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찾기

by 대몽 posted Feb 10,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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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물찾기



 승재는 차문에 기댄 채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눈 부신 여름의 태양은 한 손바닥으로 충분했다. 차는 산허리를 감싸는 포장 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창밖으로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나무들 사이로 워낙 멀리 있어서 약간 회색으로 보이는 산들이 천천히 지나가고 있었다. 아니 계속 그 곳에 멈춰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모르는 사이에 어느새 그 산들은 창문 밖으로 사라지고 다른 산으로 채워졌다.

"아들! 몇 시간째 잠도 안 자고 웬일이야? 안 졸려? 그렇게 기대돼?" 

상현은 백미러로 뒷좌석에 있는 승재를 바라보며 말했다. 

 승재는 계속 같은 자세로 있어서 그런지 어깨가 저렸다. 하지만 움직이고 싶은 생각은 전혀들지 않았다. 평소 즐겨하는 핸드폰 게임도 하기 싫었고 어제 저녁부터 해가 뜰 때까지 잘 오지 않던 잠은 이젠 올 생각조차 없는 듯했다. 하지만 전혀 졸리지 않았다. 

승재는 상현에게 들릴 듯 말 듯한 작은 소리로 말했다.

"응.."

"그렇지? 야, 아빠도 기대된다. 

아빠도. 엄청 큰 별장이래. 계곡도 있고. 친구들 다 온다니까 진짜 재밌겠다. 에이. 엄마도 같이 왔으면 좋을텐데. 니 엄마는 대체 왜 그러냐? 그치?"

오늘은 상현의 회사 동료인 재민의 별장으로 놀러가는 날이다. 상현과 재민 외에도 두명의 동료가 각자 식구를 데리고 가기로 했다. 일년에 몇번씩 이렇게 모여서 캠핑을 가곤 했다. 지난 봄에도 갔으니 4개월만이다.

상현은 그동안 항상 같이 가다가 이번엔 그냥 바쁘다며 가지 않겠다고 때쓰던 아내의 모습을 떠올리며 눈을 찌뿌렸다. 가족을 위해 잠깐 그것도 못 참나? 상현은 집에 돌아가면 한마디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스팔트 위로 아지랑이가 눈을 어지럽혔다. 상현은 답답하여 창문을 조금 열고 속도를 올렸다. 가파른 산비탈을 빠르게 내려가자 기분이 좀 나아졌지만 아직 부족했다.  모든 창문을 내리자 바람과 소리가 차 안으로 순식간에 쏟아졌다. 약간 더운 바람이 머리를 어지럽게 하여 묘한 쾌감이 느껴졌다. 조금만 더. 속도를 올렸다.

"시원하지? 승재야! "

 담배도 필까 생각했지만 안될것 같았다. 바람이 너무 셌다. 하지만 충분했다.

승재는 몸을 후려치는 뜨거운 바람때문에 숨쉬기가 힘들어서 창문을 닫으려 했지만 작동이 되지 않았다. 허리를 숙이고 아빠에게 창문 좀 닫으라고 소리쳤다. 하지만 그 소리는 바람에 밀려 창밖으로 사라졌다. 승재는 아빠를  잡으려고 앞을 보았다. 그러자 전방의 창밖으로 깊은 낭떠러지가 보였고 차는 그 사이 좁은 도로를 위태롭게 달리고 있었다. 승재는 금방이라고 차가 산밖으로 튕겨져 나갈 것 같았다. 아니, 이미 절벽으로 떨어지고 있는 것 같아, 무서워서 양손으로 귀를 막고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고개를 숙여 그저 계속 소리쳤다. 

"뭐라고 승재야? 시원하다고? 하하하!"

승재에겐 아빠의 웃음소리만 선명하게 들렸다.

내리막길이 끝나자 상현은 창문을 닫고 큰 소리로 말했다.

"이야, 진짜 재밌었다! 그치 승재야?"

대답이 안들리고 이상한 소리가 들리자 상현은 백미러를 보았다. 백미러 구석에서 승재는 혹시 몰라서 준비해놓은 비닐 봉지에 얼굴을 깊숙히 넣고 구토를 하고 있었다.

