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9차 창작콘테스트 <파란 장미에 기대에 보았다>

by 허므 posted Jun 01,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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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란 장미에 기대어 보았다.>

찰칵

지금 이 순간을 남길 수 있는 방법 중 하나인 사진 찍기. 과거에 있었던 친구들과 같이 여행한 기억들, 밤에 부모님 몰래 치킨 시켜먹은 기억들 모두 사진으로 남길 수 있다. 나는 과거를 남기는 것이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인지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한다. 내가 학교를 가면서 보았던 땅 밑을 기어가던 개미들, 공원에서 만났던 산책하는 강아지, 하교할 때 보았던 벅차오르던 노을까지도 사진을 남길 수 있다. 그때에 기억을, 그때에 생각을, 그때에 느낌을 모두.

찰칵

카메라의 렌즈가 나를 측은하게 바라보고 있다. 난 아무래도 셀카에는 소질이 없는 것 같다. ‘셀카 잘 찍는 법을 유튜브에서 찾아보고도 못 찍겠다. 유튜브에서는 누구나 잘 찍는 법이라고 소개 되어 있었지만 나는 누구나가 될 수 없나보다. 어느 각도에서 찍어도 이상하게 나올 뿐만 아니라 평소에 작은 눈은 더 작아져서 자고 있는 게 아닌가 의심이 간다. 좋아하는 입고 한 장, 나들이 가서 한 장, 카페에 가서 한 장, 영화관 가서 한 장 다 찍어 보았지만 하나같이 내가 더 못 낫다고 자기주장을 펼치고 있다. 아직 이 세상에는 나를 받쳐 줄만한 카메라가 존재하지 않은 것 같다.

나를 찍는 것 이외에는 풍경을 찍거나 다른 사람들을 찍어주는 것은 잘한다. 혼자 공원에 놀러가서 카메라를 들고 풍경을 찍고 있는 나를 보면 지나가는 커플들은 나에게 사진을 찍어 달라고 가끔씩 요청을 해온다. 서로서로가 눈에서 꿀이 떨어질 것처럼 바라보는 두 사람은 몸을 착 달라붙어 있어서 왠지 찐득찐득 할 것 같다. 솔로인 내가 봤을 때는 굉장히 불쾌하고 눈엣가시지만 두 사람의 순간을 나에게 맡기는 것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찍어준다. 손을 맞잡고 서로를 바라보는 두 사람은 나를 기억할지는 몰라도 그때를 기억할 수 있음에 그 풋풋함이 나를 결국 찍게 만든다.

내가 만든 사진첩에는 내가 없지만 부모님이 만들어준 내 어릴 적 사진첩에는 내가 담겨있다. 그 사진첩에는 초등학교 5학년 까지 담겨있다. 어릴 때 유치원에서 뛰어놀던 사진도 있고 바닷가에 놀러가서 아이스크림을 떨어뜨려 우는 사진도 있다. 사진마다 내 그때에 기억이 떠올라 그리움에 흠뻑 젖고는 한다. 나는 어릴 때 기억이 많이 남아 있어서 그리움이 부풀어 올라 그때의 감정, 느낌을 생생하게 느끼곤 한다.

지금은 아니지만 어릴 적에는 사진 찍히는 것을 좋아했다. 부모님이나 선생님들이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하면 금방 주워듣고 찾아갔다. 브이를 하는 손짓도 있고 만화 주인공의 표정을 짓기도 하며 얼굴을 망가뜨리기도 한 아이들의 포즈를 말이다. 아이들의 포즈를 하고 있는 사진을 보면 그때가 생각나서 귀여웠던 그 포즈를 취한 적이 종종 있다. 나 스스로를 되돌아보면 속이 울렁거린다. 거울에 비친 건장한 고등학교 1학년 남학생이 그런 포즈를 하고 있으니 그럴만하다.

지금은 사진 찍는 것을 더 좋아한다. 아마 옛날에는 내가 세상에 중심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사진 찍히는 것을 더 좋아했던 것 같다. 내가 있는 곳을 중심으로 세상이 돌고 도는 세상. 그런 망상. 지금 생각해 보면 콧방귀나 뀌는 그런 생각이라 더 그립다.

이상하게도 유치원 때에 사진들은 기억과 감정들이 생생한 데 초등학교에서부터는 기억이 잃어버린 리모콘처럼 마음이 횅하다. 정확히는 초등학교 5학년 때까지는 기억이 잘 나지만 6학년 때부터는 잘 나지 않는다. 그 때부터는 기억이 흐릿하고 잃어버린 느낌이 든다. 마치 우리 집의 리모콘처럼 느낀 건 1주일 전이였다.

 

우리 아들 사진 잘 찍네.”

내가 주말마다 밖에 나가서 찍고 가져 오는 사진들을 보고 하신 말이다.

