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0차 창작 콘테스트] <바이올렛>

by jimmy posted Apr 08,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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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올렛




“아이고 아이고.... 이런 핏덩이를 두고 가는 게 어딧어...이것들아!.”

나는 병원에서 퇴원하자마자 하얀 건물 큰 건물 안으로 들어왔다. 거기에는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그러고는 모두가 시무룩하고 슬픈 표정을 하고 있다. 그래서 나도 뭔가 우울해지고 슬퍼졌다. 주위에서 보는 시선이 울어야 할 것만 같았다. 그래서 계속 울기만 했다. 내 앞에는 어느 때 보다 더 환하게 웃고 있는 엄마, 아빠 그리고 동생이 날 쳐다보고 있다. 내가 검은 복장의 사람들이 많은 하얀 큰 건물에 들어오게 된 사건은 아마 내 초등학교 입학 기념으로 떠나는 여행을 가던 중 큰 괴물과 충돌 사고가 날 여기까지 오게 만들었다. 그때 사고가 발생했을 때 아빠가 온몸이 빨간 물로 뒤덮인 채로 내 손을 잡으며 “집에 가자”고 말했다. 그래서 난 병원에서 눈을 떴을 때 일종의 숨박꼭질과 같은 게임이 시작되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엄마, 아빠, 동생이 죽었다고만 생각하고 온종일 목이 터져라 우는 사람에게 가서 “엄마, 아빠 그리고 동생은 죽지 않았어요! 다만 지금 게임 중이에요! 숨박꼭질이요!” 라고 말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아직은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나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조용히 어른들이 가라는 곳을 이리저리 따라 갔다. 이곳은 내가 경험했던 어떤 곳보다 차가운 느낌이 들었다. 빨리 게임을 끝내고 엄마, 아빠, 동생을 찾고 싶었다. 전에도 동생이랑 숨박꼭질 같은 것을 자주해서 이번만큼은 꼭 찾아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위를 둘러 봤는데 몇몇 사람들은 나와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마치 내가 엄마, 아빠, 동생이 있는 곳에 대해 들키지 않도록 조심하듯이 말이다. 나는 확실히 게임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직감했다. 모두가 내 눈치를 보는 상황에 나는 최대한 침착하게 검은 한복을 입고 앉아서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이 훌쩍거렸다. 그때 처음 본 사람들이 손에 굵은 검은 책을 하나 쥔 채로 우르르 들어왔다. 그러고는 나를 힐끗 보더니 서로 수근 거렸다. 그때 금방 자고 일어난 듯 머리가 뒤죽박죽된 지저분한 남자 한명이 들어 왔다. 이 사람이 들어오니 검은 책을 들고 있는 사람들이 하나같이 허리를 숙여 인사를 했다. 아마도 이 무리의 대장 같은 사람인 듯 했다. 그 사람은 검은 책 무리들과 인사를 나눈 후 무서운 표정으로 내 앞으로 다가왔다. 가까이 다가오니 머리뿐만 아니라 수염까지 듬성듬성 길게 나있어 더욱 지저분하게 보였다. 수염 아저씨가 내 앞을 앉자 피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지만 이미 등은 차가운 벽과 부딪혀 있었다. 수염으로 뒤덮인 남자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는다. 그때 나는 이 사람이 숨박꼭질 같은 게임에 힌트를 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결 마음이 편해져 아저씨가 주는 힌트를 찾기 위해 눈을 계속 쳐다봤다.

“참 눈이 예쁜 아이구나.” 나도 모르게 지저분한 수염 아저씨의 얼굴을 보며 따라 웃었다..

아저씨는 내 웃는 모습에 치아가 다 들어나게 호탕하게 웃었다.

“웃는 모습도 예쁘구나.” 뭔가 힌트를 줄 것 같았는데 나를 몇 번 보고 미소만 지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의아하다는 듯이 웃으며 어깨를 올렸다. 지저분한 수염의 아저씨의 눈이 빨간 핏줄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눈은 이미 용암 색이 되어있는데 입은 여전히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러더니 내 머리를 좌우로 흔들고는 다시 검은 옷의 무리 속으로 들어갔다. 무리 속으로 들어가자 익숙한 화음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건 분명 엄마와 성당을 갔을 때 자주 들었던 노랫소리였다. 하지만 전에 듣던 고운 화음이 아니었다. 울음소리와 괴성이 섞여 돼지 멱따는 소리 비슷한 불협화음이 울려 퍼졌다. 그렇게 몇 시간을 듣고 있자니 청각을 잃을 것 같았다. 점차 소리가 적응되면서 아무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멍하니 앉아서 엄마, 아빠 그리고 동생이 있는 곳을 계속 생각해 보았다. 하지만 아무도 힌트를 주지 않았다. 울음소리도 점점 작아지고 수염 아저씨의 연설이 시작됐다. 수염 아저씨의 말 끝에 연신 “아멘, 아멘” 거리더니 그 무리가 나를 에워쌌다. 나이는 몇 살인지, 어디학교를 다니는지, 엄마 아빠는 안보고 싶은지, 사고는 어떻게 난건지, 어디 아픈 곳은 없는지, 정신없이 사방에서 질문세례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나는 이 늙은 아줌마들이 게임을 방해하기 위해 나에게 교란작전을 펼치는 것 같아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바닥만 뚫어지게 쳐다봤다. 그럴수록 아줌마들은 더 울부짖고 나를 안고 흔들었다. 그럴 때마다 수염 아저씨가 오더니 아줌마들에게 귓속말을 했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더 이상 나에게 질문 하지 않았다. 그렇게 잠시 잠잠 해졌을 때를 틈타 화장실로 뛰어 들어갔다. 하마터면 엄마, 아빠 그리고 동생이 사라졌다는 것을 잃어버리게 만드는 교란작전에 넘어 갈 뻔 했다. 나는 검은 무리에 또 잡히기 전에 어떤 계획을 세워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아주 비밀스럽게 계획을 짜기 위해 다시 복도에 나와 여기저기 주위를 살폈다.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다시 화장실로 들어가 마지막 변기 칸에 빠르게 들어가 문을 잠갔다. 나는 변기에 앉아 이 재미없는 게임을 빨리 끝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화장실에는 어떤 힌트가 있지 않을까 싶어서 주위를 몇 번이나 둘러보지만 향냄새가 많이 나는 것 말고는 내가 갔던 화장실과 다르지 않았다. 그래도 하나의 힌트가 있지 않을까하고 주위를 둘러보는데 ‘변기가 자주 막히니 휴지는 휴지통에 버려주세요’라고 적힌 A4용지에 붙어 있는 천사가 보였다. 나는 이때 자주 봤던 피터팬 이야기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엄마, 아빠 그리고 동생은 지금 네버랜드로 떠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내 추리가 맞다면 어떻게 네버랜드에 가야할지 막막했다. 몇분을 앉아서 고민하다 사람이 들어오는 인기척에 문을 열고 나왔다. 손을 씻고 화장실문을 열고 나가려고 하는데 복도 창문 쪽에 많이 본 꽃이 보였다. 창문 근처로 가까이 다가가니 유치원 다닐 때 항상 키웠던 바이올렛이었다. 바이올렛의 잎은 여전히 부드러우면서도 까칠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습관적으로 바이올렛 잎을 꾹꾹 누르는데 어디선가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아야!”

