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9차 창작콘테스트 단편소설 부문 - 가족몽

by 찌아니 posted Jun 10,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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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몽

 


  김지안



어두운 방 안. 간헐적이고 거친 숨소리만이 가득 찬다. 커튼 사이로 연기처럼 희미한 햇살이 들어온다. 침대를 비치는 햇살로 눈을 뜨고 싶었지만 눈꺼풀 사이에 본드라도 붙은 듯 쉽지 않았다. 가위에서 깨어날 때처럼 안간힘을 써서야 간신히 눈을 떴다.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아마 내일도. 뻔하디 뻔한 일상이 된 과정이다.

어김없이 이번에도 꾸고 싶지 않은 꿈으로 아침을 맞이했다. 눈을 뜨니 온몸이 식은땀으로 푹 젖어있다. 차가운 공기에 몸이 시리다. 그럼에도 숨소리는 여전히 거칠며 뜨거웠고, 눈에는 눈물이 맺혀 있었다. 근원을 알 수 없는 눈물 탓이었을까. 최근 들어 나쁜 꿈을 많이 꾸었으나 잠에서 깨어나면 잊혀지는 것이 다반사였음에도, 오늘 꿈은 잊고 싶지 않았다. 무언가 불길했다.

거북이처럼 웅크렸던 몸을 풀고, 비적비적 침대에서 빠져나왔다. 커튼을 걷어내니 방 안이 불 켠 듯 환해지는데, 그와 반대로 꿈의 흔적은 어둑한 곳으로 잊혀져간다. 저릿한 발을 바삐 움직여 방 가운데 탁자에 앉았다. 거칠게 메모장을 펼치고 기억나는 대로 꿈에 대해 적었다.

 

할아버지, 뇌졸중, 죽음.

 

꿈의 느낌과 감정은 이미 한껏 지워져, 매끄러운 문장이 아닌 뭉텅이의 단어로 종이 위에 드러난다. 아무리 머릿속을 헤집어도 더 이상의 것은 없다. 오히려 지끈거리는 게, 떠올리면 떠올리려 할수록 지워지는 기분이다. 할아버지가 죽어가는 모습이 너무 생생하다. 썩은 나무토막 같던 그 죽음의 장면이 이상의 회상을 막고 있는 것 같다. 다른 내용들은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한다현! 이제 일어나서 밥 먹어! 어쩜 기집애가 집에만 오면 잠에서 깰 생각을 안 하니? 그럴 거면 침대랑 사귀든지, 결혼을 하든지 해라!”

 

반복재생을 한 것처럼 끊임없이 이어지던 할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을 끊어낸 건 엄마였다. 순간 안도가 일었다. 엄마의 날 선 잔소리가 이렇게 반가운 건 처음이다. 밝은 목소리로 일어났다고 대꾸를 하고 샤워를 할 생각으로 옷가지와 수건을 챙기는데, 바깥에서 짧고 높은 비명소리가 들린다.

 

무슨 일이야!”

 

 

 

 

 

엄마가 지워준 꿈에서 느꼈던 공포감이 다시 찾아왔다. 튕겨지듯 방에서 뛰쳐나왔다. 잔뜩 헝클어진 머리를 정리할 새도 없이 맞닥뜨린 거실엔 손을 움켜쥐고 있는 엄마가 바닥에 쭈그려 앉아있었다. 엄마의 옆엔 붉은 빛이 언뜻언뜻 비치는 칼이 나동그라져 있다. 옆에서 아빠가 뭉텅뭉텅 휴지를 뽑아내고 있고, 엄마는 칼에 베인 듯싶었다. 엄마의 손에서 피가 배어나온다.

 

구급상자, 구급상자 어딨어?”

 

구급약을 찾아 안방으로 들어가려는데 엄마는 손사래를 쳤다. 벌떡 일어나더니 싱크대 수도꼭지를 돌린다. 졸졸 쏟아져 내리는 물줄기에 엄마의 피가 흘러 사라진다. 아빠는 아무렇지 않아하는 엄마 옆에서 잔뜩 뽑아낸 휴지를 들고 어쩔 줄 몰라 한다.