으음, 이건 무슨 느낌으로 찍은 거야?”

우리 엄마는 내가 사진 찍는 것에 대해 관심이 많다. 하나 밖에 없는 외동아들이여서 아들이 하는 일에 관심이 많으시다. 내가 외동임에도 불구하고 오냐 오냐 하면서 키우시진 않았다. 어릴 적 장난감을 사달라고 때를 쓰던 기억에는 다음에 사주겠다며 혹은 집에 장난감 많이 있잖아 하시면서 넘어가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억울한 게 집에 장난감은 2개 밖에 없었다. 잘못을 저질렀을 땐 잘못을 바로 잡도록 혼도 내시고 내가 다친 곳이 있으면 달려와서 치료해 주셨다. 머리보단 가슴이 시켜서 한 일이 많다. 부모 자식 간에 사랑에는 절약이 없음을 알려주었다.

알고 보니 우리 엄마도 젊었을 때는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하셨다고 했다. 사진을 찍으려고 세계 이곳저곳을 여행해봤다고 들었다. 여행을 다니다가 아빠 만나셨다고 했다.

엄마가 벚꽃을 좋아해서 3월 중순 쯤에 일본을 가셨는데 거기서 만난 게 바로 아빠였다. 그 당시 엄마는 친구랑 오사카로 벚꽃을 보러 갔다고 했다. 남자랑 못 간 게 서러웠던 엄마는 거기서 아빠를 만나게 됐었다고 한다. 엄마가 주변이 핑크 빛으로 물든 벚꽃을 찍느라 정신이 팔린 나머지 난간에서 떨어질 뻔 한 걸 아빠가 구해주셨다고 했다. 엄마를 구해주고 괜찮냐고 물어보는데 놀라서 멍해 있는 표정이 너무 귀여워 아빠가 바로 번호를 물어봤다고 했다. 목숨을 구해준건 고마웠지만 바로 번호를 물어보는 아빠의 태도가 괘심해서 엄마가 한 번 찼다고 했다. 엄마의 말 때문에 초콜릿 못 먹은 아이처럼 토라진 아빠가 또 귀여워서 엄마가 바로 고백해 지금까지 이어졌다고 한다. 드라마 같은 부모님의 러브 스토리를 듣고 있으면 나도 운명을 믿게 될 때가 있다. 원래 운명을 믿지는 않지만 그런 얘기가 있고 실제로 존재해서 그 결과가 라는 존재가 되었다면 믿을 만한 이유는 갖추게 된다. 그때에 선택이 나를 만들어 주어서 부모님에게 감사하다.

우리 집의 리모콘은 항상 찾으려면 없고 엄마가 찾으면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내가 숨박꼭질 술래가 되고 리모콘은 나에게 그것도 못 찾냐는 듯이 나에게 온다. 이미 리모콘은 내가 자기를 못찾아 낸다는 것을 알고 나를 얕보고 있는 게 분명한다. 내가 분하고 있을 때면 엄마는 나에게 아들 다음번에는 찾을 수 있을 거야.” 라고 한다. 이쯤 되면 엄마가 일부로 숨기는 느낌이 든다.

내가 TV를 보고 있으면 엄마는 내가 찍은 사진이 담긴 사진첩을 보신다. 항상 내가 사진을 잘 찍어 준다고 말해줘서 감사하다. 엄마는 내가 공원에서 찍었던 그늘 밑에서 고양이 사진을 보고, 이 고양이는 자는 척을 하고 있는 거 같아.”라고 한 적이 있다. 우리 엄마는 내 사진을 보면서 이상한 평가를 할 때가 많다. 저번에는 밤에 찍은 가로등 사진을 보면서 가로등에 힘이 없는 거 같아.” 라고 했다. 하지만 이런 말을 듣고 나면 나도 엄마에 말에 이끌려 가는 느낌이 든다. 오묘하면서도 야릇해지는 기분. 그런 엄마가 나에게 저 질문을 한 건 처음이다.

아들. 이건 무슨 느낌으로 찍은 거야?”

어떤 거?”

내가 이상한 사진을 찍었을 리는 없지만 조금 긴장된다. 아무 잘못도 없는데 지나가는 경찰관들을 보고 가슴이 뛰는 기분이다.

이거

사진을 받은 나도 궁금했다.

내가 언제 이런 걸 찍었지?”

사진에는 어떤 할아버지가 꽃다발을 들고 있었다. 사진 속에 나무들 머리가 벗겨져 있어서 겨울이라는 계절의 차가움이 느졌다. 꽃을 산 적이 처음이라 어쩔 줄을 모르는 표정으로. 안개꽃이 파란 장미를 감싸주어 차가운 기운을 따뜻하게 안아주는 느낌이 드는 꽃다발을 들고 있었다. 꽃다발을 들고 있는 거 자체로 어색한 기운을 나타내고 있지만 젊은 사람에게 느낄 수 있는 풋풋함이 느껴졌다.

