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9차 창작콘테스트 단편소설 부문 - 나는

by 박하나 posted Jun 10,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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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박 하 나

 

 2019. 03. 27

가끔 그럴 때도 있다. 모든 프로그램이 끝난 TV 화면을 새벽 3시까지 아무런 이유 없이 바라본 날. 보고 있는 내내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백색소음만 흘러나오는 화면을 쳐다본다. 물을 마시러 나온 딸이 나를 보고 소스라치게 놀라면 그제야 TV를 끄고 돌연 방으로 들어간다.

희고 흰 백지에 검은 펜을 살짝 점이라도 찍는다면 금세 나의 백지는 검정으로 물들어 버릴 것 같았다. 아니 나도 모르는 사이 흑지가 되어버린 걸까.

 

 2019. 03. 29

또옥 똑 또록···.

 

방금 설거지를 마친 싱크대에선 물소리가 고요하고 일정하게 떨어진다. 작은 물방울 소리가 세상을 덮어버릴 큰 물줄기처럼 집안에 크게 울린다. 나는 허공만 바라보다 잠깐 스치듯 본 거울로 다시 한번 내 모습을 유심히 바라봤다. 아침에 일어나 신경 쓸 시간도 없어 대충 묶은 머리와 설거지하면서 튄 물로 조금씩 젖어있는 티셔츠. 마냥 초라하게 느껴진 내 행색에 이 세상 모든 슬픔과 우울함이 나를 덮쳤다. 아, 장 보러 가야지. 하염없이 거울만 보다가 장 보러 갈 시간에 맞춰 준비를 시작했다. 헝클어진 머리를 다시 꽉 묶고 옷장 앞에 서서 이리저리 옷을 둘러보지만, 한숨만 나온다. 맨 앞에 걸려있던 겉옷을 하나 챙겨입고는 빠르게 집 밖으로 나왔다.

 

밖은 이제 막 벚꽃으로 봄을 알리고 있는데 나는 지금이 마냥 춥기만 하다. 길마다 떨어져 있는 벚꽃을 자박자박 밟으며 마트로 향했다. 최근 건망증이 심해져 챙긴 메모를 보며 장을 보다가 생리대 판매대 앞에 발이 멈췄지만 이내 다른 코너로 발길을 돌렸다. 이제는 아무렇지 않다. 아무렇지 않은 게 맞을까.

 

집을 나올 때 벚꽃과 함께 어우러져 분홍색으로 물들었던 하늘이 어느새 칠흑처럼 모든 걸 덮었다. 오늘따라 유난히 집에 가는 길이 고요하다. 주변에 오토바이 하나 지나가지 않고 오로지 내 발소리만 울린다. 문득 이런 고요함 속에서 숨죽여있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집에서와는 다른 고요함인가. 집은 나를 옥죄어 오는 느낌이다. 지금 이 거리와는 반대로.

 

고요하던 집에서 아까와는 다르게 말소리가 조금씩 새어 나왔다. 문을 열자마자 보인 건 언제 왔는지 편한 차림에 소파에 누워 TV를 보고 있는 남편이었다.

 

“자기는 밤늦게 어딜 그렇게 갔다 와? 집에 먹을 게 아무것도 없는데.”

 

집에 들어오자마자 들은 소리가 남편의 볼멘소리라는 생각에 순간 화가 치밀어 올랐다.

 

“잠깐 나갔다 올 수도 있지.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밥 하나 혼자 못 차려 먹어?”

“아니, 집에만 있는 사람이 밥 하나 차려주기 힘들어?”

“....”

“지금 무시한 거야? 왜 사람을 무시해. 밥은 어떻게 할 건데!”

 

남편의 말 하나하나가 신경을 건드렸다. 더는 대꾸조차 사치라고 느끼고 남편을 흘깃 쳐다보고 방으로 들어갔다. 저 볼멘소리 다시 들을까 방문까지 닫아버리니 날 옥죄어 오는 고요함이 다시 찾아왔다. 침대에 잠깐 누워 생각에 잠긴 지 얼마 지났을까.

 

띠릭-.

 

“다녀왔습니다.”