"어? 승재야? 괜찮아?"

상현은 놀라서 차를 갓길에 세우고 뒷좌석으로 등을 돌려 승재를 허리를 쳤다. 크게 두번 쏟아내고 고개를 들자 눈물 범벅이 되고 귀 끝까지 붉어진 승재의 얼굴이 나왔다. 상현이 당황하여 말을 꺼내려할때 승재는 다시 봉지에 머리를 박고 큰 소리와 함께 쏟았다. 먹은 것도 별로 없었고 지금까지 오바이트를 한 적이 없는 승재였기에 상현은 의아해하며 승재의 등을 두드릴 뿐이었다.

10분 정도가 지나자 승재의 땀은 옷과 의자를 젖히고 있었다. 고개를 숙이고 숨을 거칠게 몰아쉬더니 승재는 갑자기 심한 기침과 함께 울음을 터뜨렸다. 봉지에 있던 토사물이 조금 차안으로 쏟아졌다. 상현은 깜짝 놀라서 승재에게서 봉지를 뺏고 말했다.

"스,승재야, 괜찮아? 그렇게 힘들어? 아빠가 뭘 도와줄까? 물 좀 줄까?"

승재는 고개를 숙인채 거칠게 젓고 소리쳤다.

"필요없어!"

다시 큰 재채기가 쏟아졌다.  상현은 예상치 못한 반응에 당황스러워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이 얘가 왜 이러지? 얘 엄마한테 전화해야하나? 승재의 머리를 보며 한숨을 내뱉고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머리를 거칠게 긁었다. 토사물 악취가 열기와 섞여서 머리가 어지러웠다. 잠시 고개를 숙인 후 상현은 웃으며 말했다.

"승재야. 아빠가 미안해. 아빠가 무조건 미안해. 다신 안그럴게. 용서새주라. 응?"

여전히 훌쩍거리자 상현은 승재의 손을 잡았다.

 "아 맞다. 그러고보니 아빠친구들이랑 만나면 항상 보물찾기 게임했었지? 아빠가 거기서 진짜 멋진 보물을 준비해둘게. 우리 승재가 진짜 좋아할만한 선물."

손을 빼려는 힘이 줄어들고 작은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진짜?"

"응. 진짜. 약속할게"

승재가 코를 훌쩍이며 고개를 끄덕이자 상현은 고맙다고 말하며 승재의 머리를 한 번 껴안고 빨리 봉지를 묶어 밖으로 던진 후 차를 출발했다. 열한 살짜리 꼬마는 정말 피곤하다고 생각하면서.

눈물을 닦고 고개를 들자 아빠는 담배를 피며 운전하고 있었다. 승재는 아빠의 옆얼굴을 바라보며 미소지었다.

’선물..’


"저기 앞에 산 하나 보이지? 저 산을 시작으로 옆에 멀리 보이는 살들이 이어지는 거야. 그걸 산맥이라고 하는거야. 우리가 가려는 별장은 저 산 아래에 있고."

상현이 가리키는 정면에는 그다지 높지 않은 산이 있었다. 그 산에 비해 옆에 있는 산들이 더 멀리있는 것을 보니 그 산 뒤로 보이지 않는 많은 산들이 그 산과 이어져 있는 듯했다. 그런데 승재는 상현의 말처럼 그 산과 옆에 있는 산들이 이어져 있는게 아니라, 따로 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였다. 아예 서로 다른 산 같았다.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그런가? 하지만 승재는 산이 점점 가까워질수록 더더욱 그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이야 승재야! 별장 진짜 크다! 그치?"

산을 등지고 있는 이층 구조의 별장은 울타리가 없는 정원에 서면 뒤에 있는 산이 대부분 가려질 정도의 크기였다. 

 관리하는 사람이 다녀갔는지 정원은 잡초없이 깔끔했다.

정원 밖에는 집채만한 캠핑카 한 대가 있었다. 상현은 그 옆에 차를 세웠다.

짐을 챙기는데 정원쪽에서 한 남자의 목소리가 크게 들렸다.

"야, 이제야 왔냐? 해가 중천에 떴다, 자식아."

