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이별

by 100%림 posted Apr 10,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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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풋이별



   

   동물과 식물, 그리고 인간이 공존할 때부터였다. 이곳은 강을 중심으로 오른쪽, 왼쪽으로 마을이 나누어져있었다. 오른쪽 마을은 아파트가 빽빽하게 줄지어 서있었고, 왼쪽 마을은 컨테이너 박스와 작은 주택들로 가득했다. 오른쪽 마을과 달리 왼쪽 마을에는 아파트 하나 보이지 않았다. 밤인데도 불구하고 이곳은 그 흔한 가로등 하나 제대로 켜지지 않았다. 짙은 어둠이 깔린 이곳은 꼭, 낮이 되길 기다리는 것만 같았다. 그와 반대로 오른쪽 마을엔 아파트 층마다 환하게 불이 켜져 있었다. 곳곳에선 음악소리가 들렸고, 자동차가 달리는 소리와 사람들이 대화하는 소리까지 모든 게 소란스러웠다.

눈에 보일만큼 다른 두 마을에는 어겨서는 안 될 규칙이 하나 있었다. 자신이 살고 있는 마을이 아닌 건너편 마을로 넘어가선 절대로 안 된단 것이다. 마을에 사는 사람들의 비율이 맞아야 한다며 정부에서 무작정 결정지어버린 규칙이었다. 태어나자마자 두 마을 중 한 곳으로 무작위로 배정 되는 엉터리 규칙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항의하지 않았다. 건너편 마을이 어떻게 생긴지, 어떻게 생활하고 있는지 서로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

   곳곳에 유리파편과 쓰레기들이 흩어져 나뒹굴었다. 찬바람이 마을을 가로지르듯 빠르게 휩싸고는 놓아줄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낮인데도 좁은 골목길에는 사람이 거의 다니지 않아 휑하기만 했고, 거센 바람 때문에 나뭇잎들이 골목을 어지럽혔다. 왼쪽 마을의 일상적인 풍경이었다. 왼쪽 마을엔 유일하게 사람들이 많은 곳이 있는데, 그곳은 바닥에 모래가 잔뜩 깔린 작은 놀이터였다. 모래엔 사람들의 침이 뒤섞여 더러웠지만, 마을 아이들이 놀 수 있는 공간은 이 놀이터가 전부였다.

얘들아.”

   소연의 목소리가 떨려왔다. 그네에 걸터앉아 이야기를 하던 세 명의 남자아이들은 소리가 나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긴 머리가 소연의 얼굴을 가렸다. 세 명의 아이들이 소연을 말없이 바라봤다. 작게 어깨를 들썩이며, 입술을 깨물던 소연은 주먹을 쥐었다.

동생이 죽었어.”

굶어서. 소연은 뒷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지만 아이들은 전부 알아들을 수 있었다. 이곳에서 굶어서 죽는 아이들이 수두룩했다.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전부 배가고파 견디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아이들은 죽었다는 사실에 무덤덤해졌다. 소연의 동생이 죽었단 소식에, 은석과 철민은 작게 탄식했다. 보고 있던 도겸은 소연을 빤히 쳐다보았다. 동생의 죽음에 쉽게 받아드리지 못하는 소연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나 배고파.”

소연의 모습에도 도겸은 얼굴을 찡그리며 작게 중얼거렸다. 은석과 철민도 도겸의 말에 동의했다. 우리 어제부터 아무것도 못 먹었잖아. 은석의 말에 소연이 말없이 은석과 철민, 그리고 도겸을 바라보다가 이내 고개를 숙이고, 자신의 발을 쳐다보았다.

나도, , 배고파.”

소연이 중얼거리고 난 뒤, 아이들이 차례대로 한숨을 쉬었다. 이곳엔 먹을 것이 없었다. 아무리 배고프다 외친 들, 소용이 없단 걸 모두들 알고 있었다. 아이들은 놀이터에 앉아 한동안 말이 없었다.

몇 시간을 가만히 앉아 생각하던 철민이 아이들에게 말을 꺼냈다. 우리, 옆 마을로 가보자.

