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9차 창작콘테스트 단편소설 공모 <토스트 레시피가 사라졌다>

by 김day posted May 29,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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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스트 레시피가 사라졌다

 

Written by day

 

바람을 타고 떨어지는 빗소리들은 너무 가벼워 숨을 멈추지 않으면 들을 수 없을 것만 같았다. 떨어진 빗방울들이 춥다는 듯 창문을 두드리다 지쳤는지 하나 둘 창문에 매달리기 시작했다. 비가 오고 있었구나. 그제야 알았다는 듯 나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내 말에 대답이라도 하듯이 빗소리가 한 단계 더 소리를 높였다. 나는 거실에 있는 소파에 앉아 창문에 매달린 빗방울들을 보다가 눈을 감았다. 빗소리를 따라 머릿속에 있는 어느 한 문을 열었다. 거기에는 련이 서있었다. 나는 련에게 다가가 안겼다. 련은 두어번 내 등을 토닥이더니, 내게 계란 토스트를 건네주었다. 그것을 망설임 없이 받았다. 련이 내 손을 잡고 또 다른 문으로 이끌었다. 그 문을 열었더니, 이번에는 그녀가 나왔다.

비오는 날이면 빗소리는 종종 집안의 빈 공간을 메우고 내 속으로 흘러들어왔다. 집안을 채우는 것도 모자라 나까지 채우려고 욕심내는 게 괘씸하다 생각하면서도, 그저 그것들이 만드는 문과 그 안쪽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문 안에는 늘 련이 있었다. 계란 토스트가 있었다. 그리고 그녀가 있었다. 눈을 떴다. 아무도 없었다. 련도, 그녀도, 누구도 이 집안에 없었다. 세 사람이 살던 집안에는 이제 한 사람밖에 남지 않았다. 나도 언젠간 그들처럼 사라져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련이 사라진 건 작년 이맘때쯤이었다. 그날 아침 부엌에는 아침밥이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나는 냉장고에 붙어있는 달력을 확인했다. 련의 이름이 적혀있었다. 아침 담당을 잊었나 싶어 련을 불렀다. 집안에 온통 련의 이름이 메아리 쳐 돌아다녔지만, 대답은 없었다. 나는 련의 방문 앞에 서서 문을 두드렸다. 방 안에서는 어느 기척 하나 들리지 않았다. 문을 열어야 하나, 망설였다. 서로의 방에는 들어가지 않는 암묵적인 약속이 있기 때문이었다. 사생활을 존중한다는 차원이 그 이유였다. 그래도 아침을 굶을 수는 없잖아. 마른 침을 삼켰다. 련의 방 손잡이에 손을 대는 게 오랜만이어서 조금 떨렸다. 손잡이를 잡아 돌렸다. 방문이 조심스레 열렸다.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어디 갔지?

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비 오는 날에는 밖을 나가지 않는 련이 아침부터 어디를 간 건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다. 학교에 갔나 싶지만, 생각해보니 오늘은 공강이었다. 공강이 아니었더라도 련은 비가 오는 날에 대부분 자체 휴강을 했다. 그래서 F를 받는 경우가 수두룩하고 졸업 날이 뒤쳐져 갔지만, 련은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옆에서 보는 내가 더 답답할 뿐이었다.

하는 수 없이 아침은 만들어 먹기로 했다. 련에게 따지는 건 그녀가 돌아오고 나서 해도 늦지 않았다. 나는 여느 때처럼 계란 토스트를 만들 준비를 했다. 소스를 확인하니 바닥나 있었다. 벌써 다 먹었나. 계란 토스트를 먹는 이유도 어찌 보면 그 안에 들어가는 특제 소스 때문이었으니 나는 소스부터 만들기로 했다. 냉장고 쪽으로 다가갔다. 레시피를 달력 뒷면에 붙여놓았기 때문이었다. 달력을 들어 맨 뒷장을 확인했다. 계란 토스트 특제 소스 레시피가 없었다. 련이 좋아하는 함박스테이크 특제 소스를 담은 레시피만 있을 뿐이었다.

