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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예은 posted Feb 06,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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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머리가 눈 밑까지 내려오는 소년이 흔들의자를 간헐적으로 흔들며 히죽히죽 웃고 있었다. 반면에 원탁의 맞은편에 앉은 소녀는 우아하게 차를 마시며 마치 여유를 부리는 것 같았지만 가끔 떨리는 눈꺼풀이 소녀가 얼마나 긴장했는지 보여주었다. 옆에 앉은 뚱뚱한 남자도 손톱을 만지작거리며 초조한 듯 다리를 양옆으로 흔들었다. 분명히 소년이 들고 있는 총의 총구는 소년의 머리를 겨냥하고 있는대도 말이다

차가 참 좋군요.”

소년이 다른 손으로 쥐고 있던 찻잔을 위아래로 흔들며 말했다. 덕분에 찻잔 끝에서 찰랑거리던 차가 소년의 옷에 얼룩을 남기며 쏟아졌다. 꽤 많은 양의 차가 쏟아졌는데도 뜨겁지도 않은지 닦을 생각도 하지 않았다.

 “이제 그만하지.”

둔탁한 목소리를 가진 뚱뚱한 남자 입을 열었다.

우릴 말려 죽일 셈이야?

에이, 정말 차가운 분이시군요. 전 그냥 아가씨가 준 차를 칭찬한 것 뿐인데 말이죠.”

소년이 차가 반 정도 들어있는 찻잔에서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는 시늉을 했다.

하지만 뭐, 이 가련하디가련한 소년이 스스로 방아쇠를 당기는 걸 정 원하신다면야, 할 수 없죠.”

가련은 무슨….”

여태 얌전히 차만 홀짝이고 있던 소녀가 어이없다는 듯이 콧방귀를 뀌자 소년이 흘긋 흘겨보고는 이윽고 방아쇠를 당겼다. 총구는 여전히 소년이 관자놀이에 꾸욱 눌러진 채로 귀를 먹먹하게 할 정도의 총성과 함께 가느다란 연기를 토해냈다. 총성은 곧 열성적으로 치는 소년의 박수 소리와 낄낄 거리는 웃음소리에 묻혀버렸지만. 웃음은 낄낄보다는 끅끅거리는 소리에 더 가까웠다. 마치 동물원의 원숭이 소리처럼.

결국 총알은 7곱 번째 구멍, 제 세 번째 차례에 있었습니다. 이번에도 제가 말한 대로 되었군요. 언제나처럼 조금 변형된 러시안 룰렛게임은 제 승리입니다. 아 하긴, 제가 승리하지 않았던 게임이 있기나 했나요.”

포커카드, 세 번째 게임. 그리고 3인 체스 첫 번째, 여섯번째 게임.”

소녀가 나지막이 말했다.

에이, 쪼잔하게 원 카드하고 체스 몇 번 진 거 가지고 그러지 마세요그나저나 이제 이것들이 모두 제 것이란 말이죠? 오늘은 특히 더 반짝거리는 게 많아 보이네요.”

소년이 탁자 위로 폴짝 뛰어올라 원탁 중심에 수북이 쌓인 온갖 장신구를 휘저었다. 빛을 아름답게 반사하는 다이아몬드가 박힌 목걸이, 다른 석류석과 어우러져 더 아름답게 빛나는 루비까지 온 세상의 값진 것들은 모두 모아놓은 것처럼 보였다. 장신구 뿐만이 아니라 고급스러운 다기로 된 찻잔과 주전자, 심지어 와인까지 있었다. 소년은 그것들을 두 손으로 자신이 앉는 흔들의자 앞으로 모두 쓸어버렸다. 장신구들이 모두 와르르 쏟아지고 찻잔과 주전자가 쨍그랑 소리를 내며 금이 갔다. 와인병은 밑이 깨져 금세 붉은빛 액체를 흘려보냈다.

미친놈.”

뚱뚱한 남자가 작게 중얼거렸다.

그리고 여러분은 그 미친놈한테조차 이기지 못한 거고요.”

