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by 낙엽의비 posted Aug 02,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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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늘 - 박주원

 

 눈에 보이는 ‘31456’ 그것이 내가 매일 바라보는 그런 숫자였다. 매일 나에게 알 수 없는 웃음을 지으며 다가오는 아저씨가 내게 온다. 늘 어색한 웃음을 진심으로 느끼게끔 하는 재주를 가진 그 아저씨가 나에게 손을 내밀며 말을 건다.

 “안녕?”

 아저씨의 조금 누런 이빨이 보인다. 미소와 함께 살기가 느껴지는 그 사람의 표정이 나는 가끔, 아니 매우 자주, 난 너무너무 무섭다. 나는 입을 쉽게 열지 못한다. 말을 하고 싶어도 입이 조금 벌어져도 내 뜻대로 말을 할 수가 없다. 아저씨는 아주 하얗고도 검은 양손으로 내 입을 억지로 벌린다. 나는 별다른 저항도 없이 입을 벌린다.

 “얘는 안 되겠어. 이가 썩어버렸잖아. 아무리 병신이라도 이는 관리할 수 있는 부분이잖아? 오늘부터 지하방에 숨겨두고 네가 하루에 세 번씩 이를 닦여줘.”

 “네. 알겠습니다.”

 아저씨의 큰 덩치에 가려 뒤에 누군가 있다는 걸 모르고 있었다. 뒤에는 아주 의기소침하고 마른 몸에다 어두운 표정의 젊은 형이 작고 가는 목소리로 아저씨의 모든 말에 복종하듯이 대답하고 있었다. 덩치 큰 아저씨가 뒷짐을 지며 방을 나서자 그 형은 곧 구겨지고 노랗게 변한 요에 눕혀져 있는 나를 들고서 좁은 방을 빠져나가 거실이 보이는 짧은 통로를 지나가 붉은 조명이 빛나는 지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지하로 내려가 나무로 만들어진 아주 낡은 문을 열자 벽에 곰팡이가 가득했고, 조명과 바닥에도 먼지가 쌓인 아주 넓은 지하방이 나왔다. 오른쪽 구석에는 아주 검게 변한 철로 된 문이 하나 있었으며 나처럼 머리가 짧게 잘린 여자아이가 바닥에 깔린 상자 위에서 벌벌 떨면서 누워 있었다. 제대로 몸을 가눌 수조차 없는 나를 젊은 형은 상자 위에다 던져두고서 마치 빨리 잊고 싶은 일이 있는 것처럼 뒤돌아선 채로 다시 위로 올라갔다.

 난 내 눈앞에 있는 여자아이를 바라봤다. 숫자는 ‘31444’ 나와 비슷한 숫자다. 왠지 모를 반가움에 미소가 지어졌다. 난 최대한 웃으며 인사를 하고 싶어서 안면근육을 움직이려고 애를 썼지만, 얼굴이 일그러져 꽤 이상해 보이게 되었다. 그 아이는 그런 창피한 나의 모습을 봐 버렸는지 눈을 감아버렸다. 난 팔에 최대한 힘을 주고서 그 아이의 손을 만지려고 했는데 몸이 굳어져서 아주 조금 밖에 움직이질 못했다.

 

 처음부터 내가 이랬던 건 아니었다. 숟가락으로 밥을 먹은 적도 있었다. 그땐 내 옆엔 엄마가 있었고, 음식을 항상 떨어뜨리는 내게 매일 숟가락질을 하는 걸 가르쳐 줬었다. 그리고 몸이 조금 불편하기는 했지만, 천천히 걸어 다니는 것까지는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잠이 들었고, 눈을 떠보니 그 아저씨가 내 눈앞에 있었다. 난 애타게 엄마를 찾으려 일어나려고 발버둥 쳤지만 아저씨는 내 몸을 누르며 움직이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내게 겁을 주었다.

 그러나 처음으로 본 그 아저씨의 모습은 그렇게 무섭지 않았다. 순박해 보이는 얼굴에 말투는 상냥했다. 난 그저 다시 누운 채로 상냥한 아저씨의 말을 그대로 따랐다. 그리고 그곳에 가만히 누워 있으면 하루에 두 번씩 청 조끼를 입은 아줌마들이 와서 나에게 친절하게 밥을 떠먹여 주었다. 나는 매일 밥을 먹는 것도 힘들었던 내 일상에 찾아온 이곳에서의 생활이 싫지만은 않았다. 오히려 편안하고 좋았다. 가만히 있어도 내 하루의 일상은 평온했다.  

