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0차 창작콘테스트 단편소설 부문 - 신호

by dlwldms032 posted Jun 11,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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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


이지은

 

 

01

 

지금 내 눈앞은 온통 검은색. 나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발버둥 치고 있다. 이곳은 한겨울만큼 추워 나를 괴롭게 했고 순식간에 더욱 깊숙이 숙이 어디로인가 나를 빨아드렸다. 순식간에 나는 땅에 떨어졌고 부서지도록 아픈 몸을 이끌고 주위를 둘러봤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이곳은 도대체 왜 나를 아프게 하는 걸까. 나는 두려움에 떨며 소리쳤다.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여기 누구 없어요?!”

 

한참 뒤에 지쳐 쓰러져 있는 내 앞에서 반짝이는 빛이 보였다. 3초 간격으로 깜빡깜빡. 그 빛이 켜지는 순간 누군가의 얼굴이 보였다. 분명 익숙한 얼굴이었다. 힘든 나는 몸을 이끌고 빛으로 가까이 기어갔다.

엄마...”

 

엄마는 세상을 떠난 뒤에 처음으로 내 앞에 나타났다. 엄마의 얼굴, 향기, 목소리, 모든 게 느껴졌다. 나는 알았다. 이곳은 엄마의 그림자라는 것. 오늘은 31. 엄마를 처음 만난 날이다. 마음이 뒤숭숭했다. 한참을 잊고 살았던 엄마가 왜 내 앞에 나타났을까.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이라도 있는 걸까. 그런데 왜 나를 아프게 하는 걸까.

 

.

.

.

 

02

 

오늘도 그가 왔다. 어둠 속의 그림자. 밤마다 나를 따라오는 그 그림자는 나를 괴롭게 한다. 그토록 찾았던 엄마의 그림자인데 왜 나를 아프게 하는 걸까. 오늘도 깊게 자지 못하고 깨어났다. 오늘은 42. 이것을 한 달째 반복 중이다. 아무래도 이상해서 나는 오늘부터 꿈에 대한 기억을 기록하기로 했다.

 

빨리 안 일어나!”

... 몇 시야?”

“830분 넘었다 이놈아!”

 

오늘 날씨는 맑음. 기분 좋아야 하는 날씨인데 내 기분은 썩 좋지가 않다. 오늘 밤에도 엄마를 만나서 그런 게 분명하다. 아빠가 아침은 꼭 먹고 다니라고 했는데 요즘은 온통 입맛이 없다. 아빠가 먹다 남은 반찬들이 상위에 고스란히 올려져 있지만 나는 자연스레 지나쳐 화장실로 들어간다. 그리고 급하게 씻고 나와 내가 제일 좋아하는 교복을 입은 후 부랴부랴 준비를 마치고 아빠에게 소리친다.

 

아빠 같이 가!”

 

나는 18살 고등학생이다. 친구 관계는 그럭저럭. 요즘 들어 굳이 친구에게 시간을 쓰고 싶지 않다. 나도 모르게 혼자 있는 게 익숙해졌다. 원래는 친구가 많았지만, 엄마의 꿈을 꾼 후부터 나는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아빠는 공무원이다. 공무원 중에서도 가장 멋진 경찰. 오늘도 난 경찰차를 타고 학교에 간다.

 

오늘은 수업 몇 시에 끝나?”

몰라.”

왜 몰라.”

야자하고 갈 거야.”

 

-

 

야자는 거짓말이다. 나는 18살이 되고 나서 야자를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아빠는 내가 야자를 안 한 적이 한 번도 없는 줄 알겠지만. 사실 학교가 끝나고 나면 버스를 타고 엄마의 무덤으로 간다. 그리고 가로등 밑 벤치에 앉아 일기를 쓴다. 이것이 나의 야자이다. 아빠가 어두울 때 혼자 돌아다니지 말라고 해서 이것은 아빠에게는 비밀이다. 들키는 순간 아빠는 매일 여기 와서 내가 있는지 확인할 테니깐. 내가 이 행동을 시작한 건 한 달 전 꿈에 엄마가 나오기 시작했을 때부터이다. 꿈에서 어느 남자가 엄마 무덤에 와서 꽃을 두고 가는 것을 봤다. 그 남자는 키는 좀 커 보였고 등치도 있었다. 앞모습은 보지 못해서 얼굴은 모른다. 그래서 매우 답답하다. 이 꿈을 꾸면 온종일 기분이 썩 좋지 않다. 그 사람이 누군지 알고 싶지만 꿈에서의 나는 선뜩 다가가지 못하고 바라만 본다. 내가 이러는 이유는 나는 아직도 엄마가 죽은 이유를 모른다. 아빠가 말해줬지만, 그것은 거짓인 것을 나는 안다.

 

응 아빠.”

너 어디야.”

나 지금 학교지.”