엄마 미안한데 나 이 사진 찍은 기억이 없어.”

엄마의 눈썹이 살짝 들렸다.

그럼 무의식에 찍었다는 거니?”

엄마가 그렇게 말하고는 호탕하게 웃었다.

엄마 나 진지한데...”

아유 알겠어. 그럴 수도 있지.”

엄마는 그렇게 말하고는 어딘가 쓸쓸하게 웃었다. 그러고서 쓸쓸함을 털어내듯이 한 번 더 크게 웃었다.

엄마 이제 내가 찍은 사진 그만 봐.”

내가 삐진 것처럼 말하자 엄마가 미안하다면서 금방 또 웃어버렸다.

엄마. 나 엄마가 찍은 사진 보고 싶어.”

나는 줄곧 엄마가 젊었을 적 찍었던 사진을 보고 싶었다. 엄마가 젊었을 때에 시절을 보고 싶었고 엄마도 사진에 관심이 많았었다고 하니까 궁금증이 증가했다. 그러나 엄마는 내가 보고 싶다고 할 때마다 반대했다. 매정할 정도로. 이번에도 저번처럼 안 된다고 할 줄만 알았다.

그래. 우리 아들도 많이 큰 거 같으니까 보여줄 때도 된 거 같네.”

? 진짜?”

왜 그렇게 놀라. 누가 보면 죽은 사람 살아난 줄 알겠네.”

당연히 놀랄 수밖에 없지. 몇 년 동안이나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면서 거절했는데.

잠깐만 기다려 가져올게.”

엄마가 찍은 사진을 볼 생각을 하니 심장이 엇박자로 뛰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무 생각 없이 내뱉은 말이 이런 상황을 불러올 줄은 생각하지 못했다. 엄마가 핑계까지 대면서 보여주려고 하지 않은 사진첩에는 어떤 사진이 담겨있을까 하고 전부터 계속 생각해 왔다.

그렇게 10. 엄마는 10분이 지나도 방에서 나오시지 않는다. 어찌된 일일까. 살짝 신경이 쓰이지만 그래도 별일 없다는 걸 알기 때문에 굳이 들어가 보지 않았다.

그렇게 다시 5. 엄마가 앞치마에 먼지를 가득 담고 나오셨다. 하도 꺼내지 않는 거라 찾는데 오래 걸리신 것 같다.

미안해. 좀 오래 걸린 것 같네. 이 먼지 좀 봐. 내가 이거 찾느라 얼마나 힘들었는데.”

엄마가 땀을 흘리면서 바람 빠지는 듯이 웃음을 지으셨다.

괜찮아 엄마. 고마워. 손이라도 좀 닦아.”

엄마가 알았다며 화장실에 들어가셨다. 드디어 남은 건 나와 이 요물 같은 사진첩 뿐. 그동안 엄마 덕분에 잘도 피해 다녔겠다. 내가 오늘 밤을 새서라도 다 보고 잔다.

생각보다는 제법 얇은 사진첩이다. 사진을 좋아했던 엄마라면 분명히 두께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말이다. 사진첩 표면을 보니 먼지가 산맥을 이루고 있어서 물티슈로 한 번 쓸어내린 뒤 열어보아야 했다.

제일 첫 페이지를 열어보니 카테고리가 나열되어 있었다. 풍경, 여행, 길거리, 순서로 있었다. 그 중에서도 길거리가 가장 마음이 갔다. 엄마가 찍은 길거리에는 왠지 엄청난 것이 있을 것이라는 기분이 들었다.

풍경

한 장을 넘기니 풍경 사진들이 보였다. 그렇게 혹할 만한 사진이 보이진 않았지만 대체로 다 마음에 들었다. 밤에 아파트 옥상에 올라서 찍은 주황빛을 띄는 야경사진도, 가을에 찍은 단풍으로 물든 나무들도, 변함없이 한 곳만 바라보는 해바라기도 아주 마음에 들었다. 하나하나 자세히 사진을 들여다봤다. 사진 속에 있는 엄마의 감정을 느끼고 싶다.

여행

여행의 첫 페이지에는 아주 당당하게 아빠가 콧구멍을 입보다 크게 벌리고 있었다. 아빠가 서 있는 뒷배경을 보니 무슨 상황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우리 엄마는 운명을 이 사진에 담고 있었다. 아빠 뒤에 배경에는 벚꽃이 한 가득 피어 있었고 주위 사람들은 놀라고 있었다. 아마 이 사진은 엄마가 떨어질 뻔한 상황에서 아빠가 구해준 것이겠지. 문득 아빠가 이 사진을 보고 어떤 반응일지 궁금해졌다.

