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8차 창작 콘테스트 단편소설 부문 - 느린메일 외 3편

by 서정은 posted Jun 10,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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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느린 메일







안녕하세요. k입니다.

죄송하지만, 팀장님과 연락이 되지 않아서 이렇게 메시지를 남겨요.

저희 삼촌이 오늘 돌아가셔서 장례식장에 가게 되었는데요.

혹시 누가 되지 않는다면, 오늘 회의에 빠질 수 있을까 해서요.

팀장님과 연락이 닿으면 전달 부탁드립니다.

안되어도 괜찮으니, 편하게 연락주세요.

감사합니다.


나는 문화 공연을 기획하는 일을 하고 있다. 우리 회사는 탄력근무제를 시행하고 있어 출퇴근 시간이 비교적 자유롭고 재택근무나 사전답사를 가는 일도 빈번하여, 나는 k씨를 마주친 적이 많이 없었다. k씨는 오늘 오후타임 출근자였고, 몇 시간 뒤 출근해서 우리 부서가 진행하고 있는 메인 프로젝트 회의에 참석할 예정이었다. k씨는 팀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메일주소로 다섯 시간 전쯤 연락을 해왔고, 아마도 내가 그것을 가장 먼저 발견한 듯했다.

k씨는 직장 내에서 밝은 편에 속했고 유쾌하며 예의가 발랐다. 하지만 그러한 성격들이 그의 전체를 대표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오히려 너무 예의 바른 태도는 ‘진짜 그’를 숨기기 위한 기술 같아 보였다. 나는 가끔 진짜인 그를 보게 된 경우가 있었다. 사람들과 대화를 마치고 나서 찰나의 침묵과 표정은 마치 다른 사람을 보는 듯 했다. 어느 날은 음료 자판기 옆에서 혼자 커피를 마시고 있는 그를 보았는데, 그는 분명 눈을 뜨고 있었지만 눈앞의 아무것도 바라보고 있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그의 내면을 향해 있는 것 같았다. 그럴 때면 나는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궁금하기도 했지만, 왠지 알아서는 안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이내 고개를 돌려버리곤 했다.

그는 평소에 일적으로는 적극적이게 의견을 내다가도, 팀원들과 사담을 나눌 때는 대화에 끼는 법이 거의 없었다. 그는 누구에게 어떤 부탁을 한 적도 없었고, 이렇게 팀원 전체가 볼 수 있는 메일로 사적인 정보가 담긴 이야기를 하는 것은 드문, 아니 처음이었다.

글에 담긴 그의 어투는 담담했다. 마치 그가 직접 겪은 일이 아니라, 멀리서 그 일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상실감’에 대해 떠올려보았다. 내가 그것을 느껴본 적이 있는지 나는 확신하지 못했다. 그것은 사라진다는 걸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내 곁에 있는 것이 당연한 존재에게 느낄 수 있는 것이었다. 일상을 잘 살아가다가도 어느 날 문득 내 옆에 없어 사무치게 그리운 그런 것이었다. 그리운 마음조차 전달할 수 없다는 것이 처절하고 씁쓸하게 느껴져, 팀장님에게 어서 이 사실을 전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복도를 빠른 걸음으로 걸어갔다. 팀장님은 다른 부서의 팀장님과 회의 중이었고, 나는 문 앞에서 초조한 마음으로 그것이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팀장님, 혹시 k씨 연락 받으셨어요?”

나는 회의를 마치고 나온 팀장님에게 k씨의 연락에 대해 물어보았으나, 그는 자신의 핸드폰을 한 번 보고는 이내 모른다고 답했다. k씨가 팀 메일로 연락을 해 온 것처럼 혹시 팀장님에게도 메일로 전달한 걸까. 실제로 그렇게 했다면, 이런 사항을 전화나 문자가 아닌 메일로 보냈다는 것에 나는 의아함을 느꼈다. 평소 휴대전화로 서로 연락하는 것이 자유로운 우리 부서의 분위기와는 맞지 않았다. 왜 그는 굳이 느린 방법을 택했을까. 그러면서도 왜 메일을 기다리지 못해 부서 메일로까지 연락을 하였으며, 다섯 시간동안 아무도 메일에 답장을 하지 않았는데도 왜 끝내 전화는 이용하지 않았을까. 나는 어쩌면 그가 자신이 없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일이 정말로 중요한 것인지, 남들도 그렇게 생각을 하는지에 대해 확신이 없었을지도 모른다고. 그래서 누군가 메일을 읽고서 대신 가치 매겨주기를 기다리며, 이 모든 일을 운명에 맡겨버린 건 아닐까. 부서 메일은 우리가 회의 자료를 보내는 용으로 사용하는 공동 메일이었다. 모두가 주인이지만, 아무도 주인이 아닌 그런 메일. 그래서 자신에게 필요한 자료가 아니면 읽지 않더라도, 그 누구의 책임도 없는 그런 공간이었다. 자신의 메시지가 읽히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은 아마 k씨도 알고 있었을 것이었다. 나는 팀장님에게 메일을 한 번 확인해보라고 이야기 하려다가, 마음이 급해져 말을 건넸다.

