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죄와 자범죄

by tlswoeh posted Apr 08,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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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죄와 자범죄

 


 성경과 여러 책에서는 천국을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하늘에서는 보좌가 있고 많은 천사들이 여기저기를 왔다갔다 하면서 매우 빠르게 행동하고 있었다. 그 보좌 우편에는 예수가 앉아있었고 많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보좌 주위를 반원으로 둘러싸고 있었다. 하나님의 영광은 하나님께서 앉아계신 보좌 위쪽에서 무지개 형식으로 비치고 있었다. 하나님의 보좌로부터 강이 흐르고 있었는데 생명수였다. 그 색깔은 금, , 다이아몬드처럼 환했으며 희귀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또한 그 빛은 멀리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 같았다. 그 강 좌우에는 생명나무들이 있어서 진한 향기를 풍기고 있었다.

 하나님을 본 자는 아무도 없었다. 단 한 분만이 보았는데 그 분은 바로 세상이 말하는 예수 그리스도시다. 그러나 예수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모습을 알려주지 않았다. 이 세상에서 그것을 표현하는 그 설명을 우리는 이해할 수 없다. 예수는 우리의 한계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천사들은 위치에 따라 여러 등급이 있었는데 보다 높은 천사는 아래 천사에게 명령을 내린다. 그러면 그 천사는 그대로 하였다. 그러나 그들의 주 임무는 바로 하나님의 자녀들인 성도들을 지키고 보호하고 하나님께 데려오는 일이었다. 천사들은 기쁘게 이 일을 하였고 또한 하나님의 뜻을 인정했다. 천사들은 땅에 있는 성도들과 하나님 사이를 왕래하며 이 모든 일들을 하였고 책에 이런 모든 것을 기록하고 있었다. 그리고 천사들은 이 일을 너무나 좋아하였다.

 하나님은 세상에 죄가 관영함을 아시고 노아의 홍수,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키셨다. 그것은 하나님 아버지께 가슴 아픈 일이었다. 세상은 이것 때문이라도 불가불 맏아들인 예수의 희생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하나님은 고민하셨다. 어떻게 하나밖에 없는 독생자를 내어놓을 수 있단 말인가? 일전에 야훼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모리아 산에서 번제로 바치라고 하셨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아브라함 자신을 바치라고 하셨으면 오히려 그것이 아브라함에게는 쉬웠을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죽음 직전에 이삭을 살려주셨다. 그때 왜 하나님께서 이삭을 살려주셨는가? 하나님께서는 아시고 계셨다. 만약 그때 이삭을 살리지 않으셨다면 하나님의 종 아브라함은 실망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생각해 보시니 아브라함이 죽은 이삭을 보았다면 아브라함의 마음은 쓰리고 아팠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차마 그것을 보실 수가 없으셨다. 그분은 그것을 보시고 아들 예수를 죽이기로 작정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이삭을 죽음 직전에서 구해내셨지만 하나님의 아들 예수는 정말로 죽이셨다.

 이 가슴 서린 십자가를 하나님은 비통해하며 슬퍼 하셨지만 그것을 이해할 수 있는 분은 하나님 자신 외에는 그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이삭을 살리신 것은 이유가 있으시다. 하나님께서 만약 이삭을 죽이셨다고 해도 그분은 다시 이삭을 살리실 수 있으시다. 그러나 이 세상의 법칙도 하나님께서 제정하셨다. 죽을 병에 걸리면 살아날 수가 없다. 하나님께서 세워놓으신 법칙 아닌가?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것보다는 이삭을 죽음 직전에 살리시는 것을 택하셨고 아무 무리 없이 계속 역사를 이어오시고 계셨던 것이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만드신 결정적인 또 하나의 이유가 있으시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별들을 보여주시면서 네 자손이 마치 이와 같이 번성할 것이다.’라고 하신 그 말씀을 아브라함이 믿었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은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다고 한다. 이 말이 무슨 뜻인가?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다고 믿었던 것이다. 이 얼마나 모순인가? , 이것은 아무나 쉽게 가질 수 있는 믿음이 아닌 것이다. 하나님게서는 이러한 것들을 잠시 생각하셨다. 그리고 감격해하셨다.