 그런데 2주일 정도가 지나자 내 몸은 마치 돌처럼 굳어져 마음대로 움직이기가 전보다 더 불편해졌다. 손가락을 쭉 펴는 것도 힘들었고, 일어나는 건 꿈도 못 꿀 지경에 이르렀다. 그때 바로 옆에 그 아저씨가 있었다. 그 특유의 잔인한 미소를 지으며 내게 속삭였다.

 “움직이기 힘들지? 괜찮아. 아저씨가 다 알아서 해줄게.”

 아저씨는 그렇게 얘기하고는 한 손에는 쇠 파이프를 들고 있었다. 그리고 난 곧 그것이 어떻게 쓰이는지 알게 되었다. 아저씨가 내 방을 나선 후에 무언가를 세게 치는 소리가 닫혀 있는 창밖을 통해 들어왔고, 아저씨가 누군가를 향해 크게 고함을 지르고 있었다.

 “감히 도망을 가?!”

 그리고 누군가의 울부짖는 소리가 들렸는데 마치 산 짐승 우는 소리 같았다. 난 아저씨의 그런 모습을 보고는 어쩌면 그 아저씨는 신 같은 존재가 아닐까? 그런 생각을 했다. 아저씨는 하늘에서 명을 받아서 죄를 지은 사람들을 벌을 주러 온 사람이고 이곳에서 사는 사람들은 모두 죄를 지어서 이곳에 온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렇다면 내가 할 일은 단 하나뿐이다. 그 무서운 아저씨의 말을 잘 따라서 그 아저씨가 내가 모르는 나의 죄를 용해서 주기를 기도하고 매일 나의 죄에 대해서 반성하는 것이다.

 

 

 갑자기 천장에 형광등이 꺼지고 맨 위에 있는 아주 작게 열린 창문 사이로 거센 바람이 들어왔고, 곧 거센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그 비는 창문 사이를 넘어 여자아이와 내가 있는 곳까지 닿았다. 그리고 바닥에 고이기 시작한 물은 내 옆에 있는 여자아이에게 다가가기 시작했다. 난 천둥이 칠 때의 그 빛에 의지해 그 아이를 보며, 온몸에 힘을 주어서 천천히 그 아이에게 다가갔다. 굳은 팔에 힘을 최대한 주어서 그 아이의 어깨를 향에 폈고, 그래도 그 아이 몸에 닿지 못해 이를 꽉 깨물고서 몸을 좀 더 가까이 그 아이 쪽을 향해 갔다. 마침내 내 얇은 팔과 손이 그 아이의 몸에 닿았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천둥이 쳤다. 여자아이는 그 소리에 눈을 떴고, 가까이 다가온 나와 눈이 마주쳤다. 난 아까처럼 실수하고 싶지는 않아서 최대한 괜찮은 표정으로 그 아이에게 웃음 지어보려고 했다.

 “흐…….하”

 “오…….”

 여자아이도 내게 무슨 말을 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어쨌든 난 그 아이를 내 쪽으로 밀어서 몸을 밀착시키는 것에 성공했고, 그 아이는 고인 빗물에서 멀어졌다. 그리고 난 그 아이를 안고서 다시 내가 있던 곳으로 돌아왔다. 내 이마는 땀으로 잔뜩 젖어버렸다. 그리고 내가 가지고 있던 작은 담요를 그 아이의 몸에 씌어주었다. 난 왠지 기쁜 마음에 웃음을 지었다. 그 아이는 내가 왜 웃는지 아는지 모르는지 다시 눈을 감아버렸다. 아무래도 상관없다. 오늘 그 아이는 몸이 젖지 않은 채로 편하고, 따뜻하게 잠을 잘 수가 있다.

 

 다음날 어제 본 젊은 형이 물을 담은 세숫대야와 칫솔을 가져와 내 이를 닦아주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이를 닦았는데 이가 되게 시렸다. 앞니 하나와 어금니가 특히 시렸다. 그리고 중간에 비어 있는 이 때문에 잇몸도 아팠다. 이를 닦을 때 나오는 거품에는 하늘색의 치약과 빨간 피가 섞여서 나왔고 입안에서는 심한 비린내가 났다. 젊은 형은 계속 내 눈빛을 피하면서 칫솔질을 하다가 내 입을 대충 헹구고 나서 다시 위층에 올라갔다. 위층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처음 내가 눈을 뜬 곳은 작은 접이식 식탁과 큰 TV가 있는 곳이었다. 옆방에 있던 형이 매일 TV를 보러 내 방에 찾아오곤 했었다. 그 형은 말을 할 때 조금 더듬는 것 빼고는 몸이 그렇게 불편해 보이지 않아 보였다. 그리고 늘 몸에 작은 수첩 하나를 들고 다녔는데 매일 밤이 되면 수첩에 있는 작은 달력의 날짜를 하나씩 지우며 즐거워하곤 했다.