 

너가 일찍 일어나서 도와줬으면 이런 일은 없었잖아, 이년아!”

지금부터 도와주면 되지?”

됐네요! 내가 다 차렸으니까 밥이나 먹어!”

 

역시 엄마다. 나에게 눈을 흘기며 핀잔을 보내는데 실실 웃음이 나온다. 피를 씻어내고 베인 손가락을 입에 물며 지혈하는 엄마의 당찬 모습에 안도가 찾아온다.

모든 식구가 모여 밥을 먹는 것도 오랜만이다. 나는 회사 근처에서 자취를 하고 있고, 아빠는 긴 출장 때문에 모여서 함께 하는 식사는 정말 힘들다. 간만에 맡아보는 엄마의 김치찌개 냄새가 그동안 잃어버렸던 식욕을 되찾아 온다.

 

너 오늘 약속 있어?”

조금 있다가 애들 잠깐 보기로 했어.”

동네 왔으니깐 할아버지한테 연락 좀 드려봐.”

 

맞다. 할아버지. 엄마 덕에 숨겨졌던 꿉꿉한 기분이 다시금 들어찬다. 밥을 급하게 먹고 방에 들어와 꿈 해석풀이를 검색해봤다. 다들 뻔한 대답을 해주는 와중에 눈에 띄는 답변이 있었다.

 

그거 예지몽 아니에요? 저도 아빠 돌아가시는 꿈 꿨는데 다음날 새벽에 돌아가셨어요. 우연일 수도 있겠지만 저는 아빠가 돌아가신 이후로 꿈은 조심하게 됩니다.

 

설마가 사람을 잡는다는 말이 왜 떠오르는 걸까. 속에서 계속 설마, 설마, 설마라는 불길한 기운이 감돈다. 심호흡을 하고, 눈을 꾹 감았다 뜨고, 환한 바깥을 보며 주변을 환기했다. 그러나 순식간에 들러붙은 찝찝함은 떨쳐지지 않는다. 결국 나도 모르게 덜덜 떨리는 손으로 전화기를 들었다. 키패드에 한자 한자 꾹꾹, 열두 개의 숫자를 누른다. 할아버지의 번호가 액정화면에 뜬다. 한참이고 쳐다보다 전화를 건다. 학창시절 때 할아버지가 좋아하시던 노래로 설정해드렸던 컬러링이 들려온다. 아직도 바꾸시지 않았다니, 물론 방법을 모르시니 당연하지만. 그동안 연락을 드리지 않았던 오랜 불효의 시간이 한꺼번에 밀려온다. 눈물이 핑 돌 것 같아 헛기침을 했다.

 

다현이냐?”

 

 

머잖아 반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카랑카랑한 가래 낀 목소리가 두 눈을 마구마구 찔러댄다. 금방이고 한 바가지의 눈물을 쏟을 것 같다. 그러나 죄송한 마음과 묻지 못했던 수많은 안부 대신, 설마가 빗발치는 다급한 마음에 어디 계시는지, 지금 뭐하고 계시는지. 할아버지에게 캐묻듯이 내 꿈에서 봤던 모든 것들을 퍼즐처럼 맞춰봤다. 지난 나의 잘못을 용서받기보단, 지금의 할아버지가 먼저였다.

 

오랜만에 할아버지한테 전화해서 뭘 그리 꼬치꼬치 캐물어? 지금 할아버지 친구들이랑 밥 먹고 있어-”

오늘 택시 안하러 갔어요?”

할아버지 쉬는 날도 모르냐? 우리 손녀 많이 바쁜가보네~ 시간되면 얼굴이나 보러 와라.”

