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대야

by 어피치 posted Feb 10,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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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대야




엄마의 계란찜 비법은 소금이 아닌 새우젓으로 간을 하는 거였다. 별 것 아닌 그 차이가 미묘하게 혀를 교란시켰다. 그는 새우젓을 넣은 계란찜을 좋아했다. 계란찜을 밥에 쓱쓱 비벼 김치를 얹어 먹는 걸로도 밥 두 공기는 거뜬했다. 그가 오는 날에는 큰 뚝배기 가득 계란찜을 했다. 나는 단지 계란찜에 넣기 위해 새우젓을 사 나르곤 했다.

계란찜에 콩자반, 두부부침, 멸치볶음, 된장찌개까지 차려 놓고 그를 기다렸다. 그는 자연스레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와 넥타이를 비뚤게 풀고 식탁 앞에 앉았다. 그는 된장찌개의 애호박과 감자를 좋아했다. 애호박과 감자에는 된장 국물이 알맞게 배어 있었다. 그는 두부를 십자로 갈라 먹으며 오늘 찌개가 아주 맛있다고 했다.

그가 물로 입을 헹구고 식탁을 치우는데 단단한 팔뚝이 내 허리를 껴안았다. 이따가 해, 읊조리는 목소리가 귓전에서 얽혀들었다. 그의 어깨를 살포시 밀어냈다. 생리 중이에요. 그는 아쉬운 듯 안았던 팔을 풀고 소파에 기대앉는다. 그는 일 년 넘게 나를 만나면서 아직도 내 생리 주기를 기억하지 못했다. 커피 내려줄래요? 나 자기가 내려주는 커피 기다렸는데. 그는 커피를 잘 내렸다. 똑 같은 원두를 내려 마시는데도 내가 내린 커피와 그가 내린 커피는 미묘한 차이가 있었다. 그 차이를 무어라 하던가. 풍미라던가, 감칠맛이라던가, 향이라던가. 그게 무엇이든 아무래도 좋았다. 그는 나와 함께 커피를 마시고 뉴스를 보다가 이내 그의 집으로 돌아갔다. 이전에는 종종 자고 갈 적도 있었지만 최근에는 자고 갈 수도, 자고 간 적도 없었다.

 

채널을 아무리 돌려도 온통 시시한 드라마뿐이었다. 아무 곳에나 채널을 멈춰두고 리모컨을 내려놓았다. 집에 혼자 있을 때면 보지 않더라도 늘 텔레비전을 틀어두었다. 창밖에는 어느새 비가 내리고 있었다. 장마였다. 희미하게 비 냄새가 났다. 공기는 여전히 더웠지만 비 냄새만은 시원했다. 창문을 닫고 침대에 누워 엄마의 메신저 프로필 사진과 상태 메시지를 보았다. 혼자 있을 때 종종 보는 것이었다. 지난 달 엄마의 생신 날 연락한 것이 마지막이었다. 자주 지켜보지만 잘 바뀌지 않는 프로필에 실망하고 한편으로 안도했다.

다음 달이면 아빠의 세 번째 기일이었다. 엄마는 아직도 아빠의 기일을 모른다. 엄마가 집을 나가고 나서 아빠는 한 번도 엄마를 찾지 않았다. 아빠 생전에 우리 집에서 엄마에 대한 이야기는 금기나 마찬가지였다. 처음 엄마에게 연락을 한 것도 아빠의 장례식장에서였다. 연락처를 몰랐던 건 아니었다. 외려 알고 있은 지 오래였다. 돈만 쥐어주면 한 사람의 연락처 정도는 맥이 빠질 정도로 금방 알아낼 수 있었다. 그 외의 것들까지도. 예를 들어 엄마에게는 남편과 딸과 아들이 있다는 것 같은 것들. 엄마가 집을 나간 이듬해에 딸이 태어났다는 따위의.

 

저예요. 잘 지내셨어요?로 시작해 이리저리 두서 없는 말을 아무렇게나 지껄였다. 엄마가 해 준 계란찜 맛이 아직도 생각이 나요.

 - 앞으로 연락하지 마라.

엄마의 마지막 말이었다. 아빠가 돌아가셨다는 말을 꺼내려던 찰나였다. 아무런 대답을 않자 엄마는 긴 한숨과 함께 전화를 끊었다.

 

신랑신부 입장, 소리가 떨어지기 무섭게 문이 열렸다. 하객들은 일제히 뒤를 돌았다. 드물게도 신랑신부 동시 입장이었다.

