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으로 가려도 별은 항상 그자리에

by 문학소년티미 posted Jan 09,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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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으로 가려도 별은 항상 그 자리에


권현회


 은은한 달빛이 방바닥에 무겁게 내려앉았다. 나는 창문 밖을 내다보았다. 늦은 시간이 주는 세상의 침묵은 나를 더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다음 주에 보는 고등학교 2학년 마지막 기말고사 시험 따윈 내게 중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세상은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그리고 무기력함이 주는 공허함에 나는 또 다시 잠이 들었다.


 “일어나라 일어나! 따르르르르릉, 일어나라 일어나! 따르르르르릉.”


 시끄러운 알람 소리가 울려 퍼졌다.


 “매번 너무한다니까.”


 순전히 내 의도로 설정 해 놓은 알람소리가 모순적이게도 나를 괴롭히고 있었다. 스스로를 의도적으로 괴롭히고 있다는 아주 가학적이고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됐다.


 “한울아 일어나야지”

 “지금 일어났어요. 엄마.”


 나는 무거운 몸을 일으켜 세우고 이불을 갰다. 몸을 일으켜 세우기 전에는 잠이라는 달콤한 유혹에 역동성이 결여된 몸부림을 치지만 결국, 다시 잠에 빠져들기 일쑤다. 하지만 찰나의 정신력을 이용하여, 막상 몸을 일으켜 세우면 생각보다 견딜만했다. 엄청나게 힘들다고 생각했던 일도 막상 부딪혀 보면 생각보단 할 만한 게 세상의 이치 아닐까? 라고 생각 해 봤다. 하지만 다시 여느 때와 같이 똑같은 생활패턴이 시작되는 하루였다.


 “엄마, 아침밥 안 먹고 그냥 학교 갈게요.”

 “아침밥을 먹어야 힘이 나지, 점심시간까지 아무것도 안 먹게?”

 “학교 앞 슈퍼에서 뭐 하나 사 먹으면 돼요. 다녀오겠습니다.”


 집을 나서니 차가운 바람이 귓불을 스치고 지나가는 게 느껴진다. 여름엔 잊고 살았던 작은 바람이 겨울이 되니 차가운 기운을 담아, 내게 잊을 수 없게 만들어준다. 나는 여름이 돌아오면 작은 바람을 느껴보겠다고 순간 생각했다.

 나는 친구를 그리 많이 사귀는 편이 아니다. 그래서 학교를 갈 때나 집에 돌아올 때 보통 혼자 다니는 편이다. 나를 포함한 요즘 학생들은 보통 이어폰을 귀에 꽂고 다닌다.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나도 이어폰으로 음악을 듣는다. 아마 외로움 때문일 거라고 나는 생각했다.


 “야 이한울.”

 짧고 굵은 목소리가 내 이어폰 속을 관통했다.

 “어, 안녕? 한결이네.”

 “한결이네?? 너 할 말 없어서 그러는 거지. 내가 어색하냐”

 “아침부터 시비 걸 생각이라면 먼저 가. 나는 천천히 가도 되니까”

 “너 또 이어폰으로 노래듣지? 요즘 애들은 이어폰으로 영어듣기 공부 한다는데.”

 “그래. 참, 대단한 녀석들이다.”

 “하긴 너는 공부 잘 안 해서 모르겠지만 요즘 엄청 빡세다고!”


 한결이는 전교 10등 안에 드는 학생이다. 안경 쓰고 입이 튀어나온 한결이는 튀어나온 입과 비례해 말도 많다. 나는 내 교실인 2-13반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다시 같은 하루가 시작된다. 나에겐 지루하기만 한 수업 시간이 누군가에겐 놓쳐선 안 될 중요한 시간인 듯하다. 시간은 상대적이다. 그리고 내겐 수업에 쓰는 시간이 쓸모없게만 느껴진다. 그리고 한번 생각해 봤다. 내게 쓸모 있는 시간은 언제일까? 하지만 마땅히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물론, 재미있는 TV 프로그램을 볼 때나 PC 게임을 할 때 즐겁긴 하다. 하지만 사회가 만들어 놓은 부적절함의 기준 탓에 내 즐거움과는 상관없이 쓸모없는 시간으로 전락해 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나는 아직 사회의 기준을 무시할 만큼 용기 있지 않다. 아직은 어려서 그런 것이라고 믿고 있다.


