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이 두

by 재즈피플 posted Jan 26,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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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둑한 계단을 내려가 열쇠를 돌려 문을 열면 계단보다 더 어두운 공간이 마치 무저갱처럼 펼쳐졌다.

 

늘 -익숙한 위치이건만 꼭 한, 두 번은 더듬어 배전판을 열고- 스위치를 올리는 것은 오픈을 준비하는 나의 몫이었다.

 

그렇게 빛이 홀을 가득 채우면 붉은 카페트의 색감이 짙게 피어나며 농익은 장밋빛의 바에 핏기가 돌았다. 마지막으로 생명의 숨결을 불어넣는 행위는 언제나 음악이 흐르게 하는 것이다. 그다지 많지 않은, 그것도 대부분은 내가 직접 가져온 음반들 중에서 그때그때 간택을 받은 앨범은 오디오 플레이어 안으로 삼켜져 갔고 이윽고 흘러나오는 선율은 홀을 넘어 계단을 지나 바깥의 거리에까지 존재감을 드러내며 유혹의 속삭임처럼 퍼져나갔음을 기억한다.


지나가다가 그 음악에 취해 들어오는 사람은 많지 않았을 것이다.


대부분은 일주일에 적게는 한두 번에서 많게는 서너 번에 이르기까지 꾸준히 들르는 단골들이었고 그 단골들이 또 다른 사람을 데려와 그렇게 어떻게든 유지가 되어가는 바였다.


개인적 취향을 적용시킬 수 있었던지라 나는 그 무엇보다도 그 일을 좋아했다. 다행히도 바의 분위기를, 젊은 여사장의 말에 따르자면 ‘더욱 있어 보이게 하는’ 음악이어서 좀 더 수월하게 새벽을 보낼 수 있었다. 손님이 없을 때에는 잔을 닦고 청소를 하며 흥얼거릴 수 있다는 것은 젊은 날의 나태함과 열정의 경계를 찾는 나에게 너무나 매력적이었다.


뭐 사실 그렇게까지 대단한 음악은 아니었다. 약간의 재즈와 올드팝, 로큰롤과 하드록 정도였다. 헤비메탈은 꽤나 제재를 받았는데 그것도 어느 정도는 타협점이 존재했다. 예를 들어 ‘Fire House’를 선택하면 ‘Overnight Sensation'은 넘겨버리고 ’When I Look Into Your Eyes'를 튼다던가.


그렇게 음악을 틀며 손님을 맞이하고 칵테일을 제조하면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상당히 재미있는 일도 벌어지곤 했다.


내가 그 가게에 온 지 얼마 안 되어서 단골들이 올 때마다 사장이 직접 인사를 시켰던 때였다. 사장의 수완은 대단했던지라, 맥주를 간단히 마시고 일어서려는 손님을 자리에 끌어 앉혀서 결국 작은 사이즈의 국내산 위스키라도 따게 해야 직성이 풀리는 여자였다. 군대를 제대하고 복학을 준비하던 나보다 두 살이 많았으니 그 젊은 나이에, 그것도 IMF를 갓 벗어난 그 시기에 얼마나 혹독하게 살아남아 바를 운영해 왔는지를 온 몸으로 보여주는 여자였다.


그때 일주일에 한 번은 꼭 방문하던 당시 모 정당의 지역위원장이자 지역 유지이기도 했던 손님은 굉장한 음악적인 지식을 보유한 분이기도 했다.

아버지뻘인 당위원장은 통이 큰 사람이라 맥주를 마시는 법은 없었지만 그래도 자리에 앉으면 언제나 사장이 직접 상대하였다.

 

난 앞으로 잘 부탁한다는 인사를 꾸벅 드리고 Eagles의 앨범을 플레이어에 넣고 다른 일을 하고 있었다.


“어? Eagles네? 이 바에서 Hotel Califonia가 드디어 나오네. 사장, 이번에 음악에 관심 좀 가졌나?”


“아니에요, 새로 온 저 바텐더가 어울리는 음악을 몇 개 집에서 가져왔는데 마침 우리 바의 분위기와 잘 맞아서 틀어놓고 있어요.”


그는 유심히 나를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손짓으로 나를 불렀다.


“자네, 음악 좀 좋아하나?”


“네, 많이는 아니어도 열심히 듣고 배우고 있습니다.”


“그런데, Eagles의 저 기타리스트가 누군지 알아?”


