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by 나무꾼 posted Jan 02,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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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생님



 “각자 내일까지 장래희망을 적어서 내도록 하세요.”
 처음 내게 꿈에 대해 질문한 사람은 초등학교 담임선생님이셨다.
 나는 집에서 선생님이 나눠준 종이를 엄마에게 내밀었다. 그러자 엄마가 물었다.
 “아들은 나중에 뭐가 되고 싶어?”
 나는 엄마의 그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무척 흥분했던 것 같다. 그 순간 내 앞에 펼쳐져 있던 무한한 가능성. 그 속에서 딱 하나만 골라야 한다는 건, 어렸던 내게 있어선 정말이지 망설여지는 일이었다.
 나는 아주 신중한 고민 끝에 대답했다.
 “파워레인저가 되고 싶어요.”
 그러자 엄마는 깔깔거리며 말했다.
 “그런 건 아마 힘들 거야. 다른 건 없니?”
 나는 더 풀이 죽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럼 어깨 쪽에 뾰족한 가시가 돋아있고 박쥐같은 날개가 달린 악당이 될래요.”
 이번에는 엄마도 소리 내어 웃진 않았지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악당이나 파워레인저 말고 다른 건 없니?”
 나는 엄마의 말이 불만스러웠다. 파워레인저도, 악당도, 아무것도 안 된다니. 그럼 대체 뭘 하란 말인가.
 “그럼 전 뭐가 될 수 있는 데요?”
 엄마는 다림질 판에 놓인 옷을 다림질했다.
 “멋진 옷을 만드는 사람이 될 수도 있겠지.”
 “다른 건요?”
 엄마의 눈이 tv로 향했다. 집들이를 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방영되고 있었다.
 “사람들이 사는 집을 짓는 사람이 될 수도 있을 거야.”
 나는 흥분했던 마음이 완전히 사라지는 걸 느끼며 말했다.
 “그런 건 하나도 재미없어요.”
 정말로, 하나도 재미없을 거라 생각했다. 내가 되고 싶었던 건 파워레인저와 악당뿐이었다. 그 당시 내게 지구를 지키는 일과 지구를 부수는 일, 그 두 가지보다 심각해보이고 멋있어 보이는 일은 없었다. 다른 것들은 아주 사소하고, 슈퍼마켓에 진열된 똑같은 과자들처럼 흔하고 평범해 보였던 것이다.
 그날 나는 온종일 엄마 말을 안 들었던 것 같다. 엄마는 뒤늦게 여러 직업들에 대한 이야기로 내 흥미를 불러일으키려 노력했다. 그러나 마음에 와 닿는 건 없었다.
 다음 날 학교에 도착해, 나는 장래희망 종이에 ‘선생님’이라고 써서 냈다. 사실 선생님이 아닌 무엇이라도 상관없었다. 소방관도 괜찮았고, 경찰도 괜찮았다. 나는 단지 선생님이 종이를 걷는 모습을 바라보며 급하게 텅 빈 종이에 ‘선생님’이라고 써 갈겨 낸 것뿐이었다. 그럼에도 선생님은 종이에 적힌 직업들을 읽어보다가, 종이에서 ‘선생님’이라는 단어를 발견하시고는 무척이나 기뻐하셨다. 나는 하나도 기쁘지 않았다.
 그 후로 내 장래희망은 ‘선생님’이 되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를 졸업하면서도 장래희망은 바뀌지 않았다. 그동안 악당과 파워레인저보다 더 마음을 끌어당기는 직업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전부다 시시했다. 다른 사람들은 무슨 즐거움으로 살아가는지 알 수가 없었다. 계절이 바뀌고, 나이를 먹어갔지만, 가끔은 그럼에도 사실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 것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곤 했다.
