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화(老化)

by 바울 posted Mar 26,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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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꿨다. 아니 꿈인지 아닌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와의 대화를 잊어버리지 못한다. 그건 꿈이되, 꿈이 아닌 이야기다.

 




-정용준. 정용준이... 자네. 일어나보게.

 




누군가 내이름을 부른다. 익숙하지만 듣기 싫은 목소리. 아니 많이 들어본 듯한 목소리가 귓가에 퍼진다. 약간 부스스한 느낌으로 잠에서 깼다. 어중간하게 잔 느낌. 뭔가 덜 깬 기분으로 잠에서 깼다. 머리를 긁적이면서 나를 깨운 존재를 찾았다. 아니 흐릿하게 떠지는 눈을 떠서 보니, 거긴 팔짱을 끼고 삐딱하게 앉아 있는 내가 있었다.

놀란 표정을 짓고 쳐다보면서 뭐라고 중얼거리고 싶지만, 이상하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물속에 갇혀있는 것처럼 입에 뭔가가 들어 올까봐 안 열고 있는 것이 아니라, 마치 입에 마취주사를 맞고 감각이 없어진 것처럼 전혀 입에 대한 감각을 찾을 수가 없다. 어 왜 이러지?

놀란 토끼눈을 뜨고 앞의 를 쳐다보니,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가 말을 걸었다.

 



-이상하지? 왜 내가 두 명인지, 뭣 때문에 입을 열 수 없는지 혼란스러운 것이 많을게야. 하지만 너무 이상해 하지 말고 일단 들어보게.. , 일단 여긴 꿈이네. 2076년 자네가 문성대를 입학하고 정확히 한 갑자(甲子)가 지났다네. 지금 눈앞에 있는 나의 나이도 당연히 85세 이고, 자네는 음..그래 25세지.

 



이게 무슨 공상 과학에나 나올법한 이야긴가? 내가 85세 인데, 저렇게 정정할 이유도 없거니와, 이건 분명 내 무의식이 만들어낸, 하나의 허상(虛像)에 불가하다. 이건 말이 안된다! 무슨..

 



-그래 이 맘때 나는 이게 말이 안된다. 무슨 공상과학 같은 일이냐며, 허상 또는 무의식의 잔재라고 생각하겠지. 그땐 내 시야가 그랬으니까. 근데 자네도 알겠지만, 알파고가 이세돌을 이기고, 그때부터 특이점이 왔지. 스티븐 호킹 박사가 말 한대로, 몸의 대부분의 기능을 기계들이 대신해주고, 세포재생. 피부조직 재활성화, 장기의 기계화로 정말 신체적 노화가 없어진 세상이 온거야.

 




..이건 말이 안된다. 신체적 노화가 없는 나이라니, 그렇다면 죽음도 없다는 말인가? 아니 이게 무슨 말도 안되는..

 



-말이 안된다고 생각하겠지. 물론 그렇게 생각하는 것조차 나 또한 맞는 말이라고 생각하네. 나는 ‘85야 세상 대부분의 경험을 했지. 2067년 국제 노인법에 의해서 70세에 해당하는 정신연령을 채우지 못하면 죽음을 선택하지 못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네. 신체가 멀쩡하면 일을 해야 한다는 국제 노동법에 따라, 지난해 68세에서 올해 71세로 드디어 이루어 냈다네, 사실 누가 불로불사(不老不死)에 소원이 없겠나, 허나 그것도 신체가 늙어감에 따라 경험해보지 못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있기 때문이지. 자네도 알다시피 불가(佛家)에서 말하는 열반(涅槃)이라는 것은 젊을 때는 그것에 대한 생각도 단서도 모르지만 나이가 들면서 알게 된다네. 또한 몸이 건강을 잃어가면서 열반의 단서는 또 멀어지지.

 



이 상황에 조금씩 적응하면서 이곳이 꿈 안이라는 것도 알게 되고, 일단은 하는 말을 듣고 있다 보니, 그럴듯해서 어느 정도 납득하고 있었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하던가..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어서 60년을 거슬러와 내 꿈에 나타났겠나? 분명 이유가 있을것이라 생각하고 이야기에 집중하고 있었다.

 



-하.. 젊은 몸으로 2040년을 사니, 인생의 모든 부귀영화가 허무하더군.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세상 모든 사람들이 진리에 관한 컨텐츠를 가장 으뜸으로 여기고, 육체 나이 대신 정신적 연령과 세상을 보는 시야 그리고 얼마나 다양한 가치관과 지혜를 가지고 있는 가로 자신의 정신연령을 체크하는 정신연령측정기’(mental-age-measuring instrument) 가 바로 새로운 세상의 기준이 되어버렸네. 더 살고 싶은 사람은 살아가고, 정말 이 세상에 미련이 없이 가고 싶은 사람은 갈 수 있는 신자유주의를 넘은 생명자유주의의 시대에 나는 살고 있다네.