우린 그곳에 가면 안 되잖아. 그리고, 옆 마을도 우리랑 같은 처지일거야.”

철민의 말을 듣고 있던 은석이 체념한 듯 시큰둥하게 반응했다. 소연은 아예 입을 열지 않았다. 가만히 듣고 있던 도겸이 철민의 말에 대답했다.

건너편 마을로 가지 말라고 규칙까지 만들었으면서, 건너는 다리는 왜 만들었대?”

도겸이 고갤 갸웃거렸다. 은석이 고개를 돌려 도겸을 보며 무언가 말을 하려 입을 뗐지만, 자기도 말문이 막혔는지 입을 다시 다물었다. 도겸의 말을 듣고 나니, 소연과 철민이 이상하긴 한 것 같다고 말을 맞추었다.

난 어떻게든 다리를 건너서 옆 마을로 갈 거야.”

도겸이 말했다. 소연과 철민, 그리고 은석이 말없이 도겸을 쳐다봤다.

, 안 죽어.”

도겸의 생각은 확고했다. 도겸은 소연의 동생처럼 죽고 싶지 않았다. 매번 하루에 한 번씩 마을 사람들이 굶어서 세상을 떠나는 것을 보니, 이렇게 차가운 땅바닥에 늘어져서 죽기는 싫었던 것이었다. 소연과 철민도 도겸과 같은 생각이라며 도겸을 따르겠다 말했다. 은석은 잠시 고민하더니 도겸에게만 들리게 말했다.

혼자 남겨지는 건 싫어.”

은석의 말을 들은 도겸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들 전부 도겸의 말을 따랐고, 도겸은 해가 지기 전에 다리를 건너야한다고 말했다. 아이들은 고개를 끄덕거리며 발걸음을 빨리했다.

*

아스팔트가 깔린 도로는 자동차들이 빠르게 달리고 있었다. 거리엔 드문드문 나무도 심어져있었다. 좁은 골목길이 아닌, 넓은 도로와 고층 건물들이 줄지어 있는 것을 보고 아이들은 경악하고야 말았다. 도둑고양이가 지붕을 넘나들며 음식을 뒤적거리는 모습 따위도 없었고, 가로등이 고장 나 어둠 속에서 밤을 지새워야만 하는 일도 없어보였다. 사람들은 온통 거리를 누비며 이야기를 나누며 지나가고 있었다. 물이 제대로 나오지 않아서, 빨지도 못한 낡은 옷을 입고 있는 것이 아닌 깨끗한 옷들을 입고서 말이다.

소연과 은석, 그리고 서준과 도겸이 가장 충격을 받은 것은 사람들의 대화였다. 오늘 하루는 버틸 수 있을까? 가 아닌 오늘은 뭘 먹을까? 라는 대화가 오고간 것이었다. 소연은 아이들을 이끌고 다른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자신들과 너무 다르게 살고 있다는 생각에 머무르자, 아이들은 화가 치밀었다. 소연은 당연히 건너편 사람들도 우리의 생활과 같을 거라고 생각했다. 굶어서 죽는 일은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었다. 그것은 소연이 아닌 다른 애들도 전부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우리가 좀 더 빨리 이곳으로 왔어야 했는데. 소연이 화가 나서 중얼거렸다. 아이들은 소연의 말에 허탈하게 웃었다. 소연은 눈앞에 보이는 커다란 마트를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소연을 주시하던 아이들도 소연을 따라 마트 안으로 들어갔다.

*

혜원은 우연히 마트에서 저녁 재료를 사던 도중, 계산대에서 시끄럽게 고함을 치는 사십대 아저씨를 보았다. , 너희 어디 가! 돈 내고 가야지! 세 명의 아이들이 돈을 내지 않고 그냥 휑하니 도망 가버린 것이었다. 계산대 앞에서 과자를 들고 서 있던 도겸이 아저씨를 지나쳐 밖으로 나가려고 했지만, 아저씨의 손에 붙들리고야 말았다.

너도 쟤들이랑 같이 온 거 맞지?!”