소스를 만들려면 레시피를 봐야했다. 레시피에는 몇 분 몇 초 동안 파를 볶거나 언제 굴소스를 넣는 등의 일이 자세히 적혀있었다. 그 중 하나라도 잘못 되면 소스 맛이 변하기 때문에 항상 만들 때면 레시피를 보면서 정확히 시간을 재고 만들어야만 했다. 그런데 레시피가 없어졌다. 저번 주까진 있었는데.

그제야 나는 련이 계란 토스트 레시피를 들고 사라졌다는 걸 깨달았다.

왜 그 날이었을까. 아마 련은 계란 토스트 소스가 떨어진 걸 나보다 먼저 눈치 챘던 것 같았다. 계란 토스트를 먹는 련을 떠올렸다. 눈을 감고서 토스트를 한 입 베어 먹고 그저 가만히 있던 련의 모습. 마치 맛을 감상하는 것만 같았기에, 나는 그녀가 사라지고 나서는 련이 이제 계란 토스트를 싫어하지 않게 되었구나 했다. 그래서 련과 함께 토스트 레시피가 사라졌다는 것이 더 충격으로 다가왔다. 극도로 싫어하는 비 오는 날에 레시피를 가지고 밖으로 나갔다는 것을 부정하고 싶었다. 돌이켜보면 맛을 감상하고 있는 줄로만 알았던 그 모습은 어떻게 삼켜야하는지 모르는 아이의 모습과 유사했다. 삼켜야 하는 행위를 잊은 사람처럼 입안에 넣고 어쩔 줄 몰라 했던 것을, 레시피가 있던 날에는 몰랐다.

 

소파에서 일어나 부엌으로 갔다. 배가 고팠다. 달력에 써져있는 빨간색 이름을 바라보다가 냉장고 문을 열었다. 냉장고 안에는 더 이상 먹을 수 없을 정도로 딱딱해진 함박스테이크가 들어있었다. 련이 만든 것이었다. 작년에, 련이 잔뜩 만들어 냉장고 안에 쌓아놓은 함박스테이크가 이제 몇 개밖에 남지 않았다. 그리고 앞으로도 몇 개밖에 남지 않을 것이다. 더 이상 먹지도, 그렇다고 버리지도 못하게 되어버렸기 때문이었다. 나는 먹지 못하는 것을 꺼내 식탁 위에 올려놓았다. 그러자 두꺼운 유리를 놓는 소리가 들렸다.

련이 늦은 새벽에 부엌에서 함박스테이크를 만들기 시작한 건 사라지기 일주일 전부터였다. 련은 몇 주 씩이나 먹을 수 있는 양을 만들었다. 나는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대수롭지 않게 안자냐고 물었다. 련은 날 보지도 않고 고개를 끄덕이고서 만들기에 집중했다. 번갈아 가며 만드는 게 귀찮아서 대량으로 만드는 것인지, 아니면 떠날 거라는 걸 예상하고 만든 것인지 아직도 알 수 없었다.

사실 알 수 없었다고 생각하는 것도 웃기는 짓이었다. 련은 확실하게 내게 티를 내고 있었다. 어느 때부터 새벽에 함박스테이크를 만들지 않은 련을 보고, 이제부터 아침에 내가 알아서 꺼내먹으면 되겠구나 싶었다. 다음날 아침에 나는 냉장고에서 함박스테이크를 꺼내 전자레인지에 돌리고 있었다.

뭐하는 거야?

련이 전자레인지 앞에 서있는 날 밀치며 데우는 시간이 끝나기도 전에 전자레인지 문을 열었다. 그리고 덜 익혀진 함박스테이크를 꺼내 들고 날 바라봤다.

먹으면 안 되는 거였어?

련은 무언가를 말하려는 듯 입을 열다가 금세 다시 다물었다. 그리고 마치 아직 한글을 잘 몰라 어색하게나마 단어를 내뱉는 외국인처럼 띄엄띄엄 말을 내뱉었다.

아직, 아니야, 아직.

