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9차 창작콘테스트 소설부문-날개

by 더운크리스마스 posted Apr 25,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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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

김노인은 올해로 꼭 70이 된다. 산에서 양봉을 하느라 효자리 마을 사람들 과의 교류는 뜸하지만 김노인 특유의 우아하면서도 기품 있는 말투, 언제나 공손하고 다정한 말투 덕에 마을 사람들의 평판이 좋은 편이었다. 효자리의 주민들 대부분이 그렇듯이 그 역시 자식들과 떨어져 산지 올해로 10년째이다. 소문에 의하면 자식들 모두 업계에서 알아주는 성공한 기업인 이라 지만 그간 자식들은 꽁무니도 보이지 않은데다 김노인의 입에서 자식 얘기가 나오는 것도 매우 드문 일이어서 무엇이 진실인지는 알 길이 없었다. 하지만 그의 산속 오두막에 놓인 자식들 사진을 보면 모르긴 몰라도 자식사랑이 대단한 모양이었다.

그의 일과는 단순하다. 아침 일찍 일어나 벌들 상태를 살펴본 뒤 이른 아침을 먹고 산을 한바퀴 둘러본다. 그런 다음 다시 오두막으로 돌아와 빨래와 설거지 등 집안 일을 하고 벌들 밥을 먹인 뒤 멍하니 티비를 보거나 산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약초나 삼 따위를 캐서 마을 장에서 팔곤 했다. 70이라는 적지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김노인은 산 여기저기를 지친 기색 하나 없이 잘 도 돌아 다녔다. 혈기왕성한 청년도 몇 번 쉬어야 올라가는 마을 뒷산 정상을 김노인은 숨 몇 번 고르지 도 않고 제 집 마당처럼 왔다 갔다 했다. 산속 생활을 오래한 탓도 있겠지만 그의 체력은 분명 선천적인 것이 들림 없었다. 그러나 그렇게 팔팔했던 기력도 세월 앞에선 역시 별 수 없었는지 김노인은 요즘 들어 자신의 몸이 예전 같지 않음을 눈치 챘다.

가령 예전에는 걸어서 5분이면 갔던 거리를 이제는 30분, 그것도 중간에 숨을 몇 번 이나 고르고 나서야 발걸음을 옮길 수 있었다. 체력 뿐 아니라 몸 여기저기도 쑤셔오곤 했다. 희한한점은 다른 노인들처럼 허리나 무릎이 쑤시는 것이 아니라 어깨와 날갯죽지만 날이 갈수록 쑤시거나 따끔따끔한 통증이 느껴졌다.

“검사해봐도 별 이상한 점은 없네요.”

며칠 전 동네 이장의 등쌀에 떠밀려간 읍내 큰 병원에서도 별 이상은 없다고 했다. 희여멀건 얼굴의 의사는 사무적으로 질문 몇 개를 던진 뒤 검진표에 몇 글자를 끄적 이고는 김노인을 돌려 보냈다. 김노인은 밭일한번 안 해본 의사 선생이 자신을 검사하는게 살짝 자존심이 상한 듯 했다. 그러면서 흙 한번 안 묻혀본 의사 양반이 수년을 흙과 함께 살다시피 한 자신의 몸 상태를 어찌 알겠냐고 이장에게 면박을 줬다.

사람 좋은 이장은 아무 말없이 멋쩍은 듯 뒤통수를 긁적이더니 그 뒤로 병원얘기는 입에 담지도 않았다. 김노인은 세월 앞에 장사 없다는 말로 위안 삼으며 굽은 살짝 굽은 등짝에 대충 파스 쪼가리를 붙였다. 병원 샌님의 딱딱한 말 몇 마디 보다 김노인에겐 동네 약국에서 파는 파스 몇 장이 더 듬직했다.