“k씨 삼촌이 돌아가셨대요. 그래서 오늘 프로젝트 회의에 빠질 수 있을까하고 연락이 왔어요.”

팀장님은 평소 k씨를 좋게 보고 있었다. 부서원들에게 k씨를 옆에 두고 그의 인성을 칭찬하는 일이 잦았는데, 그것은 k씨가 언제나 팀장님의 부탁을 잘 들어주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팀장님의 툭툭 내뱉는 말투에는 여느 칭찬의 속성인 훌륭한 면을 높이 평가하거나 감탄하는 모양새는 찾기 힘들었다. 그저 말을 잘 듣는 부하직원을 계속해서 자신의 곁에 두기 위한 예쁜 다독임처럼 보였다. 나는 k씨를 향한 칭찬에도 어떤 권력의 구조가 끼어 들어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을 하고 나니, 그것은 칭찬이 아닌 듯 해보여 꺼림칙해졌다. 그래도 나는 팀장님이 그의 편의를 최대한 많이 봐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부서원들은 중요한 가족행사가 있다는 이유로, 몸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자세하게 이야기하지는 않았지만 ‘개인사정’ 이라는 대충 뭉뚱그려진 이유들로 회의에 빠지는 일이 가끔 있었고, 그럴 때마다 팀장님은 별 말 없이 예스를 해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팀장님의 부탁으로 그들의 일을 k씨가 도맡아 했기 때문이다.

“안 돼.”

“네?”

“오늘은 부서 회의가 끝나고 다른 부서원들과도 미팅이 있잖아. 계속해서 우리 부서 사람들이 한 두 번씩 빠져서, 영 이미지가 안 좋을 거 같아.”

팀장님은 요즘 부서원들이 개인사정으로 자주 빠졌을 때, 대놓고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내심 그것을 못마땅해 했다. 그도 그럴 것이 한 명이 빠지게 되면 알게 모르게 우리 팀 전체의 분위기를 해치고, 작지만 번거로운 일들이 나머지 부서원들에게 가중이 되었다. 각자의 사정이 있지만, 그래도 그런 일이 자주 일어난다는 것은 영 책임감이 없어 보여 나도 좋지 않게 보고 있었다. 하지만 팀장님은 그것을 못마땅해 하면서도, 중요한 일이니까 어쩔 수 없다며 우리라도 힘을 내보자는 말을 매번 하곤 했다. 나는 이번에는 k씨의 부탁을 꼭 들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것은 다른 부서원들이 회의에 빠지는 이유와 k씨의 이유가 같은 선상에 있지 않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사람에 대한 일이니까. 나는 팔을 포개어 가슴 속에 품고 있던 태블릿pc를 켜서 그의 메일을 다시 한 번 팀장님에게 내밀었다.

“팀장님, 여기요.”

팀장님은 그의 메일을 읽더니 손가락으로 화면의 한 부분을 짚으며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아까보다 조금 더 거침이 없었다.

안되어도 괜찮으니, 편하게 연락주세요.

“이것 좀 봐. 안되어도 괜찮다고 하네. 그래 그래, 장례식장에는 밤에 다녀오면 되지. 부모도 아니고 삼촌이잖아. 조금 곤란하지, 아닌가? 그런데 다른 부서 사람들이 우리 부서 준비가 엉망이라고 생각하면 어떻게 하나. 그렇지 않니? 삼촌이니까, 그냥 저녁에 가라고 해.”