 사실 천사는 자유의지를 갖지 못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명령하시면 선택의 여지없이 따른다. 한 번 타락한 천사, 즉 사단은 회개의 기회가 없다. 하나님께서는 오직 사람에게만 죄를 지어도 용서받을 수 있는 특권을 주셨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예수를 보내기로 작정하셨다. 그리고 하나님의 계획대로 예수가 이 땅에 왔고 하나님의 뜻을 성취했다.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모든 사람을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모두 구원하신다는 것이다. 다만 그 효력이 예수의 이름으로만 가능하다는 단서를 남기신 채 말이다.

 하나님께서는 예수가 오기 전후에 많은 사람들을 보내셨다. 그 사람들은 어려움과 박해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공급해 주시는 사랑믿음소망으로 이것을 견디어 왔다. 하나님께서 이러한 모든 것을 주관하시고 또한 이루어 가시는 이유는 성도들이 바로 하나님 아버지께서 직접 낳으신 자녀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 자녀들에게만 온 마음을 쏟고 계신 것이다.

 그리고 세월이 유수와 같이 흘러 흘러 예수를 보내신 그때도 벌써 1900년이 더 지났다. 하나님께서는 하늘에서 지구를 내려다보셨다. 그것을 보시고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은 무척 아프셨다. 또 다시 죄악이 관영하고 그 정도는 그 전보다 더욱 심하였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생각하셨다. 이제는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채울 어떠한 방법을 찾고 계셨다. 역시 사람이 제격이었다. 물론 안타깝기는 하지만 이것은 또 성도들이 감당해야 할 일이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감당할 힘도 주셨다. 하나님은 생각하셨다. 내가 한 사람을 예정했다. 내가 이 시대에 이 사람을 보내겠다. 마지막 말세가 더욱 가까워오는데 바로 이때다.

 예수는 하나님의 마음을 너무나도 잘 이해했다. 하나님께서는 마음에 있는 것을 이렇게 말씀하셨다. 마치 혼자 말처럼. 베드로와 견줄만한 사람이다. 그가 누구든 나는 그 사람을 이미 예정했고 그 때가 이제 왔다.

땅에서의 일이다.

 여기는 영골군 닥암리라는 곳이다. 닥암리에는 한 40여채의 집이 있다. 이곳을 포함하여 4리까지 있다. 이곳이 닥암리라고 불리는 이유는 바로 닭이 많아서이다. 닭을 몇 만 마리 이상 키우는 집이 여럿 있고 이것은 우리나라 전국으로, 그리고 외국으로도 수출된다. 새벽이 되면 온 닭들이 일제히 꼬끼오하고 소리를 지른다. 조선말에 한 미국 선교사가 이곳에 들렀다가 닭이 많아 베드로 생각을 했다는 것이다. 베드로가 닭 울기 전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 부인한 것을 머리에 떠올리고는 그때부터 이곳을 닥암리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런데 발음이 이라고 되어서 받침의 을 빼고 닥암리라고 하였다는 것이다. 그때부터 이 지역에 교회가 세워졌고 그 영향이었는지 많은 사람들이 이 교회에 나갔다. 교회이름 역시 닥암 교회이다. 그리고 그 이름이 계속해서 여러 곳으로 퍼져나갔다.

 닥암 교회는 동네 언덕 끝쯤에 세워져있다. 동트는 동쪽에 있다. 주일이면 사람들이 이곳으로 몰려든다. 이장로와 신집사도 이 교회에 다닌다. 그런데 둘 사이에는 아직 아이가 없다. 이장로는 벌써 60이 되었다. 신집사도 50이 되었다. 특히 이장로는 어머니만 계시고 아버지는 오래전에 세상을 떴다. 그의 아버지는 그토록 손주를 바라셨지만 그만 교통사고로 좀 일찍 세상을 떴다. 이장로 어머니도 손자 보기를 원하는데 웬일인지 이 집 며느리에게는 아기가 생기지 않았다. 그래서 집안이 어두웠다. 이장로 어머니는 매일 하나님 아버지께 손주 하나 달라고 기도했다. 이장로와 신집사도 열심히 기도하지만 그 외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이장로는 아래로 남동생이 하나 있었는데 또한 죽고 이제 이장로는 이장로 어머니의 꼼짝없는 독자가 되었다.