그 모습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련은 냉장고에서 우유를 꺼내 식탁에 놓았다. 그리고 찬장을 열었다 닫는 것을 반복하며 시리얼을 찾고서 내게 건넸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식탁 위에 올려두었던 함박스테이크 밑으로 물이 새어나왔다. 나는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냉장고로 가 식빵을 꺼냈다. 계란 토스트를 만들어 먹기로 했다. 계란 토스트를 만드는데 10분도 걸리지 않았다. 토스트기에 빵을 넣고, 구워지는 동안 계란을 풀고 특제 소스를 바르기만 하면 완성이었다. 문제는 특제 소스에 있었다. 레시피가 사라져 예전의 맛을 낼 수 없었다. 나는 기억에 나는 대로 소스를 만들기 시작했다.

완성된 계란 토스트를 한 입 베어 물었다. 어금니 사이로 바삭한 빵과 소스가 함께 들어왔다. 나는 그것을 몇 번 씹다가 삼키지 못하고 입에 머금었다. 이상했다, 여전히. 계란 토스트를 만들었는데 함박스테이크 맛이 났다. 나는 싱크대로 가서 입에 머금었던 것을 내뱉었다. 이제는 무엇이 틀렸는지 알려줄 사람이 없어 어떡해야할지 잘 모르겠다. 평생 그 토스트를 먹지 못한다는 것에, 그녀가 떠올랐다.

사실 나는 련이 늦은 새벽까지 함박스테이크를 만드는 모습에서 그녀를 보고 있었다. 그녀는 매일 아침마다 련과 나에게 밥을 만들어줬다. 귀찮을 때도 있을 텐데, 정말 하루도 빠짐없이 아침밥을 만들었다. 어떨 때는 계란 토스트, 또 다른 때는 함박스테이크, 그 두 개만이 반복되어 나왔다. 나는 계란 토스트를 좋아했다. 정확히 말하면 계란 토스트에 바르는 그녀의 특제 소스를 좋아했다. 그리고 련은 나와 달리 함박스테이크 위에 나오는 특제 소스를 좋아했다. 그래서 아침에 계란 토스트가 나올 때면 련은 항상 삐져서 아침을 먹는 내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가 사라지고 나서 련과 나는 하루마다 돌아가며 서로가 좋아하는 것을 식탁 위에 올려놓았다. 내가 당번일 때는 계란 토스트, 련이 당번일 때는 함박스테이크가 하루 간격으로 교차되며 식탁을 점령했다.

련이 레시피를 가지고 사라진 날 이후로 계란 토스트를 만들어 먹을 때마다 함박스테이크 맛이 났다. 정확히는 소스 맛이 그랬다. 나는 혹여 련이 만들고 간 함박스테이크에서 계란 토스트 맛이 나지 않을까 싶어 꾸역꾸역 함박스테이크를 입에 넣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함박스테이크는 그대로 함박스테이크 맛이었다. 그것은 그녀가 있고, 네가 사라지지 않았을 때 먹었던 맛과 똑같았다.

계란 토스트를 식탁 위에 두고 다시 거실로 넘어와 소파 위에 누웠다. 눈을 감았다. 련의 흔적을 되새겨보기로 했다. 어디로 갔을까. 생각해보니 사라지기 전 날부터 련을 보지 못했다. 아침에 같이 등교를 하고, 수업이 모두 끝나고 집으로 온 이후부터. 아니다. 과가 다르니 학교에 도착하고 각자 수업 들으러 헤어진 그때부터 지금까지 나는 련을 보지 못했다. 련이 집에 들어왔던가. 나는 그저 내가 집에 들어오고 나서 련의 방문이 굳게 닫혀있는 걸 보고서만 련이 집에 왔구나 생각했다. 그 후로 방에 가서 잠만 잤다. 새벽이 되어도, 일어날 생각 없이 쭉 잤다. 두 번의 조 모임과 발표가 있었기에 피곤했기 때문이었다. 눈을 떴다.

그때부터 련이 없었구나.

련은 분명 계란 토스트 레시피를 나도 모르고, 숨긴 자신조차 모르는 곳에 놓고서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아직 오지 않은 건 레시피를 어디에 숨길지 정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렇게 믿어야만 했다. 나는 다시 눈을 감고서 스스로를 세뇌시켰다. 그렇게 믿어, 믿어, 믿으라고. 마음이 편안해지자 빗소리가 다시금 선명하게 들리기 시작했다. 빗소리가 문을 만들고, 그 문 안쪽에 련이 있었다. 계란 토스트를 들고 있는 련이 내 손을 잡고 다른 문이 있는 곳으로 이끌었다. 련이 노크를 했다. 문이 열렸다. 그녀가 보였다.