상현은 들고있던 배낭을 근처에 놓고 옆에서 도와주던 승재의 손을 붙잡아 정원쪽으로 달려갔다. 정원에는 부부 셋 쌍이 처마 밑 그늘에 서 있거나 파라솔에 누워있었다. 그 중에 모자와 안경을 쓴 남성이 상현쪽으로 걸어갔다.

"아, 늦어서 미안하다. 재민아. 알려준 대로 가는 했는데 역시 좀 찾기힘들더라. 이야, 너네 별장 진짜 크다. 뒤에 있는 캠핑카는 누구꺼야? 진짜 멋진데? 아, 승재야 뭐해? 인사해야지."

승재는 예전처럼 알려준대로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재민은 승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괜찮아. 좀 늦으면 어때. 승재야, 안녕? 키 많이 컸네? 빨리 짐 풀고 얘들이랑 놀렴. 다들 기다리고 있었으니까"

"야, 이상현. 넌 우리한테 인사 안하냐? 그리고 저 캠핑카는 내꺼야. 너 태울 자리는 없어서 우리끼리 타고 왔다."

파라솔에 누워있던 형석이가 선글라스를 들어올리며 말했다.

"아, 당연히 인사해야지. 아, 그리고 괜찮아. 자리가 없으면 어쩔 수  없지, 뭐. 꽉 차면 다들 불편하니까."

형석은 한 사람 씩 찾아가서 인사를 하는 상현을 기가 막힌다는 얼굴로 잠시 쳐다보고 선글라스를 내리며 말했다.

"멍청한 놈. 말귀를 존나 못 알아먹는다니까."

"하하. 바보같긴. 형님이 그렇게 알려줬는데 그걸 못 알아먹어서 이렇게 늦게오냐?"

"어머 오늘은 승재 엄마가 오지 않았네요?"

"네. 그 사람이 갑자기 바쁜 일이 생겨가지고요."

"아쉬워라. 다들 승재 엄마만 기다리고 있었는데.."

"맞아요. 승재 엄마가 워낙 재주가 많아서 꼭 필요했는데.."

"하하. 다음엔 꼭 데려올게요."

"어쩔 수 없죠, 뭐. 아! 승재 아빠도 아내분처럼 재주가 많은데 저희가 너무 생각이 짧았네요."

"맞아요. 맞아. 캠핑 올 때마다 승재 엄마처럼 재주가 많아보였어요."

"하하..전 별 재주가 없습니다. 과찬이십니다."

"어머? 그럼 우리 눈이 잘못됐다는거에요?"

"아니죠. 절대 아닙니다. 내가 한 재주하죠."

"호호. 역시 멋지셔. 그럼 이따가 짐 옮기고 부엌에서 설거지 좀 해주세요. 점심을 먹어서 그런지 너무 피곤하네요."

"예."

 

승재가 아빠와 함께 정원을 돌아다니며 인사를 마치고 짐을 챙기러 가는데 뒤에서 어린 아이들의 소리가 들렸다. 

"오, 안녕 얘들아 잘 지냈니?"

상현은 차를 향해 걸어가는 승재의 손을 잡고 웃으며 아이들에게 인사했다.

승재야 뭐해 친구들에게 인사해야지새

"아, 안녕"

"어? 뭐라고? 안들려! 야, 얘 뭐라고 하는 거냐"

"몰라. 땅 하고 인사나누는것 같은데?"

"하하하! 땅 하고 인사한대! 이승재 너, 개쩌는데?"

"와 우리, 땅한테 무시당한거임?"

"하하. 승재, 니 친구들 재미있네. 너도 한마디 해주렴."

승재는 고개를 올려 상현을 빤히 쳐다봤다. 

"응? 왜 그렇게 쳐다보니?"

"멍멍!"

그때 별장의 뒷쪽에서 개 한마리가 짖으며 승재쪽으로 달려왔다. 검은 얼룩이 군데군데 있는 새하얗고 승재의 허리만한 큰 개였다. 꼬리를 흔들며 승재 앞에서 껑충껑충 뛰어댔다. 

승재도 웃으며 개와 인사했다. 

"안녕.  오랫만이네."