 “이걸 다 지우면 엄마가 날 찾으러 온댔어.”

 늘 내게 이건 비밀이라며 일주일에 두세 번씩 내 귀에 속삭이곤 했다. 그리고 내 방에 자주 찾아오는 손님으로는 늘 말 한마디 없이 멍하니 TV만 보던 할아버지 한 명도 있었다. 그 할아버지는 매일 굽어진 허리를 이끌고서 밖에 나가서 담배를 피우곤 했었는데 그 모습을 무서운 아저씨가 볼 때면 할아버지의 마른 얼굴을 때리곤 했었다. 그것이 그 방에서 일어나던 일상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무서운 아저씨가 날 일으켜 세우더니 그 방에서 나와 거실과 부엌 사이에 아주 좁은 통로를 지나고 나서 나오는 방으로 날 옮겨 놓았다. 그곳엔 이가 다 썩어서 음식도 제대로 못 먹고 말도 제대로 못 하는 할머니와 나보다 작은 체구에 일어서지 못하고 온종일 누워있는 아주 깡마른 어린 남자아이가 있었다. 내가 처음 왔을 때 할머니는 내가 반가웠는지 머리를 쓰다듬었었다. 남자아이는 멍한 눈빛으로 말없이 벽만 바라보고 있었다.   

 전에 TV가 있던 방과는 달리 새로 온 방에는 아무런 전자기기가 없어서 할머니의 말을 오랫동안 들어주는 일이 내 하루의 일과였다. 사실 무슨 말인지 잘 몰랐다. 그저 고개만 살짝 끄덕여주면 할머니는 매우 기분이 좋아져서 손뼉을 치며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내가 그 방으로 간 지 일주일 정도 되었을 때, 마른 아이는 누군지도 모르는 아저씨의 손에 이끌려 어딘가로 사라져 버렸다. 그렇게 그 작은 방안에는 할머니와 나밖에 남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무서운 아저씨가 우리 방에 바퀴가 달린 침대 두 개를 가져왔다. 같이 온 두 명의 남자는 나와 할머니를 각각 목욕탕으로 데리고 가서 온몸을 벗긴 후에 몸을 씻기기 시작했다. 부드럽고 좋은 향기의 비누 냄새가 나서 난 기분이 좋았는데 온몸에 주름투성이인 할머니의 표정은 매우 어두워 보였다. 다 씻은 우리는 새하얀 잠옷 같은 부드러운 환자복과 고무줄이 달린 긴 바지를 입고서 새로 온 침대에 눕혀졌다. 그리고 며칠 후 커다란 카메라를 들고 있는 아저씨와 무서운 아저씨가 우리 방으로 들어왔다. 무서운 아저씨 옆에는 젊은 여자 한 명이 서서 무서운 아저씨를 바라보고 있었고, 아저씨는 내 다리와 손을 주무르기 시작했다. 난 아저씨가 너무 힘을 줘서 아파서 신음을 냈다.

 “악! 으악!”

 “괜찮은 건가요?”

 젊은 여자가 아저씨에게 말을 건넸다.

 “아픈 건 알지만 이래야 낳을 수 있어요.”

 카메라는 그런 내 모습을 그대로 찍고 있었다. 무서운 아저씨는 갑자기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고, 젊은 여자는 당황해서 아저씨를 달래기 시작했다.

 “볼 때마다 마음이 너무 아프네요.”

 “아……. 그러셨구나.”

 “누구도 이 마음 몰라요. 자식 같은 아이가 아픈 이 기분이요.”

 “아…….아니에요! 사람들이 많이 도와줄 거예요.”

 “그럴까요? 다 필요 없고 하루에 맛있는 거 한 번만 먹일 수 있으면 참 좋겠어요.”

