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봄
01
한 낮에는 따듯한가 싶더니 저녁이 되니 살갗에 닿는 공기가 제법 차다. 아직 봄이라 말하기에는 날씨가 너무 추웠다. 가디건이라도 걸칠까 싶어 가게 쪽으로 몸을 돌리려다 만다. 잔뜩 인상을 쓰고 있는 남편의 얼굴을 떠오르니 말자 싶은 것이다. 요즘 한참 매출이 떨어져 예민해져 있는 남편은 끓기 직전의 뜨거운 물 같았다. 누군가 조금만 툭 건드리기라도 하면 끓는 냄비의 물처럼 부르르 끓어 넘쳤다. 어제만 해도 채소 배달을 온 총각에게 괜히 채소가 시들하다고 시비를 걸어서 한바탕 싸움이 나기도 했던 것이다.
팔뚝에 돋은 소름을 손으로 한번 쓱 문지르고 옆쪽으로 늘어선 식당들을 본다. 우리 가게가 있는 이곳은 사거리를 중심으로 고기집이 대여섯 군데가 쭉 늘어서 있었다. 가게 규모 나 파는 종목도 다들 비슷비슷해서 다른 가게의 매출에 신경이 쓰였다. 그래서였을까. 오늘 같이 장사가 되지 않는 날이면 이렇게 다른 가게의 손님들을 얼마나 왔는지 살펴보기 위해 고기 냄새가 잔뜩 밴 거리로 나섰다. 오늘의 거리는 한산했다. 다른 집도 우리 가게처럼 손님이 없는 것을 확인하니 안도감이 들면서도 어쩐지 힘이 쭉 빠진다.
남편의 갑작스런 퇴직으로 시작한 식당이었다. 크지는 않았지만 고기집이 몰려있는 제법 몫이 좋은 이 곳에 자리를 잡느라 퇴직금뿐만 아니라 집 담보로 대출까지 받았던 터였다. 일주일 내내 장사가 제법 잘되다 하루만 손님이 없어도 우리 부부는 초조해야 했다. 그런 날은 텅 빈 가게 안에서 남편의 얼굴을 보고 있노라면 숨이 막혀왔다. 이러다 몇몇 가게가 그러 했듯 우리 가게도 사라지는 것이 아닐까. 불안함에 몸을 일으켜 괜스레 빈 테이블을 닦다 가게 밖을 나섰다. 처음에는 바람이라도 맞을까 하고 나선 거였지만 나도 모르게 눈은 다른 가게의 손님들의 수를 가늠하고 있었다. 아마 그 날부터였을 것이다. 오늘처럼 이렇게 손님이 없을 때면 밖으로 나와 이 거리 위의 사람들이 어느 가게에 몰려 있는지 살펴보기 시작한 것은.
갑작스럽게 바람이 불어와 머리를 헝클어 놓는다. 왈칵 짜증이 밀려온다. 손으로 대충 헝클어진 머리를 다듬다 열 걸음쯤 떨어진 가게에 제법 손님이 들어 왁자한 가게가 보인다. 몇 달 전부터 공사를 한다고 법석을 떨더니 오늘을 가게 오픈하는 날인 듯싶다. 한산한 다른 가게와 달리 북적거리는 가게를 보고 있자니 공사한지 2년이 지난 우리 가게는 불빛 잃은 거리처럼 처량 맞게 느껴진다. 슬그머니 우리 가게도 리모델링을 다시 해야 하는 건가 싶은 생각이 머릿속에 반짝 떠올랐다. 그리고 이어서 리모델링시 드는 공사비용과 매달 들어가는 대출상환금과 또 아들녀석 대학등록금으로 들어가는 적금들이 인터넷의 덧글처럼 빠르게 따라 붙었다.
“새로 오픈했습니다. 오늘 오시면 테이블 당 소주 한 병이 무료입니다.”
아직 학생티를 못 벋은 여자애 하나가 전단지를 건낸다. 무심결에 받은 전단지를 보며 나는 슬쩍 새로 오픈한 가게 집으로 걸음을 옮긴다. 새로 개업했다고 했지만 예상했던 것 처럼 별로 새로운 것은 없었다. 외관이 좀 깨끗해 졌다 뿐이고 또 없었던 가게 간판이 새로 생긴 것 뿐 이다. 그런데도 ‘새로운 것’이라는 이유로 사람들은 우르르 몰려가 주문들을 했다. 어쩌면 그들도 새로 오픈한다고 사실 뭐 특별히 새로울 것도 없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고기에 불판을 올리며 오늘도 역시나 거기서 거기군, 이란 생각을 하고 있을지도.