 

학교 마친 딸이 온 소리에 거실로 나가봤지만, 딸은 벌써 방에 들어가고 문까지 꼭 닫아버렸다.

 

“엄마보고 인사도 안 해? 집에 오면 한 번이라도 봐야 할 거 아니야?”

 

아빠를 닮아 다정함이라곤 찾아볼 수 없고 오히려 무뚝뚝한 딸이지만 오늘따라 그 무뚝뚝함에 서운하고 마음에 박혀버렸다.

 

“왜 애를 잡아. 인사했으면 됐지.”

 

남편은 내가 큰 잘못이라도 한 것처럼 내 심기를 또 한 번 건드린다. 가슴에 남아 있는 공간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박혀있는데 더 박힐 공간이 남아있었나 보다. 오늘 유난히 상대방 말들이 가슴에 쏙쏙 박히는지. 뒤에서 난 방문 소리도 못 들을 만큼 가슴이 너무 아팠다.

 

 2019. 03. 31

그런 날이 있다. 유난히 힘든 날. 모든 걸 놓아버리고 떠나고 싶은 날. 아니 혼자 있고 싶은 날. 오늘은 그런 날이다. 그동안 잘 외면하고 있었지만, 오늘만큼은 외면하기조차 힘든 날이다. 이대로 떠나버린다면 마음이 가벼워질까? 항상 이 생각을 할 때면 뒤에 연기처럼 가족들 생각이 따라붙는다. 오늘만큼은 가족이든 누구든 다 지워버릴 만한 연기가 뿌옇게 가득 차 있었으면 좋겠다.더는 나를 따라오지 못하게. 이런 생각을 하는 것조차 우습게 내가 떠나도 아무도 걱정하진 않을 것이다. 걱정한다면 자기가 먹을 밥걱정? 나에 대한 걱정은 없겠지. 밥하는 기계일 때의 나를 걱정하겠지.

 

 2019. 04. 01

나는 무엇일까. 내가 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이었길래 지금 여기까지 온 것인지 도무지 모르겠다. 이 모든 게 다 갱년기 때문인지 이때껏 생각해온 모든 것의 집합체인지 도무지 모르겠다. 내 입으로 갱년기라는 단어를 쓰니 가슴이 먹먹하다. 그저 그런 누구나 경험하는 시기일 뿐인데 잘 넘길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아니었나 보다. 누구보다 격렬하게 갱년기를 겪고 있는 거였다. 무엇이든 해서 이겨내고 싶다.

 

 2019. 04. 04

아침부터 분주하지만 조용하게 움직였다. 어제 긴 밤 나는 고향에 가기로 했다. 갑자기 미친 것처럼 고향으로 가야 한다는 생각이 뇌리에 박혔다. 고향에 간다면 이 모든 것이 해결되고 잘 마무리되어 돌아올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침이 밝아오자마자 나는 짐을 챙겨 나가기 전 짧게 메모만 하나 식탁에 두고 탈출하는 것처럼 집을 나섰다.

 

‘고향 갔다 올게. -엄마가’

 

다른 부연설명 없이 쓰고 왔다는 게 마음에 걸리지만,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서둘러 고속버스터미널로 향했다. 다니는 곳이라곤 동네밖에 없었는데 이렇게 동네 밖을 나오니 설레면서 긴장감에 발을 헛디딜 뻔했다. 마음을 진정하고 침착하게 가평 가는 버스표를 예매했다. 얼마 기다리지 않아 버스에 몸을 실었다. 결혼하고 명절 때만 가보던 고향을 아무런 이유 없이 간다는 건 나에겐 일어나지 않는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버스가 움직이니 실감이 났다. 움직이는 버스를 따라 움직이는 산을 보니 벌써 마음이 한결 가라앉는다.

 

출발할 때는 갱년기를 극복할 거라는 생각으로 왔지만 사실 나는 도망치고 있다. 처음부터 알았지만 도망친다는 걸 외면하고 싶어 고향에 간다면 무언가 해결될 거란 생각으로 감추고 있던 것이다.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를 하염없는 우울감에 빠지게 한다.