김노인은 욱씬 거리는 날갯죽지를 애써 모른 체 하며 잠에 들려 했지만 그날따라 욱씬 거리는 것이 더 심한데다 영 채근거려 쉽사리 잠에 들 수가 없었다. 결국 몸을 이리저리 비틀고 나서야 김노인은 비로소 잠에 들 수 있었다. 통증 때문에 잠을 설친 김노인은 다음날 아침 평소보다 훨씬 일찍 일어났다. 잠에 취해 멍하니 앉아있던 김노인은 벽에 걸린 달력을 보고 나서야 그제야 오늘이 일요일인 것을 알았다. 어릴 적 몇 번 교회에 가본 기억은 있었지만 어느 샌가 먹고 살기 바빠 종교와는 거리를 둔 삶을 살게 된 김노인은 그날따라 한번 교회에 나가보고 싶어 졌다. 평소보다 훨씬 일찍 일어나 할 일도 없었던 김노인은 옷장에서 제일 깔끔해 보이는 옷을 고른 뒤 아침을 대강 차려 먹고는 마을 중심에 있는 작은 교회로 향했다.

교회에는 적지 않은 수의 마을 사람들이 벌써 와 있었다. 김노인은 몇 번 오다가다 마주친 마을 사람들과 어색하게 인사를 한 뒤 제일 구석 후미진 자리로 향했다. 교회 내부는 동화책에나 어울릴 법한 그림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대충 흝어 보니 교회에서 자주 이야기 것들을 그림으로 그려 놓은 듯 했다.

그 중에서도 김노인의 눈에 들어온 것이 있었다. 비슷비슷하게 생긴 곱슬머리의 천사 무리가 나팔을 불고 있는 그림이었다. 김노인은 자신의 날갯죽지가 아픈 것이 마치 천사처럼 날개가 튀어나오려는 것 은 아닐까 하는 쓰잘데기 없는 상상을 하며 지루한 시간을 보냈다. 하릴없이 목사가 오기만을 기다리는 동안 김노인은 교회에 막 들어서는 이장과 그 가족들과 눈이 마주쳤다.

이장은 김노인을 보자 마자 싱글싱글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아유, 여기서 다 뵙네요? 어쩐 일 이세요?”

“일은 무슨,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할 일도 없어서 와봤네 그냥.” 얼마전 병원 일 탓에 이장에게 아직도 뚱해 있던 김노인은 일부러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잘 오셨어요 어쩄든, 이번에 새로 온 목사가 사람도 좋고 말도 잘 해서 사람들이 요새 많이 와요. 우리야 뭐 이런 촌구석에 외지 사람이 오기만 해도 반갑지 뭐, 안 그래요?”

이장은 분위기를 풀어 보려는 듯 말을 주섬주섬 늘어 놓았다. 김노인은 살짝 마음이 누그러졌는지 이장과 잡담을 주고 받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무릎 나온 청바지에 면티를 후줄근하게 입은 목사가 나와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김노인은 양복 따위를 차려 입으며 있는 체 하는 다른 목사들과는 사뭇 다른 그의 모습이 맘에 들었다.

설교내용은 그저 그렇게 흘려 보냈다. 김노인은 몇 번이고 집중을 하려 했지만 좀 전 까지만 해도 멀쩡한 날갯죽지가 다시 아파와 도무지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김노인은 교회에서 주는 점심도 마다 한 채 서둘러 산으로 향했다. 이상하게도 지금까지 수천번은 지나다녔을 산길이 그날 따라 영 버겁게 느껴져 김노인은 숨을 헉헉대며 간신히 걸음을 뗐다. 날갯죽지는 더 아파오는 데다가 숨은 턱 끌까지 차 올라 김노인은 힘겨워 했다. 설상가상으로 그 사이에 내린 비 때문에 낙엽이 젖어 산길은 더 미끄러웠다. 김노인은 조심조심 발을 내딛으며 앞으로 향했다. 하필 그 떄 발을 잘못 디뎠는지 김노인의 몸이 중심을 잃어 위태롭게 휘청거렸다. 몸이 중심을 잃고 넘어지려는 찰 나 김노인은 몸이 깃털처럼 가벼워 짐을 느꼈다. 김노인의 몸은 몇 초간 공중에 머물러 있더니 종이 쪼가리처럼 사뿐하게 지면에 내려 앉았다. 물론 몸에는 상처 하나 없는 채 였다.

