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예술가의 몰락

by 아지카리 posted Apr 10,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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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예술가의 몰락

 

 산과 숲으로 둘러싸인 커다란 저택하나가 있었다. 그 성에서는 뛰어난 예술가인 노인이 저택에서 수많은 시녀들과 집사들을 데리고 함께 살고 있었다. 나 또한 그를 돌보는 자로써 그 성에서 살았다.

 저택에서 잡일을 맡은 다른 자들과 달리 난 조금은 특이한 일을 맡고 있었다. 그 일은 그저 늙은 노인의 말동무가 되어주는 일이다. 하지만 이젠 두 번 다시 내가 그 일을 할 수가 없게 되었을 때, 저택은 폐허가 되어버렸고 그곳은 오로지 나와 몰락해버린 노인의 낡은 그림하나만이 남겨지는 결과가 되었다.

 

 처음 모든 시작의 여름날, 다른 사람의 잡일을 하며 푼돈을 받고 떠돌이 생활을 하던 어린 나에게서 젊은 청년이 찾아왔다. 처음으로 일 때문이 아닌 다른 일로 찾아온 그에게 어색함을 느낀 나와 달리 몸이 허약해 보인 그는 열정이 담겨있는 눈으로 나에게 음식을 대접하며 편안히 대해주었다. 그가 대접한 음식은 빵 한 조각과 물 한잔이 아닌 어린 나에게 있어서 처음 보는 호화로운 음식들뿐이었다. 난 그의 눈치를 보며 허겁지겁 음식을 입에 담을 동안 그가 나에게 질문을 해왔다.

 

 “넌 오랜 시간동안 제자리앉아서 대화할 수 있니?”

 

 참 이상한 질문이었다. 그는 대답 없는 나에게 다시 한 번 질문을 되풀이하며 물었다. 그의 질문에 이상함을 느낀 난 서둘러 자리를 뜨려고 했지만 곧 말 한마디에 그의 손을 잡으며 따라나서게 되었다.

 

 “만일 그 일을 받아주면 살 곳이 없는 너에게 살 집을 마련해주고 옷과 음식까지 다 책임져줄게.”

 

 갈 곳도 없이 떠돌이 생활하며 굶주리는 삶을 사는 어린 나에게 있어서는 너무나 유혹적인 말이었기에 난 처음 보는 그를 따라갔다. 그의 말이 거짓말일 수 있다는 생각보다는 더 이상 떠돌이 생활로 굶주리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더 컸기에 그의 말 한마디를 믿고 그의 마차에 올라탄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지내는 마을을 빠져나와 산을 넘고 호수와 숲의 사이를 지나자 커다란 저택하나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는 나에게 앞으로 자신과 살 집이라며 자신이 요구했던 그 일만 잘해주면 된다고 말하였다.

 

 저택에 도착하고 마차에서 내리는 순간 수많은 여성들과 남성들이 줄지어 몰려왔다. 그들은 큰소리로 나와 그에게 인사를 하였다. 그가 제일 앞에 있던 늙은 집사에게 고개를 끄덕이자 그들이 나를 저택 안으로 데리고 가며 깨끗이 씻겨주고 내 허름한 옷을 벗기며 깔끔한 새 옷을 입혀주었다. 당연히 내가 앞으로 지낼 방까지 안내해주며 필요한 것들을 전부 주었다. 심지어 나에게 글자이외에도 공부할 수 있게 교육까지 책임져주었다. 한순간에 마법같이 일어난 이 모든 일이 나에게 기쁨을 선사해주었다. 서둘러 호화로운 침대에 누워있던 그에게 찾아가 말했다.

 

 “정말 제가 여기 있어도 되나요?”

 

 “그럼, 여기 있어도 된단다. 다만 내가 말했던 그 일만큼은 꼭 지켜 줘야해.”

 

 “, 그런데 다른 일은 또 없나요? 그 일만 하기에는 너무 부담스러워요. 제가 진짜 이 모든 것들을 받아도 되는지...

 

 “괜찮아, 이건 내가 원해서 한 일인걸. 부담스럽게 생각하지 말고 편하게 받아줬으면 해.”

