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면의 해커

by 수지엘 posted Aug 04,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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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면의 해커


빽빽하게 들어서 있는 건물들 사이에 한 남자가 서있다.

그는 취업 준비 2년차 취준생 정지우이다.

오늘도 그는 취업 전선에 뛰어들어 새로운 직장을 찾고 있다.

뛰어난 내신, 화려한 수상성적, 어학연수에 인턴 경험까지 부족한 것이 없어 보이는 그 이지만, 가장 심각한 그의 결함이 존재 한다.

바로 성실성그는 첫 출근 날부터 점심시간을 넘어서 출근하며 상사에게는 꾸지람만 받고 사직서를 낸다.

이 패턴이 벌써 8번째로 이미 관련 기업들의 블랙리스트에 이름이 올라갔을 정도 이다.

왜 그는 이런 행동을 보일까 그의 행동을 지켜보도록 하자.

그는 매일 오전 11시에 기상한다. 우유 한 잔을 마시고 바로 컴퓨터 앞으로 직행한다.

그런데 컴퓨터의 모습이 평범하지 않다.

여러 개의 모니터와 범상치 않은 모양의 장비들이 쌓여 있다.

그렇게 그는 쉬지도 않고 새벽 3시까지 컴퓨터를 한다.

이렇게만 보면 그는 이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는 평범한 게임폐인으로 볼 수 있지만, 그는 그렇지 않다.

취업 준비생 정지우는 각종 공공기관을 해킹하는 블랙 해커이다.

 

나는 정지우겉으로 보면 평범한 백수이다.

하지만 나는 각종 의뢰를 받아 해당 기관이나 단체를 해킹하는 블랙 해커이다.

초등학교 4학년때부터 해킹에 눈떠서 부모님께 말씀 드려봤지만, 그 당시의 부모님에겐(물론 지금도 그렇지만)

해커라고 하는 것은 그저 나쁜 사람이나 하는 보잘것없는 일이라고 생각하셨다.

그 당시에는 이해하지 못하였지만 지금 와서는 부모님을 이해할 수 있다.

내가 지금 하는 짓은 절대 평범하고 착한 사람들을 하지 못하는 일임이 분명하니까……

지금과 같은 해킹을 통해서 난 꽤 적지 않은 돈을 벌어 들였다.

조금 있는 집 아이의 정보를 해킹해서 그 아이의 부모님에게 돈을 뜯는다던 지, 어떤 단체에 포상금을 받고

의뢰로 해킹을 하던지 해서 나름 좋은 장비들도 갖추었고 나쁘지 않은 사무실(사실상 집이지만)을 구할 수 있었다.

이렇게 난 돈이 없어서 직장을 구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나의 아버지는 테러 진압 센터의 센터장을 하고 있고, 어머니는 국정원에서 꽤 높은 자리에 있으시다고 들었다.

이러한 부모님에게 자란 나는 집안의 압박에 시달려야 했고, 어쩔 수 없이 서울에 올라와 직장을 구하고 있는

을 하고 있다.

만약 지금처럼 이라도 하고 있지 않다면 내가 아무리 숨는다고 하더라도 부모님의 인맥과 권력을 통해서 한 달도 못가서 잡힐 것이다.

그때 잡힌다면 아마 다시는 해커 일을 못할 것이다.

그런 일은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뭐 이런 딱딱하고 사무적인 얘기는 여기까지로 하고 지금 하고 있는 해킹에 대한 얘기를 하고 싶다.

오랜만에 새로운 의뢰가 들어 왔다. 최근에 여러 곳에 지원서를 넣느라 몇 건을 펑크 내서 나름 나에 대한

평이 안 좋아진 듯하여 의뢰가 잘 들어오지 않았는데 이것은 기회이다!

 

……어떤 내용인지 봐 볼까…………?”

 

처음에 봤을 땐 별 내용이 없었던 거 같은데 이상한 내용이 적혀 있다.