숯불고기라는 유리창의 글씨 사이로 교복 입은 아이들이 경쟁하 듯 허겁지겁 고기를 입에 넣는 모습이 보인다. 모르긴 몰라도 저 학생들 테이블은 남는 이문이 별로 없을 것이다. 고기집을 운영하면서 알게 된 것이지만 사실 고기는 아무리 많이 팔아도 사실 남는 것이 없었다. 정작 이문이 남는 것은 술이었다. 비교적 고기값이 저렴한 이 거리의 가게들은 고기는 싸게 안주로 주고 술을 팔아서 이윤을 남기는 식으로 장사를 하고 있는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술을 먹지 않는 저 학생들의 테이블은 따지고 보면 남는 이득이 거의 없을 터였다. 이런 생각을 하며 오늘 이 집의 수입이 얼마 정도 될까 따져 보다 이제 막 상추 쌈 하나를 싸서 입에 넣는 학생 하나와 눈이 마주쳤다. 아이는 상추쌈을 넣지도 못하고 빼지도 못한 채 입을 쫙 벌리고 당황한 눈빛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황급히 고개를 돌린다. 그러고 보니 아들녀석 저녁도 못 챙겨주었다는 사실이 생각이 났다. 저녁 먹으러 식당으로 들릴 시간인데 남의 집 자식들 밥 먹는 모습이나 보고 있는 내 모습이 한심하게 느껴진다. 오늘은 가게의 손님도 없으니 오랜만에 신경 써서 밥 좀 챙겨줘야지 싶다. 남의 밥 차려주느라 정작 내 자식 밥 제대로 챙겨준 적이 언제인지 가물가물 하니 사는 것이 참 웃기다 싶다.
바람이 다시 세차게 불어온다. 머리가 다시 헝클어 진다. 서둘러 가게로 걸음을 옮기는데 앞치마에서 핸드폰이 성급하게 울린다. 발신번호를 확인하니 아들의 이름이 뜬다. 가게에 도착했나 싶어 전화를 받는데 들려오는 목소리는 아들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02
6인실 침대에 누워 있는 아들 녀석의 얼굴이 창백하게 느껴진다. 하얀 도화지 같은 피부곳곳에 듬성듬성 상처가 보인다. 아들의 얼굴을 한번 쓰다듬으려다 내 손길이 혹시나 아이를 아프게 하지 않을까싶어 황급히 손길을 거둔다. 다시 심장이 세차게 뛴다. 상처가 심하긴 하지만 몇 주 치료하면 괜찮을 거라는 의사의 말에도 안심이 되지 않았다. 여전히 아들의 얼굴을 보면 세포 하나하나가 가시가 되어 온 몸을 구석구석 찌르는 듯 했다.
인기척을 느꼈는지 자고 있는 아이가 몸을 뒤척인다. 이불을 고쳐 덮어 주고 침대에서 몇 걸음 물러나 앉는다. 커피라도 한잔 타 먹을까 싶어 몸을 일으키는데 간이침대 위에서 구부정한 자세로 잠들어 있는 굽은 등이 보인다. 아들이 위 절제 수술을 받고 회복중이라고 했던가. 노파의 작은 몸 구석구석에는 비굴함이 묻어 있었다. 별 이야기를 하는 것도 아닌데 궁중 암살을 계획하는 상궁처럼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나지막하게 이야기 했고 항상 주변을 끊임없이 살피다 눈이라도 마주치게 되면 몇 개 없는 앞니를 들여다보이며 웃음을 보였다. 한 평생을 다른 사람 밑에서 일해 온 이의 습성들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그런 그녀를 볼 때면 한숨부터 나오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노파의 모습은 어쩐지 어수선하고 고단하기만 이 곳 6인실의 모습과 꼭 닮아있어 보기 불편했다. 그래서 인지 노파와 마주할 때면 슬그머니 시선을 피하게 되었다. 오물거리는 입술에서 너도 내가 살아온 길을 걷게 될 것이라고 그러니 새삼스럽게 나를 그런 눈으로 볼 필요는 없다는 말이 툭하니 튀어 나올 것 같았다. 노파의 발 밑에 떨어진 낡은 스웨터가 눈에 들어온다. 주워서 노파의 어깨에 덮어 주려다 대신 그것을 세게 밟고 지나간다. 노파의 몸을 밟은 것처럼 가슴 한 구석이 뜨끔 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속이 시원해진다. 적어도 나는 그녀가 살아 온 길을 따르지 않을 것 이 라고 그러니 그렇게 나를 볼 때 동지를 보는 듯 한 눈으로 바라보지 말라고 쏘아준 듯 해서 통쾌했다.