 

 그는 전보다도 더 허약해 보인 몸을 겨우 움직이며 나의 얼굴을 마주보았다. 불안한 마음에 차마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그런 나의 모습을 본 그는 나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말했다.

 

 “나는 너를 다른 종들처럼 그런 일을 시키려고 데려온 거 아니야. 친구로 지낼 마음으로 데려온 거지.”

 

 그의 말이 들려오는 순간 난 눈물이 쏟아졌다. 어째서 울음을 터뜨렸는지에 대해 나 자신조차 궁금했다. 그의 말에 너무 당황해서 그런 건지 고마워서 그런지는 아직까지도 잘 모르겠다. 그래도 나에게 이런 축복을 내려준 그에게 감사를 표하고 싶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어떻게 그에게 감사를 표해야하지?

 

 그는 나에게 다른 종들과 같은 일이 아닌 오로지 자신이 그림을 그릴 때 말동무가 되는 일을 시켰다. 그가 시를 쓰거나 작품을 조각하거나 할 때도 옆에 나를 앉히며 말동무로 있게 하였다. 대화는 언제나 한 결 같이 질문을 주고받으며 나에 대한 이야기와 그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말하는 것뿐이다.


 한번은 그가 나에게 자신의 옛이야기를 말해주었다그는 나와 달리 돈 많은 집안에서 태어났어도 부모에게 사랑을 받지 못하였다. 허약한 몸 때문에 항상 사회에서 동떨어져 이곳 저택에 갇혀 사는 삶에 다가 의지할 것이라고는 얇은 붓들과 두꺼운 캔버스, 친구하나 없이 그는 그저 그림을 그리며 반복되는 생활에 살아왔었다. 그는 친구가 필요했다. 말만하면 다 들어주는 사람이 아닌 같이 감정을 공유하고 즐겁게 대화도 하고 다양한 체험을 함께할 친구가 말이다. 그가 자신의 어린 시절을 들려줄 때마다 난 그가 지금까지 외롭게 지내왔다는 것을 느낀다. 그래서 그는 자신에게 친구가 필요했기에 갈 곳 없던 날 그저 데려온 걸까? 

 그의 이야기를 들어줄수록 그에 대한 궁금증만 커져만 간다.

다른 그 누구도 아닌 마을에서 갈 곳 없이 돌아다니며 푼돈을 받고 겨우 살아가는 지저분한 나를 어째서 살아가는데 도움을 주며 나를 데려왔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서로의 얼굴을 한 번도 본적이 없었을 텐데 그는 뭐 때문에 나를 데려왔을까?

 궁금증이 커져가면서 난 변함없이 그림을 그리는 그에게 용기를 내어 물었다.

 

 “저를 이곳으로 데려온 이유가 뭔지 물어봐도 될까요?”

 

 그는 나의 물음에 바쁘게 움직이던 붓을 든 손을 멈추고는 자신의 그림에 시선을 고정한 그대로 말했다.

 

 “어쩌면 외로워서 그랬을지도?

 

 그는 평상시의 들뜬 목소리가 아닌 서글픈 목소리로 짧은 혼잣말을 뱉어내었다. 처음 들어보는 그의 서글픈 목소리에 놀란 난 입술을 깨물며 입을 닫았다. 창밖을 바라보니 작은 구름이 해를 가리고 있었다.

 그는 다시 평상시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네가 처음 여기 왔었을 때 말했잖아, 친구로 지낼 마음에 데려온 거라고. 그런데 그건 왜 물어보는 거야?”

 

 “아니, 그냥 갑자기 생각나서요. 제가 실례되는 행동을 해버렸네요.”

 

 “아니야. 괜찮아, 그건 이제 됐고 이번에도 내 그림모델이 되어줄 수 있니?”

 

 “.”


 난 그에게서 답을 얻어낼 때까지 질문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그는 억지웃음을 지어내고는 외로워 보이는 슬픈 눈동자를 그저 깜박이며 말을 돌린다. 그에게서 가장 필요한 것은 어쩌면 외로움을 잊게 해주는 사람인걸까? 내가 그런 사람이 되어 그를 기쁘게 해주는 것이 그에게서 감사를 표하는 일 인거 같다.