“조 월시죠. 다른 기타리스트는 돈 펠더고요. 베이스는 티모시 B. 슈미츠, 드럼 겸 보컬로 돈 헨리죠.”


“그래그래, 이 부분에서 말이야 지금 기타로 추임새를 둘이서 넣고 있잖아. 여기서 플랫을 길게 끌면서 필링을 넣는 거거든”


“솔로를 돈 펠더가 먼저 치잖아요, 그 뒤로 조 월시가 거칠게 들어오면서 바로 나도 같이 놀자며 주고 받는 게 진짜 황홀하죠.”


“이야, 드디어 여기에서 말이 통하는 사람이 나타났구만. 그럼 Deep Purple도 좋아하나?”


“네. 아주 좋아합니다.”


“그래, 뭐를 좋아하는데?”


“Highway star나 Burn을 좋아합니다.”


“아직 어리긴 어리구만. Deep Purple하면 April이나 Chind In Time이지.”


한 동안 음악에 대해 이야기하다보니 사장은 흥미가 떨어졌는지 자리를 피했다. 나는 그런 사장의 눈치를 보면서 가게 월 매출에 큰 영향을 끼치는 이 손님의 기분까지 상하지 않게 맞추느라 곤욕이었다.

놀라운 일은 그 다음에 일어났다. 음악 이야기를 실컷 하고 계산을 하면서 그 당위원장은 10만원의 수표를 꺼내 내 와이셔츠 주머니에 집어넣는 것이었다.


“음악 값이야. 음악 값. 집에 Led Zeppelin도 있지? 다음에 가져다 놔.”


작은 양주와 기본 안주로 술값이 7만원 대였는데 나에게 준 팁이 10만원이었다. 어안이 벙벙할 정도로 놀랬지만 사장의 웃음을 보고는 넙죽 고개 숙이며 감사함을 표했다. 그때 내 월급이 80만원이었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지나가면서 꽤나 두둑한 수입을 올릴 수 있었다. 당위원장이 데려온 지인들도 모두 그렇게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었던지라 나는 매일매일 피나게 음악을 들으며 공부를 했다. 적어도 그들의 말에 살을 붙여 호응을 할 수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우연히 들른 손님들 중에서도 그 작은 바가 가지는 음악적 분위기에 매료되어 자주 들르는 사람들이 생겼다.

골목에 위치했지만 꽤나 고급스런 동네의 경계 부분인지라 그들은 팁에 매우 관대했고, 새파랗게 어린 청년이 Rolling stones를 거슬러 올라가 Patti Page를 이야기하면 매우 즐거워했다.


Bob Dylan의 Knocking On Heaven's Door가 끝나자 10만원을 주며 다시 틀어달라고 했던 40대 후반의 변호사도 있었다.

그는 곡이 끝날 때마다 10만원을 주며 ‘한 번 더’를 주문했다.

3번을 다시 틀고 난 30만원을 받았고, 그는 지갑에 남은 현금이 10만원이 채 안되자 돈을 찾겠다며 취한 몸을 이끌고 나가려고 해서 간신히 자리에 앉히기도 했다.

사장은 자연스레 음악을 좋아하는, -그리고 나이가 지긋한- 손님들이 오면 나에게 떠 넘겼고 나는 내심 그것을 즐기며 기묘한 성취감을 맛보았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나는 Beatles의 싱글 모음집을 플레이하며 손님들과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당시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있던 때라 손님이 문을 열면 문에 달아 놓은 작은 종이 소리를 냈고 울리는 종소리에 반사적으로 인사를 하고 손님을 바라본 순간, 꽤나 난감함이 머리를 채웠다.


손님의 나이는 50대 후반정도로 보였고 잔뜩 때 묻은 회색 바지와 형광색 점퍼, 깊게 눌러 쓴 모자는 챙이 헤져 있었다. 여기 저기 묻은 얼룩은 그 손님을 더욱 이 공간과 분리시키게 했다. 아니, 솔직히 손님이라 생각하기도 어려웠다.

그래도 나름 이 가게에서 어느 정도 시간을 보낸지라 이런 유형의 손님, 아니 불청객을 대한 경험이 있었기에 겁은 나지 않았으나 지독히 짜증이 났다.

아마도 분명히 바에서 팔지 않는 소주를 달라고 할 것이었다. 그 정도면 차라리 다행이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거나 메뉴판을 보면서 ‘왜 이렇게 비싸냐’, ‘바가지이거나 사기꾼들 아니냐’며 소란을 피우는 경우도 있었다.


