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9차 창작콘텐스트 단편소설 부문 - 나는 너를

by 박미정 posted Jun 10,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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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너를

 


박미정


 

차가운 아침 오늘도 어김없이 사람들은 바쁘게 움직인다. 지하철 소리, 자동차 소리, 등등 모든 도로는 소음으로 가득하다. 발걸음 사이사이로 나도 분주하게 지나간다. 매일 지속되는 업무에 지쳐가는 일상이 가득하다.

나는 SY회사에서 기획 팀 팀장자리를 맡고 있고 4년 째 근무 중이다. 1년을 이리저리 치이며 많은 꾸중을 들은 탓인지 내 실적은 다른 동료들의 비해 급상승되어 4년 만에 팀장자리까지 올라 올 수 있었다. 하지만 높은 자리를 빠르게 올라온 만큼 상당한 기대치도 만만치 않다. 자존심이 강한 나에게 그 기대치를 항상 맞추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 오늘도 어김없이 내 빠른 발걸음은 회사로 향했고 엘리베이터를 탔다. 정말 누르기 싫은 마음이 가득하지만 습관인지 7층 버튼으로 내 손은 먼저 닿아있었다.

 

띵동. 7층입니다.’

 

나는 깊게 숨을 쉬고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내 구두소리는 긴 복도를 가득 매웠다.

 

모두 좋은 아침입니다!”

 

나는 매일 아침 마다 분위기를 밝게 하고자 이렇게 거짓말로 하루를 시작 한다. 분명히 다른 사람들도 내가 그냥 하는 말이겠거니 할 것이다. 그렇게 사람들의 얼굴을 한 번씩 보며 미소를 띠우며 지나가 내 자리까지 온다. 무슨 느낌일까 그 짧은 거리를 걷는 내내 긴장감과 기대감이 나를 한껏 들어 올려놓았다. 역시난 나는 흐뭇한 미소가 나왔다. 방금 다녀온 듯한 시원한 커피와 노란 포스트잇이 놓여져 있다.

 

도윤아 오늘도 파이팅하고 사랑해.

 

아마 지금까지의 이 지긋지긋한 회사생활을 버틸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가 이 사람이라고 생각이 든다. 내가 자존심이 강해서 라고 말하는 것도 자존심이지만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자존감이기에 더 큰 힘이 된다.

커피 뚜껑을 열어 두 모금 마시고 기지개를 피고 손목과 목을 좌우로 한 번씩 돌리고 업무를 시작했다. 업무에만 집중하다보니 벌써 12시가 되어있었다.

 

팀장님 점심식사 하세요!”

 

부서 직원의 말에 그제야 컴퓨터에서 손을 뗐다. 그리고 핸드폰을 보니 내 남자친구인 건우에게 연락이 와있었다.

 

이 문자 보면 전화해! 같이 밥 먹자!

 

문자를 다 읽기도 전에 나는 통화버튼을 누르고 겉옷과 지갑만 챙긴 채 서둘러 나갔다.

어 어디야? 나 지금 나가니까 조금만 기다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니 건우가 있었다. 그의 얼굴을 보자마자 입가에 미소가 번지며 빠른 걸음으로 다가갔다.

 

건우야, 오늘 밥 뭐 먹을까?”

 

오늘 넌 뭐 먹고 싶어?”

 

나 오늘 냉면 좀 땡긴다. 어때?”

 

그래 좋아! 앞에 냉면 잘하는 집 있어 거기로 가자. 먹고 커피마시면서 산책도 좀 할까?”

 

3년째 연애 중이지만 매일 매일이 사귄지 하루가 된 것만 같은 기분이다. 이 사람과 헤어지면 평생 후회하고 더 좋은 남자를 만날 수 없을 것 같다.

밥을 다 먹고 나와 시간을 보니 점심시간이 30분 정도 남아있었다. 매일 가는 단골 카페에 가 아이스 아메리카노 두 잔을 사 회사 뒷길 산책로를 걷기를 걸었다. 햇빛이 너무 강해 5월이지만 8월 같은 날씨에 오래 있을 순 없었다. 너무 더운 우리는 금방 회사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점심시간이 끝날 때 즈음 나의 대학교 친구인 하준에게 연락이 왔다.

 

오늘 만나는 거 잊지 않았지?

 

 

하준은 나에게 의미가 있는 친구이다. 대학교를 입학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했다. 많은 친구들과 친해지기 위해 매일 술을 마시고 어디든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편이었다. 하지만 이 모든 노력은 어느 아침, 사건이 일어난 후에 무너지고 말았다.