소년이 능글능글한 미소를 지었다.

이제 러시안 룰렛게임에서 총알이 어디에 들어있는지 맞추는 것도 슬슬 질리기 시작했어.”

남자가 소년을 가볍게 무시하며 말했다.

그럼 포커게임이라도 할까요?

아니. 카드게임도 이제 질렸어. 트럼프 모양만 봐도 진절머리가 날 지경이라고. 그러니까 이제 그만해.”

아까부터 그만해, 그만해. 그 소리밖에 안 하시네요.”

소년이 투덜대며 주전자에서 트럼프 카드를 계속 꺼내던 것을 멈추었다.

그러면….”

소녀가 차를 한 모금 마시고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러면 이런 건 어때요? 지금까지 했던 게임의 종류는 원탁에 앉아 머리나 굴리는 게임들뿐이었으니 질리는 게 당연해요. 이번엔 우리가 직접 뛰는 거죠.”

직접 뛰어? 난 땀 흘리는 건 질색이라고.”

저도 스포츠에는 별로 관심 없습니다. 세 명이서 할 수 있는 스포츠가 흔한 것도 아니구요.”

스포츠를 하자는 게 아니에요. 저도 운동을 좋아하는 편이 아니니까. 대신 우리 때문에 꺅꺅거리는 모습도 보고, 게임도 하고, 머리만 쓰는 게 아니라 우리가 직접 무언가를 하면 더 재밌지 않겠느냐는 거죠.”

그래서 결국 무슨 게임인데?

소녀는 이번에도 차를 마시며 뜸을 들였다.

인간을.. 누가누가 빨리, 완벽하게 멸종시키나.”

소녀가 찻잔을 내려놓고 눈꼬리를 접으며 싱긋 웃었다.


 

소녀가 이번 게임을 제안한 데에는 다 뜻이 있었다. 소녀는 카드게임 등에 익숙지 않았던 터라 내기를 하는 종종 지기 일쑤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무언가를 없애는 데는 소녀도 자신이 있다. 게다가 누가 더 빨리 멸종시키느냐가 조건. 첫 번째 주자인 소녀가 성공한다면 다른 이가 시도할 것도 없이 소녀의 승리. 조금 치사하지만 더이상의 예쁜 찻잔과 주전자를 잃는 건 싫다. 소녀는 언뜻 보면 평화로워 보이는 지구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여러 가지 소음이 한데 뭉쳐져 있는 가운데 어느 대륙에서 열심히 강의하고 있는 교수가 눈에 띄었다. 강의 제목은 ‘죽음’. 오늘 같은 날에 정말 딱 들어맞는 강의 제목이라고 생각하며 잠시 귀를 기울여 보았다.

“…… 여러분은 자신의 죽음을 떠올리면서 무엇을 봅니까? 여기 있는 대부분의 학생들은 늙어서 편안하게 가족 품에서 죽는 장면을 떠올리겠죠. 학생들뿐만이 아니라 아마 지구상에 있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그럴 겁니다. 바로 여러분의 그런 안일한 생각 때문에 매년 엄청난 횟수의 사고로 사람들이 목숨을 잃게 되는 겁니다. 나는 아니겠지. 심지어 눈앞에서 사고를 봐도 내 죽음은 저렇지 않을 거야. 안 좋은 기억이니 얼른 잊어버리자. 이런 생각을 품고 지내니까 서로 조심하지 않죠. 서로 조심하지 않으니 결국 사고가 일어납니다요점은 자신의 죽음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지 말라는 겁니다…..”

