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장면

by 다름을봐요 posted Aug 10,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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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장면






오늘 아침은 여느 날과는 달랐다. 일어나자마자 갑자기 자장면이 먹고 싶었다.

악몽을 꿔서 그런지 온몸이 척추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처럼 욱신거렸다. 난 텅 빈방 한 가운데 꾸역꾸역 몸을 일으켜 침대에 걸터앉는다. 그리고는 마치, 야간 병실에서 산소 호흡기를 꽂고 길고 가는 숨을 내쉬기를 반복하는 사람처럼 그곳에 멈춰 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죽어있는 눈꺼풀을 들어 올려 정신을 차렸을 때는 벌써 오후 다섯시였다.

 

컴퓨터에 앉아 집 근처 자장면 집을 검색해 전화를 했다. 토요일이여서 그런지 첫 전화는 응답이 없었다. 나는 몇 군데 더 전화를 했고 결국 한 곳에서 전화를 받게 되었다. 그런데 그 남자는 자장면 한 그릇은 배달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거기하고 여기랑 가까운데 어떻게 안 될까요.

 

-그건 어려워요. 한 그릇은 좀 어렵습니다.

 

-그러면 혼자서 먹을 건데 싸게 더 시킬만한 게 있을까요?

 

-혼자서 드실 거라면 따로 시킬 것도 마땅치가 않네요.

 

-그럼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자 문뜩 예전에 아내가 추천해준 자장면집이 생각이 났다. 그녀의 몇몇 회사동료들이 맛있다며 종종 배달을 시켜먹었다는 가게였다. 두 글자 짧은 이름의 중화요리 집이었는데하지만 아내가 신나하며 5분 동안 떠들었던 고작 그 두 글자의 이름을, 나는 기억해 낼 수가 없었다.

 

난 바닥에 널려 있던 아무 옷이나 걸쳐 입고 집에서 나와, 방금 전 주문이 안 된다고 했던 자장면 집 주소로 무작정 걸었다.

 

 

태양은 지치지도 않을 것처럼 열을 뱉어내고 있었다. 가열된 건물 틈 사이로 건조하고 눅눅한 바람이 불어왔고 그때마다 살갗 아래를 찔러대는 견딜 수 없는 따가움이 나를 괴롭혔다.

 

 

-여보세요. 자장면집이죠? 아까 전화했었는데, 여기 한서주민센터 앞이거든요. 지도에 이곳 바로 앞에 가게가 있다고 나와 있는데 전혀 보이지가 않네요.

 

-거기 야구장 보이죠? 천진아파트 뒤편으로 오시면 됩니다.

 

-천진아파트요? 여기 한서동 주민센터인데 이쪽 주변으로 좀 설명해주시면 안될까요?

 

-? 여기 한서동이 아니라 임동입니다. 임동.

 

-, 그래요?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나는 터벅터벅 걷기 시작했다. 이따금 골목길에서 만나는 차들의 숨막히는 연기에 현기증이 났지만, 걷다보면 원하는 자장면집이 나올 것 같아 나는 계속해서 걸었다.

그러다 나는 어느 현관문 앞에 내놓아진-누군가 다 먹은 자장면 두 그릇과 그 위에 올려진 반찬그릇 하나를-발견했다. 그릇들 사이에는 아무렇게나 뜯겨진 일회용 나무젓가락 포장종이 하나가 끼어져있었다.

저 종이에는 자장면 집 이름이 적혀 있겠지? 어쩌면 아내가 알려줬던 그 이름이 적혀져 있을지도 몰라.

나는 처음 보는, 누가 살고 있는 집인지도 모르는 집을 앞을 서성거렸다. 그때, 누군가 뒤에서 다가왔다. 40대 후반쯤의 퉁명스러워 보이는, 유모차를 끌고 오는 한 여자였다.

여자는 나를 이상한 눈빛으로 바라보더니 그 집의 초인종을 누르고는 "ㅇㅇ야 나와 봐."라고 외쳤다. 난 뒷걸음질 쳐 그곳을 빠져나와-서둘러 집으로 달려왔다다시 컴퓨터에 앞에 앉았고 이제는 검색화면에 나오는 아무 곳에나 전화를 걸어 그곳에서 자장면을 주문시켰다.

*

드디어 음식이 도착했는지 아랫집 개가 한바탕 짖어대기 시작했다. 하지만, 내려가 받아든 자장면은 전혀 뜨겁지가 않았다.

나는 허둥거리기 시작했다. 마실 물을 찾아 부엌에 들어갔다. 식기들은 싱크대 속에 거북하게 쌓여 악취가 났고, 힘겹게 연 냉장고 안에는 물이 없었다.

안방에 들어가 음식에 싸인 비닐을 뜯었다. 자장면에 찔러 넣은 나무젓가락들이 무기력하게 튕겨 나왔다 아무런 표정 없이 딱딱하게 굳은 그것을 열심히 헤집기 시작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마침내, 형체가 갖추어진 자장면을 입안에 넣기 시작했다.

 

-자기야, 거기 여보꺼 책 있어요. 묻지 않게 조심해요.

자장면을 먹고 있는 나를 보며 그녀가 했던 말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책에 혹시 자장면 국물이 튀기면 내가 마음 아파하지 않을까봐 걱정하던 그녀의 따뜻한 목소리였다.

 

 

-다음에는 시켜먹지 말고 집에서 꼭 해 먹자. 내가 맛있고 건강한 음식 해줄게. 알겠지?

 

 

분위기를 화사하게 해주겠다며 아내가 직접 만들었던 웃고 있는 물고기그림의 액자, 그녀가 사다놓은 사랑스러운 인형들이 방안 이곳저곳에 아무렇게나 돌아다녔다. 하지만 이상 남아있는 생명과 활력이 없다는 듯, 그것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자장면을 꾸역꾸역 넣고 있는 손이 주체할 수 없이 떨렸다. 그녀가 사무치게 보고 싶었다. 그저 더 잘 해줄걸, 이럴 줄 알았으면 더 사랑할 걸. 그녀가 내게 주던 것들에 대해 더 말해줄 걸. 그날도 사랑한다고 몇 번이나 더 말할 수 있었는데

 

하지만 내 옆에 놓여있는 그녀의 전화기는 까맣게 꺼져 있었고, 그곳엔 그녀를 사랑했던 사람들이 보내는 수많은 추모메시지들만이 말없이 쌓여가고 있을 뿐이었다.


강동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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