 “자, 모두들 주말 잘 보내고 다음 주에 있을 기말고사 잘 보도록 하자. 이상.”


 학교가 끝나고 아이들은 각자 자신들의 가장 익숙한 곳으로 향한다. 누군가에겐 다음 주 있을 기말고사를 위해 독서실이나 학원을 갈 수도 있고, 누군가는 PC방으로 향하기도 한다. 그리고 아직은 가정 안에서 보호받고 자라기 때문에 세상이 이들을 규제하진 않는다.

 “한울아, PC방 갈래? 오늘 애들이랑 내기할 생각인데.”

 훈이가 내게 말을 걸었다.

 “아니, 나는 오늘 엄마 일 도와주러 가야해. 내기 이겨도 너무 잘난 체 하진 말고. 내가 없었으니까.”

 “하여간 말로는 못할게 없다니까. 담에 보자 임마.”


 그리고 나는 학교를 나왔다. 나의 부모님은 국밥 장사를 하신다. 나빠진 경제 탓에 무너져 내리기 쉬운 자영업이라지만 부모님께서 하시는 국밥집은 나름 성과를 올리시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 많이 번다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나도 이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돈을 막 쓰진 않는다. 어렸을 때부터 용돈을 받지 않고 그저 부모님께서 필요 할 때만 받아쓰기 때문에 부모님이 주시는 돈이 내 돈 같지는 않는다.

코너를 돌자 같은 반 친구 호산이가 앞에 보인다. 호산이는 유명한 애니메이션 오타쿠이다. 언제나 그랬듯 옳고 그른 것은 우리들이 정한 적이 없다. 그리고 호산이도 사회가 정해준 시선에 맞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호산아.”

 나는 호산이를 불렀다. 하지만 호산이는 이어폰을 꽂고 있었고 만화책을 보면서 걷느라 내 목소리를 못 들은 것 같다. 그래서 나는 호산이에게 다가갔다.

 “호산이 임마, 집 가냐.”

 “어? 한울아 안녕. 집 가지 학교도 끝났는데. 너는? 원래 집이 이쪽 방향이었어?”

 “사실 이 길 전에 나오는 빵집 앞 도로에서 건너서 가면 더 빠른 대 오늘은 왠지 이쪽 길이 걷고 싶더라고.”


 호산이에게선 호산이 특유의 땀 냄새가 많이 났다. 하지만 나는 호산이 앞에서 불쾌한 기색을 보이지 않으려 노력했다. 내게도 분명 남을 불쾌하게 할 단점은 많이 존재 할 것이다. 누군가 내 앞에서 내가 불쾌하다는 티를 낸다면 나는 그 하루가 지옥 같을 것이다.


 “그래 아무튼, 호산아 난 이제 이쪽 방향으로 간다! 집 잘 가.”

 “응. 잘 가, 한울아.”


 호산이와 헤어진 뒤 나는 이어폰을 귀에 꽂아 넣었다. 잔잔한 노래가 내 귓속에서 울려 퍼졌다. 그리고 빠르게 내 머릿속을 휘감았다. 하지만 오늘은 이상했다. 노래는 잔잔했지만 왠지 내 귓속은 조금 따가웠다.


 기말고사가 끝이 났다. 기말고사가 끝이 났다는 기쁨도 잠시 아이들에겐 수능이라는 거대한 언덕이 아직 남아있었다.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해 최상의 결과를 상상하며 굳은 각오를 다지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평소에 공부를 잘 안하던 나였지만 왠지 수능만은 공부를 해야 할 것 같았다.