그러자 개의 주인인 재민의 아들 상기는 개에게 달려있는 길지 않은 목줄은 거칠게 잡아당겼다.

"야, 야! 일루와. 이 개는 너만 오면 이러네."

개는 저항하다가 조용히 상기에게 돌아갔다. 상기는 승일을 잠시 노려보고 집으로 들어갔다. 다른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와, 우리 개무시당한거임?"

"승재야 짐은 아빠가 갖다놓을테니 친구들이랑 놀고 있으렴"

승재는 차를 향에 가는 상현의 땀에 젖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선물..'


오후에는 모두 계곡에 가기로 했다. 그런데 별장 근처에 있을 줄 알았던 계곡은 물이 모두 말라버리고 풀만 무성했다.

"아이씨, 얼마전에 이 산지 개발하다가 취소됐거든? 그것 때문에 물이 막혀버렸나보다."

"그럼 오는 길에 보였던 곳으로 가자. 별로 멀지도 않으니까."

"상현아! 니 차에 짐 좀 실자!"

물놀이가 끝나고 별장으로 돌아왔을 때는 석양이 산 너머로 막 떨어졌을 즈음이었다. 한 여름의 석양빛은 산꼭대기 부근에서 분출하여 집어삼키는 듯 했다.

"야! 상현아! 이제부터 바베큐 먹을건데 준비좀 해주라. 니 바베큐 존나 잘하잖아."

다른 식구들도 맞장구를 쳤다.

"캬. 뭘 좀 아네. 내가 바베큐 하나는 기가 막히게 하지."

"바베큐만 잘해? 설거지도 잘 하지 커피도 잘 타지. 야, 캠핑에선 니가 진짜 필수품이다. 필수품"

"하하하!"

형석의 말에 모두 웃음을 터트렸다. 승재도 웃으며 말했다. 

"그치? 내가 없으면 너네들 캠핑와서 어떻게 먹고 노냐. 하하.."

정원안은 모닥불이 타는 소리와 별장안에서 희미하게 새어나오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가득 찼다. 상현의 얼굴은 모닥불에비춰 붉게 일그러졌였다.

"하하하! 

재민의 웃음소리였다.

"얘가 술도 안마셨는데 벌써 취했나 보네. 혀가 꼬여서 말도 거꾸로 하고."

"하하하! 진짜네! 저 새끼 완전 취했네! 너 언제 몰래 술처마셨냐?"

"야! 승재야! 니 아빠 언제 술 마셨냐? 완전 정신나갔는데?"

정원은 웃음소리로 가득 찼다. 상현은 이 소리가 멈추기 전에 고개를 들고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하! 진짜 미안하다. 내가 아까 잠깐 소주 한 병 까서 먹었는데 그것 때문인것 같다. 아, 혼자 마셔서 미안하.. "

 "아빠, 오늘 술 안마셨는데.."

그 소리에 모든 눈이 몰렸다. 승재는 상현을 올려다 보았다.

상현의 친구들은 재미있다는 듯이 둘은 쳐다봤다. 

재민이 싱글벙글하며 말했다.

"어? 승재야. 아빠 술 정말 안마셨어? 그럼 아빠가 뻥친거야?"

상현은 양손으로 손사래를 쳤다

"아니, 아니야. 나 마셨어. 승재가 아까 놀때 마,셔서 모르는거야. 하하..."

"나 계속 아빠 보고 있었는데.."

"오! 승재의 반박!"

박장대소가 터져나왔다. 상현의 얼굴에 불꽃이 드리운 것 같았다.

"호호. 승재 정말 귀여운 것 같아."

"맞아요. 착한 아들 두셨네요.호호."

"아니, 저 얘가 저... 아니 과찬이십니다. 하하."

"아 배고프다! 상현아, 바베큐! 우리도 술 좀 먹자!"


파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을 땐 이미 해가 진 후였지만 정원 곳곳에 있는 조명때문에 대부분 그 사실을 눈치채지 못 했다.

상현은 정원 끝에어 혼자 서서 와인을 마시고 있는 재민에게 다가가 와인병을 흔들었다.