 무서운 아저씨의 눈물은 그칠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리고 카메라는 그런 아저씨의 모습을 아주 선명하게 담고 있었다. 그 일이 있고 난 지 몇 달 후에 내가 살던 곳 근처에는 건물을 짓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커다란 굴착기 소리가 내 단잠을 몇 번이고 깨울 정도로 방 근처는 시끄러워졌다. 할머니는 며칠 전부터 말이 없어졌다. 계속 내가 누워있는 침대 쪽에서 고개를 돌린 채 밥도 먹지 않고, 움직이지도 않았다. 난 할머니가 무서운 아저씨, 그러니까 신의 말을 제대로 듣지 않아서 벌을 받는 중이라고 생각했다. 할머니는 카메라가 자신을 향했을 때 아저씨에게 침을 뱉고서 크게 소리를 질러댔다.

 “나쁜 새끼!”

 그 일이 있고 나서 할머니는 매일 밤 어디론가 끌려가곤 했었다. 그곳은 아마도 신이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 죄인들에게 벌을 주는 곳이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렇게 말이 많던 할머니가 저렇게 풀이 죽을 이유가 없다. 그리고 오늘 할머니는 더 심한 벌을 받으러 가는지 창백한 얼굴에 눈을 뜬 채로 무서운 아저씨 손에 이끌려 그 방에서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난 그날 이후로 아무것도 잘못하지 않으려고 계속 마음속으로 기도했다.

 

 침대가 있던 방에는 내가 모르는 아줌마들이 가끔 나를 찾아오곤 했었는데 대부분 내가 볼일을 본 기저귀를 갈아주거나 몸을 씻겨주는 일을 하곤 했다. 난 사람의 얼굴은 잘 기억하는 편이었는데 그런 일을 하러 오는 아줌마는 4명이었다. 한 명은 눈이 아주 작고 눈 근처에 주름이 많았으며 눈 밑에 그림자가 아주 깊은, 한마디로 괴팍하게 생긴 아줌마였는데 그 아줌마는 자주 내 머리를 치거나 내 손등을 꼬집곤 했다. 그 아줌마는 내가 전에 살던 방에서도 툭하면 몸이 불편한 사람들을 때리곤 했는데 우리가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며 아주 행복해 보이는 미소를 짓곤 했었다. 그러다 보니 상대적으로 친절한 아줌마 3명이 올 때면 아무런 긴장감도 느끼지 않았지만, 그 아줌마가 그 방문을 열고 들어올 때면 난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할머니가 사라지고 나서 내 옆자리에는 나와 비슷한 또래의 남자아이가 들어왔다. 그 남자아이도 나처럼 거동이 불편한지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는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했다. 그리고 입을 벌리는 일은 한 번도 보지 못했다. 게다가 난 그 남자아이를 겨우 2일밖에 보지 못했다. 왜냐하면, 바로 그 무서운 아줌마가 온 날에 그 아이는 그만 침대에다가 실례를 해버렸기 때문이었다. 애초에 그 아이에게 기저귀를 채워주지 않은 것이 실수였겠지만 말이다. 그 아이는 실례를 하기 전까지 소변을 참느라 꽤 심하게 고통스러운 목소리를 냈지만 그 아이를 도와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어쨌든 결과적으로 침대는 소변으로 젖어버렸고, 곧 방에 들어온 아줌마는 그 광경을 보고 말았다. 아주 참기 어려운 표정으로 그것을 바라볼 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아줌마는 웃음을 지었다.

 “침대에다 오줌을 쌌네? 가만두면 안 되겠다.”

 “아! 죄송……. 죄송해요!”

 “시끄러워!”

 처음으로 듣는 그 아이의 육성이었다. 아줌마는 무서운 기세로 그 아이의 얼굴을 구석에 있는 빗자루로 사정없이 때리고 나서 딱딱한 부분으로 그 아이의 성기가 있는 부분을 찌르기 시작했다.

 “아! 아! 으아악!”

 아이는 괴성을 지르기 시작했지만, 그 소리는 아줌마를 신나게 할 뿐이었다. 아줌마는 아이가 조용해지자 마른 수건을 가지고 와서 침대 주변을 닦기 시작했고, 그 수건을 억지로 그 아이의 입에다가 쑤셔 넣었다. 난 그 처참한 광경을 바라보고 있을 수밖에는 없었다.

 ‘저 아이도 무서운 아저씨의 말을 듣지 않아서 그런 걸 거야.’

 그저 그렇게 내 마음속으로 소리칠 뿐이었다. 그날 저녁 그 아이는 계속 신음을 내며 괴로워했다. 난 그 아이가 거의 기절과 가깝게 잠이 들고 나서야 잠을 청할 수 있었다.

