뼈담배
1.
언제부터 생각을 놓고 살았는지 그는 몰랐다. 솔직히 상식적으로 사람들은 늘 생각을 하고 다닌다지만, 그런 선이 있지 않던가. 도저히 사람의 상식, 이성, 그리고 감각으로 이해할 수 없는 행동. 많은 욕과 언어들이 그 현상을 말하지만, 그의 인생행로는 세상의 법과 끓긴지 오래였다. 범죄를 일으키며 도덕심을 없앤 것은 아니었다. 그저 제대로 된 일도 없이, 떠돌면서 가난과 함께 비웃음이 가득한 인생을 살아온 것일 뿐.
애초부터 그렇게 실패한 인생을 살아온 것이 아니었다. 그는 학창시절만 해도 학생회장에 임하고 늘 완벽한 성적표로 장래가 유망해 보이는 소년이었고, 대학을 입학할 때만 해도 주변 모두의 부러움을 산 영재였으니까.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쉼 없이 달려오는 자신이 한심해 보였다. 아마도 어머니가 돌아가시는 것을 목격한 이후로부터 그는 정신적 트라우마를 겪었다. 그 이후로는 오른손에 펜을 옴싹달싹할 뿐, 잉크를 종이에 묻히는 일이 없어졌다. 죽음에 대한 무서움이 그의 정신과 몸을 묶어버렸고, 결국 그 압박감이 선사하는 회로 감에 인생을 버리기 시작했다.
남의 기준에서는 버림이었으나 그에게는 해방이었다. 물론 가족들이 결사반대한 것은 당연지사였다. 어릴 때부터 총명해서 기대가 많았던 그의 아버지는 대학을 그만둔다는 말에 집에서 나가라고 소리쳤고, 대학입시가 잘 풀리지 않아 한숨만 푹 내쉬던 친구의 군대같이 가자는 말은 쉽게 뿌리쳤다. 죽음을 무서워하는 사람이 어떻게 총을 부리겠는가. 자신뿐만이 아니라 남에 대한 죽음도 두려워서 그는 멀리 떠나기로 했다. 남에게도, 자신에게도 어떠한 피해를 주고 싶지 않았다. 편의점에서 간단한 전등, 배터리, 맥가이버 나이프 등 여러 가지를 사들여서 배낭에 던져놓고는 어느 날 그는 집을 떠났다.
그렇게 집을 떠난 지 7년이 흘렀다. 부스스한 얼굴로 꾀죄죄한 침낭에서 몸을 일으키고서 그는 힘없이 강가로 걸어갔다. 대충 씻은 컵라면 통으로 강물을 받아서 머리에 흘러 부었다. 물에 젖어서 짠 내음을 내는 자신의 얼굴과 머리 냄새를 조금 맡고는 결국 한숨을 푹 내쉰다. 어제 연탄공장에서 연탄을 좀 찍어내고서 받은 푼돈으로 어느 정도 며칠간은 조금 큰 크기의 컵라면이라던가 간식으로 빵을 살 수는 있지만, 몸이 유난히 피곤했다. 오늘은 나른하게 강가 근처에 누워서 온종일 쉬어도 됐지만, 그는 애써 몸을 일으켰다. 배낭 안에 구깃하게 접힌 쪽지 하나를 손에 쥐고서 그것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집을 나온 지 2년 후쯤에 여동생이 결혼한다며 새로 바뀐 집 주소와 전화번호를 적은 종이를 건네준 것이다. 그날은 꽤 기억이 좋았다, 왜냐하면 오랜만에 중국집에 가서 여동생이 사준 음식을 포식했으니까. 죽음이 두려워서 떠돌이 생활을 시작했던 그였지만 여전히 마음속 깊은 곳에는 성공한 인생을 부러워하는 열망이 어느 정도 있었다. 여동생이 어떻게 자기를 찾아냈는지는 기억이 잘 안 났지만, 여동생이 걱정스러운 눈길로 언제라도 자기만큼은 찾아와달라고 당부했던 것은 세심하게 느껴진다.
왜 인제야 여동생을 찾는가- 그 이유는 꽤 간단했다. 여동생이 보고 싶기도 했고, 가족이 어떻게 지내는지가 궁금했다. 며칠 전에 도시 근처의 묘지에서 아르바이트하다가 어느 묘비에 아버지의 이름이 새겨져 있는 걸 봤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동생은 어떻게 지낼까, 가족들은 지금 잘살고 있는지가 궁금해졌다. 며칠 동안 푼돈을 모으고 모으니까 조금은 자신감과 마음이 밝아져 왔다. 강물로 대충 세수를 하고는 돈을 꼭 쥐고 일어섰다. 그리고 그는 터덜터덜하며 근처에 있는 목욕탕에 들어서서 제대로 씻고, 면도도 하고, 안에 있는 이발소에서 이발도 하는 등 나름대로 자신을 꾸몄다. 옆에 있는 오래된 옷을 싸게 파는 가게에서는 낡았지만, 어느 정도 구김은 살아있는 정장을 싸게 사서 차려입었다.
그는 구깃한 종이를 쥐고서 동네에 있는 피시방에 들려서 한 시간짜리 요금을 내고서 컴퓨터 마우스를 손에 쥐었다. 오랜만에 만지작 이는 사람의 문명이 아직도 낯설었다. 면도를 하도 오랜만에 하여서 익숙하지 않게 푸르스름한 자신의 턱을 만지작 이며 그는 마우스를 움직여 인터넷을 클릭했다. 여동생이 준 집 주소로 향하는 교통편을 검색하고 펜을 빌려서 받아적었다. 그는 오랜만에 무엇인가에 분투할 수 있다는 자신을 보고 새삼스러운 느낌에 머리를 긁적였다.
