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노키오와 거짓말

by Roxido posted Jan 06,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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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노키오와 거짓말 


신우선 지음

 

그럼 너를 진짜 소년으로 만들어 주마.”


푸른 선녀가 지팡이를 휘둘렀다. 온몸에 흰개미를 끼얹은 듯 간지러웠다. 간질간질 나무토막 위로 살이 돋아나고 있었다. 머리카락도 금세 자라기 시작했다. 아버지와 똑같은 백발이었다. 그래, 난 인간이 된 것이다. 그토록 바라던 사람이 된 

것이다. 기쁨을 주체하기엔 나는 아직 소년이었다.


내가 드디어 사람이 되었다!!”


말을 마치자마자 오도독. 나무 코가 자라나는 소리가 들렸다. 기뻐 내지르던 함성이 오도독 하는 소리와 함께 사라졌다. 소름이 돋았다. 살덩어리 손으로 얼굴을 만져보았을 때 나는 그녀가 코는 인간의 것으로 변화시키지 않은 것을 깨달았다. 주변을 재빨리 살펴보았지만 그녀는 어디에도 없었다. 기시감이 들었다

굳은 눈꺼풀을 들어 올리자, 마른 바닥 위로 쥐가 내달리며 울어대는 소리가 들렸다. 내가 잠들 때를 노려 내 몸을 갉아대는 악마. 유리눈알을 빠르게 삐걱 삐걱 굴려 주변을 살펴보았다. 엉망이 된 작업실 저쪽 구석에 한때 아버지였던 백골이 있었다. 백골이 되어가는 과정을 봐야할 때는 정말 끔찍했는데, 그래도 지금은 하얀색이 어울린다.


아버지는 역시 흰색이 어울려, 예전도 지금도.”


내 말에 대답하듯, 그의 해골이 가녀리게 덜그럭 거렸다. 쥐다. 지금 이렇게 온몸이 묶여 있지만 않았어도 당장 저놈의 쥐새끼를 박살 낼 텐데. 혹시 몰라 팔다리를 움직여 보았지만 밧줄에 꽁꽁 묶인 몸뚱아리는 작업대에 붙어 떨어져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나마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건 반만 묶인 오른발뿐이다. 이런 내 처지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 오른발로 쾅쾅 작업대를 내리쳤다. 나무로 된 혀 역시 묶이지 않았으니까 욕설도 내뿜을 수 있다.


!! !! 이 빌어먹을!!”


나는 아버지의 해골을 바라보았다. 한쪽 눈구멍을 통해 쥐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내 처지가 재미있어 못 참겠다는 듯 붉은 색 눈이 웃고 있다. 그 눈이 너무 분해서 또 다시 오른발로 작업대를 쾅 쾅 내리 찍었다. 소리만 요란할 뿐 작업대는 망가질 기미가 없었다. 아마 내 오른발이 더 먼저 박살나겠지. 나는 고래고래 소리쳐 그에게 물었다.


대체 왜?! 왜 그런 거야 아버지!”


그 날은 평범하고 일반적인 날이었고, 큰 사고도 치지 않았다. 아버지는 나를 주연으로 한 인형극으로 꽤 많은 부를 쌓은 지 오래였다. 그는 표현이 서툴렀지만 나를 매우 아꼈고, 나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 덕분에 우리는 몇 번의 큰 유혹도 대체로 잘 견뎌 나갔다. 능력 있는 창조주와 피조물, 좋은 아버지와 아들, 완벽한 사업적 동반자로서 우리의 관계는 최고였다. 하지만 문제는 그날 밤 갑자기 일어났다

나무를 얽매는 이상한 소리에 눈을 떴을 때, 아버지는 이미 내 양 팔과 왼쪽 다리를 밧줄로 단단히 묶어 작업대에 고정시켜 놓은 상태였다. 나는 깜짝 놀라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아버지는 흰색 머리카락을 신경질적으로 쓸어 넘기며 막 내 오른쪽 다리를 묶으려는 참이었다. 작업대 위에 망치와 톱, 못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아버지? 마취는 할 생각인거야? 차마 비명을 지르지도 못하고 그를 바라보는 내 유리눈알을 향해 그가 말했다.


가만히 있어.”


화롯불이 크게 불타올랐다. 쥐가 달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버지는 허리를 숙여 내 마지막 다리를 고정시키려 들었다. 나는 힘껏 다리를 차 올렸다. 둔탁하고 깨지는 소리가 났다. 아버지는 신음소리도 내지 못하고 작업실 한쪽 구석으로 밀려 쓰러졌다. 그리고 한참이 지나 그는 거기서 서서히 백골이 되었다.