정수기에서 뜨거운 물이 쏟아져 종이컵을 채운다. 생각보다 많이 쏟아진 물에 아차 싶어 종이컵을 바로 떼어 보지만 이미 종이컵의 물이 한강을 이루었다. 다시 커피를 탈까 하다가 성가신 마음에 한 모금 목구멍으로 넘겨본다. 따뜻한 기운이 훅 몸 속에 퍼진다. 맛이 밍밍하기만 했지만 그래도 따뜻한 것이 몸에 들어가니 미세하게 흔들리던 마음이 천천히 가라 앉는다. 처음 이 곳 병원에 왔을 때에 비하면 세상 어느 성자 보다 지금 내 마음은 평온했다.
처음 응급실에 왔을 때 세상이 무너져 내린다는 기분이 어떤 심정인지 충분히 이해할 정도로 나는 흔들리고 있었다. 상처투성이 몸을 하고 의식을 잃고 있는 아이를 보며 지나가는 아무나 붙잡고 늘어져 누가 내 아이를 이렇게 만든 것이냐고 따져 묻고 싶었지만 이런 나와 상관없이 병원의 사람들은 분주하기만 했다. 무언가에 쫒기 듯 나를 스쳐 이곳에서 저곳으로 끊임없이 이동하고 있을 뿐이었다.
찢겨진 교복 사이로 반토막이 난 아들 녀석의 명찰이 보인다. 성은 맞는 동안 어디로 날라 갔는지 이름만 남았다. ‘김윤호’ 는 아이의 이름이었다. 유난히 명이 짦은 시댁의 유전적 특성 때문에 무조건 오래 살 수 있는 이름으로 신경 써서 지은 이름이었다. 아무 탈 없이 건강하게만 자라라고 지어 놓은 이름인데 이렇게 실신이 될 때까지 맞아서 병원 응급실에 누워 있는 모습을 보니 정말 기가 막혔다. 처음에 아들이 누군가에게 맞아 실신된 채 발견되었다고 이야기 들었을 때는 당연히 웬 깡패 같은 놈들을 잘못 만나 봉변을 당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느 놈인지 잡히기만 하면 온 힘을 다해서 아들 녀석의 두배나 세배 쯤 쥐어뜯어 놓으리라 다짐했다. 그러나 정작 아들 녀석을 때린 사람들의 정체가 밝혀지자 온 몸에 힘이 빠졌다. 아이를 때린 이들을 다름이 아닌 같은 반 친구들이었던 것이다. 때린 아이들의 명단을 들어보니 더 기가 막혔다. 그 명단 중에는 언젠가 가게에 친구라고 데리고 왔길래 고기까지 구워 먹인 적이 있는 아이의 이름도 있었다. 낄낄거리며 고기를 구워 먹던 아이의 얼굴이 스친다. 또렷이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큰 눈망울에 순한 얼굴을 가지고 있는 소 같은 인상을 가진 아이였다. 그런 아이가 윤호를 때리는데 가담을 했다니 새삼 대한민국에서 아이를 키우는 것이 무섭다고 말했던 누군가의 말이 실감이 되었다. 정말이지 학교폭력이라는 말은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 여기고 있었다. TV에서 아무리 심각하게 떠들어도 다른 나라의 누군가의 이야기처럼 무관심하게 흘려버렸을 뿐이었다. 윤호를 때린 아이들에 대한 가시가 방향을 돌려 나를 찌른다. 나는 내 아이가 저렇게 되는 동안 무엇을 했단 말인가. 병실에 들어 와 아이의 얼굴을 다시 본다. 윤호 눈가에 시퍼렇게 든 멍이 보인다. 그리고 그 뒤로 서너명의 아이들의 발길질을 견디며 몸을 웅크리고 있는 아들 녀석의 모습도 함께 보였다. 주먹을 꽉 지고 이를 악물어 본다. 내일 그 아이들의 얼굴을 똑바로 볼 것이다. 그리고 그 들에게 절대로 만만해 보이지 않으리라. 내 아이를 이렇게 소중하게 여기는 엄마가 있다고 그리고 아빠가 있다고 똑똑히 보여 줄 것이다. 그리고 내 아들을 저렇게 만든 대가를 반드시 치러내게 할 것이다. 절대로 절대로 그들에게 만만하게 보이지 않으리라.
