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

by 강가람 posted Sep 07,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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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


730분 시끄러운 알람 소리에 눈을 뜬다.

습관처럼 연 휴대폰엔 어젯밤 오빠가 보낸 메세지 한통이 와있다.

'힘든 일 있어도 참고 꿋꿋히 살아라. 절대 포기하지말고.'

평소 장난기 많은 오빠와 어울리지 않는 메세지에 무신경하게 답장한다.

'꺼져. 뭘 잘 못 먹은 거야'

아침을 먹으려고 했지만 집에 남은 음식이 없었고, 결국 무거운 몸을 이끌고 장을 보러 밖으로 나왔다.

"헤리야!"

프랑스에서 유학하면서 오랜만에 듣는 한국말에 깜짝 놀라 뒤돌아봤다. 일주일 전 부모님과 통화한 이후로 처음 듣는 한국말이었다. 참고로 내가 사는 곳에 한국사람이라곤 나를 제외하곤 식당을 하시는 노부부 두분 밖에 없었다.

". 이혜리!"

그 목소리의 주인공이 누군지 생각나려고 할 때 목소리의 주인공이 내 어깨를 잡았다. 그 손에 이끌려 뒤돌아보자 익숙한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넌 오빠가 부르는데 대답도 안하고, 뭔 생각을 그렇게 하냐?"

바로 오빠였다.

"여긴 어떻게 온 거야?"

아마 그때의 내 얼굴은 심하게 멍청해보였겠지.

"그게 뭐가 중요해. 오늘 하루 이 오빠가 책임지고 에스코트 한다."

갑작스러운 오빠의 방문은 나를 패닉 상태로 만들었다. 나한테 말 한마디 없이 열 시간이 넘게 비행기를 타고 찾아와 불쑥 내 자취방에 들이닥친 오빠는 어질러진 내 방을 치우기 시작했다.

여자애가 방을 이렇게 하고 살면 어떤 남자가 좋아하겠냐?”

"뭐래. 이정도면 깨끗한 편이구만. 이 먼 곳까지 잔소리하러 왔어?"

마치 다른 사람 같은 오빠의 모습에 이질감을 느낀 건지, 내 목소리엔 짜증이 가득했다.

"언제까지 청소만 할 거야?"

2시간 동안 청소만 하고 있는 오빠를 돌려세우며 말했다.

"그래. 우리 동생은 잘할 수 있을 거야. 우리 없이도."

내 시선을 피하며 혼잣말하는 오빠에게 몇 번 더 소리를 지르자 그제야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밖에 나가자. 영화도 보고 맛있는 것도 먹고, 하고 싶은 거 있으면 다 말해."

막 집을 나서려고 하는 순간 책상 위에 놓고 온 휴대폰이 울렸다. 내가 집기도 전에 내 휴대폰을 집어든 오빠는 아무것도 아니라며 다시 휴대폰을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 오빠랑 오랜만에 외출인데 휴대폰 놓고 이야기나 하면서 다니자. 너 휴대폰 들고 가면 매일 카톡만 하잖아.“

결국 설득에 못 이겨 찝찝하지만 휴대폰을 놓고 나가기로 했다.

"여기 생활은 어때? 힘들진 않고? 친구는 많이 생겼고?"

"나쁘진 않아. 힘든 것도 없어. 친구도 많고."

그래.”

우리의 대화는 오빠가 질문하고 나는 짧게 대답하는 형태로 계속 되었다. 평소에 짜증내던 오빠가 너무 다정해서 오히려 짜증내는 원래 모습이 보고 싶을 지경이었다.

"넌 만약에 진짜 만약에 엄마 아빠 그리고 나 없이 너만 남겨지면 기분이 어떨 것 같아?"

식당에 들어와 밥을 먹던 도중 오빠가 생뚱맞게 물었다.

"뭐 그런 질문이 다 있냐. 오빠 넌 없어도 모르겠는데 엄마 아빠 없으면 많이 힘들겠지."

"그래. 아무래도 힘들겠지?"

"당연하지. 그런 재수 없는 소리하지 말고 밥이나 먹어 밥이나."