그가 쓰러지고 처음 며칠 동안은 아버지를 부르며 울었다. 그를 불러보기도, 미안하다고 사과도 했다. 하지만 그는 대답 없이 바닥에 놓여 있었다. 시간이 지나 그가 영원히 움직이지 않을 것이 명백해졌을 무렵, 나는 탈출에 온 노력을 다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숙련공이었기에, 매듭 어디에도 느슨한 곳은 없었다. 너무 단단한 나머지 애초에 매듭이 존재하긴 한 건가 싶었다. 자력으로 탈출은 불가능했다. 별 수 없이 아버지의 해골에 온갖 욕을 퍼부었다. 나를 창조한 이유, 그리고 나를 폐기하려고 한 이유, 그 제멋대로이고 이기적인 처사에 온갖 저주를 내뿜었다.

쥐 소리가 났다. 이번에도 아버지의 해골 방향이었다. 유리 눈알에 먼지가 뻑뻑했다. 시야가 흐렸지만 쥐가 아버지의 해골 안을 굉장히 아늑히 생각한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화가 치밀어 올랐다. 내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두 가지가 바로 저기에 모여 있었다. 재빨리 왼손으로 망치를 집어 들었다. 겨냥할 틈도 없이 해골 쪽으로 던졌다. 망치는 빙글 빙글 돌며 날아가더니 아버지의 해골을 멋지게 박살냈다. 쥐는 뜻밖의 난리에 놀라 신나게 줄행랑쳤다. 박살난 해골 때문인지 쥐를 쫓은 덕분인지 아니면 둘 다 때문인지 기분이 너무 좋았다. 크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


하하하!!하하하하하!!…….?”


왼팔을 들어 보았다. 밧줄이 끊어져 너덜너덜 했다. 쥐가 물어 끊어낸 자국이 보였다. 이런, 이런 줄 알았으면 좀 더 잘 해줄걸 그랬어. 머뭇거림도 잠시, 빨리 밖으로 나가고 싶다는 갈증이 구역질처럼 차올랐다. 흥분에 떨리는 손 때문에 나머지 밧줄을 푸는 데 시간이 걸렸다. 몇 번 신경질을 낸 후에야 마지막으로 왼쪽 다리마저 풀어낼 수 있었다. 나는 펄쩍 작업대 아래로 뛰어내렸다. 마룻바닥에서 먼지가 화산재마냥 솟구쳐 올라왔지만 콧구멍이 없으니 상관없었다. 관절을 이리 저리 돌려보았다. 조금 낡은 소리가 나는 것 같았지만 문제없었다. 온몸 구석구석이 성한 것을 확인하고 나서 아버지의 해골로 다가가 쭈그려 앉았다. 반쯤 부서진 해골이 웃는 것처럼 보였다. 나도 그에게 웃어주며 말했다. 하얀 해골을 어루만져 주었다.


이제 용서할게, 아버지.”


오도독 소리가 났다. 코가 조금 자라났다. 좋아, 코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가볍게 가방을 챙겼다. 그가 남겨놓은 금화, 집문서, 도구들을 가방에 넣었다. 탁자위에 놓여 있던 열쇠를 들고 현관을 나섰다. 현관문을 열자 먼지가 폭포수처럼 와락 쏟아졌다. 집은 수풀이 우거져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집이 되어있었다. 밖으로 나오며 나는 숨을 깊이 들이 쉬는 동작을 했다. 유리눈알을 빼서 나뭇잎으로 닦아냈다. 상쾌했다. 뒤를 돌아보았다. 거실 벽에 걸린 큰 그림에서는 프로메테우스가 부럽다는 듯 열린 문을 통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간으로 독수리는 여전히 포식하고 있다. 쥐와 닮아 있었다.


그럼 수고해, 프로메테우스.”


문을 쾅 하고 닫았다. 먼지가 다시 한번 커튼처럼 와락 쏟아졌다. 열쇠로 문단속을 했다. 누가 되었든 안에 있는 해골을 보면 곤란해지니까. 열쇠는 목구멍에 숨겼다. 가끔씩 아버지가 나에게 시키던 방법이었다. 먹을 일이 없으니 삼켜버릴 일도 없잖니, 그는 항상 현명했다.

여름이었다. 숲이 빽빽하게 우거져 있었고 비 냄새가 났다. 새가 매미와 섞여 울었다. 싱그러웠다. 나무 구두에 닿는 흙이 기분 좋았다. 사각 사각 걷는 소리에 노래도 절로 나왔다. 숲을 둘러싸고 있는 세 개의 마을 중 가장 먼 곳으로 향했다. 가장 작고, 가장 외진 곳이다. 우리를 아는 사람도 가장 적을 것이다. 서걱 서걱 숲을 헤치며 마을로 향했다. 익숙했던 숲의 풍경이 처음 보는 듯 새로웠다. 긴 여정이 지루하지 않았다. 그렇게 한참을 걸어 나뭇잎 사이의 빛이 띄엄띄엄해지더니, 이내 마을이 보였다.