k씨에게 ‘삼촌’이 어떤 존재인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내가 아무 말이 없자, 팀장님은 k씨에게 대신 연락을 좀 해달라고 이야기하고는 외부인사 미팅이 있다며 복도를 순식간에 빠져나갔다. 나는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그 날 k씨는 결국 몇 시간 뒤 출근을 하고, 프로젝트 회의를 잘 마쳤다. 그리고서 그는 3시간이 넘는 거리를 버스를 타고 삼촌 장례식장에 다녀왔다. 3일 동안 매 저녁마다 회의를 마치고 장례식장에 다녀온 k씨는 조금 피곤해보였고, 눈은 항상 빨갛게 부어있었다. 3일째 발인을 끝내고 돌아온 그를 둘러싸고, 나를 포함한 부서원들이 하나 둘씩 위로의 말을 건넸다. 그는 어렸을 적 외국으로 일을 자주 나갔던 부모님을 대신해서 삼촌네 가족이 자신을 많이 돌봐주었다고 얘기했다. 그는 희미하게 웃으며, 떠나간 삼촌이 많이 그리울 것 같다는 말을 담담하게 했는데, 그런 이야기를 하는 그가 낯설게 느껴졌다. 그의 표정은 어떤 표정을 짓는 것을 포기한 듯 힘이 풀려 있었고, 나는 음료 자판기 옆에 이따금씩 혼자 앉아 있던 그를 떠올렸다. 그 날 이후 일상은 다시 반복되었고, k씨는 점차 평소와 다름없이 지냈다.


이제는 모든 일상이 원래대로 돌아왔지만, 내 마음은 그렇질 못했다. 나는 이 모든 것들이 다 이상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여전히 다른 부서원들은 개인사정으로 회의에 종종 빠졌고, 우리 부서의 완전체는 늘 실현되지 못하며, 개인의 문제들은 항상 있었다. 팀장님은 그럴 때마다 늘 그렇듯 예스를 했고, k씨를 향한 칭찬은 계속되었으며, k씨는 언제나 팀장님의 부탁을 잘 들어주었다. 나는 그 광경을 보고 있자니, 갑자기 화가 불쑥 났는데, 그것은 책임감 없이 회의에 빠지는 부서원들에게도, k씨의 부탁만 들어주지 않았던 팀장님에게 난 것도 아니었다. 그것은 바로 k씨를 향한 것이었다.

어떤 일에 대한 가치는 다른 누군가가 매기는 것이 아니었다. 내가 다른 부서원들의 건강과 가족행사보다 k씨 삼촌의 장례를 더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도 어쩌면 틀린 일이었다. 그저 이 모든 일은 개인 사정이었고, 그것의 가치는 ‘오로지’ 자신이 내릴 수 있었다. 나는 팀장님이 못마땅해 하면서도 다른 팀원들의 부재에 예스를 한 이유도 조금은 알 것 같았다. 그는 마치 높은 가격표가 붙어있는 상품처럼, 이미 중요하다고 가치가 매겨져 있는 일에 어쩔 수 없이 수긍을 한 것은 아니었을까. 그리고는 자신이 예스를 선택했기 때문에, 팀장님 또한 그 일이 가치가 있는 일이라고 스스로 믿을 수밖에 없는 것은 아니었을까. 그렇게 해야 자신의 예스가 타당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나는 사람의 생각이란 그런 것이란 걸 알게 되었다. 단단하고 절대적이라고 믿었지만, 그것은 유연하고 말랑말랑해서 어디로든 움직일 수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어떤 사안에 대한 가치는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생각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라는 것도.

점심시간이었다. 우리는 함께 도시락을 주문했고, 다들 곳곳에 모여 앉아 자유롭게 도시락을 먹었다. 그리고 나는 내 자리에 앉아 며칠 전 k씨에게 온 메일을 다시 한 번 열어 찬찬히 살펴보았다. k씨의 배려로 느껴졌던 문구들이 이제는 그의 유약함으로 비쳐졌다. 자신이 가치를 매겨야할 권한을 다른 이에게 넘겨버린 것이 무엇보다 책임감 없어 보였다. 사실 내가 화를 낼 건 아닌데 싶으면서도 자꾸만 서운한 마음이 드는 것은, 나 자신에게로 향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나는 그의 모습에서 나의 모습을 보기도 했다. 며칠 전 밖으로 나가는 팀장님을, 태블릿 pc를 껴안은 채로 가만히 보고 서 있던 나를 떠올렸다. 나는 고개를 들어 k씨를 찾았다. 부서원 사람들과 둘러앉아 있는 k씨가 보였고, 그는 특유의 선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나는 이제 그 웃음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는 그의 메일에 답장을 하기로 결심했다.







2. 욕심



본 역의 엘리베이터에 있는 어르신들은 양보해주시기 바랍니다.

만원인 상태에서는 엘리베이터가 움직이지 않습니다.


지하철을 타려고 기다리고 있는데,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젊은 남성이었고, 그의 목소리는 조금 상기되어 있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본 역의 엘리베이터에 있는 어르신들은 양보해주시기 바랍니다.

만원인 상태에서는 엘리베이터가 움직이지 않습니다.


