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9차 창작콘테스트 단편소설부문 <우진의 하루>

by 이예니 posted Apr 27,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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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진의 하루는 그렇게 흘러갔다. 이다지도 느리게.

햇빛이 잘 들지 않는, 불투명한 창 바로 아래 먼지 투성이 책상에 앉아 생각하는 것이다.

멍하니 그리고 오도카니.

누군가 거대하고 육중한 손가락으로 자신의 존재를 압살시켜 버렸으면 하고. 

후 내쉬는 한숨처럼 사라질 더 없이 가벼운 존재로 

자신을 진화시킬 바로 그 누군가를 애타게 찾다가 

다시 머릿속이 부옇게 멍해지고 정적. 


사실 우진은 미동도 없이 앉아있었다.

표면적으로 그의 존재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흘러가버린 지난 몇 십분의 우진의 자취와 꼭 들어맞아 있었다. 


아니 사실 우진의 하루는 

노란 털 짐승이 살이 하얗게 인 복숭아 뼈 근처에 

털을 부빌 때면 으레 요란한 인식의 소리와 함께 깨어나곤 했다. 

따뜻한 짐승의 체온이 사실 그가 거대하고 차가운 우주 속에 버려진 

저온 외계 생물이 아니라는 사실을 일깨워주곤 했다.

망상은 재밌어서 깨어나면 아쉬움이 눈 길 위 발자국처럼 남지만, 

망상은 그 자체일 때 즐거운 법임을 그는 나름 알고 있었다. 


주린 배를 위해 생존형 호감을 표하는 노란 털 짐승의 니즈를 충족시켜준 후 

그는 다시 책상에 앉는다. 

몸은 부웅 떠서 우주로 빨려 들어간다. 대기권과 성층권을 벗어나는 빨간 헬륨 풍선처럼 

날아오르지만 의지력 약한 풍선과 다르게 그는 우주를 향해 날아간다. 

어느새 위잉 하는 기계음 소리가 귓가를 맴도니 바로 인공위성. 

그는 어느새 외계 저온 생물체다. 

긴 팔다리를 (사실 팔과 다리의 구별이 없는) 휘적이다 불타오르는 별똥별을 밖고 

낙하한다. 아래로 그리고 다시 아래로.


눈을 떠보니 한참 시간이 지난 먼지 투성이 책상 앞, 

불투명한 유리 창문 그 앞에 앉아있다.

창을 통해 보이는 부연 세상처럼 자신의 존재도 점점 흐릿해졌으면 하고 바란다.

우진은 밥 때를 두번이나 흘려 보냈어도 한 톨의 굶주림 조차 없다. 

노란 짐승의 털이 눈 앞에서 부유하고 그것의 까끌한 혀가 다리에 닿는다. 

다시 배가 주린 모양이다.


햇빛은 어느새 다른 모양새로 우진의 먼지 쌓인 책상을 비춘다.

갑자기 똑딱 시계 소리가 쟁쟁히 커져 그의 좁은 방을 채운다. 

똑딱 지금은 증발할 시간! 

인어는 공주였는데 몸의 97%인 물이 그녀의 분노로 

새하얗게 수증기로 화하여 그만 증발해버렸을거야. 

가만 눈을 감고 답답한 그녀의 마음의 육신에서 벗어나 

다시 우진으로, 그리고 다시 저온 우주 생명체로 돌아온다. 

그대로 얼마간 정적과 암전. 


시린 기계음에 그는 다시 우진이다. 

투덜대며 아마 저온 우주 생물체는 없을 덮수룩한 갈빛 머리털을 

짜증스레 벅벅 긁고 드디어 일어선다.

떫은 숨을 쉬며 짧은 한 날 방학은 끝났다. 

우진은 빚이 있기에 다시 저온 우주 생물체가 되지 못하고 

양복쟁이 우진으로 가라앉는다. 

대신 저온의 현관 문고리를 만지며 뒤를 돌아본다.

그의 먼지 투성이 우주 선창작에 노란 털 까끌한 혀 고양이가 앉아 

다녀오라 눈을 깜빡인다. 그의 주린 배를 위하여.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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