 

분명 꿈에서는 할아버지가 손님을 도착지에 내려줄 때 갑자기 정신을 잃는 모습이었는데, 역시 예지몽이라는 것이 있을 리가 없다. 하지만 설마라는 확률은 나를 떠나지 않고, 꼬집어 말할 수 없는 주변 어딘가에 남아 나를 쿡쿡 자극한다. 이 꺼림칙하고 조마조마한 감정을 다스리기 위해선 확답을 받아야했다.

 

할아버지, 당분간 택시 운전 안하면 안돼요?”

얘가 무슨 소리야? 그럼 니 용돈은 누가 쥐어준다냐?”

나 다 컸는데. 할아버지가 용돈 안 줘도 괜찮아요.”

할아버지는 말야, 팔십 평생을 택시에서 보냈다! 하루라도 운전대를 안 잡으면 몸이 아주 벌벌 떨려!”

, 할아버지! 진짜 내가 부탁해도 안돼요? 오래 말구 며칠만. ?”

오랜만에 전화해서 별 부탁을 한다야. 할아버지 친구들이랑 밥 먹는다! 끊구 나중에 다시 전화해라~”

 

와글와글한 주위 소리와 함께 전화는 끊겼다. 순식간에 고요가 밀려온다. 무섭도록 조용한 방 안에 설마라는 두 음절이 가득 찬다.

 

*

 

다음날 집에서 출근한다는 것을 잊은 채 늦잠을 자버렸다. 대충 집은 옷에 몸을 구겨 넣듯 입고, 화장도 하지 못한 채로 급하게 뛰쳐나와 택시를 잡았다. 가방을 뒤흔들어 뒷좌석 가득 화장품을 쏟아내고 허겁지겁 얼굴에 칠한다. 입술을 바르는 거울 속 모습이 뒤숭숭하다. 내 얼굴 뒤로 비치는 택시의 까만 시트가 할아버지를 떠올리게 한다. 한결 붉어진 입술을 오물거리며 다시 할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꿈에서 해가 낮게 걸려있었고 주변은 푸릇푸릇했으니까, 만일 사고가 일어난다면 아마 오전일 경우가 높다. 그러니까, 딱 지금 말이다. 흥겨운 트로트 노래가 계속해서 흘러나온다. 칼칼한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손님이 계신지 몇 초 지나지 않아 뚝 끊어진다. 거절을 누르신 모양이다. 내가 타고 있는 택시가 신호에 걸렸다. 조금의 여유를 두고 다시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여전히 받지 않으시고 할아버지가 좋아하는 트로트의 반주 반복되고 있다. 초록불로 바뀌어 택시가 부드럽게 출발할 때도 야속한 노래만 계속되고. 회사 앞에 도착해서 기사님께 카드를 건낼 때야 짜증 섞인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 있어? 전화를 왜 이렇게 많이 했어?”

 

벌벌 떨며 걱정하고 있는 나와 달리, 손님이 눈치 쓰여 혼났다는 할아버지에게 오늘은 일찍 들어가 쉬시라고 말했다. 덧붙여 손님이 방화역 근처에 간다 하면 오늘만 거절하라고 부탁을 했다. 할아버지는 또 무슨 일 때문에 그러냐 역정을 냈지만, 내가 집요하게 우기니 백기를 들 수밖에 없었다. 할아버지의 확답을 듣고 나서야 회사 회전문으로 몸을 옮길 수 있었다.

 

*

 

하루가 끝났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니까, 꿈에서 겪었던 일들이 현실에서 나타나지 않았다는 말이다. 꿈꾸는 대로 일어나면 세상이 뒤집어 질지도 모른다. 꿈은 말 그대로 꿈일 뿐이다. 계속 신경 쓰이지만 내 할 일 하기도 바쁜데 언제부터 꿈에 신경 쓰고 살았다고, 단순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피곤함을 가득 안은 채 집으로 돌아와 침대에 누웠다. 포근함 이불 속 안이 세상에서 제일 좋은 것 같다. 천천히 잠으로 스며들었다.