 

더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마침, 가평에 도착했다. 별로 든 것이 없는 캐리어를 달달 끌며 엄마 집으로 걸어갔다. 엄마 집으로 걸어가는 길에는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가 있고 그 옆에는 초등학교 때부터 다니던 문방구가 아직도 자리 잡고 있다. 늘 학교 가던 길을 따라 걸으니 다시 그때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이다. 옛 추억을 만끽하며 걷다가 저 끝에서 누군가 숨차게 뛰어오고 있다.

 

“정원아! 정원아!”

 

엄마는 세상 떠나갈 듯 내 이름을 부르며 여기저기 흙이 묻은 바지를 털며 뛰어왔다.

 

“엄마! 밭에 있다 왔어?”

“너는 말도 없이 이렇게 오면 어떡해! 이 서방이랑 민아는 어쩌고!”

“아, 말하고 왔어. 괜찮아. 괜찮아. 엄마는 뭐 하느라 이 아침부터 밖에 있었어?”

“밭일에 이른 아침이 어딨어. 벌써 다 나와서 일하고 있구먼. 너는 밥은 먹고 왔어?”

“빨리 나오느라 못 먹었지. 오랜만에 엄마 밥 좀 먹어볼까 해서”

“어휴. 좀 있으면 끝나니까 집에 가서 기다리고 있어.”

“엄마도 무리하지 말고 얼른 하고 와!”

 

오랜만에 본 엄마에게 좋은 말은 못 들었지만 벌써 포근했다. 내가 고향에 왔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건 엄마의 잔소리였다. 엄마 집에 도착해 짐도 풀고 봄바람을 맞으며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얼마나 잔 것인지 엄마가 벌써 점심을 차려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왔으면 깨우지....”

“너무 곤히 자는 애를 어떻게 깨워. 일어났으면 밥 먹자. 네가 좋아하는 김치찌개도 했어.”

 

엄마가 차려준 밥은 언제 먹어도 두 공기는 거뜬하게 먹을 수 있을 정도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엄마표 김치찌개를 한입 먹으면 이 집에 살 때가 생각난다. 철없고 하고 싶은 건 많았던 그 시절.

 

 2019. 04. 05

엄마는 이른 아침부터 밭일하러 나가고, 나는 더 퍼질러 자고 싶었지만, 서울에서의 생활습관 때문에 저절로 아침에 눈이 떠졌다. 서울에서는 이 시간이면 남편과 딸 모두 보낸 후 미루고 싶지만 미룰 수 없는 설거지를 하고 있을 시간이다. 여기에서는 직장이나 학교를 보낼 사람도 없고 미룰 설거지도 없다. 오로지 나를 위한 시간이 되었다. 이런 시간이 오랜만이라 무엇을 해야 할지 감도 오지 않아 무작정 밖으로 나갔다. 햇볕이 따사로워 기분까지 맑아지는 기분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마음이 썩 좋지는 않다. 애써 외면하면서 길을 따라 걸으니 어제 지나쳤던 고등학교가 나왔다. 수업이 시작했는지 운동장에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시골에 있는 고등학교라 그런지 변한 게 하나 없이 모두 세월을 견디고 있었다.

 

그중 큰 소나무 그늘 정자는 친구들과 매일같이 앉아 수다를 떨었던 곳이다. 사랑, 영화, 가수 등 주제는 다양했지만, 우리가 가장 긴 시간 동안 얘기했던 건 하고 싶은 것에 대해 말할 때였다.각자 하고 싶은 걸 말할 때면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하늘이 깜깜해지고 나서야 각자 집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다음 날이 되면 어제 그만큼 얘기해도 할 얘기가 무궁무진하게 남았는지 또 꿈이야기로 하루를 시작했다.

 

친구 미진이는 항상 미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자신이 그림을 그리든 전시를 해주는 사람이든 그림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일하고 싶다고 했었다. 그리고 성희는 커리어우먼이 꿈이자 목표였다.항상 당차고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은 꼭 하고야 마는 성격이었기 때문에 우리는 다들 성희가 커리어우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무엇을 하고 싶어 했는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어 했는지 생각이 안 난다. 나한테는 별로 간절하지 않았던 꿈이었나 보다. 그저 학창시절 웃으면서 얘기하고 다음 날이면 까먹을 그런 얘기였을 것이다.