 신집사는 서원을 했다. 만약 아들을 주시면 꼭 주님의 종으로 만들겠다고 말이다. 30년을 하루같이 매일 기도했다. 맨 처음에는 기도를 별로 힘들게 하지 않았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점점 다급해지는 것이었다. 신집사는 한나를 생각했다. 성경 속의 한나는 기도하여 사무엘이라는 아들을 낳았다. 신집사는 이를 보고 아들을 낳으면 목사가 되게 하겠다고 하나님께 약속했던 것이다.

 마침내 이장로는 60세에, 신집사는 50세에 아기를 가졌다. 두 사람은 의사에게 확인한 후에 눈물로 하나님께 감사기도 드리고 교회에 헌금도 조금 드렸다. 여러 사람들이 병원에서 아이를 낳으라고 하였다. 이장로도 그랬다. 왜냐하면 그것이 가장 안전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집사는 이들의 말을 기뻐하지 않았다. 그것은 서원기도 드릴 즈음에 벌써 아들을 교회에서 낳기로 결정하였기 때문이다. 이 일을 여러 성도들과 남편에게 말하자 너무 유별나다는 사람도 있었고 간혹 가다 잘 생각했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신집사는 한편으로는 실망했단. 자기는 최소한 교인 모두가 찬성하고 격려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남편조차도 조금 시큰둥 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신집사는 다 잊어버리고 목사님께 부탁한 후 닥암 교회에서 아기를 낳기로 했다.

 10달이 되자 출산을 하려고 며칠 전부터 교회에 있었는데 아기를 낳을 때 쯤 병원에서 간호사가 오고 동네 아주머니들과 교인들이 여러 명 왔다.

 진통이 시작되자 신집사는 근심했다. 고통은 괜찮은 것인가? 정말 건강한 아기를 낳을 수 있을까? 물론 병원에서 건강한 아기가 태어날 것이라고 했지만, 그러나 임산부의 마음은 그것이 아닌가보다.

 사실 아기를 갖기 전에 신집사는 태몽을 꾸었다. 예수님이 멀리서 아이를 불렀는데 문득 베드로가 나타나더니 그 뒤에서 계석!’ 하며 닭 한 마리가 말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한 아이가 베드로 뒤를 따르는 것이었다. 그런데 베드로가 없어지고 따르던 아이가 예수님께 절을 하고는 눈물을 흘리는 것이었다. 그러자 예수님은 안다. 안다. 네 마음을 내가 다 안다.‘ 하시는 것이었다. 그러자 순식간에 예수님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이 아이가 신집사 뱃속으로 쑥 들어가는 것이었다. 그때가 19707월이었다.

 그렇게 계석이는 태어났다. 이장로와 신집사는 계석이를 금이야 옥이야하며 키웠다. 사실 신집사는 계석이를 교회에서 키워주길 바랐다. 구약 성경에서의 안나처럼 말이다. 그런데 담임 목사님도 아이들이 다섯이나 되어서 여의치가 않았다. 신집사는 본인이 키우기로 마음먹었다. 하나님께 서원한대로 꼭 목사로 키우기로 다시 한 번 다짐했다.

 계석이는 열 살이 되었다. 그런데 이 아이는 달리기를 유난히 못햇다.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운동회때 가보면 뜀뛰기는 언제나 꼴찌였다. 이장로와 신집사는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를 하였다. 그때 하나님의 말씀은 성경속 사도 바울에게 한 말씀과 같았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짐이라.’ 그래서 신집사는 말씀대로 이루어지이다.’하고 말했다.

계석이는 여러 가지 재능을 발휘했다. 그러는 가운데 신집사는 계석이에게 매일 성셩을 조금씩 읽게 하고 성경 구절도 암송하게 하였다. 계석이는 제법 여러 곳에 이름이 알려졌다. 사람들의 기대도 컸다. 신집사는 무척 기뻐하였다. 공부는 초등학교 때도 물론 우등생이었고 머리도 우수했다. 이제 계석이는 닥암 초등학교 3학년이 되었다.