요금 시간이 끝날 때까지 포털사이트의 뉴스 창이나 여러 가지를 보면서 세상을 다시금 느꼈다. 그 시간이 끝나고 그는 다시 곧장 의자를 덜컹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코를 허우적거리며 계단을 타고 내려와서 주소와 교통편이 적혀진 종이를 다시 쳐다봤다. 마을버스 14번을 타고 조금 큰 시내로 와서 지하철표를 사고 열차에 몸을 실었다. 퇴근 시간이 아니었기에 사람들은 별로 없었지만, 그는 여전히 주변에 보이는 사람들을 보고서 몸을 움찔거린다.
30분 동안 창밖을 쳐다보고 어수룩하게 사람들에게서 눈빛을 피한 탓에야 여동생이 살고 있다는 적적한 도시로 올 수 있게 되었다.
그는 지하철역 입구를 나오고서는 푹 한숨을 내쉬었다. 역 근처에 있는 주황색 아파트 단지라고 들었다.
“1305동… 301호…”
그는 두리번거리며 거리를 걷다가 장미화단으로 꾸며진 아파트 동 입구를 찾고는 몸을 서둘렀다. 아파트 동으로 들어가고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엘리베이터를 탔다. 1분 정도 안 지느냐고 그는 곧 여동생이 살고 있다는 아파트 문앞에 서 있었다. 쿵쾅거리는 가슴을 천천히 가라앉히며 깊은숨을 들이마시었다. 마음을 어렵사리 가라앉히고는 초인종 버튼을 꾹 눌렀다.
딩동 하는 소리와 함께 문 뒤를 향해 쿵쿵거리는 발소리가 들려왔다. 아마 여동생의 남편인가보다… 결혼식에도 안 갔고, 여동생이 사귀고 있었다는 말을 듣기 전부터 코빼기 보지 않은 사이여서 그 사실이 그를 옭아매기 시작했다. 한숨을 내쉬면서 머리를 긁적이다가 덜컥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문을 열고 모습을 드러낸 사람은 여동생의 남편으로 보일만 한 30대 초반의 젊은 남자였다. 남자는 그를 휙 훑어보더니 술에 취한 모양인지 붉은 코를 훌쩍였다.
"누구세요?”
그는 점잖게 정장을 손으로 정리하며 입을 열었다.
“연지의 친오빠입니다, 여동생을 만나러 왔는데요.”
그의 목소리를 듣자 남자는 퉁명스러운 말투로 대답했다.
“연지한테도 오빠가 있었군요? 집을 나갔다고 해서 찾을 수 없을 거로 생각했는데.”
남자는 코웃음을 쳤다.
“이 나이에 직업도 없이 급하게 꾸민 거 보니까 연지랑 똑같나 보네. 나랑 이혼한 지 꽤 됐어요. 집은 용케도 잘 찾아오셨는데, 안타깝게도 여기에는 없어요.”
그는 순간적으로 속에서 분노가 일어나는듯했다. 나 자신은 욕해도 마땅하다지만 여동생만큼은 정상적으로 살아가길 바랐는데. 남자는 담배를 입에 물면서 중얼거렸다.
“동네 병원에 입원해있으니까 그쪽으로 가봐요. 다시는 찾아오지 마세요, 연지 같은 사람들은 꼴도 보기 싫으니까.”
그는 말 한 마디 한 마디를 조목조목 가슴팍에 새긴 채 여동생이 행복하게 웃으며 살고 있었어야 했던 아파트를 떠났다.
2.
그는 중얼거리며 거리를 걷고 있었다. 사람들에게 주소를 묻고서 병원을 향해 걷는 그 걸음들이 한없이 무겁기만 했다. 혹시 몰라 동생 집 바로 옆의 아파트에 사정을 이야기하고 그녀의 행방에 관해서 물었다. 그에게 다가온 대답은 아주머니의 안쓰러운 표정과 애써 차와 과자를 대접하겠다며 안으로 어쩔 수 없이 들어가는 거절 못 하는 태도였다. 그는 아주머니가 내주신 홍차를 마시며 여러 번 혀를 뎄다. 홍차의 뜨거움보다 더 뜨거운 그녀의 이야기 때문에.
여동생은 어릴 때부터 몸이 약했다. 또래들이 흔히들 가는 학교소풍에서도 도중에 빠지거나 운동회에서도 계주는 절대로 빠지는 경우가 많았을 정도로. 그래서 그는 한창 반항의 일미로 부모님을 무시하기는 했어도 여동생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한 번이라도 잘못 밀거나 해서 유리조각처럼 깨지거나 섣부른 말 한마디가 몸의 병에 더한 마음의 병을 주게 될까 봐. 그렇게 조심스럽게 자라났던 여동생이 대학에서 좋은 선배를 만나 연애를 하다가 결혼한 것에 대해서 그는 나름대로 기분이 좋았다. 적어도 그 남자가 자신의 이런 꼴을 대신해서 잘 돌보아주고 평생 늘 약해서 외로웠던 그녀의 빈 심장을 사랑의 피로 가득 채워줄 수 있을 거로 생각했기에.