나는 아까 본 광경을 잠깐 떠올렸다. 이 지하철역의 환승을 위해서는 긴 복도를 먼저 지난 후, 또 긴 내리막 계단을 내려가야 했다. 복도의 끝자락, 계단이 시작되는 곳 옆에는 노약자를 위한 엘리베이터가 있었다. 그곳에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고, 나는 걸음을 멈추지 않은 채 사람들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엘리베이터 문은 활짝 열려 있었고, 그 안은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는 문을 사이에 두고 그들과 대치한 두 사람이 있었다. 휠체어를 타고 있는 한 남성과 허리춤에 손을 얹고 있는 나이가 든 여성이었다. 그녀는 엘리베이터 안을 향해 소리쳤다.

“양보 좀 합시다. 여기 몸 불편한 사람 좀 탑시다. 아까부터 계속해서 못 탔어요.”

그녀의 목소리는 컸고, 어깨가 들썩들썩하였다. 목소리와 뒷모습만으로도 그녀가 화가 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휠체어를 탄 사람은 그녀보다 조금 더 뒤에 있어서 나는 그의 표정을 볼 수 있었다. 그의 표정은 아주 차분했다. 많이 겪어본 일이었을까. 이 상황에 대한 당혹감이나 엘리베이터를 타지 못한 분노는 전혀 없었다. 그는 그저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그 옆을 지나가는 잠깐의 시간동안 그 곳의 사람들은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엘리베이터 안에 있는 많은 사람들도, 그들과 마주한 나이 든 여성도, 그 옆에 휠체어를 타고 앉아있는 남성도. 그리고 엘리베이터도.

지금 흘러나오는 안내 방송은 아마도 조금 전 그 사람들에게 하는 이야기인 것 같았다. 어른들이 항상 아이들에게 가르치던 미덕인 양보를, 이번에는 젊은 남자가 어르신들에게 부탁하고 있었다. 그의 말투는 정중했지만 애써 격앙된 감정을 누르듯 목소리 어딘가에는 경멸이 섞여있었다. 지하철을 기다리는 동안 시간이 꽤 지난 것 같은데 아직도 엘리베이터와 그 안과 밖의 사람들이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자, 어디로도 움직이지 못하는 엘리베이터처럼 마음속이 답답해졌다. ‘욕심’ 그것은 사람들의 욕심 때문이었다.

곧이어 지하철이 들어왔고 사람들이 쏟아져 내렸다. 그것을 타기 위해 스크린 도어 앞에 줄을 서 있던 승객들은 다른 사람들이 내릴 수 있도록 옆으로 살짝 비켜주었다. 사람들이 다 내린 후, 줄을 이탈한 채 서있던 몇몇의 사람들과 함께 그들은 지하철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사람들로 빽빽한 지하철 속에서 아까 그 엘리베이터는 결국 움직였을까 궁금해졌다. 당연히 누군가 한 명 내렸겠지. 아니야, 어쩌면 지하철 역무원이 오기 전까지 엘리베이터는 움직이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우리는 무리 속에서는 꽤나 나빠질 수 있었다. 자기 자신을 무리 속에 숨긴 채, 이탈자가 되는 것은 누구도 원하지 않았다. 남보다 먼저 엘리베이터를 타려는 욕심과 남보다 먼저 내려가려는 욕심은 결국 그들을 오랫동안 그곳에 머물게 했다.

제가 욕심 부린 걸까요?

나는 얼마 전, k씨의 이야기가 문득 떠올랐다. 내가 홧김에 그에게 답장을 하고나서부터, 나는 k씨의 얼굴을 보는 게 멋쩍어져 그를 은근히 피해 다녔다. 어느 날은 퇴근길에 k씨와 마주쳤는데, 평소라면 가볍게 인사하고 헤어졌을 그가 이번에는 버스 대신 지하철을 타겠다며 내 옆으로 왔다. 나는 최대한 지난 일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고 싶지 않아, 시시콜콜한 질문들을 대답할 틈도 주지 않은 채 쏟아냈다. 그때 그는 내 말을 잠깐 끊고서 말했다.

