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 둘 하나

by 아이네아스 posted Jan 05,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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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 둘 하나


 

 

 

 

 

“이윤옥 씨?”

“네, 맞아요.”

“오늘은 은성이가 6살 때쯤의 얘기를 해볼까요?”

김 박사가 녹음기의 버튼을 눌렀다. 그들 사이에 걸린 주황빛 전등이 희미했다가 밝아지길 반복했다. 윤옥의 눈동자 위로 전등이 비쳤다. 그녀는 먼 기억을 되짚는 듯이 느리게 입을 열었다.

“은성이는 셈을 잘했어요. 마트에서 물건을 사오면 금방 뭐가 몇 개인지 딱딱 알아맞히곤 했었죠. 한 번은 누나랑 둘이 놀라고 장난감을 사온 적이 있었는데 누나 거랑 비교해서 세 보더니 자기 게 블록 하나가 더 적다고 하더라구요. 그 조그만 블록들 몇 십 개에서 금방 찾아내서 어찌나 놀랐는지.”

윤옥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마치 자장가를 읊는 것처럼 그녀의 목소리는 잔잔했다.

“그때 남편 박정태 씨는 어땠죠?”

박사가 물었다. 윤옥의 얼굴이 금세 어두워졌다.

“그이 얘기는 별로 하고 싶지 않아요.”

“하지만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치료가 불가능해요.”

윤옥이 긴 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테이블 위에 올려둔 마른 두 손을 겹쳤다. 불거진 뼈마디 사이로 주황색 조명이 내려앉았다.

“그이는 은정이가 7살 때, 그러니까 은성이가 4살 때부터 이상해졌어요. 자꾸 친구 보증을 서주곤 하더니 그게 잘못되어서 용역 깡패들이 집까지 찾아왔었어요. 빚은 점점 불어났고 나중에는 집조차도 경매로 잡혀 있어서 더 이상 담보로 걸 재산조차 없었죠. 차는 팔아버린 지 오래였구요. 그러자 그이는 고속버스를 타고 3시간이나 걸리는 도박판까지 자주 찾아가곤 했어요. 그이를 잡으러 온 경찰과 깡패들이 집안에서 만난 적도 있어요. 참 웃기죠.”

“범죄를 저지르는 남편을 말리진 않으셨나요?”

윤옥은 씁쓸하게 웃었다.

“그이는 그게 범죄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돈을 벌기 위한 마지막 수단, 금방이라도 잡을 수 있을 것 같은 붉고 네모난 패들. 말하자면 놀이 같은 거였죠. 만약 은성이가 좀 더 컸더라면 그이보다 더 잘했을 거예요.”

김 박사는 조용히 숨을 내쉬었다. 윤옥은 멍하니 아랫입술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윤옥 씨는 당시의 남편을 이해했었나요?”

“애들이 있었으니까요. 이해라기 보단, 이해해야만 했었죠. 내가 이해하지 못하면 은정이랑 은성이가 아빠를 뭐라고 생각하겠어요. 아무것도 없는 우리 가족에게 가족 간의 정마저 없애버리는 건 너무 끔찍했어요.”

합리화라는 건 무서운 일이었다. 김 박사는 그렇게 생각하며 서류를 넘겼다. 그녀의 온몸에 뿌리처럼 박혀 있는 깊은 멍 자국과 흉터자국이 선명하게 찍힌 사진 옆으로 의사의 소견이 적혀 있었다. 김 박사는 대충 글을 훑으며 생각에 잠긴 윤옥을 불렀다.

“어린아이들에게는 아빠가 자신들을 지켜주는 대상이 아니라는 걸 깨닫는 것보단 엄마가 무능력한 아빠에게 맞는다는 일이 더욱 상처가 되었을 텐데, 그렇게 생각하진 않았던가요?”

직설적인 말이었지만 윤옥은 고개를 갸웃했다. 벌써 며칠 째, 같은 얘기를 들어도 그녀는 처음 듣는다는 듯이 행동했다.

“애들 아빠가 저를 때렸나요? 아아, 그래요. 그랬던 것 같기도 해요. 하지만 어딜 때렸죠?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아요.”

“그럼 이 얘기는 넘어가도록 하죠.”