밥을 다 먹을 때까지 시무룩한 오빠의 모습은 정말이지 적응하기가 너무 어려웠다.

내가 살던 마을이 워낙 외진 곳이어서 갈만 한 곳이 딱히 없었고, 나는 오빠를 내가 자주 가던 카페나 식당, 바에 데려갔다. 하루 종일 함께 있으며 평소에 나누지 못한 진지한 애기도 많이 나눴다. 평소라면 장난스럽게 넘길 오빠였지만 내 고민이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주고 조언이나 위로도 함께 해줬다.



'예전에 천덕꾸러기 같던 오빠도 좋지만 이런 오빠도 나쁘지 않겠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이런 생각을 하며 혼자 낄낄거렸다.

"뭐야? 그 웃음은?"

"아무것도 아니야. ! 근데 여기서 며칠이나 있다 가는 거야?"

앞으로 달려가다가 돌아보며 물었다.

"하루."

"하루!? 여기 오는데 돈이 얼만데 돈이 땅 파면 나오는 것도 아니고. 그냥 더 있다가 가. 바닥에서 재워줄게."

"나도 더 있다 가고 싶어."

오빠가 내 옆을 스쳐지나가며 말했다.

"뭐야. 더 있고 싶으면 더 있으면 되지."

집으로 돌아온 우리 둘은 양손 가득 사온 술과 과자를 먹으며 다시 이야기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 오빠 여자 친구 생겼다며? 엄마한테 다 들었어. 사진 보여줘 사진."

"너랑 엄마는 서로 비밀이 너무 없어."

오빠는 웃음 섞인 한숨과 함께 휴대폰을 내게 내밀었다. 휴대폰 화면엔 엄마와 내 사진이 배경화면으로 지정되어 있었다.

"뭐야. 여자가 제일 싫어하는 게 효자인거 몰라? 이거 여자 친구 사진으로 바꿔. 나중에 후회한다."

앨범에 들어가니 여자 친구와 함께 사진과 여자 친구 사진 그리고 내가 장난으로 보냈던 내 사진들이 저장되어 있었다.

"이 사진 저장해놓으면 어떻게 딴 사람들이 보면 나 미친앤 줄 알거 아니야?"

작년 할로윈 때 찍은 엽기사진까지 저장되어있는 걸 보고 깜짝 놀라 소리쳤다.

"평소랑 별로 안 달라."

오빠가 웃는 얼굴로 말했다. 새벽 3시이라는 시간을 외면한 채 우리는 살면서 했던 이야기를 모두 합친 것보다 많은 이 야기를 했고, 오빠에 대해, 부모님에 대해 그리고 나에게 대해서도 더 알게 되었다. 왠지 잠들고 싶지 않은 기분에 계속해서 이야기를 이어가려고 했지만 결국 쏟아져오는 졸음에 이기지 못하고 새벽 4시가 조금 넘어 잠이 들고 말았다. 잠들기 전 마지막 내 눈에 내게 이불을 덮어주는 오빠의 모습이 보였다.

'우리 오빠 다 컸네. 이제 투정 좀 부리면서 지내도 되겠다.'

"우리 동생 다 컸네. 이제 투정 부릴 상대 없어도 되겠다."

내 생각과 오빠의 말이 함께 귀와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그리고 잠이 들었다.

다음날 11시가 다돼서야 겨우 눈을 떴다. 잔뜩 어지르고 잠든 기억이 있어 걱정했지만 방은 오빠가 청소를 한 건지 먼지 하나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깨끗했다. 그저 문제라면 방 안 가득 퍼져있는 술 냄새 정도. 한 가지 더 이상한건 아무리 둘러봐도 오빠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습관처럼 책상 위에 놓인 휴대폰으로 다가갔다. 배터리가 다됐는지 꺼져있는 휴대폰에 배터리를 갈아 끼우고 집 앞으로 나갔다.

"이 인간 어디 간 거야. 말도 안 통할 텐데 밖에 나갔을 리는 없고.. 뭐야."