이따가 데리러 갈게.”

아니야 나 혼자 갈게.”

 

외동딸이라서 그런지 나에게 매우 신경 쓰시는 아버지. 나의 일과를 항상 보고해야 한다. 나는 엄청난 관심과 사랑을 받으면서 살았다. 하지만 왜 엄마 이야기만 하면 달라지실까. 평소에는 정말 자상하시고 착하신데 엄마에 관해 물어보면 표정이 안 좋아지시고 화를 내신다. 말투부터 달라지신다. 엄마를 생각하면 슬퍼서 그런 걸까. 절대 아빠의 마음을 알 수가 없다. 이렇게 나는 궁금증을 마음속 한곳에 품으며 한 달을 지내왔다. 호기심 대마왕인 내가 말이다. 엄청 궁금하지만 참았다. 하지만 이 참을성 얼마 가지 못할 것이다. 솔직히 엄마 꿈을 꾸기 전까지는 궁금하지 않았다.

 

 

오늘도 역시 그 남자가 오지 않았다. 나는 아쉬운 마음에 조금 더 있어 보았다. 하지만 바람 소리만 들릴 뿐 사람 소리라고는 내 숨소리뿐이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도 이곳에 오면 스트레스가 풀리고 마음이 편안해진다.

 

.

.

.

 

03

 

매우 편찮으세요.”

 

얼굴 핏이 하나 없어 힘들어 보이는 엄마가 병실에 누워있다. 간호사가 아빠의 눈치를 보면서 입을 열었다. 아빠는 간호사에게 이런저런 어머니의 상태를 듣고 고개를 떨구었다. 3살의 어린 나는 다른 간호사 언니 다리를 붙잡고 아빠를 쳐다보며 서 있었다. 아무것도 몰랐을 나의 눈에 눈물이 고여있었다.

 

확실히 나을 수 있는 약은 없나요?...”

이 병은 희귀한 병이어서 약을 먹어도 장담은 하지 못해요...”

“...”

그래도 저희가 최선을 다해서 노력해볼게요...”

감사합니다...”

 

간호사는 병실을 나갔다. 아빠는 결국 고개를 숙이며 눈물을 보였다. 그 밑에서 나는 아빠를 쳐다보고 있었다. 아빠는 나의 머리를 한번 쓰다듬고 안아 들어 올렸다. 그리고 끝내 병실을 나왔다.

 

아악...”

 

오늘도 난 엄마 꿈을 꿨다. 눈을 뜬 순간 머리가 찢어질 듯 아팠다. 바늘들이 콕콕 머리를 찌르듯 한 괴로움이었다. 한동안 움직이지 못하고 머리를 쥐어짜며 웅크리고 있었다. 이렇게 머리가 아팠던 적은 처음이었다. 다행히 조금씩 아픔이 줄어들었다. 한참을 그렇게 있다가 생각해봤는데 이상하게 오늘 꿈은 달랐다. 배경과 분위기가 어디서 많이 느껴본 곳처럼 익숙했다. 익숙한 침대 익숙한 공기 익숙한 공간. 이곳은 어디일까.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생각했다. 그곳이 어디였을까. 잠시 뒤척이다가 이건 안 되겠다 싶어 큰맘 먹고 아빠와 이야기를 하기 위해 일어났다. 오늘은 아빠의 쉬는 날이다. 아빠의 방문 앞에서 아빠는 나의 할 말을 예상하였는지 표정이 좋지 않았다.

 

.”

나 요즘 자꾸 엄마 꿈을 꿔...”

그래서.”

“...”

엄마 이야기할 거면 나가.”

아빠는 왜 엄마 이야기만 하면 화를 내?”

“...”

나는 엄마가 교통사고로 안 죽은 거 알고 있어. 거짓말이잖아.”

너 그게 무슨 소리야.”

나 예전 일 기억났어. 엄마는 아팠잖아!”

소현아. 아빠 입에서 엄마 이야기 좀 그만 나오게 해주라.”

 

-

 

나는 흐르는 눈물을 숨기기 위해 방에서 나왔다. 그리고 더는 그만 물어보기로 결심했다. 아빠는 절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어떻게 이렇게 사람이 한결같을까. 아니면 정말 교통사고가 맞나? 나는 혼란스럽기 시작했다. 진지한 아빠의 모습을 보니깐. 아니면 차라리 엄마가 꿈에 나오지 않았으면 좋았을 텐데. 요즘 사는 게 너무 힘들고 우울하다. 나는 행복해지고 싶다.

 

.

.

.

 

04

 

오늘은 45일 나는 엄마 무덤에서 이상한 것을 보았다. 무덤 위에 하얀 꽃이 올려져 있었다. 나는 깜짝 놀라 무덤 앞으로 달려갔다.

 

기억해줘...”