박사는 다음 장을 넘겼다. 윤옥의 남편인 박정태의 범죄 기록 증명서였다. 그녀가 말한 시기와 맞물리게도 1999년도와 2000년대 쯤 그는 경찰서를 자주 드나들었다. 공공기물 파손, 사기, 절도, 폭행과 같은 범죄는 물론이고 음주 운전으로 사람을 쳐 합의금만 2천, 도박과 마약으로 인해 8년 집행유예와 약물치료까지. 한 가정을 이끄는 사내로서 2, 3년 안에 저질렀다고 하기에는 다소 놀라운 기록이었다. 그의 바깥에서의 분노 심리는 집안으로까지 미쳤다. 어린 은성과 은정, 아내 윤옥은 그가 집에 돌아온 다음 날이면 온몸이 푸르죽죽해졌고 욱신거려 일어나질 못했다. 다행인 건 폭력을 행사한 아버지는 아침이 되면 부리나케 집을 나서곤 했다는 것이다. 여기까지가 사흘 전 윤옥이 한 얘기였다. 그래서인지 윤옥은 유난히 방문과 현관문이 열고 닫히는 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LSD를 복용한 게 2001년이군요. 어떻게 접하게 된 거죠?”

LSD. 학술적 용어로 ‘Lysergic acid diethy lamide’ 마약 중에서도 사이키델릭으로 분류되며 주로 환각 현상을 일으키는 약이었다. 윤옥은 고개를 들어 조명을 바라보았다. 파란 빛깔의 조명 주위로 박사의 목소리가 리듬처럼 흐르고 있었다.

“2001년…… 은성이가 7살 때. 초등학교 입학 전이라고 늦게까지 돈을 벌 때였어요. 성북동 집에서 5시부터 저녁 8시까지 일을 했었는데, 그때 사모님 방에 있었어요. 처음엔 뭔지 몰랐는데 진통 효과가 있다길래 머리가 아팠었는지 어쨌는지…… 물이랑 먹었었어요.”

“그게 시작이었군요.”

“신기한 약이었죠. 두통도 가라앉고 계속 욱신거리던 허리랑 다리도 씻은 듯이 낫고. 꼭 동화 속에 등장하는 만병통치약 같았다니까요.”

하지만 복용한 지 3일 만에 윤옥은 직장에서 잘렸다. 그녀에게는 내부 계단이 천 리나 되는 지옥 길처럼 보였고 가스레인지에서 나오는 불은 용암처럼 혀를 날름거렸으며 창문은 그녀의 모습을 비추며 끊임없이 비웃어댔다. 주인 가족들에게 차린 밥상은 자신의 신체 일부를 넣어 만든 것처럼 보여 그 앞에서 구역질을 하기도 했고 주인집 딸의 피아노 소리는 자신을 데리러 온 저승사자의 진혼곡처럼 들렸다. 결국 윤옥은 호화로운 궁전 같았던 집에서 쫓겨나고 언제 경매에 낙찰될지 모르는 자신의 집으로 돌아갔다. 품속에는 궁전의 대리석 한 조각을 떼 온 것처럼 소중하게 LSD 약통을 넣은 채였다.

“이상하다는 생각은 없었나요? 치료약이 일상생활을 불편하게 만들었는데.”

“이상하다는 게 뭐죠?”

“그러니까…… 늘 똑같았던 사물이나 풍경이 달라져 보인다는 겁니다. 정상적인 범위를 벗어난 것처럼.”

“그게 뭐가 이상한 거죠?”김 박사는 입을 다물었다. 천천히 깜빡거리던 눈이 흐리멍덩하게 변했다. 어느새 박사의 모습이 점점 녹아내려 테이블 위로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밀랍 위로 촛불을 켠 것처럼 푸른 불덩이가 박사의 머리 위로 일렁거렸다.

“오늘은 여기까지 할게요. 피곤하네요.”

“네, 그러는 게 좋겠네요. 수고하셨습니다, 이윤옥 씨.”

김 박사는 윤옥을 보내고 의자에 깊숙이 기대앉았다. 서류를 다시 훑어보는 그의 안색이 좋지 않았다. 테이블을 손톱으로 잘근잘근 긁던 그는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들어오세요.”

“아, 저 안녕하세요.”

들어온 사람은 방안을 조심스럽게 살펴보며 박사의 손짓에 따라 맞은편 의자에 앉았다. 눈을 굴리며 상황을 파악하던 그녀가 잘근잘근 입술을 깨물었다. 그녀를 지켜보던 박사는 다른 철에 묶인 서류를 앞에 놓았다.

“박은정 씨.”

“네.”

“오늘은 어떤 이야기를 해볼까요?”

은정은 박사의 얼굴을 먼저 살폈다. 주황색으로 물든 그의 얼굴은 여전히 편안해 보였다. 때문에 은정은 긴장했던 마음을 풀고 심호흡을 했다.