 

이번에는 할머니도 나왔다. 재작년에 이미 곁을 떠나셔서 꿈에서라도 보니 너무 반갑고 달려가 품에 안기고 싶었다. 어렸을 적 엄마와 아빠가 연년생 동생을 낳고 키우는 바람에 나는 할머니와 할아버지 손에서 많이 자랐기 때문에 두 분에 대한 정이 누구보다 많다. 그렇게 꿈에서 할머니는 따뜻한 목소리로 지금처럼 건강하고 예쁘게 자라달라고, 곧 다가올 미래에 너무 아파하지 말고 강하게 잘 자라라고 말을 꺼내셨다. 뒷말이 조금 찜찜해 물어볼 찰나에 눈이 떠지고 늙어도 고운 할머니의 모습은 사라진 채 깜깜한 내 방의 모습들만이 보였다. 옛말에 조상이 꿈에 나오면 간혹은 경고성인 것도 있지만 대부분 좋은 일이 일어난다고 들었던 것 같다. 그렇게 믿고 싶었던 마음이 더 컸을 것이다. 오늘은 좋은 일이 일어날 것 같은 기분으로 남은 몇 시간을 자기위해 잠에 들었다.

안 돼…… 안 돼!”

 

그러나 그것은 잠시였다. 할머니 꿈으로 기분 좋게 잠든 줄 알았는데 몇 분 지나지 않아서 할아버지 꿈을 또 꿨다. 내가 기억하기로는 저번에 꿨던 꿈이 이어지는 내용이었다. 그 꿈으로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았는지 이어서 꾸게 되다니. 어스름한 새벽 공기 속, 시곗바늘이 각각 312를 가리키고 있다. 이 새벽에 갑자기 잠에서 깬 것도, 연달아 꿈을 꾼 것도. 정말 난생처음이었다. 왜 자꾸만 꿈에서 할아버지를 자주 보게 되는 것일까.

 

왼쪽 손목에는 메탈시계. 오른손 약지에는 금반지. 즐겨 쓰시던 모자는 없었고, 검은색 기능성 티.

 

저번 꿈이랑 내용은 비슷했는데 이번 꿈은 더 세세하게 보였다. 방화역 근처에서 손님을 내려주다가 갑자기 쓰러지셨고 병원으로 이송된 후 입원하신 것 까지 기억이 난다. 너무 생생하지만 그 전에도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기에 다시 잠들었다. 아무 일도 없을 것이다. 그저 악몽이다. 왜냐하면, 꿈은 그저 꿈이니까.

 

*

 

허황된 악몽을 꾸고 잊고 또 꾸는 일련의 과정은 반복되었다. 이제는 아무렇지 않다. 한 편의 영화라도 보는 기분이다. 아니, 그렇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어쩌면 이제 내가 꾸는 꿈들이 감수해야할 업()일지도 모르겠다. 그렇지 않으면 제정신으로 살지 못할 것 같아서. 오늘도 꿈을 꾸었다. 그러나 대수롭지 않게 넘겼는데. 점심식사 후 들어가는 길에 엄마한테 문자가 왔다.

 

다현아 할아버지 갑자기 쓰러지셔서 지금 응급차타고 병원 가셨어. 퇴근하고 바로 와.

 

끔찍한 문장으로 가득한 문자였다. 분명히 괜찮으셨던 분이 대체 왜? 하는 순간, 꿈이 스치듯이 지나갔다. 퇴근 후 뒤이어 엄마가 보내준 병원 주소로 바로 달려갔다. 병원 바깥에서 담배를 뻑뻑 피우고 있는 아빠와 마주쳤다. 병원에 들어서기 전, 아빠한테 상황을 물었다. 방화역 근처에서 손님을 내려주고 거스름돈을 건네줄 찰나에 갑자기 정신을 잃으셨다고 한다. 말이 되지 않는다. 어떻게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똑같을 수가 있을까. 내가 좀 더 꿈에 경각심을 두고 할아버지를 말렸다면, 운명이 바뀌었을 수도 있었을까.