코드네임 [D]의 홈페이지를 해킹해주세요. 홈페이지 링크는 따로 첨부해드리겠습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코드네임 [D]? 어디서인가 들어본 이름 같은데……뭐 별로 상관없겠지

 

나는 아무런 생각 없이 따로 첨부되어 있던 링크를 클릭하였다.

무언가가 나오지 않을까라고 살짝 기대감도 있었지만 예상과 다르게 평범한 웹사이트 나왔다.

 

……생각보다 어렵지 않겠네 APT공격을 하면 간편하겠네

 

끝내고 족욕탕에서 느긋하게 족욕하고 와도 널널한 수준의 웹사이트 였다.

아니……그렇다고 생각했다……

계속되는 APT공격에도 웹사이트를 멀쩡했다.

 

아니, 이게 왜 안되지?’ 처음엔 단순한 실수라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1시간……2시간…… 3시간…… 9시간이 걸릴 때 느꼈다.

마치 상대도 나와 동등.. 아니 한 수위의 프로 해커가 나의 행동을 모두 읽는 듯한 해킹 방어를 하고 있다.

가끔 이런 경우가 있었다.

나에게 의뢰를 맞기고 자신의 해킹 실력을 남들에게 뽐내기 위해 해당 웹사이트를 방어한다.

몇 년간의 해커 경험으로 이런 일은 매우 익숙했다.

하지만 진짜 해커 실력이 좋은 사람들은 절대 위와 같은 행동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런 유치한 짓을 하는 사람은 모두 별것도 안되는 조무래기들이었기 때문에 가볍게 해킹에 성공하였다.

하지만 이번은 다르다. 진짜배기임이 틀림없다.

 

이정도 실력이면 내가 이름을 몰랐을 리가 없는데.”

 

나는 다시 끔 생각해보았다……

 

설마……코드네임 [D]라는 게……”

 

상대는 코드네임 [D]라는 닉네임을 쓰고 있는 해커이다.

정확히 말하면 코드네임 [Dart], 해커 협회에 등록되지 않은 미등록 해커이다.

최근 일어났던 △△은행 디도스 공격 사건이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개인 컴퓨터 해킹 사건 등을 일으킨

해커 계의 떠오르는 신예이다.

다만 협회 사람들을 탐탁치 않아 하는 것이 협회의 등록도 하지 않았고 아직 자세한 정보가 없기 때문에

행동을 예측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 불안해하고 있다고 한다.

 

나는 어떻게 하던 별로 상관없지만……”

 

지금 이런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우선 이 웹사이트를 해킹하는 것이 문제이다.

코드네임 [D]는 각종 해킹사건 때마다 여러가지 해킹 기술을 사용했다.

난 그것을 보고 여러가지를 추측할 수 있었다.

우선 해킹의 동일한 방법을 사용하지 않는 사람은 자신을 드러내고 싶지 않은 사람인 경우가 많다.

동일한 수법으로 하지 않는다면 용의자를 축소하는데 힘들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것은 오산이다.

아무리 여러가지 방법을 사용한다 하더라도 각각의 해커가 해킹하는 코드에는 일련의 규칙성이 있는 법이다.

조금만 해킹코드를 뜯어보면 어느 정도 해킹을 배운 사람은 모두 눈치챌 수 있다.

어쩌면 코드네임 [D]는 해킹을 배운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일수도 있다.

그래도 다시 한번 각오를 가다듬고 해킹을 시도하였다.

또다시 1시간……2시간……3시간……9시간이 흘렀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승부의 판세는 코드네임[D]에게로 흐르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질구질한 해커로서의 자존심과 정체를 알 수 없는 정의감으로 인해 의미 없는 승부를 지속하고 있을 뿐이었다.

14시간이 흐르고 결국 나는 몸의 한계를 느끼고 상대방에게 포기 선언을 한 뒤 컴퓨터의 전원을 껐다.

온 몸의 힘은 모두 빠져버렸고 어두운 방에는 허탈함과 공허항만이 흐를 뿐이었다.

