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곤 논쟁
1
발단은 담뱃값이다. ‘술자리에 다 떨어진 담뱃값을 누가 낼 것인가’로부터 이 어처구니없는 논쟁은 시작됐다. 지금 현재 제일 덜 가난한 놈이 내자는 것이다. 다들 머릿속에서는 지갑사정부터 생각하겠지. 누런 게 몇 개냐, 시퍼런 게 몇 개냐?
“담배도 끊어야겠다. 돈도 없는데 완전 후달리네.”
흡연자들만 모인 자리에서 모두들 부서져라 고개를 끄덕인다. 하지만 진심으로 끊겠다는 놈은 없다. 내뱉고는 책임지지 않는 말뿐임을 아니까.
“맞다. 나는 이번 달 용돈도 아직 안 들어왔는데 벌써 파산 신고하게 생겼다.”
“나는 과외를 4개나 뛰는데도 뒈질 맛이다.”
과외를 4개나 뛴다. 집안 경제와 자신의 경제는 다르다. 집안 경제가 디폴트 선언할 만큼 허우적대도 과외를 4개나 뛴다면 그놈은 우리 중에 부자다. 자기 쓸 돈은 넉넉할 거다. 하지만 녀석에게는 객관적 부자가 될 수 없는 장애물이 있다. 학자금이라는 괴물이다. 녀석은 아프리카 원숭이처럼 뛰어다니면서 돈을 벌지만 나이아가라 폭포처럼 그 돈들을 게워낸다. 한여름의 느티나무보다 놈의 얼굴이 더 그늘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외남을 제물로 삼으려는 분위기가 조성된다. 옆에 있던 놈이 말을 꺼낸다.
“우리 아버지 이번에 또 쓰러지셨다.”
임팩트가 강하다. 두 번째 주자가 이토록 세게 나오면 나머지들은 뭐라 해야 할 것인가? 건장하시던 아버지가 쓰러지고 하루아침에 그 놈의 집안은 가세가 기울었다. 늘 술값을 많이 내던 놈이 언제부턴가 지갑을 감추기 시작했다. 결정타를 듣기 전에는 텍사스성 단타를 맞았나 생각했다. 알고 보니 장외 홈런을 맞았다. 투수 입장에서는 이보다 충격적인 한방은 없다. 놈은 학업을 중단했다. 일순간에 넉넉한 대학생에서 한집안의 가장이 되었다. 과외남이 아프리카 원숭이처럼 뛰어다니는 시간에 놈은 고대 로마시대 노예들처럼 일했다. 63빌딩 그늘보다 놈의 얼굴에 드리운 그늘이 더 길다. 맞은편에 앉은 놈이 소주 한잔 들이켜고 담배 값 논쟁에 뛰어든다.
“알지? 우리 집에는 아직도 빚이 있다.”
흔히 말하는 보증쇼크다. 우리는 그렇게 부른다. 놈은 아버지의 행방조차 모른다. 보증으로 집은 넘어갔고 셋방에서 엄마, 동생과 함께 산다. 아버지는 보증 빚 5000만원을 가족에게 던지고 한 때 친구였던 원수를 잡으러 나갔다. 놈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 어머니가 쓰리 잡을 뛰면서 놈의 뒷바라지를 한다. 놈의 어머니는 아침에는 원단 공장에서 가위질 하고 저녁에는 식당에서 설거지 하고 밤에는 미싱 돌려가며 큐빅을 박는다. 놈은 매끼를 삼각 김밥으로 때운다. 학교를 쉬고 집안일을 돕겠다했지만 어머니는 크게 혼내시며 집에서 쫓았다. 타지에서 학교를 다니는 놈은 친구 자취방에 얹혀살며 불편한 공부를 계속하고 있다. 노예남이 개처럼 일하는 시간에 놈의 어머니는 영화 모던타임즈 속의 찰리 채플린처럼 일해서 벌은 돈을 부쳐준다. 놈은 하루에도 몇 번씩 눈물로 책을 적신다. 놈의 쭈그러진 책들 사이에서 개미도 길을 잃을 것 같다. 나는 자연스럽게 지갑을 챙기고 일어선다.
“어디 가냐?”