신경질 적인 아저씨의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도겸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같이 왔다고 답했다. 그럼 네가 쟤들 대신 돈 내! 아저씨는 돈을 내고 가지 않은 아이들 때문에 화가 치밀었던 건지 도겸에게 화풀이 하듯 따졌다. 혜원은 물건을 사다가 말고 말없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았다.

돈 없는데.”

도겸이 말끝을 흐렸다. 아저씨가 미치겠단 듯 허탈한 실소를 내뱉으며 도겸을 쳐다보았다.

돈도 없는데, 음식을 마음대로 훔쳐 먹어?!”

도저히 배가 고파서 참을 수가 없었어요.”

한동안 아저씨와 도겸의 대화가 이어졌고, 돈을 낼 수 없단 도겸의 말에 아저씨가 화가 난 듯, 손을 올렸다. 도겸은 가만히 아저씨를 올려다보았다. 보다 못한 혜원이 아저씨를 불렀다. 혜원은 도겸이 자신의 사촌 동생이라며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혜원은 자신이 장 본 물건들과 도망친 아이들의 물건 값, 그리고 도겸이 손에 쉬고 있던 과자까지 전부 계산하곤 마트에서 나왔다. 도겸은 어리둥절한 눈으로 혜원을 올려다보았다. 머리색깔이 노란색이었다. 짧은 단발머리에 쌍꺼풀진 눈이었다. 위로 살짝 올라간 눈꼬리가 마치 고양이와 닮아보여서 도겸은 한동안 혜원에게 눈을 뗄 수 없었다. 혜원은 도겸을 위아래로 흘겨보았다. 도겸은 허름한 반팔 티 한 장에 얼룩덜룩한 먼지가 잔뜩 묻어있었고, 검은색 반바지를 입고 있었다. 언제 머리를 자른 건지 머리가 길어서 도겸의 눈을 찔렀다. 덥수룩한 머리와 차림새를 보아하니 이곳사람이 아니라는 것쯤은 혜원도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넌 고맙단 인사도 안하니?”

헛기침을 몇 번하며 혜원이 도겸에게 말했다. 도겸은 무슨 소리냐는 듯 혜원을 쳐다보았다.

고맙단 인사?”

그래.”

도겸이 혜원을 빤히 쳐다봤다. 혜원도 도겸을 쳐다봤다. 서로 눈이 마주쳤고, 도겸은 작게 어깨를 들썩였다.

그게 뭐에요?”

혜원은 말없이 도겸을 바라봤다. 전혀 악의가 없는 눈이었다. 혜원은 도겸의 질문에도 입을 떼지 않았다. 도겸은 자신과 너무 다르다는 걸 혜원은 느꼈다.

 

도겸의 질문을 무시하고 혜원은 다른 말로 도겸에게 말을 걸었다. 난 서혜원이야. 넌 이름이 뭐야? 도겸은 자신의 이름을 알려주었고, 혜원은 건너편에서 온 건지, 왜 이곳으로 오게 되었는지, 도망쳤던 아이들은 같이 온 거냐고 물었다. 도겸은 혜원에게 아이들 전부 죽기 싫어서 이곳으로 왔어요, 라는 말을 남긴 채 입을 꾹 다물었다. 혜원은 도겸이 아픈 상처가 있는 듯 하여, 도겸의 말을 끝으로 아무것도 물어보지 않았다. 혜원은 도겸을 강 근처로 데리고 갔다. 도겸은 말없이 혜원을 따라갔고, 어느새 둘은 강과 가까운 벤치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도겸은 말없이 건너편을 바라보았다. 안개에 가려져서 자신이 살던 곳이 보이지 않았다. 강물은 잔잔히 물결을 이루며 흘러갔고, 건너편은 여전히 고요했다. 도겸은 살던 곳을 생각했다. 자신이 살던 곳은 늘 사람이 살지 않는 것만 같았다. 늘 숨이 막혔다. 자신이 다리를 건너 이곳에 조금만 더 빨리 왔다면, 난 더 좋은 환경에 있을 수 있지 않을까? 도겸은 허탈하게 미소를 지었다.