03
오랜만에 뾰족구두를 신은 탓인지 발끝이 아파온다. 발걸음이 자연스럽게 느려진다. 그런데도 남편이란 작자는 성큼성큼 저만치 앞으로 걸어갈 뿐이다. 저 앞으로 아이의 학교 정문이 보인다. 입학식 때도 바쁘다는 핑계로 한번 와보지 못한 학교였다. 아무리 이런 일로 방문했다 하지만 그래도 명색에 담임선생님을 처음 만나는 자리인데 뭐라도 사야지 싶어 주변을 둘러보는데 근처에 적당한 가게가 보이지 않는다. 낡은 간판을 달고 있는 조잡해 보이는 문방구 하나만 보일 뿐이다. 아무리 작아도 그래도 학교 앞인데 음료수는 있겠지 싶어 걸음을 돌리는데 교문 앞에서 피켓을 들고 서 있는 여자가 보인다. 요즘은 가게홍보를 저런 식으로 하나 싶어 조금 가까이 가본다. 아직 5월이라 하지만 피부에 닿는 햇빛이 따가웠다. 그러나 피켓을 들고 있는 여자의 모습은 전혀 흔들림이 없어 비장함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힐긋 고개를 들어 피켓 내용을 살펴본다. 그제서야 흔들림 없는 그녀의 행동이 어디서 나왔는지 이해가 되었다. 그것은 얼마 전 내가 느낀 심정이기도 했고 또 자식의 일이면 아무것도 가리지 않고 앞에 나서는 어미의 마음이기도 했다.
피켓의 내용은 이랬다. 여자의 아들은 지금 윤호가 다니는 학교의 학생이었고 여자의 아이는 학교폭력을 이기지 못하고 따돌림을 당하다가 자살을 했다. 그리고 이 엄마는 아들의 죽음의 책임을 묻기 위해 학교에 항의를 했지만 학교가 가해 학생들에게 보인 조치는 미비했다. 그러한 이유로 지금 저 여자는 아이의 억울함을 풀어 주기 위해 저렇게 서 있는 것이었다. 피켓 내용을 읽자 꼿꼿해 보이기만 했던 여자의 몸짓이 휘청거리는 풀잎같이 느껴졌다. 여기 저기서 흔들리는 바람을 온 몸으로 맞고 있는 그런. 차마 발검음이 떨어지지 않아 여자의 곁을 무심히 서성이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남편이었다. 전화를 받자마자 대번 왜 발리 오지 않느냐며 화를 버럭 낸다. 남편의 목소리를 들으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래 내가 지금 남의 자식 일에 신경 쓸 때가 아니다. 내 아이는 우리 윤호는 저렇게 억울하게 만들 수는 없는게 아닌가.