“담배 사러”
슈퍼에서 담배 2갑을 사자마자 한 대 문다. 놈들 얼굴 보기 전에 한 대 펴야할 것 같다. 하늘로 퍼 올리는 연기가 구름처럼 이동한다. 연거푸 내뿜는다. 잘하면 내 눈앞에 뿜어진 연기들로 거무튀튀한 밤하늘이 어느 정도는 가려질 것 같다. 나는 학자금 걱정해본 적 없다. 아버지는 건강하시고 아버지 회사에서는 자녀학자금이 나온다. 과외는커녕 알바도 해본 적 없다. 다달이 용돈 타 쓴다. 내 손으로 돈 벌어 본적 없고 집에서 주는 돈으로 써본 적만 있다. 그렇다고 내가 부자는 아니다. 놈들에 비하면 나는 넉넉한 게 맞다. 우리 집은 빚도 없다. 20여년을 모범생같이 살아오신 아버지 덕택에 남부끄럽게 않게 지내왔다. 30만원의 용돈은 내게 넉넉하지도 부족하지도 않다. 바깥 밥을 잘 안 먹는 내게, 하루 고정지출비는 고작 담배 1갑 정도니까. 나머지는 죄다 술값에 들어간다. 내가 겪은 가난은 없다. 나의 아버지가 겪은 가난의 흔적이 담배 연기같이 흩어지는 것만 훔쳐볼 뿐.
“옜다.”
“오. 땡큐.”
이깟 담뱃값이 무어라고 이토록 침울한 얘기를 해야만 했나? 놈들은 금은보화라도 찾은 마냥 분주한 손놀림으로 물고 붙인다. 자욱해진 연기가 가게 안을 안개처럼 감싼다. 밖이었으면 분명 거무튀튀한 밤하늘을 가렸을 텐데. 아쉽게도 천장에 부딪힌 연기는 해무처럼 좌우로 빨려나간다. 아무도 말이 없다. 사람 있는 무인도에 안개만이 가득하다. 소주병은 맥베드가 무서워하는 버넘의 숲처럼 쌓여져 우리를 공격한다. 아니 소주병의 개수가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소주병의 술값이 공격하는 것이다. 소주병 숲의 공격을 받으면서 우리는 거대한 수레바퀴가 짓누르는 묘한 압박을 동시에 받는다. 나는 그 경험 속에서 나와 놈들의 차이를 발견하려는 발칙한 상상을 한다. 생각은 꼬리를 물어 이제는 발칙함이 추악함이 된다. 이놈들은 가난을 논하면서 담배는 어떻게 피고 술은 어떻게 마시는 거지? 일순간 내 손에 쥐어진 가득 찬 술잔이 해골바가지 같다. 이걸 마시면서 원효대사처럼 달다고 느끼는 환상에 빠지고 싶은 건가? 그럼 나는 뭐지? 나는 어째서 놈들만큼, 아니 놈들보다 더 우울한 느낌이 드는 거냐? 나는 무슨 맛을 알고자 이 술을 들이 켜고 있나?
“뭔 생각 하냐? 술이나 한잔 더 먹어라.”
“어, 알았다.”
담뱃값 때문에 시작된 빈곤 논쟁은 대화의 빈곤을 가져왔다. 어디가나 빈곤이 있기 마련이구만.
“자자, 이제 담배도 있으니까 신나는 얘기하자.”
“그래, 너 저번에 만난 그 여자는 어째 됐냐?”
“음. 파투났다.”
“왜?”
“연애 할 돈이 있어야지, 하든가 말든가 하지. 데이트할 돈도 없고. 분위기 잘 타면 뭐하나? 모텔 갈 돈도 없는데.”
썩은 농담을 상쾌하다는 듯이 던지는 미친 놈.
“또, 돈. 돈. 그 놈의 돈이 문제지.”
모처럼 만의 화제 전환은 빌어먹을 독 탄 우물에 빠져 단숨에 최후를 맞이했다.
“그래서 어떻게 할 건데?”
“뭘?”
“뭐해먹고 살 거냐고?”
결국 우리의 이야기는 여러 조각들이 난립해도 하나의 재수 없는 그림으로 완성되는 1500피스짜리 조각퍼즐이다.
“돈 벌어야지. 빨리 취직해서 돈 벌어야지.”
“빚도 갚고 학자금도 갚고…….”
“연애도 하고!”
발칙함을 넘어선 추악함은 어느새 기이함을 불러온다. 나는 놈들보다 내가 더 불행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삐까뻔쩍하게 잘 사는 것도 아니지만 일생이 별다른 시련이나 고통 없이 평탄하기만 했던 나로서는 놈들에게 전적으로 공감한다는 것도, 놈들을 전적으로 동정한다는 것도 불가능하다. 그저 가장자리에 서 있는 관조자에 불과하다.
“가자, 다들 취했다.”