“제가 전에 어디까지 얘기했죠?”

“아버지 박정태 씨가 어머니를 물이 가득 담긴 욕조에 머리를 밀어 넣고 기절시킨 데까지 얘기했습니다.”

은정의 얼굴에 그늘이 들어섰다. 그 당시의 생각만 하면 아직도 심장이 거꾸로 솟아 튀어 나올 것 같았다. 박정태는 사람의 탈을 뒤집어 쓴 악마였다. 어떻게 자신의 아내를, 한 여자를 지저분해 보인다는 이유로 물에다 처박을 수 있을까.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엄마의 입에서 기포가 꼬르륵 꼬르륵 올라올 때마다 지켜보던 어린 은정이 대신 그 물속으로 가라앉는 것 같았다. 욕실로 뛰어 들어가 아버지를 밀쳤지만 돌아오는 건 샤워기의 투박한 머리통이었다.

“저는 그날도 은성이가 엄마 아빠를 보지 못하게 했어요. 귀를 막고, 눈을 막고…… 속삭였죠.”


괜찮아. 괜찮아 은성아. 우리 엄마 아빠 아니야. 너는 잠시 악몽을 꾸는 거야.


작게 중얼거리는 은정의 얼굴이 멍하니 풀렸다. 박사는 시선을 떼지 않고 그녀를 지켜보았다.

“그때 은정 씨가 몇 살이었죠?”

“초등학교 2학년인가 3학년…… 잘 모르겠어요. 늘 그랬듯이, 그날도 그런 거라서.”

“그렇다면 은성 씨는 아버지의 폭력에서 제외되었던 건가요?”

은정은 고개를 저었다. 그녀의 눈동자가 슬프게 가라앉았다. 입술을 달싹이던 그녀는 괴로운 기억을 토해냈다. 그때 어머니가 마신 죽음의 물이 아직 자신의 가슴에 고여 있었다. 시간이 지날 때마다 폐로 스며드는 부패한 물 때문에 은정은 계속 심호흡을 해야만 했다.

“술에 만취해서 들어올 때면 아버지는 은성이를 애타게 찾았어요. 그리고 저와 엄마를 마녀처럼 몰아세우곤 했죠. 집안에 있어서는 안 된다며 우리를 현관까지 몰고 가서 밟기도 했었죠. 엄마는 그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계속 웃기만 했었어요. 지금은 그 이유를 알았지만 당시에는 엄마가 죽을병에 걸린 줄로만 알았죠.”

“아버지는 어머니의 약물 사실을 몰랐습니까?”

“그건 제가 알 수가 없죠. 그 사람이 우리에 대해 알았던지 몰랐던지…….”

은정은 눈을 내리깔았다. 김 박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음 말을 재촉했다.

“아버지는 베란다에 숨어 있던 은성이를 잡아 우리 앞에 세웠어요. 그리고 말했죠. ‘사내 새끼라면 직접 계집애들을 다룰 줄 알아야 한다. 네 아빠가 한 것처럼, 말 안 듣는 년들을 조용히 만들어라.’ 하고. 그리고 은성이에게 야구 방망이를 쥐어주었어요.”

은정은 짧게 웃었다. 김 박사는 녹음기를 내려다보았다. 녹색 불빛이 들어온 녹음기는 계속해서 돌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8살 정도 된 애가 뭘 알겠어요. 아버지는 계속해서 은성이의 팔을 잡고 대신 야구 방망이를 휘둘렀고 은성이는 울기만 했죠. 나는 엄마가 맞지 않게 하고 싶었는데 키가 안 되더라구요. 엄마가 머리를 맞으니까 그 해맑던 웃음소리가 더 이상 들리지 않았어요. 조용해졌죠. 그게 제 얼굴도 내려쳤을 때 누군가 현관문을 크게 두드려댔죠.”

매번 큰 소리 때문에 집으로 달려오는 건 항상 옆집 201호였다. 가장의 폭력은 이미 그 건물에서도 유명했다. 하지만 직접 나서서 도와주는 사람은 그들뿐이었다. 은정은 더 이상 기억하지 못했지만 당시 201호 주인의 진술에 따르면, 박정태 씨는 태연하게 문을 열어주고는 경찰에 신고하든지 말든지 마음대로 하라며 나가버렸다고 했다. 그는 119를 불러 윤옥과 은정을 병원에 보냈고 은성을 자기 집에 데려다 놓았다. 그 사건 이후 정태는 일주일 간 집에 돌아오지 않았었다.

“그러다 제가 11살 때였나 12살 때였나…… 건물에서 아줌마들이 하는 말을 들었어요. 경찰에 신고하면 아버지가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다구요.”