오빠 걱정에 발을 동동 구르고 있을 때 휴대폰이 켜졌다. 켜진 휴대폰 화면에는 100통이 넘는 부재중 통화 와 엄청난 수의 메시지를 알리는 알림이 떠있었다. 전화는 온통 친척들이나 모르는 번호에서 걸려온 것들이었고, 메시지의 내용은 다시 한 번 내 눈을 의심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인터넷 기사를 확인했을 때, 비행기 추락 사고라는 기사가 메인으로 걸려있었다. 기사를 읽으며 다리의 힘이 풀리는 바람에 옆에 있는 의자에 아무렇게나 주저 앉아버렸다.

'프랑스행 TAL9650 비행기 추락사고. 30명의 시신 확인 나머지 승객들의 생존 여부 불확실.'

그 아래에는 탑승자 명단이 함께 적혀있었다.

탑승자 명단에서 나는 보고 싶은 하지만 이 명단에서만큼은 보기 싫은 이름을 발견했다.

이 형욱(50, ) , 최 미숙(47, ) , 이 지석(27, ) 사망

머릿속에 새하얘졌다. 자리에서 홀린 듯 일어난 나는 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집으로 들어오자마자 미친 사람처럼 오빠의 흔적들을 찾기 시작했다. 옷걸이에 걸려있던 외투도, 책상 위에 풀어놓았던 시계와 목걸이도 없었다. 집 안 어디에도 오빠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받아들일 수 없는 현실에 집 밖을 나가 오빠의 이름을 부르며 한참을 뛰어다녔다. 어느새 정신을 차리니 어제 오빠와 왔던 식당 앞이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식당에 들어가 나를 기억하냐고 물었다.

"기억하죠. 어제 남자친구랑 같이 왔잖아요. 오늘은 왜 혼자예요?"

오빠는 여기 있다. 그 가능성이 다시 나의 몸에 힘을 불어넣었다. 어제 갔던 곳들을 하나씩 되짚어 갔다.

"사이 좋아 보이던데 오빠였어요?"

"두 사람 남매였어요? 너무 다정해서 애인인 줄 알았네."

집에는 아무런 흔적도 없었지만 사람들의 기억은 오빠를 더욱 선명하게 나타내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와 신문사에 전화를 걸었다.

"기사가 잘못 된 것 같아서 연락드렸어요. 비행기에 탑승했던 사람들 중에 이지석이라는 사람 있죠? 어제 프랑스에 왔었어요. 저랑 하루 종일 같이 있었고요."

"기사에 실린 30명의 사망자는 전부 시신 확인이 끝난 승객들입니다. 잘못 됐을 리도 없고요."

다시금 오빠의 존재가 흐릿해지려고 했다. 그때 침대 아래쪽에서 메시지 알림 음이 들렸다. 내 휴대폰은 분명히 내 손에 들려있는데 그 의문에 소리를 쫓아 침대 아래를 보니 무언가 검은 물체가 보였다. 손을 뻗어 꺼내보니 어제 오빠가 내게 건넸던 오빠의 휴대폰이었다. 오빠의 휴대폰에도 수많은 메시지가 와있었고, 알림 음이 울리게 만든 메시지는 내가 어제 아침에 오빠에게 보냈던 메시지였다.

'꺼져. 뭘 잘 못 먹은 거야'

배경화면은 여전히 나와 엄마의 사진이었다. 혹시나 오빠가 어디 있는지 알 수 있지 않을까하며 휴대폰을 이리저리 뒤지던 나는 앨범을 누른 채 멍하니 서있었다. 앨범 가장 앞에는 어제 오빠와 같이 찍은 내 사진이 있었다.

오빠는 어제 나와 있었다. 하지만 오빠는 어제 죽었다. 지금도 그때 내가 본 사람이, 마을 사람들이 본 사람이 내 오빠라는 걸 확신하고 있지만 몇 년이 지나도 오빠에게서 연락이 오지 않는다. 분명 영안실에서 부모님과 오빠의 마지막 모습을 확인했음에도 불구하고 내 기억 속 마지막 오빠는 영안실에서 본 모습이 아닌 프랑스에서 봤던 모습 그대로 내 기억에 남아있다.

 

나는 오늘도 그 날의 오빠가 돌아오길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