각종 검사를 하고 나서야 병실에 누워 계시는 할아버지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할아버지의 침대 옆 작은 탁자에 검은색 상의가 개켜져 있었고, 그 위에서 손목시계, 금반지가 빛난다. 꿈이랑 똑같은 착의. 게다가 할아버지는 뇌졸중 진단을 받으셨고, 대장암까지 발견 되었다고 한다.

 

시간이 늦어 집으로 돌아온 후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하고 싶었다. 그동안에는 일명 개꿈이라고 불리는 상관없는 나쁜 꿈이 대다수였어도 특정한 인물이 나와 꿈이 현실이 된 적은 처음이기 때문에 무섭고 죄책감이 엄습해왔다. 그리고 왜 하필 꿈의 주인공이 할아버지일까..

그러다 문득 할머니의 말이 생각났다. 앞으로 다가올 미래에 너무 아파하지 말라는 것이 할아버지의 죽음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돌았다.

잠이 드는 것이 이제 두려워졌다. 혹여나 또 좋지 않을 꿈을 꿔서 누군가가 보낸 수신호에 수신자가 될까 겁이 났다. 하지만 내 피곤한 두 눈은 걱정에 앞서 어느새 감겨져 버렸다.

 

 

 

 

할아버지가 내 앞에서 가만히 웃고 있다. 눈도 깜빡거리지 않은 채 미소만 띄우고 있다.

주름졌지만 곱고 따듯한 할아버지의 손을 잡아주고 싶은데 잡히지 않는다.

그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사진 속에서 날 바라보고 계신다. 그 옆은 하얀 꽃들도 가득하다. 꽃들에게 색을 입혀주고 싶은데 그러지 못할 뿐이다. 울음소리와 오고가는 대화소리가 섞여 시끌벅적한 이 곳은 장례식장이다.

 

 

 

이번에도 여전히 할아버지의 꿈을 꾸며 이른 아침에 새소리와 함께 잠에서 깼다. 정확하게 말하면 꿈에서 깬 것일지도 모른다. 눈가엔 눈물이 맺혀있었고 나는 조용히 흐느끼고 있었다.

결국 나오지 말아야 할 꿈이, 그토록 나오지 않았으면 했던 꿈이 나왔기에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숨죽여 울 수밖에 없었다. 정말 이것만큼은 꿈이었으면 하는 마음에 평소에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던 나는 신이란 신께 다 기도드렸다. 몸을 일으켜 병원으로 발길을 서둘렀다.

할아버지는 아직 나무토막처럼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않고 주무시고 계신다. 조용한 병실은 가습기 소리만이 가득했고 나는 이불 밖으로 빠져나온 할아버지의 손을 만지작거렸다.

몇 시간이 지나서 수술을 하기 위해 간호사들이 할아버지 침대를 수술실로 옮겨갔다.

내 얼굴도 할아버지가 얼른 봤으면 좋겠는데 아직 눈을 못 뜨시니 답답한 마음만이 가득 찬 상태로 출근은 할 수 밖에 없었다.

수술시간이 끝나고도 남을 시간인데 아무 연락이 안와서 초조한 마음에 내가 먼저 전화기를 들었다.

 

따르릉-

 

수술은??”

 

아빠의 목소리가 들리기도 전에 할아버지의 수술여부를 잽싸게 물어봤다. 걱정되지만 기대되는 마음으로 아빠의 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다현아.. 그게... 대장암이 생각 보다 크게 차지하고 있어서 제거를 할려면 당분간 뇌졸중 약을 끊어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뇌졸중이 악화될 수 있대..”

그럼 수술이 잘 안된거야? 아니 못한 거야?”