푸르던 하늘, 따뜻한 온기라고는 없던 자신의 마을에 이런 곳을 이제야 발견하게 된 도겸은 말없이 이곳의 하늘을 바라보았다. 타오르던 해는 어느덧 사라진지 오래 되었다. 붉게 노을 진 하늘을 바라보던 도겸은 이 하늘을 계속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혜원은 가만히 건너편을 쳐다보는 도겸이 애처로워 보여 아무런 말없이 있다가, 오렌지 주스 하나를 도겸에게 건넸다. 혜원이 건넨 오렌지주스를 뚫어져라 쳐다보다가 도겸이 주스를 받았다.

누군가가 너한테 도움을 주는 걸 고맙다고 하는 거야.”

지금 나처럼. 혜원이 머쓱하게 웃으며 말했다. 도겸은 그런 혜원을 빤히 쳐다보았다. 혜원은 도겸의 생각을 읽어낼 수가 없었다. 서로 가만히 아무말 없이 바라보기만 했다.

 

혜원과 도겸 근처에서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혜원은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귀를 기울였다.

옆 마을에서 이쪽으로 넘어왔다던데요?”

맞아요, 아까 한 명 붙잡혔다 하더라고요.”

혜원은 도겸이 위험할 것 같아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도겸은 영문도 모른 채, 혜원을 따라갔다.

네 친구 한 명이 경찰한테 붙잡혔대.”

사람들이 많이 다니지 않은 한적한 거리에서 혜원이 먼저 도겸에게 말을 꺼냈다.

친구?”

도겸이 혜원을 쳐다봤다. 혜원은 그제야 알게 된 사실이었지만, 도겸은 일상적인 단어 몇 개를 모르는 것 같았다.

너랑 같이 있었던 애들 중 한 명이 경찰에 붙잡혔다고.”

혜원이 다시금 친절히 말을 전하자, 도겸은 상관없단 듯 반응했다.

괜찮아요.”

도겸의 말에 혜원은 당황했다. 건너편에서 어떻게 살아온 걸까. 죽음이란 단어가 낯설지 않단 듯, 무덤덤한 반응을 보이는 도겸의 모습이 혜원은 안쓰러웠다. 건너편에 가지 말란 규칙을 어기고 온 것 보면 분명 건너편엔 자신이 모르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고 혜원은 잠시 생각했다.

저 여기 있고 싶어요.”

혜원이 도겸의 말에 놀라서 쳐다봤다. 사실상 도겸은 규칙을 어기고 온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쌀쌀한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반팔을 입고 있는 도겸이 너무 안쓰러워서 혜원은 가만히 도겸을 쳐다봤다.

다시 돌아가기 싫어요. 도겸의 말은 혜원의 마음을 흔들었다. 혜원은 자기보다 키가 작은 도겸이 동생인 것만 같아서 결국 먼저 입을 열고 말았다. 갈 데 없으면 우리 집 갈래? 혜원의 말에 도겸은 고개를 끄덕였다.

*

혜원은 혼자 오피스텔에 살고 있었다. 삼층으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혜원의 집으로 올라가던 중, 도겸이 혜원에게 지금 자신이 타고 있는 게 뭐냐고 물었다. 혜원은 엘리베이터라는 것이라고 대답해주었다. 도겸은 자신의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신기해했다. 다섯 살짜리 아이를 데리고 있는 것 같아 혜원이 말없이 웃었다.

며칠 동안 도겸과 지내면서 혜원은 무척이나 편안하게 도겸을 대했다. 도겸을 데려왔던 첫 날, 잠자리에 들 때 도겸이 구석 바닥에 웅크리고 자는 걸 본 혜원은 도겸을 쇼파에서 재웠다. 도겸은 웅크리고 잔 게 버릇이 되어버렸다고 혜원에게 작게 털어놨다. 그 뒤로 혜원은 도겸에게 많은 걸 알려주었다. 전자레인지 사용법과 가스레인지 불을 켜는 간단한 것들, 그리고 마지막으로 끼니를 해결하고 싶을 땐 냉장고에 있는 음식을 꺼내먹으라며 도겸에게 신신당부하기도 하였다. 도겸은 그럴 때마다 혜원을 빤히 쳐다봤다. 혜원은 늘 머쓱해져 어색하게 웃어버리기만 할 뿐이었다.