 “모두들 고등학교 2학년 생활 잘 마무리 하고 내년에 공부 열심히 하자! 선생님은 1년 동안 즐거웠다. 이상.”

 “수고하셨습니다.”


 그렇게 겨울방학이 시작 되었다. 이제부터는 공부에 전념하겠다는 나의 굳은 의지는 결국 객기에 지나지 않았다. 공부를 하러 독서실에 가도 30분이 최대였다. 30분이 지나고 나면 몸이 뒤틀리고 졸음이 쏟아져 집중하기 어려웠다. 그리곤 알 수 없는 반항심이 솟아난다. 지금 내가 공부를 하는 것은 사회 탓이다. 공부만 강요하고 학생들의 경쟁을 부추기는 이 사회야 말로 나의 적, 아니 우리 모두의 적이다. 하지만 결국 핑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는다. 깨닫고 나서도 인정하기 싫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한울아, 이제 공부 좀 해야지? 1년만 딱 마음잡고 열심히 해 보자.”

 아빠가 내게 말했다.

 “알고 있어요, 아빠. 나도 나름 열심히 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그래 아들아, 아빤 널 믿는다!”


 부모님은 항상 나를 믿어주신다. 물론, 객관적인 측면으로 보았을 때 이해하기 힘든 부분들이 많다. 내가 부모님의 기대에 맞춰 열심히 사는 것도 아닐뿐더러 가지고 있는 능력이 뛰어난 것도 아니다. 그야말로 ‘대가 없는 사랑‘ 이다. 부모님의 사랑만큼 대가 없는 사랑이 또 있을까? 아마 없을 것이다. 그리고 아직 내가 이 사랑을 알기엔 어리다는 것이 느껴진다. 내가 부모님이 주시는 사랑을 나중에 다 갚을 수 있을까? 모를 일이다.

긴 겨울방학이 끝이 났다. 아직 날씨는 춥지만 이제 곧 봄이 온다는 사실만으로도 왠지 모르게 몸이 따뜻해진다. 똑같은 추위가 1달 전에 왔었다면 그땐 견딜 수 없을 만큼 차가웠을 것이다. 현실로 다가오진 않았지만, 가끔은 희망 찬 미래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현실에 이미 닿아 있는 것과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누군가는 이 힘만으로 세상을 살아가기도 한다. 그리고 정말로 희망 찬 미래가 현실과 닿는 날이 오기도 한다.

새 학기가 시작 됐다. 나는 3-8반에 배정 받았다. 호산이와 한결이도 같은 반이다. 하지만 가장 먼저 눈에 띈 사람은 바로 찬솔이다. 찬솔이는 인정받는 높이뛰기 시 대표이다. 훤칠한 키에 잘생긴 얼굴까지 찬솔이를 보면 괜히 나 자신이 위축 될 정도로 완벽하다. 그런 찬솔이와 같은 반이 되니 찬솔이의 인기를 눈앞에서 실감 할 수 있었다. 찬솔이 주위에는 항상 여자애들이 무리지어 찬솔이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 같은 평범한 남학생들에겐 공교롭게도 찬솔이는 모든 이들에게 친절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나는 찬솔이와 같이 가게 됐다. 집에 가는 길이 같았다. 역시나 찬솔이는 친절하고 재밌었다. 


 “한울아, 그래도 집에 갈 때 혼자 가면 무지하게 심심한데 같이 갈사람 있으니까 덜 심심하다.”

 “노래 잘 안 들어? 나는 집에 혼자 갈 때 노래 들으면서 가는데.”

 “응. 나는 이어폰 잘 안 꽂아. 답답하거든. 그리고 굳이 들을 필요도 없고.”

 “요즘 노래 안 듣는 사람 잘 못 봤는데. 듣고 싶어지면 말 해. 내가 좋은 곡들로 몇 개 추천 해 줄게.”