 나는 이를 악물고 학교를 다녔다. 그러면서 고등학생이 되기만을 간절히 기다렸다. 고등학생이 된다면, 분명 뭔가 알 수 있을 거라고, 적어도 ‘선생님’보다는 더 나은 장래희망을 떠올릴 수 있을지 모른다고,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고등학생이 되어도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아니, 변화가 있었지만, 그건 내게 있어 좋지 않은 변화였다는 말이 옳겠다. 중학교의 교실에서 조금씩 어른들의 모습을 갖춰가던 아이들은, 고등학생이 되어 완전히 어른과 비슷해진 것 같았다. 환상과 꿈이 담긴, 어른들이 시답잖다고 말하던 그런 대화를 모두가 그만 두었다. 시험지를 바라보며 심각한 어른의 얼굴을 하는 아이들이 점점 많아졌다. 모두가 미친 것만 같았다.
 그러나 나는 곧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주변의 모두가, 심지어 친구까지도 내게 연민의 시선을 보낼 때가 있었다. 생각 없는 놈, 철들지 못한 녀석. 나는 거기서 가끔씩 보이는 안도감, 우월감 같은 것들을 느끼면서도, 그들의 그런 태도에 대해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너도 이젠 정신 좀 차려라.”
 “언제까지 그렇게 놀기만 할 거니. 엄마는 정말…….”
 “나중에 전문대에 가는 것도 문제가 생길 수 있어. 지금부터라도 공부해라. 선생님이 너 걱정해서 하는 말이야.”
 나는 어느 순간부터 공부를 시작했다. 결국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선생님’이 아닌 다른 장래 희망을 선택할 수 없었기 때문에, 선생님이 되기로 결정하고 공부했다. 선생님이 되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인터넷으로 검색했다.
 나는 ‘선생님’이 되는 것마저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란 걸 알 수 있었다. 그건 전국의 모든 학생들 중 상위 5%안에 들어야 현실성을 가지는 일이었다. 그리고 전국의 5%안에 든다는 건 잘하는 것을 떠나 나보다 못하는 95%의 사람들이 존재해야 한다는 걸 의미했다.
 나는 무가치하다고 생각했던 그 하나도 재미없는 장래희망조차 내 맘대로 이룰 수 있는 일이 아니란 걸 깨달아야 했다. 그건 정말 ‘꿈’이고 ‘희망’이었던 것이다. 파워레인저나 악당만이 아닌 그 모든 것이.
 나는 ‘선생님’을 목표로 공부했고, 성적은 아주 느리게 올라갔다. 2학년 2학기부터 시작한 공부는 3학년이 되고 나서야 조금씩 성과를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성적이 오르고 있다는 사실은 나에게 아무런 감흥도 주지 않았고, 그마저 3학년 2학기가 시작될 무렵 오르지 않게 됐다. 나는 수능시험을 봤고 ‘선생님’이 되기에 부족한 점수를 얻었다. 그럼에도 부모님은 집나간 자식이 돌아온 것처럼 아주 기뻐했다.
 부모님은 내게 공학계열 대학에 입학하라고 말했다. 나는 아무래도 상관없었고, 성적에 맞춰서 갈 수 있는 가장 간판이 좋은 대학이 공대였기 때문에 그곳에 지원서를 넣었다.
 나는 예비 2,5,6번을 받았지만 결국 대학에 가지 못했다. 부모님은 그리 좋지 않은 성적에서 하향지원을 하길 머뭇거렸고, 내 성적과 완전히 맞물리는 3곳의 대학에 원서를 넣었다. 내가 맘대로 할 수 있었던 건 결국 공부정도였던 것이다. 나는 재수를 하게 됐다.


 재수학원에서의 일과는 집에서와 그리 다르지 않았지만, 부모님은 기어코 나를 학원에 집어넣었다. 고등학교 2학년부터 3학년의 시기를 아무 생각 없이 공부해왔음에도 나는 별로 힘들다는 느낌을 받지 않았다. 공부가 아니라 그 무엇을 대신 했더라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곳에서 보는 사람들도 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의 사람들과 별 다를 게 없었다. 다만 조금 더 과묵했을 뿐이고, 조금 더 어른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사실, 지금에 와서는 그들과 나, 그 둘 사이에 무슨 차이가 있는지 나도 잘 모르겠다.