병약하고, 의사가 불임이라고 진단을 내렸던 여동생이 결혼한 지 이 년 후에 어렵사리 임신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출산을 하는데 도중에 사산해버린 아기를 낳아버렸다. 그 이후로 모든 게 변했다고 한다. 몸과 마음에 상처를 입은 여동생은 남편과의 잠자리를 거부했고, 그런 그녀를 배려하던 그의 태도는 불행히도 오래가질 못했다. 남편은 성생활을 계속 유지하고 싶었다. 그는 실제로 병원진단에서 성을 강하게 원하는 병증세가 있었다. 아이를 잃고, 아내가 그를 거부하자 그 증상이 더 심해졌다는 것이다.
그래서 여동생이 앓아누워있을 때를 틈타 그는 다른 여자들과 바람을 피우기 시작했고, 외도를 알게 된 여동생은 병든 몸을 이끌고 그에게 묻기 시작했다. 외도를 감추려고 했던 남편은 도리어 화를 내면서 그녀를 덮쳤다. 애초에 그녀가 아이를 잃지만 않았어도, 모든 것이 순리대로 이루어지는 부부생활이 되었을 건 데라며 따진 것이다. 그리고 남편은 강제로 그녀를 덮쳐서 임신을 시켰다. 그런데 얼마 안 되어 그녀는 피를 흘리게 되어서 병원에 갔는데 아이의 심장이 멈추고, 벌써 유산이 진행되고 있다는 진단을 받게 된다. 그녀는 절망했다.
남편이 강제로 임신시킨 아이였더라도, 그녀는 아이를 사랑했다. 평생 외롭고 괴로웠던 그녀는 이 아이만이라도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이루게 해주겠다고 다짐했던 터였다. 조심스럽지만 가벼운 운동도 하고, 남편생활도 챙겨주고, 정상으로 돌아가려던 삶의 바퀴가 바위에 걸려서 뒤로 내동댕이쳐진 것이다. 아무리 두려웠어도 남편을 아직은 사랑했었다. 그래서 강제로 당했다는 상처도 무릅쓰고 임신을 유지하려 했다. 그 행동이 그녀가 그렇게 바라던 건강한 아이를 낳는 필요과정이라 정당화시키며.
유산진단을 받고 병원 침대에 누워서 안정을 취하는데 의사가 들어왔다. 초음파검사와 몸을 다시 검사하는데 난소암이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의사는 암이 상당히 많이 전이되어서 난소와 자궁을 제거 수술하고 빨리 치료를 해야 한다는 진단을 내렸다. 그 말을 듣고는 남편은 병원을 떠났다. 그리고 며칠 이후에 남편이 이혼소송을 냈다는 법정의 보고가 그녀 앞으로 다가왔다. 남편이 정상적인 부부생활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이유로 들어서 이혼을 했다는 것이다. 그와 여동생의 어머니는 오래 병으로 죽은 후였고, 아버지마저 폐암으로 사망한 지 이년이나 흐른 후의 시간이었다. 친가 가 없다는 것을 느끼고 시댁에서 이혼소송을 낸 것이다.
아주머니는 아직 여동생이 병원에 입원해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병원 병동과 여러 가지 관련이 야기들을 말해줬다. 남편은 나름대로 죄책감이 있는 건지는 몰라도 아직 재혼할 생각이나 여유가 없어 보인다고 한다. 매일 밤 술을 마시면서 주정을 부리는 것 빼고는 별다른 특별한 일이 없다고. 하지만 용케도 직장생활을 유지한다고는 한다.
마음이 쓰라리게 아팠다. 그는 병원 근처에 다다르자 편의점을 둘러보며 혼란스러운 머리를 정리하려 노력했다. 쓸데없이 연예인 가십이 있는 잡지코너를 쭉 바라보거나, 컵라면이나 여러 인스턴트 제품들을 빤히 쳐다보는 것으로 주변을 돌리려 했다. 하지만 모든 것이 여동생의 불행으로 칠해진 것만 같았다. 매운 볶음 라면 봉지의 표지에 있는 붉은 면발은 태어나자마자 죽은 아기처럼 보였고, 호빵은 여동생이 앓고 있다는 쉴 새 없이 부풀어 오르는 암세포처럼 보여 그를 괴롭게 쫓았다. 그는 이곳을 빨리 나가야겠다는 마음을 먹고서 음료수 진열대에서 오렌지 주스가 담긴 박스세트 하나를 손에 쥐었다.
바지 주머니에서 쪼그라진 지폐 몇 장을 내밀고 잔돈들은 조심스럽게 주워담았다. 그에게는 모든 것이 귀했기 때문이다, 그 여동생 남편과는 달리. 자신의 욕구를 위해서 여동생을 사랑으로 안아주지는 못할망정 흥청망청 써버리다가 버린 그 한심한 놈. 물론 그 자신도 여러 사람을 욕할 처지가 아니란 것을 그도 잘 알고 있다- 직장도 없고, 가족을 버린 지 오래고, 눈에 띄는 일도 안 하며 떠도는 그가 사회의 좋은 임원은 아니니까. 그러나 그는 절대로 남을 죽이려 하지는 않았다. 남편을 그녀를 죽였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그 여리고 여렸던 생명을 자신의 성욕을 위해 그렇게 망가지게 하고서 쓰레기통에 버리듯이 병원에 남겨두고 이혼을 한 그가 쉽사리 용서될 리가 있겠는가. 하지만 지금은 그녀를 일단 만나는 게 중요했다.