여행 페이지에서는 엄마의 자유로운 성격을 잘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엄마가 찍은 벚꽃 사진들은 어느샌가 베개에 깃털을 가득 넣듯이 아빠랑 찍은 사진이 꽉 차있었다. 엄마가 진정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어 보여 나도 언젠가는 이성과의 사랑을 나눠보고 싶다.

그 밖에도 엄마는 우리나라에서 유명한 곳은 많이 가보신 것 같다. 사진이 그렇게 말해주고 있다. 사진은 많은 것을 설명해 주니까.

길거리

제일 기대되는 카테고리에 들어왔다. 사실 마음 같아서는 제일 먼저 펼쳐보고 싶었지만 케이크의 꼭대기에 딸기는 마지막에 먹는 것이다. 자유분방한 엄마가 찍은 길거리는 어떨지 궁했다. 사실은 엄마라는 카테고리를 기대했던 거 일지도 모르겠다.

엄마가 찍은 길거리은 뻥 뚫려있는 느낌이다. 엄마의 느낌 그대로 담겨있었다. 길거리가 뚫려있어서 공허한 것이 아닌 가슴속 시원한 공기를 불어넣는 느낌이다.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은 느낌이 드는 사진들이 많이 담겨있었다. 바깥은 아직 한 겨울이지만 집 안은 광활한 대지에 풀로 둘러싸였다. 그 풀이 어딘가 따뜻해서 잠시 누웠다가 가고 싶었다. 딱 우리 엄마다.

엄마의 길거리에서는 전체적으로 유독 가시나무가 많이 있었다. 엄마는 가시를 좋아하진 않았고 그렇다고 해서 나무를 좋아하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그 둘이 합쳐진 가시나무가 많이 찍혀 있었다는 것은 이해가 가질 않는다.

또 한 장 넘겨보니 몸에 소름이 끼쳤다. 집안에 목초지가 한 순간에 얼음장으로 변했다. 내가 보고 있는 사진이 사진일리 없다고 부정했다. 엄마가 찍은 그 사진에는 내가 찍었던 꽃다발을 든 할아버지가 서있었다. 할아버지는 내가 찍었던 사진과 마찬가지로 수줍어하는 표정을 짓고 계셨다. 그 수줍은 표정에서 나오는 따스함이 조금이나마 내 얼음장을 녹여주었다.

마침 엄마가 손과 발이 물에 젖은 채 엄마가 돌아오셨다.

엄마, 이 할아버지 누구야?”

, 그래. 너도 이제 알 때가 됐구나.”

엄마는 다 알고 있었다는 듯이 말하셨다.

그 할아버지는 너의 외할아버지야.”

우리 할아버지는 돌아가셨잖아.”

그렇지.”

엄마의 목소리는 담담하다 못해 차가웠다.

그런데 아까 왜 내 사진첩에 담겨 있는 거야?”

이런 현실이 전혀 납득이 가질 않았다.

그건 아무래도 할아버지가 사진 찍는 걸 좋아해서 일거야

할아버지도 사진 찍는 걸 좋아했어?”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사진 찍히는 걸 좋아했지. 그런데 막상 찍자고 하면 좋은데 또 튕기고 그랬어.”

할아버지는 그런 사람이었구나.”

무언가에 맞은 기분이 들었다. 투수가 던진 공을 4번 타자가 시원하게 날려버려 내 머리에 맞은 것 같다. 처음에는 핑 하고 돌았지만 이내 맑아지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시원은 나에게 총명함을 줄 것이 틀림없었다.

 

1주일 전에 일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이런 비현실적인 일을 어떻게 까맣게 잊을수 있을까. 마음속 어디에선가는 내가 찾을 때 항상 안 보이는 리모콘을 찾고 싶어 한 느낌이다. 중요한 무언가를 계속 놓치고 있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런 기분으로 살아갔다. 비어 있고 잃어버린 느낌으로.

오늘은 운동회 날이다. 남녀 공학인 고등학교는 남자들의 허세와 여자들의 기 싸움으로 운동회에 임할 생각인가 보다. 잘나가는 여자 무리들은 얼굴색과 목의 색이 달라서 양념 반 후라이드 반 치킨을 연상시킨다. 남자 아이들은 암컷의 마음을 얻기 위한 수컷처럼 남자 냄새를 뿜어내고 싶어서 안절부절을 못하고 있다. 아니 그중에는 오줌이 마려워 그런 애들도 있을 것이다.