오늘 아침, 혜원이 일찌감치 일어나 텔레비전을 틀었다. 아침 뉴스가 시작하려고 했다. 혜원은 크게 하품을 하며 냉장고에 물을 꺼내 마셨다. 쇼파에서 곤히 자고 있는 도겸을 바라보니 아기 같아, 혜원이 도겸에게 다가가 머리를 쓰다듬었다. 잠시 잠꼬대를 하던 도겸은 이불을 조금 더 자신 쪽으로 끌어당겼다.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 아이가, 어떻게 이곳으로 건너게 되었을까. 혜원은 고개를 저으며 마시던 물을 마셨다.

-속보입니다. 삼 일전 강을 건너, 마을로 넘어온 네 명의 아이들 중 세 명이 경찰에 검거 되었다고 합니다. 네 명 중 한 명은 아직 행방불명으로, 정확한 신원파악을 하기 위해 검거된 이들을 통해 심문을 할 예정이라고 하는데요.

혜원은 마시던 물을 먹다가 말고 흘러나오는 뉴스 앵커의 말을 듣고선 뉴스 화면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화면에선 강을 건너 이곳으로 오게 된 네 명의 아이들이 찍힌 CCTV를 보여주고 있었다. 작게였지만 도겸의 얼굴이 찍힌 CCTV가 뉴스에 퍼졌다. 혜원은 자고 있던 도겸을 쳐다보았다. 혜원은 깊게 한숨을 쉬었다. 이 아이를 어떻게 해야 할까. 며칠 뒤엔 경찰들이 자신의 집을 찾아올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혜원은 남은 물을 원 샷하며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혜원은 밥을 차려주며 도겸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너랑 다녔던 친구들이 지금 전부 붙잡혔대. 도겸은 숟가락을 들며 혜원에게로 고개를 옮겼다. 혜원과 도겸이 얼떨결에 눈이 마주쳤다. 혜원은 도겸이 크게 충격을 받을 줄 알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도겸은 괜찮다며 짤막하게 말을 하곤, 숟가락을 들어 국을 떠먹었다. 괜찮다고? 혜원은 도겸을 이상하게 생각했다. 생각해보니 저번에도 괜찮다고 말했던 것 같다. 자신과 같이 다녔던 아이인데 어떻게 이렇게 무심할 수가 있는걸까? 혜원은 당장이라도 도겸의 머릿속에 들어가 보고 싶었다. 혜원은 도겸이 밥을 먹는 얼굴을 빤히 바라보다가 자신도 숟가락을 들어 밥을 먹기 시작했다.

혜원은 처음 만난 날부터 도겸과의 기억을 기억해내었다. 도겸은 처음 고맙단 말도, 붙잡혔단 소식에도 모두 무덤덤했었다. 아무래도 감정이란 걸 제대로 알지 못하는 듯 했다. 혜원은 도겸에게 감정을 알려주는 것이 우선일 것 같다고 결정했다.

 

도겸은 혜원이 왜 이러는 지 전혀 알지 못했다. 도겸이 화장실로 들어가려고 하는데, 혜원이 후다닥 달려와서는 도겸 앞을 가로 막았다.

못 들어가!”

그 덕분에 도겸은 당황한 듯 눈을 굴리다가 혜원에게 다급하게 말했다.

비켜줘요.”

꽤나 급한 얼굴로 말하던 도겸의 얼굴을 본 혜원은 말없이 비켜주었다. 혜원은 도겸이 화장실로 들어간 뒤로 작게 한숨을 쉬며 중얼거렸다. , 실패했어. 도겸의 표정에 오히려 혜원이 휘말렸던 것이다. 혜원은 자신의 머리를 부여잡았다.

도겸이 화장실에서 나오고 혜원은 도겸에게 따뜻한 차를 내어주었다. 도겸이 온 후로 늘 혜원은 자신이 즐겨먹던 허브티를 도겸과 함께 마셨다.

그런데 아깐 왜 그런 행동을 한 거예요?”