김 박사는 가만히 은정의 말을 듣고 있었다. 새벽이 되자 문을 거칠게 열고 들어온 아버지는 분노에 차서 어머니를 찾았다. 밤을 새며 기다리고 있던 은정은 집 전화기를 들고 그를 신고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코웃음을 쳤다. 은정은 그날도 그가 경찰서에서 돌아왔다는 걸 알 리가 없었다. 아버지는 은정의 머리채를 잡고 내동댕이쳤고 전화기 선을 싹둑 잘랐다. 과거를 말하는 은정의 눈앞에서 생명줄을 끊어내며 웃는 괴물의 이미지가 겹쳤다. 그녀는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말씀하기 힘드시면 그만 하셔도 됩니다.”

“아뇨, 얘기할게요. 그래야 은성이가 대신 기억해 내지 않아도 되니까…….”

은정은 무릎 위에 올려둔 두 주먹을 꽉 쥐었다.

삼단서랍장 모서리에 머리를 찍힌 은정은 돌덩이가 얼굴을 강타한 것 같은 고통을 느꼈다. 저절로 코에서 피가 터졌다. 눈앞이 매웠고 목에서는 끊임없이 기침이 터져 나왔다. 찍힌 부분이 축축해지더니 뒤통수가 뜨거워졌다. 아버지의 발이 은정의 머리를 짓눌렀다. 검은 양말이 코와 입을 들쑤시자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발길질 때문에 이가 하나 빠져 움푹 들어간 곳이 하나 더 생겼다. 은성이 울자 아버지는 폭력을 멈추고 집을 나섰다. 은성이 울면, 누나 은정이 할 일은 하나였다.


괜찮아, 괜찮아. 은성아. 누나는 아무렇지도 않아.


은성을 깊은 잠에 빠져들도록 토닥여주는 것. 그게 어린 날의 은정이 도와줄 수 있는 유일한 도피였다.

 

* * *

 

담배 연기가 깊숙이 폐를 휘젓고 나왔다. 옥상의 바람 위로 희뿌연 연기가 흩어졌다. 입술이 다물어졌다가 벌어질 때마다 불씨가 전등처럼 깜빡깜빡 거렸다. 정 경감은 담뱃재를 털었다. 검지 아래 딱딱한 굳은살 위로 담뱃재가 묻었다.

“어디, 수확은 있습니까?”

정 경감이 입을 열었다. 김 박사는 옥상 난간에 담뱃재를 비벼 껐다. 누르스름하게 변한 성분들이 짓이겨지며 온몸의 불을 꺼트렸다. 검은 잿더미 일부가 바람에 실려 가는 모습을 보며 김 박사가 한숨을 쉬었다.

“계속 엄마와 누나 쪽과 얘기중입니다.”

“그럼 아직 박은성 씨와는 얘기하지 못했습니까?”

경감이 김 박사 쪽을 바라보며 연기를 내뿜었다.

“예. 하지만 그의 어머니와 누나가 박은성 씨를 보호하고 있다는 건 알 수 있었습니다. 은성 씨에게 지난 기억을 묻는다는 것 자체를 꺼려하더군요. 아마 그들의 보호 아래, 은성 씨는 깊은 곳에서 잠을 자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정 경감은 말없이 담배를 들이마셨다 내쉬었다. 거의 10년째 그들 가족을 담당하다 보니 전혀 남 일 같진 않았다. 이번에도 살인죄를 바로 적용하면 될 걸 진상을 더욱 파헤치겠다고 검찰에 박사의 상담을 요청한 것도 정 경감이었다.

“애 아버지가 정신 병원에 들어가고 나서 좀 잠잠해졌다 싶었더니만…….”

“결핍.”

“예?”

정 경감은 박사의 말에 그를 돌아보았다. 옥상 아래로 펼쳐진 서울 도심의 풍경 위로 먼 시선을 던진 박사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정 경감도 담배를 껐다. 김 박사가 말을 이었다.

“재미있지 않나요? 무언가에 부족함을 느끼는 사람들은 더욱 고립됩니다. 애정 결핍의 경우도 마찬가지죠. 흔한 학술 논문에 따르면 애정 결핍이 있는 아이들이 유달리 손톱을 많이 물어뜯는다거나 도벽이 심하다더군요. 부족함을 자신의 신체 일부를 떼어내며 안정감을 느끼거나 타인의 것을 빼앗아 허전함을 충족시키는 데에서 마음이 편안해지는 겁니다.”