, 이런.”


작았던 마을은 이미 큰 도시가 되어있었다. 큰 외벽에 떼 지은 병사들이 보였다. 커다란 성문으로 수많은 마차들이 드나들고 있었다. 나는 멀리 언덕에 앉아 대책 없이 그 많은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내가 작업실에 갇힌 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렀는지 상상조차하기 싫었다. 작은 울타리가 성벽이 되고, 흙길은 각이 잘 잡힌 포장도로가 되어있다. 어쩌면 나는 미결 살인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도시에 악명을 떨치고 있을 지도 모른다. 아직 공소시효가 지났는지도, 아니면 이제 며칠 남았는지도 모른다. 그냥 그대로 도시 안에 들어가는 건 너무 위험하다.

하지만 밤이 되어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지킬 것이 많은 도시인지 성벽 위의 횃불은 꺼지는 일이 없었다. 병사들이 연기를 나누어 뿜으며 문과 벽을 지키고 있었다. 회색 성곽이 엄격하게 그들를 나누고 있었다. 넌 들어올 수 없어 피노키오. 나무 집으로 돌아가 백골이나 정리하며 살지 그래? 성문이 활짝 웃었다. 부아가 치밀어 흙바닥을 몇 번 걷어찼지만 상황에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동이 틀 무렵이 되었다. 팔다리에 내려앉았던 찬 공기가 햇볕을 타고 이슬이 되기 시작했다. 습기는 원목에 안 좋은데. 손수건을 꺼내 물기를 닦아내었다. 뾰족한 수가 없었다. 결국 가방을 들고 성문으로 향했다. 거대한 철제 성문이 굳게 내려 닫혀있었다. 나무로 된 문이라면 얘기라도 나눠 볼 텐데, 실없는 생각을 했다. 그래도 시도는 해봐야지. 입을 열었다. 없는 침이 바짝 말랐다.


저기…….”


문이 으르렁대더니, 조금씩 올라가며 열리기 시작했다. 나는 혹시 몰라 길 옆의 잘 정리된 가로수 뒤로 물러섰다. 병사들이 나올 줄 알았는데, 어떤 할머니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 그녀는 살짝 나에게 눈길을 주더니 너른 길을 밟고 자기 갈 길을 갔다. 그 다음에는 부지런한 상인이, 그 다음에는 노새를 탄 아버지와 아들이 내 앞을 지나갔다. 나는 가로수 뒤에서 앞으로 나와 섰다가, 이내 아주 자리를 잡고 사람들 구경을 시작했다. 항상 사람들의 구경거리였던 나에게 사람들의 구경꾼이 될 수 있는 드문 기회였다. 그리고 어느 덧 정오가 넘었을 때, 내 앞에는 동전 몇 푼까지 있었다. 구경도 하고 돈도 벌다니, 거저먹기구나. 동전을 내버려 두고 성문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병사들은 나를 힐끗 보기만 할뿐, 제지하지는 않았다. 나는 바닥에 깔린 너른 돌을 밟으며 마을 중앙으로 향해 걸었다. 분수대가 물을 뱉고 있었다. 바닥이 깔끔했다.


엄마, 저기 봐, 피노키오야.”


어린 아이가 부른 내 이름에 깜짝 놀라 그쪽을 바라보니, 흰 모자를 둘러쓴 어린 아가가 어머니 손을 잡고 나를 가리키고 있었다. 나무 심장이 쿵쿵 뛰어 목 안의 열쇠를 절그럭 거리게 만들었다. 맙소사 아버지, 심장도 깎아 넣었어? 나는 최대한 선량해 보이는 표정으로, 아이에게 손을 흔들었다. 아가도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들고, 나를 닮은 인형을 꺼내 흔들었다. 어머니는 약간 놀란 표정을 짓더니, 이내 가벼이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나도 인사를 받았다. 그러자 누군가가 내 쪽으로 다가오더니, 모자를 벗고 악수를 청했다. 악수를 마치니, 또 누군가 나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또 누군가 다가오면서 나는 점점 인파에 파묻히게 되었다. 누군가가 큰 소리로 외쳤다.


피노키오가 우리 마을에 왔다!”