우리 학교는 학교 행사가 있을 때 반티 입는 것을 허락해준다. 반티는 각 학급의 협동심을 기르게 해주고 공동체 의식을 강화 해준다는 취지로 입는 것을 허락해 준다. 만약 각 학급이 원하지 않을 시에는 반티를 구입하지 않아도 된다. 원하지 않으면 입지 않아도 된다고 하지만 우리 같은 소수의견은 그 의견을 내뱉지도 못할뿐더러 용기를 내서 내뱉는다 할지라도 짓밟힌다. 작은 티끌이 변할 수 있는 이유는 접착력인데도 소수는 뭉치지 않았다.

우리 반은 다른 나라의 축구 유니폼. 다른 남자 반 아이들도 거의 축구 유니폼으로 확정된 분위기다. 남자 아이들은 개성 없이 무조건 축구 유니폼으로 때운다. 잘나가는 남자 애들은 나라별로 어디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고 나와서는 헤어밴드를 착용하고 자기가 무슨 잘생긴 축구선수인 마냥 여기저기 미소를 던지고 다닌다. 심한 나르시즘에 빠져 나오지 못한 이들은 누가 구원해 줄 것인가.

이번 반티가 제법 비싸다. 중학교 때는 1~2 만원에서 그쳤는데 이번에는 유독 비싸서 엄마가 왜이렇게 비싸냐고 나에게 불만을 쏟으셨다.

예쁘고 멋진 옷들 많은데 왜 이렇게 구질구질한 걸 골랐대. 아니 그리고 가격은 왜 이렇게 비싼 거야. 중학교 때는 이렇게 비싸지 않았잖아. 안 그래?”

맞아, .”

매년 축구 유니폼만 쌓이니까 장사해도 되겠어. 좀 예쁜 것 좀 고르지 매년 이게 뭐야. 예쁘지도 않으면 재미있는 거라도 입던가.

나한테 그래도 소용없어.”

엄마는 그 뒤로도 푸념을 늘어놓으셨다.

고등학교 운동회도 중학교 때와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중학교 운동회 또한 초등학교 운동회와 별반 다를 게 없다. 초등학교 때부터 달리기를 잘했던 애들은 학년이 올라가도 쭉 이어달리기나 장애물 달리기를 차지할 뿐이고 운동신경이 안 좋은 아이들은 항상 빈 자리에 앉아 있어왔다. 보이는 애들만 보이고 순환이 안 되니 답답할 뿐이다. 악순환이 되풀이 되는 분위기를 바꾸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지만 나로서는 그게 쉽지가 않다. 나도 마찬가지니까. 불행인지 다행인지 나는 달리기를 잘해왔다.

내 달리기 재능은 유치원 때부터 시작했다. 애기들 끼리 아장아장 뛰고 있을 때라 거기서 거기겠지만 나는 유치원에서 가장 빨랐다. 그거 하나만 믿고 초등학교 때 육상 대회를 나갈 만큼의 재능이 빛났다. 그렇지만 엄마는 언제부턴지 내가 뛰는 걸 싫어하게 됐다. 물론 어렸을 때부터 계속 운동을 시켰다면 지금쯤 여기 고등학교에 다니지 않고 사진도 못 찍 는다고 생각하니 끔찍할 따름이다.

애들이 경기를 뛰고 있는 동안 나는 사진을 찍느라 여유가 없다. 우리 학교 사진 동아리에 들어간 이상 가만히 있을 내가 아니다. 우리 반 다른 반 할 것 없이 여기저기 사진을 찍어야한다. 그렇게 해서 찍힌 사진들은 매년 말에 있는 학교 신문에 나오게 될 것이고 나는 상장을 받게 될 터이다. 그런 유토피아를 꿈꾸며 아이들을 열심히 찍는다.

농구에서는 화려한 드리블을 찍었고, 축구에서는 공이 감겨 들어가는 슛을, 배구에서는 우직한 블로킹을 찍었다. 각자 활약한 모습을 찍어 아이들에게 보여주면 너나 할 거 없이 입이 귀에 걸린 모습을 주저없이 나에게 보여준다. 내가 찍어준 사진을 보고 기뻐하는 모습을 보니 내가 어른이 되어서 아이들에게 선물을 주는 기분이 든다. 산타라는 게 이런 기분인가보다.

그에 반해 여자 애들 사진은 찍지 않는다. 여자 애들 사진을 찍을 때마다 몸이 움찔 거리고 다리가 떨려왔다. 그런 문제도 있었지만 나는 사진을 잘 찍기 위해서라면 몸을 사리지 않고 앵글 각도를 잡기 때문에 포즈가 이상할 때가 많다. 그런 모습을 여자 애들한테 들키게 되면 이상한 애, 또는 심하면 변태라고 까지 취급을 받는다. 남의 시선에 크게 신경을 쓰지는 않지만 사진을 찍는 게 인생이라고 생각하는 애가 그런 소리를 들으니 기분이 상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래도 내가 사진 찍은 애한테는 사진을 꼭 보여주고 미안하다면 사과를 한다. 사과를 해야 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반 아이들을 사진 찍어 주느라 나를 생각하지 못했다. 내 차례다. 어느새 농구가 끝나고 축구가 끝내서 배구가 끝났다. 달리기만 남았다.