혜원은 도겸에게 장난 좀 쳐봤어, 라고 말하며 허브티를 홀짝였다. 도겸도 그런 혜원을 따라 허브티를 홀짝거렸다. 혜원은 자신을 따라하는 도겸이 왜인지 모르게 얄미워 대뜸 소리를 질렀다.

너 정말!”

도겸이 혜원을 응시했다. 혜원은 도겸의 눈과 마주치자 질 수 없단 표정으로 도겸에게 소리를 질렀다.

나 따라 하지 마!”

도겸이 어리둥절한 눈으로 혜원을 쳐다보았다. 혜원은 재빠르게 눈을 다른 곳으로 돌려 도겸을 바라보지 않았다. 도겸이 혜원을 빤히 바라보다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혜원은 도겸의 웃는 소리에 도겸을 바라보았다. 도겸이 웃는 모습은 오늘 처음 보았던 혜원은 한동안 가만히 보고 있다가, 도겸에게 그렇게 웃고 다니라고 잔소리를 하였다.

 

잠을 자려고 방에서 이불을 들고 오던 도겸은 혜원이 내미는 아이스크림에 이불을 내려두고 아이스크림을 건네받았다.

아이스크림이라고 하는 거야. 완전 맛있어, 먹어봐.”

도겸은 혜원의 말에 아이스크림을 한입 베어 물었다. 차가운 바닐라 아이스크림의 향이 도겸의 입맛을 북돋았다. 도겸은 마음에 들었는지 한 입 더 먹어보곤 혜원에게 맛있다며 활짝 웃어보였다. 혜원은 웃는 도겸의 모습을 보고 작게 말했다.

지금 네가 느끼고 있는 기분이 기쁘단 거야, 도겸아. 웃는 것도 예쁘면서 그 동안 표정관리는 어떻게 했대?”

혜원이 장난스럽게 말을 하며 도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키가 작았던 도겸은 혜원에게 졸지에 머리를 주고 있는 꼴이 되고야 말았다. 혜원은 잠깐 입가에 웃음을 머금으며 말했다. 그거 다 먹고, 양치하고 자. 도겸은 혜원의 말에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도겸은 양치를 할 때도 혜원이 머리를 쓰다듬었던 것이 생생하게 기억에 남았다. 이건 뭐지? 도겸이 무슨 감정인지 혼란스러워했다. 이건, 기쁜 건가? 도겸은 쇼파에 누워 이불을 덮을 때까지 온통 혜원의 생각으로 가득 찼다.

도겸이 잠을 자려고 눈을 감을 때였다. 혜원이 자신의 방에서 나와 도겸을 작게 불렀다. ? 혜원에 말에 도겸이 아뇨, 라며 짤막하게 대답했더니, 혜원이 도겸의 곁으로 쪼르르 달려와 이불을 들고, 도겸 바로 밑 바닥에 이부자리를 깔고 누웠다. 혜원의 돌발행동에 도겸은 눈만 두어번 깜빡였다.

너랑 이야기 하려고 이쪽으로 왔어.”

도겸은 혜원의 말에 고개를 끄덕거렸다.

넌 왜 이곳에 오게 된 거야?”

서로 누워서 나지막한 대화가 오고갔다. 하지만 혜원의 말에 도겸이 한참동안 말이 없었다. 혜원은 상황을 얼버무리려 다른 말로 넘기려고 했지만, 그 순간 도겸이 말문을 열었다.

제가 살았던 동네는 먹을 것이 없어서 사람들이 모조리 굶어죽는 일이 대다수였어요.”

혜원은 도겸의 말에 경악했다. 감았던 눈을 뜨고 누워있는 도겸을 힐끗 쳐다보았다. 도겸은 아직도 무덤덤했다.

이웃 사람들이 배가 고프다며 고함을 쳤지만, 저는 아무런 것도 할 수가 없었어요. 왜냐하면 저도 배가 고팠거든요. 그 사람들에게 작은 음식을 주면 저는 그날 한 끼도 먹을 수 없었어요. 그게 일상이었죠.”