그것이, 이 떠돌이생활을 등지고 다시 사회로 일시적으로 돌아온 시작이고 끝이니까.
3.
병원 로비에 가서 자세하게 여동생의 병실과 상태를 물었다. 그러자 간호사는 마시던 당근 주스 뚜껑을 닫으며 그 유리병을 잠깐 손톱으로 두드렸다. 30초 정도 후에야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일으켰다.
“저…그냥 병실만 알려주면 되는데요?”
간호사는 알고 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병실도표를 손에 쥔 채 로비 데스크에서 나와서 그의 곁으로 다가갔다.
“알고 있어요. 하지만… 정연지 환자는 좀 특별한 경우라서요.”
간호사는 말없이 걸었고, 그도 그녀의 뒤를 침묵을 유지한 채 뒤따랐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자 그제야 그녀가 입을 열었다.
“정연지 환자는 암이 발견되었을 때 이미 중기상태였어요. 재빨리 난소와 자궁을 제거했지만, 암이 이미 그 이상으로 전이됐죠. 근데 암 전이 속도가 다른 환자들보다 훨씬 빨라서, 치료나 할 수 있는 건 다 하고 있지만…지금 상태로는, 예상된 수명 이상을 사는 것이나 마찬가지예요.”
엘리베이터가 띵한 소리와 함께 문을 열었다. 간호사는 문밖으로 나오고, 병실을 걸으면서 대화를 계속 이었다.
“그 와중에 이혼도 당하고, 아기를 이제 영영 가질 수 없고, 잃었다는 것에 상당한 정신적인 고통을 겪었어요. 그래서 자살시도도 몇 번 했죠. 아무 약물이 들은 주사기를 몰래 훔쳐오거나, 잠을 잘 못들길래 처방한 수면약도 몰래 모아서 한꺼번에 삼켰다던가… 요즈음은 그런 일이 좀 없었어요, 아마 그럴 기운마저 없어서일지도….”
그는 묵묵히 간호사의 대화를 듣기만 했다. 뭐라 대답을 해야 할지,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그녀가 살아있다는 것이 기적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모든 것을 들은 이후로는. 그 이상을 넘은 답을 하면 그녀가 마치 이미 죽어있을까 봐, 너무 많은 것을 바라는 것처럼 보여서 신의 질투로 목숨을 앗아갔을까 봐. 그는 최대한 말과 행동을 아끼려 했다. 조금이라도 더 나빠진 상황을 목격하고 싶지 않았다. 지금 그는 이런 생각도 들었다. 자신이 여동생이 결혼한다는 말을 들은 이후로는 계속 그녀 근처에 있었더라면 어떨까…라는 생각. 그렇지않은 그의 과거 행보가 지금은 자유도 꿈도, 죽음이란 두려움에서의 보호도 아닌 것처럼 여겨진다. 그는, 어린아이처럼 유약한 이유로 가족과 모든 것을 내친 천하의 나쁜 놈이었다.
지금 그녀가 병원에서 앓아왔을 모든 고통, 그런 것을 되새김질하면 할수록 그녀의 남편을 욕할 자격이 있기나 할까 질문을 던지게 된다.
내가 남아만 있더라도, 아버지를 좀 보살펴서 오래 살게 해서, 이혼을 결사반대해서 남편이 남아있기만이라도 해줬더라면 이 정도로 악화하였을까. 아니, 남편이 더 삐쳐서 자기와 아버지 몰래 그녀를 더 못살게 괴롭히지 않았을까. 아니, 내가 남편을 보복한답시고 그녀를 더 괴롭게 하는 게 아니었을까? 하지만 떠나와서 그녀가 혼자 모든 고통을 스스로 받아낸다는 것, 그 자체로 마땅한 죄가 아닌가? 양쪽 모두의 가상과 현실에서 힘없이 그녀를 괴롭히게 했다는 것이 자신을 한없이 죄의 지옥으로 몰아내는 것만 같았다. 떠났을 때는 자신의 의지에 의한 자유였을지라도, 본능으로 사회에 다시 돌아온 이상 동생과 그 공동체에 남아있는 자신의 가족을 내팽개쳤다는 무책임 감이 그를 옭아맸다. 더군다나 그는 연지가 얼마나 병약하고 힘겹고 외롭게 자라왔다는 것을 잘 아는 상태에서 자신의 두려움과 자유를 위해서 제멋대로 세상을 등져왔다. 그런 그가 돌아와서 이런 느낌을 느끼는 것은 당연해 보였다. 아니, 의무로 느껴졌다.
그런 조바심과 죄책감을 뒤로하고 현실로 돌아오자 그는 병실 안에 있었다. 간호사는 그런 그의 뒤에 서서 지켜보고 있었고, 앞에는 힘없는 여자가 침대에 누워있었다. 인기척에 그녀는 창가를 바라보던 자신의 고개를 돌렸다. 암 치료 때문에 깨끗이 밀어진 이마 아래로 검은 눈과 시퍼런 주름이 가득한 얼굴, 빼빼 말라서 뼈밖에 없는 가냘픈 손과 팔, 그리고 환자복도 너무 넉넉하다시피 훌렁 거리고 있는 그 처량한 여인이 자신의 여동생이었다. 그녀는 한참 동안 조용히 그를 훑어보다가 메마른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오빠…”
그녀는 비참한 미소를 지었다. 애써 얄팍해진 보조개를 보이며, 눈을 가늘게 초승달처럼 휘게 뜬 그 미소. 어릴 적에 연지는 곧잘 웃곤 했다. 사소한 것에 웃을 줄 아는 어린 소녀였다. 병약하고 남들이 줄곧 하던 평범함이 가끔 다가올 때마다 헤프게 웃는 아이, 그게 연지였다. 순수했던 그 시절의 행복을 강제적으로 보이려는 그녀의 모습이 미웠다.