이래저래 침묵을 간간히 동반한 빈곤 논쟁은 무려 3시간이나 잡아먹었다. 그 시꺼먼 뱃속이 가게 문을 나서려는 우리에게는 밤하늘 색과 똑같이 보였다.
“술값은?”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으나 오늘도 나의 지출내역은 고정지출비, 담배1갑 값 빼고는 없다. 아참 추가로 담배 2갑이 나갔구나. 계산서를 집어 드는 손만큼이나 자연스럽게 나의 지갑은 하마같이 입을 벌린다. 한편으로는 졸렬한 마음에 그 입 좀 다물라고 꾸짖고 싶으나 그랬다가는 놈들의 입까지 영영 닫힐까 두려워 못하겠다. 놈들을 보내고 털레털레 돌아오는 길에 가로등이 불그스레한 눈초리를 쏘아댄다.
‘왜? 내 얼굴에도 그늘이 지긴 졌냐?’
이상한 논쟁 때문에 나마저 이상해졌다. 집으로 돌아온 내게 아버지는 겨울 초목 같은 손을 들어 떡대 같은 내 어깨를 잡으신다.
“힘드냐?”
“전혀 힘들지 않아요. 전혀요.”
그럼, 나는 전혀 힘들지 않다. 다만 내가 사는 주위가 조금 힘들어할 뿐이다.
2
놈들은 대학시절, 매일매일 지겹도록 봤었던 친구들이었다. 그런데도 다 같이 모인 건 근 5년 만이다. 누가 먼저랄 거 없이 가까워 보이는 고기 집으로 향했다. 자리를 잡고 메뉴판을 든다. 가브리살, 항정살, 목살 등등. 여러 고기 이름이 B4만한 크기의 메뉴판을 꽉꽉 채우고 있다. 한 놈은 화장실로 가고, 한 놈은 담배를 문다. 한 놈은 전화를 받고 결국 주문은 내 몫이란 말이지. 힐끔힐끔 눈치를 보다가 메뉴판 꼭대기에 있는 대패삼겹살을 주문했다. 딴 청 피우던 나머지 놈들의 눈에도 약간의 안도감이 비친다.
“그래 다들 어째 살았냐?”
고기가 구워지고 술이 한잔씩 돌자 그제야 안부를 묻는다. 만날 붙어 다니던 놈들이었는데 최근 몇 년 간은 각자 얼굴 한번 본 적이 없다. 여전히 꾀죄죄하게 입은 안경 낀 놈이 담배를 문다. 담배 연기가 삼겹살 연기에 섞여서 위로 말려 올라간다. 놈은 그것을 한동안 지긋이 보더니 말을 꺼낸다.
“맨 날 고시반에 있지.”
“아직도?”
“휴, 내 마음처럼 안 된다.”
놈은 우리 중 대학 성적이 제일 좋았다. 놈의 성적표는 항상 그랬다. A급 인사들이 파티를 주최했고 A+급 유명 인사들이 간간히 얼굴을 비췄다. B,C등의 어중이들은 고개도 내밀지 못했다. 놈은 2학년 때부터 사법고시 준비를 시작했다. 마치 목숨을 거는 것처럼 필사적인 매일을 보냈다. 10시간씩 꼬박꼬박 엉덩이와 의자의 키스를 강요했다. 1차는 붙었었지만 매번 2차에서 떨어졌다. 그게 벌써 4년째 되풀이 되고 있다. 로스쿨 법안이 통과하는 바람에 문이 더 좁아졌다나 어쨌다나. 놈의 집은 여전히 보증 빚을 갚지 못했다. 빚이 5천만 원이나 있는 마당에 1년에 천만 원 씩 들어가는 로스쿨 등록비를 감당할 수가 없다. 놈은 개천에서 난 용이 돼보겠다며 발버둥 치지만 올해도 낙방한 이무기일 뿐인 자신과 마주한다. 이제 몇 년 있으면 사법고시 자체가 폐지된다. 지금도 매년 합격 정원을 감축하고 있다. 그래도 놈은 포기할 수가 없다. 4년 동안 사시에 올인한 까닭에 그의 이력서에는 고시생 경력 빼고는 쓸 게 없다. 놈의 어머니는 합격할 자식만을 기다리며 오늘도 찰리 채플린이 되고 있다.
“야. 너는 어떤데?”
흘러들어오는 소문에 대기업에 취업했다던 놈에게로 화살이 향한다. 우리 예상에 놈은 사원증 떡하니 걸고 정장차림으로 이 자리에 나올 줄 알았다. 허나 웬걸, 놈은 캐주얼 차림으로 나왔다. 소주한잔 탁 들이키더니 한마디 한다.