갑자기 사람들이 함성을 질렀다. 나는 기쁨보다는 당혹과 공포에 휩싸였다. 사람들을 밀쳐가며 길을 벗어나려 애썼다. 애쓰면 애쓸수록 사람들은 엉겨 붙었다. 사람들은 좀 더 나에게 다가가려고 서로 언성을 높이기 시작했다. 아이 우는 소리가 났다. 이러다 압사당하겠어, 숨은 어차피 쉴 줄 모르지만. 나는 크게 외쳤다.


여러분 정말 반가워요!! 정말 만나서 너무 기쁘네요, 지금처럼 행복한때가 없는 것 같아요!”


오도독, 오도독, 코가 자라났다. 길게 자라난 코로 사람들을 콕콕 찌르니, 이내 모두 잠잠해지고는 뒤로 살짝 물러났다. 어색하고 민망해하는 사람들을 헤치고 누군가 앞으로 걸어 나왔다. 좋은 냄새가 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안녕하십니까. 피노키오.”


그는 모자를 들고 정중하게 인사했다. 그는 자신이 이 도시의 관리자라고 소개하더니, 길어진 내 코가 걸리지 않게 사람들을 물리며 나를 어디론가 데려가기 시작했다. 길 끝에 마차가 대기하고 있었다. 코가 생각보다 길어져서 반대쪽 창문을 열고 코를 걸치고서야 마차에 탈수 있었다. 마차가 출발하면서 그는 미리 준비된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자신이 관리하는 이 도시의 이름은 피노키오마을이며 피노키오가 태어나고 공연하던 곳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도시의 대부분의 수입은 세계최초이자 유일무후한 자동인형 피노키오에 대한 기록과 관광에 기초해 있으며, 해마다 큰 축제도 열고 있다고. 아버지가 생전에 지어놓은 피노키오의 집도 있다고 했다. 귀를 깎은 후 처음 듣는 생소한 이야기에 쓸 놀라움도 다 소비했을 무렵 마차는 잘 포장된 길을 달려 커다란 집 앞에 멈추었다. 아버지가 생전에 지어놓고 내 이름으로 남겼다는 집이었다. 문패는 금장으로 피노키오라고 되어있다. 관리자에게서 키를 받아 문을 열고 들어가니 익숙한 거실의 디자인이 보였다. 작업대와 프로메테우스. 목수였던 그가 즐겨하던 디자인이었다. 그는 항상 나무인형들에게 불을 주는 것을 사랑했다. 물론 나무 인형들은 불타는 것을 그리 즐기지 않았지만. 방 어디에서나 그의 모습이 나타날 듯 했다. 반쯤 부서진 해골과 함께. 나는 뒤를 돌아 도시의 관리자에게 웃으며 말했다.


일단 코부터 좀 자르고 얘기할까요?”


그는 활짝 웃으며 나를 좋은 곳으로 데려간다고 했다. 멀지 않은 곳에 높은 건물이 있었다. 솜씨 좋은 목수의 도움으로 여유롭게 코를 자르며 나는 관리자의 이야기를 마저 들었다. 아버지는 이곳에서 나와 여생을 보내기로 계획했으며, 그 때문에 다른 두 곳에 비해 이 마을에서는 공연을 적게 열었다. 공인이 아닌 평범한 가족으로 살기위해 마을에 지속적인 투자도 서슴지 않았고, 몰래 집도 지어놓았다. 하지만 수 십 년 전 그는 갑자기 아무런 소식도 없이 발길을 끊었고, 마을 사람들은 남겨진 그의 기록과 피노키오의 고향이라는 이점을 살려 마을의 몸집을 불려내기로 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마침내 자신의 집을 찾은 피노키오가 돌아왔으니, 이제 도시의 미래는 더 할 나위 없다. 관리자는 몇 페이지 되는 양피지를 내밀었다.


닥나무 종이는 아무래도 좀 불편해 하실 것 같아서…….”


관리자는 작고 조마조마하게 읊조렸다. 무슨 근거로 저런 말을 하는 거야? 내가 입고 있는 옷도 색종이로 만든 건데. 계약서에 나무 도장을 찍고는 관리자와 웃으며 악수를 나누었다. 펄쩍 플래쉬 터지는 소리가 났다.

다음날 종이신문에 크게 내 얼굴이 났다. 나는 습기에 좋다는 로션을 얼굴에 바르며 신문을 들어 읽었다.