윤호를 때린 아이들의 태도는 뜻밖에 당당했다. 그래서 나는 처음 결심과는 다르게 당황 할 수 밖에 없었다. 나는 적어도 그들이 진심이 아닐지언정 용서해 달라고 잘못했다고 반성한다고 잔뜩 주눅 든 모습을 보여줄 것이 라고 예상했던 것이다. 그들이 당당한 이유는 이랬다. 윤호가 그들을 배신을 했고 우리는 그 배신의 대한 대가로 응징을 한 것 뿐이었다고 했다. 마치 자신들이 피해자라도 된 냥 당당하게 자신들의 행동은 정당한 것이라고 우리에게 말하고 있었다. 덩치는 컸지만 소처럼 순해 보이는 저 아이들이 진짜 우리 아들을 실신할 때까지 때린 것인지, 그리고 내가 17년간 키워왔던 아들이 정말 저들이 말한 행동을 한 것인지, 나는 한 동안 아무 말도 못하고 멍해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저 아이들이 말하는 윤호의 배신은 아까 교문에서 본 여자와 관계가 있었다. 피켓의 내용처럼 그녀의 아들은 계속되는 학교 친구들의 폭력에 이기지 못하고 자살을 했다. 그리고 미비한 학교측의 대응에 그 아이의 어머니는 저렇게 피켓을 들고 거리에 나섰던 것이다. 문제는 윤호가 이 이을 개입해서 간신히 무마되었던 사건이 커졌던 것이다. 죽은 아이가 안타까웠던 아들은 이 일을 동영상으로 촬영해 사람들이 많이 방문하는 싸이트에 올렸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일은 자살한 학생의 가해자인 저 아이들을 곤란하게 만들었고 그에 대한 보복으로 내 아들 윤호가 저렇게 병원에 누워 있다는 것이다. 더듬더듬 그러나 본인들은 잘못 이 없다고 변명 아닌 변명을 늘어놓는 아이의 말을 듣고 있자니 속에서 천불이 일어나는 것 같았다. 벌쩍 자리에서 일어난다. 내 아들이 뭘 잘못 했다고. 그 작은 아이가 얼마나 억울했을지, 그런데도 먹고 살기 바쁜 부모에게 이 일에 대해 한마디도 하지 않고 혼자 견뎌냈을 아이의 모습이 떠올라서 참을 수 없었다. 뺨이라도 한 대 올려 부쳐야 속이 풀릴 것 같았다. 그러나 나보다 남편이 먼저였다. 네 명의 학생 중 남편과 가장 가까이 있었던 아이의 얼굴의 뺨을 때린 것이다.
“짝”
남편의 손바닥이 아의의 뺨에 닿는 소리가 교무실에 울려 퍼졌다.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흐르는가 싶더니 그 아이의 부모처럼 보이는 남자가 일어나 남편을 막아선다. 애써 참고는 있지만 눈은 남편을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겨우 뺨 한 대 맞은 것 가지고 저렇게 호들갑스러운 반응이라니. 이를 악물고 남자를 쏘아본다. 니 자식 때문에 우리 아들은 이것보다 몇 배는 더 아팠다고 그러니 그렇게 우리 남편을 볼 필요 없다고 이런 모든 마음을 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런 내 눈빛을 읽었는지 남자가 다시 털썩 자리에 앉는다. 왠지 이야기 길어질 것 같은 느낌이다.
가게 문을 열고 행주를 빨아 테이블을 닦는다. 기계적으로 몸을 움직이곤 있지만 쉽게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남편도 내 마음과 같은지 가게 이곳 저곳을 서성이고 있다. 빨리 장사 준비 안하고 뭐 하는 거냐고 잔소리를 한바탕 해줄려다가 만다. 하긴 지금 나처럼 남편 속도 시끄러울 것이다. 오늘 교무실에서 윤호를 때린 아이의 부모는 뜻밖에 2000만원의 금액을 제시했다. 윤호가 올린 동영상을 완벽하게 내리고, 그것에 대해 더 이상 문제 삼지 않는다는 조건이었다. 아이를 생각하면 단번에 거절해야 했지만 남편과 나는 흔들리고 있었다. 우물거리는 우리의 태도를 그들이 눈치 채지 못 했을리 없었다. 그들의 부모의 대표쯤으로 보이는 남자가 명함을 주는 것으로 그 자리를 파했다.
앞치마에 명함을 넣고 그것을 만지작 거려본다. 손님이 없어 오늘도 가게가 한산하다. 점점 떨어져 가는 손님에 다시 머리가 아파온다. 나가보지 않아도 리모델린 새로운 가게로 손님이 몰렸을 것이다. 벌써 몇 주째 같은 패턴이다. 이천원만원 정도면, 거창하게는 아니더라도 간단하게라도 진행할 수 있지 않을까.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그것은 안되는 일이라고 그것은 자식을 가직 장사를 하는 일이나 다름없는 일이라고 결정을 내렸지만 점점 돈을 받는 것은 어떨까라는 생각이 불쑥불쑥 고개를 내미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특히 비어있는 테이블을 볼 때면 더욱더 그랬다. 먹고 사는 것이 사람을 이렇게 치사하게 만든다.
“우리 그냥 돈 받자.”