 ‘선생님’을 목표로 계속 공부를 했다. 다른 아이들이 공부를 아무리 늦게까지 해도, 모두가 집에 돌아가기 전까지는 계속 공부를 했다. 무언가가 되려면, 누군가를 앞질러야 했다. 나는 늦게 출발했고, 늦게 출발한 사람은 부지런히 거리를 좁혀야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재수학원의 텅 빈 교실에는 나와 한 여자애가 남아있었다. 그 애의 이름은 지수였다. 지수는 학원의 수업이 끝나면 보통 가장 먼저 집으로 돌아가는 아이였다. 시계가 12시를 지나쳤음에도 지수는 떠나지 않았다. 나는 아무래도 상관없었기 때문에 계속 공부를 했다. 지수가 내게 다가와 말했다.
 “넌 뭐가 되고 싶어서 그렇게 열심히 공부하는 거야?”
 정말로 오랜만에 듣는 질문이었다. 그러나 그 기나긴 시간. 8살 무렵의 나와 20살의 나 사이의 그 기나긴 시간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질문에 제대로 대답할 수 없었다. 나는 대답했다.
 “선생님.”
 지수는 옆자리 책상에 걸터앉으며 말했다.
 “좋은 꿈이네.”
 좋은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꿈은 꿈이었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기계적으로 물었다.
 “너는?”
 “작가가 될 거야.”
 나는 질문을 던진 걸 후회했다. 길게 말을 섞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그래서 입을 다물었지만 지수는 계속 말했다.
 “왜 작가가 되고 싶냐 거나 뭐 그런 건 안 물어볼 거야?”
 나는 그대로 말했다.
 “왜 작가가 되고 싶은 건데.”
 “뭐, 세상을 긍정하는 것도 부정하는 것도 내 맘대로 할 수 있기 때문 아닐까?”
 그 대답은 왠지 마음에 드는 성질의 대답이었다. 나는 조금 대화할 맘이 생겼다. 지수가 말했다.
 “소설 속에선 마음만 먹으면 이 빌어먹을 재수학원에 핵을 날려버릴 수도 있잖아.”
 “우리도 죽어버리겠지만.”
 “미래과학기술을 접목한 베리어를 내 주변에 설치해주지 뭐.”
 피식거리는 웃음이 새어나왔다. 오랜만에 느끼는 유쾌한 기분이었다.
 “너한텐 설치 안 해줄지도 몰라. 질문에 제대로 대답해주면 또 모르지만.”
 지수는 책상 위에서 다리를 흔들며 말했다.
 “넌 왜 선생님이 되고 싶은 거야?”
 나는 생각나는 대로 말했다.
 “딱히 선생님이 아니라도 상관없어. 목적지를 정해놓지 못하면 어디로도 움직일 수 없으니까. 그냥 선생님이 되자고 정한거야.”

 지수는 그 뒤로도 밤늦게까지 학원에 남아 있었다. 우리는 자주 대화를 나눴다. 어쩌면 고등학생 이후 처음으로 친구 비슷한 관계를 맺게 됐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지수와 대화하는 게 좋았다. 지수와 나누는 대화는 마치 중학생 때나 고등학교에 막 입학했을 쯤의 시답잖은 대화를 떠올리게 했다. 환상과 진짜 꿈에 대한 이야기들.
 “꼬맹이 때는 세계평화에 이바지하려던 분이 나이 좀 먹었다고 수도승 분위기를 풍기셔?”
 “악당이 되고 싶었다고? 옛날부터 골 때리는 애였구나?”