흩날리는 꽃잎처럼 조명이 점점이 내리비춘다. 신랑신부가 기다란 카펫을 행진하고 사랑의 서약을 나누고 난 후에야 웨딩 케이크는 저 은은한 조명이 비추는 가운데로 나온다. 하얀 생크림 케이크 옆면에 엷은 핑크색 설탕 꽃과 설탕 잎 장식이 있다. 케이크 꼭대기에 역시 설탕 공예로 만든 신랑신부 피규어 장식이 있다. 유치하고 단순하지만 순백의 결혼식장에서는 더할 나위 없이 빛을 발한다. 삼단의 흰 케이크는 하나의 빛덩이처럼 보인다. 부부가 된 연인은 번개처럼 번쩍번쩍 플래시가 터지는 와중에 케이크를 자를 것이다. 그 찰나처럼 번뜩번뜩 그의 얼굴이 떠오를 법도 하건만, 그 번개 같은 빛이 그의 얼굴을 선명히 가른다.

눈이 시큰하다. 눈을 감았다 뜬다. 그의 얼굴을 떠올리려 애쓴다. 그의 코가 높았던가 낮았던가, 얼굴은 흰 편이었던가, 눈매나 입술 모양은? 아무것도 또렷하지 않다. 모조리 스며든 것처럼. 그의 얼굴은 그만큼 불안하게 깜빡인다.

네가 내 밥도 해주고 아이도 낳아주고 같이 살면 좋을 텐데. 예식에서 웨딩 케이크를 자를 때면 가끔 내 머리칼을 섬세하게 쓰다듬으며 속삭이던 그의 목소리가 떠오르곤 했다.

케이크는 아름다운 모습으로 반으로 나뉘었다.

“여자가 중학교 선생이라며?"

"저저, 배 나온 거 봐. 애부터 들어섰나보네.

“그 와중에 식은 올리고 싶었나보지? 우리 애 학교에도 저런 선생 있을까봐 겁난다니까.

“부케 받을 사람은 있나 몰라.

수군거리는 낮은 목소리는 곳곳에서 들렸다. 남자는 유부남이었던 모양이었다. 여자 때문에 이혼을 하고 새장가를 든 불륜남. 가정을 파탄 낸 첩년. 둘은 양가 부모님과 맞절을 할 때 제 부모들의 눈을 똑바로 보지 못했다. 여자는 친정어머니의 눈을 쳐다보려 했으나 그 어머니는 고개를 돌렸다.

신부가 부케를 던지는 식순은 생략되었다. 옷을 갈아입으러 가는 신부의 얼굴은 얼룩져 있었다.  

“그 커플 결국 폐백도 제대로 못 하고 신혼여행 갔대.

다음 예식을 위해 식장 정리를 하는 내게 실장이 다가와 운을 뗐다. 그러게 남의 눈에 피눈물 내면 제 눈에는 피고름이 맺히는 거야. 조용히 도장만 찍고 살아도 세상 욕 다 처먹을 판국에 식은 무슨, 결혼식은. 폭죽과 꽃가루의 잔해를 치우면서 나는 조용히 맞장구를 쳤다. 그러게요, 왜 결혼, 같은 걸, 하는지.  

 

좁은 곱창 집에는 언제나 사람이 바글바글했지만 오늘은 유난히 사람이 꽉 차 있었다. 맛집으로 소문난 곳이라서 운 없는 날에는 한 시간을 꼼짝없이 기다려야 하기도 하는 집. 왼쪽 구석에 좁은 입구가 있고, 그 옆 바깥에 양배추며 깻잎이며 당면이며 기름통을 늘어놓고 양 팔 가득 벌린 널따란 철판에 채소와 곱창을 들들 볶는 그런 곳이었다. 사람 수대로 상추나 풋고추, 깍두기 따위가 나올 뿐 다른 밑반찬은 하나도 없지만 언제나 손님이 끊이지 않았다. 예전부터 자주 오던 이 집에 종종 그와 함께 오곤 했다.

어둑시근한 홀에는 많지 않은 테이블이 좁은 간격으로 놓여있고 종업원들이 바쁘게 틈새를 돌아다니는 가운데 텔레비전 야구 중계까지 틀어져있었다. 왁자하게 야구 중계를 보는 아저씨들이 있는가 하면 어린 아이 두셋을 앉히고 호호 불어가며 순댓국을 떠먹이는 가족도 있고 오순도순 젓가락을 부딪혀가며 소주 한 병을 더 시킬까 의논하는 아가씨들도 있었다. 나는 그 가운데 혼자였다.