김노인은 어안이 벙벙하여 몸 여기저기를 만져보며 아픈 곳이 있나 확인해 보았다. 신기하게도 날갯죽지에 있던 통증은 눈 녹듯 사라져 있었다. 집에 도착한 김노인은 아까의 상황을 곰곰히 떠 올려 보였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몇 초간 김노인의 몸이 날개가 달린 거 마냥 공중에 머물러 있었다는 것은 분명했다. 하지만 김노인은 참 별일 이다 하면서 대수롭지않게 넘겼다.

며칠이 지나 김노인은 약초를 캐러 산 깊숙한 곳까지 들어가야 했다. 김노인은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지팡이를 챙겼지만 괜한 오기가 생겼는지 그냥 지팡이를 가방 구석에 쳐 박아 버렸다. 해가 지기전에 집에 돌아오려 했지만 길을 잘못 들어 몇시간을 헤 멘 탓에 김노인은 컴컴한 숲속에서 길을 잃게 되었다.

해가 진 후의 산속은 사방을 둘러봐도 칠흑 같은 어둠과 풀벌레들이 우는 소리 뿐 이었다. 김노인은 몇 번이고 길을 찾으려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질 뻔 하였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산속에서 길을 찾는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김노인은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바위에 걸터앉아 숨을 돌렸다. 혹시나 이대로 산속에 갇혀 잘못되면 어쩌나 하는 불안한 생각이 엄습해왔다. 토끼 같은 자식들을 위해서라도 산을 서둘러 빠져나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깊숙한 산속, 그것도 한밤중에 갇힌 노인은 참으로 무기력하기 짝이 없었다. 김노인은 자신에게 날개라도 달려 이 미로 같은 숲을 훨훨 날아 넘어갈 수 만 있으면 좋겠다는 웃긴 상상을 했다.


그 순간, 김노인의 몸이 얼마전 넘어졌을 뻔 했던 적처럼 가볍게 떠오르기 시작했다. 김노인은 화들짝 놀라 발 밑을 쳐다보았다. 내려다보니 김노인이 방금 까지만 해도 걸터앉은 바위가 점점 작아지더니 순식간에 주먹만 해졌다. 김노인의 몸은 어느새 숲속에서 몇 미터는 떠올라 공중에 머물러 있었다. 김노인은 물장구를 치듯 손을 휘 적여 보았다. 그랬더니 놀랍게도 노인의 장자개비 같은 몸이 움직이더니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차가운 밤공기를 가르며 앞으로 향하다 보니 어느새 노인의 오두막 근처였다. 근처에 다다른 김노인은 어안이 벙벙하여 가만히 서있었다. 그랬더니 노인의 몸이 다시 천천히 깃털처럼 내려앉아 사뿐히 내려앉았다.

김노인은 이것이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이 되지 않아 자신의 다리를 주물러 보았다. 날개죽지는 여전히 조금 쑤셨지만 그렇게 심하진 않은 정도였다.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몇 미터나 되는 거리를 날개라도 달린 마냥 날아왔다는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김노인은 흥분감을 감추지 못한 채 꼴딱 밤을 새며 날이 새기 만을 기다렸다. 동이 트는 대로 바로 이장에게 달려가 그간 있었던 일을 낱낱이 말해줄 생각이었다. 김노인은 높은 밤하늘의 공기가 아직까지도 코끝에 아른거리는지 콧구멍을 벌렁거렸다. 이장의 집으로 향하는 길을 걷는 김노인의 발걸음은 노인의 그것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가벼웠다. 어쩌면 김노인에게는 하늘을 날았다는 말도 안되는 경험보다 다른 사람들에게 얘기 할 거리가 생겼다는 것이 더 기뻤을 지도 모르겠다. 김노인은 페인트가 얼룩덜룩한 이장의 집 대문을 세차게 두드렸다. 그러자 이장의 아들놈이 쪼르르 달려 나와 대문을 빠끔 열고는 김노인을 위 아래로 훑어 보았다. 낯을 많이 가리는 성격 인 듯 했다. 이윽고 아들에게 자초지종을 들은 이장이 슬리퍼를 끌며 대문 밖으로 나갔다. 김노인은 아직도 채 가지 않은 흥분 탓에 앞뒤 설명도 없이 “이장, 내가, 내가 하늘을… 날개가 달린 것 같아!” 라고 내뱉었다. 이장은 이 영감이 무슨 소리인가 하고 벙찐 표정으로 김노인을 바라 보았다. 김노인의 자세한 설명을 듣고도 이장은 시큰둥한 표정을 지더니 “거참, 잘 된 일이네요. 이제 자식들 보러 마음껏 갈 수 있겠 구만” 하고는 하품을 하며 다시 집으로 들어가 버렸다.