 

나의 17년간의 해커 생활은 이토록 별것도 아닌 것이었던가……”

 

머릿속에 여러가지 생각들이 교차하였지만 이미 눈꺼풀은 무거워져 나의 눈을 덮었다.

그렇게 새로운 날의 아침이 밝았다.

 

으아 아……온몸이 쑤시네

 

항상 그랬다. 오랜 시간 동안 컴퓨터 앞에 앉아 있으면 온몸이 아픈 것이 당연한 것인데 해킹을 하고 있을 때는

마치 마약을 먹은 것처럼 해킹에 대한 생각만 나고 그 외의 근심과 걱정은 머릿속에서 사라진다.

피로함이나 몸의 쇠약함 또한 느껴지지 않는다.

하지만 그로 인한 부작용인 것일까 하던 일을 모두 끝내고 나면 이번 일처럼 피로함과 공허함이 한꺼번에 몰려온다.

그래서 나는 이 세상과의 접촉을 최소한으로 하고 해커로서의 삶을 살았다.

해킹을 하고 있으면 쓸데없는 걱정 같은 건 하지 않아도 된다.

부모님의 기대, 집안 어른들의 참견, 동창들의 조롱 같은 것도 상관하지 않아도 된다.

이러한 나의 상태가 나를 더욱더 해커의 세계로 끌어들인 거 같다.

나의 상태는 둘째 치고 우선 해킹 포럼에 들어가서 다른 해커들의 반응을 봐야 한다.

나도 나름 해커 계에서 이름을 날리고 있기 때문에 분명 포럼에 올라가 있을 것이다

.

뭐야 메인에 올라가있잖아!”

 

예상도 하지 못한 일이었다.

아무리 코드네임[D]가 최근 초미의 관심사이긴 하지만 포럼 메인에 올라왔을 거라고는 생각 조차 못하였다.

 

거기다가 글 제목도 가관이네……’천재 해커의 등장! 코드네임[D], 베테랑 해커 JJO에 승이라니……”

 

다른 해커들에게 놀림거리가 될 것이 분명하다.

작업 후 일어나는 아침은 항상 머리가 아프지만 오늘은 특히나 머리가 깨질 거 같다.

내용을 자세히 보니 더욱 가관이다.

 

코드네임[D]는 금일 A.M 8:00에 해커 JJOAPT공격을 받았지만 가볍게 막아내었다.”

 

정말 착잡한 기분이다.

해커 포럼 메인에 올라왔다는 것은 이미 대부분의 해커들이 알았다는 것이고, 조롱의 대상이 될 것이 분명하다.

거기다가 당분간은 내가 다른 해커들의 표적이 되는 것은 기정사실이다.

 

띠리리링 띠리리링

 

갑작스레 전화 벨소리가 울렸다.

 

여보세요?”

 

이 목소리는 소꿉 친구이자 해커인 이정훈의 목소리 이다.

아마 포럼을 보고 연락한 것이 겠지.

 

말 안 해도 무슨 일로 연락한지 알겠다.”

 

이미 알고 있구만, 지금 그 일 때문에 완전 난리야 포럼은 물론이고 여러가지 얘기들이 오고 가고 있어

 

무슨 이야기 인데 그래?”

 

코드네임[D]가 선전포고를 했어, 모든 블랙 해커들을 처단하겠다고

 

? ……알겠어 내가 다음에 다시 연락할게……”

 

예상외의 전개이다.

설마 이렇게 세게 나올 줄은 몰랐다.

하지만 블랙 해커들을 처단하겠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

나도 나름 해커 쪽에서 오래 활동했지만, 나보다 능력이 뛰어난 사람은 썩어 빠지도록 많다.

무엇보다도 우리 블랙 해커들을 처단한다고 무슨 이득이 있을까

현재 활동중인 블랙 해커들은 거의 얼굴이 알려져 있지 않다.

국가 차원의 화이트 해커들도 우리들을 잡을 수 없다.