재민은 미소지으며 와인잔을 꺽었다.

"아, 재민아. 아깐 미안했다. 내가 실수로.."

"어? 무슨 실수? 그나저나 니 아들 진짜 귀엽더라. 잘 키웠네."

"아, 고마워."

상현은 잠시 망설이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데 그 건은.. 잘 되는거 맞지?"

재민은 잠깐 웃더니 상현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말했다.

"상현아. 여긴 회사가 아니야. 내 별장이지. 우린 여기 놀러온거고. 여기서까지 회삿일 생각하고 싶지않다."

"아, 미안..."

재민은 상현의 어깨를 두드리고 파티로 돌아갔다.


"아 배부르다. 이제 방안에 들어가서 한잔 하자. 상현아, 천천히 정리하고 들어와. 이야 밤공기 좋네."

"알았어. "

상현이 정리를 시작하려는데 승재의 목소리가 들렸다. 

"재민 아저씨."

재민은 놀라 뒤돌아보았다. 주변에 있던 다른 친구들도 승재를 쳐다봤다. 상현도.

"오, 왜 승재야. 아저씨에게 할 말 있니?"

승재를 고개를 반쯤 숙인채였다.

"이,이번에는 보물찾기 안해요?"

상현은 집고 있던 꼬챙이를 꽉 쥐고 승재에게 달려갔다. 

"승재야. 지금은 다들 피곤하니까 다음에 놀려오면 그때 하자. 응?"

재민은 승재의 손을 잡아끄는 상현의 손을 막았다.

"응? 뭐야? 누가 피곤하대? 상현아 난 너처럼 안취했거든? 이야 승재이 아니었으면 까먹고 보물찾기 못 할뻔했네. 만나면 거의 항상 했었는데. 보물찾기 하고 싶은 사람 손!"

"손!"

"손!"

"상현아, 너는?"

재민은 당황한 얼굴로 가만히 서있는 상현을 보며 물었다. 승재도 상현을 쳐다봤다.

"무, 물론 나도 손.."


보물찾기 놀이는 부모가 종이에 아이들이 좋아할만한 선물같은걸 써서 숨긴 다음 찾은 아이들에게 주는 게임이다. 재민이 만들어서 이들과 처음 캠핑을 갔을 때부터 시작했다.정리를 마치고 정원에서 보물찾기 놀이를 하기로 했다. 몇 명은 잠깐 귀찮은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찬성했다. 아이들은 환호성을 내질렀다. 서로 무엇을 갖고 싶은지 물으며 웃고 떠들었다.

상현은 승재에게 귓속말로 무엇을 갖고 싶은지 물어봤다.

승재은 고민하더니 상현을 마주보고 웃으며 말했다. 

"아무거나 좋아. "

 

"혹시 종이 어디있는지 아는 사람?"

"저요! 혹시 몰라서 준비해뒀죠. 헤헤"

재민의 아들 상기가 집 안으로 들어가더니 색종이를 들고 왔다. 아이들은 별장 안에 모여서 부모들끼리 모여서 종이에 선물 적기 시작했고 아이들은 보지 못 하도록 선물을 다 적고 정원에 전부 숨길 때까지 이 층에서 놀기로 했다.

"상기 엄마는 뭐 적을거예요?"

"글쎄요? 재현 엄마는요?"

"저도 모르겠어요. 호호."

"승재이 아빠는요?"

상현은 머리를 글적이며 말했다.

"글쎄요? 아까 여기 올 때 조금 승재이를 속상하게 해서 멋진 선물을 주겠다고 약속했었는데 무엇을 줘야할지 막막하네요."

재민은 상현을 잠시 쳐다보더니 말했다.

"그럼 편지같은건 어떠냐?"

"편지?"

"그래. 장난감같은 것은 나중에 사줘도 되잖아. 그리고 승재이는 생각보다 여리고 내성적이니까 진심어린 편지같은걸 주면 속으로 굉장히 좋아할 수도 있지."

"와. 성기아빠. 굉장히 생각이 깊네요. 그러니까 재민이가 그렇게 성격이 밝지."

다른 부모들이 맞장구를 쳤다.