김노인은 이장의 태도가 마치 배신이라도 한 마냥 느껴졌다. 자기는 이장 말만 듣고 그렇게 싫어하던 의사까지 만난 자신을 어떻게 이른 아침부터 문전 박대를 당하게 할 수 있 단 말인가 하는 생각이 김노인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사실 이장을 빼면 마을 사람들과 딱히 허물업이 지내는 것 도 아니라 김노인은 쓸쓸히 집으로 향했다. 집으로 가는 길에도 김노인은 몇 번이고 다시 하늘을 날아 보기 위해 뜀박질을 연신 해댔지만 얻은 것은 무릎에 시퍼렇 든 큼지막한 멍이 고작이었다. 김노인은 아마도 절박한 순간에만 되는 것 이라고 결론을 짓곤 섣불리 능력을 써서는 안되겠다고 다짐을 하였다.

며칠이 지나 김노인의 집에 휴지가 다 떨어져 마을 시장에 내려가야 할 일이 생겼다. 김노인은 꼬깃꼬깃 구겨진 지폐 몇 장을 손으로 대충 문질러 편 뒤 고이 접어 호주머니에 넣었다. 마을 시장으로 향하는 길에 김노인은 동네 아낙 몇명이 자신을 쳐다보며 자기네들끼리 뭐 라 수군수군하는 모습을 보았지만 신경 쓰지 않고 지나갔다. 동네 아낙들이야 둘 이상 모이면 남 흉보기에 바쁘다고 생각한 김노인은 혀를 쯧쯧 차며 마을 시장으로 향했다.

입구에서부터 호객질 하는 상인들 탓에 어수선한 분위기에 김노인은 괜히 호주머니에 놓인 돈을 더듬거리며 다시 확인해 보았다. 시장 입구근처 에서는 동네 꼬마들이 삼삼오오 모여 떠들고 있었다. 그중 에는 얼마전 만난 이장의 아들도 끼어 있었다. 김노인은 아는 체를 하기 귀찮아 일부러 못 본체 하며 지나가려 했다.

“너희들 산에 사는 그 영감 알지? 그 노인네 가 노망이 났다 니 깐!” 익숙한 목소리에 김노인이 뒤를 돌아보자 이장 아들놈이 동네 꼬마들을 앉혀 놓고 무언가 얘기를 늘어놓고 있었다. 김노인은 ‘산에 사는 그 영감’ 이라는 말이 괜히 신경이 쓰여 아들놈이 하는 얘기에 귀를 기울였다.

“얼마전에 아침부터 우리 집 대문을 두드려 대서 우리 아버지를 불러 다가 하는 말이, 자기가 하늘을 난다 별 소리를 늘어내는 걸 내가 봤 어!”

“우리 엄마도 그러던데, 산에서 하도 오래 살아서 정신이 확 돌아버렸다고.” 동네 꼬마 중 한명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를 하더니 동네 꼬마들은 김노인이 엿듣고 있는 것도 모른 채 김노인에 대한 괴이한 목격담을 쏟아냈다. 갑자기 길을 걷다가 펄쩍펄쩍 뛴다는 둥 눈빛이 예사롭지 않다는 둥 별의 별 헛소리가 튀어나오자 김노인은 화를 참지 못하고 동네 꼬마들 앞으로 다가갔다.