처음부터 혼자 온 것은 아니었다. 방금 전 까지만 해도 이 집의 음식을 먹기 위해 삼 십 분을 같이 기다린 사람이 있었다. 지금 내 앞에는 세 사람이 먹어도 넉넉할 만큼의 빨간 곱창 볶음과 국물 빛이 진한 순댓국, 밥 두 공기가 놓여있다. 한 잔씩 받아놓은 소주 잔 두 개 중 내 맞은편의 잔만 비어있다. 그는 좋아하는 곱창 볶음에 젓가락도 대지 않고 훌쩍 떠났다. 순대국물 한 모금과 소주 한 잔만 마시고서.

그가 나가자마자 나는 등 뒤에 놓았던 가방을 그의 의자 위에 다붓이 놓았다. 그리고 무릎에 올려놓고 있던 꽃다발을 그 위에 놓았다. 내 허벅지를 다 가리도록 풍성한 꽃다발은 그릇과 물잔, 테이블 너머로 꽃잎 몇 장만 빼꼼히 보였다. 붉은 장미와 분홍 장미가 송이송이 하얀 레이스에 싸여 다발로 묶인 은성한 꽃다발이었다. 어쩜 이렇게 예쁜 꽃다발을 샀어? 그가 목걸이를 걸어 줄 때도 나는 그 꽃다발에 대해서만 조잘거렸다. 오늘은 꽃다발이 너무도 아름다워 그와 헤어지지 못했다.

 

그와 헤어지는 것은 정해진 일이었다. 몇 번이나 연락을 그만 두려 했었다. 그러나 그의 목소리를 듣자 마음이 약해져서 헤어지지 못했다. 그의 얼굴을 보니 헤어질 수 없었다. 그의 생일이라 헤어지지 못했다. 바빠서 못 헤어졌고 이번 달엔 내 생일이니까 헤어지지 못할 것이다.

꽃과 목걸이는 생일날 만나지 못할지도 모른다며 그가 미리 선물해 준 것이었다. 내 생일은 내일이었다. 그와 미리 지내는 생일은 정말 생일이라고 해도 좋을까.

"정말 미안해. 애가 지금 열이 펄펄 끓고 물도 못 넘긴다네."

걸려온 전화에 오늘 회식이라 늦어, 대답하던 그는 아픈 아이가 실려 간 응급실로 황황히 떠났다. 아내의 등쌀도 언제나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아랑곳 않던 그가 택시를 타고 부리나케 달려간 것이다. 아이라는 건……. 한숨을 속으로만 쉬고 그를 보냈다.

오늘 헤어지지 못한 것은 어쩌면 꽃다발 때문이 아니었을 지도 몰랐다.

 

규칙도 모르는 야구 중계를 보면서 천천히 곱창 볶음을 먹었다. 매큼하고 쫄깃했고 맛있었다. 밥 한 그릇을 천천히 비워내고 순댓국에 나머지 한 공기를 훌훌 말아먹었다. 평소보다 배는 많이 먹었다. 그는 내가 다른 아가씨들처럼 깨작이지 않고 복스럽게 먹는다며 좋아했다. 어떤 아가씨들을 말하는 건지 묻고 싶었지만 꾹 눌러 담았다. 양념에 버무려진 양배추와 깻잎과 양파와 돼지 곱창을 뒤적거리며 소주 반 병을 비웠다. 그가 마신 한 잔은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게 오래, 천천히, 많이 먹었음에도 곱창 볶음은 많이 남아있었다. 그의 몫이다.

종업원이 가게 문에 들어서는 손님들도, 음식을 포장해 가려고 오는 손님들도 거절하고 있었다. 곧 문 닫을 시간이에요. 여기 이 분들까지만 해 드리고 못 해드려요. 이 시간이면 할머니와 종업원들은 언제나 저 말을 열두 번도 넘게 했다.

이제 가야지. 벌겋게 취한 얼굴로 내 의자에 부딪친 아저씨를 슬쩍 밀어내고 꼬챙이를 꿰듯 가방을 멨다. 계산은 그가 해 두었으므로 이대로 집으로 가면 그만이었다. 나는 잠시 낡은 청록색 의자 시트에 덩그마니 놓인 장미 꽃다발을 두고 고심했다. 가져갈까 말까. 꽃다발을 들어내자 구두코에 연분홍빛 꽃잎이 하나 떨어졌다. 날이 더운 탓인지 싱싱하게 물기를 머금고 있던 꽃잎들이 벌써 조금 시들해졌다. 그가 나를 두고 간 것처럼 꽃을 두고 가기로 했다.