잡을 이유도 잡을 수 있는 수단도 없다.

순간 코드네임[D]가 경찰 쪽 사람일까도 생각해 봤지만, 절대로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

해킹이라는 것은 압도적으로 방어하는 쪽보다 공격하는 쪽이 유리하다.

방어하는 쪽은 공격할 수 있는 수단을 알아야지만 방어할 수 있지만, 공격할 수 있는 방법은 무한하다.

내가 사용한 공격 방법은 APT공격 방식으로, 비교적 사회적으로 많이 알려져 있는 방식이지만, APT공격을 예상했다는 듯한 방어 방법은 분명 우리와 같은 블랙 해커 출신임이 분명하다.

이제 해야할 것이 분명해졌다.

코드네임[D]를 찾아서 복수할 것

해야할 것이 분명해졌으니, 행동으로 이어가야 한다.

아마 어제 들어간 웹사이트는 해킹 방어용 사이트로 지금은 없어졌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선 해커 포럼의 수장이자 나의 스승님을 찾아가야 한다.

나의 스승님의 본명은 최준익’, 닉네임은 ‘KJO’이다.

해커 포럼을 만들었던 5인 중 한 명으로 현재 해커 포럼의 수장 역할을 맞고 있다.

해커 포럼은 각각의 해커들을 등급으로 분류하여 열람할 수 있는 정보를 제한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스승님은 모든 정보를 열람할 수 있으며, 가장 빠르고 정확한 정보를 보유하고 있다.

스승님에게 찾아간다면, 분명 이번 일에 대한 실마리를 찾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날 곧장 스승님께서 계신 대전으로 몸을 옮겼다.

대전은 서울과 다르게 좀더 따듯한 날씨였다.

1시간을 걸어 스승님께서 계신 사무실에 도착하였다.

 

스승님 계시나요?”

.

나의 말에 나를 막아 서던 투명 문이 열렸다.

스승님의 사무실은 역시 나의 사무실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쾌적하고 해킹을 위해 최적화 됐다고 할 수 있다.

 

왔나?’

 

익숙한 스승님의 목소리였다.

그런데 오늘은 옆에 못 보던 누군가가 있었다.

 

안녕하세요

 

아리따운 여성이었다.

20대 초반 정도의 세상 물정 모르는 그런 아가씨로 보였다.

해커 쪽 사람은 아닐 테고 스승님의 딸이나 아는 사람이 아닐까 생각했다.

 

인사하게, 이쪽은 요즘 봐주고 있는 제자야

 

예상 밖 이었다.

스승님도 벌써 60을 넘어가고 있어 더 이상 제자를 받지 않고 있다고 들었을 터인데……

 

안녕하십니까, 정지우라고 합니다

 

저는 이소영이라고 해요! 잘부탁드립니다!”

 

하필 헤어진 전 여자친구 이름이다.

빌어먹을

 

스승님, 오늘은 저번 일 때문에 얘기드릴 것이 있어서 왔습니다.”

 

흐음……그 사건이라면 소영양과 얘기 해보는 게 도움이 될 거다. 포럼 메인에 올라온 글도 소영양이 쓴거니깐

 

세상 물정 모르는 아가씨로 만 봤는데 그 일에 대한 정보를 지니고 있을 줄은 몰랐다.

스승님 마저 자신한테 듣는 거 보다 대신 얘기하라고 하는 정도면 확실한 실마리를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코드네임[D]에 대한 사건이라면 자세하게 잘 알고 있어요

 

소영양이 말했다.

 

……소영양이라고 부르면 될까요?”

 

그러자 내 말에 약간 웃는 듯한 말투로 그녀가 얘기 했다.

 

그냥 편하게 소영이로 부르세요

 

하하 그럼 소영아 코드네임[D]에 대한 정보와 그의 정체를 알 수 있을까?”

 

최대한 어린아이를 구슬리듯이 말했다.

 

그냥은 안되죠, 코드네임[D]에 대한 정보를 얻고 싶으시다면 정지우씨는 어떤 사람이죠?”