수업을 듣기 위해 강의실에 들어가 평소에 같이 다니던 인아 옆에 앉았다.

 

인아 안녕

 

하지만 인아는 나의 인사에 아무 말 없이 다른 친구들 자리로 갔다. 하루아침에 바뀌어버린 인아는 다른 사람이었다. 무슨 일이 있는 것일까, 물어보던 찰나에 교수님이 들어오시고 수업을 시작했다. 그렇게 궁금함과 불안함을 갖고 두 시간이 흘러 수업이 끝났다. 나는 짐을 금방 챙겨 인아에게 가 물어보려 했지만 그녀는 이미 자리를 뜬 후였다. 나는 바로 인아에게 전화를 했지만 받지 않는다. 강의실을 천천히 나오는 길에 은영이를 붙잡았다. 그녀의 눈초리가 마치 인아와 똑같아 보였다.

 

은영아 무슨 일 있어?”

 

나는 조심스레 물어봤다. 은영이의 표정이 바뀌며 나를 벌레 보듯이 쳐다봤다. 그러고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말했다.

 

쓰레기 새끼

 

너무 충격적이었다. 내가 쓰레기라니. 지금 나한테 하는 소리가 맞는 것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잘못한 일이 없다. 또한 실수한 일이 없다. 내가 큰 잘못을 한 듯 소문은 빠르게 퍼져나갔다.

 

이다윤 남자만 보면 다 잠자리 가진다.’

 

대체 누가 이런 소문을 낸 걸까 하며 계속 생각했지만 아무리 내 행동을 돌아봐도 생각이 나질 않는다. 그렇게 나는 나쁜년, 쓰레기년 이라는 단어를 들으며 학교를 다니던 중 주변 시선에 너무 힘들어 학교를 자퇴하기로 했다.

 

교수님과 상담을 한 후 학교에 나와 편의점에서 맥주 2캔을 사고 계산을 하려는데 카드에 잔액이 없다는 것이다. 그 때 누군가 옆에서 카드를 내밀었다.

 

이걸로 계산해주세요.”

 

아니라고 말하기도 전에 그는 계산을 했다. 그리고 편의점에서 나와 감사인사를 하려는데 그가 먼저 나를 아는 듯 인사를 했다.

 

네가 도윤이지? 안녕.”

 

이젠 전교생이 아는 걸까 쓰레기로 유명해져서 모르는 사람이 계산도 해주고 별일이 다 있네. 라고 생각하는데 그가 말을 이어갔다.

 

아 나 너랑 같은 과 송하준이라고해. 너 맥주 2캔 다 혼자 마실거야? 나랑 마실래?”

 

갑자기 이 뜬금없는 송하준이 누군가 싶었지만 왠지 모르게 친근감을 느꼈을까 편의점 근처에 앉아 우리는 맥주를 깠다. 그렇게 처음 본 그와 4시간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그도 알고 있을 것 같은 내 상황에 대해 말하면서 말이다.

 

자퇴 하지마. 다 소문이잖아 나랑 같이 학교 다니자.”

 

이 말이 내가 너무 듣고 싶었던 말이었다. 그렇게 하준과 4년동안 대학을 다니면서 졸업을 무사히 했다. 그래서 하준과는 쉽게 끊어질 우정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물론 건우도 아는 사실이다.

 

오늘 하준이 만나? 어디서 보기로 했는데?”

 

회사 끝나고 근처로 오겠대.”

너무 늦게 들어가지는 말고.”

 

나도 안다. 건우가 하준이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하지만 하준은 나에게 단비같았던 친구였고 내가 가장 힘들 때, 모두가 나를 뒤돌았을 때, 유일하게 손을 내민 친구이다. 나는 하준이 나와 친구의 인연을 끊자고 말하면 말했지 내가 먼저 할 수는 없었다. 그러고 싶지 않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건우에게 확신을 주면서 이야기를 했다.

다시 회사로 들어와 쌓인 업무를 시작했다. 밥을 많이 먹어서 그런가 잠이 쏟아지기 시작해 커피를 타려고 탕비실을 갔다. 탕비실을 들어가려고 문을 여는데 여자 부서원과 건우가 있었다. 건우는 모두에게 친절한 착한 성격 때문에 때로는 나를 외롭게 했다.

나는 괜한 기침을 했다.

 

크흠.”