내가 달리는 시간은 다른 애들이 달리는 시간보다 길어졌다. 가위 바위 보를 못하는 탓에 있어서 내가 마지막 주자가 됐다. 마지막 피날레를 장식할 내가 될 수도 있고 마지막을 하얗게 불타져버린 흰색 잿더미가 될 수도 있다. 웬만하면 마지막 주자는 피하고 싶었다. 또 엄마는 내가 뛰는 것을 싫어했기 때문에 이번에는 더욱 뛰기 싫었다.

억지로 등 떠밀려서 마지막 주자로 뛰게 된 나는 결국 레이스 선을 밟고 있었다. 내가 이렇게 밟고 있는 동안 옆에 서 있는 아이들의 눈치와 견제들 그리고 지켜보는 아이들의 시선들이 나의 심장을 조여 왔다. 내가 바톤을 받는 시간은 얼마 안 길었다. 길어봤자 0.3. 나름 짧은 시간에 성공했다. 내 앞에 있는 사람은 1. 한명만 멋지게 재치면 그대로 1등인 상황이다. 커브 구간에서 승부를 띄우는 수밖에 없다. 최대한 인코스로 달려서 뒤를 바짝 붙인다. 그대로 직선 코스에서 오른 쪽으로 거리를 벌리고 질주한다. 우리 반의 환호성, 다른 반의 아우성. 귀를 채우는 심장소리는 나 자신을 버겁게 만들어준다.

. 끝났네. 내 시선에서는 이미 세상이 누워있었다.

빠르게 뛰던 심장은 큰 손으로 새게 움켜쥐어 터질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눈이 감겼다.

 

눈을 떠보니 소독 약 냄새와 어두운 방안에 주황빛이 돌아 몽롱한 분위기를 뿜어냈다. 어둠 속에서 빛나는 주황빛. 정신을 차려보니 보건실이었다. 보건실에서 나는 얼마나 자고 있었던 걸까.

스마트폰은 7시를 가리키고 있다. 거기에 부재중 전화가 5통이나 와있었다.

정신을 차리고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몸은 좀 어때?”

엄마의 목소리가 미세하지만 떨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응 괜찮은 것 같아.”

달리기 했었다며?”

.”

엄마가 달리기 하지 말라고 했잖아.”

그랬지.”

엄마의 목소리가 한동안 없어졌다가 이내 울음을 터트리셨다.

엄마 왜 그래?”

엄마가 다 미안해.”

엄마의 목소리가 울음소리에 번져서 목소리를 삼켰다.

엄마 왜.”

나중에 다 말해줄게.”

여기서 더 말하려했다가 엄마가 너무 서럽게 울고 있어 그만 눌려버렸다. 무어라 말이 나오질 않

는다.

 

집에 돌아가는 길이 유난히 무겁게 느껴진다. 돌아가는 노을을 보고 있자니 태양만한 크기에 포환이 어깨에 눌리는 기분이다. 항상 집에 돌아오는 길에 봐왔던 늠름해 보이는 나무들이 괜찮다며 위로해 주는 것 같았다.

엄마, 나왔어.”

밖에서 볼 때는 집에서 불빛이 보였지만 막상 집에 들어오니 불이 들어와 있는 건 거실 뿐이여서 집이 전체적으로 어두웠다. 거실에서 나오는 빛은 바깥으로 향할 뿐 집 안쪽으로는 향하고 있지 않은 것 같다.

집 안쪽에서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엄마 방으로 들어와.”

고요한 집에서 들려오는 엄마 목소리를 따라서 방으로 들어갔다. 방에서 엄마는 사진을 정리하고 있었다. 밖에서 들어오는 노을빛이 엄마를 묘한 각도로 비추어서 더욱 처절하게 보였다. 엄마는 눈물이 나오는 것을 다 닦아냈는지 옆 쓰레기통에 휴지가 한 가득 있었다.

어서와.”

눈물은 다 닦아냈어도 목소리는 역시 숨기지는 못하나보다.

엄마 무슨 일이야?”

엄마는 이제 네가 어느 정도는 커서 괜찮아진 줄 알았어.”

그게 무슨 소리야?”

너는 어렸을 때 사고로 심장을 다쳐서 심하게 무리하면 안 돼.”

내가 어렸을 때 사고가 있었어?”

엄마는 내가 한 말을 듣고 고개가 바닥으로 내려앉았다. 엄마는 바닥을 빌려 부르르 떨리는 몸을 버티고 있었다.