나는 주위를 둘러봤는데 바이올렛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나는 설마 하고 다시 털 복숭이 잎을 주물렀다. “아야! 그만 좀 해! 난 정말 민감한 꽃이란 말이야!”

전에도 선생님과 엄마한테 들었는데 민감한 꽃이라고 섬세하게 대해줘야 된다는 소리를 들은 것이 기억났다. “아... 미안해 네가 민감한 꽃이란 걸 잊고 있었어...” 나는 바이올렛 잎에 꾹꾹 누른 손자국을 없애기라도 하듯이 문지르며 말했다. “괜찮아~ 이 정도야 뭐 며칠 지나면 다시 나아지겠지” 까칠하고 민감할 것 같았는데 생각보다 마음씨가 착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문득 이 바이올렛이 엄마, 아빠 그리고 동생이 있는 네버랜드로 갈 수 있는 길을 알려줄 친구라는 것을 느꼈다.

“너 혹시 우리 엄마, 아빠, 현수가 있는 곳이 어딘지 아니?!”

나는 흥분해서 다짜고짜 바이올렛에게 소리 쳤다.

“응! 난 당연히 알고 있지!” 내 예상이 틀리지 않았었다! 나는 더 흥분해서 말을 좀 더듬었다. “엄마, 아빠, 현수 어...딧어? 혹...시 네버랜드 아니야?” 나는 바이올렛의 반응을 살피기 위해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 무심하게 말했다. 바이올렛은 잎을 이리저리 흔들어 대더니 마지못해서 말한다. “응... 맞아 네 부모님과 동생은 지금 네버랜드에 있어” 내 생각이 맞았었다! 이제는 엄마, 아빠 그리고 현수를 볼 수 있다는 생각에 참았던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울지마! 난 민감하고 예민한 꽃이라서 울음소리를 많이 들으면 빨리 시든다고!”

나는 얼른 눈물과 콧물을 닦는다. “그렇지? 맞지? 네버랜드!!” “응. 맞아, 근데 네버랜드에 숨어 버렸는데 그곳은 다시 돌아 올 수 없어. 들어가긴 쉬워도 돌아오는 건 정말 힘들어.” 난 그 말을 들은 순간 다리에 힘이 풀려 바이올렛을 잡고 주저앉았다. 난 다시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그만 울라니까! 그래도 한 가지 방법이 있긴 있어!” 나는 문든 내가 내버렌드로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내가 네버랜드로 갈께! 그럼 쉽잖아!” 바이올렛은 갑자기 말이 없어 졌다. 그러더니 털 복숭이 큰 잎으로 부채질을 하더니 말을 이어나갔다. “너는 술래라서 네버랜드에 들어갈 수가 없어.” 나는 당황스러워서 입을 막았다. 그때 웅성웅성 어디선가 소리가 들려왔다. 주위를 둘러보니 장례식장에서 합창을 부르던 검은 무리의 아줌마들이 우리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분명 내가 바이올렛을 발견한걸 알고는 찾아 온 것이 분명했다. 나는 바이올렛을 잡고 엄마, 아빠, 동생 사진이 있는 곳으로 뛰어 들어갔다. 다시 들어가 보니 많은 사람들이 집에 가고 없었다. 검은 양복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마른 얼굴의 대머리 아저씨 빼고는 말이다. 처음 장례식장에 들어왔을 때부터 그 자리에 앉아서 술만 마셨다. 사람들이 없으니 대머리는 더욱 돋보여 보였다. 어쩔수 없이 내눈은 대머리를 향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대머리 아저씨와 눈이 마주쳤다. 나는 눈을 돌려 최대한 튀나지 않게 자연스럽게 걸어갔다. 그래도 나를 바라보는 것 같은 따가운 시선이 느껴져 다시 쳐다보는데 정면으로 대머리 아저씨와 눈이 마주친다. 내 예상과는 다르게 환한 미소를 지으며 큰소리로 나를 불렀다. “수정아~!” 나는 놀래서 큰소리로 대답했다. “네?!” 대머리 아저씨는 그모습이 웃겼는지 허허 웃어 댔다. “수정이 니 어디 갔었노? 밥은 먹고 돌아 댕깃나?” 나는 부끄러워 고개만 끄덕이고 최대한 구석으로 들어갔다. 다시 힐끔거리며 아저씨 쪽을 살피니 아저씨가 술을 한 모금 마시더니 다시 나에게로 걸어왔다. 멀리서 볼 때는 보이지 않았던 잔주름과 험상궂은 얼굴이 내 얼굴과 가까워지고 있었다. “수정아~ 아저씨 알긋나? 니 큰아버지다...” 갸우뚱 거리며 자세히 보니 아빠와 약간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니는 모르긋제? 갓난아기 때 자주 놀러가서 니랑 놀라주고 그랬는데.. 수정이 쑥쑥 아주 잘 컷네” 큰아버지는 내 얼굴을 어루만지다 내손을 잡는다. 나는 그때 큰아버지의 손가락이 다섯 개가 아닌걸 느꼈다. 조심스럽게 큰아버지의 손을 봤는데 검지가 짤려 있었다. 분명 큰아버지가 후크선장이란 걸 직감 했다. 너무 놀랐지만 자연스럽게 행동하려고 노력했다.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을 만큼 작은 목소리로 바이올렛에게 말을 걸었다. “바이올렛, 넌 뭔가 알고 있지?” 바이올렛은 털 복숭이 잎을 이리저리 흔들더니 “일단 아무도 없는 곳으로 대피 하는 게 좋을 것 같아.” 라고 말했다. 나는 아저씨의 손에 덮여 있던 내 손을 빼고는 바이올렛을 잡고 화장실로 달려갔다. 그러고는 화장실문을 잠갔다. “바이올렛! 우리 큰아버지 말이야... 후크선장 맞지?” “응. 맞아. 그래도 나쁜 사람은 아니야. 너희 부모님, 동생을 찾는데 도움이 될 꺼야!” “그럼 넌 누군데 날 계속 도와주는 거야?” 바이올렛은 약간 망설이듯이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입을 뗐다. “사실... 난 팅커벨이야. 네가 유치원 다닐 때 바이올렛을 키웠다는 걸 기억하고 찾기 쉽게 바이올렛으로 변신했지.” “그럼 왜 변신을 한 거야?” “내 몸에서는 황금빛이나! 그래서 내가 변장하고 있지 않으면 모든 사람들이 나에게 주목할거야. 그래서 나도 네버랜드에 가기 전까지는 이렇게 변신하고 있는 거야... 그리고 난 네가 하루라도 빨리 가족들과 만났으면 좋겠어. 그래서 내가 돕기로 마음먹은 거야.” 엄마, 아빠, 동생을 찾을 수 있다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울음이 터진다. 그 모습을 본 바이올렛은 지겹다는 듯이 화를 내며 말한다. “네 엄마, 아빠, 동생은 죽은 게 아니야! 다만 네버랜드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그러니까 저 바보 같은 사람들처럼 울지 좀 마! 찾을 수 있어! 네가 그렇게 울면 나도 네버랜드에 가기도 전에 시들어 죽어 버릴지도 모른다고!” 나는 바이올렛의 화난 모습을 보고는 더는 눈물을 흘릴 수 없었다. “그럼... 내가 뭘 하면 되는데? 어떻게 하면 되는 건데?” 계속 똑같은 말을 반복해도 바이올렛은 말이 없었다. 침묵속에서 다시 허탈해서 벽을 기대고 앉아 있는데 검은 복장의 사람들이 우르르 화장실을 들어온다. 나는 그제야 바이올렛이 말이 없어진 이유를 알았다. 나는 다시 큰아버지 아니 후크선장이 있는 향냄새로 가득 찬 장례식장 안으로 들어갔다. 여전히 장례식장은 텅 비어있고, 큰아버지만 술을 마시며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다. 나는 큰아버지와 최대한 떨어진 구석자리에 바이올렛과 함께 앉았다. 큰아버지는 아까와는 사뭇 다르게 눈이 마주치면 곧바로 내 눈을 피했다. 그러더니 다시 나는 뚫어지게 쳐다봤다. 무언가 말하려는 듯 해보였다. 이내 다시 내눈을 피했다. 그래서 나도 바이올렛만 쳐다보려 노력했다. 또다시 몇 분을 그렇게 나를 쳐다보시더니 뜨거운 시선을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엉엉 운다. 그러더니 아까보다 더 술이 돼 보이는 모습으로 비틀거리며 내 앞에 철퍼덕 앉는다.