사실은 그 손님으로 인해 ‘내 고객’들과의 대화가 끊긴다는 것이 더 화가 났다. 저런 손님도 분명히 남자인 내가 상대해야 하는 부분이었고, 그렇게 양 쪽을 상대하다 보면 내 고객들은 얼추 자리를 파하고 일어설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 당연히 팁을 받기도 어려워진다.


그 불청객은 한참을 눈치를 보다가 주뼛거리며 바의 가장 모퉁이에 앉았고, 또 다른 선입견은 현실이 되어 음식물 쓰레기에서 나는 듯한 냄새가 주변을 채웠다.


“어서 오세요. 천천히 고르십시오.”


아마 내 웃음은 시멘트벽에 못으로 새긴 그림처럼 형편없었을 것이다. 그래도 그런 억지웃음이라도 당신에게 보이는 것이 어디냐. 나는 프로다.


그가 눈치를 보며 조용히 주문한 것은 맥주 1병, 그것도 국산 맥주로 4천원이었다. 터져나오는 한숨은 실망이 아닌 다행의 한숨이었다. 소주가 없다고 투덜대는 것보다야 백배 나았기 때문이다.

기본 안주로 제공되는 땅콩을 작은 접시에 담아서 부리나케 내어주고는 나는 다시 진정한 내 고객들 사이로 들어갔다. Beatles의 음악을 들으며, 존 레넌과 폴 메카트니 중 누가 진짜 사운드의 핵이었는가를 놓고 싸우는 그 전장 속으로 말이다.


그 불청객은 전투가 소강되고 싱글 모음곡이 한 바퀴 더 돌 때 쯤 맥주 한 병을 추가로 주문했다. 그의 앞에 놓인 땅콩이 언제 비었는지도 몰랐다. 조금은 미안한 마음에 마른 오징어포를 땅콩 옆에 약간 놓았다.

다시 각 곡을 놓고 각자의 의견이 설전으로 번져갈 때 그가 벗어둔 형광색 점퍼를 주섬주섬 입었다.


“네, 8천원입니다.”


그는 가만히 주머니에서 지폐를 꺼내어 정확히 확인한 후 나에게 주었다.


“감사합니다. 또 오십시오.”


나는 프로답게 끝까지 못으로 새긴 억지 미소로 그 불청객을 보냈다.

그리고 다시금 참여한 전장에서는 ‘Beatles의 사운드의 핵은 결국 Beatles 그 자체였다’는 뻔한 결론이 나왔고, 중간에서 전장을 조율한 대가로 나는 팁 15만원을 받았다.


그 후로도 그 불청객은 잊을 만하면 한 번 씩 방문을 했다. 그가 불청객에서 ‘조용한 손님’으로, 내 머릿속의 방문자 리스트에서 격상되기 까지는 아마도 두어 달은 걸렸으리라. 그는 늘 조용히 문을 열고 들어와 맥주를 두 병, 가끔 세 병을 마시고는 한 마디 말도 없이 묵묵히 담배만 태우다가 돌아갔다. 아주 가끔 무엇인가를 말하려 하는 듯 했으나 다시 입 속으로 집어넣고는 묵묵히 술만 마셨다.

나도 경계를 풀고는 시멘트벽에 새길 정도까지는 아닌, 크레파스로 유치원생이 간신히 그린 정도의 웃음으로 환영했고, 적어도 땅콩이 떨어지지 않게끔 신경은 썼었다. 예를 들어 세 병째 마실 때에는 마른 김이나 오징어포를 더 놓아준다던가.

그것으로 스스로의 프로의식에 충분히 점수를 후히 주어가면서.




그가 나에게 말을 건 그 날을 분명히 기억한다.


그 날은 구정 연휴에서도 설날 바로 전의 휴일이었다. 긴 연휴 중에도 바에서는 명절 당일만 쉬는지라 은근히 짜증도 났다.

게다가 그 연휴 전날은 너무나 손님이 없어 일찌감치 사장은 나가고 나 혼자 바를 지키고 있었다. 물론 사장은 손님이 없으면 새벽 1시까지만 지키다가 가라고 이야기는 했지만, 막상 홀로 자취를 하는 나에겐 새벽 4시에 가나, 1시에 가나 그다지 위로가 되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여하간 Queen의 앨범이 돌아갔을 것이다. 밖은 굉장히 추웠고, 가끔 담배를 피우러 나갈 때 마다 ‘집에 갈 때 택시가 잘 잡혀야 할텐데..’하는 생각을 했을 정도로 골목의 인적은 끊겨 있었다.