웅얼거리 듯 말을 뱉고 담배를 집어 남편이 황급히 밖으로 나간다. 직장을 그만두게 되었을 때도 저렇게 무책임하게 말만 뱉어 놓고 자리를 피하더니 이번에도 저런 식이다. 궁시렁거리기는 했지만 쉽지 않는 결정이었다는 것을 나도 잘 알고 있었다. 나 또한 하루에도 몇 번씩 저렇게 흔들렸으니까 말이다. 상처투성이의 윤호의 얼굴을 떠올리면 그건 안 되는 일이라고 남편을 따라가야 맞는 것인데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한번쯤은 인생에 있어서 한번쯤은 비겁해 져도 되지 않을까. 앞치마 주머니에서 명함을 꺼내 든다. 반듯하게 적혀 있는 명함 주인의 이름과 전화번호를 보다가 핸드폰을 꺼내 든다. 그냥 눈 한번 감으면 되는 일이다. 핸드폰 너머로 중저음의 목소리가 지금 내 손위에 있는 명함처럼 반듯하게 들려온다.
04
병실 문을 열고 입원실로 들어간다. 그새 옆에 환자들과 제법 친해 졌는지 아이의 웃는 소리가 문밖까지 들릴 정도다. 저렇게 웃는 것을 보니 아직 군데군데 상처는 남아있어도 이제는 많이 나아진 듯 싶어 안심이 된다. 한참 웃던 아이가 나와 눈이 마주친다. 반가운 마음에 손을 들어 아는 척을 하는데 언제 웃었냐는 듯이 이내 표정이 샐쭉해 진다. 돈을 받고 합의해 준 것을 알게 된 후부터 나를 대하는 태도가 저 모양이다. 왈칵 짜증이 밀려와 한바탕 혼쭐을 내 주려다가 나를 보는 시선들이 느껴져 간신히 화를 눌러낸다. 내 표정을 읽은 아이가 휙 이불을 들어 얼굴까지 덮어버린다. 내 말을 다 듣기 싫다는 것이다. 떠들썩했던 병실에 한순간 고요가 찾아온다. 잠시 나와 아이를 지켜보는 이들의 눈알 굴리는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무료하기만 한 병실에 재미난 구경거리가 생겼다는 듯 그들의 얼굴에는 호기심이 가득했다. 어떻게 해야 하나 아이를 나무라지도 그렇다고 병실을 나가지도 못한 채 잠시 고민을 하는데 옆 침대의 노파가 내게 손짓을 한다. 그것을 신호로 나는 아이의 침대 옆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긴다. 내 행동이 심심하게 느껴졌는지 사람들의 시선도 점점 흩어진다.
창문가에 있는 아이의 침대로 걸어와 털썩 자리에 앉는다. 내가 옆에 와 앉은 기색이 느껴졌을텐데도 윤호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이불에 제 몸을 감고 시위를 하는 아들을 보는 마음이 영 편하지가 않다. 어쨌든 나는 분명히 알고 있다. 그 날 교문 앞에서 피켓을 든 여자와 그리고 그녀의 죽은 아들.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를, 옳지 못한 것에 대항하여 세상에 그것을 알리려다 다쳐 이렇게 누워 있는 윤호까지. 나는 그들의 꿈틀거림을 무참히 짓밟아 버린 것이라는 것을. 어쩌다 눈이 마주치면 내게 던지는 엄마는 친일파와 다를 바가 없다는 아이의 고함소리가 꼭 틀린 말은 아니라는 사실을 나는 알고 있다. 하지만 그런 것보다 그런 거창한 정의보다 내게 필요한 것은 당장 먹고 살아야 되는 일이고 통장에 찍히는 이천만원이다. 이 녀석도 이제 몇 년 후면 목구멍의 치사함에 대해 아는 날이 있겠지, 아니 너는 내 아들은 이천원만 따위에 비겁해 지는 그런 비루한 삶은 모르는 것이 좋겠다.