별걸 다안다고 생각하며 상현은 웃었다.

"와 진짜 니말대로 편지가 좋겠다. 그럼 근데 그 편지를 다른 아이가 찾아서 읽으면 어떡하죠?"

"야. 걱정마라. 친구 좋을게 뭐냐. 우리가 도와줄게. 우리 얘들이 니 편지 못 찾게해주면 되지?"

"그래. 고맙다."

그런데 너 어디다가 숨길건데

정원 맨 왼쪽 화단에 숨긴다고 승재한테 얘기해뒀어.

좋아 그럼 여기다가 편지 쓰고 있어. 우린 다른 얘들한테 말하고 올게.

재민은 노란색종이를 상현에게 주며 말했다.

재민은 아이들을 불러모았다.

"승재는 어딨니?"

"저기서 핸드폰 게임하고 있어요."

"좋아. 너희들에게 이번 보물찾기에서 알려줄것이 있단다."


"알겠지?"

네 이 노란색종이가 숨겨져 있는 곳에서 가서 그 편지를 안찾으면 된단말이죠?

상기는 노란색종이를 흔들며 말했다.

"그래."

"자, 보물찾기 시작!"

재민의 외침이 끝나자마자 별장의 문 앞에 서있던 아이들이 정원으로 뿔뿔히 흩어졌고 부모들은 아이들을 응원하다가 곧 별장안으로 들어갔다.

승재는 상현이 알려준대로 곧바로 정원의 왼쪽으로 가서 찾기 시작했다.

'노란색종이..'

"뭐야? 너도 여기서 찾고있냐?"

승재는 깜짝 놀라서 옆을 보았다. 상기가 자신이 아직 찾아보지 않은 왼쪽 화단에서 종이를 찾고 있었다. 승재는 좀 더 빠르게 화단을 뒤졌다. 그리고 이따금씩 상기가 보물을 발견했나 눈치를 봤다. 매번 보물찾기를 할때마다 가장 좋거나 많은 보물을 차지한 사람은 상기였다. 하지만 승재는 상기가 다른 얘들 것을 가져가거나 바꾸는 것을 알고 있었다. 

"에이, 여긴 하나도 없네"

상기는 투덜거리며 다른 화단으로 옮겼다. 승재는 상기가 자기만큼 꼼꼼히 찾지 않은 것을 떠올리며 조금이나마 안심하고 다시 꽃 하나, 작은 돌맹이 하나 조심스럽게 확인하며 보물을 찾았다.

"야, 나 또 찾았다. 2개째다."

"아, 나는 하나밖에 못 찾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의 외침이 들릴수록 승재는 손과 눈동자를 빠르게 움직였다. 왼쪽 화단을 벌써 두 바퀴째 돌며 찾고 있지만 누가 이미 자신의 보물을 훔쳐갔을까봐 불안했다. 한 군데에 집중하는 사이 뺏겼을 수도 있다. 식은땀이 흘렀다. 

"야, 우리 안으로 들어가자."

"어.난 두 개나 찾았지롱."

"하. 난 쓰레기밖에 못 찾았음."

"에휴. 쟨 아직도 찾고있네. 존나 느려터져가지고."

아이들이 모두 별장으로 들어간 것을 확인한 승재는 다른 화단으로 넘어갔다. 다른 화단인데 잘못들었을 수도 있다. 

별장안에서 큰 웃음소리가 들렸다. 승재는 땀을 온몸이 젖을 정도로 흘리며 화분을 헤쳤다. 분명히 있을것이다. 노란색 보물은. 다시 뭔가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 승재는 무시했다. 잠시 후, 좀 더 크게 들리자 승재는 화분에 묻고 있던 머리를 들어올렸다. 앞에는 점박이 개가 있었다.

 승재는 놀라서 엉덩방아를 쪘다. 벌떡 일어나 다시 보물을 찾으려할 때, 무엇가 보았다는 느낌에 개를 돌아보았다. 개의 입에는 눈에 띄게 노란 종이가 있었다. 승재는 곧바로 개에게 몸을 날렸지만 개는 재빠리게 피하고 별장 뒤쪽을 향해 도망갔다. 승재는 다리가 까진 것도 모르고 개를 쫒아갔다. 별장 뒤에는 조명이 없어서 창문 틈으로 세어나오는 불빚이 희미하게 밝히고 있었다. 하지만 개는 계속 달려갔고 승재는 핸드폰 불빛을 키고 쫒아갔다.