 

그 꽃말에는 기억해줘라고 쓰여있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아무것도 없었는데 오늘 누가 왔다 간 것이다. 꽃의 향기를 맡았는데 어딘가 익숙한 향기였다. 예전에 내가 좋아하던 라일락 향 같았다. 내가 어렸을 때, 엄마가 나에게 처음으로 꽃 한 송이를 주셨는데 그 꽃이 라일락 꽃이었다. 어린 나는 꽃의 향기가 너무 좋아서 온종일 안고 다녔었다. 잘 때도 배게 옆에 놓고 자고 밥 먹을 때도 상에 올려놓고 밥을 먹곤 했다. 평소에는 기억이 나지 않았는데 무언가가 자꾸 내 머릿속을 콕 콕 찌르는 느낌이 들었다. 결국, 난 그 꽃을 들고 집으로 왔다. 방에 들어와서 자연스럽게 옛날 사진첩을 열었다. 정확히 엄마는 내가 3살 때 돌아가셨다. 어린 나는 그때는 슬픔을 잘 몰랐었지만 크면서 엄마의 빈자리를 느꼈다. 아빠에게 그 이유를 듣게 되었을 때, 한동안은 학교생활에 지장이 있을 만큼 너무 힘들었었다. 앞으로 엄마를 보지 못한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학교도 몇 번 빠지고 친구들과도 어울리지 않았다. 초등학교 6학년 때였는데 그때의 나는 아빠가 이해해 주셨었다. 중학교를 올라가서 이러면 안 되겠다 싶어 나는 점점 변하기 시작했다. 하늘에 계신 어머니가 이런 나의 모습을 더욱 안 좋아하실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공부도 열심히 하고 반장도 하면서 무엇이든 성실하게 임했던 것 같다. 그렇게 겨우 엄마를 내 마음속 깊숙이 묻어두었을 때, 꿈에서 엄마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꿈을 꾸고 나면 머리가 찢어질 듯 아프다는 것이다. 마치 중요한 무언가가 기억이 나는 듯한 느낌이다. 꼭 기억해야만 하는 것처럼 어떠한 기억이 내 머리를 박차고 나오고 싶어 한다는 것. 그 기억을 위해 자꾸만 꿈을 꾸는 것 같은 것이다. 이제 이건 꿈이 아니라 내 기억의 한 부분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어떠한 것을 잊고 사는 건가.

 

소현아, 밥 먹자.”

 

갑자기 아빠가 내 방문을 열었다. 나는 쓰고 있던 일기장을 급하게 닫았다. 예전에는 내 일기장을 아빠가 봐도 상관없었지만, 이제는 보여주기 싫다. 엄마의 이야기가 쓰여있어서 아빠가 싫어할 것이니깐.

 

저 꽃은 뭐야?”

 

아빠가 책상 위에 올려져 있는 꽃을 들었다.

 

아니야 아무것도.”

누가 줬어?”

아니야.”

 

꽃향기를 맡으려는 아빠의 손을 가로채 꽃을 뺐어 들었다. 그리고 아빠를 방문 쪽으로 밀면서 말했다.

 

밥 먼저 먹고 있어 나도 나갈게

소현아...”

 

-

 

난 끝내 내 방문을 닫았다. 요즘 아빠와 나의 사이가 나빠지는 것 같다. 이러면 안 되는데... 계속 피하게 된다. 내가 아빠를 왜 그렇게 생각하게 될까. 무언가 아빠가 나를 방해할 것만 같다. 아니 방해하고 있다.

.

.

.

05

 

저 멀리서 검은 그림자의 남자가 엄마의 무덤으로 향하고 있었다. 나는 이번에는 놓치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그 남자를 향해 엄청나게 뛰었다. 어디인지 모를 이곳은 주변이 너무 뜨겁고 더워서 내 몸은 순식간에 땀범벅이 되었다. 하지만 우리 둘의 사이는 가까워지지 않았다. 더욱 멀어져 가는 기분이었다. 그래도 나는 포기하지 않고 달렸다. 오늘은 저 남자를 놓치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죽을 듯이 달리니깐 조금은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새 나는 그 남자 앞에 쓰러졌다.

 

-

 

누구세요?”

“...”

괜찮으세요?”

 

그 남자는 나를 일으켜 세워줬다. 내 몸은 일어날 수도 없을 만큼 힘이 없어서 다시 쓰러지고 말았다. 그 남자는 앉아서 나를 보았다. 그 순간 내 어깨를 잡고 있는 그의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그 남자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나는 느꼈다. 상당히 놀랐다는 것을... 떨리는 손을 들키고 싶지 않은지 잠시 내 어깨에 손을 뺐다. 그리고는 몇분 뒤에 입을 열었다.

 

이곳을 어떻게 왔어요?”

 

나는 말할 힘이 없어, 입을 열 수 없었다. 온몸이 타들어 가는 듯이 아파서 잠시 쉬고 싶었다.