 하루 어느날 오후에 신집사는 계석이에게 심부름을 시켰다. 그곳을 갔다 오려면 반드시 초등학교 가게 앞을 지나가게 되어있다. 다른 길은 없다. 계석이는 무심코 가게 앞을 지나치려는데 그 안에서 어린이 세 명이 가게 주인과 얘기를 하고 있었다. 그 아이들은 학교에서도 골머리를 앓고 있는 불량 어린이 삼총사였다. 그런데 분위기가 심상치가 않았다. 계석이는 어머니 심부름도 있고 해서 그냥 지나가려고 하였다. 그때였다.

 “계석아. 너는 의리도 없냐?”

 그 중에 하나인 석근이가 큰 소리로 말했다. 계석이는 무슨 말인지 언뜻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래서 그냥 지나가려고 하였다. 그러자 그 옆에 있는 민철이가

 “그래, 그래 너만 도강가냐. 들켰어. 어서 와!”

 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계석이는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그러자 그 가게 주인이 계석이를 보고 손짓을 했다. 계석이는 어른이 부르니 안 갈 수가 없어서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가게 주인 아저씨는 계석이 이름을 물었다. 그래서 계석이는

 “제 이름은 이계석인데요.”

 하고 말하자 가게 아저씨는 그만 가보라고 했다.

 다음날 학교에 등교하자 담임선생님이 계석이에게 수업 끝나고 좀 보자고 말씀하셨다. 계석이는 왜 그러시는지 몰라 어리둥절했지만 .’ 하고 대답했다. 그는 교무실에 불려갔다. 거기에는 옆반 골머리 삼총사도 있었다. 담임 선생님은 계석이에게 말했다.

 “, 어제 학교 가게에서 뭐 훔쳤니? 더구나 이 녀석들이랑 어울려서……. 학교 가게 아저씨를 만났다.”

 계석이는 설명을 하려고 했다. 그러자 석근이가 계석이의 입을 막고 설명했다.

 “어제 저녁에 계석이는 망보고 우리 셋은 가게에서, 배가 고파 빵을 몇 개 훔쳤어요. 그래서 가게 주인 아저씨에게 우리 넷이 그랬다고 솔직해 얘기했어요. 선생님 죄송합니다.”

 그러자 담임선생님은 말했다.

 “계석이는 남고 너희 셋은 너의 담임선생님께 가 봐.”

 계석이는 담임선생님께 아무 변명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담임선생님은 가보라고 하시면서

 “내일 부모님 오시라고 해.”

 라고 하셨다. 계석이가 야단맞을 때 담임선생님 얘기를 들은 계석이 반의 친구들은 소문을 냈다. 계석이 영향만큼이나 소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여러 곳으로 퍼져나갔다.

 계석이 어머니 신집사는 아무 변명을 하지 않는 아들을 보고 말했다.

 “잘못했으면 솔직히 인정을 하고 용서를 구해야지 왜 말을 못 하고 있어.”

 계석이는 속으로 기도만 하고 있었다. 그것을 본 이장로는 억장이 무너졌다. 애기때부터 남달라서 큰 사람이 되리라고 기대했었는데 말이다.

 자기 방에 들어온 계석이는 방문을 걸어잠그고 펑펑 울었다. 너무나 억울했다. 하나님께서 계시다는 것을 부정했다. 그리고 그 골머리 삼총사가 미웠다. 그러나 그 우락부락하고 험상궂게 생긴 세 녀석들을 당할 재간이 없었다. 힘이 약하니 어쩔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하나님께 그 녀석들을 혼내달라고 하는 것도 도리가 아닌 것 같았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그 기도는 들어주실 것 같지가 않았다. 계석이는 할 수 없이 그들을 용서했다. 그것은 자신을 위한 것이었다. 그것을 계속 간직하고 있으면 건강에도 도움이 되지 않아서였다. 그들이 나쁜 일들을 하지 않고 앞으로는 착하게 살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했다.

 계석이가 옛날과 다름없이 한결같게 생활하는 것을 보고 소문이 좋은 쪽으로 돌았다. 사람들은

 “계석이는 결코 그런 애가 아니야. 뭔가 잘못된 것일거야.”