“너희 들 그게 대체 무슨 소리냐?” 분을 애써 삭힌 김노인의 낮은 목소리에 동네 꼬마들은 서로 눈치를 보며 김노인의 눈을 피했다. 이장 아들 놈은 신발로 돌을 차 대며 모르는 체 했다. 김노인은 그 모습을 보고 화가 치밀어 그 자리에서 아이들에게 일장 훈계를 했다. 그 소리에 동네 꼬마 몇은 무서워 울음을 터뜨리고 애들이 우는 소리에 놀라 달려온 부모들까지 김노인의 주위로 사람들이 몰리기 시작하자 김노인은 사람들의 눈길이 부담스러워 도망가다시피 산으로 향했다.

김노인은 집에 도착해서도 분을 이기지 못했다. 동네 코흘리개 수준인 아이들의 입방아에 자신이 오르내린다는 사실이 김노인의 자존심을 더 건드렸다. 김노인은 아파오는 머리통을 부여잡고 생각에 잠겼다. 어떻게 하면 자신의 떨어진 권위도 되찾고 다시는 이런 일이 없을까 고민한 김노인은 무심코 달력을 쳐다보았다. 달력을 보니 내일이 일요일 인 듯 했다. 김노인은 뾰족한 수가 생각 난 듯 무릎을 탁 치더니 창고에서 오래된 철제 사다리 하나를 꺼내 먼지를 닦고 손보았다.

한편 마을에서는 그 점잖은 김노인이 불 같이 화를 냈다는 소문이 빠르게 퍼졌다. 개중에는 정말로 김노인이 노망이 들었다고 믿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그도 그럴 만한 것이, 사람도 잘 만나지 않고 산골짜기에 틀여 박혀 있으면 미치지 않고 배기겠냐는 것이 주된 의견이었다. 이장은 일을 갔다가 저녁에 서야 집에 돌아와 그 소문을 듣고는 자신 때문에 김노인이 그렇게 된 것이 아닌가 하고 살짝 걱정이 되었다. 김노인에게 유일한 말동무였던 자신이 너무 야박하게 군 것 같아 이장은 통 잠을 이루지 못하다가 내일 아침에 교회에 가야 한다는 생각에 억지로 잠을 청했다.

다음날 아침, 이장은 교회에 평소보다 일찍 도착해 혹시 김노인이 올까 봐 똥마려운 강아지 마냥 입구 쪽을 계속 뒤 돌아 보았다. 그러나 김노인의 모습은 보이지 않은데다 설교 중에 쥐새끼들 때문인지 천장이 쿵쿵거려 예배에도 영 집중이 되지 않았다.

예배가 끝나고도 이장은 김노인을 찾아 두리번거렸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김노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아 이장은 김노인이 단단히 화가나 오두막에 틀여 박혀 있을 거 라는 생각이 들어 밥도 몇 술 푸다 말고 교회 밖으로 나섰다. 그때 누군가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들려 이장은 교회를 뒤돌아 보았다.

“여기네, 여기!” 따가운 햇살에 눈을 잔뜩 찡그리고 교회 종탑을 올려다보자 거기에는 이장이 그렇게 찾았던 김노인이 서 있었다. 바닥에 치워진 사다리를 보아 예배중간에 사람들이 교회에 모여 있는 틈을 타 사다리를 타고 교회 종탑 위에 올라온 모양이었다.

“거기서 뭐 하시는 거 에요!” 다급한 이장의 말에 교회안에 있던 사람들도 덩달아 우루루 몰려나와 김노인을 발견하고는 야단이 났다.

“영감님! 위험하니까 빨리 내려오세요!” 라며 김노인을 걱정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에휴, 저 영감 탱이 가 돌아도 단단히 돌았 구만!” 하고 김노인을 조롱하는 사람도 있었다. 김노인은 그런 솔에 개의치 않은 채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질렀다.

“나는 노망이 난 것도 아니고! 헤까닥 돈 것도 아닙니다 여러분! 나한테는 남들에겐 없는 특별한 능력이 있는데! 당신네들이 도무지 믿지않고 나를 미친놈 취급하길래 내가 그 능력을 보여주기 위해 특별히 이 자리에 섰소!”