 본격적인 수능 공부가 시작됐다. 달마다 있는 모의고사를 치룰 때 마다 좌절하는 학생들도 있고 힘을 얻어 더 노력하는 학생들도 있다. 그리고 수능 이외에 다른 방법으로 자신의 꿈을 위해 달려가는 학생들이 있었다. 우리 반에선 수민이가 그 예다. 수민이는 노래를 잘 부른다. 감히 내가 평가하자면 TV에 나오는 가수들만큼 잘 부른다. 나는 수민이와 7살 때부터 같은 아파트, 옆집에 살았다. 그래서 우리 부모님과 수민이의 부모님은 굉장히 친하다. 그래서 나도 수민이와 어릴 때부터 알고 지낸 사이다. 처음엔 수민이의 부모님이 수민이가 노래 하는 것을 반대하셨다. 그러나 자식이기는 부모 없다고 결국 고등학생이 되자 수민이가 노래를 하는 것을 믿어주시기로 했다.


 “한울아, 오늘 어디가?”

 뒤에서 수민이가 나를 불렀다.

 “아니, 왜?”

 “나 오늘 이한대학교 실기 보러 가는데 같이 가주면 안 될까? 혼자 있으면 긴장 돼서 실수 할 것 같아.”

 “알았어! 같이 가주지 뭐.”


 학교가 끝난 뒤 나는 수민이와 함께 버스를 타고 시험장에 도착하였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와 있었다.


 “자, 여러분 여기 이렇게 모여 계시지 말고 노래 부르시는 분들은 모두 안으로 들어가 주시고 응원하러 오신 분들은 저 계단 옆으로 가셔서 줄 서주세요.”


 20분 정도 기다리니 입장 할 수 있었다. 그리고 한명, 한명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시험을 보러 온건 무대 위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는 사람들인데 이상하게도 내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꿈을 쫒아 가는 사람들을 보니 가슴이 벅차올랐다. 살면서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떨림이였다. 그리고 나는 생각했다. TV에서 하는 오디션 프로그램들이 인기 있는 이유는 꿈을 향해 달려가는 사람들을 보며 대리만족을 느낀다는 것을. 사람들을 모두 꿈을 갖고 꿈을 향해 달려 나아가고 싶어 한다는 것을.

그렇게 오디션이 끝이 났다. 역시 내 예상대로 수민이는 노래를 잘 불렀다.


 “평소 불렀던 것만큼은 잘 안됐어. 연습을 그렇게 했는데도.......”

 “에이, 내가 보기엔 제일 잘 하던데.”

 “그렇게 말 해주니까 고맙다. 역시 널 데려오길 잘 했어.”

 “나중에 분식집에서 떡볶이 한번 사는 거다?”

 “당연하지!”


 집에 돌아와서 생각 해 봤다. 내게도 꿈이 있을까? 없다면 어떤 꿈을 꾸는 게 좋을까? 아니다. 이건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내게도 가슴 뛰는 것.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가슴 뛰는 일을 찾고 싶어졌다. 그게 무엇이든.


 3월 모의고사가 치러졌다. 한결이는 언제나 그랬듯 시험을 잘 봤다. 그리고 공부에 별로 관심이 없는 호산이나 수민이는 3월 모의고사에 별로 미련이 없는 듯 했다.

 “이번 모의고사 성적은 그냥 자기 위치가 어느 정도인가를 보기 위한 지표일 뿐. 따로 미련을 두진 말도록 하자.”

 “네”

 “그리고 이번에 3월 21일에 가는 여행은 모두 참가 했으면 좋겠다. 공부하느라 바쁜 것은 이해 할 수 있지만 고등학교 때 가는 마지막 여행이니까.”