 

ㅡ 

딩-동-댕-동

 

“김정원! 아직도 자?”

“정원이 때문에 빵 하나 못 사 먹겠네. 얼른 일어나”

 

따스한 햇볕 옆에서 이제 막 깊은 잠에 들려는 순간, 미진과 상희의 우렁찬 목소리가 귀에 가득 차버렸다. 또 빵 사러 가자는 소리다. 빵 없이는 못 사는 빵순이 미진이. 너희들끼리 가라는 손짓을 하며 얘들을 돌려보내려 했지만 가기는커녕 나를 더군다나 세게 흔들며 재촉을 한다. 어제 1권만 읽으려고 했던 만화책에 어느새 빠져버려 9권 전권을 다 보고 나서야 잠이 들어 아침에 학교도 죽도록 달려 간신히 지각을 면했다. 퀭한 눈으로 친구들을 바라보자마자 세상에서 가장 웃긴 것을 봤다는 듯이 빵 터져 교실이 떠나갈 듯 웃음을 그칠 생각을 안 한다.  

 

“김정원! 너 또 만화책 보고 잤지! 하하하”

“또. 또. 한 권만 본다고 하고 끝까지 보고 잔 얼굴이야.”

 

어제 내 방에 같이 있기라도 했는지 처음부터 끝까지 나를 꿰뚫어 보는 말만 하는 걸 보니 소름이 돋을 지경이다. 상희는 뭐가 그렇게 좋은지 얼굴엔 아직도 웃음기가 가득하다. 이 둘을 얼른 돌려보낼 생각은 진작에 접었다. 어떻게 하든 나를 데리고 갈 집념이 대단한 아이들이니까. 우리는 학교에서도 세쌍둥이라고 할 만큼 어디를 가든 셋이 꼭 붙어 갔다. 혼자나 둘이 가도 서운해할 우리들이 아닌데 왠지 세 명이 같이 다녀야 하는 운명처럼 절대 떨어져 가지 않았다.

 

“알았어. 간다 가. 그만 웃어.”

“얼마나 웃었다고- 얼른 가자!”

“정원이도 오늘 늦잠 자느라 아침도 못 먹었을 텐데 뭐라도 사 먹어.”

“괜찮아. 미진이 빵 좀 뜯어 먹으면 돼.”

“하하하. 미진이가 너 째려본다.”

 

실없는 농담 몇 마디 주고받으니 벌써 매점 앞에 다다랐다. 입구부터 배를 채우기 위해 몸부림치는 하이에나들처럼 수많은 학생이 매점을 점령했다. 학생들을 치열하게 뚫고 빵이랑 바나나우유 3개를 사온 미진이는 싸우고 오기라도 한 듯 머리는 차원이 다른 부스스함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표정은 매점 전쟁에서 이기고 온 장군의 뿌듯한 표정이다. 하지만 우리의 눈에는 미진이의 손에 아슬아슬하게 들린 바나나우유에 더 눈이 갔다.

 

“그건 미진님이 하사하시는 바나나우유인가요?”

 

상희의 어디서 배워왔는지 모를 이상한 말투에 미진은 우리의 눈길이 바나나우유에만 있다는 것을 눈치채고는 뿌듯해했던 표정이 미묘하게 가진 자의 여유로 우리를 바라봤다.

 

“먹고 싶지?”

“당연하죠! 미진님”

 

장난기 어린 표정으로 바나나우유를 나눠주며 정해진 코스처럼 운동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운동장에는 벌써 많은 학생이 공놀이를 하거나 산책을 하고 있었다. 사람이 드물고 그늘을 찾아 남들에게 뺏기지 않게 항상 가던 구석에 자리하고 있는 소나무 그늘로 빠르게 향했다. 자리를 뺏기지 않으려고 뜀박질을 하며 온 탓인지 도착하자마자 우리는 정자에 드러누워 버렸다.