 

 지금 이 지하실에 있을 시간은 그리 길지 않을 거라 무서운 아저씨가 얘기했었다. 난 그 말의 의미는 아마도 내가 지금까지 말을 잘 들었기에 머지않아 빛이 들어오는 세상에 갈 수 있다는 말로 들렸다. 옆에 여자아이는 작게 새어들어오는 햇살을 받으며 쌔근쌔근 자고 있었다. 난 그 아이와 함께 위로 올라갈 수 있으면 좋겠단 생각을 했다. 그 아이의 여자치곤 조금 짧은 머리와 조그만 눈, 코, 입이 참 귀여워 보였다. 여자아이는 내 시선을 눈치챘는지 곧 눈을 뜨고 나를 바라보았다. 난 내 웃는 모습을 그 아이가 좋아하지 않을 거로 생각해 터져 나올 것 같은 웃음을 억지로 참았다. 그런데 날 바라보던 여자아이가 갑자기 입을 다문 채로 수줍게 웃어 보였다. 그 아이는 불편한 손을 움직이며 내게 인사를 건네려는 것 같았다. 난 턱을 위아래로 조금 흔들며 그 아이의 인사에 응답했다. 아이는 그런 나를 계속 쳐다보며 웃고 있었다.

 난 그 여자아이의 미소를 바라보며 언젠가 휠체어를 타고 밖에 나가서 본 노란 꽃과 나비가 있는 공원을 갔었던 기억이 새록새록 피어올랐다. 나를 데리고 갔던 사람은 얼굴이 되게 예쁜 젊은 누나였다. 그 누나는 어느 날 갑자기 침대에 누워있는 나를 찾아와서 아주 친절하게 나를 돌봐주었었다. 하지만 무서운 아저씨는 그 누나가 맘에 들지 않는 것 같았다. 언젠가 한 아줌마와 소곤소곤하는 소리를 들었었는데 귀를 제대로 기울여보니 그 누나에 대한 얘기였다.

 “쓸데없이 정의감 넘치는 년이야. 사람을 잘 못 구한 것 같아.”

 “그러게요. 조만간에 내보내야 할 것 같아요.”

 “봉사할 사람 수가 초과 되었다고 하세요. 괜히 귀찮아질 것 같아.”

 “네.”

 바로 그 대화가 오고 간 후, 다음 날 그 누나는 슬픈 표정으로 휠체어를 들고 와 나를 아주 가까이에 있는 공원에 데리고 와준 것이었다. 누나는 작은 꽃을 꺾어 푸른 줄기와 꽃반지를 만들어서 내 손가락에 끼워 주었다.

 “잘 어울려.”

 누나의 아름다운 미소엔 슬픔이 가득했다. 그리고 누나는 내 앞에서 쭈그려 앉더니 나와 눈을 마주치며 입을 열었다.

 “미안해. 누나가 정말 대단한 사람이라면 매일 너를 돌봐줄 수 있을 텐데.”

 ‘응?’

 누나는 내 볼과 짧은 머리를 쓰다듬으며 그렇게 얘기했다. 누나의 눈가에 맺혀 있던 눈물이 이내 터져 푸른 공원의 잔디를 적셨다. 난 누나가 왜 슬퍼하는지 몰랐다. 난 그저 ‘울지 마요 누나’라고 얘기하고 싶었지만 내 입은 뒤틀려져 제대로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낡은 휠체어 바퀴가 바닥에 긁히는 소리를 내며 굴러가고 있을 때 누나는 내 시선에서 점점 멀어져가고 있었고, 나는 무서운 아줌마 손에 이끌려 다시 좁은 방으로 돌아가야 했다. 그리고 그날 이후로 누나를 볼 수 없었다. 난 한 달 정도가 지나 꽃반지가 새까맣게 변한 이후에도 그 누나가 언젠가 다시 내게 돌아와 같이 공원을 돌아다닐 날을 꿈꾸곤 했다. 왜냐하면, 그날에 느낀 행복은 내 삶 속에 존재하는 얼마 되지 않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누나가 떠나고 한 달이 지났을 때, 나는 원래 누워 있었던 침대에서 오줌을 쌌던 아이가 누워 있던 침대로 옮겨졌다. 그 아이는 2주일 전에 갑자기 사라졌다. 아침에 눈을 떠보니 그 아이는 어디론가 사라졌고, 그와 함께 매트리스도 사라졌었다. 그리고 내가 있던 자리에는 나처럼 몸이 굳어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는 아저씨가 왔다. 그리고 그 아저씨가 들어온 바로 그 날, 무서운 아저씨는 한참이나 몸이 불편해서 멍하니 천장만 쳐다보고 있는 아저씨를 뭔가 골똘히 생각하며 바라보고 있었고, 목에는 카메라를 메고 있었다.