“나, 회사 나왔다.”
“뭐? 왜?”
“왜긴 왜냐. 승진은 안 되지, 밑에 애들 치고 올라오지, 위에서는 쪼아대지, 대기업이라고 다 좋은 건 아니더라.”
“돈 많이 주잖아?”
“그 까짓 돈.”
놈은 회사 생활 3년 사이에 아주 폭삭 늙었다. 딴에는 우리 중에 일찍 사회생활을 시작한 편인데 출발도 좋았다. 유명한 조선 회사에 기술 전문가로 들어갔었다. 하지만 하루 종일 일해도 놈에게 남는 게 없었다. 남들이 부러워한다는 대기업 취직이었지만 놈에게는 하루하루가 고문이었다. 자신보다 학벌이 뛰어난 후임이 들어오자 위에서 누르고 밑에서 치이는 샌드위치가 되었다. 놈은 매일 아침을 샌드위치로 때우고 하루 종일 샌드위치가 돼서 귀가했다. 고생고생해서 들어간 회사를 때려치우기까지 제 딴에는 고민 좀 했었단다. 놈은 이때까지 돈 버는데 급급해서 한 번도 자신의 인생을 살아보지 못했다고 했다. 이렇게 치이고 살 바에야 자신이 원하는 행복을 찾아봐야겠다고 떠든다. 딴 놈들의 눈에 여려가지 표정이 읽힌다.
‘요즘 취업하기가 하늘에 별 따긴데, 쯧쯧. 뭐 얼마나 힘들다고? 쫌 버티지.’
‘배가 불렀네.’
하지만 놈은 아랑곳 않고 자신의 결정에 힘주어 말한다. 물론 후회는 하겠지만 이렇게 살기는 싫다는 놈의 얼굴을 보며 왜 박수 대신 구박을 주고 싶은 생각이 들까? 20대 후반, 인생을 담보로 새로운 도전을 하기에는 현실이 너무 각박하다. 놈은 그것을 제대로 알기는 한 걸까?
“야, 나 올해 말에 결혼한다.”
“오. 드디어 반가운 소식하나 들리네.”
“축하한다. 대학 때부터 만난 그 여자 친구냐?.”
“어.”
이제야 굿뉴스 하나 들려오는구나. 씁쓸한 술잔만 돌다가 달콤한 술잔이 한잔 도는가 했다. 하지만 정작 축하받을 당사자의 낯빛은 납빛이다. 놈은 지금 인생의 가장 큰 고비를 넘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대체 왜? 결혼이라면 좋은 일 아닌가? 모르는 소리 말라는 놈의 첫마디로 시작된 이야기가 끝을 내릴 쯤에 우리가 돌린 술잔은 지독하게도 썼다. 놈은 취직한지 딱 1년 되었다. 오랫동안 사귄 여자 친구였기에 취직과 동시에 결혼 얘기가 나왔다. 그때는 그랬단다.
‘결혼? 하면 되지.’
현실을 직시하자 놈은 몇 달간 아주 괴로움에 몸부림쳐야했다. 당장 직면한 과제는 집. 갓 취직한 사회 초년생에게 모아둔 돈이 있을 리 없을 터. 집을 구하려면 대출을 받아야했다. 집안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했지만 오래전에 쓰러졌었던 아버지 병원비만으로도 가세가 기운지 오래다. 다행히 아버지는 일어났지만 놈 밑으로 동생이 셋이다. 대학생 하나, 고등학생 둘. 이제는 교육비만으로도 휘청거리는 집안의 기둥을 반 토막 내어 자신의 결혼비용으로 팔아먹을 수는 없다. 처가 쪽에서 도움을 주겠다고는 하지만 처음이야 흔쾌할지는 몰라도 시간 지나면 그게 아니다. 결혼식 비용만 최소 3~400만원. 전세금이 약 1억 원. 가구 등 갖가지 혼수장만. 놈은 머릿속에서 하루에도 몇 번씩 계산기를 두드린다. 아무리 두드리고 두드려도 모자라다. 계산기는 하나 더 있다. 빚을 갚을 시간을 환산하는 용도로 말이다. 행복한 신혼은 단, 신혼여행 며칠 뿐. 놈의 신혼은 벌써부터 잿빛이다.
“야. 근데 왜 결혼을 하냐?”
“그래도 둘 다 직장 있고 오래 만났고 하니까 빨리 가는 게 낫다 싶으니까.”