 



..생명 자유주의의 시대. 개인의 선택이 윤리를 새롭게 써내려가는 시대에 살고 있는 미래에 나를 보며, 인간의 발전속도가 경이롭다는 것을 그리고 발전의속도 그래프가 눈앞에 가파르게 올라가는 것이 그려졌다.

저 사람은 분명 내얼굴을 하고, 내모습을 그대로 하고 있지만, 그런 나의 약 4배에 가까운 삶을 살게된 진짜 삶의 선배.

 



-그래그래. 기억이 나는구만, 그때 나는 분명 노화에 대한 의미를 생각해오는 숙제를 하고 있었지. 그리고 난 초자아’‘원초아’‘자아이 세명이 이야기하는 노화를 각각 이야기하려고 했지.. 맞는가?

 



아직 쓰지도 않은 과제 구상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보면.. 내가 맞다..저렇게 쓸데없는 부분에서 기억력이 좋은 것도 분명 얼굴뿐 아니라, 재수없는 모습까지 나를 닮았다.. 아니 내가 그를 닮은 건가? 그가 나이가 많으니까.. 쓸데없는 생각을 하고 있으니 그가

다시 이야기를 이어간다.


-이미 내가 살고 있는 사회는 걷잡을 수 없이 발전했네. 이렇게 부분적타임머신(partial-timemachine)도 개발되었을 정도로.. 아 물론 국제 사회법에선 당연히 불법이지. 내가 이렇게 찾아올 수 있었던 이유는 2가지 제약이 있어서 가능했네. 우선 난 죽음을 택했네. 더 이상 삶의 미련이 없어.. 그리고 부분적타임머신의 대상을 나 자신의 과거의 으로 정했네. 아직 과거에선 꿈의 영역을 다 밝히지 못했지만, 미래에는 모든 뇌과학영역이 98.66% 개발됨으로써 꿈조차 조절이 가능하게 되었지. 덕분에 더욱 다양한 경험을 하게 됐지만 말이네. 물론 자네도 이 꿈이 깨면 기억을 못하는 건 당연한 것이고, 덕분에 과거로와 와 이야기할 수 있게 된 것이지.

 



.. 나는 죽음을 택했구나.. 정말 삶이 지겹고 허무해서?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을까? 그렇게 의문을 가지고 를 쳐다보니, 그가 나를 보며 특유의 썩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죽음을 선택한 이유가 궁금하겠지? 황당하게도 이제는 이 세상에 내가 경험하지 못한 것은 흉악범죄와 죽음 밖에 없네. 인간으로서 흉악범죄를 저지르는 흉인(凶人)이 되고싶진 않아. 그렇다면 남은 건 정말 죽음 밖에 없네. 그래서 가는 것이네. 심지어 운이 좋게 타임머신까지 타보게 되었으니, 남들보다 더 넓은 시야와 깊은 가치관을 가지게 됐지. ‘를 보며 죽어야겠다는 다짐이 더욱 굳어졌네. 노인이 되면 응당 가지게 되는 특징을 하나도 갖지 않은 채 평생 젊은 채로 산다는 것은 더한 허무와 공허밖에 주지 않아. 그렇다면 무조건 재미를 찾아가는 것보다, 정말 죽기직전에나 느낄 수 있는 삶의 마지막을 경험해보고 싶네.. 그것마저 겸허하게 받아드리는 것이 진정한 노화(老化)’가 아니겠나? 쇠퇴한거야. 삶의 열정이.. 재미가.. 미래가.. 꿈이.. 이제 새로운 씨앗이 뭔지 꽃이 저야(落華) 알 수 있지 않겠나? 고맙네. 지루한 이야기를 들어줘서.. 잘 가게. 이제 헤어질 시간이네.

 




..늙어감이란.. 단순 정신연령이나 육체적 쇠퇴가 아니라.. 받아드림이 아닐까.. 죽음앞에서 초연할 수 있는 순간. 그 순간을 정말 진짜 노쇠(老衰)했다고 부르는 게 아닐까 싶다. 아무리 육체가 젊어도 정신연령이 높아 다양한 시야와 다채로운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해도.. 인생의 밑에서 물 밀 듯이 밀려오는 허무를 막을 수 없을 때 정말 죽는 것이 아닐까.. 그것을 늙어간다고 부르는 것이 아닐.....

 

 


 


[GOOD MORNING~! 빠빠빠밤 빠바바밤]

 




 

..꿈꿨는데.. 내용이 뭐였더라..? 생각이 안나네.... ! 몰라!! 학교 늦겠네. 어휴 아..맞다! 과제는 미래에 나랑 대화하는 내용으로 써볼까..? 재밌을 것 같은데..”

 



번뜩 떠오른 생각에 입가에 미소가 씨익 그려졌다.

 

 

-315AM 7: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