 밤늦게 나누는 그 짧은 대화시간은 재수학원을 다니던 시절 중 가장 행복했던 시간이었다. 하루 온종일 수업을 듣고 있다가도 해질 무렵이 되고 학생들이 한 명씩 빠져나가기 시작하면 기분이 좋아졌다. 서로 거리를 둔 채 공부를 계속하다가, 지수가 피곤함을 못 참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다. 그리곤 교실을 이리저리 돌다가 옆자리 탁자에 걸터앉아서는 별 의미 없을 이야기들을 줄줄이 늘어놓는 것이다. 나는 그 어두컴컴한 밤의 교실에서 꿈에 대해 나누는 이야기들을 위안삼아, 조금은 희망이라는 걸 가져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했다.

 시간은 빠르게 흘렀고, 우리는 수능을 치렀다. 지수는 원하던 성적을 얻었고, 나는 ‘선생님’이 될 수 있는 성적을 얻었다.
 재수학원의 마지막 날. 그동안 함께 공부한 아이들이 모여 술이며 고기를 먹던 밤. 지수는 내게 문예창작과에 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내게는 어느 학과를 지망할 생각인지 물었다.
 나는 다시 한 번 ‘무엇이 되고 싶니?’라는 질문과 마주해야 했다. 그리고 뭔가 바뀌어가고 있다고 믿었던 내 생각이 착각에 불과했으며, 내가 그동안 지수의 꿈을 지켜보고 있었을 뿐이라는 걸 깨달았다. 여전히 나는 아무것도 되고 싶은 게 없었다.
 내가 아무런 대답도 못하자 지수가 말했다.
 “정말로, 어딜 가도 상관없는 거라면, 너도 문예창작과에 지원하는 건 어때?”
 지수는 시선을 피하며 맥주 캔을 만지작거렸다. 얼굴에 붉은 빛이 도는 게 조금 취한 것만 같았다. 지수가 말했다.
 “같이 가자.”
 나는 그렇게 생애 처음으로 ‘선생님’이 아닌 새로운 선택지를 갖게 됐다. 다른 것들이 전부다 무의미했기에 처음의 선택을 그대로 고수했다면, ‘문예창작과’는 지수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의미를 갖고 있었다.
 고민할 필요가 없는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선생님’이 정말로 되고 싶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으니까. 정말로 어찌되든 상관없는 일이었다면 차라리 지수와 함께 대학생활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적어도 무언가 이유다운 이유가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렇지만 나는 쉽사리 그러겠다고 말할 수가 없었다. 지수가 문예창작과에 갈 생각이라고 처음 말했을 때, 내 머릿속을 가득 채웠던 그 비참한 생각이 자꾸만 떠올랐다.
 ‘타인의 꿈을 지켜보고 있었을 뿐이다.
 생각 없이 목표로 삼았던 ‘선생님’이라는 직업은 이제 나 자신을 옭아매는 족쇄가 되었다. 너무 오랜 시간을 ‘선생님’이 되기 위해 살아왔다. 처음엔 무의미했던 일일지 몰라도, 지금에 와서는 그동안의 시간들이 가짜 의미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지고 싶지 않았다. 처음으로 세운 목표, 그걸 이루는 것으로 앞으로의 삶에서도, 내가 나 자신이 아닌 다른 무언가가 될 수 있을 거라고, 그렇게 확신을 갖고 싶었다.
 나는 소주잔을 비웠다. 그리고 술기운을 빌어 대답하려 했지만 입이 도무지 열리질 않았다.
 “꼭, 그렇게 얽매일 필요는 없잖아. 꿈같은 게 아니라도, 다른 무언가 네게 의미 있는 걸 찾으면 되잖아.”
 “…….”
 “내가 네게 그런 의미가 될 수 있으면 좋겠어.”