반박할 말이 없다. 3~4년 후에 내 모습이 저럴 것이 자명 할 테니. 이건 축하할 일이 아니고 안타까워 할 일인가? 놈은 내일도 싸고 괜찮은 집 알아보러 돌아다녀야 한단다. 놈의 이야기가 제법 길어지자 주인을 잃은 고기 살점들이 불판위에서 타 버렸다. 우리의 속도 그 삼겹살처럼 까맣게 타고 있다.
“너는 어떤데?”
“뭐, 나?”
나? 나는 여전히 등골 브레이커. 전공을 때려치우고 이것저것 해보려했지만 결국 백수신세. 지방에서는 그래도 좀 통한다는 학력 믿고 막 덤볐는데 번번이 불합격, 불합격, 불합격. 아예 내가 원할 만한 회사는 신입사원을 뽑지를 않았다. 그래서 눈을 돌렸다. 공사나 공단 취직이 ‘갑’ 이다. 근데 이 ‘갑’되기가 하늘의 별에 있는 생물체 찾기다. 무슨 지원자들이 그리도 많은지. 딴에는 나도 안경잡이 놈처럼 고시 준비한다고 다른 공부를 완전히 배제했었다. 봉사활동도 없고, 해외 경험도 없고, 토익도, 토플도, 소위 스펙이란 제목의 리스트에 적혀있을 만한 것들은 아무것도 체크 표시된 게 없었다. 뒤늦게 후회하고 여러 가지들을 메우려했지만 쉽지 않았다. 겨우겨우 메워도 남들은 겨우겨우 더 많이 메워놨었다. 실로 암담했다. 주위의 취직 소식에 마냥 축하할 수만 없었다. 아니 어느 순간부터는 샘이 났다. 지독한 백수생활은 극도의 빈곤을 야기했다. 부모님은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심정으로 ‘언제가는 넘치겠지’ 라는 막연한 기대를 가졌었다. 이제 들이부은 물로 바다를 이루겠다는 억하심정이셨는지 경제적 지원을 끊을 모양인가보다. 다 큰 백수를 뒷바라지 하는 부모의 마음을 모르는바 아니나 낸들 어쩌겠나. 하루하루 먹는 밥이 모래 같다. 모래 같은 밥이라도 먹을 자격이 되냐고 물으면 고개 숙이고 굶어야할 꼴이다.
“나가자. 오랜만에 만났는데 2차 가야지.”
결혼 임박한 아주 불쌍한 놈이 오늘을 놔버린다는 어투로 2차 제의를 한다.
“여기 계산은 어쩌고?”
머뭇머뭇. 5년 전 하마같이 벌렸던 나의 지갑은 지금 책상 서랍 구석에 처박혀있다. 세상 구경 못해본지 아주 오래일거다. 그래도 대기업에서 돈 좀 벌었다는 놈이 쏜다고 카운터로 간다. 고마우면서도 걱정이 앞선다.
‘자식아. 너도 벌은 돈 잘 모아놔야 할 건데.’
삼겹살 한판에 소주 몇 잔. 풍요로운 미래를 꿈꾸던 어린 시절에 우리가 기약했던 장소는 이런 곳이 아니었다. 근사한 일식집에서 갖은 코스 요리로 비싼 술을 나누기로 했었지 않았나?
2차를 가자고 앞장 선 놈이 들어선 곳은 치킨 집. 우리는 거기서 또 몇 시간이고 싼 맥주에 닭을 안주 삼아 ‘누구의 현재가 더 빈곤한가’ 끊임없이 논쟁한다. 그러면서 또 마음 한 구석으로는 다들 풍요로운 미래를 꿈꾼다. 인생 참 아이러니하다. 고대했던 우리의 재회는 그렇게 지나가고 있었다.
3
기어이 서른을 넘겼다. 기약했던 10년이 속절없이 지나간 셈이다. 오랜만에 만난 우리의 술집은 기가 차게도 장례식장이다. 네 놈 중 한 놈이, 세상 참 더럽다며 입버릇처럼 노래를 부르던 놈이 더러운 세상 못 살겠다며 먼저 가 버렸다. 묽은 소고기국에 설익은 밥, 조촐한 대여섯 접시의 반찬들. 그리고 그 앞에 놓인 소주병. 우리의 서른세 살 술자리는 코스요리가 휘황찬란한 일식집도, 주인 잃은 삼겹살이 무심히 타들어가던 대패삼겹살집도, 담뱃값의 주인을 논하던 학교 앞 허름한 가게도 아니었다. 한산한, 너무나도 한산해서 짜증이 막 일어나는 어느 병원 지하의 장례식장이었다.