“저는 삼촌과 항상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해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무엇인지 알아요? 짜장 떡볶이에요. 다 큰놈이 짜장 떡볶이가 뭐냐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그것을 먹을 때는 기분이 절로 좋아져요. 어릴 적에 삼촌이 종종 만들어주셨거든요. 그래서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그걸 먹으면 그때로 돌아간 것 같아요. 내가 안락했던 곳, 나를 항상 아껴주셨던 삼촌이 있는 곳이요. 짜장 떡볶이를 만들 때마다 내가 삼촌이 된 것 같고 삼촌이 내 마음에 있는 것 같거든요. 제가 이 회사에 들어온 것도, 예술 공연에 관심이 있는 것도 다 삼촌 덕분이에요. 삼촌이 저를 공연장에 자주 데려가셨어요. 예술에는 우리의 삶이 들어있기 때문에, 그것을 통해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이해할 수 있다고 하셨죠. 제가 바라보는 모든 시각에는 그의 시각이 담겨있어요. 그렇게 저의 모든 것이 그와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따듯해져요. 아, 혼자가 아니구나. 내 눈에도, 내 입에도, 내 마음에도, 나의 모든 것이 내가 사랑하는 삼촌과 연결되어 있구나, 그렇게 생각하면요.”

나는 그의 이야기를 듣고 마음이 숙연해졌다. 그는 그의 삼촌을 상실하지 않으려 애쓰고 있었다. 나는 그 날 그 때에도 일을 나오게 해서 미안하다는 말을 그에게 건넸다. 물론 그것은 나의 잘못은 아니었지만, 팀장님을 설득하지 못했다는 것이 나로서는 마음에 걸렸다. 그는 내 말을 듣더니 빙긋 웃으며 말했다.

“나에게 미안해야 할 사람은 바로 나죠. 그렇게 메일로 얘기해주셨잖아요.”

나는 k씨의 얼굴은 보지 않은 채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그와 나란히 걸어 지하철을 타러 갔다. 그는 내게 주말에 공연을 보러 가자는 제안을 했다. 나는 회사의 공식적인 업무가 아니어서 조금 놀랐지만, 공연을 기획하면서 회사 부서원들과 다른 예술 공연을 참고하는 일은 종종 있었으므로 그러자고 그에게 답했다. 곧이어 그가 내릴 역이 되었고, 그는 내게 주말 공연 시간과 장소를 문자로 보내주겠다는 말을 하며 지하철을 내렸다.

작은 갤러리에서 하는 현대무용 공연이었다. 주말에 나는 시간에 맞추어 갤러리로 갔다. k씨가 아직 보이지 않았다. 나는 k씨를 기다리며, 갤러리에 마련된 작은 무대를 둘러보았다. 이 공연은 공연료 지불 방식이 특이했는데, 관객들이 공연을 본 후 원하는 만큼 공연료를 지불하면 되었다. 공연을 보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돈을 지불하지 않아도 상관없었다. 그렇다면 이 공연은 무료인 것일까, 아니면 무한대인 것일까, 하고 나는 잠시 생각했다. 공연 시작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도 k씨가 도착하지 않아,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곧장 전화를 받았는데 나의 위치를 묻고는 전화를 끊지 않은 채로 나에게 걸어왔다. 그는 무대 옆쪽으로 난 문에서 나왔고, 그곳은 공연을 할 무용수들의 대기 장소였다. 나는 깜짝 놀랐다. 그는 오늘 무용수로서 공연에 참석하였고, 나는 그의 관객으로 오게 된 것이었다. 나는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놀랐지만, 공연 시작을 알리는 암전이 되면서 떠밀리듯 공연에 빠져들게 되었다.

공연은 현대무용에 내레이션을 합친 방식이었는데, 무용을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들에게 더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연출방식이었다. 극의 내용은 자전적인 이야기로 이루어졌고, 나는 그것을 통해 k씨의 삶을 잠깐 엿보게 되었다.

(내레이션)

저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몰랐어요.

어떻게 하면 내 감정을 이야기할 수 있는지도 몰랐어요.

어떻게든 표현을 해야 하는데.

그래서 저는 말 대신 그 밖의 모든 방법들을 동원했어요.

그림, 음악, 글, 그리고 춤

춤은 제가 마지막으로 선택한 말이었어요.

사람들은 다 욕심이라고 했죠.

나는 겨우 세상을 소통하는 방식을 찾았는데.

나만 하고 싶어 하는 거구나.

내가 욕심 부리는 거구나.

나만의 욕심이구나.

세상에 많은 추한 욕심들처럼,

춤은 정말 욕심일까요?

공연을 하는 내내 그의 눈에는 힘이 있었다. 나는 처음으로 k씨가 진정으로 살아있다고 느꼈다. 회사 내에서의 선하고 유약한 웃음을 짓는 그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는데, 나는 곧장 그에게 매료되었다. 공연이 끝나고 나는 그와 잠깐 걷기로 했다. k씨는 내게 마음을 조금 연 듯 보였다. 나도 그의 삶에 한층 가까워진 느낌이었다. 누구든 그들의 삶을 엿보는 건 그들을 이해하고 가까워지기에 아주 충분했다.