하릴없이 칵테일 책을 꺼내어 조주기능사의 실기시험 종목의 레시피를 뒤적이고 있을 때, 문의 종이 울렸다.


“어서 오세요.”


그였다. 이젠 불청객은 아니고, 조용한 손님인 그였다.


여전히 크게 달라지지 않은 복장으로 익숙한 악취를 풍기며 그는 맨 구석에 앉았다. 마치 지정석인양 늘 앉는 그 자리.

팁이라도 줄 수 있는 손님이기를 잠시나마 바랐지만 그런 기대는 금방 사라졌고, 따뜻한 물을 한 잔 따라주면서 나는 나의 '무료함'을 이 손님에 대한 '무례함'으로 달랠 짓궂은 생각마저 가지고 있었다.


“추운 날씨네요. 사장님은 이번 연휴에 고향에 내려가지 않으시나 보네요.”


예의를 가장한 첫 포문. 내심 그가 어떻게 말을 이어갈지 기대가 되었다.

그러나 그는 빤히 나를 쳐다보는가 싶더니 눈을 내려 머뭇거리며 메뉴판을 훑었다. 무언가 대응이 없자 나는 초조해져 갔다.

가끔 손님에게 친절하게 인사하고 다가서도 말이 없거나, ‘날 내버려 두시오.’같은 표정으로 쳐다보면 가만히 뒤로 물러서 손님의 공간과 시간을 온전히 배려하는 게 바텐더의 기본 소양이기도 했지만, 난 이 손님의 ‘무언’이 ‘식언’으로 느껴져 잠시 불쾌감이 피어올랐다.

그래서 재차 말을 걸었다.


“늘 드시는 맥주로 준비해 드릴까요?”


그는 잠시 눈을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거기에는 약간의 경계심과 의문이 담겨 있었다. 그는 짧게 “네.”라고 대답했고 나는 익숙하게 맥주 한 병과 약간의 땅콩을 내어놓았다.


오히려 그의 짧은 대답이 나를 침묵하게 했다.


무엇인가 이어갈 만한 주제를 찾을 수 없었다. 바에 가만히 앉아 있는 말 없는 손님이란 것은 마치 감시탑처럼 나를 자유롭지 못하게 하였다. 단지 존재만으로 난 선제공격도 실패한 채 주도권을 내준 셈이다. 최소한 비기기라도 해야겠기에, 난 음악에 억지로 몰두하며 그저 곁눈질로 그의 땅콩 접시가 얼마큼 비었는지 간간히 확인하고 있었다.


“저기 사장님, 맥주 한 병 더 주시오.”


그의 주문에 나는 새로이 맥주를 꺼내들고 약간의 오징어포를 접시에 담아 그의 앞에 놓았다.


“저기 사장님..”


뒤돌아서는 나를 붙잡는 그의 목소리는 묘하게 떨려 있었다.


“저는 사장이 아니에요. 편하게 바텐더라 불러주세요.”


그는 잠시 호흡을 가다듬더니 내 허리께에 시선을 두며 작게 말했다.


“그럼 선생님, 선생님과 이야기 하려면 돈을 내야 하나요?”


그만큼 곤혹스런 말이 없었다. 나의 무례함은 단 한 번에 박살이 나고 말았다. 나는 나의 치졸하고 못된 심성이 그대로 몸에 새겨진 채로 대로변에 발가벗겨진 듯 한 느낌을 받았다.

물론 그는 나의 무례함, 자신에게 주는 일종의 ‘무시’를 비꼬려 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가끔 자신이 자신과 어울리지 않는 것 같은 (그조차도 나의 선입견이다.) 곳에 있는 것에 대해, 먼저 어떤 ‘규칙’이나 ‘룰’을 알고 싶어 했던 것이다.

마침 내가 홀로 있는 지금이 최적의 시간이었을 뿐이다.


나는 한참을 머뭇거렸다. 어떻게 대답을 할까, 물론 ‘아니오, 그렇지 않습니다.’가 정답이지만, 단지 그것으로 매듭지을 질문은 아니다.


“저는 선생님도 아닙니다. 그냥 바텐더입니다. 편하게 말씀해주세요.”