 하고 말했다. 그래서 그렇게 무마가 되었다. 여전히 여러 곳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좋은 쪽으로 소문이 나돌면서 계석이의 아픈 마음과 상처는 점점 아물어 갔다.

 중학교 입학시험을 치르자 계석이는 우수한 성적으로 닥암 중학교에 입학했다. 계석이는 알고 있다. 자기의 공부 성적은 전국으로 따지면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말이다. 그것은 계석이가 여러 학교를 다녀보고, 책들을 읽어보고 선생님들의 말들을 들음으로서 알 수 있었다. 또 세계로 따지면 자기는 온실 속의 화초와 같다는 것. 계석이는 그 사실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계석이는 어렸지만 어머니가 말하는 것이 탐탁지 않았다. 그것은 목사가 되라는 어머니의 말이다. 그것은 계석이의 뜻이 아니었다. 하나님께서는 계석이의 의견을 들어주실 것만 같았다. 기도를 했지만 하나님께서는 아무 대답도 해 주시지 않으셨다. 사실 계석이는 의사가 되고 싶었다. 왜냐하면 자기 체력이 약해서이다. 그래서 그런 사람들을 조금은 이해했다. 그러나 계석이는 이 얘기를 부모님께 한 번도 하지 않았다. 반대 할 것이 뻔했으니 말이다.

 이제는 덕담고등학교 2학년이 되었다. 고등학교는 도시로, 집에서도 좀 떨어진 곳이다. 서울 쪽에서 가깝고 우수한 학생들도 많이 온다. 계석이의 공부 상대자는 기섭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전교 수석을 놓치지 않은 노력파이면서 수재인 기섭이는 체격도 크다. 또 어렸을 때는 태권도를 배워 유단자라고 한다. 목에도 여드름림이 많고 우락부락한 체격, 얼굴이 약간 험상궂게 생겼지만 마음은 여린 친구다. 그리고 혼자 있는 것도 즐기는 것 같았다. 둘은 별로 친하지 않았다. 서로 경쟁 상대이기 때문이다. 전교에서 기섭이와 계석이는 12등을 다툰다.

 2학년 겨울방학이 되었다. 계석이는 고향이면서 부모님이 계시는 영골군 닥암리에 내려가려 한다. 그동안 기숙사 생활을 해서 시골로 내려가지 못했다.

 계석이는 고향에 내려가려고 버스 정류장으로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한데 경찰 몇 명과 사람들이 둘러싸고 웅성웅성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냥 지나치려다 한 번 들여다보고 싶어 사람들 사이로 고개를 들이밀었다.

 앗! 석근이, 민철이, 재석이 삼총사가 아닌가? 수갑을 채운 경찰들과 골머리 삼총사가 현장 검증을 하는 광경이었다. 계석이는 그들을 다시 자세히 보았다. 아무리 다시 봐도 -8년이 지났지만- 분명히 그들이었다. 머리가 짧아지기는 했지만 초등학교의 모습이 남아있었다. 그때였다. 석근이의 눈이 번쩍하고 빛났다. 그의 눈은 계석이에게 향하고 있었다. 그때 석근이는 한 경찰의 귀에다 대고 무엇 무엇이라고 얘기를 했다. 경찰들은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데리고 경찰서로 갔다. 그리고 조사를 했다. 조사 받던 사람들은 다 돌아가고 계석이만 남았다. 그리고 골머리 삼총사도 남았다. 경찰 한 사람이 네 명에게 이렇게 말했다.

 “깝깝이 사총사.”

 계석이가 추적하는 경찰을 쳐다봤다. 계석이는 경찰에게 변명하고 싶지 않았지만 얘기를 하려는데 그 사람은 일축했다. 별로 조사를 하지 않고 바로 다음으로 넘기려고 했다. 계석이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남의 말을 들어보지도 않고 일방적으로 이러는 법은 없기 때문이었다. 계석이의 이 태도를 보자 그 경찰이 말했다.

 “너 내 얼굴 기억 안 나니?”

 아까 그 현장에서 이 경찰을 보았는데 어쩐지 낯이 익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누구인지 머리에 잘 떠오르지 않았다. 그 경찰이 말했다.

 “초등학교 때 기억 안나? 그 학교 가게 주인.”