“수저아~ 씨발... 세상이 말이다.. 다~ 내 뜻대로 돼는게 하나도 없다이. 맞재? 니도 여기와보이까 알긋제? 그러니까 니도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살아야 되다이. 알긋냐?” 검지가 없는 손으로 내 등을 몇 번이나 쓰다듬었다. 나는 그냥 큰아버지가 하는 말마다 바이올렛 잎만 만지작거리며 고개만 끄덕였다. “수정아 이런 일도 있고 저런 일도 있는거다 근데 씨발 이건 정말 너무하다고 생각하지 않나? 나도 부모 없이 살았는데 말이야... 흨흨....씨발... 니는 와 부모도 형제도 없이 살아야 되노? 어이?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세상에 신이 있으면 이러지는 말아야지. 내말이 틀리나 수정아? 어? 이 좆같은 세상 니랑 내랑 칵 마 죽자! 이렇게 살아봐야 어디 대접도 못 받는다!”

그렇게 큰아버지는 몇 분을 울다가 조용히 내손만 만지작거린다. 나는 큰아버지가 좀 진정된 것 같아 머뭇거리며 말할 타이밍을 찾았다. 큰아버지도 그런 낌새를 느끼더니 조금 진정 된 모습으로 날 쳐다본다. “수정이 니 내 한테 할 말 있나?” 나는 다시 악어에게 잘린 큰아버지의 손가락을 쳐다보며 말한다. “큰아버지... 혹시... 네버랜드가는 길 아세요?”

“네..뭐? 무슨 랜드?” 큰아버지는 눈을 커져서는 나를 쳐다봤다.

“네! 네버랜드요!” 나는 큰아버지의 검지가 없는 손을 꽉 잡았다.

험상궂은 얼굴의 주름들이 들썩이기 시작했다. 거대한 입이 벌어지면서 소리로 박수치며 꺽꺽 웃어댔다. 웃을수록 술 냄새가 나를 질식시키는 것 같았다.

“으하하~! 우리 수정이 놀이동산 많이 가고 싶나보네? 네버랜드 놀이동산 찾아보면 있지! 내 한번 우리 수정이 댈고 함가야지 네버랜드!”

“진짜요?? 정말 데려가는 거예요? 바이올렛이 저는 술래라서 못 간다고 해서 못가는 줄 알았어요!”

“아이지~ 우리 수정이 같이 착한 아들이 가라고 만들어 놓은 곳 아이가~ 우리 수정이 마이 가고 싶었나 보네~ 장례식 딱 끝나자마자 이 큰아버지가 당장 데꼬 간다이....” 큰아버지는 말을 끝내고 큰 한숨을 쉬고는 소주병 채로 들이마셨다. 잡고 있는 내손에는 물기로 흥건했다. 나는 큰아버지의 눈물을 멈추게 하기 위해 입 고리를 올렸다. 큰아버지의 주름은 한층 더 심해졌다. 큰아버지도 웃음기 전혀 없던 얼굴에서 미소가 나타났다. 그러고는 핏줄이 가득한 울퉁불퉁한 손으로 내 손을 꽉 잡는다. 그렇게 말없이 내 주위를 살폈다. 내 옆에 있는 바이올렛을 발견하고는 궁금하다는 듯이 바이올렛 잎을 꾹꾹 누른다. “수정아 이 식물은 어디서 낫노?” 난 바이올렛의 눈치를 살피며 잠시 망설인다.

그때 어디선가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이고...! 수정아!!” 검은 복장의 사람들이 한명씩 들어왔다. 큰아버지는 슬그머니 내손을 놓았다. 그러고는 가누기도 힘든 몸을 이리저리 비틀되더니 식장 밖으로 나갔다. 장례식을 들어온 사람들은 얼굴은 내 표정을 살피기 바빠하는 사람들 같았다. 힐끔 힐끔 쳐다보니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잘 기억은 나질 않았다. 낯익은 사람들은 엄마, 아빠, 동생 사진에 인사를 하고는 바로 나에게 다가왔다. 점점 낯익은 얼굴이 내 얼굴과 가까워진다. 내 표정을 확인하더니 평평했던 피부가 구겨지더니 몇 분간 소리치며 운다. 주름을 가로 질러 흐르는 물줄기를 내 얼굴, 옷에 묻히며 나를 얼싸 안는다. 나는 사람들에게 이 모든 게임 같은 상황을 말하고 싶지만 큰아버지와 바이올렛에게 해가 될까봐 말을 하지 않기로 한다.