 

“오늘도 자리 지켰다.”

 

숨을 헐떡이며 상희의 의기양양한 목소리에 뭐가 재밌는지 나도 잘 모르겠지만 숨 쉬듯이 웃음이 터졌다. 이런 날들만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 때문인지,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과 눈을 못 뜰 만큼 화창하지만, 기분 나쁘지 않은 햇빛 때문인지 기분이 편안하고 이 시간이 멈췄으면 하는 바람이 들었다. 눈을 감고 이 순간을 영원히 간직하겠다는 다짐으로 귀로 지금을 담고 또 담았다. 한참 바람을 느끼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너희는 커서 뭐가 하고 싶어?”

 

어색하고 민망할 수도 있는 나의 물음에 상희와 미진이는 절대 당황한 기색 없이 당당하게 대답을 이어갔다. 상희는 오로지 자기의 비전이 담긴 회사를 차릴 것이고, 미진이는 한 가지를 정해둔 것은 없지만 미술과 함께 하고 싶다는 목표가 눈빛에서부터 남다르게 보였다. 나는 오랫동안 사람들이 찾는 작가가 되는 게 목표다. 아직 철없는 10대의 생각이라고 나 자신도 가끔 생각하지만, 이것을 언젠가 꼭 이루고 싶은 열망과 이룰 수 있다는 희망은 헛된 생각 속에서 작지만 뚜렷하고 절대적으로 남아있다. 모든 사람이 같이 공감하며 즐거워하는 만화 작가가 되리라 나는 나를 믿는다.

 

정자에서 얼마나 앉아있던 건지 점심을 먹으러 급식실에 가는 학생들이 슬슬 나오기 시작했다. 쉽게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힘겹게 떼며 서둘러 학교를 빠져나왔다. 오랜만에 내 얼굴을 스치고 간 바람들은 계속 이 학교에 머물러있던 바람처럼 괜스레 학창 시절 맡았던 바람 냄새가 났다. 그저 사치라고 여겼던 걷고 쉬는 것이 이렇게 달콤하고 나를 들뜨게 만드는지 이제야 깨달았다. 그동안 곪아 터져버려 허해진 속이 잠깐의 바람으로 나를 조금씩 채워줬다.

 

 2019. 04. 06

인간은 참 희한한 동물이다. 미래에 대한 걱정만 앞서 두려워하는데 막상 미래가 현실이 되면 적응의 동물로 누구보다 현실에 순응하며 살아간다. 시골로 내려온 지 이제 막 3일이 됐는데 가평을 한 번도 벗어나지 않은 토박이처럼 모든 것에 적응하다 못해 익숙하기까지 하다. 가끔 울리는 핸드폰 벨소리에 이 기분이 깨질 때가 있지만 지금은 이것마저 적응되었다.

 

집으로 내려와 한가로운 아침에 하는 일은 내 방에 아직도 고스란히 책장에 정리된 책들을 한 권씩 꺼내 보는 일이다. 그중 가장 해지고 작지만, 눈에 띄는 책이 있는데 내가 어릴 적 쓰던 일기장이다. 나에겐 이 세상 모든 책 중에 단연 제일 재밌는 책이다. 내 생각과 경험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책이니까. 그 당시에는 어떤 글이든 마냥 쓴다는 것이 좋아서 남들은 다 귀찮아했던 일기 쓰기가 나에겐 하루 중 가장 뿌듯하고 공들였던 시간이었다. 어렸을 적 썼던 일기를 커서 읽는 건 인생에서 가장 누구나 할 수 있는 경험이지만, 하기 힘든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그 당시 나는 나를 굉장히 사랑했던 것 같다. 다른 사람이 보면 오글거릴 수 있는 글들이 한 장도 아닌 몇십장이 빈틈없이 빽빽하게 쓰여 있었다.