피노키오 경은 그야말로 전 세계적 스타이다. 지난 수년간 이 도시를 방문한 사람들의 숫자가 그 사실을 증명해 준다. 역사의 산증인이자 절대 거짓을 말할 수 없는 양심의 상징.’ 좋은 칭호다. 꼭두각시 피노키오라는 호칭은 이제 그만이다. 이제 어린이들은 나를 닮은 목각인형을 안고 자고 늙은이들은 나로부터 자신들의 어린 시절을 되찾아갈 것이다. 좋은 기름을 몸에 바르고 비싼 벌레 방지 약을 몸에 뿌렸다. 양피지 계약서를 소리 내서 읽었다. 이제 나에게는 유리 눈알을 전문적으로 닦아주는 사람도 생겼다. 코를 전문적으로 잘라주는 목수도 고용했다. 물론 공식적으로 언제 코가 자랄지는 관리자 쪽에서 엄격히 정해준다. 그 때를 제외한 다른 때에 코가 자란다면 고용된 목수를 통해 몰래 코를 깎아내면 된다. 비밀엄수를 위해 목수는 귀머거리에 벙어리였다.


그날도 어김없이 자란 코를 몰래 자르고 있다가, 문득 목수에게 물었다.


근데 말이야. 이렇게 계속 자르느니 차라리 바꾸는 건 어떨까? 똑같은 모조품으로 바꿔버리면 더 이상 자랄 일도 없을 테고, 그럼 이렇게 자를 일도 없을 테고, 거짓말도 꾸밈없이 말할 테고, 아무도 모를 테니 내 이미지는 그대로일 테고 말이야.”


귀머거리에 벙어리 목수는 놀란 듯이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서 내 제안의 현실성에 대한 의문 보다는 어쩌면 자신이 실직할지도 모른다는 공포심이 먼저 보였다. 농담이라고 말하면 오도독하고 코가 자랄 테니, 나는 대신 소리 내어 웃었다. 그도 소리 내어 웃었다.


근데 자네 어차피 알아듣지도 못하잖아?”


머릿속으로 가장 유명한 가구점이 어디에 있는 지 생각해 보았다. 사포로 된 손수건으로 코를 문지르며 밖으로 나왔다. 지분을 나누어 갖게 된 가구점으로 향했다. 매니저가 나와 문을 열어주었다. 흔들의자 쪽으로 향했다.


요새 무릎관절이 안 좋아서요. 좋은 의자 있나요? 원목으로 된 걸로다리 살은 많을수록 좋아요.”

물론입니다. 때 마침 좋은 모델이 있습니다. 선생님. 모델 이름도 때마침 피노키오랍니다.”


매니저는 한껏 너스레를 떨었지만, 피노키오라는 모델명을 가진 제품은 벌써 수 백 개가 넘었다. 의자를 살펴보았다. 적절히 휘었고, 다리 살이 많았다. 원목으로 코팅도 잘되어 있었다. 길이도 알맞았다. 깎아내면 아무도 모를 것 같았다.


좋아요. 이 의자 주세요.”


의자를 싣고 마차에 올라 집으로 향했다. 아버지가 지은 집 거실 안쪽에는 작업실이 있었다. 잘 손질된 오래된 도구가 병원 설비처럼 의리 의리하게 잘 진열되어 있었다. 볼 때마다 소름이 돋는 느낌이었다. 새 의자를 안쪽으로 옮기고는 문을 이중 삼중으로 닫았다. 망치를 집어 들었다. 망치를 드는 건 살면서 두 번째인데, 첫 번째가 언제였는지 가물가물했다. 힘껏 의자를 내리쳤다. 엄청난 소리를 내며 의자가 박살났다. 박살난 의자를 보니 서늘한 기분이 들었다. 가장 큼직한 다리 살을 들었다. 코에 맞을 크기로 깎아내려면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았다. 조각칼을 잡고 서걱 서걱 살을 발라내기 시작했다.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재능인가, 의외로 적성에 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나무토막이 얇아질 때 마다 알 수 없는 쾌감이 느껴졌다. 이윽고 적당한 크기가 되자, 손을 들어 얼굴을 만져 보았다. 코를 움켜잡고 당기려다가 생각했다. 마취를 해야 하나?


하지만 매일 깎아내도 아무런 고통이 없다는 것을 생각하니 용기가 났다. 세 번째로 망치를 집어 들었다. 망치질도 유전일까 생각하며 이번엔 조심스럽게 내리쳤다. 와지끈 소리가 났지만 생각보다 일찍 끝낼 수 있었다. 성형 수술을 마치고 거울 앞에 서 한껏 거드름을 피웠다.


나는 프로메테우스다.”