 

그녀는 다름 아닌 련과 나의 어머니였다.

련과 나는 일곱 살 때 그녀를 만났다. 우리는 태어나자마자 보육원에 맡겨지듯이 버려졌고, 거기서 일곱 살 때까지 쭉 자랐다. 계속 붙어 다녀서 그런 것인지, 우리는 누가 가르쳐주지 않았는데도 서로에게 길들여지고 있었다. 문득, 련이 아직도 그때 일을 기억하고 있을지 궁금해졌다. 그녀가 우리를 처음 봤던 날. 그녀의 눈에 우리가 보였고, 우리 눈이 처음으로 그녀를 보게 된 날. 그녀의 발걸음 하나하나와 뒤로 했던 풍경 하나하나가 아직도 또렷이 기억났다.

그녀가 보육원을 둘러싼 철장 문을 열고 들어온 순간에 보육원에 있는 모든 아이들의 시선은 다 한 곳으로 쏠렸다. 우리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철장 문이 녹슨 소리를 내는 순간부터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봤다. 아름다웠다. 처음 만난 사람이 지나치다가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뒤로 돌려 한 번 더 바라볼 만큼.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우리는 재빨리 시선을 땅에 꽂았다.

보육원 안으로 사람이 들어오는 한, 높은 확률로 아이들은 한 명씩 사라져갔다. 나는 아직 련과 헤어지고 싶지 않았다. 그건 물론 련도 그랬을 것이다. 당시의 우리는 아직 서로에게 길들여지고 있는 중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그녀는 미끄럼틀에서 놀고 있는 우리에게 다가왔다. 련은 다가오는 그녀를 보다가 나와 맞잡고 있는 손에 힘을 주었다. 나도 련의 손을 꽉 쥐었다. 맞잡은 손에 피가 안 통할 정도로 우리는 그녀를 경계하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우리 중 한 명을 데리고 간다는 말이나 다름없었으니까. 그걸 눈치 챘는지 그녀는 우리에게서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그래도 련과 나는 맞잡은 두 손에 힘을 풀지 않았다. 힘을 풀면 금방이라도 그녀가 다시 다가올 것만 같았다.

그녀는 뒤에 서있는 원장님께 이 아이로 데려갈래요같은 말을 내뱉지 않았다. 지금껏 보육원 아이들을 물건마냥 산다는 듯 말했던 사람들과 달랐다. 아마 그것 때문에 나는 련과 맞잡은 손에 힘을 풀었던 걸지도 모른다. 그녀는 우리와 시선을 맞추기 위해 무릎을 굽혀서 쭈그려 앉았다. 그리고 우리의 눈을 빤히 바라봤다. 그녀의 눈동자 속에 련과 내가 비춰져 있었다. 나는 또 다시 그녀를 넋 놓고 바라봤다. 련도 나와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련은 나보다 조금 더 빨리 그녀한테서 시선을 거두었다. 그녀한테 눈을 떼지 않아도 련이 고개를 돌린 것쯤은 보였다. 련은 아직도 넋 놓고 바라보는 내 손을 살짝 잡아 자신 쪽으로 끌었다.

그만 봐.

그때 당시 아직 이름이 없어서 서로를 뭐라고 불러야만 했는지 몰랐던 우리는 말에 서로의 이름을 넣지도 못하고, 그 말이 전달되기만을 바랐다. 다행히도 련의 행동은 내게 잘 전달되었다.