 어느 새인가 작은 구름은 해 주위를 떠나가고 햇살이 비추게 되었다.

 

 세월이 흘렀다. 처음 이곳에 왔던 때와 다르게 난 내 자신에 대한 변화를 느꼈다. 처음에는 어색하기만을 했었지만 지금은 그와 친한 친구이자 가족이 되었다. 그만큼 그와 가까운 사이가 되갈수록 나의 일들은 늘어간다. 그와 함께 산책하는 일과 식사 또는 그림을 그리는 일과 잠이 안 오는 날 책을 읽어주는 일 등의 여러 가지 서로 함께하는 일이 늘어간다. 더 이상 일이 아닌 가족으로써 해야 하는 일로 느껴진다.

 그만큼 함께 햇살을 맞이하며 보내는 일이 늘어나면서 정신을 차려봤을때에는 그는 벌써 주름진 노인이 되었고 난 젊은 청년이 되어있었다. 여전히 그는 편함이 없이 자신의 넓은 작업실에서 그림을 그리며 옆에 나를 앉히게 하였다. 커다란 유리창 밖에서 비쳐오는 따스한 햇살이 나와 그가 있던 방에 빛을 채워갔다.

 나는 그에게 장난삼아 말했다.

 

 “아무리 늙었어도 그림은 포기 못하시나 보내요.”

 

 그는 나의 말을 듣고는 웃으며 말했다.

 

 “당연하지, 그림이 나에게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데.”

 

 “그럼 그렇지, 나도 잘 알고 있다고요.”

 

 그는 피식거리는 소리를 내고는 웃으며 그림을 계속해서 그려갔다. 이번에는 또 무슨 그림을 그리는 걸까?’하는 생각에 나는 평생을 함께해오던 낡은 의자에서 벗어나 그의 캔버스에 다가갔다. 매일 그가 그림을 그리는 모습을 보는데도 그의 그림을 볼 때마다 난 그의 신비스럽고 아름다운 풍경화 또는 인물화에 놀라움과 호기심을 감출수가 없다. 그는 자신의 모든 예술은 그저 취미일 뿐이라고 말하지만 그 누가 봐도 그의 작품은 취미라고 말할 수 없이 아름다웠고 신비성 있는 그림이다.

 그의 작업실에 있는 작품들을 살펴보면 옛 작품에서 항상 무언가에 대한 그리움 또는 외로움이 느껴지지만 최근에는 화목하고 따스한 분위기의 작품들로 넘쳐있다.

 그가 그리고 있던 풍경화를 감상하던 중, 그가 멍하니 서 있던 나의 머리에 꿀밤을 먹였다. 잠깐 동안에 느껴지는 육체적 고통에 놀란 나는 아픈 머리를 손으로 문지르며 그에게 말했다.

 

 “갑자기 왜 때려요?!”

 

 그는 웃으며 나의 눈을 마주한 그대로 말했다.

 

 “그림감상은 나중에 하고 어서 다시 의자에 앉아 있어봐.”

 

 “알았어요. 하지만 가만히 있지는 못하니깐 그렇게 알아두세요.”

 

 그에게 작은 투정을 부리며 난 얌전히 그가 시키는 대로 다시 낡아진 나의 의자에 앉았다. 웃음을 유지하며 그는 나무이젤에 받혀있던 그림을 내리고 새로운 캔버스를 가져와 기대었다. 그는 조용히 새로운 캔버스에다가 다양한 물감으로 무언가를 그려대기 시작했다.

 난 물었다.

 

 “뭘 그리는 거 길래, 여기에 앉아 있으라고 한 거애요?”

 

 “나중에 보여줄 거니깐 일단은 얌전히 거기에 앉아 있어봐.”