"거기 서!" 

놀리듯이 승재의 속도에 맞추며 도망치던 개가 멈춘곳은 산으로 입구인 듯 산길이 나있는 곳이었다. 별장이 등지고 있는 그 산이었다. 산길 앞에는 접근 금지라는 안내판이 막고 있었고 그 너머에서 개는 노란 종이를 문 채 승재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거 줘. 내꺼야."

개는 종이을 땅에 내려놓고 사납게 짖었다. 승재는 그 노란안내판 앞에 서서 조금 망설였다. 하지만 다시 종이를 물고 조금 더 뒤로 달아나는 개를 보고 결심했다. 

승재는 안내판을 잡고 힘을 주어봤다. 안내판은 생각보다 쉽게 움직였다. 양손으로 안내판을 들어올리고 반대쪽으로 돌렸다. 그러자 똑같이 '접근 금지'란 경고문이 써져있었다.

"씨발."

양면이란 것을 몰랐던 승재는 욕을 내뱉고 안내판을 쓰러뜨렸다. 개는 놀란 듯 좀 더 안쪽으로 달아났다. 승재는 한숨을 쉰 다음 개에게 전속력으로 달려갔다.

 

상현은 부엌에서 커피를 만드는 도중 승재가 떠올랐다. 아직 못 찾았을리가 없단 생각에 아이들이 모여 있는 거실로 갔지만 아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밖으로 나가봤지만 정원에도 없었다. 아이들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얘가 어디 갔지?"

 

사람이 다녀간지 오래된 듯 산길엔 나뭇가지가 침범하고 있었고 구덩이가 여기저기에 파여있었다. 우거진 나뭇가지 사이로 반쪽달이 보였다. 죽을듯이 힘들었다. 하지만 멈출 수가 없었다. 개는 지친 기색없이 계속 승재를 놀리듯이 속도를 조절하며 도망쳤다. 승재는 이대로는 절대 못 잡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승재는 멈춰섰다.

개는 뒤를 돌아봤다. 그 인간이 보이지 않았다. 혹시 돌아간 건가? 개는 조심스럽게 반대쪽 산길로로 갔다. 그때 옆쪽 수풀에서 무언가 튀어나왔다. 다리를 잡힌 개는 크게 뒹굴었고 겨우 그 손에서 빠져나와 산길로 멀찌감치 도망갔다.

"아씨... 다 잡았는데.."

승재는 흙바닥에 엎드린채로 개에게 돌맹이를 던졌다. 맞지 않았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승재는 몰랐고 알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핸드폰 배터리는 어느새 다 닳았고 승재는 어둠에 익숙해졌다.

개는 승재가 산길에서 사라지면 당황한 듯 주변을 살핀다. 그걸 깨닫고 몇 번, 산길에서 벗어나 수풀에서 몰래 접근하여 개를 덮쳤지만 아깝게 놓쳤다. 하지만 성과는 충분했다, 체력 소모를 줄일 수 있었고, 계속 산길을 달렸던 개는 현저히 지친 듯 헐떡거렸다. 노란 종이을 놓지는 않았다. 승재는 더러워진 종이를 보며 욕을 내뱉었다. 그리고 다시 아빠를 떠올리고 개를 쫒았다. 

산길을 달리던 개는 갑자기 멈춰섰다. 승재가 달려오고 있었지만 움직이지 않았다. 오히려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승재쪽으로 천천히 왔다. 승재는 의아했지만 곧 지쳤다고 확신하고 개에게 몸을 날렸다. 피했지만 곧바로 덮쳐온 손은 피할수없었다. 승재와 개는 서로 지르고 짖으며  뒤엉켰다. 승재는 노란 종이를 물고 있는 개의 입을 벌리려 했고 개는 강하게 저항하며 별장쪽 산길로 도망치려했다. 그러데 승재가 개를 잡고 땅을 굴렀을때 갑자기 잡고 있었던 개가 신음소리와 함께 사라졌다. 정신을 차리자 눈앞에는 흙과 침투성이가 된채 조금 찢어진 노란 종이가 있었다. 승재는 당장 집어들었다. 심하게 더럽혀지진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승재는 그 자리에 앉아서 종이를 펼쳤다. 어두웠고 지저분했지만 승재는 충분히 읽을 수 있었다. 진동과 함께 어떤 소리가 들렸지만 상관없었다.