 

이 일기를 보고 있을 때면 20년도 넘은 세월 동안 나도 변화가 있었다는 걸 느끼곤 한다. 나는 남들처럼 커서 사회인이 되어 결혼도 하고 자식도 있는. 평범하고 나는 변한 게 없다고 생각했다.하지만 일기 속 어린 나는 그 누구보다 날 사랑하고 있었다. 어쩌면 지금의 나보다 나를 잘 알고 진심으로 날 믿어주고 있다. 지금의 나는 점점 나도 모르게 살기 바빠 나를 잃어가고 있었다. 그저 한 남자의 아내, 아이의 엄마로 살아가고 있었을 뿐. 더러 가족을 위해 나를 버리면서까지 나에게 나는 없었다. 무엇이든 있는 도시에서 무엇을 해도 허전했던 마음이 채워지지 않았던 건 도시 그 어디에도 내 이름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답을 찾은 것만 같은 가슴 뻥 뚫린 시원함과 함께 답답함도 찾아왔다. 더는 일기를 끝까지 보지 못하고 이 답답함을 해소하고자 밖으로 뛰쳐나왔다.

 

얼마 뛰지 않아 앞에 어디서 낯익은 실루엣에 서서히 발걸음을 늦추고 자세히 쳐다봤다. 이런 한적한 시골에, 그것도 이 시간에 밖을 누비고 다니는 사람은 또 누가 있을까.

점차 다가오는 실루엣에 자세히 보기 위해 찌푸렸던 미간이 한순간 숨길 수 없는 반가움이 얼굴에 가득 찼다. 고향에 와서 가장 많이 생각났던 친구 중 상희가 내 눈앞에 있다니! 졸업 후로 각자 사회로 흩어져 연락 한번 못해보고 지낸 지 30년이 흘러 이젠 추억 속에서만 살아있는 친구가 지금 내 눈앞에 실제로 서 있다는 게 반가우면서 놀라 다리에 힘이 풀려버릴 것만 같았다. 상희는 그동안 무엇을 하고 지냈을까.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나와는 다르게 무엇을 하고 있을지. 무엇을 이뤄냈을지 궁금하고 설레는 마음 한가득 안고 그녀에게 빠르게 다가갔다.

 

“상희야!”

 

들뜬 내 목소리에 상희도 나를 알아봤는지 저 멀리서도 반갑게 손을 흔들며 재회했다. 오랜만에 본 상희는 아직 고등학교 때 얼굴이 남아있긴 하지만 시간이 많이 지난 탓인지 말로 할 수 없는 무엇인가 그런 느낌이 얼굴에 보였다. 반가움에 어디 들어가지도 않은 채 길가 옆 벤치에 앉아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을 티타임을 즐기듯 들이마시며 각자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상희는 역시나 학창시절 당당함은 여전히 남아있었다. 그 시절 이야기했던 것들을 차근히 이뤄가고 있었다. 지금은 잠시 몇 년 만의 휴가를 내어 본가로 내려와 쉬는 중에 우연히 나를 보게 된 것이다. 어제 혼자 학교에서 흠뻑 빠져있던 학창시절 이야기를 그 시절을 같이 한 친구와 나누니 한층 더 재밌고 기억을 더듬어 의외인 곳에 추억까지 닿다 보니 벤치에 앉은 지 시간을 훌쩍 넘어 산산했던 아침 바람은 가고 조금씩 햇빛이 우리를 비추어가고 있었다.

 

우리의 이야기를 잠시 멈추어 준 건 상희의 핸드폰 회사에서 걸려온 전화에 점심 약속은 나중으로 미루고 상희는 일을 처리하러 집으로 다시 돌아갔다. 나도 다시 길을 가며 따스한 햇볕과 나란히 산책했다. 상희를 만나고 나니 상희의 어쩌면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는 그 할 수 있을까. 그저 아무 생각 없이 이 길을 끝까지 걷는 것이 도움이 될까 싶어 그저 걸었다. 밥때가 됐는지 밭에서 일하던 어르신들이 하나둘 일어나 끼니를 채우러 집으로 가고 있었다. 지나가는 많은 어르신 중 단연 내 눈에는 엄마가 제일 눈에 들어왔다. 엄마를 보면 항상 가슴이 시큰하게 아려왔다. 여기로 내려온 날도 애써 밝은 척하며 웃기만 했던 그 날처럼 지금 엄마와 집을 걸어가면서도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며 웃음으로 속을 가렸다. 엄마 손을 잡아본 게 언제인지. 알 수도 없는 흐릿한 기억 속 엄마와 맞잡은 손은 어느새 엄마의 주름이 하나하나 세세하게 다 느껴져 가슴을 저릿하게 만들었다. 지금 당장 해줄 수 있는 게 없어 그저 엄마 손을 더 꽉 맞잡았다. 나의 이 마음이 손에서라도 전해질 수 있게.