며칠이 지났지만, 그의 공연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와 잠깐 걸으면서 그는 내게 이런 질문도 했다. 나는 그 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제가 욕심 부린 걸까요?

지하철에서 사람들로 둘러싸여 있는 나는, 그런 욕심은 조금 부려도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계단을 내려갈 유일한 방법이 엘리베이터였던 휠체어를 탄 남성처럼, k씨도 세상과 소통할 유일한 방법이 춤이라면, 그런 욕심은 조금 부려도 되지 않을까. 어쩌면 아까 그 희한한 광경을 보며 가슴 속이 답답해져왔던 것은 휠체어를 탄 남성의 욕심 없는 표정 때문은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나를 진정으로 살아있게 만들고, 과거도 미래도 아닌 지금 여기에 존재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춤이라면, 그것은 k씨의 유일한 소통 방법일 것이다.

그 때 나는 정말이지 그를 위해 기도하고 싶었다. 남보다 더 좋은 것들을 누리려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서 채워지는 귀한 욕심들이라면, 그가 기꺼이 욕심내기를 바랐다. 나는 k씨와 내가 닮았다는 생각을 했는데, 그 때부터였을까, 아니면 그의 메일 속에서 그의 유약함을 발견하고부터였을까. 나는 그의 불완전함 속에서 내가 그토록 싫어하던 나의 모습들을 보았고, 나는 그가 정말로 잘 살아주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나는 그를 사랑하고 싶었다. 내가 그를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다면, 그것은 곧 나를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다는 이야기니까. 나는 정말로 나를 사랑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3. 사고실험


날이 좋은 어느 날, 우리는 서로에게 잠깐의 시간을 내어주었다. 무언가를 하기에는 여의치 않은 ‘잠깐’이어서 우리는 카페에 들어가 앉기로 했다. 그 즈음, 우리는 사고 실험을 자주 했다. 사고실험이라는 것은 말 그대로 머릿속에서 하는 실험이었다. 주제는 다양했고, 우리는 꽤나 열정적이어서 겉으로 보기에 마치 열띤 토론을 하는 사람들 같았다. 얼핏 보면 유용성이 없어 보였지만, 나는 그런 이야기들에 쉽게 빠져들었다. 쓸모없어 보이는 것들이 어쩌면 정말로 쓸모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의 첫 사고실험은 폭주하는 광석차 이야기로 시작되었다.

“아주 빠른 속도로 질주하는 광석차가 있어. 광석차는 이대로 폭주하다가 저기 있는 인부 다섯 명을 치게 될 거고, 그들은 죽을 거야. 근데, 마침 너는 광석차를 다른 쪽 선로로 바꿀 수 있어. 그럼 저 다섯 명의 인부를 구할 수 있지.”

그의 이야기는 뜬금없이 시작되었지만, 나는 그것이 좋았다. 나는 빠르게 집중하기 시작했다.

“근데 다른 쪽 선로에는 인부 한 명이 일을 하고 있었어. 그래서 네가 광석차의 선로를 바꾸면, 저 다섯 명 대신 한 명의 인부가 죽게 되는 거야. 자, 너는 어떻게 할래?”

나는 잠시 다섯 명과 한 명이라는 숫자에 대해 생각을 하다가, 그에게 답했다.

“나는 선로를 바꾸지 않겠어.”

“그럼 다섯 명의 인부가 죽는데?

사람의 수만 생각하면 그의 말이 옳았다. 그런데 사람의 ‘수’를 생각해야하는 것이 맞는지 의심이 들었다. 나의 심각한 표정을 알아채고 그가 웃으며 말했다.

“사고 실험이야, 사고실험. 실제로는 모두를 구할 수 있는 방법을 찾지.”

나는 내가 필요 이상으로 심각해진 것을 알았지만, 진지하게 대답했다.

“내가 선로를 바꾸면, 아무 일 없었을 한 명의 사람이 나 때문에 죽게 되는 거잖아. 그건 내가 그를 죽이는 거와 다름없어. 그리고 나에게는 그것을 결정할 권한이 없어.”

“그렇구나. 다른 많은 사람들은 어떻게 대답했는지 알아? 선로를 전환한다고 답했대. 왜냐하면 다섯 명의 인부를 살릴 수 있으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나 더 질문을 해볼게. 또 다시 폭주하는 광석차가 있고 그 앞에는 마찬가지로 다섯 명의 인부가 있었어. 이번에는 선로가 하나였고, 광석차는 폭주하다가 저 다섯 명을 치게 될 거야. 근데 그 광경을, 너는 선로 위에 있는 육교에서 보고 있었어.”

나는 잠자코 그의 말을 들었다.