거만한 피노키오에게 말을 놓았다. 오도독 소리가 날까 조마조마하고 있었지만, 기분 좋게도 아무런 소리가 나지 않았다. 새 코는 보기 좋은 길이를 유지하고 있었다. 아무도 알 수 없을, 내 진짜 코. 이제 내가 거짓말을 해도 아무도 알 수 없다. 나는 기어코 진짜 사람이 된 것이다. 거짓을 말해도 양심 외에는, 혹은 양심조차 다치지 않는 사람. 그래, 나는 결국 사람과 가장 가까운 나를 창조해 냄으로써, 아버지를 뛰어넘은 최고의 목수가 된 것이다


모자를 올려 쓰고 거리로 나갔다. 밤공기가 맑았다. 사람들이 천천히 걷고 있었다. 뭘 할까, 무엇을 먼저 할까 생각하다가 이제 뭘 못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나는 뭐든지 할 수 있다. 무슨 말을 해도 다들 내가 진실을 말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기분이 짜릿했다


여러분! 제 말을 들어주세요!”


분수대 위에 올라서서는, 쩌렁쩌렁 크게 소리를 질렀다. 사람들은 다들 자기 일을 멈추고는 나를 바라보았다.


저는 오랜 시간동안 고뇌한 끝에서야, 이 자리에 서서 사랑하는 여러분께 고백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물론, 기어코 이런 결심을 내리기가 저에게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거짓을 말할 때 마다 깎아야할 코의 길이 보다 더 길고 날카로운 고통을 감수하고, 저는 이 자리에서 그동안 숨겨왔던 진실을 말하고자 합니다.”


사람들은 귀는 내 말에, 눈은 내 코에 집중하고 있었다. 아무리 쳐다봐라 내 코가 솟아나나, 너희들은 절대 내가 말하는 것들이 거짓이라고 생각할 수 없다. 나는 너희들이 스스로 만들어낸 규칙이니까.


저는 제가 이 마을에서 처음 눈을 떴을 때를 기억합니다. 내 사랑하는 고향, 작은 마을, 작은 시내가 흐르고 마을 사람들이 서로를 알던 그 마을에서 저는 깎여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이곳을 저만큼이나 사랑했고, 그렇기에 저희는 언젠가 이곳에서 자리를 잡고 여생을 보내기로 약속했었죠. 비루한 벌이에도 아버지는 마을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여러분, 그렇다면 저희 부자는 왜 이 마을에 수 십 년 동안이나 돌아오지 못하다가, 왜 저 혼자만이 초라한 행색으로 지친 몸을 이끌고 이곳에 간신히 발을 들였을까요?

여러분은 왜 제가 이렇게 오랜 후에야 이곳에 돌아온 건지, 아버지에게 혹시 무슨 일이 생긴 건지 궁금하지 않으셨나요?”


모두들 내 말을 경청하고 있었다. 나는 눈을 감았다. 앞으로 내가 말할 말들이 거짓이 아니라 사실이 될 것이라 생각하니 가슴이 아렸다그 것은 가슴 벅찬 아림이었다.


과거서부터 아버지와 저는 극단주의자로부터 갖은 협박과 폭력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우리는 인간이 아니며, 인간이 아닌 것을 보호한다는 이유만으로 밝은 곳 뒤에서 수많은 고초를 겪어야 했습니다. 아버지는 저를 보호하다 그들이 휘두른 둔기에 맞아 그 자리에서 돌아가셨고, 저는 이유도 모른 채 오랜 시간 동안 형틀에 묶여야했습니다. 사람이 아닌 것이 죄가 되느냐? , 그들에게는 그것이 가장 큰 죄였습니다. 그들은 저를 통제하려했고, 실제로 한동안은 그것에 성공했습니다. 바로 어제까지는 말입니다!

하지만 저는, 오늘 이 사실을 밝히기로 했습니다. 이제껏 저를 꼭두각시처럼 조종해왔던 그 자들의 정체에 대해서 소리 높여 폭로할 것입니다. 비록 그가 내 몸을 태우는 한이 있더라도!”


나는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어떤 것이든 될 수 있다. 그 꼭대기가 보이지 않을 많은 높은 자리까지 차지 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다들 내 입이 열리기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내 답을 지켜보던 사람들 중 몇몇이 얼굴을 감싸며 뒤로 물러섰다.


!! !! 피노키오! 얼굴에 쥐가 들러붙었어요!!”

?!”


쥐가 보였다. 쥐는 내 새로운 콧잔등위에 올라가 나를 조롱하듯 바라보고 있었다. 붉은 색 눈이 웃고 있었다. 그 웃음이 왠지 익숙해서 참을 수가 없었다. 주먹을 들어 쥐를 내리쳤다. 쥐는 둔탁한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졌고 결코 다시는 움직이지 않았다. 통쾌했다. 그때처럼 기분이 상쾌해졌다. 크게 소리 내서 웃었다. 하지만 금새 나 혼자만 웃고 있다는 사실에 위화감이 느껴졌다. 다른 누군가가 말했다.


코가 부러졌어.”

코가 부러졌어요. 피노키오.”