 우리들은 인천 어디쯤에 있는 바다가 보이는 어느 수련원으로 여행을 왔다. 각자 숙소에서 짐을 풀고 나오니 각자 원하는 돌을 골라 자신의 바램을 돌에 적어 탑을 쌓는 프로그램을 진행 하였다. 호산이는 애니메이션 캐릭터 같은 여자를 만나는 것이 꿈이라고 적었다. 물론, 호산이는 이 사건 이후로 더 놀림을 받게 됐다. 수민이는 오디션에 합격하는 것을, 찬솔이는 높이뛰기 국가대표 선수가 되는 것을 적었다. 그리고 나는 ‘가슴 뛰는 꿈을 찾기’ 라고 적었다. 그때 한결이가 내게 말을 걸었다.

 “하고 싶은 일이 뭔데?”

 “아직은 잘 모르겠어. 너는 뭐라고 적었어?”

 “나는 안 적었어.”

 한결이의 목소리에서 약간의 떨림이 느껴졌다.

 “하고 싶은 게 없으니까.”

 “하지만 너 공부를 잘하잖아. 여기 있는 모두가 널 부러워하지 않을 사람 없을 걸?”

 “그래. 근데 내가 공부를 잘해서 좋은 대학교를 간다고 하더라도 그건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아니야 나는 지금처럼 시험기간에 공부하고 성적을 받고 다시 공부하고, 그러다 커서 직업을 구할 때도 시험공부처럼 하기 싫은 일을 어쩔 수 없이 하게 되겠지.”

 “그렇지만 지금처럼 열심히 한다면 좋은 곳에 취직해서 돈을 많이 벌 수 있지 않을까? 지금 어른들도 다 돈을 많이 벌기 위해서 좋은 곳에 취직하려고 하잖아.”

 “돈을 많이 벌어서 행복한건 미래의 나지 현재의 내가 아니잖아? 미래의 내가 행복하지 못 했던 지금의 나를 떠올렸을 때 과연, 잘한 일이였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

 “나는 아직 잘 모르겠다. 내 귀에는 아직 공부 잘하는 놈이 하는 투정으로 밖에 들리지 않는다.”

 “어휴, 어쨌든 나는 하고 싶은 일을 찾으려하는 너도 부럽다.”

 “그럼 니 성적이랑 바꾸면 되겠다.”

 “그건 곤란한 걸.”


 한결이가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지 사실 알고 있었다. 한결이는 상상 할 수 있는 미래가 두려웠던 것이다. 미래의 무엇을 하고 있을지 예상이 된다는 것. 그리고 그 예상된 미래가 자신에게 행복한 일이 아니라는 것. 나는 이것만큼 지금의 나를 괴롭게 하는 것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생각했다. 한결이는 어쩌면 어른과 가장 닮아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나는 아직 어리기 때문에 정답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 사실 정답이 있는 것인지도 잘 모르겠다. 어렸을 때는 어른이 된다면 스스로 정답을 찾을 수 있을 거라 생각 했다. 하지만 지금은 잘 모르겠다. 그래서 더더욱 모르겠다. 한결이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옳은 길을 가고 있는 것인지.

 선생님이 소리쳤다.

 “돌 안 쌓은 사람 없지?? 각 반마다 사진 한 번씩 찍고 들어가도록 하자.”

 쌓인 소망의 돌탑들을 보니 더욱 더 용기가 생겨났다. 좋아하는 것을 찾는 용기 말이다.

 밤이 됐다. 저녁을 먹고 각자 숙소에서 수다를 떨고 있었다. 그때 옆방에서 욕설과 함께 쿵!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옆방에 가보았다.

 “아니, 호산아 니 자리는 저기라니까?”

 “저기는 나한테 너무 좁아서 그래.”

 “아니. 어휴....... 그러니까 너가 맨날 이상한 만화나 보는 거 아니냐. 그거 다 야한 거라며? 이미 소문 쫙 놨어.”

 “그런 거 아니야.”

 “애들아 그런 거 아니라는데?”