“아니! 근데 저 오빠는 무슨 낯짝으로 여기 장례식장까지 왔데?” 제사 때 많이 본 아줌마 아저씨들이 모여서 큰아버지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다. 나는 바이올렛을 다리 뒤로 숨겼다.

“그러게 말이야! 한번이라도 우리 부모님 장례식장에 온 적이나 있냐고” 그 말을 듣고는 마치 임신을 한 것 같은 배를 가진 아저씨가 일어나며 화가 난다는 듯이 소리쳤다. “우리가 전생에 저 새끼한테 무슨 대역죄를 지었길래 저 새끼 뒤치다꺼리를 다해주고 있는 거야!” “그러니까요.. 수정이 아빠한테 보증 쓰게 해서 몇 년 동안 그 빛 갚는다고 언니, 오빠가 힘들었다구요.. 다들 알죠? 수정이 가족들 빛 더미로 나앉았을 때 얼굴 한번 안 비치더니... 정말 낯짝도 두꺼워.....” 말을 마치더니 하나같이 나를 쳐다본다. 그렇게 다시 눈을 모으더니 임신한 아저씨가 알겠다는 듯이 눈을 부릅뜬며 무릎을 친다. “와... 돈에 미친새끼 이 새끼가 여기까지 왜 기어들어 온줄 알겠네” 사람들은 궁금해서 죽겠다는 듯이 임신한 아저씨 팔을 연신 흔들어 댔다. “딱! 봐도 사이즈 나오잖아! 수정이 봐봐 지금 남은 사람이라고는 아무도 없다고... 양육권만 받으면 보험비는 저 새끼가 쳐 먹으려고 할 거라고” “어머 어머.. 그렇게 되는거야?” 멸치 같이 마른 아저씨의 말이 끝나자마자 아까와는 사뭇 다른 밝은 표정을 지으며 검은 옷의 사람들이 날 쳐다본다. 나도 모르게 입 고리를 올렸다. 내가 미소를 짓자 네명의 어른들이 나에게 다가왔다. 네명의 얼굴이 아까와는 사뭇 다른 밝은 모습으로 점점 가까워진다.

멸치같이 마른 아저씨의 아내 같이 보이는 치아가 커다란 아줌마가 내 코에 치아가 닿을 만큼 가까이 다가와 미소를 짓는다. “수정아, 엄마, 아빠, 동생이 그렇게 돼서 많이 슬프지? 많이 외로울 것 같애. 그렇지?” 나는 내 등 뒤에 있는 바이올렛 잎을 쓰다듬으며 조심스럽게 고개를 흔든다. “수정아 이모한테는 솔직히 말해도 돼요~ 전에 우리 집에서도 몇 번 잠도 잤었잖니, 기억하지? 우리 집에서 고기도 몇 번 먹었는데~” “네... 기억나요” “기억나지~ 잘생긴 오빠들 있는 집 기억하지?” 멸치같이 마른 아저씨도 미소를 지으며 내 머리를 쓰다듬는다. 그때 이마가 불룩 튀어나와있고 예쁘게 생긴 아줌마가 나에게 얼굴을 들이밀더니 치아가 큰 아줌마를 밀쳐낸다. “수정아~ 숙모 기억하지? 전에 제사 때 숙모가 머리띠 사주고 슈퍼도 자주 갔잖아~기억 안나?” 나는 튀어나온 이마를 보며 고개만 끄덕인다. 아줌마들의 적극적인 모습이 보기 싫었는지 임신한 아저씨가 화를 냈다. “왜 이렇게 애를 괴롭혀! 나와봐!” 예쁜 아줌마를 밀치고는 소여물을 먹듯이 입을 쩝쩝 거리며 올라가지 않는 입 고리를 올리려고 안간힘을 쓰는 듯 보였다. “수정아~ 아저씨 기억하냐? 너 유치원 들어간다고 바비 인형이랑 이층집 사줬잖아~” 나는 문득 크리스마스 때 소여물 씹는 아저씨가 선물을 준 기억이 떠올랐다. “네! 기억나요~ 아직도 집에 있어요~ 바비 이층집에 있던 가구들 몇 개는 없어 졌긴 했는데 그래도 아직 집에서 가지고 놀고 있어요!” “아이구 착한 녀석 웃으니까 이렇게 예쁠 수가 없네...” 임신한 아저씨는 내 옆에 앉아 쩝쩝거리더니 조심스럽게 말을 꺼낸다. “우리 예쁜이 아저씨랑 같이 살래? 아저씨가 매일 매일 바비 인형 사줄 수 있는데~” 그 말을 듣고는 이마가 튀어나온 아줌마와 큰 치아의 아줌마, 멸치처럼 마른 아저씨가 놀라서 임신한 아저씨를 쳐다본다. 난 그 모습이 웃겨 그만 웃음이 터진다. “수정아? 네가 들어도 웃기지? 이 아저씨 이상한 사람이네~ 명절에도 안 오고 일년에 한번 아버지 제사 때만 오는 사람이 이제 와서 수정이~수정이~ 거린데? 수정이 어릴 때 말고는 한번이라도 제대로 대화라도 해보셨나?” 임신한 아저씨가 기분이 나쁘다는 듯이 소리친다. “아니 그러면 너네는 수정이 아빠 빛 더미로 허덕거릴 때 연락이나 한번 제대로 해줬냐고! 현지랑 덕수는 수정이엄마랑 친적 관계라고 해도 다희 니는 뭔데 여기서 난리고.. 다희 니는 수정이랑 엮일 수가 없다” 이마가 튀어나온 아줌마는 억울하다는 듯이 얼굴에 부채칠을 한다. “아니 오빠 너무하신 거 아니에요? 저도 친척만큼이나 수정이 엄마랑 얼마나 친했는지 아세요? 아니 뭐 친척이라해도 수정이 엄마 갑상선 걸렸다는 거 누구 한사람이라도 아는 사람 있어요? 수술도 몇 번 하고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요? 그때 한번 병원문안이라도 한번 와 보셨냐구요! 어디다대고 지금 큰소리래. 지금 보험금 때문에 갑자기 다들 이러시는 거 아니냐구요!” 이마가 튀어나온 아줌마의 말이 끝나자 아무도 입을 열지 않는다. “아니.. 수정이 앞에서 이러지들 말자구... 일단은 밥이나 먹고 나중에 이야기하자고...” “아니, 여보 그러면 당신은 저 술 먹고 노름만 하는 저 오빠한테 수정이를 맡기고 싶어요? 돈 때문이 아니라구요...” 치아가 큰 아줌마는 털썩 주저앉아 오열한다. 그 모습을 본 임신한 아저씨와 이마가 튀어나온 아줌마는 밖을 나간다. 마른 아저씨는 치아가 튀어나온 아줌마를 일으켜 세우고는 함께 밖을 나간다. 나는 모두가 나간 모습을 확인하고는 다시 바이올렛에게 말을 건다.