“아니, 나이도 어리신 분이 미국 노래도 많이 알고, 높은 사람 같은 분들과 이야기도 척척 하시는 게, 나 같은 사람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아주 박식하니 선생님은 선생님이지요.”


아마 내 얼굴은 바닥의 카펫만큼이나 빨갛게 달아올랐을 것이다. 얼굴 표면에서 그 뜨거운 온도가 느껴질 정도였다.


“저기 선생님, 노래를 하나 틀어주면 안될까요?”


“어떤 노래 말씀이세요? 저희가 가지고 있는 것이라면 당연히 틀어드립니다.”


그는 다시금 우물쭈물했다. 나는 내 무례함을 사과하는 의미로 사과 한 알을 들고 와서 조심스레 깎아 접시에 담았다.


“편하게 드세요. 그나저나 어떤 노래인지 말씀해 주시면...”


그는 멋쩍은 듯이 한참을 바닥을 내려보다가 사과를 쳐다보다가를 반복하다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그, 여기 자주 오는 게 그 노래 때문인데요. 다른 노래도 좋은데 가끔 그 노래가 나오면 그렇게 좋아요. 미국노래 같은데, ‘헤이 두~’하고 부르는 노래 있잖아요.”


비틀즈가 영국 국적인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의 입에서 창피해 하면서 슬며시 나온 ‘따라라라’는 분명히 Hey Jude였다.


나는 그 순간만큼은 나의 얕은 지식으로 ‘Beatles라는 영국 그룹이고 대표곡인 Hey Jude입니다.’라고 정정해 줄 정도로 뻔뻔하지 못했고 그저 조용히 그 곡을 꺼내어 플레이어에 올려놓았다.


“내가 전에 이 앞을 지나가는데 이 노래가 나오는 거예요. 참 좋아서 한참을 들었죠. 그리고 며칠 후에 지나가는데 또 이 노래가 나오는 거예요. 몇 번을 들어갈까 말까 생각하다가 큰 맘먹고 들어갔지요. 이런데는 왜 '테레비'에서나 보는 곳이니까.”


'테레비'는 커녕 그저 골목 어귀에 있는 지하의 작은 바일뿐이고 그 날은 존 레넌과 폴 메카트니가 전쟁을 벌이던 날이었으리라.

곡이 끝나자마자 나는 다시 한 번 노래를 틀었다.


“내가 이 노래를 들을 때, 뭐가 좋았냐면, ‘헤이 두~’하고 노래가 나오잖아요. 계속 ‘헤이 두~’하면서 이야기를 하듯이.”


그는 주섬주섬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고 나는 바람도 없는 실내이지만 두 손을 모아 불을 붙여 주었다. 그는 고맙다며 고개를 한 번 숙이고 말을 이어갔다.


“내 이름에 ‘두’자가 들어간단 말이예요. 내 이름이 ‘경두’요. 그래서 가만히 노래를 듣고 있는데, ‘헤이 두~’하면서 나오는 게 ‘야 경두야, 너 지금껏 어떻게 살았냐. 너 많이 힘들게 살았냐.’ 하고 말하는 것 같은 거예요.”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의 그 음악에 대한 느낌과 삶에 대한 투영에 감히 무어라 맞장구를 칠 수가 없었다.


“내가 청과물 시장에서 나온 여러 채소나 과일 쓰레기들을 치우는 일을 해요. 요즘 사람들 보면 누구나 ‘야 나도 한때는 사업을 했는데 IMF때 망해서...’하는 거짓부렁도 친다지만, 나는 한 번도 사업도 해본 적이 없고 그냥 늘 그런저런 일들을 하다가 이렇게 살아왔지요.”


나는 조용히 경청했다.


“그런데 노래가 그저 ‘경두야 너 힘들지?’라고만 하는 게 아니라 가만히 들어보니 ‘그래도 아직 살만하지 않니, 열심히 살다보면 뭐라도 하나 만드는 날이 오지 않겠니. 지금까지 산 것처럼 그렇게 힘내서 살아라. 좋아진다.’ 하더라구요. 물론 난 미국말을 모르니 원래 뜻도 모르지만, 그렇게 위로가 됩디다.”


나는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다시 반복한 노래가 끝나자, 나는 손님의 말을 듣고 떠오른 곡인 Let It Be를 틀었다.


“선생님도 한 잔 하시지요.”