 

아직 아홉 시 밖에 안 됐는데 만취한 채 밤거리를 누비는 어린 애들이 적지 않았다. 금요일 밤이라 그런지 길거리는 평일보다 유난히 시끄러웠다. 쿵짝 쿵짝 촌스럽게 리믹스한 최신 가요를 쾅쾅 울리도록 틀어놓았다. 편의점 맞은 편, 큰 나이트 클럽 두 곳이 나란히 자리잡고 있었다. 간판에 빨간 알전구들을 촘촘히 두른 곳과, 번쩍번쩍하는 네온 사인으로 활자를 새긴 곳. 경쟁하듯이 서로 다른 노래를 크게 틀어댔지만 사실 그곳에 가는 사람들은 어디로 들어가든 개의치 않는 것 같았다. 짙고 반짝거리는 화장과 팔다리를 훤히 드러낸 옷을 입은 여자들을, 웨이터들이 붙잡는 모습을 보면서 길을 가로질렀다. 길바닥은 까만 아스팔트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키스방과 웨이터들의 명함으로 가득 메워져 있었다.

"나중에 한 번 놀러 와요."

기껏해야 내 동생 뻘처럼 보이는 웨이터 하나가 넉살 좋게 자기 명함을 내밀었다. 강동원. 세 글자를 한껏 비웃어주며 길거리에 내버렸다.

편의점에서 맥주를 사 들고 나왔다. 목이 말라 초코 우유까지 하나 사서 빨대를 입에 물었다. 핸드백과 비닐 봉지를 달랑거리며 천천히 걸었다. 여기서 집 까지의 거리는 걸어서 십 분. 거리는 토사물과 명함, 전단지로 가득 메워져 있었다. 행인들에게 수십 번은 짓밟힌 종이 조각들이 눅진하게 눌러 붙어 있었다. 초코 우유를 한 모금 쭉 마신다. 밤 공기가 제법 짙었다. 진보랏빛 하늘에 미처 녹아 들지 못한 달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비틀거리는 여자들과 남자들. 구석 전봇대에는 토하는 여자의 등을 두드려주는 남자의 모습이 보였다. 순식간에 다 마셔버린 우유팩을 미련 없이 바닥에 던졌다. 우유팩은 가볍게 통, 튀어오르는가 싶더니 이내 빨대에서 몇 방울의 우유를 뿜으며 길바닥의 일원이 되었다. 지나가던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나는 민망하게 웃었지만 그는 무심히 눈길을 돌렸다. 키스방 전단지와 웨이터의 명함들을 즈려밟으며 마저 내 길을 걸었다. 눅진하게 눌러 붙어 있던 종잇조각들이 구르듯 밟혔다. 아스팔트의 짙은 빛깔은 점점 선명해졌다.

 

나란히 걷곤 했던 이 거리가 낯설었다. 그는 예쁜 액세서리 좌판이나 아기자기한 물건이 보이면 나보다 들뜨곤 했다. 내 손을 꼭 잡은 채 저기 분위기 괜찮네, 이것 좀 봐봐, 사줄까?

텁텁한 공기가 밀도 높게 늘어졌다. 드러낸 목덜미와 코끝은 엷게 달아올랐다. 또각또각 걸을 때마다 그가 선물한 목걸이가 가슴께 위에서 달랑거렸다. 싸한 금속의 감촉이 선뜩했다. 아직도 그 꽃다발의 은근한 향내가 코끝을 얼룽이는 것 같았다.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술 향기만 나는 숨이었다.

 

한 캔만 마셔야지, 했던 맥주를 두 캔 째 비우고 있었다. 에어컨이 고장 난 탓에 선풍기를 틀었지만 역부족이었다. , 하고 더운 숨을 뱉었다. 냉장고 문을 열고 잠깐 고민을 했다. 분명 냉장고 한 칸을 줄줄이 채운 맥주를 보며 하나 더? 하는 고민은 오래 가지 않았다. 맥주 캔 하나를 꺼내 뚜껑을 땄다. , 일부러 힘을 주어 경쾌한 소리를 냈다.  

몇 모금 마시지도 않았는데 맥주 캔 표면에 물기가 축축하게 배어나오다 못해 뚝뚝 흘러 옷자락을 적셨다. 꼴깍꼴깍 마셔버리고 협탁 위에 탁 소리가 나게 내려놓았다. 여전히 덥고 목이 말랐지만 더 마시기엔 배가 불렀다. 그에게 전화는 오지 않을 모양이었다. 새벽 한 시, 생일을 맞은 지 한 시간이 흘렀다. 전화를 할까 말까. 그의 번호가 떠 있던 휴대폰 액정이 까맣게 꺼져갔다. 버튼을 눌러 화면을 켰다. 그렇게 몇 번이나 그의 이름은 꺼졌다 살아나고 숨었다 나타났다. 그는 내가 없는 곳에서도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누구든 만날 수 있으며 그 누구 속에는 나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가 곁에 없으면 기다리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정말, 전화는 오지 않으려나? 통화 버튼을 눌렀다. 받지 않았다. 다시 걸었다.