“미친놈 아니냐? 왜 벌써 뒈지고 난리야!”
술이 약했던 놈이 벌써 취기가 올랐나보다.
“정신 나간 새끼. 우리가 여기서 이 나이에 지 명복이나 빌어주면서 소주를 까야 쓰겠나?”
“목소리 좀 낮춰라.”
“왜? 이 봐라. 누구 있나? 얼마나 병신같이 살았으면 장례식장이 이렇게 텅 비었냔 말이다.”
놈은 주위를 휘적휘적 거린다. 우리의 시선도 놈의 손짓을 따라 휘적휘적 거린다. 저녁 8시. 문상객이 즐비해야할 장면만 봐왔던 내게 이런 장례식장은 신선하다. 아주 불쾌한 신선함이다. 술주정을 부리던 놈이 다시 소주를 마신다.
“이게 뭐야? 고시생이 뭐 그리 대수라고. 살려면 다 길은 있는 거다.”
“뭔 길? 너처럼 학원 강사?”
“비꼬지 마라.”
놈은 정색을 하더니 나를 쏘아본다. 결국 놈의 인생도 여기까지는 완전히 진흙탕이다. 놈은 대차게 때려 치고 나온 대기업을 평생 그리워할지도 모른다. 이렇게 살기는 싫다고 눈을 부라리며 각오를 다졌던 놈은 더 이렇게 살기 싫은 삶을 사나보다. 녀석의 목에 대기업 사원증 대신에 재수학원 강사증이 걸려있다. 허겁지겁 달려오느라 정신머리도 챙겨오지 못했나보다. 쪽팔리게 장례식장까지 강사증을 걸고 온 거 보면.
“세상이 뭐 같은 거지. 현장직 기술자가 뭐가 있겠냐? 그래봐야 블루칼라지. 화이트칼라 돼보겠다고 뛰어 다녀도 하루하루 먹고 살기 힘들어지면 답이 없다. 맘에 안 차도 눈에 보이는 거라도 해야지.”
놈은 사직서를 쓰고 딱 2년 만에 퇴직금을 깨끗이 날리고 재수학원에 취직했다. 2년 동안 이것저것 하려고 갖은 노력을 쏟아 부었지만 변변찮은 학벌에 조선기술만이 유일한 자랑인 녀석을 받아주는 회사는 별로 없었다. 대기업 근무 타이틀도 별거 아니었다. 쟁쟁한 스펙 앞에서는 달랑 한 줄의 이력밖에 되지 않았다. 결국 놈은 명예도 부도 심지어 자신이 부여할 가치도 별로 없는 재수학원 강사가 되었다. 학창시절 과외를 줄기차게 뛰던 그 생활이 직장이 될 줄이야. 쥐꼬리만 한 월급을 털어서라도 매일 저녁을 술 없이 못산다는 푸념이 빈소를 떠돈다.
“뭐가 이래.”
기어이 놈은 눈물을 보인다. 죽은 놈이 불쌍해서일까? 제 놈이 불쌍해서일까?
“쪽팔리게 울지 마라. 동혁이 새끼 저 안에서 같이 울라.”
빠짝 마른 가지 같은 놈이 나직하게 말한다. 놈은 죽은 놈의 영정을 지긋이 보다가 말없이 제 잔에 소주를 따른다. 결혼이 무덤이라던 놈은 담배 불똥이 제 몸에 잘못 튀면 타 죽어버릴 것 같은 몰골로 식장에 들어왔었다. 나는 놈의 얼굴을 처음에 못 알아볼 뻔 했다. 한 3~4년 사이에 사람이 이렇게 피폐해 질 수도 있나? 세월풍파를 모조리 얼굴로 받아낸 인상이다.
“왜? 내 얼굴이 좀 맛이 갔지?”
문상을 하고 우리 테이블로 걸어오면서 놈은 비릿한 미소를 흘렸다. 나는 죽은 놈의 웃는 영정보다 놈의 미소가 더 죽은 사람 같았다.
“동혁이 놈 탓할 거 없다. 오죽했으면 지손으로 갔겠나?”
“너도 만만찮은데? 많이 힘들었나?”
놈은 연거푸 술잔을 들이킨다. 얘기를 하려고 목을 축이는 건지, 목이 타서 얘기가 안 나오는 건지. 놈이 소주잔을 내려놓는 ‘탁’ 소리가 학원 강사 놈의 울음소리를 타고 내 귀를 아리게 뚫고 온다. 놈은 천천히 말을 잇는다.