몸을 일으켜 아이의 이불을 휙 잡아당긴다. 그리고 아이의 등짝을 몇 대 때려준다. 아프다고 한참 악을 쓰던 아이가 몸을 일으키더니 나를 말리려는 노파의 뒤로 가서 몸을 숨긴다. 그렇게 숨는다고 덩치가 산만한 녀석이 보이지 않는 것도 아닌데 아이의 표정이 의기양양하다. 저 녀석이. 소리를 꽥 지르려다, 희미하게 웃는 노파의 얼굴을 보니 힘이 빠진다. 나를 다 이해한다는 그 미소에 나는 어쩐지 힘이 빠져 버린다. 모든 것을 덮어 준다면 이천만원을 주겠다는 말 앞에서 나도 저런 표정을 보였을까. 몸을 돌려 병실을 나온다. 시원한 음료수라도 마셔야지, 정말 속이 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자판기에 돈을 넣는다. 깜빡, 내가 넣은 동전으로 허락되는 음료수가 눈을 번쩍 떠 보인다. 습관적으로 캔 커피를 뽑으려다 한동안 잠을 못 이루었다는 것을 깨닫고 이온음료의 버튼을 누른다. 자판기가 던져 놓은 음료수를 집에 들고 입 속에 한 번에 쏟아 넣는다. 속에 찬 것이 들어가자 여기 저기로 흩어져서 심란했던 마음이 잡히는 듯 했다. 주머니에서 끈을 꺼내 잔머리 하나 없이 단단히 고정시켜 묶는다. 아무리 요즘 들어 손님이 없다 해도 남편 혼자 가게를 지키는 것은 영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뾰루퉁 하긴 해도 아들 얼굴을 봤으니 얼른 가게로 가야겠다 싶어 걸음을 옮기는데 핸드폰이 요란하게 울린다. 남편인가 싶어 발신번호를 확인하는데 모르는 번호이다. 그냥 받지 말고 갈까 하다가 화면을 터치해 전화를 받는다. 핸드폰 너머로 곡소리 같이 스산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 여자였다. 며칠 전 교문에서 피켓을 들고 있었던, 아들이 학교 폭력을 이기지 못해 자살했다는 그 여자 말이다. 그녀는 두서없이 내게 도와달라고 이야기 했다. 그 소리가 하도 가냘파서 그녀의 말을 전부 알아 들을수 없었지만 사정이라면 나도 이미 알고 있었다. 한 동안 윤호가 올린 동영상 때문에 많음 사람들이 여자의 아들과 그녀의 이야기에 주목하는 시점에서, 갑자기 동영상은 삭제되었고 그렇게 이 사건에 대해 분개하던 사람들도 서서히 사라졌던 것이다. 모든 것이 떠나 버린 그 곳에 그녀는 점점 희미해 졌을 것이다. 통화가 이어지는 20분 동안 나는 한마디도 하지 못한다. 그저 간간히 숨소리만 뱉을 뿐이었다. 미안하다고 나도 어쩔 수 없었다고 꼭 한마디 하고 싶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곡소리 같은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것 뿐이었다. 툭 하고 거짓말처럼 전화가 끊겼다. 사방이 고요해 졌다. 그리고 잠시 후 윤호의 병실 쪽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05
노파의 장례식장은 예상했던 것처럼 한산했다. 아들 녀석이 하도 졸라서 함께 왔지만 영 내키지 않았다. 이런 내 마음을 아는지 속없는 녀석은 눈물이라도 한바가지 쏟을 기세다. 서굴러 가방에서 준비한 봉투를 꺼내 조의금 함에 넣는다. 병실에서 몇 번 마주쳤던 그녀의 손자가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다 꾸벅 성의 없게 인사한다. 나도 그의 장단에 맞추어 대충 방명록에 이름을 휘갈긴다.
국화를 하나 집어 그녀의 영정 앞에 놓는다. 고개를 들어 그녀를 다시 본다. 노파는 마지막 영정 사진마저 초라했다. 사진 속 눈이 지그시 나를 바라보고 있다. 그 시선이 내 몸 구석구석을 훑어 내리는 듯 했다. 몸에 힘이 쭉 빠진다, 잠시 저 앞으로 걸어가는 노파의 뒷 모습이 보인다. 왜 인지 그녀를 잡고 싶어 큰 소리로 부르는데 휙 고개를 돌린 그녀가 킬킬킬 웃는다. 정신을 차리고 눈을 똑바로 뜬다. 그리고 몸을 돌려 장례식장을 나온다. 서둘러야 했다. 오늘 윤호를 때린 아이들의 부모님이 우리 가게로 오기로 한 날이었다.