 

 몇 번이나 나를 쳐다보다 그림을 그리는 그는 그저 미소를 유지하고는 그림을 그려갔다. 그림을 그려가는 동안에는 약간의 침묵이 흘렀지만 더 이상의 어색함이나 불편함이 없이 그와 나는 편안하게 자신의 자리에서 할 일을 하며 시간을 보내었다. 그렇게 하루는 금세 지나가며 이와 같은 하루를 여러 번 보내었다. 세월이 많이 흘렀어도 여전히 그는 그림을 그리며 나는 그의 옆에 앉아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더 이상은 이런 생활을 끝내야할 상황이 되었다.

 나에게서 봄이 찾아왔다. 더 이상의 이런 생활을 하다가는 나의 행복을 놓칠 것만 같았다. 나의 봄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이 생활을 끝내야하기에 난 그에게 허락을 구하기로 결정하면서 무거운 마음으로 그에게 찾아갔다. 그는 자신의 방 창가에서 햇살을 맞이하며 평소보다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난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기며 그에게 다가가 말했다.

 

 “저기 대화할 시간이 되나요?”

 

 “부르려고 했는데 마침 잘 왔어, 자 어서 날 따라와 봐.”

 

 “? 어디를 가시는 거애요?”

 

 “날 따라오면 곧 알게 될 거야.”

 

 그는 전보다 불편해진 다리를 지팡이 하나에 의지해가며 걸어갔다. 앞장서 가던 그는 들뜬 기분으로 계단을 쉽게 내려가더니 나를 작업실로 데려갔다. 그의 자신의 정장재킷에서 열쇠를 꺼내어 문을 힘주어 열더니 지팡이와 발맞추어 걸어가 천으로 덮어진 캔버스와 나무이젤 쪽으로 갔다.

 그는 나에게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드디어 내가 완성했어, 너에게 꼭 보여 줘야할 걸작 말이야!”

 

 “저기 죄송하지만 그거는 나중에 보면 안 될까요?”

 

 “아니, 지금 꼭 봐야해! 이 작품은 네가 있을 때에만 빛을 보거든.”

 

 그의 고집은 그 누구도 막거나 꺾을 수조차 없지만 나에게는 시간이 없기에 나는 차분히 창가 쪽에 있던 나의 낡은 의자에 앉으며 말했다.

 

 “죄송해요, 지금은 볼 시간이 없어요. 싫다는 것은 아니에요! 이런..거울보고 연습을 했는데도 말이 안 나오네.”

 

 그의 눈을 피하며 혼잣말을 뱉어낸 나는 그의 시선을 살펴봤다. 그는 약간의 당황함을 보이며 불안해하는 눈동자를 보였다. 그가 얌전히 제자리에서 침묵을 유지하기에 난 말을 이어서 계속했다.

 

 “저기 죄송하다는 말을 먼저 건 내고 싶어요. 그게 저, 그동안 갈 곳 없는 저를 받아주셔서 감사해요. 하지만 이제 저도 저만의 생활을 꾸릴 때가 된 거 같아요.”

   

 “그게 무슨 말이야?”

 

 그가 입술을 깨물며 쥐고 있던 지팡이를 더욱더 강하게 쥐었다.

 

 “이제 이곳을 떠날 때가 된 거 같아요.”

 

 “?”

 

 “저도 이제 성인이고 저만의 가정을 꾸리고 싶어서요. 전부터 만나왔던 사람이 있는데 그녀와 함께 있으면 행복해지고 같이 있고 싶어요. 그래서 얼마 전에 고백을 했더니 받아주더라고요. 벌써 부모님까지 만나고 왔어요. 그분들도 허락해주셨어요.”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지.”

 

 “결혼식을 올린 뒤에 그녀와 함께 살고 싶어요. 벌써 집까지 구해서...”

 

 “다른 집을 구했다고? 뭐 하러 그런 귀찮은 일을 해? 그냥 이곳에서 다 같이 살면 되잖아.”

 

 점차 그의 목소리가 커져갔다. 창가에서 흘러들어오는 햇빛은 노을이 지면서 붉은 빛을 보내었고 곧 어두운 그림자가 생기면서 그의 일그러진 표정을 감추었다.

 

 “죄송해요, 하지만 저도 저만의 집에서 그녀와 같이 살고 싶어요.”

 

 “조용히 해!”