“바이올렛 난 아무한테도 가지 않을 거야! 나는 네버렌드에 가서 우리 가족들이랑만 같이 살 거야” 바이올렛은 고개를 저었다. “수정아 내가 아까도 말했잖아. 너는 네버랜드에 갈수 없어. 다만 너희 가족들을 이리로 데리고 올수는 있어.” “아니야! 내가 큰아버지한테 물어봤는데 날 네버랜드로 데리고 간다고 했어!” 바이올렛은 이리저리 주위를 살펴보더니 말을 이어나갔다. “넌 후크선장의 말을 다 믿는 거야?” 나는 그만 울음이 나올 것 같았다. “그럼 내가 누구를 믿어야 되는 거야?” “...” 바이올렛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때 검은 복장의 남자가 들어왔다. 전에 보았던 수염 아저씨였다. 전보다 수염이 더 자라나 있는 상태에서 얼굴을 들이밀었다. “수정아 밥은 먹었니?” 생각해보니 오늘 내내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나는 고개를 가로로 흔들었다. “여기서 먹을래? 아니면 아저씨랑 나가서 맛있는 거 먹으러 갈래?” 나는 이 공간에서 나갈 수 있다는 생각에 갑자기 기분이 좋아졌다. “저... 나가도 돼요?” 아저씨는 한층 더 밝아 져서는 주위를 둘러본다. “그럼! 당연히 되지! 뭐먹고 싶니?” “저 햄버거 먹고 싶어요!” “그래 가자!” 나는 한손은 아저씨 손을 한손은 바이올렛을 잡고 갔다. 밖은 안보다 밝고 맑았다. 오랜만에 마시는 시원하고 맑은 풀 냄새에 기분이 좋아졌다. “바이올렛 너도 기분 좋지?” “응!” 아저씨는 그 말을 듣더니 허허 웃는다. “그 꽃 이름이 바이올렛이니?” “바이올렛은 꽃 종류인데 아직 이름은 못 지어 줬어요!” “그래? 그럼 이름을 지어줘야 되지 않겠니?” 나는 아저씨에게는 뭔가 말해도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애 이름은 팅커벨이에요! 사실 바이올렛으로 변신해 있는 거예요!” 나는 아저씨의 표정을 살폈다. 하지만 큰 키 때문에 얼굴을 볼 수 없었다. 그렇게 계속 길을 걷다 햄버거 집으로 들어갔다. 아저씨는 햄버거와 감자튀김, 콜라를 들고 내가 있는 테이블로 왔다. “우와! 엄청 많다!” 나는 놀라서 아저씨의 눈을 쳐다봤다. “팅커벨은 아무것도 안 먹어도 되니?” 나는 놀라서 아저씨의 귀에 대고 말했다. “아저씨! 바이올렛이 팅커벨이란건 비밀이에요! 팅커벨의 존재가 알려지면 네버랜드에 가는 게 더 힘들어 진다구요!” 아저씨는 알겠다는 듯이 주위를 살피더니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저씨는 햄버거 포장을 뜯으며 나에게 건넨다. “수정아 너 네버랜드 갈거니?” “네! 이것도 비밀인데 거기에 엄마, 아빠, 동생이 있어요! 팅커벨이 네버랜드로 갈수 있는 방법을 알려준대요. 근데 더 빨리 갈수 있을 것 같아요! 큰아버지가 장례식장 끝나면 네버랜드로 데려간다고 했거든요!” “네가 네버랜드로 갈 때 아저씨도 데리고 가면 안되겠니?” 나는 햄버거를 먹다가 예상치 못한 질문에 햄버거를 내려놓는다. “아저씨도 네버랜드 가고 싶어요?” “응! 우리 가족도 네버랜드에 있거든!” 나는 놀라서 씹고 있던 햄버거를 뱉을 뻔했다. “아저씨 가족들도 네버랜드에 있어요? 근데 한 번도 네버랜드에 가보시지 못한 거예요?” “응... 나도 너처럼 어릴 때 가족들이 전부 네버랜드로 떠났어... 근데 그때는 정말 가고 싶었는데 지금은 네버랜드보다 수정이가 있는 여기가 더 좋은걸?” 나는 수북히 쌓여있는 감자튀김을 케첩에 찍으며 말했다. “저는 싫어요. 엄마, 아빠, 동생이 있는 네버랜드로 갈 거예요. 근데 팅커벨이 계속 저는 네버랜드에 못간데요. 그리구... 사실 큰아버지도 후크선장이라 네버랜드로 데리고 간다는 말도 못 믿겠어요...” 아저씨는 다시 치아가 다 들어나게 웃으며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네버랜드로 갈수 있는 방법을 알면 아저씨한테도 알려줄래?”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한테도 네버랜드에 대해서 말하지 못했을 때 답답했는데 오히려 수염 아저씨에게 말하고 나니 한층 마음이 가벼워진 느낌이 들었다. 처음에는 무서운 아저씨 같았는데 나의 비밀을 공유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감자튀김이 어느새 바닥을 보이고 내배는 산처럼 한껏 부풀어 있었다. 나는 배가 불러 부풀러 있는 배를 두드리다가 아저씨의 얼굴을 천천히 들여다봤다. 아저씨는 초점 없는 눈으로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그때 아저씨 수염에 붙어있는 감자튀김 작은 조각을 보고 웃음이 터졌다. 아저씨는 내 웃음소리에 날쳐다보더니 무의식적으로 수염에 붙은 감자튀김 조각을 털어냈다. “수정아 이제 들어가 볼까?” “네!” 나는 한쪽 손으로 바이올렛을 잡고 한쪽 손으로는 아저씨 손을 잡고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장례식장을 들어가려고 하는데 어디선가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 큰 치아 아줌마와 임신한 아저씨, 이마가 튀어나온 아줌마가 큰아버지를 둘러싸고 있었다. “아니! 무슨 낯짝으로 수정이 보러 온 건데? 보험 비 타려고 온 거 맞잖아! 오빠가 보험금 타면 나 진짜 법정으로 소송 걸 거야!” “아니 이 썅년이 아까부터 소리 쳐 질러 삿는데 닌 뭔 권리로 내한테 그런 말 하노! 확 소주병으로 대가리를 쎄리까!” 큰아버지가 소주병을 잡고 이리저리로 흔들자 이마가 튀어나온 아줌마가 손으로 소주병을 잡는다. “오빠.. 그만해요... 오빠 때문에 수정이 가족들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잘 알잖아요... 돈 때문이라면 저희가 얼마라도 모아서 드릴게요... 근데 오빠가 수정이 키우는 건 아닌 것 같아요.” 큰아버지는 갑자기 이마가 튀어나온 아줌마의 머리채를 잡아 흔들었다. “니년은 뭔데 내한테 이래라 저래라 간섭이고!” 그때 나는 큰아버지와 눈이 마주친 느낌이 들었다. 내손을 잡고 있던 수염 아저씨는 그 소리와 멀어지게 나를 끌고 장례식장 안으로 들어갔다. 들어가는 내내 소리는 줄어들지 않고 더 크게 들려온다. 나는 큰아버지의 무서운 눈을 보고는 수염 아저씨가 내손을 놓지 못하게 더 꽉 잡았다. “수정아 큰아버지는 지금 악당역... 후크선장인거 알지? 그래서 지금 사람들한테 저렇게 못되게 하고 있는거야. 사람들이 후크선장인걸 알면 너를 네버랜드로 못보내서 지금 교란작전을 펼치는거야...” 나는 수염 아저씨의 말을 집중하고 싶었지만 떨리는 다리를 주체하지 못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마터면 바이올렛 까지 놓칠 뻔했다. 아저씨는 바이올렛을 잡아주며 내가 자리에 편안히 앉을 수 있도록 방석을 내발 밑으로 가져왔다. 나는 푹씬한 방석에 털썩 앉았다. “수정아 손모아볼래?” 나는 성당에 갔을때 엄마가 가르쳐준 기도 모양으로 양손을 모았다. 아저씨는 그런 내손에 자신을 손을 포갠다. “아저씨가 수정이를 위해서 매일 기도할꺼야. 그러니까 수정이가 하고싶은 선택을 하면 되는거야.” 도대체 수염 아저씨가 나한테 무슨말을 하는지 알수가 없었다. 수염 아저씨 눈을 쳐다보며 고개를 갸웃뚱했다. 아저씨는 내손을 더욱 꽉 잡으면서 눈을 감았다. 나도 뭔가 따라 감아야 될 것같아서 눈을 꼭 감았다. “아멘...” 아멘이라는 소리에 살며시 눈을 뜨자 아저씨는 재빨리 밖을 나갔다. 수염 아저씨가 나가고 또다시 나는 바이올렛과 둘이 남게 되었다. 나는 바이올렛을 바라봤다. 바이올렛이 많이 돌아다녀서 그런지 한잎은 완전 썩어 있었고, 몇개의 잎들이 시들어 가고 있었다. 나는 다 썩은 잎을 손톱으로 짤라 내며 자고있는 바이올렛을 깨웠다. “바이올렛! 일어나! 사람들이 다 갔어!” 바이올렛은 기지개를 펴면서 떨어져 있는 자신의 잎을 확인한다. “휴... 근데 아까 무슨애기를 그렇게 한거야?” “사실 니가 팅커벨이란걸 말했어... 뭔가 말해도 될것 같았어...” “...” 바이올렛이 한참동안 말이 없자 나는 다시 말을 덧붙였다. “수염 아저씨 가족들도 네버랜드에 있데!” “그래? 그래도 이제는 내존재를 다른사람 한테는 말하지 마! 내 정체가 들어나면 더 이상 이 현실세상에 있을 수 없어.” “응. 알겠어! 이제는 정말 지키도록 할께!” “근데 내가 누누이 말했듯이 너는 네버랜드에 갈 수 없어. 아까 지저분하게 수염이 나있는 아저씨도 결국 네버랜드에 가지 못했잖아.” 나는 또 치밀어 오르는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잠깐! 아직은 울지마! 그래도 가족중에 한명은 네버랜드에서 여기로 되돌아 오게 할 수 있어.” “내가 어떻게 하면돼는데? 나 뭐든 할수 있어!” “음... 쉽지만은 않은 방법이긴해...” 나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바이올렛에게 소리쳤다. “빨리 말해! 나 엄마, 아빠, 동생이 너무 보고싶단말이야. 계속 찾아오는 검은 사람들도 너무 싫고 이 지독한 향냄새도 더 이상은 맡기 싫어!” 나는 바이올렛 잎 위에 눈물을 떨어트렸다. “응 알겠어 그만해! 니눈물 때문에 내 잎이 더 빨리 썩는단 말이야!” 나는 잎위에 묻은 눈물을 닦아 냈다. “미안해...” “잘들어! 나는 빨리 죽어, 그렇기 때문에 내가 죽기 전에 모든 것이 다 이뤄져야해!” “응... 이제 진짜 울지 않을 꺼야 내가 널 지킬꺼야!” “알겠어! 잘들어 저기 너희 가족들 사진 보이지?” “응..” “저기서 네가 데려오고 싶은 사람 사진 뒤에 나를 나두는 거야” “그냥 저 액자 뒤에 너를 나두면 여기로 데려 올 수 있다는 말이야?” “응! 저 액자에 나두고 하루가 지나면 나타날거야. 하지만 조건은 단 사람만데리고 올수 있는거야!” “그럼 다른사람은 영영 볼수 없어?” “응... 안타깝지만 어쩔수가 없어. 나도 힘이 없어.” 그래도 한명이라도 데리러 올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놓였다. 하지만 내가 높은 단상위 사진에 바이올렛을 나두기에는 무리였다. “근데 바이올렛... 사진 뒤에 너를 나두기엔 내가 너무 작아...” “맞어! 넌 작아서 사진뒤에 나둘수가 없어!” “그럼 내가 어떻해야 할까?” “넌 피터팬을 찾아야 돼!” “피터팬?” 바이올렛은 고개를 끄덕였다. “응! 우리의 친구 피터팬 말이야!” “내가 피터팬을 무슨 수로 찾아....” “피터팬은 네 주위에 항상 살아 숨쉬고 있어! 눈을 감고 생각해봐” 나는 바이올렛의 말처럼 눈을 감고 오늘 장례식장에 있던 사람들을 생각해 보았다. 그래도 피터팬 같은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정말 그럴까? 내 주위에 있긴 한거야?” “응! 분명히 널 도와주기 위해 나타 날꺼야” 난 아까 아줌마들에게 무섭게 하던 큰아버지만 떠오를 뿐이었다. “혹시... 큰아버지가 피터팬은 아니지?” 바이올렛은 내말을 듣고는 킥킥됐다. “틀렸어! 그 사람은 후크선장이야! 너도 잘 알잖아” “응 그래도... 눈을 감으니까. 큰아버지 아니 후크선장 밖에 생각나지 않아” 바이올렛은 다시 킥킥된다. “수정아 너한테 필요한건 니 자신안에서 후크선장을 물리치는거야! 그러면 피터팬을 찾지 않아도 나타날꺼야!” 나는 다시 눈을 감았지만 물리칠 수가 없었다. “바이올렛...나는 후크선장을 물리칠수 없어...” 바이올렛은 중대한 비밀이라도 알려 줄것 처럼 자신에게 오라는 손짓을 했다. “이리로 와봐! 이건 정말 알려주지 않으려고 했는데! 후크선장을 물리치기 위해서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생각을 하는거야! 그러면 손쉽게 후크선장을 물리칠 수 있어!” 나는 다시 눈을 감고 엄마, 아빠, 동생과 함께 밭에서 고구마를 캐던 생각을 했다. 그래도 큰아버지가 아른거리자 작년 겨울 동생과 눈사람을 만들었던 생각, 놀이동산에 함께 놀러갔던 생각을 떠올렸다. 어느새 내머리 속은 가족들로 가득찼다. “됐어! 바이올렛! 이제 눈을 뜨면 피터팬이 보이는 거야?” 들뜬마음으로 눈을 떳지만 눈앞에는 바이올렛과 어둠뿐이 었다. 나는 다시 바이올렛에게 투정을 부렸다. “다른 방법은 없는거야? 이렇게 해도 피터팬은 보이질 않잔아” 바이올렛은 고개를 저었다. “뭐든 쉬운건 없어. 하지만 내가 알려준 방법을 계속 시도하면 니눈 앞에 나타날꺼야!” “응... 노력해볼게...” “...” 나는 그렇게 장례식장 복도의 불이 하나둘 꺼질 때까지 아무말 없이 앉아 있었다. 불이 꺼졌는지 주위를 확인하고는 엄마, 아빠, 동생의 사진 앞에 멈춰섯다. 그러고는 눈을 감고 바이올렛이 알려준 방법을 시도했다. 이번에는 뭔가가 나타날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눈을 떳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아무말 없이 웃고 있는 엄마, 아빠, 동생 사진 뿐이었다. 나는 그 자리에 주저 앉아서 큰소리로 울었다. “엄마...아빠....현수야.... 정말 네버랜드에 있는거 맞지? 그런거지? 팅커벨은 존재하는 거고 외삼촌은 후크선장이 맞는거지? 그런거지?...” “...”