“연지야…”
그는 말없이 울먹이는 목소리로 힘없는 그녀를 껴안았다. 한참 동안 남매는 말없이 서로를 껴안았다. 침묵의 상봉이 이어지다가, 그는 천천히 포옹을 끝내며 옆 침대에 내팽겨져있던 주스 박스세트를 침대 아래에 내려놓았다.
주스 상자를 보고는 그녀가 살며시 웃었다.
“오빠, 뭣 하러 주스를 사 왔어… 그 돈으로 맛있는 거 사 먹지.”
그녀의 대답에 한층 더 숙연해진 병실을 뒤로하고 간호사는 조용히 자리를 비웠다. 그는 한숨을 푹 내쉬면서 침대 옆의 의자에 앉아서 그녀의 머리부터 어깨, 배까지 조용히 만졌다. 여동생은 힘없이 그런 오빠를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난 이제 죽은 거나 마찬가지거든…더는 살아봤자…”
동생이 자살시도를 요즈음에 안 한 것은 아마도 이미 자기 자신을 죽었다고 여겨서인 걸까. 그는 그런 그녀를 바라보면 볼수록 더 마음이 아파졌다. 행패를 부리다시피 집을 뛰쳐나오고 가족을 멀리한 그가 이런 감정을 느낀다는 게 정상일지 비정상일지가 헷갈릴 정도로, 이 상황은 지극히 이상적이지가 않았다. 솔직히, 그가 이런 감정을 느끼는 것도 사치랄까. 그가 느껴야 하는 감정은 죄책감이었다, 그녀를 위한다는 동정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도, 어느 정도 그녀를 이토록 괴롭게 만들었으니까.
“그래도 그이를 너무 나쁘게 보지 마… 이혼은 했어도, 위자료뿐만 아니라 치료비도 꼬박꼬박 주고 있으니까.”
그녀는 바짝 마른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오빠를 쳐다보았다.
“의사가 말하는데… 오늘 하루를 버티기도 힘들 거 같데…”
4.
“암이 이제 아무 약에도 반응하지 않고, 할 수 있는 치료법도 이제는 없데. 요 며칠간 의사가 말하더라, 그나마 할 수 있는 걸 다 해보고, 이룰 수 있는 소원을 다 이루라고. 이제, 오늘이나 내일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상태니까.”
그는 말없이 계속 말을 하는 그녀를 쳐다보았다. 말하는 한순간, 순간이 그녀에게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마치 영광 속을 걷는 것 같았다. 비참하고 슬펐던 인생의 한쪽에서 그런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공간은 그저 축복이라고 말할 수밖에. 그는 아직 죽음을 알지 않는 사람이었기에, 그것이 동면 된 지옥이라 생각하겠지만- 왜냐하면 아무것도 느낄 수 없는 것이 너무 갑작스럽게 허무하고 죽음에 처한다고나 할까. 하지만 그녀는 죽음과 너무 가까웠기에, 그 동면이 축복이었다. 슬픔, 비극, 잃음도 이제는 없을 테니까. 그런 영광의 시간 속에서 그녀는 계속 말을 이었다.
“나 솔직히… 오빠를 많이 원망하기도 했다? 결혼식 때 못 오고, 내가 임신했을 때 그 기쁜 소식을 마땅히 알려줄 수도 없고, 남편이 날 힘들게 할 때 하소연을 하고 싶어도 없어서…”
그는 그런 그녀의 눈빛에 고개를 숙일 뿐이었다. 어떻게 변명을 할 도리도 없어 보였다. 그저 어머니의 죽음에 충격을 받아서, 자신도 문명사회에서 살면 저렇게 어느 순간에 갑작스럽게 사라질까 봐, 죽으면 모든 삶의 의미와 노력도 물거품이 될까 보라는 핑계로 더한 고통을 간접으로 경험하고 있는 그녀를 내친 것이 너무 의미 없어 보였다. 그래서, 그는 말없이 그녀가 원하는 지금 이 순간을 목격해주고 있다는 것으로 그나마 지금껏 없었던 도움의 손길로 여기고 있다. 그마저도 현실의 죄에 비하면 한참 볼품없을 테지만, 그는 오랜만에 사명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지금 보니까 미워해 봤자 좋을 건 없을 것 같아. 남편이 그런 것도 알면서 애써 제멋대로 더 괴롭게 하고, 스트레스받아서 결국 다시 찾아온 기회를 잘 관리하지 못하고 떠내 보낸 것… 모두 죗값을 치르고 있는 것 같아. 아니, 내가 죽어서 다시 고스란히 받을 죗값을 연습용으로 조금이나마 받는 거지.”
“나도 사실 그렇게 순수하고 착하게 인생을 살아온 것은 아니잖아. 언제는 오빠만 자전거 타게 해준다고 심술 나서 바퀴 바람 빼본 적도 있고…. 내가 상처받은 것도 알지만, 남편도 상처받고 나 때문에 괴로워하는 것에 일부러 고개를 돌리고 있었고…. 진통할 때 조금이라도 더 힘을 줬더라면 아기가 덜 힘들어서 살아남았을지도 모르고… 의사가 아이가 진통을 못 이겨내서 죽었다고 하더라고. 아니면 내가…애초에 어릴 때부터 더 건강해지려 노력했다면 이 모든 게 없었을지도 모르잖아…그냥 병약하다는 나 자신에게 협조해서 이렇게 살아왔다는 것일지도.”