 “흠.”

 무서운 아저씨는 꽤 오랜 시간 동안 생각을 하고 난 후에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리고 천천히 나에게 다가와 허리까지만 덮고 있던 이불로 내 얼굴을 가렸다. 곧 내 앞은 분홍색의 이불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곧 아저씨의 침대로 향하는 무서운 아저씨의 발소리가 아주 조용하고 희미하게 들렸고, 곧 무언가로 살을 때리는 소리가 크게 들리기 시작했다. 난 침을 꿀꺽 삼키며 내 청각에 모든 주의를 기울였다. 몸이 불편한 아저씨는 아주 크게는 소리를 지르지 않고, 아주 조그만 소리의 숨소리로 자신이 고통받고 있음을 누군가에게 알려주고 싶어 하는 것 같았지만 그럴수록 때리는 소리는 점점 커지기만 했다. 난 어떻게 해서라도 그 아저씨를 도와주고 싶단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굳은 팔로 이불을 조금씩 내리기 시작했고, 곧 이불이 치워져 내 눈의 시야를 밝혀주었을 때 무서운 아저씨는 멍과 피로 물든 아저씨의 등에다가 새빨간 데다가 갈색빛까지 맴도는 괴상한 액체를 바르기 시작했다. 아저씨는 몸에 경련이 나는 듯 굳은 몸을 미세하게 떨고 있었다.

 “파.”

 아저씨는 그 조그만 숨소리로나마 자신의 고통을 표현했다.

 “조금만 참아! 예술을 만드는 데에는 고통이 필요한 거야! 이런 예술은 세상 어디에도 없을 테니까!”

 그리고 무서운 아저씨는 일그러진 표정을 짓는 아저씨의 얼굴, 영혼과 뼈가 모두 온전치 못한 아저씨의 온몸을 찍기 시작했다. 셔터 소리가 나는 순간에 무서운 아저씨는 계속 감탄하는 목소리를 내며 수십 장의 사진을 찍어댔다.

 

 바로 그날 밤에 아저씨는 갑자기 크게 숨을 쉬기 시작했다. 난 그 아저씨가 점점 벽에 붙어 위치한 침대에서 벽이 있는 쪽으로 움직이고 있는 걸 바라보고 있었다. 그 아저씨의 얼굴은 내 쪽을 향해 있었는데 눈은 흰자만 보일 정도로 위를 향해 있었고, 입은 아주 크게 벌리고 있었다. 겉은 노랗고 속은 새까만 썩은 앞니 하나가 보였고, 아저씨는 굳어 있던 손을 내 쪽으로 펴며 점점 큰 목소리로 신음을 내기 시작했다. 그 신음은 마치 언젠가 TV에서 본 땅속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연상시켰다.

 “크악!”

 아저씨는 침을 질질 흘리면서 점점 거칠게 숨을 쉬었고, 눈동자는 어느샌가 모두 새하얗게 변해 버렸다. 아저씨는 불편한 몸을 이끌며 점점 나와 가까운 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했고, 곧 침대에서 떨어질 것 같이 불안해 보였다.

 “털썩.”

 아저씨는 이내 침대에서 떨어졌다. 그리고 그 순간 점점 커지던 숨소리는 멈추고 말았다. 그리고 아저씨는 마치 쥐며느리처럼 몸을 굽힌 채로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그리고 방안에는 출처를 알 수 없는 한기가 돌기 시작했다. 그 한기가 내 몸을 너무 춥게 만들었다.

 난 괴로움 속에 죽어간 그 불쌍한 아저씨를 외면한 채 억지로 잠을 청했지만, 꽤 오랜 시간 동안 난 잠이 들지 못했다. 그리고 하얀빛이 갑자기 내 눈앞으로 빠르게 다가와 내 눈에 닿기 직전까지 이르렀을 때 아침이 되었다. 아저씨가 있었던 곳에는 아무것도 없었고, 침대도 아주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난 그 무서운 아저씨, 그러니까 죽음의 ‘신’인 그 아저씨가 죽은 아저씨를 아주 무섭고 음침한 곳으로 데려갔다고 믿었다. 아저씨도 사람을 죽였거나 괴롭혔거나 하는 아주 큰 죄를 지어서 무서운 아저씨가 벌을 준 것이라 믿었다. 그리고 난 절대로 아저씨처럼 되기 싫다는 생각으로 오늘부터 무서운 아저씨의 말을 어떻게라도 더 잘 들을 것을 속으로 다짐했다. 그렇다면 난 그 무서운 아저씨로부터 구원을 받아 하늘나라로 가 자유로운 몸으로 걸어 다니며 누구와도 재밌게 대화를 나누며 넓은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될 것이다.