 앗! 계석이는 또 놀랐다. 맞다. 초등학교 때 그 학교 가게 주인 아저씨였다. 그 아저씨가 여기에서 경찰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는 나쁜 기억의 계석이를 좋지 않게 본 것이다. 그 경찰관의 주도로 계석이는 감옥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러나 그간 계석이의 영향력과 성과들도 있어 2년만 감옥에 있게 되었다. 계석이는 아무런 잘못이 없었다.

 그것은 성경에 나오는 구약의 요셉과 같은 것이었다. 자기 형들에 의해 애굽으로 팔려 간 그 요셉 말이다. 그러나 계석이의 경우는 그것을 넘어서는 것이었다.

 계석이는 감옥에서 출소했다. 그곳에서의 2년간은 자기를 성찰하는 기간이었다. 성경 구절을 굉장히 많이 외웠고 읽었다. 참고 서적도 많이 읽었다.

 그러면서 독특하게 원죄와 자범죄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했다. 지금까지 아담이 먹은 선악과로 인하여 생긴 원죄와 우리가 날마다 짓는 자범죄를 속 시원하게 증명해내는 사람이 없었으며 설명해주는 사람도 없었다. 그것은 마치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해서 아무리 얘기해도 이해할 수 없는 것과 같았나보다.

 계석이는 출소하자마자 고향에 있는 닥암 교회를 찾아갔다. 아기 때부터 늘 출석했던 교회이다. 거기에는 정목사님이 아직도 계셨다. 머리가 많이 희어져 있었다. 계석이는 정목사에게 인사했다. 정목사도 눈물을 흘리며 반겨주었다. 둘은 먼저 간단히 요기를 하고, 계석이는 궁금한 것을 물어보았다.

 “원죄와 자범죄를 증명할 수 있는 단서가 혹 있습니까? 사실은 그것이 궁금해서 가장 먼저 이곳을 찾아왔습니다만. 목사님 같으면 반드시 대답해주시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러자 정목사는 말하기 시작했다.

 “나는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어떤 한 초등학교 교과서를 보았다네. 거기는 아기를 가진 임산부의 태아가 그려져 있었네.”

 계석이는 숨을 죽이고 이야기를 들었다.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그리고 한 20년 즈음 지났나.”

 계석이는 긴장했다.

 “한 꿈을 꾸었다네. 그것은 예수님과 내가 있었는데 나는 예수님께 무릎을 꿇고 있었지.”

 얘기가 끊어졌다. 조금 침묵이 지나자 정목사는 환한 얼굴을 하며 얘기를 했다.

 “그리고 그 꿈을 꾼 지 얼마 후에 나는 다시 그 어릴 때의 모습인 태아를 생각했던 것 같아. 어머니 태아에서의 아기 모습은 무릎을 굻고 손을 모으며 몸을 웅크린 모습이었다네.”

 그리고 느닷없이 계석이에게 물었다.

 “자네는 어떨 때 무릎을 꿇는다고 생각하는가?”

 “. 그것은 잘못했을 때, 죄를 지었을 때인 것 같습니다.”

 계석이는 대답했다.

 “바로 그거네. 사람은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부터 이미 무릎을 꿇어야 하는 것이 바로 원죄 때문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가? 사람은 태어나기 전에 어머니의 뱃속에 있을 때부터 이미 죄인이네. 우리는 다 예수님께 무릎을 꿇어야 하는 존재는 아닐까?”

 계석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정목사는 계속해서 말했다.

 “또 손을 모은다는 의미는 무엇일까.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려고 기도하는 모습은 아닐까? 뭐 빈다고 해도 무방할 것 같네.”

 이 말을 하고나서 정목사는 두 손을 모았다. 정목사는 또 이어 말했다.

 “태아를 보게. 어머니 뱃속에 있는 아기는 머리가 아래로 향해 있네. 자네는 그 이유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계석이는 조금 생각하니 알 것 같기도 했다. 그러나 정목사의 말을 더 들어볼 생각으로 치묵하고 있었다.

 “자네도 짐작하겠지만 그것은 바로 여자가 임신한 아기는 그때부터 땅의 것을 생각하기로 결정되어진 것 같네. 머리가 아래로 향하고 있으니 말일세. 이것이 원죄 때문은 아닐까?”