- 미안, 전화 걸려고 했는데. 지금 집에 왔어. 감기가 좀 심한 거래. 폐렴 될 수도 있대서 주사 맞히고 하루 병원에 있으려고. 지금 자고 있어. 애가 하도 안 자서 혼났네.

걱정하는 내게 그는 피식 웃으며 살래살래 손사래를 쳤다. 물론 내 상상 속에서.

- 애가 제 엄마 닮아서 몸도 약한데다 이불 보풀 하나도 기억하는 애라니까. 잠자리에 얼마나 까탈스러운지 몰라.

아이라는 건 그런 건가요. 왜 제 아빠를 닮지 않고 엄마를 닮은 걸까요. 깜깜한 휴대폰 액정 너머로 손을 쑥 집어넣어 그의 멱살이라도 잡고 싶어졌다. 치밀어 오르는 부아를 삭이기 위해 몇 번이나 말을 삼켰다. 다행이네요. 잘 자요. 이불을 덮고 누웠다. 주홍빛 간접 조명으로 물든 벽과 또박또박 걸어 나가는 시계, 협탁에 놓인 핸드폰과 맥주 캔이 보였다. 이불을 코언저리까지 잡아당기고 모로 누워 태아처럼 다리와 등을 구부렸다.

잠을 청하려는 찰나 드르륵, 진동이 울렸다. 까먹고 말 안 해줬네. 생일 축하해. 항상 미안하고 고마워. 그의 메시지였다. 행여 눈물이라도 날까봐 몇 번이나 입술을 깨물었다. 메시지는 곧 화면에서 사라졌다. 어떻게 답장을 해야 할까. 이제야 생각났어요? 이제라도 생각났으니 괜찮아요? 고마워요? 금세 까맣게 꺼진 휴대폰 화면을 켰다. 화면의 상단에는 얼른 답장을 재촉하듯 메시지 알림이 또렷이 박혀있었다. 새로운 메시지가 새삼 반가웠다. 메신저의 채팅방 목록에는 그의 이름 하나만이 떠 있었다. 그와 나는 서로 연락하는 메신저를 따로 사용했다. 답장을 고민하는 새 화면이 다시 꺼지고 그 화면을 다시 켰다. 몇 번이나 그 짓을 했을까. 결국 답장을 포기한 채 뒤로 버튼을 눌렀다.

 

깡똥한 원피스를 차려 입은 아이의 눈동자는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어미 닭을 놓친 병아리처럼. 사람들은 그 애처로운 시선을 외면하고 아이를 쏙쏙 지나쳐 갔다. 한눈 판 새 엄마를 놓쳤나? 그럴 땐 제 자리에 가만있으면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제 엄마가 수십 번 일러주었겠지. 하지만 미아를 찾아 주는 것도 내 일이었다. 아가, 엄마 잃어버렸니? 어리둥절했던 얼굴이 금방이라도 울 듯 입술을 바들바들 떨기 시작했다.  

답례품으로 돌리고 남은 화과자를 받아다가 아이에게 쥐어주었다. 화과자를 오물거리며 채 여물지도 않은 발음으로 열심히 쫑알대는 모습이 제법 귀여웠다. 아빠가 과자는 절대 안 사줘요, 라고 할 땐 제법 안쓰럽기까지 했다.

꼬맹이들은 다 이런가. 끊임없는 수다와 질문에 지칠 무렵 아이가 내 손을 탁 놓고 달려 나갔다. 아빠! 그 외침 끝에 한 남자가 서 있었다. 남자는 흰 반팔 셔츠에 붉은 색이 도는 넥타이, 검은 정장 바지를 입고 있었다. 아이가 남자에게 폭 안겼다. 미소를 띠며 천천히 다가가려는데 남자가 아이의 엉덩이를 때리기 시작했다.

"아빠 없어도 그 자리에 가만히 있으랬잖아!"