오늘은 못했고 결과보고 우리가 정해야해

둘 중 하나는 포기해야 한다고 한다. 만일 하나 대장암 수술을 위해 뇌졸중 약을 끊는다고 하면 그 사이에 뇌가 신경을 잃을 수 있는 상황이 올 수 있는 것이고, 이대로 암을 키우기에도 좋지 않을 상황에 놓일 것이다. 이야기를 듣고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 병원으로 곧장 갔다. 아직 마취에서 깨지 않으셨는지 곤히 잠든 모습이셨다. 병원에 오고 나서 한 번도 할아버지 눈동자를 보며 얘기를 하지 못했기에 얼른 깨어나셔서 칼칼한 목소리를 듣고 싶었다.

 

 

 

오늘도 피곤한 몸과 마음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와 씻기 위해 화장실로 들어섰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며칠 동안 밥도 제대로 못 먹고 잠도 잘 못 잔 탓에 많이 수척해 보인다. 또 꿈에 할아버지의 모습이 나올까봐 자고 싶지 않지만 내가 정신을 차려야 할아버지를 지킬 수 있다는 생각에 얼른 깨어나셨으면 하는 마음으로 기도를 드리고 눈을 붙였다.

 

 

우리 손녀딸 수고가 많다. 그동안 마음고생 심했지? 이제 우리 둘이 올라가 천년만년 푹 쉴게~ 이 할미 밉지? 너한테 부탁해놓고 못난 할미가 데려간다. 나 없이 우리 영감탱이 봐줘서 고마웠다. 너 결혼하는 것 까지 보다 가기로 했는데.. 건강하게 예쁘게 잘 자라다오.”

 

 

그날 새벽 할머니의 꿈과 함께, 할아버지는 세상을 떠나셨다. 나에게 올 상황임을 알고는 있었지만 너무 빨리 찾아와버렸다. 꿈을 꾸면서도, 꾸고 나서도 믿고 싶지 않았지만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이다. 내 얼굴에는 하염없이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한 번만 내 얼굴 좀 보고가지. 꿈으로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예고도 없이 우리 곁을 떠나셔서 할아버지를 원망할 수밖에 없었다.

 

갈색 빛을 돈 장례식장에서 울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엄마와 아빠. 울음 소리로 가득차면서 그동안의 안부를 묻고 있는 문상객들. 왜 나는 엄마와 아빠에게 꿈 얘기를 꺼내지 못했을까. 아마 좋지 않은 꿈 얘기를 꺼내면 미친년으로 볼게 뻔하고 계속 신경 쓰시고 계실 것 같아서 말을 못했을지도 모른다. 꿈에서 봤던 것처럼 어색한 미소로 웃고 계시는 할아버지가 보인다. 예고편처럼 미리 봤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는 실감이 나지 않는다.

 

그렇게 잠을 자는 것을 무서워했고 꿈꾸는 것은 더 싫었는데 지금은 제발 꿈에서라도 할아버지를 볼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를 드린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할머니도, 할아버지도 전혀 꿈에 나오지 않았고 꿈을 꾼 적이 없었다.

 

내가 예지몽을 꿈꾸는 능력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어쩌면 할머니가 내 꿈에 나타나 할아버지의 죽음을 미리 알려준 것일지도 모른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얼마 안됐을 때, 할아버지도 원망을 많이 했지만 할머니에게도 많이 했다. 데려가실 거면 조금만 더 늦게 데려가시지.. 마지막 인사라도 하게 해주시지.. 할머니가 너무 외로워서 빨리 데려가고 싶었나보다.

내가 하나밖에 없는 손녀딸이라 그런지 할아버지는 나를 많이 아꼈고 그만큼 나도 할아버지를 잘 따랐기에 마지막 인사대신 할머니가 나에게 미리 준비를 해놓게끔 꿈속에 나타나 알려준 것이라고 생각한다. 할머니가 부탁한 약속은 못 지켜드렸지만 예쁘고 건강하게 부끄럽지 않은 할머니, 할아버지의 손녀로 자랄 것이다. 천국에서도 할머니, 할아버지의 손녀딸이 되고 싶다.

 

두 분 같이 내 꿈으로 내려와 환한 미소로 나타나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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