 “맞아야지 그럼.”


 남자 4명이 무리지어 호산이를 괴롭히고 있었다. 그리고 주변 아이들은 그저 방관하고 있었다. 애들 중 몇몇은 호산이가 잘못 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정말 이상했다. 호산이는 잘못 한 것이 없었다. 그리고 애들은 괴롭히는 쪽을 더 옹호 해 줬다. 하지만 나도 호산이를 도와줄 수 없었다. 정말 이상하게도 이 상황에서 호산이를 돕는 것이 잘못 된 것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속으로는 잘못 된 것임을 알고 있지만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주제 넘는 행동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호산이는 다시 구석으로 가서 혼자 이어폰을 꽂고 앉아 있었다. 사회적 기준이라는 것이 내겐 아직 이해가 되지 않았다. 만화를 좋아하면 그 학생은 잘못 된 길을 걷는 학생이 된다. 그저 자기가 좋아 하는 것을 하는 학생일 뿐인데도 말이다. 호산이의 꿈은 애니메이션 작가이다. 호산이에겐 꿈이 있다. 그리고 하루하루 목표를 향해 달려 나아가고 있다. 하지만 사회는 호산이가 하고 싶어 하는 것을 용납 해 주지 않는다. 옳은 것과 그른 것을 누가 사회의 기준으로 정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잘못 됐다는 것이다. 적어도 내 기준에선 그렇다. 개개인의 노력을 사회가 보상 해 달라는 것은 아니지만 가슴 뛰는 일에 대한 노력마저 틀렸다고 사회에서 정해 놓는 것은 잘못 됐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호산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외로움 속에서 이어폰을 낀 채로 사회의 기준이 바뀌길 기다리는 것 말고는.


 그때 뒤에서 수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쟤는 왜 저러나 몰라.”

 내가 물었다.

 “호산이가 왜?”

 “뚱뚱해가지고 매일 애니메이션만 보고 한심하잖아.”

 “에이, 나도 가끔 애니메이션 보는 걸.”

 “그럼 너도 오타쿠 하던가!”

 “그건 됐고, 너는 대체 왜 남자 층에 있는 거냐.”

 “찬솔이 보러 왔지.”


 수진이는 한눈에 봐도 예쁜 여학생이다. 그리고 예쁜 만큼 인기가 많다. 그리고 잘생긴 남자 애들을 좋아한다. 나는 수진이가 잘못 됐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가끔 자신보다 못생긴 아이들을 무시하는 것만 빼면 말이다. 우리는 TV 속 연예인들을 보며 자란다. 그리고 TV야 말로 외모지상주의의 표본이다. 외모가 못난 아이들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무시받기 일쑤다. 물론, 외모가 못난 것을 단점으로 여기지 않고 긍정적으로 살아가는 아이들도 있다. 그러나 사회는 외모가 잘난 사람들을 더 우선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외모는 아주 큰 문제가 된다. 적어도 우리 청소년들 사이에서는 말이다. 우리들은 모두 남의 시선을 신경 쓰며 살아간다. 그리고 가장 먼저 타인에게 비추어지는 것은 외모다. 누구는 외모를 가꾸기 위해 거액을 투자하기도 한다.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고 여기는 것이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우리 사회가 외모지상주의의 대한 문제들을 눈 감아 준다는 것이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외모로 사람을 평가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배워왔다. 하지만 배운 것과는 다르게 우리는 자라면서 외모로 사람을 평가하는 사회와 맞닥뜨리게 된다. 외모가 못난 아이들은 잘못이 없다. 하지만 잘못한 게 있는 사람만큼 눈치를 보며 살아가야 한다.


 “찬솔아, 어디가? 나랑 놀자!”

 수진이가 찬솔이의 팔짱을 끼며 말을 걸었다.

 “여기 남자 층에서 이러고 있으면 너 선생님께 혼날 걸?”