“암 투병을 하면서도 실컷 제멋대로 행동했지. 난소하고 자궁제거수술 전에도 난 이게 사실이 아니고 너희가 내가 아기 더 못 가지게 그 자격을 아예 없애려고 그러는 거라고 행패를 부리거나…”
그녀는 한숨을 푹 내쉬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수술 끝나고는 또 뭐였나? 자살시도를 수없이 해보려고 해서 정신 병동에 실려 가기도 했지. 살 가치가 없어 보였다고 나에게는 정말 절망적이고 힘들고, 슬프고, 너무 의미 없어 보이는 고통이었어도 병원 사람들은 날 치료해 주려 했잖아? 그런 친절도 다 악으로 풀이하고, 사람들을 걱정하게 하고 괴롭히게 하고… 순수한 건 아니지…”
“연지야.”
그가 한참 동안 조용히 그녀의 한탄 섞인 이야기를 듣다가 고개를 휘저었다. 그는 그녀의 메마른 두 손을 꼭 쥐어 잡고 무거운 말을 풀어내기 시작한다.
“사람은 그렇게 연약한 거다. 나도, 정말 연약해서 아버지나 너를 두고 살아왔잖아. 괜히 무서워서 아버지 임종도 보러오지 않고, 어머니가 죽은 이후로 인생의 모든 것이 가치 없어 보이더라 적어도 계속 남을 위해서 살아보려 했잖아. 남들보다 병약하고, 평범한 것을 쉽게 이룰 수 없는 비극을 살아왔잖아. 이 세상 모든 것, 슬픈 것이나 무서운 것에서 행복을 찾으려 했잖아. 넌 그만큼, 다른 사람들에게서 존경받아 마땅해, 아무리 네가 남들을 힘겹게 했다고 생각해도.”
그는 살짝 미소를 지으면서 그녀를 다시금 끌어안았다. 여인은 숨을 푹 내쉬며 앙상한 손으로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녀의 입가에서 힘없으나 내면에서는 삶의 아름다움으로 가득한 미소가 만개했다.
“오빠도 정말 대단한 사람이야. 그렇게 무서워했던 죽음을 맞이해주고 있잖아. 나, 솔직히 죽는 게 무서운데…”
“이렇게 와줘서 고마워, 고마워…”
둘은 남매답게 여러 가지 공통성이 있어 보였다. 둘 다 한없이 연약하지만 동시에 강한 인간이었다. 둘 다 죽음을 맞이하는데 서로를 의지했다. 그는 죽음의 두려움을 자신의 죄책감과 그녀를 위한 마음에 이겨낼 수 있었고, 그녀는 그런 그의 마음을 느끼고서 삶을 조금이나마 더 평화롭게 맞이할 수 있었다.
5.
그는 오렌지 주스 두 병을 꺼내서 한병의 뚜껑을 탁하고 따내고는 동생의 입에 주스를 넣어주었다. 그 탁하는 소리와 함께 둘의 마음 깊이 뿌리 잡고 있던 그 두려움과 걱정이 조금이나마 사라지는듯했다. 연지는 한참 동안 주스를 받아마시다가 손을 들어서 오빠에게 그만하라는 듯한 신호를 주었다. 그녀는 오렌지 향이 나는 입을 탁 열고서 배시시 웃었다.
“오빠, 나 소원이 하나 있어.”
연지는 창밖을 훤히 쳐다보면서 중얼거렸다. 그러자 그는 애써 다정하게 웃으며 물었다.
“뭔데? 오빠가 해줄 수 있는 거라면 뭐든지 해줄게.”
그래야지, 그나마 그녀에게 준 나의 죄를 풀 수 있을 것만 같으니까. 이 죄의 무게가, 날 너무나 고통스럽게 으스러대니까.
“난…저 하늘을 마음껏 날고 싶어.”
그러자 그는 잠시 당황한 표정으로 동생을 바라보며 깊이 생각에 잠겼다.
“죽어서도 이 세상을 날아다니고 싶어."
그러자 그는 잠시 당황한 표정으로 동생을 바라보며 깊이 생각에 잠겼다.
“죽어서도 이 세상을 날아다니고 싶어. 내가 이생에서는 그렇게 원했던 것을 가진 적은 없어. 아기한테 너무 죄송한 엄마였고… 난 알고 있잖아, 오빠, 병약한 육체로 살아간다는 게 얼마나 힘든 건지를. 그런 데 있잖아, 난 그걸 알면서도 아기를 지켜내 주지 못했어. 조금이라도 더 버텨줬으면, 더 알아줬다면, 아기가 죽지도 않았을 것 같아.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을 알면서도 이해해주지 않으려 했고, 결국 모두에게 상처를 주기만 했고. 그러니까, 죽어서는 저 멀리 하늘을 훌훌 날아다니면서, 받는 것도 없이, 주는 것도 없이 지내고 싶어.”
연지는 그러다가 갑자기 눈물을 주르륵 흘리면서 이불을 부여잡았다. 힘없는 손으로 핏줄이 불끈하고 손에 드러날 정도로 그녀로선 거센 힘으로 이불을 잡고 있었다.