 

귀찮은 꼬맹이다.

기본적으로 해커들은 개인활동을 하며, 자신의 정체를 숨기려고 한다.

기본적인 성격의 문제도 있지만, 블랙 해커들은 자신의 얼굴이 들키면 해킹 활동을 하기 어려워 진다.

자신의 정보를 넘기는 건 상당히 위험한 일이다.

이런 나의 생각을 읽었는지 그녀가 웃으면서 말했다.

 

걱정 마세요, 당신에 대해서 궁금한건 다른 목적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저 호기심이니까요

 

스승님과 연결 돼 있는 사람이라면 어느 정도의 신용도 있을 사람일 테고, 무엇보다 그녀의 눈빛에서 거짓이 느껴지지 않았다.

약간의 시간을 들여 나의 대한 정보를 얘기하자 그녀도 수긍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후후…… 당신이 그 JJO군요 좋아요, 코드네임[D]에 대한 얘기를 해드릴 깨요

 

만약 쓸모 없는 정보라면 그녀의 컴퓨터를 해킹해서 전세계에 뿌려버리겠다는 각오로 그녀의 이야기를 들었다.

 

코드네임[D]는 모두가 알듯이 미등록 해커이고 최근 각종 범죄 기관이나 단체를 공격해서 유명해졌죠.

그는 모든 블랙 해커들을 처단하려는 생각인 거 같아요.”

 

여기까진 이미 알려진 정보이다.

그런데 갑자기 그녀의 표정이 급변하였다.

 

그래서 저희는 코드네임[D]가 사이버 보안 팀과 연결 된 사람이 아닐까라고 추측 했지만, 전혀 달랐어요

 

그녀가 잠깐 뜸을 들이다가 다시 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의 본명은 이정훈현재 28세로 인터넷 쇼핑몰의 CEO를 맞고 있는 사람 이에요.”

 

말도 안되는 말이다.

정훈이는 나와 같은 블랙 해커 출신이다.

쇼핑몰을 운영하기 시작하기부터는 해킹보단 보안 쪽을 공부하긴 했었다.

 

정훈이는 내 소꿉친구야 걔는 블랙 해커 출신이라고

 

잘못된 정보라고 나는 말했지만 그녀는 이미 나의 반응을 예상한 듯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이미 알고 있었어요, 그는 당신한테서 블랙 해커에 대한 정보를 캐내기 위해서 접근한 거였어요.”

 

그럴 리가 없다.

나와 정훈이는 중학교 시절 어느 RPG의 오프모임에서 만난 사이이다.

그 당시 같이 레이드를 돌던 파티원 중 한 명으로 나는 암살자, 정훈이는 탱커를 담당했었다.

마음도 잘 맞았고 집도 멀지 않아 지금까지 자주 만나면서 관계를 이어갔다.

대화 중 서로 블랙 해커 활동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고 그에 따른 정보 교환도 많이 했다.

 

당신의 친구인 이정훈의 닉네임은 해커 협회에 등록되어 있지 않은 미등록 해커이고, 활동 기록도 없어요.”

 

듣고 보니 정훈이는 나한테 닉네임을 알려준 적도 없고, 직접적인 활동을 하는 것도 보지 못하였다.

그때는 서로의 대한 정보를 알리지 않은 해커들의 암묵적인 룰 때문에 넘어갔지만, 지금 와서 생각하면

수상한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닌 거 같다.

거짓말이라고 믿고 싶었지만 그녀의 말에 조금씩 수긍하기 시작하였다.

마음을 추스르고 나는 그녀에게 여러가지를 물었다.

 

그럼 그를 막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지?”

 

그녀가 의미심장한 웃음을 띠면서 이야기 했다.

 

그 말을 기다리고 있었어요, 그를 막고 싶다면 저를 따르세요!”

주르륵 내리는 빗소리와 함께 울리는 알람음에 무거운 몸을 일으켰다.