“그런데 네 옆에는 아주 덩치가 큰 사람이 있고, 네가 그 사람을 떨어뜨려서 광석차와 추돌시키면, 그 광석차를 멈출 수 있어. 그러면 다섯 명의 인부를 살릴 수 있지.”

나는 말도 안 된다며 펄쩍 뛰었다.

“내가 그 사람을 죽이는 거네.”

그리고서 나는 첫 번째 이야기와 두 번째 이야기가 결국은 같은 이야기라는 것을 알았다. 선로를 바꾸어서 한 명을 희생시키고 다섯 명을 구하는 것, 그리고 한 사람을 밀어 떨어뜨려서 그 사람을 희생시키고 다섯 명을 구하는 것.

“결국 같은 얘기네.”

“맞아. 그런데 흥미로운 게 뭔지 알아? 이번에는 아까보다 훨씬 적은 사람만이 한 명을 희생시킨다고 했어. 다섯 명의 인부를 구할 수 있는데도 말이야. 내가 생각하기에 이건 선로를 바꾸는 것과 직접적으로 사람을 밀어 떨어뜨리는 것에 대한 차이 같아. 두 번째가 더 직접적이고 능동적인 행동을 해야 하니까 부담을 느끼는 거야. 그래서 여기에서는 한 명 대 다섯 명의 숫자 논리가 적용되지 않는 거지. 나는 내가 무슨 일을 하든, 선로전환 버튼 뒤에 숨어 있지는 않았으면 좋겠어.”

그의 표정은 어느새 진지해져 있었다.

나는 그때 그의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분명히 그는 더 많은 이야기를 속으로 하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마치 그가 춤을 추었을 때 내가 그에게 매료된 것처럼, 나는 그가 그런 표정을 지을 때면 쉽게 압도당했고 오랫동안 그것을 잊지 못했다. 우리에게도 긴 시간이 흘렀다. 우리는 서로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다. 그는 회사를 나가 정부의 지원을 받으며 공연을 했고, 나는 주임으로 승진을 했다. 그는 자신이 그토록 원하는 것에 온 에너지를 쓸 수 있어 기뻐했고, 나도 그가 기뻐해서 좋았다. 우리는 서로의 길을 응원해주며, 서로를 사랑했다.

우리는 둘 다 공연 보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에, 어떤 예술문화공연이든 틈만 나면 공연을 보러 다녔다. 하지만 우리가 꼭 다투게 되는 것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좌석의 위치였다. 그는 무대와 관객의 경계선에서 공연을 보는 것을 좋아했다. 무대의 전체적인 모습을 볼 수 없더라도, 시야에 무대 이외에는 아무 것도 없는, 그래서 내가 앉아있는 이곳이 무대인지 관객석인지 알 수 없는 곳 말이다. 대체로 그는 앞좌석에 앉기를 좋아했고, 두 눈은 항상 무대로 빨려 들어가곤 했다. 그에 비해 나는 웬만하면 뒤편, 가장 선호하는 자리는 맨 뒷자리였다. 나는 무대라는 공간이 전체적으로 시야에 들어오는 것을 좋아했다. 게다가 앞자리 관객석도 보여서, 무대 그 곳이 현실이 아니라 가상의 공간이라는 것을 인식할 수 있는 것이 좋았다. 나는 그곳으로 빨려 들어가기를 거부했다. 수많은 공연을 그와 함께 보면서, 우리는 처음에는 서로의 취향에 따라 앞자리와 뒷자리를 번갈아 가며 앉았다. 또 중간 지점에 앉아보다가, 서로 원하는 자리에 각자 따로 떨어져 앉기도 했다. 그러다가 우리는 어느새 함께 공연장으로 가서, 따로 앉아서 보고 돌아오는 것이 익숙해졌는데, 처음에는 그것이 우리 둘을 모두 만족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k씨와 알게 된 지도 어느덧 2년 정도가 되었다. 2년이라는 시간이 참 길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돌이켜보면 그리 길게 느껴지지 않았다. 우리는 서로 시간이 생기면 자주 만났고, 어느새 서로의 일상이 되었다. 나에게 k씨가 사라진다는 것이 상상이 안 될 정도로 내 옆에 있는 것이 당연해졌다. 나에게도 ‘상실’할 무언가가 생긴 것이었다. 우리는 그동안 노력에 의해 서로를 적당히 잘 알게 되었다. 하지만 앞좌석과 뒷좌석을 오가던 우리가 중간 즈음에 앉아서 공연에 집중하지 못하던 것처럼, 나에게 그 ‘적당함’이란 것은 위협적이게 느껴졌다. 결국 우리가 매번 따로 앉아서 공연을 즐기게 되었을 때, 나는 서로를 존중한다고 생각했으며, 상대의 세계로는 가지 않는 우리를 보지 못했다.