 

집에 도착하자마자 엄마가 차려준 건강밥상을 밥 한 톨 남기지 않고 다 먹고 나서야 내려온 지 얼마 만에 엄마와 단둘이 여유 있는 차를 마시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따뜻한 커피를 호- 호- 불어가며 한 입을 마시자 엄마는 차분하지만 다급하게 첫마디를 꺼냈다.

 

“그래서 왜 내려온 거야?”

 

그도 그럴 것이 엄마도 답답하면서 물어보고 싶어서 요 며칠 마음고생 했을 것을 생각하니 이제는 속마음을 털어놓을 때가 되었다. 그동안 그냥이라는 말로 대충 얼버무리며 넘어갔지만 뭐라고 말을 꺼내야 할지 도무지 감이 안 잡힌다. 나는 왜 내려온 걸까. 제일 마음이 가는 곳이 여기였을까.

 

“엄마는 내가 누구라고 생각해?”

 

마음속에서 툭 내뱉은 말이다. 어떻게 보면 이상한 물음이다. 내가 누구인지. 나도 모르는데 엄마는 알까. 타인이 내 자신을 더 잘 알까. 나를 세세하게 관찰해서 알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날 관찰하고 생각할 틈조차 없었기 때문에.

 

“엄마는 꿈이 뭐였어? 어릴 때 뭐 하고 싶었어? 그 꿈을 이루었어?”

 

궁금했다. 오십 평생 한 번도 물어본 적 없는 궁금증이다. 엄마도 꿈이 있었겠지. 엄마도 그것을 이루기 위해 노력했었겠지. 그저 나에겐 엄마였지만 엄마도 한 사람으로서 한 번뿐인 인생을 열심히 살기 위해 노력하고 충실하게 살아왔겠지. 허리가 굽고 주름이 자글자글한 얼굴을 마주 보며 지금에서야 물어본 내가 어색하고 무안하기도 했다. 더 젊었을 때는 물어볼 생각도 왜 안 했을까.내가 겪어보니 이제야 궁금했다. 엄마가.

내 순수하고 시기가 맞지 않은 질문에 엄마는 나를 그저 바라보다 입을 뗐다.

 

“엄마는 선생님이 되고 싶었어. 근데 배우질 못해서 금방 져버린 꿈이지만. 엄마는 역사 선생님이 가장 큰 꿈이었어. 그래도 너희 아빠와 너희를 만나고 이 가정을 계속 이어가는 게 다른 꿈이 되었어. 엄마는 꿈을 이루었어. 지금처럼 네가 힘들 때 나를 찾아와준 걸 보면 엄마는 꿈을 이루었어.”

 

엄마의 담담한 말투와 입가에 미소가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엄마도 꿈이 있었구나. 엄마는 항상 저런 생각을 했던 걸까. 아니면 지금 나와 같은 상황을 겪으며 도출된 생각일까. 엄마는 지금 내 상황을 이해한 걸까. 뭐에 맞은 것처럼 미동도 없이 사색에 잠긴 나를 엄마의 한마디가 또 한 번 나를 깨웠다.

 

“네가 무슨 결정을 해도 엄마는 이해해. 엄마도 힘들 때가 있었어. 거기서 엄마의 해결점은 너희였을 뿐이야. 너는 그 해결점이 다른 것일 수도 있어. 네가 좋아하던 것이나 무엇이든 접해보고 생각해봐. 엄마는 네가 잘 이겨낼 거라 믿어.”