 지수는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불판에서는 고기가 지글거리고 있었고 모두가 유쾌한 얼굴로 서로의 술잔을 부딪치고 있었다. 그 왁자지껄한 공간속에서 우리는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처음으로 내게 관심을 갖고 다가왔던 지수. 대화를 나눴던 밤의 시간들. 무의미했던 시험점수가 꿈을 위한 한 발짝이라며 내게 용기를 준 말들. 어색하게 웃으며 내게 건네줬던 별모양 초콜릿.
 나는 억지로 웃었다. 내게 어울리지 않는 호탕한 웃음소리를 내며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끌 정도로 크게 웃었다. 사람들은 술 좀 집어넣더니 사람이 바뀌었다며 날 보며 웃었다. 지수도 그런 나를 보며 웃어주었다. 우리는 웃음소리를 안주삼아, 서로의 술잔을 채워주었다.
 그 이후의 기억은 검은 펜으로 덧그어 놓은 것처럼 여기저기 찢겨져있다. 그녀의 마지막 모습에 대한 기억이 웃는 얼굴이라는 걸 기뻐해야 할지, 진짜 마지막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을 슬퍼해야 할지, 나는 아직까지도 모르겠다.


 나는 교육 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다. 그러나 곧장 영장이 날아왔다. 언제 군대에 가는지는 내게 있어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언젠가는 가야하는 일이고, 찝찝함을 남겨놓은 채 대학에 다니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곧바로 군에 입대했다.
 군대는 겉으로는 복잡해보였지만, 시키는 일만 잘 한다면 아무 문제없이 생활할 수 있는 장소였다. 다른 사람들 속에 묻어나는 것, 시키는 대로 행동하는 것, 그런 건 초 중 고등학교를 다니며 배운 것이었다.
 보이는 환경의 변화에 놀라 어쩔 줄 모르는 신병들은, 사회에 있을 때와 너무나 다르다며 고충을 말하곤 했다. 그들은 마치 모두가 인생을 주체적으로 살아온 것처럼 말하곤 했다. 나는 그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내가 보아온 그 많은 사람들, 그들 중에서 조금이나마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던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그런데 군대의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이 주체적인 삶을 살아온 것처럼 행동했다. 그들이 정말로 그런 삶을 살았을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나는 그걸 믿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건 아무래도 좋은 일이었다.
 군 생활동안 나는 끊임없이 생각했다. 생각할 시간은 많았다. 모든 것들이 촉박하게 흘러갔지만 그 가운데서도 생각할 시간만큼은 차고 넘칠 만큼 주어졌다. 많은 게 제한됐지만 내가 생각하는 것마저 제한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많은 종류의 사람들이 있었다. 가진 사람. 찾는 사람. 얽매인 사람. 잃는 사람. 버린 사람. 포기한 사람. 도망친 사람. 잊은 사람. 기억해낸 사람. 나는 그들과 대화하지 않았다. 나는 말이 없었다. 오로지 생각하며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그들도 내게 말을 걸지 않았다. 딱히 그들이 내게 말을 걸어야할 필요는 없었다. 그들과 대화를 나눌 사람은 내가 아니더라도 많았다.
 나는 그들을 보며, 그 많은 사람들 중 한 명 정도는 즐거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지수와 함께했던 20살 무렵의 대화 같은.
 그러나 나는 그들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단지 포기할 수 없었을 뿐이고, 그동안 고개 돌려왔을 뿐일지도 몰랐다. 파워레인저와 악당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바로 그 순간. 어쩌면 나는 그 초등학교의 장래희망을 써내는 그 순간부터 포기한 걸지도 몰랐다. 그래서 그 순간이 뇌리에 박혀, 모든 대화들, 다리미와 tv의 영상, 어머니의 목소리, 그런 것들이 기억에 남아있는 것일지도 몰랐다.
 그런 생각이 든 후부터, 나는 그동안 느낄 수 없었던 모든 고통이 내게 다가오는 것만 같았다. 추위와 더위. 발바닥을 깎아내는 듯한 100km의 행군. 모기. 폭력.