그는 나에게 술을 권했다. 내가 다른 손님들과 이야기를 하며 그들이 권한 술을 많이 마시는 것을 봤을 터였다. 나는 잔을 가져와 그가 따라주는 맥주를 두 손으로 감사히 받았다.


“이 노래도 좋아요. 분명히 살아오면서 ‘헤이 두’랑 이 노래는 라디오에서라도 몇 번을 들어보기야 했을 텐데, ‘누구의 무슨 노래입니다.’ 라고 말을 해도 알 수가 있어야지.”


평상시에도 달변이라 자신했던 나였건만, 간신히 입 밖으로 나온 말은 고작 한마디 였다.

 

“언제든 여기에 오시면 말씀만 해 주세요. 제가 바로 틀어드리겠습니다.”


그는 환하게 웃었다. 그리고 술값을 계산했다. 8천원이었다.

그는 만원을 주며 2천원은 담뱃값을 하라고 하였다. 아마 팁에 대해서도 곁눈질로 충분히 봤을 것이다. 다만 그는 그 말을 꺼내면서도 금액의 단위때문에 매우 멋쩍어했다.  나는 고개를 깊게 숙이며 처음부터 끝까지 몇 번을 망설였을 그에게 감사함을 표했다.


단순한 감성에서 나온 것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나의 무례함을 벗겨주고, 음악은 귀와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들을 때 제일 감동스럽다는 것을 다시금 일깨워준 그에 대한 고마움이었다.

그 날의 유일한 손님은 결국 그뿐이었고 그가 돌아간 후, 문을 닫을때까지 다른 앨범으로 바꾸지 않았다.


이후로도 그는 자주 가게를 들렀다. 난 다른 손님과 이야기를 하다가도 꼭 가서 정중하게 인사를 했고, 알아서 그가 원하는 노래를 틀어 주었다. 사장의 눈치를 적당히 봐가며 사과를 깎아 그의 자리에 놓아주었으며 최대한 그의 자리 앞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도 그날 이후로 좀 더 편하게 나를 찾았다. 언제나 맥주 한 잔을 따라주면서. 그리고 두 병을 마신 날은 만원을, 세 병을 마신 날은 만오천원을 주며 언제나 나의 담뱃값을 신경써주었다. 간이 안 좋아 수술을 받은 적이 있다는 그는 절대 그 이상은 마시지 않았었다.


어느 날에는 그의 노래인 Hey Jude를 틀었을 때 당위원장이 불평을 늘어놓은 적도 있었다. 아까부터 돌아가는 RAINBOW의 노래를 쭈욱 듣고 있는데 갑자기 왜 끊느냐는 것이었다. 언제나 두둑했던 ‘내 고객’의 화에 나는 당황해서 사과를 하였다.


그때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 당위원장에게 다가갔다.


나는 적잖이 놀랐다. 그러나 그는 너무나도 매끄럽게 ‘자신이 너무 좋아하는 노래인지라 신청했노라.’고 말했다. 당위원장도 내심 당황했는지, ‘아닙니다. 제가 오히려 신청곡이 있는 줄 모르고 실수를 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좋은 음악은 언제 들어도 좋습니다.’라며 손수 그의 잔에 술을 따라 주었었다.

집에서 테이프에 Beatles의 싱글모음집을 녹음해 주었을 때의 그의 환한 미소는 지금도 기억한다.


“선생님 덕분에 방에서도 카세트로 틀어놓을 수 있겠네요.”


새파란 아들 뻘인 나에게 제발 ‘선생님’이라는 말을 하지 말아달라고 몇 번을 부탁했건만, 그는 언제나 나를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나와 이야기 하는 여러 손님들 중에서 유일하게 나에게 존댓말을 쓰는 이였다.


단 한번, 그가 다른 사람을 데리고 온 적도 있었다. 이미 어디 곱창집에서 한 잔 걸친 듯 했다. 같이 일하는 동료인 듯하였고, 서로 이야기를 해가며 맥주를 마셨다.

같이 온 손님은 적잖이 분위기가 신경이 쓰이는지 끊임없이 몸을 움직이며 불편해 했고 그가 몸을 뒤척일 때마다 곱창냄새가 진하게 풍겨왔지만 오히려 난 재미있었다. 생소한 분위기와 어려운 노래를 못 이기고 그 손님은 서둘러 돌아갔지만, 그는 그날 문을 닫을 때까지 나와 함께 하였다. 그리고 나는 언제나 나를 찾아주고 나를 좋아해주는 그를 위해 곱창냄새만큼이나 진득한 해장국을 대접하였다.