“아직…죽고 싶진 않아…이상하지? 나…죽고 싶지가 않아…아직 조금은 더 살고 싶어…”
그녀는 한참 동안 말없이 울었다. 어떤 인간이 그녀를 이해해줄 수 있을까. 신도, 종교인도, 그런 그녀의 바람을 들어줄 수나 있을까. 그녀는 무엇보다 죽음을 속이고 싶어하는 거잖아. 의사도 그녀를 더 이상은 도와줄 수 없다, 할 수 있는 치료와 현대 의학이 주는 도움을 다 퍼부은 이후. 그런데 백수에다 떠돌이생활의 그가, 과연 그녀를 도와줄 수 있을까? 일단 자신이 확실하게 해줄 수 있는 한 가지를 떠올리고는 말없이 그녀를 끌어안았다.
“연지야, 오빠가 해줄 수 있는 건 얼마 없어… 그런데…지금은 쉬자. 그냥 쉬자.”
그녀의 거친 숨이 점점 가라앉았고, 그는 지친 그녀를 천천히 토닥이며 재웠다. 그렇게, 창밖의 앙상한 겨울 나뭇가지에 있던 검은 까마귀도 푸드덕하고 날갯짓하며 떠나갔다. 그리고 그녀의 숨소리도 천천히, 마지막 자장가에 동요하듯이 잠들어가기 시작했다.
6.
그는 말없이 조그마한 소형 장례식장에 서 있었다. 그의 앞에는 새하얀 국화꽃이 끌어안은 연지의 사진이 걸려있었다. 병원 입원 당시에 찍은 사진을 쓴 것 같은 데, 그 사진에서만큼은 조금이나마 행복해 보였다. 아, 그때에는 지금처럼 암 치료를 위해서 머리를 밀지도 않았고, 덜 말라 있었을 테니까. 물론, 아이를 잃어가는 증세를 보이고서, 유산진단을 받은 직후라 좀 굳은 표정이었지만. 하지만 적어도, 그때에는 살아있었지 않던가.
아닌가, 살아있을 동안 더 괴로워했던 걸까. 연지는 그가 방문하고 마지막으로 끌어안아 주는 시간에 눈을 감았다. 아마도 의사가 예상한 시간을 뒤집고서 조금 전까지 살아있었던 이유가 자신을 보기 위해서였을까. 한참 동안 멍하니 그녀의 영정사진을 바라보다가 이내 한숨을 푹 내쉬면서 병원 내 장례식장을 나왔다. 고개를 돌리니까 바로 곁에 국화꽃을 들고서 그녀의 옛 남편이 서 있었다. 술이 아직 덜 깨 보이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말끔히 차려입은 모습이었다.
“지난번에는 미안했어요….”
그가 코를 훌쩍이며 말했다. 그는 확실히 숙연한 표정이었다. 그런 남편을 보고서 그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그리 냉정하게 욕하고 그랬더라도, 마음 깊이로는 그녀를 분명히 사랑했을 거다. 자신의 병적결함으로 그녀를 사랑하는 감정을 넘어선 강제성 위함은 분명 평생 모욕받아도 마땅하겠지만…솔직히 둘 다 그녀를 괴롭힌 입장이었기에 그는 애써 그를 내칠 마음이 들지 않았다. 내치고 그러는 건 그녀가 결정할 일이겠지.
“장례비는 제가 다 내겠습니다…염치없겠지만, 이혼하고 나서 편한 하루가 없었어요. 나 자신을 위해 위선적으로 그러는 것 같겠지만, 적어도 지금 제가 생각하기에는 그런 행동을 보이는 게 그나마 나을 것 같습니다.”
“잠깐, 그 전에 내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연지와 약속을 했거든요, 그 약속은 제가 들어줄 생각입니다.”
“…무슨…약속 말입니까?”
남편은 휘둥그런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중요한 약속이에요, 그걸 지켜주지 못하면 나도 편하게 잠 못 잘 것 같거든요.”
“혹시 제가 도와줄 수 있는 건 있겠습니까? 뭐라든 도와줄 수가 있을 게 있다면 해주겠습니다.”
“…당신이 도와줄 만한 건 아니라서, 별 도움은 필요 없습니다.”
그는 툭툭 털어내면서 몸을 일으켰다. 그는 장례식장 근처에 있는 영안실로 갈 마음이었다. 그곳에서, 그녀의 약속을 위해 특별한 일을 해줘야 했기 때문에. 지금 화를 내봤자 도움될 일이 없어 보였다. 그녀의 평화로운 죽음을 이렇게 망치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그놈도 잘 알고 있겠지, 얼마나 내가 화가 나 있는지를. 알고 있겠지, 무슨 잘못을 했는지를- 인생의 남은 시간을 회개하는 데에만 써도 갚지 못할만한 죄를 저질렀다는걸.
“윤리적으로는 나쁘겠지만… 자신이 원한 소원이니까 비윤리를 행할 각오는 충분히 돼 있습니다. 사실, 여태껏 바르게 살아온 것도 아니니까, 그리 어색할 것도 없죠.”
그리고 그는 멍한 표정으로 서 있는 남편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당신도 열심히 하고, 나도 열심히 죽음을 기리는 겁니다. 우리가 잘못한 것보다 더 열심히 그녀를 위해 살아가는 겁니다.”
7.
“레드 세 개 주세요.”
