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지 않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종이봉투를 받아들며 지갑에선 어머니의 신용카드를 꺼냈다. 유독 도움 받는 것에 익숙하지 못한 그녀는 어머니가 쥐어주신 그 카드를 쓰는 일이 없었다. 그 검은색 카드가 지갑 밖으로 나오는 경우는 딱 두 번 있었는데 그 용도는 조금 특이했다. 오랜만에 부모님 집에 갈 버스를 예매할 때, 그리고 아파서 죽이나 사먹을 때. 그 카드를 쓰면 낯간지럽게 직접 소식을 전하지 않아도 어머니의 휴대폰엔 문자가 울렸다. 오늘도 몸 상태가 영 좋지 못했다. 만 원이 채 되지 않는 죽을 어머니 카드로 계산한 것은 무뚝뚝한 딸의 소심한 어리광이었다.
비 오는 거리를 찰박찰박 걸어 집으로 향했다. 종일 비가 내렸고 오늘도 그녀의 머릿속에는 제주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비바람의 서늘한 기운이 제주도의 그것을 떠오르게 했다. 어쩌면 그 때문에 마음이 허했을지도 모른다. 도착한 그녀는 물이 뚝뚝 떨어지는 우산을 내려놓자마자 죽을 꺼냈다. 허한 속을 달래는데 죽만큼 따듯하고 든든한 것도 없다고 생각했다.
마침 어머니께 아프냐는 연락이 왔다. 그냥 죽이 먹고 싶었다고, 더 먹고 싶은 것은 없냐는 물음에 어머니가 해주신 삼계탕, 고기 말고 닭죽이 먹고 싶다고 했다. 손가락은 웃는 이모티콘을 선택했는데 또 눈에서는 눈물이 흘렀다. 그녀의 어머니는 전화보다 문자를 좋아하셨고, 그녀에겐 그게 참 다행이었다. 언제부턴가 어머니의 연락에는 이유 없이 눈물이 났는데 어머니는 그것을 한 번도 몰랐으니까.
눈물을 대충 훔치고 죽을 들었다. 죽 한 술에도 제주도가 담겼다. 지난 초여름, 그녀가 돌연 제주로 떠난 지 16일째 되던 날이었다. 꽤 닳은 운동화를 신고 무모하게 한라산을 올랐던 날. 우산도 우비도 없이 산 중턱에서 홀로 비를 피하던 그녀에게 옆에 계신 어르신이 해준 이야기가 있었다. 제주도의 설문대할망과 오백장군 설화였다. 제주에 있는 360여 개의 많은 오름들은 설문대할망이 제주를 만들기 위해 치마폭에 흙을 담아 나를 때 치마의 터진 구멍으로 흙이 새어 만들어진 것이며, 마지막으로 남은 흙을 날라다 부은 것이 한라산이 됐다고 했다. 그녀에게 제주는 조금 특별했기에 이 이야기 또한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어르신이 자리를 털고 일어나셨을 때, 그녀는 잊을세라 휴대폰을 꺼내 ‘설문대할망’을 검색했다.
“설문대할망에겐 500명의 아들이 있었다. 어느날 설문대할망은 500명의 아들들에게 죽을 끓여주다 그만 발을 헛디뎌 죽에 빠지고 말았다. 저녁에 돌아온 형제들은 잘 익은 죽을 먹으며 오늘따라 유난히 맛있다고 아우성이었다. 막내아들만은 어머니가 보이지 않는 게 이상해 죽을 먹지 않았다. 죽을 다 먹고나서 밑바닥에서 사람의 뼈가 나온 후에야 어머니가 보이지 않는 이유를 알게 됐다. 어머니의 살을 먹은 형제들과는 같이 살 수 없다며 막내아들은 서귀포 삼매봉 앞바다로 내려가서 슬피 울다 외돌개가 되었고 나머지 형제들은 그 자리에 늘어서서 한없이 울다 기암괴석의 군상이 되고 말았다. 사람들은 이 바위들을 '오백장군' 또는 '오백나한'이라고 한다.”
들던 죽을 더 먹을 수가 없었다. 숟가락 위에서 식어가는 죽을 가만 보고 있노라니 거기에 담긴 것은 어머니의 살이 아니라 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상을 정리하고 편지지를 만지작거리다 덥석 전화를 들었다.
수화기 너머 따뜻한 어머니의 음성에 말문이 막혔다. 침묵 속에 숨소리만 흘렀다. 목구멍까지 차오른 단어들은 자꾸만 얽혀 턱턱- 숨을 막았다. 어려서 수도 없이 했던 그 말이 지금 그녀에게 이토록 힘겨운 이유는 진심의 무게 때문이 아닐까. 너무나도 당연한 이 말을 꺼내기 까지 그녀에겐 얼마나한 용기가 필요했는지. 진심은 통한다는 말을 곧잘 했던 그녀이기에, 적어도 그녀의 어머니께서는 그녀의 진심을 아셨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꼭 말해야했다. 적지 않은 시간이 흘렀고 이내 어눌하게 터져 나온 그녀의 숨과 단어가 침묵을 깼다.
김미나(dagure@daum.net / 010-7774-63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