 주인장에게 어색한 인사를 건넸다. 손을 흔들며 머리를 긁적이는 내게 나민이가 달려와 반갑게 맞아주었다.


 “하시기로 하신 거예요?”

 “음……, 응. 할게,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하고 싶어.”


 내 확고에 찬 음성에 나민이는 나이에 맞지 않게 어린아이처럼 방방 뛰어다니며 카페 안을 휘저어 다녔다.


 “꺄아아!! 잘 생각하셨어요! 분명 잘 될 거라고요!”

 “아, 그런데 말이야 한 가지 제안이 있는데…….”

 “네?”

 “여기도 좋긴 하지만 나는 다른 곳에 카페를 하나 더 세우고 싶어. 괜찮을까?”

 “물론요. 어디인데요?”

 “번화가.”


 회사에 사표를 내고 오면서 여유가 생기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였다. 나 하나 챙기기에도 힘들어서 그간 내가 바라던 남들의 상처를 위로해 주는 걸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보였다. 나와 같은 시시한 어른들의 출근행렬이, 남들이 원하는 자신의 편의로 만들어낸 탈을 쓰고 자신을 갉아먹는 사람들이 말이다.


 이제는 그들을 도와주고 싶었다. 그들이 자주 지나다니는 익숙한 길 사이에 스며들어서 곁에서 위로해 주고 싶었다. 질리도록 걸어온 길에 끔찍하도록 반복되는 일상에 또다시 그들이 제물로 바쳐지지 않도록.


 나민이에게서 받은 선물을 이제 그들에게 주고 싶었다. 그래, 선물은 주고받는 거니까.


 ***


 -똑똑똑


 “들어오세요.”


 곱게 머리가 세신 백발의 할아버지가 정장을 점잖게 빼입고 의자에 앉아계셨다. 이번에는 평상시처럼 전화하고 왔기에 교수님도 평상시처럼 웃으며 날 반겨주셨다.


 “그래, 오늘은 무엇인가?”

 “후후후. 아뇨, 오늘은 좋은 소식이에요.”

 “오, 처음 있는 일이군.”

 “교수님의 말씀이 다 맞으셨어요.”

 “탈을 벗으니 편하지?”

 “네.”


 예전과는 확연히 달랐다. 안면근육에는 경련이 일지 않았고 내가 원하는 감정을 원하는 때에 들어낼 수 있었다. 하고 싶은 얘기를 하고 웃고 싶을 때 웃는다. 버스정류장에서 항상 부러워하던 학생들만의 특권인 줄만 알았는데 이제는 아니었다.


 “여기 보답드리려고 왔어요.”


 개업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힐링 카페라는 특색도 특색이지만 카페의 티세트가 가장 인기를 끌어 언제나 매진이었다. 그중에서 몇 가지를 골라 바쁜 와중에 부랴부랴 싸들고는 잠시 시간을 내 교수님께 달려온 거였다. 방에는 갓 구운 스콘과 쿠키 향이 포장을 뚫고 가득 메웠다.


 “보답이라니?”

 “교수님께서 제게 주신 선물에 대한 보답이요.”

 “선물?”


 나는 카페를 차리면서 나민이가 해준 말을 되새겨 봤다. 초반에 만났을 때 내게 말해준 선물 이 무엇인지 물어보자 그녀가 이렇게 말했었다.


 “다른 뜻은 없어요. 그냥 받은 감정에 같은 감정으로 답할 뿐이에요.”


 나민이가 해준 말을 그대로 읊자 교수님의 입에서도 내 입에서도 서서히 미소가 번졌다.


 ‘저번에 내가 가기 전에 한 말 무슨 뜻이야, 선물이라니.’

 ‘별다른 뜻은 없었어요. 그냥 받은 감정에 같은 감정으로 답할 뿐이에요. 모든 것이 그러듯이 말이죠.’

 ‘음……, 뭐 이에는 이 눈에는 눈 그런 거야?’

 ‘네, 언니가 상대에게 호감을 보이면 상대도 언니에게 호감을 보이고 언니가 자신을 싫어하면 그 자신 또한 싫어하는 자신을 썩혀 가는 것처럼요. 너무 어렵게 표현했나요? 헤헤.’

 ‘아냐, 대강 짐작은 했었어. 그럼 난 대체 너한테 뭘 줬는데?’

 ‘이 카페를 차릴 수 있었던 아이디어도 아이디어지만 신입생 환영회 때 딱 한 번 절 위로해 주셨던 적이 있어요. 저한테는 인생의 전환점이었죠. 그래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거에요.’

 ‘그랬어? 내가 뭐라 위로했었는데?’

 ‘거창한 건 아니었지만…… 선배님들의 권유로 억지로 술을 들이켜는 저한테 물을 갖다 주시면서 ’남의 기분을 위해 자신을 희생할 필요는 없다‘고 해주셨어요. 아무래도 그쯤에 남의 눈 엄청 의식하면서 살아서 스트레스가 장난이 아니었거든요. 그래서 언니가 그때 딱 필요했던 말을 해주셔서 정말 감사했었어요.’


 그때의 일을 회상하며 계속 방싯거리자 교수님께서 호탕하게 웃으시며 등을 두들겨 주셨다.


 “좋은걸 배웠구먼. 쉽게 들리지만 어려운 것이지. 지금 이룬 그 꿈 계속 지켜나가게나.”

 “네, 감사해요, 교수님. 안녕히 계세요.”


 교수님 방에서 빠져나와 졸업했던 대학교를 나왔다. 그러자 단번에 번화가가 한눈에 들어오며 이유와 원인은 다르지만 일제히 지친 사람들도 보였다.


 이제 내가 받은 위로란 선물을 다시 다른 이에게 줄 차례였다.


 ***


 -딸랑 딸랑


 더운 7월의 여름날. 시원한 풍경소리가 카페에 울려 퍼지며 오늘도 하루를 시작한다. 새로 오신 손님께 드릴 선물을 고민하며 '이 하린'이라 쓰인 이름표를 바르게 매달고 행복한 미소로 손님을 맞이했다. 영업용 미소가 아닌 진짜 내가 원해서 짓는 미소로.


 “카페 시에스타(Siesta)에 어서 오세요.”




 이름 : 김소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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