어떻게, 련은 어떻게 나보다 더 빨리 그녀한테서 시선을 거둘 수 있었던 걸까. 그리고 왜 그때 당시 우리는 서로에게 이름을 붙이지 않았을까. 보육원 원장님이 무서워서? 원장님은 보육원 아이들에게 이름을 지어주지 않았다. 그저 아이야 라고 부르거나 기분 안 좋을 때면 새끼야 라고 불렀다. 그래서 보육원에 있는 아이들은 모두 아이었고, 때론 새끼라는 명칭을 평등하게 나눠가졌다. 원장님을 원망하지 않았다. 누군가에게만 이름을 지어주고, 그 이름의 뜻이 모두 다 다르게 된다면 그걸로 보육원 아이들은 서로 더 좋은 이름을 가지기 위해 싸웠을 테니까. 보육원 아이들에게는 모두 똑같은 양질의 애정을 줘야만 했다. 어느 누구에게 더 좋은 것을 준다는 건, 더 이상 무리 안에서 그 아이가 살아갈 수 없게 만드는 것과 같았다. 그런데도 아직 의문이 드는 건, 서로 특별하게 여긴 우리조차도 서로에게 이름을 붙이지 않았던 것이었다. 이름을 붙이면 편하게 부를 수 있다는 것을 아직 몰랐던 걸까.

그녀가 다시 보육원에 온 건 그로부터 이틀이 지난 후였다. 철장 문이 열리는 녹슨 소리가 들리고, 아이들은 또 다시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녀는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아이들의 시선을 뒤로하고서 우리에게 다가왔다. 나무 그늘 밑에서 쉬고 있던 우리한테로, 그녀는 무릎을 굽혀 시선을 마주했다.

나와 같이 가자.

너한테도 한 손, 나한테도 한 손. 나는 내민 손을 망설임 없이 바로 잡았다. 그러나 나와 달리 너는 조금 망설이는지 그녀의 손을 한참동안이나 빤히 바라만 봤다. 어떻게 할지 고민하고 있는 네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네가 고민하는 걸 기다렸다. 네가 손을 잡는 걸 기다리고 있었다. 사실은 나는 아직도 네가 왜 그 순간에 손을 잡는 걸 고민했는지 잘 모르겠다. 그건 이유를 가르쳐주지 않은 채 떠난 네 잘못도, 너를 잘 알지 못한 내 잘못도 아니었다.

보육원 사무실 안으로 두 명의 아이가 들어간 건 련과 내가 보육원에 있는 동안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지금껏 보육원으로 들어왔던 모든 사람들은 한 명씩만 입양을 했기 때문이었다. 잔뜩 긴장한 얼굴로 보육원 원장님을 올려다봤다. 그녀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우리 둘을 입양하겠다고 말했다. 원장님은 그녀의 말에 한쪽 미간을 치켜세우며 물었다.

혼자이신데 괜찮으신가요?

그녀가 원장님의 말에 눈을 가늘게 뜨며 웃었다. 가늘게 휘어진 눈꼬리를 보며, 원장님은 아무 말 없이 서류 두 장을 건넸다. 우리는 그렇게 입양되었다.

 

소파에서 일어나 련의 방으로 들어갔다. 련의 창문을 두드리고 있던 소리가 시끄러워, 창문을 열어줬다. 련의 방 안으로 빗물이 들어왔다. 그래도 창문을 닫지 않았다. 혹여 네가 돌아오더라도, 몰래 들어오고 싶은 것일 수도 있기에 창문을 열어두기로 했다. 나는 책상 위에 가지런히 정리 되어 있는 물건 위로 잔잔하게 쌓여있는 먼지를 손가락으로 쓸었다. 먼지를 털고 련의 침대로 가 그 위에 앉았다. 이불 위에 녹아있던 습기가 온몸을 감싸 안았다.

침대 바로 옆에 달려있는 창문 너머를 바라봤다. 아무도 없는 골목길이 위에 혼자 서있는 가로등이 보였다. 문득 또 다시 네가 그 날을 기억하고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우리 둘이서 같은 날, 같은 시간에 조용한 거리 위에 서있던 수 십 개의 가로등을 지나쳐왔던 날. 입양된 지 1년이 넘어갈 무렵이었고, 우리는 처음 보는 낯선 거리가 좋아서 두 팔을 벌리고 차례로 가로등을 지나치고 있었다. 그런 기분은 처음이었다. 자유로워서 몸이 없는 것 같은 느낌. 무서운데도 그만둘 수 없는 기분.

련과 나는 그녀의 양옆에 서서 걸었다. 그녀의 오른손에 있던 휴대폰에서는 오늘 비가 올 거라는 기계음이 흘러나왔다. 휴대폰에 이미 GPS가 설정 되어 있어서 그런 건지, 비가 올 장소가 어디라고 말해주지 않는 게 우습다고 네게 말했다. 련은 내 말이 잘 이해가지 않는다는 듯 어색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나는 그런 모습이 더 웃겨서 입 밖으로 큰 웃음을 내던졌다. 다행히 우리가 걸을 때에는 비가 오지 않아서 마음 놓고 산책할 수 있었다.