화가 나다 못해 애처로운 목소리였다. 아빠, 잘못했어요, 아빠아, 용서를 비는 아이의 목소리 역시 애처로웠다. 사람들이 하나 둘 흘낏거렸다. 이제 된 거겠지. 슬그머니 뒤돌아 자리를 뜨려는데 저 언니가 과자 줬어요, 하는 목소리가 뒤통수에 꽂혔다. 저희 애 돌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가오는 그의 윤곽이 점점 선명해졌다.

 

"부대찌개 괜찮으시죠? 이 집 맛있어요."

정말 괜찮다고 몇 번이나 거절했지만 그는 완강했다. 약속 없으면 같이 저녁이라도 먹어요. 얼떨결에 식당에 들어왔지만 물수건으로 손을 닦으면서도 어안이 벙벙했다.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하며 그를 찬찬히 관찰했다. 그 역시 먹는 둥 마는 둥 하며 김치나 햄 따위를 맵지 않게 물에 헹궈 딸의 앞 접시에 올려주느라 바빴다. 납죽납죽 곧잘 받아먹는 딸이 때때로 아빠도 먹어, 하면 한 입씩 먹는 정도였다. 서툰 포크질로 이것저것 잘 찍어먹는 아이는 새침한 눈초리며 앙다문 입술이 제 아빠 판박이였다. 두부를 십자로 갈라 먹는다던가 하는 사소한 습관까지도.

아이는 밥 반 공기를 뚝딱 비워내고 가게 한 쪽에 딸린 놀이기구로 달려갔다. 잘 먹었습니다, 하고 곧장 뛰어가 볼풀로 뛰어드는 걸 보니 자주 와 본 모양이다.  

 “우리 딸 예쁘죠?"

그는 눈을 똑바로 맞춰 오며 이야기했다. 괜히 민망해져서 그의 미간이나 인중만 쳐다보다가 돌연 눈이 마주쳤다. 흐릿했던 눈코입의 윤곽들은 어느새 퍼즐 조각처럼 하나 둘 아귀를 맞춰 또렷한 완성품으로 내 앞에 앉아있었다. 눈매는 날렵했지만 부드러웠고 콧날이 오뚝했으며 깨끗한 피부에 비해 수염 자국이 조금 도드라진 편이었다.  

"결혼식은 따님이랑 둘이서 오셨어요?"

  대부분 기혼자가 하객으로 올 경우 엄마 쪽은 몰라도 아빠가 혼자 올 경우 자녀를 데리고 오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그가 천천히 물 한 모금을 마셨다. 애 엄마 지금 한국에 없어요. 해외 발령 갔거든. , 하는 짧은 긍정을 끝으로 몇 분간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넉살 좋은 그는 곧 이런저런 얘기들을 꺼냈다. 그가 딸을 어린이집의 모든 아이들 중 일등으로 데려다 주는데도 출근 시간 맞추기가 어렵다며 푸념할 때 나는 그가 집을 나서는 시간이 내가 일어나는 시간이라는데 경악을 금치 못했고, 아이 아침밥까지 챙겨준다는 말을 듣고는 차려주는 아침밥도 제대로 먹지 않았던 내가 부끄러워졌다.

그와 나는 일곱 살 차이였고, 같은 동네에서 고등학교를 다녔으며 좋아하는 음악, , 영화 취향까지 비슷했다. 저랑 되게 비슷하네요. 씩 웃는 그의 눈동자에 내 얼굴이 비쳤다.

 

“제 명함이에요.

처음 만난 사람과 밥을 다 먹고 나온 식당 앞만큼 어색한 장소가 또 있을까. 그는 잔뜩 구겨진 딸의 치맛자락을 다 펴주고 난 후 안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 명함 한 장을 건넸다. 떠넘기듯 건넨 명함을 제대로 보지도 않고 가방에 집어넣었다. 명함 안 주세요? 싱글거리며 손을 내미는 그에게 내 명함 한 장을 쥐어 주었다.

아이는 안녕히 가세요, 하며 허리를 꼬박 숙여 인사했다. 그래, 아빠 말 잘 듣고.

살펴가세요. 그는 해사한 미소를 지어 보이고 딸아이의 손을 꼭 잡은 채 걸어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완연한 저녁 하늘 아래 녹아 내린 노을 속으로 스며들었다.

그리고 이제 나는 그 뒷모습을 또렷이 떠올리고도 졸리다는 생각을 할 수 있게 되었다.

 

홑이불을 덮었다. 이불에 밴 체취가 훅 끼쳤다. 거기에 그의 냄새가 섞여있길 바랐지만 익숙한 내 체취뿐이었다. 아이가 아프지 않았다면 오늘 밤은 그와 함께 지냈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지금 나는 나의 집에 있고, 그는 그의 집에 담겨 있다. 오늘처럼 언제나 두 갈래로 나뉠 것이었다. 어제도 그랬고 오늘도 그랬고 내일도 아마, 그렇게 두 갈래 길에서 나아가지 못할는지 몰랐다. 그리고 그가 진보할 수 없다는 것에 안도했다.