 여름의 푹푹 찌는 볕에서도 나는 추위를 느꼈다. 혼자라는 감각은 살갗이 검게 익어가는 와중에도 영혼을 싸늘하게 만들었다. 나는 그 끔찍한 고독, 외로움, 슬픔을 이겨내기 위해 노력했지만 아무것도 그것들을 다시 내게서 밀어내지 못했다. 신에게 기도하는 그 순간에도 머리위에서 내려다보는 절대자의 시선을 느낄 수 있을 뿐이었다.
 ‘꼭, 그렇게 얽매일 필요는 없잖아. 꿈같은 게 아니라도, 다른 무언가 네게 의미 있는 걸 찾으면 되잖아.’
 ‘내가 네게 그런 의미가 될 수 있으면 좋겠어.’
 나는 물결치듯 마음을 흔들고 지나가는 지수의 목소리를, 조금씩 내면에 쌓았다. 어느덧 그 목소리들은 하나의 형상을 이루어 홀로 지수의 목소리를 냈다. 나는 사색에 잠기던 순간을 지나, 그 이후부터는 내면의 지수와 대화를 나누곤 했다.
 ‘도망친 거야?’
 언젠가 와야만 했기 때문에 왔을 뿐이야.
 ‘그게 반드시 지금이어야 할 필요는 없잖아.’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어.
 ‘그래서 그 잘난 머리로 결론을 내릴 수 있었던 거야?’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대화는 항상 이런 식으로 끝나곤 했다. 내면의 지수는 학원의 밤처럼 따스한 말을 건네주지 않았고, 나는 그 차가우리만치 냉정한 말들에 치여야만 했다. 그럼에도 나는 그 말들에서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음을 느꼈고, 그것을 위안삼아 군 생활을 끝까지 해낼 수 있었다.


 나는 대학에 복학했다. 등록금을 내고 한 번도 수업을 들어본 적이 없었으니 복학이라는 말은 조금 어폐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오리엔테이션에도 참석하지 않고, 나는 수업을 제외한 어떠한 종류의 친목활동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나는 군 생활의 21개월 동안 해답을 찾지 못한 채 다시 ‘선생님’이 되기 위해 노력했다.
 그렇게 3년을 공부했고, 그 시간동안 그 어떤 특별한 일도, 기억에 남는 일도 없었다. 누구도 다가오지 않았고, 내가 먼저 다가가는 일도 없었다. 나는 수업을 충실히 들었고, 도서실에서 자습을 했다. 그렇게 해서 높은 학점을 받았다. 그 긴 시간동안 내가 한 일의 모든 것이 고작 그것뿐이었다. 살아가는 모든 시간들이 움켜쥔 손가락 사이로 새어나가는 모래알 같았다. 나는 여전히 다림질 판의 옷과 재수학원의 밤에 얽매여 살아가고 있었다.

 학교를 다니고, 4학년 무렵 나간 교생실습에서 만난 초등학생들은 시끄러웠다. 나는 아이들을 조용히 시키고, 천천히 수업을 시작했다. 가르치는 내용은 아직 2학년인 아이들에게 맞춘 너무나 간단한 개념이었다. 듣고 있는 아이들조차 한심하게 여길 만큼. 대부분의 아이들은 선행학습을 하는 터라, 가르치는 일이 아무 의미 없는 것만 같았다.
 “이 주머니 안의 물건들을 이렇게 옮기면.”
 나는 순간 절망스러운 마음에 사로잡혀 손을 멈췄다. 홀로 울리던 목소리가 사라지자 교실 안은 적막해졌다. 선생님이 된다는 건 무의미한 일이었다. 아니, 나는 교사 자격증을 땄을 뿐이지, ‘선생님’이라는 존재가 될 수 있었던 건 아니었다. 그런 생각이 머리를 가득 채웠다.