 정목사는 얘기를 차분히 또 이어갔다.

 “그런데 나는 아기가 태어나면 머리를 위로 향하여 서 있을 수 있다는 것, 다시 말해서 그것은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는 길이 새로 열린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했다네.”

 정목사는 또 이어서 말했다.

 “그렇게 하도록 만드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특별 계시인 성경이지.”

 정목사는 감격해하며 다시 이어갔다.

 “그리고 또 있네. 나는 예수님도 우리와 똑같은 모습의 태아로 잉태되어 태어났다고 생각하게. 그건 바로 성경에 나오는 예수님이 아버지 하나님께 온전히 복종한다는 의미에서 말일세.”

 정목사는 커피를 타며 얘기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이렇게 하신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계석이는 말했다.

 “그것은…….”

 “그래. 바로 그것이네. 바로 우리 모든 인류의 죄 때문이지. 성경 어디를 보아도 죄를 짓지 않은 사람은 없네.”

 계석이는 원죄에 대해 이해가 되었다.

 정목사는 한 가지 예를 든다며 사람은 왜 자범죄를 짓는지를 얘기해 주었다. 아기가 어머니 뱃속에서 죽으면 그것은 죄를 짓기 전이므로 그것은 자범죄가 아닌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그러나 정목사는 그렇지 않다고 얘기한다. 아기가 어머니 뱃속에서 죽으면 부모님의 마음은 어떻겠는가? 그것은 뱃속의 아기가 부모님께 짓는 죄이다. 그래서 원죄에 해당되지 않는 사람도 자범죄에 해당되지 않는 사람도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자네가 친구들에 의해 억울한 죄를 당했다는 것을 아네.”

 그러자 계석이는 고개를 숙였다.

 “나는 자네가 고2 방학때 집으로 오는 중에 친구들의 모함으로 감옥에 갈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을 알고 있네. 하지만 자네는 그곳을 구경하지 않고 바로 갈 길을 갔으면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네. 그곳을 간 것은 자네 의리일세. 그것을 남의 탓으로 돌리기보다는 자네의 죄라고 인정을 해야 할 것 같네.”

 정목사는 잠깐 쉬었다가 말을 이었다.

 “그러나 걱정하지는 말게.”

 계석이는 정목사의 입을 보았다. 그리고 무슨 말이 나올까?’ 하고 지켜보았다.

 “원죄와 자범죄는 예수 그리스도로 이미 해결이 되었네. 자네는 이 교회에서 태어났네. . 자네가 이곳에서 태어났다는 나의 얘기는 자네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생각해보게.”

 정목사는 이렇게 말하고 나서 계석이에게 기도를 하자고 권하셨다. 계석이는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자기의 이 모든 일은 어느 누구도 아닌 본인의 죄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계석이는 자신의 원죄와 지금까지의 자범죄 그리고 앞으로의 모든 자범죄까지 다 회개하였다.

 이제는 자기의 할 일을 확실히 깨달았다.

 계석이는 열심히 공부했다. 10년이 지나자 목사가 되었다. 그리고 전 세계를 돌며 예수님과 복음을 전파했다.

 하나님의 전 세계에 대한 계획은 그대로 이루어져갔다. 이계석 목사의 세계 전도로 온 세상의 허다한 사람들이 예수님을 영접했다. 예수님의 종 이계석 목사는 과연 하나님이 택하신 종이었다. 베드로 못지 않은 종이라고 말씀하신 하나님의 뜻은 그대로 이루어졌다. 세상의 종말이 오기까지, 즉 예수님이 재림하시기까지 하나님께서는 계속해서 세상이 이계석 목사의 영향력을 받게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세상 끝 날까지 이렇게 모든 것을 이어가셨다. 그리고 끝은 속히 올 것임을 하나님은 알고 계셨다. 그리고 그리스도가 승리한다는 것도 그 자신이 너무도 잘 알고 계셨다. 계석이가 목사가 된지도 이제는 30년이 되었다. 눈 붙일 겨를도 없이 세계 구석구석까지 돌아다녔다. 그때는 몰랐는데 지나고 보니까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이제 시간이 좀 생겨 고향에 내려갈 생각이다. 그동안 60년간의 세월을 추억해보니 모든 것이 온통 하나님의 은혜였다. 아무래도 사람은 자기 고향은 쉽게 잊지 못하는 모양이다. 땅도 이렇다면 본향인 천국은 말할 것도 없어야 할 것이다. 갑자기 이계석 목사는 자기도 모르게 천국으로 빨리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이가 60이 되다보니 별 생각이 다 드는 것 같았다.