“이혼했다. 몇 달 전에.”
신선하다. 굉장히 불쾌하게 신선하다. 놈의 결말은 결국 이거였었구나. 아버지가 쓰러지고 노예처럼 살아온 놈이었다. 겨우 취직도 했고 아버지도 일어났고 결혼도 하고. 놈은 이제 마음이라도 행복해질 줄 알았다. 어느 날 놈의 아버지는 다시 쓰러지시고 영영 일어나지 못하셨다. 부부간의 갈등은 오로지 돈이었다. 다시 압박해온 병원비의 수레바퀴는 놈을 아스팔트 바닥 밑으로 짓눌렀다. 신혼의 단꿈은 그의 계산기가 고장이 나버린 시점부터 드라마속의 것일 뿐이었다. 동생들을 돌볼 여유도 없었다. 수도 없이 처가의 도움을 받았다. 처와 처가의 인내심은 지옥까지 내려갔고 협의이혼장은 염라가 들고 와서 놈의 얼굴에 들이밀었다. 변명도 못했다.
“사랑? 개나 줘버리라지.”
“제수씨는 뭐라고 하디?”
“뭘, 뭐라 해? 나 같은 놈이랑 못 살겠다지. 결혼하고 불어난 건 빚밖에 없는데 나 같아도 못 살겠다하겠다.”
“그래도 네가 힘들게 살아온 거 다 본 사람 아니냐?”
“보는 거랑 겪는 거랑 같나? 제 일이 되면 다 엿 같은 거지.”
어찌 이리 맞는 말만 할꼬? 나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아무 말도 못했다.
“동혁이 놈이 잘 간 걸 수도 있다.”
울고 있던 놈이 그 말을 듣더니 벌컥 화를 낸다.
“뭐가? 뭐가 잘 간 건데? 뒈지면 다 끝이야? 무슨 말을 그 따위로 하냐? 힘들어도 살아야지. 우리 옛날에 잘 돼서 비싼 술 먹기로 한 거 잊었어? 이제 서른 좀 넘었는데 뭔 인생을 다 살았다고, 뭔 고생을 했다고 잘 갔다고 하는 거냐?”
“그래서 너는 뭐 남은 미래라도 있냐? 나는 빚만 남은 이혼남이고 너는 평생 과외 같은 거나 하는 짝퉁 선생이고. 뭐가 있는데?”
“미친놈아. 개소리하지마라. 동혁이 새끼가 무조건 잘못한 거다.”
“누가 잘했다나? 어쩔 수 없다고 하는 거지.”
“우탁이 너는 왜 가만있냐? 뭔 말이라도 해봐라.”
불똥이 나에게 튄다. 나는 아무 말도 안했다. 꽃다운 청춘이 물속에 가라앉은 자갈처럼 다시 떠오르지 못하게 되었다. 이제 와서 무슨 말을 하고 무슨 이해를 하고 무슨 변명을 하나?
“식장이다. 조용히 하고 술이나 먹어라.”
나는 언제까지나 관조자다. 공감도 동정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백수생활 3년차 나는 겨우 중소기업 말단직원으로 들어갔다. 샐러리맨은 죽어도 하기 싫은 직장이었지만 죽어도 하기 싫은 건 세상에 없었다. 죽으면 말짱 꽝이다. 꾸역꾸역 살다보니 어느새 불평도 불만도 무의미해졌다. 하루하루 변변찮은 일상에 적잖은 안도감을 느끼며 자신을 포장해갔다. ‘그땐 그랬지’는 노랫말에 불과하다. ‘지금 이렇다’가 현실이다. 그 따위 생각들을 품었다 뱉었다하면서 한 살 두 살 더 먹어갔고 세월은 망각이라는 과실을 주었다. 고시에 실패한 놈의 죽음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이미 슬픔에 앞서 연차일수를 계산하고 있는 속물이 되어있었다.
“뭐 더 필요한 거 없나?”
우리의 소란스러움이 동혁이 어머니의 신경을 건드렸나보다. 유가족 방에서 조용히 걸어 나온 어머니는 우리 테이블에 소주 한 병을 내려놓으시면서 묻는다.
“아닙니다. 어머님. 죄송합니다.”
“너희가 뭐가 죄송하니?”
“그래도 친구들인데 동혁이가 그리 힘든 줄 몰랐습니다.”