 “……너희는, 나중에 뭐가 되고 싶니.”
 생각하고 한 말이 아니었다. 닫힌 입을 억지로 찢고 나오듯 새어나온 말이었다. 아무도 대답하지 않자 나는 다시 한 번 물었다. 분필을 내려놓고 교탁 앞에 섰다.
 “너희는 나중에 뭐가 되고 싶니.”
 눈치 보는 아이들 속에서 한 아이를 지목했다. 아이는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파일럿이 되고 싶어요.”
 나는 그 옆의 아이를 지목했고, 계속해서 그 옆의 아이로, 다음 아이로 넘어갔다.
 “가수가 되고 싶어요.”
 “건축가가 꿈이에요.”
 “아이언맨을 만들 거 에요.”
 “저는 스타워즈에 나오는 광선 검을 만들 거 에요.”
 “……공무원이요.”
 아이는 눈길을 피하며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그 아이에게 말했다
 “정말로 되고 싶은 게 뭐니.”
 “…….”
 나는 그 아이가 대답하길 잠자코 기다렸다. 아이는 입을 벙긋거리며 초조한 듯 주변을 살피다가 이윽고 말했다.
 “베트맨 시리즈에 나오는 조커 같은 멋진 악당이 되고 싶어요.……그렇지만 그런 건 불가능하잖아요.”
 아이는 조그맣게 속삭이듯 말끝을 덧붙였다. 나는 그게 가능하다고 말해 줄 수 없었다. 단지 멋진 악당이 될 수 있으면 좋겠구나 라고 말했다. 그러자 다른 아이가 물었다.
 “선생님은 뭐가 되고 싶었어요?”
 그러자 옆의 아이가 말했다.
 “바보야. 선생님이 되고 싶었겠지.”
 
 수업이 끝나고 나는 학교를 빠져나왔다. 길을 걸으며 앞으로의 삶에 대해서 생각했다. 너무 긴 시간을 한 방향만 바라보며 걸어갔다. 목적지에 도착했지만 그곳에 원하던 건 없었다. 어디로든 떠나야만 했지만 방향을 잃어버린 지금은 그 어디로도 움직일 수 없었다.
 현실의 피로감이 온 몸을 짓눌렀다. 나는 지수를 생각했다. 그 때 그녀를 따라갔더라면 뭔가 바뀌었을까? 만약 내게 다시 한 번 그날의 밤이, 서로의 술잔을 채워주던 그 밤이 찾아오고, 새로운 선택을 할 수 있게 된다면, 나는 그녀와 함께했을까?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었다. 지나간 일은 돌이킬 수 없다. 그렇기에 삶이었다. 살아간다는 건 계속되는 후회를 뒤에 남기고 돌아보지 않는 것이라고, 그렇게 생각하고 싶었다.
 그런데 그녀가 내 앞에 있었다. 기억속의 모습보다 조금 성숙해진 모습으로 긴 머리칼을 등 뒤로 내린 채였다. 그녀는 앞에서 걸어오다가 나와 동시에 멈춰 섰다. 다섯 걸음 정도 떨어진 거리였다. 그녀의 옆에는 그녀보다 조금 키가 큰 남자가 서있었다. 그녀가 말했다.
 “오랜만이네.”
 옆의 남자가 그녀에게 물었다.
 “누구?”
 그녀는 대답했다.
 “예전에 같은 재수학원에 다니던 사람.”
 그 말이 가슴 아팠다면 이기적인 걸까. 도대체 무슨 말로 소개해주길 원했던 걸까.
 그녀가 내게 말했다.
 “지금은 선생님이니?”
 “교생 실습을 하고 있어.”
 “역시 해냈구나.”
 “해내지 못했어.”
 나는 선생님이 되지 못했다. 그걸 너무 늦게야 알아 챈 것이 후회스러울 뿐이었다.