낯설다고 생각한 곳이 낯설지 않다고 뒤바뀌는 건 한순간이었다. 그건 아마 련도 마찬가지일 것이었다. 우리는 어느 순간부터 발걸음이 점점 느려져갔다. 기어코 이게 걷는 것인지 아니면 멈춰 선 것인지 헷갈릴 때 우리는 동시에 서로의 얼굴을 바라봤다. 너나 할 것 없이 잔뜩 겁먹은 얼굴이었다.

그녀 혼자 우리를 두고 앞서 걷고 있었다. 그녀는 멈추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우리도 발걸음을 조금씩 옮겼다. 추위에 언 것인지 발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그래도 걸어갈 수밖에 없었다. 조금 더 걸으니 성당 보육원이라는 표지판이 눈에 들어왔다. 처음이 아닌데도 이제는 낯설게 느껴지는 것에 기어코 발걸음이 멈췄다. 꾸미려고 여러 색을 겹쳐 놓은 듯 했지만, 오히려 곰팡이가 낀 것 같은 표지판에 겁이 났다. 하지만 그녀는 그런 우리 보지도 않고 점점 표지판이 있는 쪽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웃기게도 그 표지판을 지나쳤다.

우리는 또 다시 서로를 바라보다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그녀 옆으로 뛰어갔다. 나는 그녀 옆에 딱 달라붙었다. 뒤에서 따가운 시선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고개를 숙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왜인지 얼룩덜룩한 표지판이 아쉽다는 듯이 나를 바라보고 있을 것만 같았다.

잠깐이라도 못 믿은 것에 대해 부끄러워서 그런 건지 너는 갑자기 그녀의 손을 세게 잡았다. 그녀의 몸이 네 쪽으로 잠깐 쏠렸다. 반대쪽 손을 잡고 있던 나는 그게 느껴졌다. 또 다시 셋이서 느린 걸음으로 길을 걷다가 문득, 련이 한 가지 질문을 내뱉었다.

우리는 왜 련과 미에요?

그녀는 련의 질문에 평소처럼 눈을 가늘게 뜨며 웃었다. 그리고 우리와 맞잡은 손에 살짝 힘을 주다가 도로 힘을 뺐다. 나는 그녀를 올려다봤다. 그녀는 마치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하다가 이내 입술을 열었다.

너희는 내 미련이니까.

그녀의 입에서 련과 내 이름이 하나가 되어 나왔다. 이상했다. 그때 그녀가 내뱉은 것은 꼭 우리 이름이 아닌 것만 같았다. 가늘게 뜬 눈웃음이 그녀의 기분이 괜찮은 건지 아닌 건지 도무지 알 수 없게 만들었다. 나는 계속해서 그녀를 올려다봤다. 곧 그녀의 입이다시 열렸다.

아름답게, 잇닿다는 뜻이야. 너희와 내가 만난 것을 담았어.

그 말에 나는 그녀처럼 웃었다. 눈을 가늘게 뜨고 웃었다. 그러자 앞이 희미해지다가 뿌옇게 되다가 이내 보이지 않게 됐다. 왜 그렇게 웃냐고 물으려다, 련이 갑자기 앞으로 달려나가 묻지 못했다. 련은 달리다가 멈춰 서서 그녀와 나를 바라보며 소리쳤다.

빨리와요!

추위 때문인지, 달려서 그런지, 그것도 아니면 다른 무언가가 있는지 련의 볼이 발그스름했다. 련은 아마 모를 것이다. 그녀와 내가 약간은 빨라진 걸음으로 네게 다가가고 있을 때, 그녀가 소리 내서 웃었던 것을. 그것은 찰나의 찰나인지라 아마 련은 듣지 못했을 것이었다.

 

왜 우리는 보육원에 있을 때 이름을 짓지 않았을까.