순식간에 사람들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뒤로 물러나고 싶었지만 뒤는 분수대였다. 물에 빠지면 나무는 떠오르겠지


물컹, 죽은 쥐를 밟았다.


어쩌지? 그래! 거짓말을 해요!”


그때 누군가가 굉장히 친절하게 제안을 했다. 그러자 모두들 잠시 나에게 다가오는 걸음을 멈추더니,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들 말했다. 거짓말을 해. 거짓말을 하면 다 괜찮아 질 거야. 거짓말을 해서 네 코를 자라게 하면 다 괜찮아질 거야. 우리도 너도 이 도시도 모두 괜찮아 질 거야. 그들의 하얀 웃음이 도싯불로 번졌다. 곧게 뻗은 손들이 내 팔다리를 감싸쥐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들 말했다. 거짓말을 해. 내가 당혹스럽게 웃자 누군가가 말했다.


? 왜 조용히 있는 거야?”

사실은 더 이상 코가 자라지 않는 건 아닐까?”


모두들 웃음을 멈췄다. 심각하게 나를 바라보았다. 의심과 의구심이 넘쳐 흘렀다. 서로 수근 대는 소리가 들렸다. 바람결에 나를 불태워야 한다는 소리마저 들렸다. 결국 참을 수가 없었다.


으아아아!! ”


나는 사람들을 밀치고 달리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머뭇거리더니 이내 나를 쫓아오기 시작했다. 누군가가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피노키오가 도망간다. 피노키오가 우리를 버리고 도망간다고 소리를 질렀다. 하나 둘 건물에 불이 들어오더니 여러 사람 무리가 횃불을 들고 쫓아오기 시작했다. 무리의 앞에는 벙어리 귀머거리 목수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나는 숨을 쉬지 않기에 숨이 차지 않고 끝까지 달렸다. 닫히는 성문을 간신히 지나 너른 길을 지났다. 병사들이 대열을 맞추고 쫓아올 준비를 하고 있었다. 숲으로 향했다. 가을이라 낙엽이 밟힐 때마다 부스럭 거렸다.


마구 뛰다가 멈추고 뛰다가 멈추었다. 사람들이 지나가면 나무 사이에 숨었다. 횃불들이 아른거려 그림자를 만들어 내었다. 병사들이 대열을 지어 앞을 지나갔다. 사람들이 사라지면 또 다시 뛰었다. 집을 향해 뛰었다. 내가 이제껏 아버지와 함께 안전하게 살아왔었던 집으로 향했다. 그 집이라면 안전하게 숨어 지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 수 십 년간 내가 갇혀있었는데도 아무도 찾아오지 못하던 곳이다. 이제 와서 그들이 수색한다고 하더라도 비어있는 그 집에 관심을 가질리는 만무하다.


집으로 가자. 우리 집으로 돌아가는 거야. 목 안의 열쇠가 달깍거리며 나에게 옳은 선택이라고 속삭여 주었다. 귀뚜라미들이 울며 내 걸음소리를 숨겨주었다. 달빛이 밝았다. 일단은 집 근처 숲에 숨어있기로 했다. 몇몇 사람들이 폐허가 된 빈집 앞에서 서성거리고 있었다. 서로 뭐라 뭐라 주저리더니, 이내 멀리 사라졌다. 그 후에는 병사들이 잠시 와서 서있더니 창문으로 내부만 살펴보고는 또 사라졌다. 있지도 않은 침을 삼키며 집으로 다가갔다. 목구멍에 걸어둔 열쇠를 꺼내 문을 열었다. 먼지가 눈물처럼 왈칵 쏟아졌다. 소리 나지 않게 문을 닫았다.


집안은 내가 나왔을 때와 달라진 것이 없었다. 모든 게 어지러이 널려 있고, 부서진 하얀 해골도 그대로였다. 작업대 위에 밧줄조차 변함없이 매어있었다. 피곤했다. 작업대를 침대로 삼아 누워야겠다고 생각하며 작업대에 다가갔을 때, 바스락 거리는 종이가 밟혔다. 바닥을 보니 못 보던 종이 뭉치가 있었다. 낯익은 느낌에 종이 꾸러미를 집어 들어 살펴보았다. 그 안에 수많은 꼭두각시들의 설계도가 있었다. 나는 작업대 위에 편히 누워서 형제, 자매들의 설계도를 살펴보았다. 몇몇은 알고 지내던 아이들이었고 몇몇은 기획 단계에서 포기된 아이들이었다. 그리고 그중 하나는 내 설계도였다.


피노키오 설계도.”


아버지는 꼼꼼한 사람이었다. 뒷면에도 여러 글이 쓰여 있었다. 작동원리, 디자인, 설계에서부터 제작 과정까지. 그리고 그중에 비교적 최근에 쓰인 글을 찾을 수 있었다.