공연을 기획하는 것은 특별히 바쁜 달이 있었다. 날이 좋은 봄이나 가을에는 특히 더 그랬다. 그것은 k씨도 마찬가지였는데, 그는 어느 날 전국 순회공연을 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것은 그가 직업적으로 자신을 알리는 데 아주 좋은 기회였다. k씨는 정말이지 아이처럼 기뻐했는데, 나는 그가 평소에 하던 말들이 떠올랐다.

“나는 항상 떠나고 싶어. 어디로 여행을 가는 것 말고 말이야. 잠시 일상에서 일탈을 하고서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떠나는 삶을 살고 싶어. 떠나는 것만 있는 그런 삶.”

그건 어디에도 고향이 없다는 것이었다. 돌아가야 하는 곳은 없고 그냥 출발지와 도착지만 있는 것. 도착지는 어느새 출발지가 되었고 또 다른 곳을 향해 가고 있었다. 그는 그런 삶을 꿈꾼다고 말했다. 나는 그의 마음의 고향은 어떤 ‘장소’가 아니라 떠나는 ‘상태’, 즉 여정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4. 상실


그가 결국 돌아오지 않았다는 것이 나는 이상하지 않다. 우리가 서로만을 바라보고 있을 때는 몰랐지만, 그와 같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지 않다는 것을 나는 조금씩 느끼고 있었다. 상실감은 어떤 것일까. 나는 이제 그것에 대해 조금은 알 것 같다. 처음에 그가 순회공연을 막 떠났을 때, 우리는 매일 밤 전화를 하거나 편지를 주고받았다. 그가 점점 연락이 뜸해졌을 때, 그리고 공연을 끝내고 새로운 도착지를 찾아서 떠났을 때도 나는 상실감을 느끼지 않았다. 우리는 비록 떨어져 있었지만, 항상 연결되어 있다고 믿었었다. 상실한다는 것의 참의미는 몸이 떨어져있어 그를 볼 수 없는 것이 아니었다. 나의 생각과 추억에서 그가 빠져나가는 것이었다. 혹은 그에게로부터 내가 빠져나가거나. 그렇게 우리의 연결은 끊어졌다.

우리의 연결은 언제, 어디서부터 늘어지기 시작했을까. 나는 분명 그를 사랑하는 일이 곧 나를 사랑하는 일이라고 믿고 있었다. 언젠가 나는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내가 과연 그 앞에서 무너질 수 있을까?

나는 항상 k씨 앞에서 무너질 수 있기를 바랐는데, 무너진다는 것은 그를 완벽하게 신뢰한다는 뜻이었다. 내가 어떤 상황에 굴복하여 힘이 없을 때, 내가 다시 일어서서 잘 해낼 거라고 그가 철석같이 믿고 있다는 것을 ‘내가 아는’ 것. 나의 나약한 모습을 보아도 나를 떠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드는 것. 그래서 언제든 ‘나’ 다울 수 있기를 바랐다. 나는 과연 그 앞에서 온전히 나다울 수 있을 지에 대해 자주 생각했다. 나는 그럴 수 없었다. 사람들은 약한 모습을 싫어하니까. 그렇다면 그는 과연 내 앞에서 무너질 수 있었을까. 그는 온전히 그 자신이었을까. 그것 또한 자신이 없었다. 그는 항상 혼자 시간 보내기를 좋아했는데, 나는 그것이 불만스러워 ‘너는 혼자 있는 것을 너무 좋아해’라며 그를 나무란 적이 있다. 그리고 그는 내게 이런 말을 했다. 혼자 있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외로움을 느끼지 못하거나 외로운 감정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고. 그것은 어느 누구를 통해서도 채울 수 없다는 것을 알고서는 혼자 있기를 연습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가만히 있어도 우리의 시간은 흘렀다. 우리가 만난 기간이 더 이상 우리가 서로 깊어지는 것과 비례하지 않는 순간,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나는 우리가 비겁했다는 것을 이제 안다. 오랜 시간, 우리는 선로 전환 버튼 뒤에 숨어서 조용히 이별의 버튼을 누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모른 채. 우리는 서로의 세계로 결국 가지 않았다. 내가 k씨를 사랑하게 된 이유는 나를 사랑하고 싶어서였고, k씨가 결국 돌아오지 않은 이유도 나와 같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누구나 자신을 구원해줄 누군가를 찾기 때문이다. 참 서글픈 일이지만.




이 름 : 서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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