 

그 소리를 들은 여자 부서원은 눈치를 보더니 이내 탕비실 밖으로 나갔다. 그녀가 나가자 나는 건우에게 눈초리를 보냈다.

 

너무 잘해주지 말지?”

 

그냥 얘기 한 거야. 예민하지 마.”

 

그리고 건우는 말을 덧붙였다,

 

네가 오늘 하준이랑 만나는 것에 비하면 별 거 아니지.”

 

그렇게 말하고 건우는 탕비실을 나갔다. 건우의 던질 말에 업무가 손에 잡히지 않았다. 건우에게 연락을 했다.

 

뭐해?

 

하지만 답장이 없다. 일을 하면서 기다리는데 3시간이 흘러도 답이 없다. 기다림에 지친 나는 짜증이 났고 핸드폰을 뒤집은 후 업무에 집중했다. 그렇게 하다 보니 벌써 퇴근시간이 다 되었다. 고개를 들어 부서원들을 보니 이미 다들 짐을 싸고 나에게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다들 퇴근하세요!”

 

부서원들에게 말을 한 후 다시 핸드폰을 집어 들어 화면을 켰다.

 

나 먼저 갈게.

 

건우의 한 마디가 남겨진 문자를 본 후 태도가 마음에 안 들었는지, 나도 알겠다는 라는 말 한 마디만 보낸 후 하준이를 만나러 회사를 나왔다.

 

 

하준을 만나 술집으로 이동했다.

술집에 들어가 자리를 잡자마자 나는 하준에게 건우의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하준은 당연히 내 입에서 건우의 이야기가 나올 것이라고 생각했는지 흥미롭지 않은 표정을 지었다.

그 때 보글보글 끓어 넘칠 듯 김치찌개가 나왔다. 나는 김치찌개에 홀려 다급하게 말했다.

 

소주 한 병 주세요!”

 

하준과 눈이 마주치고 한 번 웃었다. 하준은 말을 이어갔다.

 

그래서 건우랑 풀었어?”

 

나는 한숨을 쉬어 대답을 대신했다. 하준은 혀끝을 차며 김치찌개를 한 숟가락 먹었다.

오랜만에 만난 탓인지 12시가 넘도록 이야기를 했다. 테이블 위에는 빈병이 4개가 있었고 취기가 올라와 잠깐 화장실로 향했다. 그 때 건우에게 전화가 온다.

 

여보세요?”

 

아직도 안 들어갔어?”

 

술을 마셔서 그런 건지 건우의 딱딱한 목소리가 무서웠다. 나도 모르게 울컥해 눈물이 났다. 건우는 놀라 말을 했다.

 

무슨 일이야? 무슨 일 있어?”

 

눈물을 닦고 천천히 말을 꺼냈다.

 

나 너랑 그렇게 인사 하고 너무 속상해서 술을 마셨어. 근데 이제 들어가려고.”

 

건우는 작은 한숨을 쉬고 말을 했다.

 

알겠어. 얼른 조심히 들어가고 내일 보자.”

 

다음 날 아침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픈 이유는 술 때문이다. 술을 마시고 다음 날 항상 술을 다시는 마시지 않겠다고 다짐을 하지만 몸이 다시 회복되면 생각나는 게 술이라 어쩔 수 없다.

회사 업무에 스트레스에는 술이 최고이기 때문이다. 침대에 앉아 핸드폰을 켜니 7시였다. 그리고 그 밑에 건우의 연락이 와있었다.

 

술 많이 마신 거 같은데, 아침에 일어나면 머리 아프니까 일어나서 물 많이 마시고 회사에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천천히 와. 내가 툴툴거려서 미안해.

 

왠지 어제 술을 많이 마신 게 도움이 된 것 같아 좋았다. 이러려고 마신 건 아니지만 내 진심이 건우에게 잘 전달이 되었는지 안심이 되었다. 창문을 보니 아직은 어둠이 있는 푸른빛이 있었다. 커튼을 치고 불을 켜 화장실로 향했다.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회사에 들어가기 전 건우에게 화해의 의미로 커피를 주기위해 카페로 향했다.

 

바닐라 라떼 2잔이요.”

 

손에 쥐고 회사에 들어갔다. 머리는 아팠지만 밝은 목소리로 부서원들에게 인사를 했다.

 

좋은 아침입니다!”

 

원래 내가 이렇게 말하면 부서원들은 내 얼굴을 쳐다보는데 오늘따라 얼굴을 모니터에 향해있었다. 부서실의 공기는 더욱 차갑게 느껴졌고 한 부서원이 나에게 말을 했다.