그때 마침 내 소리를 들었는지 누군가 걸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눈물 흘리는 모습을 숨기기 위해 눈물을 닦고 바이올렛과 벽에 기댈 수 있는 곳까지 어둠을 뚫고 조용히 걸어간다. 어둠속으로 들어가니 사진이 있는 쪽은 더욱 밝아 보였다. 그때 장례식장 안으로 긴 그림자 하나가 비쳐졌다. 마치 장례식장 안의 밝은 공간을 반으로 자른 것 같은 모양이었다. 나는 어둠에서 벗어나지 않는 선까지 바이올렛을 잡고 다가갔다. 그림자는 전혀 움직임이 없었다. 그러더니 주위를 이리저리로 둘러봤다. 무언가를 찾듯이 말이다. 그렇게 그림자는 내가 있는 어둠과 가까워지고 있다. 나는 그림자가 알지 못하도록 숨을 죽였다. 그림자가 내 코앞까지 왔다. 하지만 내 어둠의 경계선을 넘지 않고 곧 바로 장례식장 밖으로 나갔다. 그때 나는 그 그림자가 피터팬이란걸 알아차렸다. 나는 그만 놀라서 입을 막고 참고 있던 울음을 터트리며 소리쳤다. “바이올렛! 너도 봤지? 피터팬이야!” “응! 맞어! 피터팬이 네가 부른 소리를 듣고 찾아 온 거야!”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발을 동동 굴렸다. 바이올렛을 바라보자 몇 개 남지 않은 잎을 흔들었다 “빨리 피터팬을 놓치기 전에 잡아! 아니면 내가 죽을 수도 있다구!” 나는 바이올렛의 말을 듣고는 바로 밖으로 뛰쳐나갔다. 밝은 빛 밖으로 보이는 것은 바로 수염 아저씨 뒷모습이었다. “아저씨!” 나는 아저씨를 큰소리로 불렀다. 수염 아저씨는 내말을 들었는지 뒤를 돌아봤다. “수정아!” 하며 달려와 나를 꽉 안아주셨다. 나는 수염 아저씨에게 안겨 말했다. “아저씨... 아저씨... 피터팬 맞죠?” 아저씨는 더 지저분해진 수염과 빨간 핏줄로 가득한 눈으로 나를 쳐다며 고개를 가로 젓는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흐른다. “아저씨 아까 피터팬이 여기를 왔다갔어요! 혹시 피터팬 못 보셨어요?” 아저씨의 눈은 핏줄이 다 터져버릴 것 같았다. 그 눈안은 물로 가득차 물방울이 되어 흘렀다. 나는 그런 아저씨의 눈물을 닦았다. “아저씨 저한테는 정말 중요한 일이에요! 피터팬을 찾지 못하면 동생을 살릴 수 없어요!” 수염 아저씨는 내가 숨을 쉬지 못 할 정도로 끌어안는다........