그는 편의점 계산대에 손을 얹으며 점원에게 중얼거렸다. 그러자 점원은 담배 세 갑을 그에게 넘기고 지폐를 받았다. 그는 애써 점원에 건네준 잔돈을 거절하며 재빨리 담배 세 갑을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지하철을 타고, 동네 버스를 타고서 다시 이 여행의 시작이었던 다리 밑으로 갔다. 다리 밑 개울가 곁에 앉아서, 텐트에 넣어놓았던 나무판자를 꺼냈다. 그는 정장 코트를 콘크리트 바닥에 깔아놓고, 나무판자를 놓았다. 그리고는 왼손에 종종 들고 있던 천으로 감싸 안은 항아리를 꺼냈다. 분홍색 천을 풀어내고는 조심스럽게 항아리 뚜껑을 열었다. 안으로 손을 넣자, 손바닥과 손금 사이에 새하얀 가루가 묻었다. 그녀가 남긴 흔적이었다.
“네 마지막 소원만큼은 오빠가 이루어줄게.”
그는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담뱃갑들을 꺼냈다. 그리고 널빤지 위에 한 담배 계비씩 나열해놓고, 하나하나씩 펼쳐냈다. 그는 조심스럽게 하얀 가루들을 모아서 담배 개비에 털어 넣었다. 모든 담배 개비에 가루들을 털어 넣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담배를 다시금 말기 시작했다. 접착제를 조그맣게 짜내서 살며시 조금씩 붙이는 거로 다시 담배를 말았다. 흘러내리지 않게 꾹꾹 모아서 압축시키고는 하나씩 고스란히 담뱃갑에 넣었다.
한참 동안 멍하니 그는 앉아서 개울가에 물이 흘러가는 것을 쭉 지켜보았다. 아무리 조금 도시에서 멀어진 동네라 한들 조금 녹물이 섞여 있어서 그리 좋은 풍경을 자아내는 곳은 아니었다. 그는 한숨을 푹 내쉬고는 담배 한 개비를 입에 물고, 다른 담배들은 주머니에 넣었다. 아직 다 쓰지 않은 항아리는 고이고이 텐트 안에 모셔놓고는 일어섰다. 편의점에서 며칠 전에 산 라이터를 꺼냈다.
툭툭, 하는 소리와 함께 불꽃이 담배 끄트머리에 타올랐다. 잿빛 연기를 너울거리며 담배는 타오르기 시작했다. 담배 연기가 모락모락 나면서 동시에 담배를 입에 문 입안 속으로 찌꺼기가 구석구석 들어가기 시작했다. 잇몸과 여러 군데에 뼈와 담뱃잎 찌꺼기가 껴간다.
천천히 개울가 곁을 걸으며 그는 중지와 검지 사이에 담배를 끼워 넣으면서 꺼냈다. 으하하, 쓴웃음소리와 함께 그는 담배 연기를 내뿜었다. 물과는 달리 아직 여전히 푸른 하늘 위로 연기가 그의 더러운 입안을 벗어나려는 듯이 재빨리 올라간다. 그런 연기의 춤을 바라보며 그는 씁쓸한 미소를 짓는다.
이렇게라도 소원을 이루어주는 나 자신이 한심하달까… 담배찌꺼기와 그녀의 남은 것이 입안에 남아서 그와 함께 살아감으로써 그녀도 같이 지낼 수 있게 하는 것과 연기와 함께 하늘을 향해 맘껏 뛰어가는 그 모습이 그가 고안해낸 소원의 답장이었다. 이렇게 볼품없는 방법으로 그녀를 위해서 한다는 것이 좋은 의미 위에 덧칠한 불완전한 쟁취가 그의 마음속을 정신없이 휘젓는다. 아, 그렇다고 그가 그 이상으로 해낼 방법이 있을까.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그 이상으로 마음을 교정시키며 살아갈 뿐. 그는 담배를 최대한 천천히 피웠다. 그러면 그녀가 더 그의 몸속에 오랫동안 쌓일 테고, 그가 세상을 떠도는 만큼 더 살아갈 수는 있을 테니까. 저 연기와 찌꺼기 형태로 아직 그녀는 살아있다.
죽음과 삶에 합리란 없었다. 그렇게 그는 자신의 방법을 그녀의 소원에 대한 최적인 답안이라 애써 생각했다. 솔직히 그도 이것이 정말로 좋은 방법인지가 헷갈렸다. 남들이 하는 것처럼 바다나 조금 더 큰 강가에 가서 유골을 뿌려주는 장례를 해야 했을까- 아니면 빈 항아리 대신 유골이 담긴 항아리를 장례식 관에 넣어 줘야 했던 걸까.
그런데 이미 그는 마음을 먹었다. 동생이 그동안 세상을 못 누리고 살아왔기에, 죽어서도 그렇게 갇혀 지내는 것은 영 좋은 방법이라 생각되질 않았다. 형태가 비록 그리 바람직하지 않아도, 그리 이상적이지 않아도, 그녀는 아직 그와 함께 세상을 살아가고 있었다. 그는 이 이상으로 죽음을 속일 방도가 생각나질 않았다. 이미 비윤리적인 인생을 사는 그에게 있어 이 방법은 그리 낯선 것은 아니었다만, 그 또한 그렇게 죽어가고 힘겹게 살아간 그녀처럼 인간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최대한 그녀의 소원을 잘 이뤄주었다고 생각하며, 담배를 계속 피웠다. 이곳도 곧 있으면 떠나야 할 것 같다. 여기서만 피워주면, 그녀가 살아있을 때와 달라 보이지 않아 보였기 때문에.
이혜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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