약간의 신음소리와 함께 컴퓨터 앞으로 직행하여 해커 포럼을 열었다.

 

크윽……역시 좀 힘드네, 포럼에는……역시 예상한대로군

 

나는 코드네임[D], ‘이정훈이다.

이소영이라는 애송이 해커한테 사전에 정보를 약간 흘려 두었다.

해커 포럼 메인에 지우를 공격한 것이 나오는 것은 이미 예상에 있던 것 이다.

문제는 지금 부터이다.

지우는 아마 그 스승한테 가겠지만 그 사람은 알고 있는 것은 없다.

나의 존재를 어떤 형태로 알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전에 빠르게 일 처리를 해야 한다.

나는 어느 단체에도 속해 있지는 않지만 화이트 해커이다.

어렸을 때 우리 가족은 블랙 해커로 인해 큰 상처를 입었다.

어떤 블랙 해커가 아버지의 컴퓨터를 해킹하여 회사 기밀정보를 모두 유출 당하였다.

그로 인해 아버지는 회사에서 해고 되었고, 업계에서는 조심성과 신중함이 부족한 사람으로 낙인 찍혀

다른 회사로의 재취업도 불가능해졌다.

이런 암담한 사실을 견디지 못하신 아버지께서는 내가 12살 때 투신 자살을 하셨다.

어머니가 나와 동생을 키우기 위해 오랜 시간 동안 고생하셨고 최근에는 몸도 별로 좋지 못하시다.

모든 블랙 해커는 모두 나쁜 사람이다.

나는 이렇게 느꼈다.

자신의 이득, 재미를 위해 다른 사람을 피해주는 범죄 집단 같은 자들을 나는 혐오했다.

그래서 정보를 캐내기 위해서 어느 RPG에서 해킹으로 유명했던 지우한테 접근한 것이다.

다소 늦은 감이 있지만 10년이 넘은 시간 동안 만반의 준비를 거쳤다.

굳이 비밀스럽게 진행하지 않고 모두에게 공표하는 것은 모든 블랙 해커들의 관심을 나로 돌린다.

그러하여 내가 소속된 화이트 해커 조직인 화이트 팽의 일원들이 그들의 숨통을 조금씩 조여올 것이다.

이건 단순한 개인의 복수가 아닌 화이트 해커와 블랙 해커간의 전쟁이 될 것이다.

승리의 여신은 우리의 편을 들어줄 것이라고 확신한다.

모든 블랙 해커들을 깜빵에 처넣을 것이다.

하지만 지우와 함께 오랜 시간을 지내면서 괜찮은 친구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갱생의 기회가 있다고 판단했다.

그는 내가 생포하여 화이트 해커로 갱생 시킬 것이다.

 

그녀는 나를 끌고 벙커 같은 공간에 도착하였다.

 

여긴 어디야?”

 

이곳은 스승님이 예전에 해킹실로 썼던 공간이에요. 이제는 당신의 공간이에요.”

 

스승님이 예전에 이름을 날리던 굉장한 해커라고 들었지만 이정도 수준일줄은 몰랐다.

상당한 규모인 지금의 사무실보다 2배는 큰 규모인 거 같다.

스승님이 현역에서 은퇴하신지 15년이 넘은 걸로 알고 있었는데, 해킹실은 매우 깨끗했다.

이곳을 마음대로 써도 되는거지?”

 

대신, 조건이 있어요. 코드네임D를 쓰러뜨려주세요.”

 

물론이야, 나의 해커 인생을 걸고 맹세하겠어.”

 

나는 해킹을 위한 준비를 계속했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났다.

코드네임D의 퀘이크컴퍼니 디도스 공격 예고날이 밝았다.

해킹을 막기 위한 준비는 완료하였다.

집에 있는 데이터를 옮기는데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블랙 해커와 화이트 해커간의 작은 전쟁이 시작된다.

 

준비가 되었나요?”

 

이 자는 화이트 해커 협회의 협회장인 J.P이다.