그렇게 몇 분을 우시더니 장례식장 밖으로 나를 데리고 갔다. 밖의 공기는 역시 시원하고 맑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저씨는 벤치로 나를 끌어 앉혔다. 그러고는 지저분한 수염과 빨간 핏줄의 눈을 다시 내눈 앞으로 들이밀었다. “정말 피터팬을 본거야?” 나는 눈을 부릅뜨고 고개를 끄덕인다. “네! 정확히 봤어요! 피터팬이 저를 도와주러 온 거에요!” “피터팬이 너를 도와주러 온다니 그게 무슨 말이니?” 나는 조심스럽게 바이올렛을 쳐다본다. 바이올렛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저씨... 저 사실 동생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어요.” 아저씨는 놀랐는지 들고 있던 종이컵을 약간 구겼다. “제 옆에 있는 바이올렛을 동생 사진 뒤에 나두면 다음날 동생이 네버랜드에서 여기로 돌아 올 수 있어요.” 그러고는 나는 바이올렛을 내 무릎 위로 올리고 수염 아저씨는 쳐다봤다. “원래는 피터팬에게 부탁하려고 했는데 피터팬을 찾으려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릴 것 같아요... 그래서 아저씨의 도움이 필요해요” 수염 아저씨는 아까 약간 구겼던 종이컵을 다 구겨 주먹 안으로 숨겼다. 그러고는 내 무릎 위에 있는 바이올렛의 몇 개 안되는 폭신한 잎을 쓰다듬었다. “내가 바이올렛 아니 팅커벨을 동생사진 뒤에 나두면 동생이 여기로 다시 돌아 올수 있다는 말이지?” 나는 바이올린을 들고 일어서며 고개를 격하게 끄덕였다. 수염 아저씨도 치아가 다 보일만큼 미소를 지었다. “지금 도와줘도 되겠니?” 나는 펄쩍펄쩍 뛰며 말했다. “고맙습니다! 아저씨!” 수염아저씨는 긴 다리로 일어서더니 나의 손을 잡고 걸었다. “수정아 근데 엄마, 아빠는 못 돌아오시는 거야?” “한명밖에 못 데리고 온대요...” “그럼 네가 동생을 선택한 거네?” 나는 아무 말 하지 않았다. “왜 동생을 선택 한 거야?” “그건...제가 있었던 일들을 다 말해주고 싶어요! 엄마, 아빠는 절대 믿지 않을 거예요...” 수염 아저씨는 더 이상 말이 없었다. 나도 장례식장의 간판이 보이는 곳을 향해 말없이 걸어갔다.