물론 내 신경이 그에게만 집중된 것은 아니었다. 바는 여전히 단골들로 북적였고, 단골들 중 누가 빠져도 새로운 단골이 생겨났기에 나는 언제나 바빴다. 그가 오는 타이밍이 조금씩 길어지는 것도 눈치 못 챌 정도로 말이다.



 

그의 이야기를 들었던 것은 분명히 구정 전날로 기억하는데, 지금 하려는 이야기는 언제쯤인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아마도 분명히 겨울은 아닌 듯한데, 추석은 지났었고.

여느 때처럼 오픈을 하고 홀로 바를 정리하고 있을 때였다.


문이 열리고 들어온 손님은 다짜고짜 앉아서 나를 빤히 쳐다봤다. 나는 적잖이 당황했으나 그 손님의 몸에서 나는 냄새로 인해 예전에 그와 함께 왔던, 따분하고 불편한 기색을 온몸으로 표현하던 손님임을 알아챘다.


“어서오세요.”


한동안 오지 않던 그의 안부가 궁금했으므로 나는 그에게 따뜻한 물을 건네며 물어보려 했었다.


“내가 한번 온 걸 기억하는구만요.”


“아, 네.”


그 손님은 물을 마시더니, 마치 그 때 그가 그랬던 것처럼 한참을 망설이다가 말을 꺼냈다.


“전에 경두가 여기에서 선생님이 녹음해 준 음악을 아주 좋아라 했지요.”


“네. 요새 그렇잖아도 그 분이 꽤 안보이셔서...”


“선생님, 죄송한데 부탁이 있는디...”


그가 얼마나 이 바와 나에 대해 이야기를 했는지 두 번째 찾아온 이 손님도 나를 ‘선생님’으로 부르고 있었다.


“네, 말씀만 해 주십시오.”


“전에 경두에게 녹음해 준 그 음악이 난 뭔지 모르것는데, 그것을 하나 다시 녹음해 줄 수 있을랑가 모르것소.”


나는 묵묵히 그를 쳐다보았다. 내가 먼저 묻고 싶은 말은 어느새 사라졌다. 그는 그 전보다 더 불편해하고 있었다. 그것이 분명히 이 바와 낯 설은 분위기, 음악 때문은 아니었다.


“경두가 시방 좀 멀리 갈 일이 생길 것 같은디, 선생님에게 받은 테이프가 암만 찾아도 없다고 해서 내가 좀 부탁할라 왔는디...”


두서없는 말이었다. 왜 그가 직접 오지 않았는지, 항상 집에서 듣던 테이프가 왜 없어졌는지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다만, 내 앞의 손님은 그렇게만 말하는 것도 매우 필사적인 듯했다.


“네, 그럼 언제 받으러 오시겠습니까?”


“내일이라도 들러도 되것습니까?”


“네, 준비해 놓을게요. 내일 바로 들러 주십시오,”


그는 인사를 하고 나갔다. 나는 그날 퇴근 후 오디오데크에 공테잎을 넣으며 생각했다. 정리하고 고향을 급히 내려가는 것일까, 혹은 뭐 원양어선이나 해외로 나가서 일을 하는 것일까.

물론 그 이상을 알아야 할 필요도 없었고, 다시 올 일이 있으면 반가이 맞이하며 물어보면 될 일이었다. 한글로 발음이 나는대로 제목을 트랙리스트에 적었다. Hey Jude에서는 한참을 고민하다가 ‘헤이 두’로 적으며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다음 날, 녹음을 부탁했던 그 손님이 와서 테이프를 받았다.


“선생님, 번거롭게 혔습니다.”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그 분이 어디 멀리 가실 일이 생기셨나 봅니다.”


그는 돌아서다 멈췄다.


“뭐, 이젠 안아프고 이 노래를 실컷 들을테니 차라리 잘 된 일이제... 입만 열면 헤이 두를 징하게 찾지 않았것소. 건강하시요이.”


그는 그대로 문을 열고 밖을 나갔다. 나는 차마 배웅도 못했다.


2003년 11월의 어느 날, 신정역에서 조금 더 올라간 지하의 바에서 Beatles의 The Long And Winding Road가 몇번이고 거리로 흘러나오고 있었을 것이다.


-끝-



장재원 (darkthrone@naver.com , 010-2393-71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