노란 머리에 혼혈인 협회장은 내가 전형적으로 싫어하는 타입이다.

 

, 바로 시작하죠

 

기대하고 있어요. 정훈군

 

그녀의 작은 웃음소리가 귓가를 스쳐 지나갔다.

그런 그녀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퀘이크컴퍼니 서버에 접속하였다.

접속과 함께 방대한 방화벽들이 펼쳐졌다.

 

역시 대단해……넌 나한테 대단한 존재였어, 지우

 

대단한 재능을 가진 녀석이지만, 항상 마음 한 켠에 어둠이 남아있었다.

그건 둘째 치고 겨우 방화벽을 모두 뚫고 서버 중심부에 돌입했다.

그때 갑자기 팝업창들이 엄청난 기세로 생성되기 시작하였다.

 

이런이런……당했군

 

그때 등 뒤편에 쾅 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정훈! 당신을 정보통신기반 보호법에 따라 체포하겠습니다!”

 

그 순간 나는 모든 것이 끝난 거 같았다.

하지만 모든 것은 다시 시작되는 것이었다.

어두운 조사실에서 덜컥 문이 열리더니 범상 굳게 생긴 남자 1명과 조수로 보이는 여자가 들어왔다.

 

이정훈씨, 저는 당신을 변호하게 된 담당 변호사입니다.”

 

……그렇습니까

 

정훈은 순간 귀찮은 생각이 머리에 맴돌았다.

약간의 침묵이 지난 후 담당 변호사가 말을 꺼냈다.

 

오늘은 다름이 아니라 만나주었으면 하는 사람이 있어서 왔습니다.”

 

정훈은 힘이 없는 상태로 면회실로 터벅터벅 걸어 나갔다.

눈을 뜨고 정면을 주시한 정훈은 자신의 눈을 믿을 수 없었다.

 

지우……니가 왜 있는거지?”

 

하고 싶은 말이 있어

 

정훈은 당황스러운 기분을 재쳐두고 지우의 말의 집중하기로 하였다.

 

너가 속한 화이트 해커 협회는 사실 중국과 내통해서 국가 기밀을 누설하고 있는 블랙 해커 집단이야.

너를 속이고 있는 거라고!!”

 

정훈은 믿을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정의를 위해 지우를 위해 했던 일이 이런 일이 될 줄은 생각도 못했지 때문이다.

 

젠장……나는 이런 걸 원한게 아니라고!!!!!! 블랙 해커는 모두 나쁘다고!!!!!! 그래서 나는 복수를 하기 위해 해킹을 배웠고 16년이라는 시간동안 기다려왔다고!!!!!!”

 

정훈은 단순히 우는 것이 아닌 절규의 가까운 목소리를 냈다.

 

녀석들은 아버지도……내 모든 걸 뺏어갔어……. 절대로 용서할 수 없어.”

 

힘겨운 목소리로 이야기하던 정훈이지만 어느정도 정신을 차리기 시작하였다.

 

만약 니가 소속됐던 해커 집단에 대한 내용을 모두 말해주면 이번일은 집행유예로 끝내 주신다고 검찰청장님에게 약속받았어.”

 

물론이야,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정보를 전달하도록 하지, 그렇다고 해서 나도 많은걸 알고 있지는 않지만 말이야.”

 

철컥

 

쇠창살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석방 축하해, 정훈아

 

두부까지 사온 지우가 말했다.

 

감옥이 너무 편해서 그냥 살까 하다가 나왔다.

 

지우에 말에 정훈은 익숙한 듯 농담까지 했다.

그 둘은 서둘러 지우의 해킹실로 발길을 옮겼다.

 

그래서 우리가 해야할 임무는 뭐냐?”

 

해킹을 위한 세팅을 하는 정훈이 지우에게 물었다.

 

이미 경찰철이 중국 충칭에서 녀석들의 거점을 찾아냈어, 우리의 임무는 그녀석들의 컴퓨터들을 다운 시켜서 정보를 날라가게 하지 않게 하는거지 그렇지 않으면 녀석들을 깜빵에 넣을 명분이 없거든."