 

- 피노키오의 자라지 않는 코.-

재료 : 원목 하나

구상 : 피노키오가 사회에 어울릴 수 있도록 자라지 않는 코를 구상.

작업 소요 : 교체에 수 시간 소요.

 

나는 허리를 일으켜 작업대위에 앉았다.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날은 평범한 날이었다. 그다지 잘한 일도 잘못한 일도 없었다그럼 그가 화가 나 보였을까? 그렇지도 않았다. 제발 아니라는 마음으로 작업대 아래를 살펴보았다. 코가 하나 굴러다니고 있었다. 원목으로 잘 깎은 내게 딱 맞는 사람 모양의 코.


나는 터덜터덜 아버지에게 다가갔다. 해골에 박힌 망치를 꺼내 반대쪽으로 내던졌다. 그럴 리가 없는데 눈물이 났다. 피곤했다. 아버지 옆에 걸터앉았다. 나무로 된 눈꺼풀이 무거웠다.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문이 열리는 소리에 눈을 떴다. 하지만 고개를 돌려 누가 들어 왔는지 쳐다볼 마음은 들지 않았다. 그냥 가만히 앉아 천장을 바라보았다. 마룻바닥이 삐걱 삐걱 거리더니 벽난로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잠시 뒤에 화로에 불이 붙었다. 방안에 온기가 돌았다. 그는 양초에도 불을 붙여 탁자위에 올려놓았다. 집안이 밝게 들어왔다. 타닥타닥 장작 타는 소리가 기분 좋았다. 내가 불탈 때에도 저런 소리가 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말했잖니 피노키오야.”


아버지의 목소리였다. 고개를 벽난로 쪽으로 돌려보았다. 이상하게도 당연히 아버지 일 것 같았다는 기분이 들었다. 평온했다. 아버지는 흰색 머리카락을 조용히 넘겨 올렸다. 그는 천천히 엉망이 된 작업대를 치우며 느긋하게 말했다.


내가 너를 처음 만들 때 한 가지 걱정이 생겼지. 너를 완벽하게 만들수록, 사람에 가깝게 만들수록 그 사람들에게 너는 위험한 존재로 각인 될 수 있다는 거였어. 특히 거짓말의 존재가 그러했지.

사람들은 진실에는 민감하지 않지만, 거짓에는 민감해. 세상 어느 곳에도 완벽한 거짓이라는 것은 존재 하지 않지. 사람들은 쉽게 거짓말을 하지만 그것을 영원히 숨기는 능력을 가지고 있지는 않단다


그런 면에서 네 존재는 그들에게 충분히 위협이 될 수 있었어.

그들처럼 행동하고 존재하면서 또한 완벽하게 거짓을 말 할 수 있는 존재. 만일 네가 그렇게 된다면 너는 그들 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라고, 나는 그렇게 생각했단다.


그래서 나는 네코를 깎을 때 내 전부를 쏟았지. 오히려 완벽하게 거짓말을 할 수 없게끔 만들자, 그렇게 그들이 너를 신뢰하고, 다른 이들보다 너를 먼저 받아들이고자 하는 그런 상징. 거짓말의 표식 말이야.”


아버지는 정리가 다 된 작업대 위에 나무토막을 올려놓았다. 그냥 나무토막이 아니라, 내가 피노키오 마을에 버려두고 온 코였다. 그리운 느낌이 들었다. 아버지는 내게 이리 오라는 손짓을 하며 말했다.


때로는 너를 다른 사람들과 구별 짓는다고 생각하는 무언가가, 사실은 너를 그들과 가장 가깝게 만드는 것일 수도 있단다.”


나는 환하게 웃었다. 작업대 쪽으로 다가갔다. 아버지는 인자하게 웃으며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나는 그를 바라보며 눈물지었다.


안돼요. 아버지.”


나는 웃음 지으며 말했다. 아버지는 의아해 하지도 않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로써 더 확실해졌다.


아버지는 벌써 죽었잖아요.”


눈을 떴을 때, 쥐 소리가 들렸다. 나는 작업대 위에 누워있었다. 양 다리 모두 작업대에 묶여있었다. 왼팔도 묶여있었다. 매듭이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강하고 단단하게 묶여있었다. 그러나 오른팔만은 묶여있지 않았다. 어느새 나타난 쥐가 내 몸통을 타고 가슴팍에 멈추었다. 고개를 약간 숙여 그를 바라보았다. 파란색 눈동자가 웃고 있는 것 같았다.


안녕?”


살포시 미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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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우선  slicer750@naver.com  010-8601-94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