 

엄마에게는 끝내 생일 축하 인사를 받지 못했다. 손수 생일 미역국을 큰 냄비 한 가득 끓여 두고두고 먹었다. 며칠 째 저녁밥은 미역국에 말은 밥과 김치였다. 깜박 잊고 자르지 않은 탓에 국수 가락만큼이나 긴 미역줄기를 씹으면서 마늘이 너무 많이 들어갔다고 생각했다.

며칠 그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그가 몇 번이나 메시지를 남기고 전화했으나 받지 않았다. 메시지도 전화도 단지 때를 놓친 것뿐이었다. 때를 놓치고 때를 찾지 못했을 뿐이었는데 시간이 이렇게 지나버렸다.

핸드폰으로 오늘의 뉴스를 보면서 김치를 우적우적 씹을 때 메시지 창이 떴다. 오늘 밤까지 연락 없으면 찾아갈 거야. 메시지 창이 꺼지고 잠시 망설이다가 핸드폰을 엎어 놓았다.

 

한껏 숨을 들이마셔도 개운치 않았다. 공기가 정지한 듯 좀체 숨으로 스며들지 않았다. 손에 든 아이스커피를 만지작거렸다. 투명한 플라스틱 컵 속에 어중간하게 녹은 얼음들이 달그락 떠 있었다. 커피는 밍숭하니 맛이 없었다. 컵 표면에는 물방울들이 동그랗게 맺혔다. 테이블 위에 내려놓자 물방울들은 이내 컵 아래쪽으로 흘러 고였다.

 살 빠졌네요.”

그는 확실히 살이 빠져 있었다. 작년의 그도, 올 봄의 그도, 며칠 전의 그의 얼굴조차 또렷하지않았지만 살이 빠졌단 건 알 수 있었다. 신기한 일이었다. 한참을 이야기 할 줄 알았지만 그는 생각보다 일찍 돌아갔다. 그가 말했을 때 나는 뭐라고 했었던가. 방금 전 일인데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거슬리도록 규칙적인 초침 소리와 달달달 선풍기 돌아가는 소리가 귓전에서 엉켰다. 눈을 뜨고 시간을 확인했다. 무언가 매달리기라도 한 듯 시계바늘은 아주 느리게 움직였다. 그제서야 작년의 그가, 올 봄의 그가, 며칠 전의 그의 얼굴이 떠올랐다.

                                   

과일을 깎고 전을 지졌다. 생선을 굽고 쌀밥을 가득 지었다. 나물과 전 사이로 김치찌개를 한 냄비 놓았다. 작년, 세 번째 기일부터 놓게 된 음식이었다. 제사 음식은 정성이라며 야단칠 어른도 없겠다, 생전 드시지도 않던 음식 지금이라고 드시랴 싶어 올린 것이었다. 찌개에서 피어오르는 김이 아빠의 영정 앞에서 알랑거렸다. 아빠는 김치찌개를 좋아했다. 특히 꽁치 통조림을 넣은 김치찌개는 아빠와 나 둘 다 좋아하는 메뉴였다. 꽁치를 뼈째 씹어 드시면서 아빠는 간이 슴슴하니 좋다, 김치를 잘 볶았네, 하며 칭찬하곤 했다.

향을 피우고 술잔을 돌리고 절을 했다. 김치찌개의 시큼한 냄새에 침이 고였다. 한동안 창을 열어두고 향을 피웠다.

엄마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엄마, 잘 지내세요? 답장은 오지 않았다. 나는 향을 치우고 제사상을 추슬러 아주 늦은 저녁을 먹었다. 꽁치를 뼈째 베어 물면서 엄마가 해 준 고등어조림 생각이 났지만 엄마에게 고등어조림 하는 법을 물어볼 수 없었다. 그리고 밥을 다 먹고 설거지를 끝내고 잠자리에 들 때까지도 답장은 오지 않았다.