김노인의 말에 이장은 김노인이 찾아와 했던 말을 기억해 냈다. 김노인은 자신의 주장이 사실임을 보여주기 위해 교회 종탑에서 떨어질 생각인 것이었다. 이장은 김노인을 달래기 위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영감님! 알겠으니깐 이제 그만하고 내려오세요!” 세찬 바람에 노인의 얇은 두다리가 불안하게 흔들리자 이장은 사다리로 달려갔다.

“오지마! 가까이 오지 말 란 말이야!” 그 모습을 본 김노인이 악다구니를 쓰며 소리 질렀다.

“내가 백 번 천 번 말해도 믿지 않을 테니 깐 내가 보여주려는 것 아냐! 가까이 오지들 말라고!” 김노인의 서슬 퍼런 경고에 이장은 한 발짝 물러났다. 마을 사람들은 경찰에 신고를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이장은 김노인에게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소리 쳤다.

“영감님! 제발 알겠으니깐 그만 하세요! 그만하고! 나랑 같이 좀 갑시다, 예?”

이장의 간곡한 부탁에도 김노인은 난간 끝으로 다가서며 소리쳤다.

“가긴 어딜 가! 또 어디 병원에나 보낼려구? 나는 아픈 데가 없단 말이야! 당신네들은.. 너희들은 절대 알 수 없어!” 김노인은 이제 거의 울다시피 소리지르기 시작했다.

“너희들 눈에는 이게 정말 안 보인다고? 에라이, 이 모지리 같은 놈들.. 아픈 건 내가 아니고 너희들 이구만, 왜 자꾸 보지 못하는 거야!” 그러면서 김노인은 난간 쪽으로 한 걸음 더 다가서기 시작했다. 이장은 어찌할 바를 몰라 발을 동동 구르며 주위를 둘러봤지만 마을 사람들도 역시 별 수 없이 그 모습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

“나 보여요! 영감님, 보인다고! 그 뭐 야, 날개가 햇빛을 받아서 반짝거리는게 보인다고! 믿어요, 믿어!” 이장은 얼굴이 검붉어 져서 소리를 지르며 김노인을 말리려 애썼다. 김노인은 이장의 말에 울음을 터뜨리며 소리쳤다.

“거짓말 말어, 니들은 절대로 볼 수가 없어, 내 말 알아들어? 너희들은 절대 볼 수가 없다고!” 김노인은 어느새 난간을 넘어 두 팔로 간신히 몸을 지탱하고 있었다. 이장은 언제쯤 119가 오는지 물어봤지만 대답은 가고 있다는 것 뿐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경찰이 올때까지 시간을 더 끌어보라고 이장을 부추겨 댔다.

“좀만 더 말을 해봐요! 이러다가 진짜 사단 나겠네 그냥!”

“한 몇 분만 좀 끌어봐요! 저 영감이 그래도 이장 말은 듣네!”

이장은 이제 대체 무슨 말을 해야 하나 하고 김노인을 쳐다보았다. 김노인의 얼굴은 어느새 땀으로 흠뻑 젖어 있는 데다 노인이 잡고 있던 난간은 불안하게 흔들렸다.

“영감!” 바로 그때 노인이 붙잡고 있던 난간이 휙 고꾸라지더니 장작개비 같은 노인의 몸도 힘없이 떨어졌다. 김노인의 팔이 날개 질 하는 새 마냥 몇 번 퍼덕거리더니 땅으로 떨어져 끔찍한 소리를 냈다. 붉은 선혈이 흙바닥에 흘 뿌려지고 김노인의 몸은 차마 볼 수 없을 만큼 뭉개 져 버렸다. 곧이어 구급차가 도착했지만 김노인의 숨은 이미 끊어진 뒤였다.

김노인의 자식들은 장례식장에 오지 않았다. 이장네 가족들과 효자리 마을 사람들 대부분만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이장은 조문객들과 인사를 하다 말고 김노인의 영정 사진을 들여다보았다. 사진주위로 놓여있는 하얀 국화꽃들이 마치 날개처럼 보였다. 이장은 장례식장 밖으로 나와 담배를 꺼내 입에 물고는 불을 붙였다. 뿌연 흰 연기가 모락모락 나며 하늘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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