 고향에 오지 않은지가 40년이 되었다. 서울에서 버스를 타고 시골로 가는 길은 3시간이나 걸렸다. 닥암리는 많이 변해있었다. 아스팔트가 깔렸고 아파트도 도로가 여러 곳에 지어져 있었다. 버스에서 본 광경이었다. 이계석 목사는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성경책을 손에 들고 닥암 교회로 향했다.

 이계석 목사는 교회 언덕에 오르고 있었다. 그 때 괴한 세 명이 나타났다. 복면을 쓴 그들은 검은 옷을 입고 있었다. 이 목사는 그들이 골머리 삼총사인 것을 즉시 알아보았다. 복면을 했지만 계석이에게 피해를 준 그들을 이계석 목사가 눈치 채지 못할 리가 없었다. 세 사람은 손에 칼을 들고 있었다. 석근이는 칼로 날렵하게 이계석 목사의 배를 찔렀다. 칼에 찔린 이계석 목사의 배에서 피가 쏟아져 나왔다. 그는 그들을 힘으로는 이길 수가 없었다. 그러나 계석이는 한편으로 이렇게 죽는 것을 기뻐했다. 왜냐하면 날마다의 기도 제목이 예수님을 위해 순교하게 해달라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다만 이계석 목사는 죽지만 그를 죽인 당사자 골머리 삼총사는 어떻게 된단 말인가? 극심한 고통 중에 이계석 목사는 마지막 힘을 다하여 이 세 명을 위해 기도했다.

 일을 처리한 석근이는 두 친구에게 말했다.

 “. 가자.”

 바로 그 때 석근이는 웬일인지 한곳으로 눈동자가 쏠렸다. 그것은 땅에 덜어진 이계석 목사의 성경책이었다. 그때 석근이는 계석이에게 못되게 했던 일들이 생각났다. 석근이는 성경책을 집어 들었다. 왜그런지 눈물이 났다. 그리고 그것은 통곡으로 변했다. 석근이가 언덕을 올라 교회 쪽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나머지 두 친구도 석근이 뒤를 따라갔다.

 그날따라 비가 퍼붓기 시작했다. 오후였다. 그러다가 소나기는 그치고 햇빛이 찾아왔다. 마치 슬픔을 알리듯 하더니 기쁨이 찾아온 것 같았다. 풀벌레들은 작은 입들로 합창을 했고 교회 십자가는 사람들을 내려다 보았다.

 골머리 삼총사는 교회에서 나와 언덕을 살펴 보았다. 계석이의 시체는 보이지 않았다. 눈이 부셨다. 하늘에는 비둘기 떼가 날았다.

 몇 년이 흐른 뒤에야 닥암 교회에서 다시 모인 삼총사는 무언가를 의논하고 있었다. 제일 약해보이는 재석이가 말했다.

 “지난 우리의 모임을 해체하자. 계석이도 그것을 바랄거야.”

 “이제 너희 둘은 어떻게 할거니?”

 석근이가 물었다.

 “민철이와 나는 각각 서로 다른 나라 선교사로 가기로 방향을 잡았어.”

 “자 그럼 우리 세명은 각각 다른 세 나라의 선교사로 가는 거다.”

 석근이가 말했다.

 흩어지는 삼총사. 세 명은 헤어짐이 아쉬웠지만 마음은 너무너무 가벼웠다

 석근이가 마음속으로 이렇게 외쳤다.

 ‘계석아. 다음에 새 하늘과 새 땅에서 보자. 많은 사람들과도, 그리고 우리 셋과도. 알았지? 우리 꼭 약속하는거다. , .’

 석근이가 탑승한 비행기는 아프리카를 향해 빠른 속도로 날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