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감실업률 21.8%, 청년고용률 40%, 알바생 60만 시대 이것이 내가 살고 있는 시대의 스펙이다. 여차저차 성적을 맞추어 들어간 대학, 열심히 놀았다.
남자 동기들은 대부분 1학년 2학기 후 사라지기 시작해서는 2학년 1학기가 끝나고는 군대로 떠나 버렸다.
그렇다고 한시름 놓을 수 있는 것 도 아니었다. 군대에서 독이 바짝 오른 복학생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토익, 대외활동 등 미친 듯이 스펙 쌓기에 열중하다보니 어느새 졸업이었다. 인턴 사원으로 입사했지만 기간이 끝난 후 쫒겨 났다.
본가로 들어가기도 부끄러워서 자취방에서 삼시세끼 라면과 알바로 그럭저럭 삶을 연명하고 있다.
알바를 마치고 집으로 터덜터덜 걸어오는 길에 소주 한 병과 담배 한 갑을 샀다. 사실 이것도 지금 나에겐 사치이지만 답답한 마음에서 나오는 일탈이다.
적당한 곳을 찾다가 빌라 옥상으로 올라갔다. 바닥에 주저앉아서 담배를 꺼내 들었다.
‘칙, 치익’
불꽃을 담배에 대었다. 한 모금 훅 들이 마시니 매캐한 공기가 폐를 찔렀다.
고개를 들고 별을 찾으려 이리저리 돌렸지만 역시나 하늘에 별은 없었다.
“하긴 일자리도 없는데 별이라고 있겠어” 꽤나 감성적이었다고 생각하고 소주병을 돌렸다.
빌라의 옥상문이 벌컥 열렸다. 주인 아줌마일까 싶어서 얼른 옆으로 몸을 숨겼다.
하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게 교복을 입은 한 학생이다.
화가 난 것 같기도 우는 것 같기도 한 학생이 가방에서 공책과 볼펜을 꺼내들고는 핸드폰 플래쉬를 켜고는 한참을 글을 적어나갔다.
눈물을 뚝뚝 흘리다가 줄을 죽죽 귿다가 또 다른 페이지에 다시 글을 쓰는 것을 반복하다가 벌떡 일어 서서는 신발은 벋어 가지런히 놓았다.
“어..저기 학생”
학생을 조심스럽게 불렀다.
흠칫하며 뒤돌아선 학생은 사람이 있어 깜짝 놀란 듯 했다.
“술 한잔할래?”
아직도 놀란 듯한 학생은 뒤돌아서 내옆으로 왔다.
불쑥 병을 내밀어 한 모금 권하고 나는 다시 담배를 빼 들었다.
“크으으으”
“쓰지?”
“네” 학생이 입가를 슥 닦으며 대답했다.
“담배도 줄까?”
머뭇 거리기에 한 개비 빼서 주려고 했는데 웬걸 교복 안주머니에서 담배가 나왔다.
“너 어린게 벌써부터 피면 뼈 삭아”
픽 웃고는 벽에 등을 기대고 불을 붙였다. 한참을 말없이 있다 입을 뗀건 학생이었다.
“누나라고 해도 돼요?”
“그럼 내가 언니니? 이 나이에 아줌마는 아니지 않을까?”
학생이 소리 내어 웃었다.
“이름이 뭐야?”
“김준영이요”
“준영이, 이름 흔하네 내 친구도 준영이라고 있는데 걔는 취직했어 아빠가 중소기업 사장이거든 부러운 삶이야”
“누나는 취직 못했어요?”
“보다시피, 취직했으면 회사에 있겠지”
어깨를 으쓱했다.
“넌 왜 죽고싶니?”
준영이 또한 어깨를 으쓱했다.
“저는 고3이에요”
“아하, 죽고 싶겠구나”
농담 삼아 대꾸를 하니 ‘프흐흐’ 웃음을 흘렸다.
“집에서 첫째에요, 장남 그래서 저한테 기대가 커요”
“동생은 없어?”
“동생은 중학생이에요”
“아직 생각 없을 나이구나”
“생각보다 많이 힘들어요. 수시는 다 떨어졌고 남은 건 수능 밖에 없어요. 근데 가채점 했는데 점수가 많이 낮아요. 부모님이 원하는 대학은 못갈 것 같아요. ”
준영이의 얼굴이 자책하듯이 일그러졌다.
“허무하지?”
“...”
“사실 나도 너처럼 죽고 싶다는 생각 정말 많이 했거든 너무 허무해서, ‘왜 대학에 갔을까‘ 생각했어, 대학에서 사실 별로 얻은 거 없어 나는 성적 맞춰서 꾸역꾸역 들어 간 거였거든 물론 내가 하고 싶은 전공 찾아서 들어갔다면 내가 좀 더 발전했을 수도 있겠지 근데 현실은 아니었으니까 어려운 전공에 교양에 요새 스펙시대잖아 열심히 대외활동하고 토익공부하고, 영어만 필요해? 경쟁자들은 기본이 3,4개.국어 하는데 나도 해야지 방학 때면 알바 하랴 공부하랴 정신도 없고 고향에 가본지도 엄청 오래됐어”
“누나도 엄청 힘들었겠네요”
“근데 너도 겪어야 할 일이야, 이게 더 너한테 마음의 짐을 지어줄 수도 있겠다.”
“누나는 원래 뭐 하고 싶었어요?”
잠시 고민을 했다. 내가 무엇을 하고 싶었지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한참을 가만히 생각했다.
“나는 컴퓨터그래픽 하고 싶었어”
“아..근데 왜”
“취업 때문이었지, 집안도 어렵고 빨리 취업해야 된다는 생각에 취업 잘된다는 학과로 썼는데, 막상 졸업하니까 그것도 안되네 너는 뭐 하고싶어?”
“저는 작가를 하고 싶어요, 굳이 작가가 아니더라도 글 쓰는 일을 하고 싶어요”
“부모님은?”
“공학 쪽으로 바라세요, 아마 누나랑 같은 이유일 것 같네요. 취업”
준영이는 고개를 푹 숙인체 대답했다.
“삶이 수학문제 같으면 얼마나 좋을까? 정해진 공식에 대입만하면 정답이 나오는 그런 문제”
“네가 하고 싶은 것을 해”
“....”
“그게 정답이야. 나는 아직 문제를 풀고 있어 식조차 잘못 세워서 다시 풀어야해, 하지만 너는 정답을 맞히길 바라, 너는 문제를 거의 다 풀었거든”
“근데 준영아, 아까 쓰던거 유언장이지? 뭐라고 쓴거야? 보여줘”
“아! 안돼요”
준영이는 당황한 듯이 황급하게 공책을 가방에 쑤셔 넣었다.
더 놀리고 싶어졌지만 그냥 웃으며 고개를 들었다. 아까는 보이지 않던 별이 하늘에서 반짝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