 “넌 옛날부터, 정말……나쁜 놈이야.”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옆에선 남자가 어쩔 줄 모르는 모습이 보였다.
 “……연락정도는 할 수 있었잖아. 그게 아니라면 적어도 안부정도는 알려줄 수 있었잖아.”
 나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울음을 터뜨렸다. 매를 맞은 아이처럼 서럽게 울었다. 나는 어른이 그렇게 울음을 터뜨리는 모습을 생전 처음으로 보았다.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하고, 도대체 무엇이 그녀를 이리도 슬프게 만들었는지 나는 알 수가 없었다. 그런 우리의 마지막 밤이, 그 술자리의 마지막 기억이, 자꾸만 가슴을 건드렸다.

 “……이렇게 말했어. 나는 내가 되고 싶다고, 그런데 모르겠다고, 그러니 기다려달라고, 반드시 찾아가겠다고.”
 훌쩍이는 지수를 다독이자, 지수는 내게 이렇게 말해줬다. 그러곤 종이를 꺼내 번호를 적으려다가, 자신의 핸드폰을 내밀더니 내게 말했다.
 “찍어.”
 나는 그 강압적인 태도에 눌려 내 번호를 찍었다. 그녀는 바로 내게 전화했다. 주머니 속에서 핸드폰이 울렸다. 그녀는 옆에선 남자와 함께 나를 지나치며 말했다.
 “연락 무시하면 죽을 줄 알아.”
 그리곤 말했다.
 “얘는 내 남동생이야.”
 그는 내게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하고는 그녀를 따라 걸어갔다. 나는 떠나는 그녀를 향해 작가가 됐는지 물어보았다.
 “궁금하면 찾아보던가.”
 나는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집으로 돌아갔다.



 인터넷에 지수의 이름을 검색해보니 책이 나왔다. ‘뉴클리어’라는 제목의 책은 핵전쟁 이후의 세계를 다룬 재난소설이라고 했다. 평점은 그럭저럭 괜찮았고, 베스트셀러까진 아니었지만 이름을 점점 알리는 중인 것 같았다.
 지수는 내게 다시 교생실습을 하라고 전화했다. 전화기 너머의 목소리가 날카로웠다.
 -이것저것 따지지 말고 그냥 해.-
 나는 그녀의 말을 무시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다시 교생실습을 나갔고, 그 뒤에 학교를 졸업하여 정식 교사가 되었다. 마음속에 ‘선생님’이 될 수 없었다는 생각은 여전했지만 어찌어찌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에 익숙해 질 수 있었다.
 초등학교 3학년 아이들은 말을 잘 안 들었다. 수업을 포기한 채 책상위에 엎드려 자는 아이도 있었고, 대놓고 교사에게 시비를 거는 아이들도 있었다. 나는 그런 아이들을 볼 때마다 물어보았다.
 “너는 뭐가 되고 싶니.”
 그러면 아이들은 누구도 당당하게 자신의 꿈을 밝히지 못했다. 나는 그런 애들이 나타날 때마다 말해주었다.
 “뭐든지 될 수 있어. 너희들한테는 그런 가능성이 숨어있단다.”
 좀 더 나이를 먹은 아이들이었다면 대놓고 비웃었을 말이었다.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 중에서도 콧방귀를 뀌는 아이들이 있었다. 그러나 나는 꼭 그렇게 말해줘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선생님’이 될 순 없었지만, 교사 자격증을 딴 사람에겐 그렇게 해야 할 의무가 있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어쩌면 나는, 누군가 내게 무엇이 되고 싶니 라는 질문이 아닌, 뭐든지 될 수 있다는 말을 해주길 바랐기 때문에,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하곤 했다. 나도 믿을 수 없는 말이지만, 그렇게 말해가면서 조금씩 믿음을 더해갈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했다. 뭔가 나아진 게 있다면, 아마도 그것이리라.

고동현(010-9311-7783, resetlife11@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