엄마의 그 모습을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게 최선의 위로라고 생각하고 엄마가 울음을 그칠 때를 위해서 물을 한 잔 떠다 놓았다.

엄마는 10분 쯤 지나서 울음이 서서히 멈추셨다. 엄마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해도 울음이 그것을 막았다. 천천히 물을 드리고 엄마를 기다렸다.

엄마 이제 진정 돼?

엄마에게 물을 드리고 1분 정도 있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

엄마의 숨 고르기는 마지막까지 왔다.

이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줘.”

엄마의 아빠. 그러니까 외할아버지는 네가 초등학교 6학년 겨울방학 때 교통사고로 돌아가셨어. 그 당시 너는 할아버지랑 같이 있었는데 할아버지가 너를 지켜주려고 너를 감싸 안았다가 그대로 전봇대가 있는 곳으로 차가 박혔어. 사고가 났을 때 엄마는 집에서 저녁 준비를 하고 있었고 아빠는 회사에서 야근이 있다고 해서 늦게 들어오신다고 했지. 그때 할아버지가 너를 데리러 나가셨다가 그런 사고를 당한거야. 그 사고로 인해서 너는 심장을 다쳤고 사고 당시에 충격으로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잃어버렸지. 할아버지는 그 자리에서 돌아가셨어.”

그런 일이 있었구나.”

내가 초등학교 6학년 때를 잘 기억하지 못하는 이유가 있었구나. 그 때에 일을 천천히 생각해 봤다. 조심스럽게 건드렸다.

머리가 조금씩 아파왔다.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무언가가 있다.

너는 기억나질 않겠지만 할아버지는 널 엄청 좋아하셨어. 왜냐하면 할아버지는 내가 낳은 아들을 그렇게나 보고 싶었거든. 할아버지는 딸 밖에 낳지 않으셔서 그런지 아들을 그렇게 보고 싶어 하셨지. 그래서 할아버지는 매주 주말마다 너를 보러 찾아왔어.

다행스럽게도 할아버지랑 너는 아주 친했어. 어렸을 때부터 그렇게 봐왔으면 귀찮기도 하고 할아버지 보다는 친구랑 노는 게 재미있었을 텐데 너는 초등학교에 들어와서도 할아버지랑 잘 놀았어. 할아버지가 겪었던 옛날에 얘기를 좋아하기도 했었고 같이 공원에 가는 것도 재미있어 했어. 그때도 너는 사진 찍는 것을 좋아했어. 고학년으로 접어들수록 너는 사진 찍히는 것보다는 찍는 걸 더 좋아했어. 할아버지는 사진 찍히는 걸 좋아해서 같이 쿵 짝이 잘 맞았지. 이게 그때 찍은 거야.”

엄마가 내 사진첩에 있던 사진을 나에게 보여주었다.

엄마 이건 내가 최근에 찍었던 거 아니야?”

사실 그거 네 사진첩에 없었어. 엄마가 너 할아버지 생각나게 해주려고 내 사진첩에 넣어뒀던 걸 빼와서 보여 준거야. 그런데 기억을 못하더라고. 그래서 알았지. 우리 아들이 할아버지의 기억이 없어졌구나 하고.”

내가 할아버지와 친했었구나. 다시 한 번 곱씹어 봤다. 다시 아까처럼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왔다.

돌아왔다.

엄마 나 생각났어. 조금만 생각해도 될 정도로 그 정도로 할아버지는 나에게 특별한 존재였다고.”

흥분은 거품처럼 쉽게 부풀어 올랐다가 이내 물을 끼얹은 듯이 쉽게 없어졌다. 그 끼얹은 물이 결국 마음속에서 끓어오르고 있었다. 결국 나도 바닥에 기댈 수밖에 없었다.

내 울음이 끊길 생각을 하질 않는다. 어찌어찌해도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한 번 끓어오른 물은 전혀 식지 않고 오히려 더 끓어올라 증기가 되어 날아가 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끝내 나는 공중에서 없어질 때까지 있어주겠다고 다짐했다.

30분 째 울고 나니 목이 턱 막히고 숨 고르기가 쉽지 않다. 엄마는 내가 엄마에게 했던 대로 물을 떠다 놓고 나를 기다리고 이었다. 내가 다시 이야기 해주기를 엄마는 기다리고 있었다.

엄마. 할아버지는 나를 구해주셨어.”

엄마도 알지.”

교통사고에서 말고 학교에서도.”

엄마는 무슨 소리인지 감을 잡지 못하고 계신 것 같아 보였다.

엄마는 모르고 있었겠지만 나 초등학교 6학년 때 왕따 당했어.”

엄마는 혼이 빠진 것 같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계셨다.