 

 

 난 내 옆에 있는 이 예쁜 여자아이도 나처럼 무서운 아저씨의 말을 잘 들어서 나와 같이 구원을 받았으면 좋겠단 생각을 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지금 서로 하지 못했던 말들을 주고받을 수도 있고, 하늘나라에 있는 식당에서 둘이 서로를 바라보며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을 것이다. 여자아이는 나를 보며 웃음을 지었다. 난 왠지 부끄러워서 다른 곳을 쳐다보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덜컥.”

 지하실로 내려오는 계단으로 젊은 형의 실루엣이 보였다. 그 형은 한 손에는 물을 담은 세숫대야를 들고 있었고, 한 손에는 칫솔을 들고서 내려왔다. 날이 갈수록 그 형의 얼굴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서려 있었다. 그리고 내 이를 닦아주기 시작하고, 입안이 거품으로 가득 찼을 때.

 “뱉어.”

 “퉤.”

 오늘은 전보다 훨씬 붉은 피가 많이 나왔다. 그리고 왠지 갈수록 이가 시렸고, 더 아프다는 느낌만 받았다. 난 이가 아파서 저절로 신음이 나왔고, 그 형은 내 얼굴을 바라보며 처음으로 연민을 느끼는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난 ‘괜찮다.’라는 표현을 하고 싶어서 손을 미세하게 움직여 그 형의 등을 약하게 툭 쳤다.

 “하지 마!”

 그 형은 갑자기 내게 화를 내며 시선을 회피하며 두려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난 그만 정신이 팔려 입에 머금고 있던 양칫물을 뱉어버렸고 시멘트로 된 바닥 위에 놓인 상자는 온통 빨갛게 물들고 말았다.

 “아! 시발!”

 그 형은 서둘러 걸레로 내 주위의 붉은 피를 닦아내기 시작했다. 나는 미안함을 표시하고 싶었지만, 다시 화를 낼까 두려워 그럴 수가 없었다. 젊은 형은 나에게 시선 한 번 주지도 않고 그냥 다시 올라가 버렸다. 난 그 모습에 어쩌면 다시는 그 형을 보지 못할 거란 슬픈 예감이 들었다. 그 형은 나쁜 사람 같지 않았다. 그렇다고 무서운 아저씨는 나쁜 사람이라는 건 아니다. 아니다! 무서운 아저씨는 절대 나쁜 사람이 아니다.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는 이유로 반성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분명히 나는 그날 무엇인가 큰 잘못을 한 것이다. 왜냐하면, 그날 이후로 형은 나타나지 않았고, 며칠째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한 상태로 그 추운 지하실에 있었기 때문이다. 3일째 되던 날에는 배가 너무 고파서 온몸이 아프기까지 했다. 내가 이곳에 온 이후로 밥을 주지 않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원래 그 창백한 얼굴의 무서운 아줌마라도 와서 작은 호스를 입안으로 집어넣고서 무언가를 먹여주곤 했었는데 이젠 그마저도 없다. 오늘따라 보이는 창밖에 예쁜 달이 외롭고 쓸쓸해 보였고, 얇은 구름이 아주 천천히 하늘 사이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나는 왜 태어났을까? 난 허기진 상태로 시선을 하늘로 향하며 생각했다. 그리고 언제나 날 슬픈 표정으로 바라보던 엄마를 생각했다. 엄마는 단 한 번도 나를 향해 환하게 웃어준 적이 없었다. 난 항상 엄마는 왜 나를 향해 웃어주지 않는 걸까?라고 속으로 늘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주 어두운 밤, 새하얀 조명 아래 환하게 웃고 있는 엄마를 보았다. 난 너무 기분이 좋았고, 들뜬 상태로 무거운 몸을 힘겹게 일으켜 거실에서 웃고 있는 엄마를 향해 걸어갔다. 그런데 엄마의 시선은 조금도 나를 향해 있지 않았고, 처음 보는 아저씨를 향해 있었다. 엄마는 오랜만에 애써 몸을 일으킨 나에게 아무런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아니, 그보다 내가 보이지도 않는 것 같았다.