소녀는 내려다보는 것을 멈추고 가장 큰 주전자를 찾으러 일어났다. 주전자는 배꼽에서부터 가슴께까지 와 차를 가득 채우면 소녀가 간신히 옮길 수 있을 정도였다. 큰 주전자에 은은하면서도 향긋한 로즈메리 차를 가득 채우며 조금 전 그 교수가 집에서 나올 때의 일을 기억했다. 아내에게 성난 목소리로 소리를 치고 나와서는 늦었다며 빨간불일 때 횡단보도를 건넜었지. 소녀는 향기를 듬뿍 들이마셨다. 상쾌한 기분이 전신에 퍼지는듯했다. 소녀는 두 손으로 주전자를 잡고는 낑낑거리며 방금 강의하는 것을 내려다본 장소로 옮겼다. 그 교수는 이제 침까지 튀기며 열정적으로 강의하고 있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우리는 우리가 어떻게 죽을지 모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서로 더 조심하고 하루하루를 후회 없이 살아야 합니다……”

소녀가 그 교수 위로 차를 들이부으며 생각했다. 저 교수도 사랑하는 아내에게 아침부터 소리치고 나온 날이 마지막 날이 되리라고는 생각 못 했을 것이다. 또 자신의 죽음이 폭포수 같이 내리는 팔팔 끓는 로즈메리차 때문이라는 것도.

소녀가 다시 요요하게 웃었다.

 


그래서 가지고 있던 수십 종류의 차가 모두 없어질 때까지 차를 들이부었다고?

소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지구가 얼마나 큰지는 알고 있는 거야? 아무리 네 집에 차가 많고 인간들이 조그맣다 해도 그것만으로 멸종시키는 건 무리라고.”

뭐든지 시도해보기 전에는 모르는 일이잖아요. 실제로 완벽히까지는 아니어도 대부분 죽었구요.”

그래요. 전 멋진 계획이었다고 생각하는 걸요? 향긋한 로즈마리차에 익사하다니 얼마나 멋진 죽음입니까!

소년이 케이크를 먹던 포크를 허공에다가 빙빙 돌리며 말하자 소녀의 눈썹이 잠시 꿈틀댔다. 소년이 칭찬하자 어쩐 일인지 더 기분이 상한듯했다.

그래. 그래. 둘 다 알았다. 어쨌든 생존자가 총 20억 명 즈음 되니까 내가 했을 때 생존자 수가 그것보다 더 적으면 최소한 너는 이기는 거고, 완벽하게 멸종시켰을 때는 내 승리다?

남자가 기분 좋게 배를 통통 두드렸다.

어이, 참고로 말하자면 나는 네 차례까지 남겨두지 않을 거라고.”

그건 두고 봐야죠. 어쨌든 이제 아가씨가 차를 들이붓기 전까지 시간을 되돌립니다? 다들 동의하시죠? 그래야 공평할 테니까요.”

. 당연하지. 그럼 그건 너한테 맡기마.”

남자가 의자를 끌며 일어났다.

어디 가시는 데요? 좀 더 놀다 가요. 얌전한 아가씨랑 둘 뿐이면 심심하다구요.”

신사답게 굴어. 난 이제부터 준비하러 갈 테니까.”

남자가 사라졌을 때는 아직 그렇게 좋아하던 케이크가 접시에 남아있는 채였다.

무슨 계획이길래 저럴까요. 정말 기대되는데요. 그쵸?

소녀는 대답 대신 차를 홀짝였다.

 