 “괜찮아, 괜찮아! 잠깐 내려 왔다고 하면 되지.”

 “아니, 나는 너 때문에 내가 혼날까 봐 그렇지. 푸하하.”

 “죽을래?”


 밤이 깊어갔다. 우리들의 고등학교 마지막 여행은 끝나가고 있었다. 마지막 여행이라 생각하니 괜스레 마음이 더 울적해졌다. 이제 돌아가면 우리들은 다시 각자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 그리고 나는 하고 싶은 일을 찾으려고 하는 내가 부럽다는 한결이의 말이 자꾸만 맘에 걸렸다.

다시 학교생활이 시작됐다. 수민이는 이한대학교 오디션에 떨어졌다. 하지만 첫 오디션일뿐더러 아직 남은 오디션이 3군데 더 있기 때문에 수민이는 크게 낙심하진 않았다. 그리고 우리 마음에 닿는 찬바람만큼 우리를 더 외롭게 했던 겨울이 지나 뜨거운 여름이 오고 있었다.


 “찬솔이가 이번 6월에 높이뛰기 대회를 나가니까, 선생님은 너희들이 모두 응원 해 줬으면 좋겠다.”

 선생님께서 웃으시며 말씀 하셨다.

 “아, 그리고 오늘 체육관 정리하는 일 몇 명 나서서 도와 줘야 할 것 같다. 지원 할 사람 있어? 찬솔이가 연습하는 체육관이니까 찬솔이랑 친한 애들이 가면 더 좋을 것 같은데.”

 “저요! 제가 갈게요.”

 수진이였다.

 “저도 갈게요, 선생님.”

 나도 지원했다. 나는 수민이의 이한대학교 오디션에 따라 갔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찬솔이가 연습하는 모습을 보면 어쩌면 나도 더 용기가 생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찬솔아 잘 하고 와야 해!”

 역시나 수진이가 제일 먼저 응원 해 주었다. 그리고 아이들도 찬솔이에게 저마다 한마디씩 응원을 해 주었다.

 “찬솔아 잘 하고 와! 1등 할 수 있을 거야.”

 “그럼! 고맙다, 한울아.”


 나랑 수진이는 체육관으로 향했다. 수진이는 체육관 청소를 도와주기로 했다. 나는 체육관 창고정리를 도와주기 위해 체육관 뒤쪽으로 갔다. 체육관 뒤쪽 구석에 찬솔이가 앉아있었다. 찬솔이는 이어폰을 꽂고 있었다. 찬솔이는 분명히 내게 자신은 이어폰을 꽂고 노래를 듣지 않는다고 말했었다. 찬솔이의 표정이 어딘가 외로워 보였다. 나는 찬솔이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찬솔아, 여기서 뭐해?”

 “어, 한울아. 그냥 연습이 잘 되지 않네.”

 “에이, 이제까지 잘 해왔잖아. 이번에도 잘 할 수 있을 거야.”

 “하지만 나도 전국적으로 보면 잘 하는 편이 아니야. 우물 안 개구리 같은 거지. 나보다 잘 하는 사람들은 널리고 널렸고, 그들이 나만큼 노력을 안 하는 것도 아니야.  분명 모두 열심히 하겠지. 그래서 조금은 억울해. 내가 그들을 이길 용기가 없다는 게.”

나는 찬솔이의 말에 더 이상 반박할 수 없었다. 우리 사이에선 완벽한 찬솔이도 열등감을 느끼고 있구나. 그제야 찬솔이가 이어폰을 꽂고 있던 것이 이해가 됐다. 찬 솔이도 외로웠던 것이다.

 “그래도 이번 대회에선 좋은 성적 받을 수 있게 열심히 해 봐야지. 이제 연습하러 가야겠다.”

 “그래. 알았어, 찬솔아.”

 “그래, 먼저 갈게!”

 찬솔이는 이어폰을 빼고 주머니에 넣으며 체육관으로 걸어갔다. 찬솔이의 외로운 뒷모습을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아, 맞다. 찬솔아.”