 

엄마의 한마디, 한마디 내가 듣고 싶었던 것투성이다. 엄마와 주고받은 대화 속에 나는 점점 답답함이 해소되고 있었다. 공허함도 조금씩 채워가는 기분이었다. 나는 방으로 들어가 보다만 일기장을 다시 펼쳐 들었다. 내가 덮은 뒤부터 빽빽하게 쓰여 있던 나의 꿈들과 내가 커서 하고 싶었던 일, 꿈으로 가득했던 그 시절. 아까와는 다르게 글만 봐도 기분이 몽글몽글 솟아났다. 곳곳에 그려놓은 그림들과 학창시절 숙제는 하지 않고 엄마 몰래 밤에 혼자 낄낄대며 써 내려갔던 콘티들. 지금과는 다르게 엉망진창 마음대로 써내던 글이겠지만 그 어떤 글보다 생생하게 살아있는 느낌이었다. 글을 읽는 나 자신까지도 살아있는 걸 느껴질 정도로. 내가 살아있다는 것은 이런 기분일까.

 

나는 그저 나 자신이 누군지 궁금했다. 무엇을 하고 싶은지도 몰랐고 어떤 것을 해야 나 자신을 사랑할 수 있을지도. 와서 느꼈다. 나는 그동안 나를 외면하고 그저 희생만 살아서 그 무엇에도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살았다. 여기서 겪은 모든 경험은 나에게 소중하고 절대 잃고 살면 안 되는 경험이 되었다. 이것을 또 잃는다면 나는 또 헤맬 것이 분명하다. 내려와서 점점 나를 채워준 살랑거리는 바람, 나만 비추듯 뜨거우면서 따스했던 햇볕, 가장 많이 걸었던 양옆에 밭이 기다랗게 늘어진 돌길, 우연히 마주친 가장 보고 싶었던 상희 그리고 어떤 말로도 설명할 수 없는 나를 가장 채워준 엄마. 잊지 못한다. 날 채워주고 그동안 답답했던 마음이 한순간 아니 서서히 해소되었던 그 시간.

 

날 정리한 순간, 나는 도시가, 가족이 이제는 외면하고 싶지 않은 존재가 되었다. 아니 더 보고 싶었다. 그동안 외면했던 시간에 미안한 마음을 갖고 살지는 않을 것이다. 그 시간으로 내가 가족을 외면하지 않을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나는 얼마 가지고 오지도 않은 짐을 싸며 재빨리 집을 나섰다.

 

“엄마, 미안해. 지금 가봐야 할 것 같아.”

“그래. 힘들면 또 내려오고, 다음엔 이 서방이랑 민아랑 같이 내려와.”

 

나를 다 이해한다는 표정으로 나를 배웅해주는 엄마를 보며 뭉클하면서도 막차 시간이 다가와 빠르게 집을 나섰다. 버스터미널을 가는 그 길은 한 번도 나를 도시로 간다는 생각으로 마음이 복잡하거나 힘들게 하지 않았다. 버스터미널에서 바로 서울로 올라가는 버스를 타며 남편과 딸에게 문자를 한 통 남겼다.

 

‘얼른 갈게.’

 

몇 번을 썼다 지웠다 어떻게 문자를 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 보내보았다. 4글자뿐이지만 그 안에 어떤 마음과 내용이 담겼는지 알 수 있을지 모르지만, 나에겐 그 어떤 문자보다 크게 다가왔다. 그곳이 답답해서, 막막하고 날 더 시리게 만들어서 이곳으로 도망치다시피 왔다. 하지만 달리는 버스 안에서 시골에 내려올 때와는 다르게 답답하지 않았다. 점점 도시와 가까워져 가지만 내 마음은 시골에 있을 때와 똑같다. 그저 내가 어떤 마음가짐인지 중요한 것은 오직 그뿐이다. 도시에 올라가서도 나는 행복할 것이라고 시골과 같을 것이라고 다짐하고 확신한다.

 

혹여 이 상태가 계속 지속하지 않더라도 난 극복할 수 있다. 나는 이제 나를 아니까.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으니. 난 이제 두렵거나 막막하지 않다. 그저 기분 좋게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만끽하며 포근한 밤공기를 마시며 나긋이 도시를 기다린다.





이름 : 박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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