 내 희미함의 작은 발걸음 소리도 내가 엄마를 사랑한다는 마음속의 외침도 지금 엄마를 웃게 해주는 저 남자 때문에 전부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난 그 소멸과 함께 조용히 침묵하고, 다시 내 방으로 돌아가 온통 어둠으로 얼룩지고, 더러운 요가 어지럽게 깔린 내 이부자리에 다시 누웠다. 엄마의 웃음소리가 방문 넘어 크게 들렸다. 애초에 나는 엄마를 웃게 해줄 수 없단 걸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 이후로 난 내 힘으로 혼자 일어서고 싶단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모두 다 부질없는 짓이다. 그리고 그날 이후로 신은 나의 머릿속에서 조금도 움직이지 말고, 입 닥치라고 매일매일 속삭였다. 내 귓가에 울려 퍼지는 신의 목소리는 매미의 울음소리를 닮아 있었다.

 “움직이지 마.”

 배가 너무 고파서 식은땀마저도 말라버렸는데 매미의 목소리는 점점 커져만 갔다. 내 앞에 있는 여자아이도 배가 고파서 얼굴색이 노랗게 변한 지 오래였다. 곧 숨이 멎을 것 같은 고통이 내 몸을 휘감았다. 난 무의식적으로 그 아이에게 천천히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곧 그 아이도 나를 향해 손을 내밀었고, 우리는 서로의 손을 붙잡았다. 몸이 고통스러운 순간에 왠지 모를 안정감이 내 몸을 따뜻하게 해주는 느낌이 들었다. 난 그 아이의 손을 잡은 상태로 잠이 들었다. 풀 한 포기 없는 사막에서 하늘에서는 뜨거운 태양이 나를 향해 강렬하게 내리쬐고 있었고, 곧 새하얀 모래가 내 몸을 뒤덮었다. 모래가 내 온몸에 스며들어 내 입과 코를 통해 내 몸속으로 들어왔다. 내 옆에는 나와 함께 있던 여자아이도 있었다. 나처럼 온몸이 모래로 감싸져 손이 겨우 보일 정도였다. 끝이 보이지 않는 모래 숲에 우리는 조용히 바닥에 가라앉기 시작했다. 곧 사방은 어두워졌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되었다.

 “아저씨?”

 곧 누군가 걷는 소리가 들렸다. 익숙한 소리였다. 흔들리는 식판 소리와 침대 위에서 신음을 내고 있는 할머니들의 목소리.

 “할머니. 민철이가 왔어요.”

 “쟤 민철이 아니잖아!”

 “맞아요. 할머니.”

 “아녀! 퉤엣!”

 “아 시발! 이 할망구가!”

 “으아! 악!”

 아저씨는 할머니를 사정없이 패기 시작했다. 할머니의 신음이 온 방에 울렸고, 목소리가 너무나 내 귀를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그만하라고 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내 맘대로 되질 않았다. 어느새 내 옆에 있던 여자아이는 사라진 것 같았다. 몸에서 느껴지던 온기도 이미 사라졌다. 온몸을 감쌌던 모래도 내 몸에서 사라졌다. 이제 모든 게 편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지금까지 살면서 느껴본 적이 없던 그런 감각이었다. 내 눈앞은 어두워졌다. 하지만 내 손과 발이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것이 느껴졌다. 드디어 나의 죄가 용서를 받고 구원의 길로 향하게 되었다고 생각한 나는 어딘지도 모르는 곳을 향해 홀로 소리쳤다.

 “고마워요! 아저씨! 나의 죄가 용서받았군요?”

 난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내 귀엔 사람들이 움직이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난 마음대로 움직이는 내 몸을 이끌고 그곳을 향해 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섬광 같은 빛과 함께 내 시야엔 조그만 방이 눈에 들어왔다. 커다란 책상과 커다란 검은 의자엔 늘 누군가를 괴롭혔지만 나를 구원해준 아저씨가 조용히 앉은 채로 눈을 감고 잠을 자고 있었다.

 “아저씨?”

 난 아저씨에게 다가가서 감사의 인사를 건네고 싶었지만, 아저씨는 깊이 잠이 들었는지 조금도 움직일 생각이 없어 보였다. 난 아저씨의 책상에 놓인 노트를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 그 노트 안엔 성만 바뀐 철민이란 이름이 가득했다. 김 철민, 이 철민, 박 철민, 오 철민, 임 철민 모두 다 내 이름이었다. 난 왜 그게 그곳에 적혀 있는지 의아할 뿐이었고, 그보다 손발이 자유로워진 나의 모습을 더 즐기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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