 “응?”

 “우리가 꿈속에서 상상하는 대로 행복을 찾아간다면 정말 좋겠지만, 그럴 수 없으니 현실에서 행복을 찾자. 적어도 내 기준에선 너는 잘 해낼 수 있을 거라 믿어!”

 “.......”

 찬솔이는 결국 대답을 하지 않았다.


 대회가 치러졌다. 찬솔이는 47명중에 8등을 하였다. 입상은 하지 못했지만, 나는 충분히 잘 한 성적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찬솔이 기준에선 그렇지 않았다. 찬솔이는 한동안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아마 자신에 대한 실망이 컸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생각 했다. 행복의 기준은 무엇일까? 찬솔이를 처음 봤을 땐 찬솔이처럼 살면 정말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찬솔이도 행복한 인생을 살고 있진 않았다. 저마다의 행복의 기준이 있기 때문에 찬솔이를 보고 배부른 소리를 한다곤 생각지 않았다. 그러나 조금은 혼란스러워 졌다. 찬솔이는 꿈을 쫒고 있다. 나는 꿈이 있고 그 꿈을 쫒는다면 행복 해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꿈이 있다고 해도 그 꿈의 벽에 부딪혀 좌절을 느낄 때 엄청난 절망감이 다가 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조금 두려웠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찾는다고 하더라도 그게 잘 되지 않아 좌절 한다면 나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아직은 모를 일이다.


 그렇게 우리의 마지막 학창 시절도 끝이 나고 있었다. 여름이 끝나고 바람은 차가워져 겨울이 오려 하고 있었다. 수학능력시험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수민이는 원하는 대학교에 합격은 하진 못하였지만 다른 학교에 합격해 원하는 노래를 계속 할 수 있게 됐다. 찬솔이는 대회 후에 계속 훈련하며 더 나은 성적을 받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드디어 수학능력시험이 치러졌다. 한결이는 평소 실력대로 좋은 점수를 받았다. 그리고 좋은 학교에 지원했다. 비록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한 학과를 지원한 것은 아니지만 사회의 기준에서 볼 때 한결이는 훌륭하게 자신의 본분에 맞는 학창시절을 보냈다. 한결이가 행복한 삶을 살지는 아무도 모른다. 미래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니까.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건 한결이가 자신만의 별을 찾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것이 불행한 삶이라곤 아무도 판단 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한결이는 최선을 다 했기 때문에 나는 한결이가 잘 될 것이라고 생각 할 뿐이다. 호산이는 면접을 통해 애니메이션 학과에 합격했다. 호산이는 자신의 꿈에 한 걸음 나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호산이는 사회와 싸워야 할 것이다. 그리고 나는 호산이가 사회와 싸워 승리 해 줬으면 좋겠다. 자신의 별을 지켜 줬으면 좋겠다. 그리고 수진이는 공부에 별로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시험 전이나 후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이제 성인이 돼서 자신을 더 꾸미고 더 많은 잘생긴 남자들을 만날 생각에 들 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이건 수진이의 자유고 행복이다. 그렇게 우리들은 모두 자신만의 행복을 찾아 나아간다. 비록 사회의 강요에 때로는 좌절하고 외로울지라도 그래서 이어폰을 꽂고 혼자 싸우는 한이 있더라도 우리들은 다시 싸워야만 한다. 우리 스스로를 위해서.


 나는 여전히 내가 좋아하는 일이 뭔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찾을 것이다. 그리고 나아갈 것이다. 그게 무엇이든. 못 찾는다고 해도 상관없다. 꿈을 찾아다니는 그 자체로도 이미 나는 나의 삶을 살아가고 있으니까. 이 사회에서 우리들의 꿈을, 우리들의 별들을 가리게 강요하더라도 기억해야 한다. 손으로 가려도 별은 항상 그 자리에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