남자에게 아이디어를 준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인간들이었다. 여느 때와 같이 남자는 바닥에 드러누워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인간세계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싸움들을 보고 있었다. 꼬맹이들이 서로 투닥거리다가 한 명이 울기 시작하자 마치 전염병처럼  울음이 퍼져나가는 어린아이들의 다툼부터 다 큰 성인 남자들이 서로 언성을 높이다 결국 주먹다짐으로 변해가는 싸움, 부부간의 말다툼까지. 너무 쉽게 변하고 너무 쉽게 흘러넘치는 인간의 감정을 지켜보는 것은 소소한 재미 중 하나였다. 그중에서도 특히 국가 간 문제니 뭐니 하며 ‘나라’라고 하는 것의 대표들이 나와 서로 열심히 언쟁하는 것이 제일 우스웠다. 이 넓디넓은 우주에 코딱지만 한 별에서 살면서 금을 그어놓고는 내 땅이니, 네 땅이니 하며 이익을 챙기려고 하지를 않나, 누가 더 센지 과시하려고 하지를 않나. 도무지 ‘지구’라는 별 하나에 살고있는 공동체로서 생각하려고 하지를 않는다. 하기야 코딱지보다 더 작은 ‘나라’에서도 내부분열이 생긴다고 하니 말 다했다. 남자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물론 액션광인 남자는 덕분에 평소에 덜 지루하다고 생각했지만. 액션이라고 해서 쫄쫄이 옷을 입고 사람을 구하러 다니거나 깡통을 머리에 쓰고는 악당과 싸우러 다니는 영화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이 어쩔 줄 몰라하며 두려워하는 혼란 속에 자신과 똑같은 처지의 인간들과 피 터지게 싸우는 것. 형제들도 못 알아볼 정도로 정의감에 불타서는 같은 별에 사는 유일한 공동원을 자기손으로 제거한 후 승소에 환호성치는, 누가 이길지 박진감 넘치면서도 꽤 큰 규모라서 질릴 리 없는 싸움. 남자가 제일 좋아하는 종류의 액션이었다. 문득 남자는 요새 그런 싸움을 구경한지도 꽤 오래된 것 같다고 생각했다. 분명 마지막으로 봤던 게 1945년 즈음이었나? 벌써 70년 즈음 지난 셈이니 인간치고는 장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남자는 슬슬 그런 싸움이 하나쯤 더 일어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전쟁하나 일으키는 것쯤이야 어렵지도 않다. 기껏해야 아슬아슬하게 유지되고 있는 평화의 연장선 위에 핵 하나 떨어뜨려 주면 되겠지. 그다음부터는 서로에게 책임을 미루며 박 터지게 싸울 것이다. 남극, 북극, 아프리카 대륙 주변에도 핵 몇 개 정도 뿌려주면 거의 멸종되려나? 내기에서도 이기고 스릴 넘치는 액션도 감상하고. 일석이조다. 누가 생각했는지 참 기똥찬 아이디어라고 생각하며 남자는 바로 준비에 착수했다.

  


이야, 제가 생각할 때는 가장 바보 같은 아이디어였습니다!

시끄러워. 도중에 서로 휴전협정만 안 맺었어도 성공했어.”

소년의 감탄 아닌 감탄에 남자가 으르렁거렸다.

그러니까 바보 같다는 거죠. 누가 자기 나라까지 멸망시켜 가면서 이기고 싶어 하겠습니까?

게다가 결국 전쟁에 참여한 것은 개발도상국 국가 이상인 나라들뿐이었잖아요. 다른 나라는 어떻게 하려고 그랬습니까?

소녀도 거들었다.

다른 나라는 내가 직접 핵폭탄 뿌리려고 했다. ? 실제로 남극, 북극, 아프리카 주변은 그랬고.”

그러면 얼마나 많은 핵폭탄이 필요한데 모든 걸 귀찮아하는 아저씨가 그걸 다 준비하려고 했다고요? 보나 마나 조금 준비하다가 이 정도면 됐겠지, 하고 그만뒀겠죠, .”

소년의 신랄한 말투에도 이번에는 애꿎은 쿠키만 으드득 거리며 씹어버리는 남자였다.

그러는 너는 얼마나 획기적인 계획을 들고오는지 보자고. 나보다 사상자 수가 적으면 재미없을 줄 알아.”

남자가 쿠키를 위협적으로 소년의 코앞에 흔들며 말했다.

걱정 마세요. 애초에 이 내기는 누가 더 인간을 ‘완벽하게’ 멸종시키는지 였잖아요? 저는 완벽하게 멸종시킬 계획입니다.”

소년이 코앞에서 흔들거리는 쿠키를 덥석 베어 물며 말을 이었다. 말하면서 쿠키 부스러기가 튀어나가는데도 전혀 개의치 않는듯했다.

아무도 성공하지 못했을때 마지막으로 제가 짠! 하고 성공하는 거죠. 정말 멋있지 않습니까. 역시 저는 천재인 게 틀림없습니다.”