장례식장안 복도는 곳곳에 불이 꺼져 어두웠다. 밝은 빛 사이로 아저씨는 장례식장안 모든 불들을 켰다. 그제야 우리 장례식장안 전체가 다 밝아 졌다. 나는 동생의 사진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현수야 조금만 기다려 내일이면 볼 수 있어”를 말하고 수염 아저씨의 손을 꽉 잡았다. 왼손에 잡고 있는 바이올렛은 아무 말도 없었다. “바이올렛 동생이 돌아오면 정말 좋을 거야 그치?” “...” “만약 동생이 돌아오지 못한다고 해도 너는 항상 내 옆에 있어 줄 거지?” “응!” 바이올렛의 보랏빛은 더욱 선명하게 보였다. 마치 그 보라가 밝은 빛을 내뿜을 것처럼 말이다. 나는 이 신비로운 순간에 바이올렛을 수염 아저씨에게로 건넸다. 수염 아저씨는 내손을 놓고 바이올렛을 두 손으로 잡았다. 한참을 바이올렛을 쳐다보시더니 동생의 사진 앞까지 다가가더니 멈춰 섰다. 그때 어디선가 흥얼거리는 노랫소리가 들렸다. 점점 노랫소리가 가까워지자 나는 설마하고 뒤를 돌아봤다. 역시나 홍당무처럼 빨개진 큰아버지였다. “어이구! 우리 수정이 아직도 안자고 뭐하노?” 나는 큰아버지가 우리 일을 방해할까봐 얼른 수염 아저씨와의 할 일을 마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저씨 빨리 해주세요!” 수염 아저씨는 홍당무 얼굴을 한 큰아버지와 한번 눈을 마주치더니 동생의 사진 뒤에 바이올렛을 놓았다. 놓은 순간 동생사진 뒤에서는 큰 빛이 번쩍했다. 그 큰 빛을 알아차렸는지 홍당무 얼굴을 한 큰아버지가 동생의 사진 쪽으로 거침없이 걸어갔다. 그러고는 아슬아슬하게 바이올렛을 잡았다. “이 뭐꼬 다 썩은 꽃이고” 나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큰아버지의 손가락을 물었다. “아악!!!” 내 고막에는 아저씨의 고통스러운 소리로 가득 찼다. 큰아버지는 나에게 물렸던 손을 가볍게 빼더니 동생 사진 뒤에 있는 바이올렛을 잡고는 내 얼굴 위로 후려 쳤다. 바이올렛의 작은 보라 잎이 내 모든 시야를 가렷다. 그러고는 마치 범버카에 부딪히듯이 저 멀리 미끄러졌다.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떠보니 뿌연 안개 속에 큰아버지는 사람들 사이에 둘러 싸여 있고 바닥은 흙으로 가득 차 있었다. 나는 곧바로 몸을 털고 일어났다. 내발 밑에 쏟아져 있는 흙을 엄지와 검지로 잡는데 이내 가루가 반짝이며 하늘로 연기처럼 사라졌다. 그때 노란 빛이 내 시야를 따갑게 했다. 나는 눈부심을 이겨내고 그쪽을 계속 쳐다봤다. 그 밝고 황금빛 속에서 누군가가 걸어오고 있었다. 그건 틀림없는 동생이었다. 나는 달려가 동생을 꼭 끌어안았다. “잘 지냈어? 누나 안보고 싶었어?” 동생은 아무런 대답 없이 천진난만하게 웃었다. 나는 전에도 그랬듯이 습관적으로 동생의 볼을 꼬집었다. 그러고는 꼭 안았다. “현수야... 정말 보고싶었어” 동생의 천진난만한 웃음소리가 내 귓가에 메아리치듯이 울려 퍼졌다. 동생은 갑자기 내 팔을 뿌리쳤다. 나는 당황해서 동생을 쳐다봤다. 그때 초록옷의 남자와 반딧불처럼 밝게 빛나고 있는 요정이 나와 동생이 있는 쪽으로 다가왔다. 분명 피터팬과 팅커벨이었다. 둘은 동생의 손을 잡더니 저 멀리 날아갔다. 나는 동생을 쫒기 위해 계속 뛰었다. 하지만 내가 뛸수록 더욱더 멀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다시 눈을 깜박거리며 떠보니 눈부신 형광등이 나를 비추고 있었다. 나는 직감적으로 여기가 병원이란 걸 느꼈다. 머리를 만져보니 단단한 붕대가 머리에 싸여 있었다. 나는 무거운 머리를 들어 올려 앉았다. 옆에는 수염아저씨가 침대에 머리를 기대어 누워 있었다. 나는 수염 아저씨 머리가 있는 쪽이 아닌 반대 방향으로 몸을 돌려 침대에 걸터앉았다. 그때 익숙한 무언가가 창문위에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니 동생이 천진난만한 웃음을 지으며 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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