 

주말 낮의 마트는 복잡했다. 카트 한가득 물건을 쌓아 담고 아슬히 사람들 틈을 헤치는 사람, 잠깐만요를 외치며 지나가는 사람, 유니폼 단추를 목까지 채우고 열심히 판촉을 하는 아르바이트생들의 목소리가 혼잡하게 엉켰다. 살 게 많지 않았지만 카트를 밀면서 천천히 물건을 골랐다. 입맛 없고 귀찮을 때 간단히 말아먹을 시리얼과 우유부터 골랐다. 간장이 떨어져 가고 있었으므로 간장도 하나 담았다. 채소 코너에 가서 무 반 토막을 카트에 넣고 흘러내리는 가방 끈을 고쳐 메는데 낯익은 뒤통수가 눈에 들어왔다. 항상 목덜미 바로 위까지를 고수하던 짙은 머리카락, 곧은 등줄기, 그였다.

그는 카트 손잡이를 밀고 있었다. 그가 미는 카트에는 네다섯 살이나 됐음직한 여자아이가 앉아 있었다. 어디선가 과일을 집어 온 여자가 그가 잡고 있던 카트에 과일을 내려놓았다.  

정말 그일까? 궁금한 마음에 재촉하던 발걸음이 이내 가늘게 떨리는 마음에 느려지고, 다시 빨라졌다가, 느려졌다가를 반복했다.

조금 거리를 두고 슬쩍 그를 스쳐지나갔다. 언뜻 본 옆모습은 그가 아니었다. 제대로 보지 못한 것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반쯤은 실망하고 반쯤은 안도했다. 정말 그였는지 궁금했을 뿐이었으니까. 수산물 코너에 가 고등어를 샀다. 일년 전의 연인에 대해 담담해진 모습이 닳았다고 생각했다.

그와 닮은 남자 때문에 정신이 팔려 버스를 놓칠 뻔 했다. 간신히 올라 탄 버스는 내가 카드를 채 찍기도 전에 출발했다. 비틀비틀 위태롭게 빈자리를 찾아 앉았다.

오늘처럼 그와 닮은 남자를 마주친 날이 아니더라도 종종 그가 생각날 때가 있었다. 딱히 그에게 아직 미련이 남았다거나 후회한다거나 미워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눈매나 입술 모양, 코가 높았는지 낮았는지, 피부는 하얀 편이었는지, 그런 것들조차 거의 잊어버렸다. 그냥 종종 생각나는 것 뿐이다. 그 기억은 희미해질지라도.

가끔은 그도 나와 같을지, 가끔, 아주 가끔 궁금해지곤 했다.

 

손질된 고등어에 후추를 뿌려두고 양념장을 만들었다. 냄비에 무를 깔고 물을 부은 뒤 양념장을 풀어 무를 조렸다. 무가 익어갈 즈음 고등어와 양파, 대파, 양념장을 마저 넣고 자작하게 끓였다.

계란을 풀고 물 대신 우유를 넣었다. 이렇게 하면 더 부드럽다고 인터넷에 적혀있었다. 새우젓이 떨어져 소금으로 간을 했다. 파와 고춧가루를 얹고 전자레인지에 돌렸다.

해가 갈수록 제사상의 가짓수는 단출해졌지만 음식 실력은 늘었다.

고등어조림은 간이 잘 배었다. 젓가락으로 고등어 살을 들어내고 뼈를 바른 다음 고등어 살을 입에 넣었다. 양념이 밴 탄력 있는 살점이 잇새로 바스라졌다. 고춧가루가 칼칼해 금세 입가가 얼얼했다. 계란찜은 물이 많아 부드러웠다. 조림 무와 함께 한입 가득 떠 넣으면 녹아내리듯 밥알과 어우러졌다. 조림 국물에 밥을 조금 비벼 먹기도 하고, 계란찜에 비벼 고등어와 함께 먹기도 했다. 금세 밥 한 공기를 다 비워냈다. 간만에 아주 맛있는 저녁밥을 먹었다.

 

커피를 내렸다. 이제 그가 내려주지 않아도 제법 맛있게 내릴 수 있었다. 보지 않는 텔레비전을 틀어두지도 않게 될 무렵이었지만 나는 뉴스가 끝날 때까지 꼬박 소파에 앉아 커피를 마셨다. 뉴스의 끝은 언제나처럼 일기 예보였다.

내일도 비는 계속 올 모양이었다. 이틀 전부터 줄곧 내리는 비였다. 장마는 분명 끝자락이었지만 빗줄기는 그칠 줄 몰랐다. 장마가 지나간 자리에는 무더위가 찾아올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후 폭염이 이어지면서 열대야 현상이 올 것으로 전망됩니다.

습기 때문인지 머리를 묶어도 잔 머리가 목덜미에 달라붙었다. 뉴스가 끝나고, 다 마신 커피잔을 치우고, 샤워를 하고 잠자리에 들 때까지도 핸드폰은 울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