 

단순한 임무였다.

정훈과 지우가 함께하면 위치도 아는 상태에서의 거점의 컴퓨터 셧다운은 간단했다.

 

오랜만에 같이 작업하는거 같네

 

감정이 올라온 듯한 지우가 정훈에게 말했다.

 

뭘 새삼스럽게 그러냐

 

그런 지우의 말에 멋쩍은 얼굴로 웃으며 정훈이 말했다.

어색한 공기가 흐르던 중 다시 정훈이 말을 꺼냈다.

 

너는 이번 사건이 끝나면 어떻게 할꺼냐?”

 

나는 세상을 위한 일을 하고 싶어서 라오스라는 나라에 가서 컴퓨터에 관심있는 아이들에게 프로그래밍에 대해 가르쳐주려고

 

예상외의 답변에 정훈은 놀란 기색이었다.

그런 정훈에게 어떤 말을 할 새도 없이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이쪽은 이번 사건을 맡게 된 최병훈 중위입니다. 임무를 시작해주십시오

갑작스러운 연락이었다.

방금 이야기에 답변도 못한 채 지우와 정훈은 해킹을 시작하였다.

해킹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방화벽 돌파 성공, 셧다운 카운트다운 3……2……1……다운!!!!”

 

돌격!!!!!!!!!!!!!!”

 

전화기 소리로 최병훈 중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렇게 30분이 지나고 다시 전화벨이 울렸다.

들려온 목소리는 최병훈 중위였다.

 

다행히 해커집단 전원을 무사히 채포했습니다. 정보들도 모두 무사하고요.”

 

임무성공을 알리는 전화였다.

지우와 정훈은 쌓여 있던 긴장이 풀리면서 자리에 털썩하고 주저 앉았다.

둘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먼저 지우가 말했다.

 

끝났네, 수고했어 정훈아

 

순간 정훈은 눈물이 핑 돌았다.

그런 정훈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지우는 이야기 했다.

 

걱정하지마, 꼭 금방 돌아올테니깐

 

금방 돌아오겠다는 지우의 말이 무색하게 세상의 시계는 빠르게 흘렀고 1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정훈은 어느 일요일에 가족과 함께 공원으로 나왔다.

 

나 잠깐 한대 피고 올깨

 

여보 빨리 와요 슬슬 이동해야되니깐

 

가끔씩 담배를 한 대 피면서 하늘을 보면 그녀석이 생각나곤한다.

그 사건이 끝나고 갑작스레 라오스로 떠난 지우는 10년이 지난 지금도 돌아오지 않았다.

연락도 물론이다.

 

그 녀석 뭐하고 지내려나……”

 

나의 이런 한탄하는 소리와 함께 뒤편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랜만이야, 정훈아

 

익숙한 목소리에 나는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리곤 뒤를 돌아보니 익숙한 녀석이 있었다.

 

오랜만이다 이짜식아

 

나의 말에 둘다 웃음보를 터뜨리고 말았다.

16년지기 소꿉친구의 10년만의 재회에 하늘도 호응해주는 듯이 산뜻한 바람이 불었다.

13살에 처음 만났고 많은 일을 겪어 오면서 38살이라는 중년이 되었다.

둘의 이야기가 주고 받는 도중 지우가 얘기 하였다.

 

우리가 하고 싶었던 것을 다시 해보자, 해킹을

 

나는 10년동안 지우의 이 말을 기다리고 있었는지 모른다.

10년간 결혼도 하고 가정을 꾸렸지만, 일에는 흥미를 붙이지 못했다.

녀석과 일했던 10년전 그 날이 머리속에 계속 맴돌았다.

 

그래, 다시하자

 

소년으로 만난 두 남자가 중년이 되어 다시 만났다.

후회스러운 순간도 있었겠지만 그들의 다시 백조의 날개를 달고 날아오를 것이다.



이름:이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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