 

 그가 지팡이로 바닥을 힘껏 내려치고는 말했다.

 

 “힘들게 살아가던 너를 기껏 구해줬더니 이런 식으로 은혜를 갚으면 안 되지!”

 

 “저에게도 인생이 있어요. 절대로 은혜를 버리겠다는 것이 아니라 그냥 다른 곳에서 앞으로 생활해가도록 허락해주시라는 거애요. 저는 멀리 떠나는 게 아니에요. 매일매일 찾아와 언제나 평소처럼 같이 지낼 수 있어요.”

 

 노을이 더욱 진한 붉은 빛을 내뿜으며 그의 분노로 가득 찬 눈빛을 비추었다.

 

 “아니, 난 절대로 허락을 내리지 않을 거야. 한 달 정도는 매일 약속하듯이 오겠지, 하지만 그 후로는 점차 이곳을 오지 않을 거고 결국에는 이곳에 찾아오지도 않을 거야. 사람의 신뢰는 거기서 끝이야, 그러니 이곳에 있어. 난 허락하지 않을 테니깐!”

 

 “저는 당신의 장난감이나 노예가 아니에요!”

 

 순간적으로 생겨난 분노에 그만 마음에 두지도 생각하지도 않던 말을 그의 앞에서 소리치며 말해버렸다. 그는 나의 말에 놀람과 동시에 나에게 뒤돌아서며 말했다.

 

 “그래, 네 마음대로 어디 나가서 살아봐! 다시 받아달라고 해도 절대로 받아주지 않을 거니깐! 어서 나가!”

 

 “죄송해요, 저도 모르게 그만..”

 

 “어서 나가라는 말 못 들었어! 거기 누구 있으면 이리와! 은혜도 모르는 녀석을 어서 내쫓아버려!”

 

 그의 외침과 동시에 이곳에서 일하던 종들이 나를 밖으로 끌고 갔다. 밖은 어느 새인가 벌써 칠흑 같은 밤이 되어있었다. 나를 내쫓은 그들은 저택의 문을 굳게 닫아 잠거두자 난 서둘러 굳게 잠긴 문을 두들기며 소리쳐 말했다.

 

 “죄송해요! 아까한말은 진심이 아니었어요. 용서해주세요.”

 

 그러나 아무런 대답조차 돌아오지 않았다. 아무리 소리쳐 말해도 돌아오지 않는 대답에 지친 나는 그 저택을 떠나 마을로 걸어갔다. 다리에 무리가 갈 정도로 쉬지 않고 걸어서인지 다리에서 심한 근육통이 왔지만 그것보다는 오랜 친구를 잃었다는 고통이 더욱 아파왔다.

 마을에서 지낼 동안에도 난 매일 아침마다 그의 저택에 찾아가 그에게 사과를 전하려 했지만 그는 나를 만나려 하지 않았다. 그때마다 그의 저택은 전과 다른 모습으로 나를 매일 맞이하였다. 흐린 날씨로 인해 저택은 늘 그늘에 가려져있는 것부터 시작해서 그를 돌봐주던 사람들이 점차 하나둘씩 그의 곁을 떠나가며 몰락하는 그의 저택이 허름해지는 것까지 난 그동안에 매일 그의 저택 문에다가 노크를 하며 말을 걸어왔다. 여전히 그는 나와 만나주려는 것조차 하지를 않았다. 그렇기에 난 그의 문 앞에 그동안에 감사와 죄송하다는 말을 쓴 편지를 두며 그곳을 떠났다. 그날 하늘은 몹시 어둡고 굵은 빗방울을 쏟아내고 있었다.

 

 시간이 흘러가면서 난 그렇게 원하던 그녀와의 결혼식을 올리게 되었다. 그때는 그에게 결혼식에 참가해달라는 부탁이 담긴 편지를 보내보았지만 끝내 그는 오지 않았다. 난 그가 더 이상 나와의 소통을 바라지 않는다는 생각에 그의 저택에 발길을 끊고 그저 나에게 현재 일어난 일들과 과거의 회상과 용서를 바라는 글을 적은 편지만을 전달했다. 하늘은 여전히 나에게 흐리면서도 작은 햇살을 보여고 있었다.