천천히 말을 이어나가는 도겸의 말이 조금씩 떨려왔다. 미세하지만 혜원은 도겸이 지금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차가운 땅바닥에 사람들이 죽어가는 걸 보면서 느꼈어요. 난 저렇게 죽고 싶지 않다고.”

도겸이 손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마음 고생이 심했던 것 같았다. 혜원은 어린 아이 같았는데, 저런 모습을 보니 오히려 안쓰럽고 마음이 아팠다. 죽음이란 걸 코앞에서 느낀단 건 아마 상상도 못할 만큼 큰 충격이 아니었을까 하고 혜원은 생각했다. 죽고 싶지 않았단 도겸의 말에 혜원은 도겸의 손을 잡았다. 도겸은 혜원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혜원도 도겸을 느리게 응시했다. 울어도 돼, 도겸아. 혜원이 도겸에게 웃으며 말했다. 도겸은 혜원의 말에 행동으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을 느꼈다.

손이 따뜻해요.”

그래?”

혜원이 작게 웃음을 터트리며 도겸을 바라보았다.

제 마음도 따뜻해졌어요. 가슴 속에서 꽃이 피는 것만 같은 기분이에요. 이상해요. 처음 느껴보는 기분이에요.”

도겸이 혜원의 손을 자신의 가슴 쪽으로 가져다놓았다. 혜원은 가만히 도겸의 심장소리를 느끼다가 나지막히 말을 이었다.

잠 오는 거 아니고?”

아니에요.”

나 좋아하는 건가 보다.”

혜원에 말에 도겸이 혜원에게로 아예 몸을 틀어버렸다. 혜원은 갑작스러운 도겸의 행동에 옴짝달싹하지 못하게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게 되는 상황이 연출이 되어버리고야 말았다. 혜원은 어색하게 웃으며, 말이 그렇다는 거지하며 도겸을 진정시켰다.

좋아한다는 건 어떤 거예요?”

그 사람을 바라만 봐도 심장이 뛰고, 다칠까봐 겁나고, 말만 나눠도 입가에 웃음이 번지게 되는 게 그 사람을 좋아하는 게 아닐까?”

도겸은 혜원에게 좋아한단 걸 물어보곤, 다시 자리를 잡아 이불을 끌어당겼다. 혜원은 도겸에게 잘 자라고 말했고, 도겸도 잘 자란 말을 남김과 동시에 잠에 빠졌다.

*

아침부터 혜원은 숨을 죽여야만했다. 갑작스럽게 혜원의 집에 경찰이 문을 두드렸다. 혜원은 집에 아무도 없는 척,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았고 경찰은 다시 가버렸는지 바깥이 고요해졌다. 문 두드리는 소리에 도겸이 깨어버렸는지, 길게 하품을 했다. 혜원은 다급하게 도겸에게 말했다. 경찰이 방금 왔다갔어. 너 붙잡힐 지도 몰라. 도겸은 혜원과 눈을 마주쳤다. 혜원은 도겸이 붙들려 갈까봐 노심초사인데, 도겸은 모든 게 괜찮단 듯 차분하게 행동을 했다. 혜원은 이상하게도 이런 도겸의 모습에 짜증이 났다.

도겸은 양치를 하면서 곰곰이 생각에 빠졌다. 자신이 붙잡히면, 다시 혜원을 볼 수 없는 것인가? 도겸은 그건 싫다고 생각했다.

경찰은 오후에도 또다시 혜원의 집에 찾아왔다. 도겸과 혜원은 숨죽이고 서로 경찰이 갈때까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도겸은 조용히 혜원에게 물었다.

왜 피하는 거예요?”

, 경찰한테 붙잡히고 싶어?”

혜원은 작은 목소리로 도겸에게 쏘아붙이며 말했다. 도겸은 싫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경찰한테 가면 나 혜원씨 못 보는 거예요?”