놈의 어머니는 아들 친구 놈들 앞에서 눈물을 보이시지 않으셨다. 다만 소주병을 들어 천천히 한잔씩 우리에게 주셨다. 우리는 공손히 어머니의 술을 받았다. 고개를 돌리고 단숨에 술잔을 비웠다.
“네가 우탁이, 너는 기찬이, 네가 세광이지?”
“예.”
“네.”
“네.”
“동혁이가 너희 얘기 많이 했다. 공부할 때 힘들 때마다 너희가 밥도 사주고 술도 사주고 해서 힘이 나더라고. 고맙다고.”
학원 강사 놈은 또 꺼이꺼이 울기 시작했다. 이혼한 놈도 주르륵 눈물을 흘리기 시작한다. 나는 눈물이 나지 않는다. 야속한 내 눈은 한 방울의 눈물도 흘러내리길 허락지 않는다. 빌어먹을 몸아. 이럴 때는 좀 말 좀 들어라. 놈의 어머니는 천천히 놈의 얘기를 꺼내셨다. 보증선 아버지 때문에 놈의 뒷바라지를 못한 것이 천추의 한이시라면서. 놈은 두 탕의 알바와 공부를 병행하며 6년을 버텼다. 결국 시험에 낙방했다. 내년이면 사법고시가 폐지된다. 가족도, 친구인 우리도 뒤늦게 안 사실이지만 6년의 고시 생활동안 놈은 허리가 아작 났다. 시험에 떨어진 후에 놈은 허리를 부여잡고 1평도 안 되는 고시텔에서 등 굽은 벌레처럼 이틀을 꿈쩍도 안했단다. 놈은 완전한 어둠속에 갇혔다. 놈의 유서에는 단 한줄 만이 적혀 있었을 뿐이었다.
‘이제 내가 뭘 어떻게 해야 하나?’
놈이 신주단지 모시듯 했던 안경은 놈이 고시텔 옥상에서 몸을 날렸을 때 같이 하늘 위로 날았다. 무수히 금이 갔던, 테도 부러져서 테이프를 동동 동여맸던, 좌우도 비뚤어져 보기에도 흉측했던 그 안경은 더 이상 세상을 볼 수 없게 되었다.
답답한 마음이 한산한, 너무나 한산해서 짜증이 막 나는 빈소를 빠져나가지 못하고 맴돈다. 담배를 집어 든다. 두 놈이 따라 나선다.
“불.”
“옜다.”
나를 포함 세 놈이 내뿜는 연기가 밤하늘에 말려 올라간다. 10년 전 학교 앞 그 허름한 술집에서 보던 하늘도 꼭 오늘과 같이 거무튀튀했었다. 나는 연거푸 연기를 피운다. 그때와 마찬가지로 저 거무튀튀한 밤하늘을 가리겠다는 알량한 마음으로. 어찌 알았는지, 아니면 그냥 따라하는 건지 옆에 두 놈도 연거푸 연기를 내뱉는다. 묘하게 꼬이기 시작한 연기가 죽은 놈의 얼굴을 만들어간다. 아니, 놈의 박살난 안경을 만들어간다. 다시 내뿜으니 재수학원 강사증도 만들어간다. 또 다시 내뿜으니 협의이혼장도 만들어간다. 잃어버린 20대의 청춘이 꽁초를 털어내고 돌아서는 놈들과 나의 뒷모습을 붙잡으려 안간힘을 쓴다. 애써 모르는 척, 무심한 척 놈의 빈소를 향해 걸음을 옮긴다. 자리로 다시 돌아오니 놈이 관에서 튀어나와 앉아있다. 손짓을 하면서 술을 받으라 한다. 나는 기꺼운 마음으로 술을 받는다. 쓰디쓰게 술을 삼키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나와 다른 놈들이 네놈 만나러 갈 그 날까지 우리는 누가 더 잘 사나, 누가 더 성공했나, 누가 더 돈이 많냐를 논하기 보다는 누가 더 빈곤한가를 끊임없이 논할 것만 같다. 아니, 어쩌면 네놈을 다시 만나는 재회의 자리에서도 빈곤을 논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 순간까지도 속으로는 풍요를 꿈꾸면서 말이다.’
장례식장을 나오면서 우리는 암묵적 동의라도 한 것처럼 다음의 기약 없이 하나 둘 사라진다. 재회는 아마도 꽤 오랫동안 이뤄지지 않을 듯싶다. 당분간은 빈곤을 논하기 싫을 테니까.
이준오 (ego525@naver.com / 010-4503-85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