 

팀장님 메일이요.”

 

사온 커피를 책상에 두고 의자에 앉아 노트북을 열었다.

 

띵동

 

메일이 도착했다는 소리가 울렸다. 손이 떨려 마우스를 잡는대도 제대로 클릭이 안 된다.

 

도윤이 같은 동료 회사인 A씨와 바람을 피운다. 내가 어느 모텔에서 나오는 것을 봤다.

라는 글과 모텔 앞에서 찍힌 사진이었다.

 

온 몸에 소름이 돋으면서 대학생 때의 일이 생각났다. 동시에 건우가 생각났다. 핸드폰을 잡고 전우에게 전화를 하며 뛰쳐나가는데 커피가 옷깃에 부딪쳐 책상 아래로 떨어졌다.

 

건우야.”

 

건우는 나를 쳐다보지 않는다. 이미 그 메일을 봤다는 뜻이다. 이 메일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에 해명을 해야 하는데 어떤 것부터 말을 꺼내야 할지 엄두가 안 났다. 자꾸만 대학생 때의 일들이 떠오르면서 온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건우는 딱 한 마디를 내뱉었다.

 

사실이야?”

 

아니야. 진짜 아니야 건우야. 건우야... 제발

 

차가운 건우의 표정과 말투에서 이미 믿고 있지 않다는 의미가 느껴졌다. 나는 건우의 손을 잡으려 했지만 손끝이 닿자마자 건우는 내 손을 쳤다.

 

우린 왜 매일이 고비인 것 같냐. 도윤아. 그만...”

잠깐만 그만 말해. 건우야 나 진짜 아니야.”

 

건우도 아니라고 믿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해명할 방법이 없었다. 마치 대학생 때처럼. 건우는 나에게 등을 돌려 갔다.

세상은 내가 잘 되는 꼴을 보지 못하는 것 같다. 조금만 행복 하려하면 질투라도 한 듯 불행이 찾아온다. 그렇게 건우와 연락이 두절되고 건우는 회사에 사직서를 냈다.

 

띠리링 띠리링

 

전화 벨소리가 울려 핸드폰을 보니 하준이다.

 

도윤아 무슨 일 있어? 뭐야 요즘 왜 연락이 드물어?”

 

아니, 하준아.”

 

나는 눈물이 쏟아졌다. 건우와의 관계가 그렇게 된 후 제대로 밥도 못 먹고 잠도 못 자고 결국 회사에 휴가를 냈다. 매일 밤 왜 나한테 그래야 했냐고 소리를 지리기도 하고 물건을 던져 부수기도 하며 사람답게 살지 못했다.

그리고 내 말을 들어 줄 단 한 사람이라도 절실히 필요했다.

 

하준아 나 건우랑 헤어진 걸까.”

 

하준의 태도는 덤덤했다. 매일 건우와 나의 이야기를 들어서 그런지 익숙하다는 의미겠다고 생각했다.

 

네 꼴이 이게 뭐야. 걔가 뭐라고 네가 이렇게 살아야해?”

 

하준의 목소리는 높아졌다.

 

내가 잘못 한 거잖아. 나 근데 건우한테 아니라고 명백한 증거를 못 보여줬어.”

 

그게 왜 필요해. 그냥 잊어.”

 

건우가 나한테 얼마나 중요한 사람인지 알만큼 아는 하준이 쉽게 끝내라는 말에 당황했다. 그리고 하준은 말을 덧붙였다.

 

나도 좀 봐주면 안 돼?”

 

너무 놀랐다. 하준과 나는 명백히, 단순히, 무조건 친구라고 생각했는데 7년의 우정을 버릴 수도 있는 말을 한 것에 나는 너무 놀랐다.

 

...? 하준아...”

 

하준은 다짜고짜 내 손을 덥석 잡았다. 내가 알던 7년간의 하준이 아니었다.

 

, 뭐하는 거야!”

 

나는 당황한 나머지 하준의 손을 뿌리치고 소리쳤다. 그리고 하준은 쳐다봤다. 하준의 표정이 점점 굳으며 뿌리쳐진 손을 자신의 몸 쪽으로 가져가 한숨을 쉬었다.

 

이다윤. 내가 너 처음 봤을 때 우연히 만난 줄 알아? 어떤 남자가 관심도 없는 여자를 7년 동안 친구를 해!”