그런 말은 성공한 다음에나 하지. 실은 아직 계획도 없는 거 아니야?

가만히 있던 소녀도 입을 열었다.

에이, 저를 뭘로 보는 겁니까. 실은 벌써 실행에 옮기고 있는 걸요.”

뭐야?

정말입니다. 아저씨가 이렇게 쿠키를  으적으적 먹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제 계획은 실행되고 있는 중입니다. 아저씨, 입술에 쿠키 부스러기 묻었어요.”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보고 뭐라고 하네.”

소녀가 조그맣게 말했다.

?

아니야. 그래서 그 계획이 뭔데?

그래, 들어나 보자.”

남자가 손수건으로 부스러기를 털어내며 말했다.

정말 모르시겠습니까? 지금도 실행하는 중이라니까요.”

몰라. 지구에 큰 변화는 없었어.”

잘 알고 계시네요, 바로 그겁니다!

?

남자가 멍청한 표정을 지었다. 소녀도 소년이 무슨 말을 하는지 감을 못 잡겠다는 표정이다.

아이참, 아저씨가 스스로 지구에 큰 변화는 없었다면서요. 사실이에요. 실제로 저는 아저씨가 핵폭탄을 떨어뜨리기 전으로 되돌린 후에 아무런 일도 하지 않았습니다. 인류는 굳이 저희가 개입하지 않아도 천천히, 하지만 확실하게 멸종의 길을 걷고 있어요. 이산화탄소는 점점 증가하고 있죠, 빙하는 녹고 있죠, 자연은 파괴되고 있죠. 그래도 자신들이 점점 제 자신의 목을 조르고 있다는 자각이 없어요. 지금도 인간은 계속 자연을 파괴하고 있고 이산화탄소를 내뿜는 괴상한 기계들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그럴 겁니다. 제가 장담하죠.”

그래서 그냥 내버려 두는 게 네 계획이라고?

. 확실히 아가씨나 아저씨가 한 것처럼 단기간에 그렇게 많은 사상자 수를 내지는 못해요. 훨씬 더 오래 걸리겠지요. 그렇지만 이 내기는 누가 더 완벽하게 멸종시키느냐에 더 초점이 맞추어져 있죠. 아가씨하고 아저씨가 모두 실패한 지금은 더욱더 그래요. 이게 인간을 완벽하게 멸종시킬 수 있는 유일한, 그리고 확실한 방법입니다.”

유일하다고?”
“ 거 참, 속고만 사셨나. 홍수가 일어나도, 전쟁이 일어나도 인간은 다 극복해 냈어요. 가뭄이 일어나거나 운석이 떨어져도 그럴 거예요. 아등바등 어떻게든 살려고 할 겁니다. 하지만 자신들이 스스로 파괴한 걸 복구할 수는 없죠. 그게 오랜 세월을 걸쳐 이루어 진 거라면 더더욱.”

네 말이 일리가 있긴 한네. 확실히 그거라면 완벽하게 인간을 멸종 시킬 수 있을 듯하고. 근데 이건 내기잖아. 그렇게 오래 기다리라면 지루해서 못 견딘다고. 게다가 아무것도 안 한다니, 뭔가 하다 만 것 같아서 찝찝해. 재미도 없고.”

저도 동의해요. 뭔가 대단한 게 있을 줄 알았는데.”

실패자들이 말할 말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만? 그러면 이런 건 어떻습니까. 제 계획을 가지고 또 다른 내기를 하는 거죠. 이번에는 짧은 시간에 결과를 볼 수 있는 것으로.”

그거 좋지. 뭔데?

소녀도 동의의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인간들이 이걸 알고도 계속 지금까지 살던 방식을 고집할 것인가. 이것을 이야기로 써서 인간들에게 전해주는 거죠. 물론,”

소년이 다른 쿠키를 다시 덥석 베어 물었다.

저는 인간들이 이것을 읽고도 다음날이면 아무렇지도 않게 일회용품을 버리고 대중교통 대신에 자가용을 이용할 거라는 데에 겁니다.”

소년이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씨익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