정 경감은 옥상 밖으로 검지 두 마디 정도로 남은 길이의 담배를 던졌다. 김 박사는 고개를 꺾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남편에 대한 결핍, 아버지에 대한 결핍은 가족애로 이어졌지만 그들은 결국 모이질 못했습니다. 자신을 어떤 식으로든 파괴해야만 질서가 유지되는 이상한 공동체죠.”

정 경감은 박사의 말에 짧게 웃었다.

“다 그런 것 아니겠습니다.”

그는 뭉친 어깨를 주먹으로 두들겼다. 김 박사도 길게 숨을 내뱉으며 기지개를 켰다. 옥상 문을 열며 정 경감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래도 그것 참 신기한 일입니다. 죽은 이윤옥 씨와 박은정 두 사람과 아무렇지도 않게 얘기를 할 수 있다니.”

 

* * *

 

“은정이가 열다섯 살 때 가출을 했었어요. 저는 그때 병원에 있었고 애 아빠는 은정이를 찾으러 다닐 생각도 안 했죠. 전 이해해요. 은정이가 그랬던 이유를. 걱정되는 건 은성이였죠. 도망간 누나 대신 그이에게 더 맞는 건 은성이었으니까.”

오늘은 평소보다 윤옥의 기억이 또렷했다. 윤옥은 당시 환각 증세가 심각해 외가를 통해 병원에 입원 중이었다. 다행히 정태는 병원까지 찾아오지 않았지만 종종 연락이 오긴 했었다. 전화를 받을 때마다 부모님과 형제자매들에게 돈을 꿔 달라는 얘기가 전부였다. 차라리 경찰에 잡혀 있다고 할 때가 더 마음이 놓였다. 한 집안의 가장이 국가에서 만든 감옥에 갇힐 때면 집은 조용해졌다. 가출을 했지만 은정은 자주 병원에 찾아왔다.

“그리고 고등학교에 들어갈 때 다시 집으로 들어왔구요.”

“네. 중학교까지는 공교육이라고 해도 고등학교는 가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그때 은정이를 설득하지만 않았더라도 지금쯤 잘 살았을 텐데……. 얌전하고 똑부러지는 애라 어른들이 좋아하던 애였거든요. 착한 남자 만나서 좋은 데로 시집갔으면 했는데.”

갑자기 윤옥은 울기 시작했다. 눈물이 뚝뚝 흐르자 뼈만 남은 손이 흐늘거리는 것처럼 보였다. 윤옥은 자기가 울 때마다 눈물방울이 너무 커서 눈알이 아픈 거라고 생각했다.

김 박사는 서류를 넘겼다. 은성의 일기장 기록을 보면 정태가 폭행죄로 1년 동안 수감되어 있는 동안 집에는 은성 혼자였다. 엄마도 누나도 돌아오지 않는 차가운 방 안에서 은성은 매일 밤 이불을 껴안고 언제 아버지가 돌아올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떨었다. 현관 밖에서 묵직한 발자국 소리라도 들리면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고 침묵을 기다렸다. 벌레가 눈앞을 지나가도 소리조차 지를 수 없었다. 말소리라도 내면 어딘가에서 자고 있을 아버지가 깨어나 찾아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몇 번 반복하다 지쳐 잠들기를 반복했다.


엄마. 누나. 어디 있어? 나 무서워. 너무 아파. 학교도 가기 싫어. 자꾸 잠이 와. 엄마. 누나. 보고 싶어.


“은정이가 돌아오고 저는 통원치료만 받게 되었어요. 은정이는 고등학교에 가더니 대학에 가야겠다면서 공부에 매달렸죠. 원래부터 똑똑한 애였으니까 잘 될 거라고 믿었어요. 은정이네 담임선생님도 매년 그 애를 칭찬했고…… 독서실에서 돌아오고 아침 일찍 학교에 가면 우리와 마주칠 일도 별로 없었으니까요.”

“따님이 공부를 참 잘했었네요.”

김 박사에게 전달된 서류 중에는 은정의 학생기록부도 있었다. 윤옥의 말처럼 은정의 성적은 전체적으로 우수했다. 윤옥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네, 그쵸. 교대에 갔나 사범대에 갔나 그랬으니까.”

김 박사는 따라 웃어주었다. 기록상으로 박은정은 2010년, 고등학교 3학년 10월에 아버지께 구타를 당해 사망했다고 나와 있었다. 김 박사의 안경 너머로 안타까움이 번졌다. 윤옥은 테이블 위로 손가락을 빙글빙글 돌렸다. 작은 원을 계속해서 만들면 세상에 회오리가 가득 찬다고 했다.