네가 붉어진 볼을 감추려고 앞으로 뛰어갔을 때, 나는 다른 의문점을 향해 한 발 내딛었다. 아마 이 의문점은 너도 한번쯤 생각해본 걸지도 모른다. 생각하고 생각하다가 너무 아무렇지 않게 생활하는 주위 애들을 보며 점점 무뎌져갔을 것이다.

우리는 아무것도 몰랐다. 우리도 이름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게 당연할 수밖에 없었다. 보육원에 같이 있던 애들 모두가 이름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모든 아이들이 이름 없이도 잘 지냈고, 이름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원장님이 누구 한 명만을 지목해서 부를 일도 없었고, 이름이 없으니 서로 싸울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싸우면 서로의 이름을 불러가며 욕을 한다든가, 더 잘난 무언가를 내세우기에 급급할 테니까. 하지만 그러기에 보육원에 있는 모든 아이들은 이름도 없고, 가진 것도 없어 평등했다. 싸울 일 같은 건 내가 거기에 있는 동안에 단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마 그걸 보육원 원장님도 알았기에 우리에게 이름 따위 지어주지 않았던 건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런 것 따위 없어도 잘 살았다. 너를 어느 특정한 이름으로 부르지 않아도 너는 나를 바라봤고, 네가 나를 정해진 이름으로 부르지 않아도 나는 네 손을 맞잡았다. 우리는 그렇게 살았고, 그렇게 살아 왔다. 하지만 입양된 후에 때때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애초에 우리에게 이름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그러면 네가 사라진 오늘날에도 나는 네 생각을 쉽게 알 수 있었을 거라고. 우리는 분명 이름이 생긴 후에 서로에게 벗어난 게 분명하다고,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싶었다. 심지어 어쩌면 네가 이름을 가지고 사라진 게 다시 서로에게 길들여지기 위해서가 아닐까 하는 터무니없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다.

나는 련의 방에서 나와 내 방으로 들어갔다. 련의 방과는 다른 냄새가 코 주위를 맴돌았다. 분명 내 냄새인데도 낯설게 느껴졌다. 순간 이 방이 내 방이 아닌가 하고 착각이 들었다. 그러나 책상 위에 놓인 공책에 새겨진 내 이름을 보고 여기가 내 방이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침대에 가서 누웠다. 련의 침대와 똑같은 느낌이었다. 아무도 없지만 누구도 듣지 못하게, 우리의 이름을 작게 읊조렸다. 조용한 공간에서 내 목소리는 울리지도 못하고 곧바로 침식됐다. 집 안에 아무도 없기에 고요한 것인지, 고요하기에 아무도 없는 것인지 헷갈렸다. 련의 흔적이 보이면서도 찾을 수 없다는 게, 마치 예전에 그녀가 사라진 것만 같은 느낌을 주었다.

그녀는 정말 갑작스럽게 련과 내게 이별을 통보했다. 그것도 직접 말한 것이 아니라 나도 모르고 련도 모르고 그리고 그녀도 모르는 타인에게서 들었다. 장마 초기 때였다. 그녀는 소파에 누워 빗소리를 들으며 눈을 감고 있었다. 나와 련은 부엌에서 서로 앞 다투며 계란 토스트와 함박스테이크를 만들었다. 이제 막 계란 토스트에 바를 특제 소스를 만들어가던 중이었다. 엄청난 소음이 집 안 가득 울렸다.

소파에 누워있던 그녀는 현관문을 박차고 나갔다. 우리는 곧바로 그녀를 따라 현관문을 박차고 나갔다. 우산 하나 가져가지 않은 그녀는 거센 비를 온몸에 때려 받으며 길을 걷고 있었다. 고개를 숙인 채 걷고 있는 모습은 마치 무언가에 홀린 듯 해보였다. 나와 련은 급하게 뛰어가 각각 팔을 잡았다. 하지만 나는 그녀의 얼굴을 보자마자 곧바로 손을 놓을 수밖에 없었다. 가늘게 웃는 눈. 평소에도 그렇게 웃었지만 왜인지 모르게 그날따라 웃음이 섬뜩하게만 느껴졌다. 련는 갑자기 팔을 놓은 나를 바라보며 왜 그러냐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네가 그녀의 눈을 보지 않게 막으려했지만, 너는 내 행동보다 빨랐다. 그것을 보고 말았다.