 

 내가 가족이라는 집단을 만들고 잠시나마 행복을 즐기며 있는 동안에 너무나 많은 세월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잠시 그에 대한 일을 잊으려할 동안 만끽한 따스한 햇살이 어색해져만 갔고 잠시 잊고 있던 그를 떠올리며 오랜만에 그의 저택으로 발길을 옮겼다. 여전히 고집을 부리며 얼굴조차 봐주지 않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잠시나마 피식하고 웃어보았지만 그의 저택에 도착했을 때에 난 웃음소리조차 낼 수가 없었다. ‘여전할거야라고 생각했던 그 모든 추억이 깃들던 그의 저택은 폐허로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그전에 저택이었다는 것을 알아볼 수 있게 부서진 형태는 그나마 유지가 되어있었다.

 너무나 놀란 나머지 제자리에 서서 주위를 둘러보기만을 했다. 조금이나마 정신을 차렸을 때에 저택 안으로 발걸음을 옮기며 달라진 풍경들을 바라보았다. 멀쩡했다면 그때와 똑같지만 지금은 구석구석마다 깨진 술병들과 빈병들로 넘치는 폐허일 뿐이었다.

 많은 변화에 허무함을 느끼던 중, 그의 작업실이 눈에 띄었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조심스럽게 문을 열어보지만 역시나 그는 없었다. 그저 그의 작업실은 수많은 그림과 미술도구들이 여기저기 널브러져있고 부서진 벽들 사이에서 흐릿한 햇빛이 겨우 안을 비추어주었다. 헛웃음소리를 내가며 겨우 눈물을 참아가던 난 여전히 남아있는 나의 낡은 의자를 바라보기만 했다. 내가 이루고 싶던 일로 인해 소중한 것을 만든 것과 동시에 다른 것들을 부셔버리고 말았다. 난 그를 외톨이로 만들며 그를 몰락시킨 자가 되었다. 그를 몰락하게 만든 것은 외로움인지 아니면 나인지 모르겠다. 그저 그에게 미안한 마음만 들었다.

 더 이상 이곳에 있고 싶지 않아 발걸음을 옮기려는 순간 어색하게 홀로 천으로 곱게 덮어진 캔버스와 나무이젤을 발견했다. 옛날부터 가지고 있던 그의 그림의 호기심이 다시 되살아났는지 먼지가 쌓인 천을 조심스럽게 잡아당겼다. 그러자 이젤에 받쳐있던 캔버스의 그림이 서서히 보이기 시작하는 것과 동시에 난 지금까지 참아왔던 눈물을 참지 못하고 쏟아내었다.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그 그림이 지금까지 그가 나에게 해주고 싶었던 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익숙한 구조의 방안에서 한 소년이 낡은 의자에 앉아 해맑게 웃으며 창가에서 햇빛을 받아들이는 그 그림. 그림의 한 구석에서는 제목으로 보이는 친구라는 단어가 눈에 익는 악필로 써져있었다.

 어쩌면 이 그림은 그가 나에게 보여주려던 마지막 그림이었을지도 모른다. 만일 그와 싸우기 전에 이 그림을 보았더라면 난 그의 곁에 남아주었을까? 밀려오는 후회감과 그에 대한 죄책감이 나의 가슴을 답답하게 만들었다. 조심스럽게 그의 그림을 가지고 그곳에서 빠져나왔다. 폐허가 되어버린 이곳은 현재, 나와 그가 남긴 그림만이 남아있다. 그가 어디로 사라졌고 이곳이 폐허가 되어버린 이유조차 모른 채, 난 그저 폐허 속에서 그의 그림을 바라보았다.

 자세히 캔퍼스를 살펴보았을때 난 그림 뒷면에 작은 글씨가 새겨져있는 것을 발견했다.


 ‘미안해, 돌아와줘, 오랜 나의 친구이자 가족이여.’

 

 어느 새인가 내가 서 있던 자리의 하늘에서 해가 높게 떠오르며 옛날과 같은 햇살을 비추어졌다.





서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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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9260-44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