5학년 때 전학 온 이후로 낮을 많이 가리게 됐어. 처음에는 애들이 나한테 많이 다가와 줬어. 내가 사진 찍는 걸 좋아한다는 걸 알고 애들이 사진 찍어 달라고 하길래 찍어주면서 점점 친해졌지. 그러다가 애들이랑 거의 다 친해졌을 무렵 나를 달갑게 보지 않던 애들이 나를 허위사실을 퍼뜨리기 시작했어. 내가 여자애들 치마 속을 찍는다고. 난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 그 사실이 퍼지면서 불쪽으로 날아간 기름처럼 빠르게 퍼졌고 나는 사실 여부를 판단 받지도 못하고 애들한테 맞고 차이고 뜯기고 긁혔어. 매일 밤 잠 들 때마다 고통스러웠고 잠들면 1분도 안 돼서 깨는 기분이 너무 싫었어. 내가 찍은 게 사실이 아닌데도 나를 비난하고 욕하는 애들이 싫었어. 근데 2달이 지나니까 할아버지가 눈치 채시더라. “너 어디 기분 안 좋은 일 있냐.” 그 말 듣자마자 눈물이 쏟아지더라고. 그래서 할아버지한테 다 털어놓고 할아버지한테 의지하게 됐어.

하루하루 학교가 빨리 끝나기를 기다렸고 그 기다림을 버티는 게 내 하루의 목표였지. 하루를 그렇게 버티다 보면 할아버지랑 할 재미있는 일들이 기다리고 있었으니까. 엄마한테는 일부로 말 안 했어. 그 때 엄마는 빙판 길에서 넘어진 것 때문에 허리 다쳤으니까. 병원에서 한동안 신세 졌잖아. 그리고 그 당시에 아빠랑 사이도 안 좋았었잖아. 빚 문제로. 그래서 말 안 했어. 상황도 안 좋은데 더 안 좋게 하기는 싫었거든.”

엄마는 항상 밝은 분이었다. 그러셨던 분은 그 때 만큼은 아니었다. 엄마의 스트레스는 날이 갈수록 심해졌고 심한 허리디스크로 걷는 것도 힘들어 했다. 아빠와의 이사 문제는 곧 아빠와의 사이와 조금 틀어지는 계기가 되었다. 금세 사이는 좋아지셨지만 싸우는 동안의 아빠한테 신경을 쏟고 허리가 안 좋아서 어디 마음을 두어야할지 모르고 헤매고 지쳐하는 엄마의 모습을 직접 봤기 때문에 털어놓을 수가 없었다.

미안하다.”

엄마는 이 말을 하고 다시 눈물을 쏟으셨다. 밖이 어두워졌기 때문에 우리가 어둠에 파묻히기 전에 불을 켜야 한다. 불을 키자 주변이 밝아지면서 엄마가 아까부터 손에 쥐고 있었던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할아버지 사진. 가시나무를 조심스럽게 들고 있는 수줍게 들고 있는 게 아닌 엄마가 내 기억을 선물해주려고 했던 사진.

엄마 손에 있는 사진...”

아 이건 네가 마지막으로 찍어준 사진이야.”

그럼 그 가시나무는 뭐야?”

아들. 그건 말이야. 가시나무가 아니라 장미를 준비하는 줄기야.”

 

나중에 들어보니 할아버지는 꽃 키우는 것을 좋아하셨다고 한다. 꽃을 길렀다가 누군가의 특별한 날이 찾아오면 그 꽃을 드렸다고 한다. 누군가의 입학식이 됐건, 누군가의 취업이 됐건, 누군가의 합격이 됐건, 주변에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선물을 드렸다고 했다. 저 가시나무가 찍힌 사진은 엄마가 찍은 것이다. 할아버지가 들고 있었던 장미는 할아버지가 키우려다가 그만 실패하고 꽃을 피우지 못한 줄기를 버리려고 했던 것이다. 버리려고 하는 말을 들은 엄마는 꽃을 버리기 전에 작별 인사 식으로 해서 사진을 찍어드렸다고 했다. 버리려고 했던 장미 옆에서 키우고 있는 다른 색의 장미는 나에게로 왔다. 내가 5학년 때 어버이 날 편지를 써드리니 저 꽃을 안개꽃으로 감싸서 나를 주었다.

나중에 찾아보니 파란 장미는 원래 절대로 자연적으로 만들어질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꽃말이 불가능,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이였다. 하지만 꾸준한 연구 결과로 파란장미도 재배할 수 있게 되어서 이루어짐, 희망, 기적이라는 꽃말로 바뀌었다고 한다.

아직 살아갈 날이 많지 않은가? 그럼 그 시간에 한 발자국이라도 더 남기세. 불가능은 없을 게야.”

할아버지를 꿈에서 보고 난 후 아침은 유독 햇살이 밝았다.


조건호 whrjsghwkd@naver.com 010-8220-9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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