련는 나보다 더 크게 동요했다. 흠칫 놀라는 게 내 눈에도 보일 정도였다. 그럼에도 그녀를 잡고 있던 손을 놓치지 않았다. 너무 놀라서 타이밍을 놓친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에서인지 잘 모르겠다. 분명한 건 련은 끝까지 그녀의 손을 놓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먼저 손을 놓은 건 련이 아니라 그녀였다. 우리는 하염없이 멀어져 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점이 되어 사라지는 순간을 보고만 있었다. 련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그 순간에 네가 왜 손을 놓지 않았는지에 대해서만 생각하고 있었다.

사실 련이 사라진 건, 그 날 처음이 아니었다. 련은 비가 오는 날에 한 번 더 사라진 적이 있었다. 물론 그 후에 다시 돌아와서 그게 사라졌다라고 할 수 없지만, 그때 련의 행동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던 그녀의 행동과 같았다. 밖으로 뛰쳐나갔다가 다시 돌아왔던 날. 그 날도 휴대폰에서 비가 온다는 말이 흘러나왔다. 련은 두 손을 얌전히 배꼽 위에 올려놓은 채 소파 위에 누워있었고, 나는 힘없는 널 대신해 아침을 만들고 있었다. 계란 토스트 대신 함박스테이크를 만들었다. 그런데 함박스테이크를 만들어도 련은 좋다고 뛰거나 그러지 않았다. 웬일이야. 그게 다였다.

그렇게 말하고 련은 소파에서 몸을 일으켜 세워 현관 쪽으로 걸어갔다. 어디가냐는 내 말에 그저 현관 구석에 놓여있는 장우산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 비 오는 날에 나가다니, 별 일이네. 내 반응도 그게 다였다. 이럴 줄 알았으면 아침밥을 계란 토스트로 할 걸과 같은 태평한 생각이 머릿속에 맴돌 뿐이었다. 그리고 련은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난 후에야 장우산은 어디에 두고 왔는지 비를 쫄딱 맞고 입술을 덜덜 떨며 소파에 앉아있는 게 다였다.

오늘까지 안 들어오면 신고하려 했어. 련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쭈구려 앉아 무릎을 가슴 가까이로 끌어당길 뿐이었다. 비는 점점 거세져가고 있었다. 마치 그녀가 사라졌던 갑작스러운 날처럼. 어느 날 사라져서 다시 돌아온 련처럼. 그리고 완전히 사라진 그 날처럼.

방에서 나와 현관문 앞에 놓여있는 우산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 밖으로 나와서 그런지 안에 있을 때보다 비 냄새가 짙었다. 나는 여전히 지금 네가 뭐하고 있을지 궁금했다. 가져간 계란 토스트 레시피를 이미 내가 모르는 장소에 버려버렸나. 아니면 네가 사라진 날 함께 사라져버린 련이라는 이름을 이미 쓰레기통에 버려버렸나. 그렇다면 나는 이제 너를 뭐라고 불러야만 할까. 이름이 없던 시절에 우리는 서로를 어떻게 불렀었지. 분명 그때는 서로에게 이름이 없어도 누구를 부르는지 잘만 알았다. 그러나 이름이 생긴 이후로 이름이 없으면 누구를 부르는지 조차 알 수 없게 되어버렸다.

어쩌면 우리는 이름이 생긴 이후로 조금씩 서로에게서 벗어나고 있었던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더 솔직히 말하면 과연 내가 생각했던 이름 없던 시절에 네가 진짜 너였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에게 각각의 것이 생겼을 때부터, 서로에게 길들여지면서, 그리고 서로 다른 취향을 가지게 될 때까지. 애초에 보육원에 버려졌을 때부터. 우리는 사실 서로에게 길들여지지 않았던 걸지도 모른다.

네가 사라지고, 련이 사라지고, 그로인해 잇닿는 게 끊어져 가면 이제 더 이상 남는 건 뭐가 있을까. 우산을 접었다. 그때 어머니처럼 돌아오지 않는 너처럼 온몸에 비를 맞았다. 누군가를 부르고 싶었다. 그러나 누구를 불러야할지, 어떻게 불러야할지 이제는 아는 것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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