많이 호전되었던 윤옥의 증세는 은정의 죽음 이후로 악화되었다. 다시 마약을 복용하다 더 이상 일상생활이 불가능해져 2년 간 입원하여 약물 치료를 받았었다. 치료를 맡은 정신과 의사와 마약 전담 치료사의 소견으로는 당시 이윤옥의 정신은 절대 온전치 못했다. 기억의 왜곡이 심했고 사람의 목소리조차 제대로 구별하지 못했었다. 박사는 손을 뻗어 윤옥의 손을 잡았다. 박사와 비슷한 크기의 손이었다. 김 박사는 따뜻하게 웃으며 윤옥의 손을 어루만졌다.

“말해 봐요, 윤옥 씨. 당신은 왜 자살을 선택했죠?”

 

* * *

 

“너 가끔 이상한 거 알아?”

뭘, 하고 은성이 무뚝뚝하게 답했다. 지혜는 이불을 끌어당기며 은성의 등에 머리를 기댔다. 아직 이불 안에 열기가 남아 있었다. 지혜는 은성의 팔을 손으로 꾹꾹 누르며 장난을 쳤다. 은성은 피곤한 눈을 감고 잠을 청하고 있었다.

“자꾸 혼잣말하잖아. 진짜 누가 있기라도 한 것처럼. 몇 번이나 깜짝 놀랐는지. 너 일부러 그러는 거지? 아님 진짜 뭐가 보이는 거야?”

은성이 눈을 떴다. 그가 진지한 얼굴로 몸을 돌렸다. 지혜가 눈을 올려 은성을 올려다보았다. 화가 난 것도 같았다.

“내가 무슨 말을 했는데?”

“아, 아니…… 그냥 뭐. 아, 누나. 내가 이렇게 하지 말라고 했잖아…… 뭐 이런 말. 친누나한테 하는 것처럼 얘기하던데.”

지혜는 우물쭈물하며 대답했다. 가볍게 얘기한 건데 은성의 반응이 이런 식으로 나올지 몰랐다. 은성은 한참동안 지혜를 내려다보았다. 그리고는 입을 열었다.

“나 누나 있어. 세 살 차이.”

지혜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처음 듣는 얘기였다. 혼자 자취를 하거니와 한 번도 부모님이나 다른 가족들 얘기를 꺼낸 적도, 가족들과 밥을 먹는다는 얘기조차 꺼내지 않던 은성이었다. 지혜는 새로운 얘기를 듣게 된 것 같아 빙그레 웃었다.

“그래? 몇 살이신데?”

“열아홉.”

지혜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그녀는 더 이상 누워 있을 수가 없어 일어났다. 은성도 따라 일어났다. 지혜가 울먹이듯 말했다.

“……네가 지금 스물 한 살이잖아.”

그 말을 끝으로, 은성은 이성을 잃었다.

 

* * *

 

 

윤옥은 부서지고 있었다. 그녀가 말하는 회오리들에 온몸이 찢겨나가면서도 윤옥은 웃었다. 그녀의 손에 채워진 수갑이 그녀를 바람에 휩쓸려 날아오르지 못하도록 했다. 김 박사는 가만히 윤옥을 지켜보았다. 그녀는 고개를 양쪽으로 지나치게 꺾으며 김 박사를 따라서 관찰했다. 김 박사가 다시 차분하게 물었다.

“이윤옥 씨, 당신은 왜 자살했죠?”

취조실이 떠나가라 웃던 윤옥은 한참 후에야 웃음을 멈췄다. 그녀는 다시 울기 시작했다. 김 박사는 그 와중에도 윤옥의 손을 놓지 않았다. 잠잠해진 윤옥이 고개를 푹 떨궜다. 눈물이 그녀의 무릎 위로 뚝뚝 떨어졌다.

“제가 죽었었군요.”

“은정 씨가 죽고 난 뒤 약 2년 뒤인 2013년 7월, 우울증이 심해진 당신은 약물 과다 복용으로 자살했습니다. 박정태 씨는 은정 씨를 죽인 후 곧바로 수감되었구요.”

윤옥은 아무 반응이 없었다. 다시 고개를 든 그녀의 얼굴은 말라 있었다. 윤옥은 천천히 취조실의 내부를 살폈다. 퀴퀴한 공기가 윤옥의 얼굴에 달라붙었다.

“여긴 어디죠?”

“말해 봐요. 지금 박은성 씨는 어디 있죠?”