 

'승재야. 아빠다. 아빠는 니가 정말 창피하단다. 니가 왜 이렇게 사는지 아빠는 모르겠다. 너에게 줄 것은 이것밖에 없단다.'

 

옆에는 중지만 올린 손가락을 그린 그림이 있었다.

이번엔 더 큰 소리가 들렸고 승재는 갑자기 몸이 가벼워진 것 같았다. 바람과 소리가 온몸을 감싸고 하늘을 나는 기분이었다. 승재는 웃었다.

 

승재는 다음날 아침, 낭떠러지 중간에  튀어나온 바위 위에서 발견되었다. 쓰러진 안내판과 승재와 개의 발자국이 주효했다. 승재는 한 다리와 한 팔이 부러졌을뿐 다른 심각한 점인 없었다. 모두들 기적이라 불렀다. 개는 절벽 아래서 머리가 깨진채 발견되었다. 승재는 별장에서 최단거리의 병원으로 실려가 오후에 의식을 찾았고 저녁에 퇴원했다. 상현은 곧바로 집으로 가기로 했다.

상현은 백미러로 승재를 보았다. 눈이 마주쳤다.

"승재야? 안 졸려? 괜찮아?"

승재는 환하게 웃었다.

"응. 아빠. 하나도 안 졸려. 하나도 안 아프고."

"승재야. 아빠가 미안해. 널 제대로.."

"괜찮다니까. 아빠는 잘못한 거 하나도 없어."

"아. 고, 고마워. 승재야."

차는 산허리를 달리고 있었다. 그 산은 몇 년 전, 개발 중단으로 산의 절반 가까이 깎여나간 채로 방치되었다고 한다. 창밖은 어둠이 잔뜩 깔렸지만 그 산만은 눈에 띄었다. 별장의 불빛때문이 아니었다. 달빛이 그 산의 유리처럼 매끈한 뒤태를 감싸 빛나고 있었다. 그것은 얼굴일수도, 심장일수도 있었다. 그 뒤에 있는 산맥은 그 산에 비하면 무엇을 그렇게 잔뜩 가지고 있는지 잘 보이지도, 그렇다고 안보이지도 않는 반쪽짜리들이었다.

상현은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구겨진 종이가 잡혔다. 구급대원이 승재의 손에 쥐어있었다고하며 넘겨준 것이다. 승재가 병실에서 아직 의식을 찾지 못 했을때 읽어보았다. 재민은 이것을 읽고 아마 경찰이 무언가를 물어볼것이다고 했다. 시키는대로 하면 너는 회사에서 더욱 좋아질것이라고 했다.

 

'제가 썼습니다. 장난으로..'


상현은 종이를 꽉 쥔 다음 입을 열었다. 그리고 이내 곧 닫았다.

주머니에서 손을 빼고 핸들을 쥐었는데 팔을 잡아당기는 느낌이 들어 뒤를 돌아봤다.

승재가 코앞에서 웃고 있었다.

상현은 깜짝 놀라 자칫하면 옆의 절벽쪽으로 핸들을 꺽을 뻔했다.

"왜, 왜 그래? 승재야? 큰일날 뻔했잖아."

승재는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아니지. 음... 아빠가 너무 좋아서. 헤헤."

"하하... 아빠도 사랑해."

몇 분 후, 승재는 깊히 잠들었다. 상현은 창문을 열어 주머니에 있는 것을 버렸다. 바람과 소리가 차안으로 쏟아졌다. 얼른 창문을 닫았다. 백미러를 보고 상현은 한숨을 쉬었다.


유진선/butgot0719@hanmail.net/010-2704-79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