혜원이 도겸의 말에 뜸을 들였다. , 맞아. 곧이어 혜원의 입에서 맞단 소리가 나왔고 도겸은 주눅이 들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경찰은 혜원의 집에 수시로 찾아왔다. 점심을 먹을 때에도 찾아왔었다. 혜원은 음식을 만들다 말고, 하던 일을 멈추어야했다. 경찰이 혜원의 집으로 올 때마다 혜원은 두려움에 떨었다. 도겸은 그것을 알고 있었다. 혜원의 행동을 늘 주시해서 보았던 도겸은 그런 혜원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혜원은 도겸에게 늘 친절했고, 다정했고, 웃어주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무언가가 힘들단 표정을 얼굴에 드러내고 있었다.

*

도겸아, 이제 내가 더 이상 숨겨줄 수 없을 것 같아. 경찰들이 전부 우리 집에 네가 있단 걸 눈치 챈 것 같다. 혜원이 도겸에게 미안하단 듯 고개를 숙였다. 혜원이 저녁을 차리던 도중 베란다로 갔더니, 전부 자신의 오피스텔에 경찰들이 모여 있었다. 경찰이 모든 걸 알아버린 것이었다. 혜원은 작게 어깨를 들썩이며 흐느꼈다.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 , 도와주고 싶었는데. 혜원의 말은 진심이었다. 도겸은 혜원의 우는 모습을 보고 자신의 가슴이 먹먹해지는 것을 느꼈다. 느껴본 적 없는 감정인데 심장이 요동쳤다.

그 사람을 바라만 봐도 심장이 뛰고, 다칠까봐 겁나고, 말만 나눠도 입가에 웃음이 번지게 되는 게 그 사람을 좋아하는 게 아닐까?’

어젯밤, 혜원이 도겸에게 해준 말이었다. 도겸은 혜원을 빤히 응시하다가 손을 올려, 혜원의 머리를 정리해주었다. 도겸이 머리를 정리해줌과 동시에 혜원의 집에서 경찰들이 문을 열라며 소리쳤다. 혜원은 울음을 멈추고 도겸을 바라보았다. 도겸의 손이 혜원의 얼굴로 느리게 다가갔다. 눈물을 닦아주던 도겸이 잠깐 하던 행동을 멈추고, 혜원을 쳐다봤다. 작은 입술로 미안하다했던 혜원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게 아른거렸지만 도겸은 활짝 웃어보였다.

괜찮아요.”

혜원은 도겸에게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여태껏 괜찮다고 말했던 상황들과 너무 달라서, 웃으며 말하던 도겸의 눈이 휘었다. 경찰이 혜원의 현관문을 열어버렸다. 덕분에 가까웠던 거리가 경찰에 의해 모든 상황이 저지 되었다. 경찰은 도겸이 아무런 짓도 할 수 없게 손을 속박하였다. 도겸은 그래도 혜원을 보며 환하게 웃고 있었다. 혜원은 멍하게 도겸을 쳐다봤다. 경찰은 혜원을 거들어보지도 않고 도겸을 끌고 나가버렸다.

혜원은 경찰들이 나간 뒤,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입을 틀어막고 엉엉 울어버렸다. 도겸은 경찰에게 붙잡혀 나가면서도 혜원을 계속해서 바라보다가 마지막에 작게 읊조렸단 것을 혜원은 알고 있었다.

-좋아해요.

아직 도겸에게 아무런 것도 해준 것이 없는데, 아픈 기억을 가지고 있는 아이였다. 혜원은 도겸의 손을 만졌던 자신의 손을 한참동안 바라보았다. 베란다 밖으로 보이는 강은, 여전히 고요했다.

도겸은 이별에 성숙했고, 혜원은 이별에 성숙하지 못했다. 혜원은 같이 지내면서 도겸의 나이도 모르고 지냈다. 어쩌면 도겸은 혜원보다 모든 것에 성숙해 있었을지도 모른다. 이별도, 죽음도, 슬픔도 말이다. 좋아한단 말 하나로 사람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던 도겸을, 혜원은 잊지 못할 것이라고. 새로운 기억들을 남겨준 도겸의 눈빛을, 좋아한다며 이별을 하는 순간에도 미소를 잃지 않았던 도겸을, 혜원은 말없이 쇼파에 앉았다. 도겸의 체취가 맴돌았다. 혜원은 도겸의 냄새에 작게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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