천장과 벽을 더듬던 시선이 김 박사에게 향했다. 윤옥의 눈동자에는 더 이상 생기라곤 없었다. 그녀가 눈썹을 올렸다 내렸다.

“우리 은성이요? 아아, 지금이 몇 시죠?”

“오후 1시쯤입니다.”

윤옥은 피식 웃었다. 그녀는 고개를 몇 번 주억거렸다.

“그럼 지금 자고 있을 거예요. 우리 은성이가 아침잠이 많거든요.”

김 박사는 윤옥의 손을 놓았다. 윤옥은 더 이상 원을 그리지 않았다.

“이윤옥 씨. 당신 머릿속의 은성 씨는 지금 몇 살이죠?”

“아홉 살 쯤 되었으려나…….”

김 박사는 녹음기를 껐다. 2013년의 이야기 이후로 더 이상 은정은 나타나지 않았다.

윤옥을 내보내고 박사는 녹음기를 틀었다. 맞은편에 앉은 정 경감도 심각한 얼굴로 녹음된 내용을 듣고 있었다. 시시각각 목소리나 감정, 말하는 습관은 바뀌었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전부 남자 목소리였다.

정 경감이 기가 막힌다는 얼굴을 했다.

“귀신이라도 씌지 않고서야…….”

“드문 경우이긴 하죠. 하지만 녹음된 건 진실입니다. 전부 박은성 씨의 목소리입니다.”

김 박사는 까다롭다는 얼굴을 했다. 무거운 얼굴의 박사를 보며 정 경감이 물었다.

“그렇다면 박정태와 안지혜를 죽인 범인은 누구죠?”

김 박사는 녹음기를 만지작거렸다. 빨간 불이 들어온 두툼한 녹음기가 한 손에 들어왔다. 그는 마이크 부분을 어루만지며 중얼거렸다.

“다른 사람일 수도, 어쩌면 같은 사람일 수도 있겠죠.”

“박정태는 이해가 되도 도대체 안지혜는 왜 죽인 걸까요? 박은성의 여자친구였는데.”

정 경감은 답답함에 와이셔츠의 단추를 하나 풀었다. 아무리 서류를 뒤져 봐도 죽은 사람의 심정까지 알 수는 없었다. 이런 특이한 경우가 아니라면.

생각에 잠겨 있던 김 박사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다중인격 환자의 경우 자신들의 인격을 보호하려는 특성이 있습니다. 혹여 안지혜가 그 사실을 알아차렸고, 그래서 죽인 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보호하려 했다면 안지혜를 죽이고 난 다음 차를 훔쳐 병원까지 가서 입원해 있던 박정태까지 죽인 행동은 설명이 되지 않습니다. 게다가 박은성은 자수까지 했습니다.”

“박은성 씨는 운전을 할 줄 모릅니다.”

경감의 얼굴이 바싹 굳었다. 박은성에겐 운전면허가 없었다. 주변 사람에게서 아버지의 대한 기억으로 차를 무서워했다는 진술을 받았던 일이 떠올랐다. 김 박사는 경감에게서 서류를 가져왔다.

“아마도 박정태 씨를 죽인 범인은 엄마인 이윤옥 씨일 것 같군요.”

 

* * *

 

“우릴 내버려둬요.”

차분하고도 경계심 있는 목소리였다. 간혹 터뜨리는 기침 소리가 취조실에 튕겨 돌아다녔다. 김 박사는 그를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박은정 씨. 동생은 지금 어디 있죠?”

은정이 눈에 핏발을 세웠다. 실핏줄이 터져 붉어진 눈이 김 박사를 무섭게 노려보았다. 은정이 이를 갈며 악에 받친 목소리를 내뱉었다.

“당신이 우리 엄마를 죽였어.”

전등이 깜빡깜빡 흔들렸다.

“내 동생까지는 못 죽이게 할 거야. 절대 안 내보내. 죽더라도 내가 죽을 거야.”

은정은 수갑에 묶인 두 손을 테이블에 내려찧었다. 금세 긁힌 손등과 손목에서 핏방울이 맺혀 떨어졌다. 은정의 눈에서 피가 섞인 눈물이 흘러내렸다. 김 박사는 안경을 벗었다. 그의 얼굴 위로 더욱 굴곡진 빛이 떨어졌다.

“당신은 이미 죽었습니다. 잔인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박은성 씨가 나오지 않는다면 더 이상 제가 협조해 드릴 수가 없습니다. 당신의 동생은 이미 두 명의 사람을 죽였습니다. 평생 감옥에서 썩고 가족과 연인을 죽인 범죄자로 낙인 찍혀 생을 마감하겠죠. 그래도 좋습니까?”