빨리 온다고 걸음을 재촉 했지만 장례식장에 들린 탓이었는지 약속 시간이 훌쩍 지나있었다. 조금 돈이 아깝더라라도 택시를 타고 올 것 그랬나 보다. 가게에서 몇 미터 떨어진 곳에 서서 가쁜 숨을 고른다. 파우더를 꺼내 거울을 들여다 본다. 땀이 번져 얼굴이 번질번질 한다. 재빨리 파우더로 얼굴을 찍어낸다. 내친김에 립스틱을 꺼내 입술도 바른다. 대충 화장을 고치고 나니 제법 얼굴에 생기가 도는 듯 하다. 거리 한가운데서 화장을 고치는 모습이 우스웠는지 지나가는 여자 둘이 힐긋 힐긋 나를 보며 웃어댄다. 잠깐 좋아졌던 기분이 팍 상한다. 나도 말이야. 너희 나이 때는 이렇게 아무대서나 화장을 고쳐 되는 아줌마로 늙을지 몰랐단다. 지금 중요한 것은 언제 다시 볼지 모르는 이들의 시선이 아니다. 오늘 그들에게 돈을 받으면서 조금이라도 초라해 보이지 않는 것이 그 무엇보다 중요했다.
가게 문 사이로 분주히 움직이는 남편의 모습이다. 손님이라도 받았나 싶어 보는데 윤호를 때린 아이들과 부모 들이 앉아 있는 자리로 반찬을 연신 나르는 그의 모습이 보인다. 피식 웃음부터 나왔다. 왜 하필이면 약속 장소를 가게로 잡아서는, 아니 잡으면 잡았지 뭐 좋다고 저렇게 반찬을 나르고 있냐는 말이다. 속없이 웃고 있는 남편의 얼굴을 보니 뜨거운 것이 가슴에서 울컥 올라오는 것이 느껴진다.
“쾅”
문을 벌컥 연다. 갑작스럽게 들려오는 쾅 소리에 놀랐는지 그들의 시선이 나한테 꽂힌다. 성큼성큼 걸어가 가게 끝에 앉아 있는 그들 앞에 선다. 내가 그러던지 말던지 남편은 왜 이렇게 늦었냐고 핀잔을 한번 주더니 살뜰히 고기를 구워댄다. 기가 막혀 하는 모양새를 보고만 있는데 그가 고개를 들더니 나에게 눈을 찡긋해 보인다. 아마 내가 오기 전에 돈을 받았던 모양 이었다. 그러니까 지금 남편은 그들이 건네 준 돈에 감격해서 이러고 있는 것이었다. 헛 웃음만 피식피식 새어 나올 뿐이었다,
불판에서 고기가 익어가자 고소한 냄새가 코를 찌른다. 그들이 젓가락을 들어 연신 고기를 입에 넣는 모습이 보인다. 남편은 지치지도 않는지 이번에는 고기를 먹기 좋게 잘라내느라 바쁘다. 가끔씩 아들을 때린 아이의 밥그릇 위로 고기를 놓아주는 것도 잊지 않는다. 아이의 젓가락질은 서툴렀다. 반찬을 집었다 번번이 떨어뜨리기 일쑤였다. 저 손으로 우리 윤호 어디를 때렸을까. 피켓을 들고 여자의 아들에게는 또 어떤 짓을 했을까. 이천만원에 모든 일이 무마되는 것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아저씨 젓가락 좀 가져다 주세요”
반찬을 그렇게 떨어뜨리더니 기어이 젓가락 마저 바닥에 떨구어 낸다. 대감의 명령을 받은 머슴처럼 남편이 벌떡 일어나 젓가락을 가지러 간다. 깜박 깜박 다 써가는 형광등처럼 내 앞의 풍경이 어두워졌다 밝아졌다 흔들렸다. 벌떡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리고 온 힘을 다해 상을 엎어 버린다. 요란한 소리가 가게에 퍼진다. 그리고 내 웃음소리도 크게 들려온다. 김치국물을 뒤집어쓰고 어리둥절하게 나를 보는 그들의 표정이 볼만하다. 옆 테이블에서 휴지를 뽑아 차분하게 내 옷에 튄 반찬을 닦아낸다. 그리고 가게를 나오기에 문 쪽으로 걸음을 옮긴다.
가게 바닥에 부딪히는 구두 소리가 경쾌하게 울린다.
핸드폰을 들어 피켓을 들고 있는 여자의 번호를 찾아 전화를 건다. 따뜻한 봄기운이 톡톡 내 몸을 간지럽힌다. 그녀가 전화를 받으면 나는 무슨 말을 해줘야 할까. 여보세요. 그녀의 희미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도 모른 채. 이제 봄이 오고 있다고 연신 중얼 거릴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