나는 말문이 막힌 채 하준을 빤히 쳐다보기만 했다. 그리고 내가 무슨 촉이었을까, 테이블 위에 있는 하준의 핸드폰을 덥석 집어 들었다. 하준이 다급하게 핸드폰을 들고 있는 내 손 쪽으로 팔을 뻗었다. 그래서 나는 더 궁금해졌다.

하준의 핸드폰을 열자마자 핸드폰 보고 깜짝 놀랐다. 나 몰래 나를 찍은 사진을 바탕화면으로 해둔 것이다. 그리고 내 손은 하준의 메일함으로 향했다.

 

김하준. 미쳤어? 그럼 너 설마 대학교 때도 너야?”

 

널 만날 수 있으면 뭐든 해. 이게 내 방식이야.”

 

나는 하준과 더 이상 대화를 나눌 수 없었다. 7년이라는 세월이 이렇게 허무한 시간이었다니. 소중한 인연이라고 생각했던 내 친구가 미친놈이었다니. 온갖 생각이 들면서 건우가 떠올랐다. 나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하준의 핸드폰을 던졌다.

 

내가 지금 당장 경찰에 신고해서 너 콩밥 먹일 수 있는데, 안하는 이유는 내가 가장 힘들 때 네가 손을 내밀어줬기 때문이다. 물론 그 힘듦도 너 때문이지만. 김하준 다신 보지 말자. 친구도 하지 말자.”

 

가게를 뛰쳐나와 건우에게 연락을 했다.

 

건우야 나 지금 너 집 앞으로 가. 내 말 좀 들어줘. 마지막이야.

 

숨이 목 끝까지 차올라 헉헉대며 건우의 집 앞에 도착할 때 쯤 건우가 집 앞에 나와 있었다.

달려온 탓에 흘린 땀을 손으로 대충 닦고 헝클어진 머리도 손으로 슬어 내리며 건우에게 다가갔다.

 

건우야 나 제대로 해명할 수 있어.”

 

그렇게 모든 사실을 건우에게 말했다. 말을 다한 후 정신 차려 건우의 얼굴을 제대로 보니 살이 너무 많이 빠져있었다. 건우는 말없이 나의 오른쪽 팔을 잡아 당겨 안았다.

 

고마워. 그리고 미안해.”

 

건우도 내가 많이 그리웠을까, 말없이 그의 품에 안겨 따뜻함을 느낄 수 있었다.

 

모든 상황이 정리가 된 후 나는 다시 회사에 출근하였고 건우와 다시 시작했다. 긴 휴가 탓에 밀린 업무는 산더미였고 나는 더욱 바쁠 수밖에 없었다. 정신없이 일을 하다가 점심시간에 잠시 핸드폰을 보면 건우에게 연락이 많이 와있었다. 그 연락들을 보면 미안한 마음에 밥을 먹으면서도 계속 핸드폰을 붙잡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한 달이 흐를 때쯤, 건우의 행동이 과해지기 시작했다.

 

건우야 나 회의 하고 올게.

 

연락을 남겨 놓고 회의를 들어갔다 나오면 전화가 30통이 와있었고, 쉬는 날 주말에 헬스장에 가서 운동을 하려 하면 영상통화를 했고, 집에 10시 이전에 들어 가야했고, 이성 친구는 물론 동성친구도 쉽게 만날 수 없었다. 회사 일만 해도 지치는 몸에 건우의 태도를 더 이상 이해할 수 없었다.

회사 일을 끝내고 건우와 카페에서 만났다. 내 모습이 지쳐 보였는지 건우가 일부로 밝은 목소리를 내며 이야기를 꺼냈다.

 

오늘 많이 힘들었지?”

 

응 회사에서 내가 제일 바쁜 거 같아.”

 

그렇게 한 마디씩 주고받은 후 10분 동안 침묵했다. 아마 건우도 직감을 했는지 내 눈치를 보는 것 같았다.

 

건우야

 

내가 이름을 부르자 건우가 말했다.

 

미안해. 너를 많이 사랑해서 네가 힘든 연애를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내가 많이 힘들게 했지?”

 

이 말을 들은 나는 이 사람 같은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끝까지 나를 위한 사람이지만 인연이 아니기에 끝을 바라봐야 한다는 생각에 눈물이 났다.

우리는 이렇게 37개월의 연애가 끝이 났다. 사람이 누군가를 만난다는 것은 운명적이다. 그 만남에 우리는 최선을 다했지만 이별을 했다. 서로를 위한 이별이 가장 아픈 이별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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