김 박사는 강경했다. 은정이 일으키는 소란에 밖에서 지켜보던 정 경감도 안으로 들어왔다. 의자에 앉아 펄쩍 펄쩍 뛰던 은정이 일순 잠잠해졌다.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흔들었다. 그녀의 입에서 침이 뚝뚝 떨어졌다. 마치 옹알이를 하는 것처럼 불명확한 발음을 내뱉던 은정은 고개를 떨어뜨렸다. 그녀의 어깨가 바들바들 떨렸다. 은정은 울기 시작했다. 흐느끼며 알 수 없는 소리를 중얼거리던 그녀가 갑자기 정지화면처럼 뚝 멈췄다. 그러더니 빠르게 중얼대기 시작했다.

그이는 내가 죽였어. 애들 건들지 마. 아니에요. 엄마가 한 게 아니에요. 모두 우리 은성이를 위해서. 은성이는 자고 있잖아. 우리가 은성이를 재웠잖아. 하지만 깨우면 안 돼. 왜? 다쳐. 다쳐. 전부 죽을 거야. 소리가 들려. 발소리야. 그놈이야. 그놈이 누구지? 우리를 이렇게 만든 놈. 하지만 그놈은 내가 죽였어. 아냐 나도 죽였어. 내가 죽인 거야.

“저게 뭐죠?”

정 경감이 넋이 나간 얼굴로 눈앞의 광경을 바라보았다. 김 박사는 차분히 호흡하려 애쓰며 침을 삼켰다. 혼자서 울었다가 웃었다가 소리를 지르며 대화를 하는 모습은 기괴했다. 전부 박은성의 목소리였지만 어느 것 하나 진짜 박은성이 아니었다. 김 박사는 날카로운 눈으로 녹음기를 손에 꼭 쥔 채 누구의 말인지 구분하고 있었다. 두 사람 다 울기 시작하자 박사가 물었다.

“박정태 씨를 죽인 사람이 이윤옥 씨가 맞습니까?”

“네, 맞아요. 제가 그랬어요.”

정 경감은 놀라 급하게 메모지를 꺼냈다. 윤옥은 순순히 인정했다. 박사는 한숨을 쉬며 의자를 한 발짝 당겨 앉았다.

“안지혜 씨도 죽였습니까?”

“그게 누구죠?”

윤옥이 고개를 들었다. 눈물로 퉁퉁 부어 오른 혈관이 도드라졌다. 김 박사는 질문을 바꿨다.

“그렇다면 이은정 씨께 물어보겠습니다. 안지혜 씨를 왜 죽였죠?”

그녀에게서는 대답이 없었다. 김 박사는 침묵을 지켰다. 정 경감은 적막이 오싹하게 느껴져 팔뚝을 쓸었다. 김 박사를 빤히 바라보던 그가 입술을 움직였다. 다시 차분하고 느려진 목소리였다.

“은성이가 우리의 존재를 알게 만들었으니까요.”

박은정은 그 말만 내뱉고 사라졌다. 이윤옥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박은성의 몸은 영원한 침묵 속에 눈을 감았다. 그들과 함께 박은성 또한 더 이상 깨어나지 않았다. 취조실의 전등만이 규칙적으로 깜빡거렸다.

 

* * *

 

“그러니까 정리하자면, 박정태를 죽인 사람은 이윤옥, 안지혜를 죽인 사람은 박은정이라는 거군요.”

“굳이 나누자면 그렇겠죠.”

담배 연기가 겹쳐졌다. 김 박사는 꽤나 길게 숨을 내뱉었다. 그의 안경이 담배 연기와 같은 색깔로 물들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세 사람이 죽었습니다. 박은성 씨까지 포함해서.”

김 박사는 쓴 얼굴로 웃었다. 그는 안경닦이로 안경을 닦고 다시 썼다. 세상이 좀 더 깨끗하게 보였다. 정 경감은 김 박사가 그랬던 것처럼 서울의 풍경에 시선을 던졌다. 담배의 마약 성분을 깊게 들이마신 김 박사는 연기가 둥글게 바람을 타고 돌아간다고 생각했다. 김 박사는 조용한 어조로 중얼거렸다.

“엄마는 남편을 죽이고, 누나는 연인을 죽이고.”

김 박사는 옥상 난간에 담배를 비벼 껐다. 저항 없이 필터가 뭉개지며 잿더미를 토해냈다.

“박은성 씨 본인은 자신을 죽였죠.”

 

 

 

(200*74.8)



 

 

 

 김윤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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