 

수고했어요. 잠시 쉬세요.”

 

그는 한동안 내 등을 두드려주었다. 그의 손은 마치 엄마 손처럼 따뜻했다. 나의 몸은 조금씩 괜찮아졌다. 시간이 꽤 흘렀을 때 드디어 나는 입을 열었다.

 

이제 좀 괜찮아졌어요. 감사해요.”

다행이다. 여기에 올 줄은 몰랐어요.”

이곳은 어디인데요?”

 

그 남자는 가방에서 무언가를 주섬주섬 꺼내기 시작했다.

 

이거 기억나?”

이게 뭔데요?”

이거 예전에 네가 좋아했던 인형이잖아.”

 

그는 어느 순간 나에게 말을 놓았다. 마치 나를 알고 있던 사람 같이 편하게 대했다. 익숙한 목소리였다. 그 수상한 남자에게 인형을 받았다. 그 남자의 얼굴은 검은 그림자로 가려져 보이지 않았다. 처음 보는 인형이었다. 노란 귀에 갈색 코. 동그란 눈. 마치 고양이 같았다.

 

이거 고양이에요?”

오 맞아! 기억나니?“

아니요... 고양이 같이 생겨서...“

하하하 맞아 고양이야. 너는 고양이를 참 좋아했었어.“

? 저를 아세요?“

그럼 잘 알지. 이건 너의 엄마가 만들어 준 인형이야.“

엄마...? !...“

괜찮아?“

 

식은땀과 함께 머리가 찢어질 듯 아팠다. 무언가가 머리를 찌르며 나를 괴롭게 했다.

 

...“

많이 아파? 기억이 되살아나고 있는 걸 거야.“

.

.

.

아 악!“

그 순간 나는 눈을 떴다. 몇백개의 바늘이 사방에서 내 머리를 콕 콕 찌르는 듯한 고통이었다. 꿈만 꾸면 머리가 찢어질 듯 아픈 게 아무래도 이상했다. 처음 느껴보는 이 고통은 참을 수가 없었다. 온몸이 떨리기 시작했고 열이 오르는지 빨개졌다. 머리는 깨질 듯이 아프며 그 순간 나는 기억이 나지 않았다.

.

.

.

소현아!“

 

내가 눈을 떴을 때는 새하얀 병실이었다. 눈앞에 걱정하시는 아빠의 얼굴이 보였다.

 

소현아! 괜찮아?“

눈을 뜨셨네요. 조금 진정하시고 결과를 지켜보죠.“

 

내 머릿속은 아직 아팠다. 아프기 싫어서 나는 다시 눈을 감고 꿈속의 기억을 잊지 않기 위해 다시 생각했다. 다시 그 꿈속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무언가 더 알 수 있었을 것 같은데 머리가 너무 아팠기에 견디지 못하고 끝내 꿈에서 일어나게 되었다. 그게 너무 아쉬워 나는 다시 눈을 감았다. 그 남자의 말이 신경 쓰인다. 기억이 나고 있다고 하는데 내가 뭘 잊은 게 있나 싶다. 나는 아무것도 모르겠는데 말이다. 그 인형은 내가 좋아하던 인형이라고 했다. 지금 내방에도 인형 하나 없는데 내가 어렸을 때 인형을 좋아했다니. 그게 사실일까? 아니면 이건 단지 꿈일 뿐인가. 내가 괜히 혼자 의미부여 하는 것은 아닐까 싶다. 하지만 그 꿈은 너무나도 생생했기에 단순히 넘어갈 수는 없었다. 꿈이 아니라 현실인 느낌이었기 때문에. 나는 눈을 감고 계속 생각했다. 엄마가 만들어 준 인형은 익숙하지 않았지만, 엄마의 취미는 바느질이었던 게 기억이 났다. 그래서 세탁소에 가지 않고 엄마가 항상 옷을 꿰매셨다. 시간만 나면 무언가를 만드셨고 그것을 나에게 주셨다. 아마도 그중 하나가 고양이 인형일 것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인형이라고 하셨으니깐. 그리고 그 남자의 손가락에는 큰 상처가 나 있었는데 굉장히 아파 보였다. 세로 모양으로 크게 나 있었다. 마치 어디에 크게 베인듯한 모양이었다. 그리고 꿰맨 자국이 선명하게 보였다. 오래된 자국 같지는 않았다. 얼굴을 보고 싶었는데 얼굴이 보이지 않아서 누군지 알 수 없었다. 내가 아는 사람이라면? 그는 나를 알고 있었다. 과연 그는 누구일지 너무 궁금하다.

 

...“

 

나는 눈을 떴다. 너무 아픈 머리를 감싸 안았다.

 

소현아 괜찮아? 네 방에 들어가니깐 쓰러져있었어.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야!“

아니야...“

너 아빠한테 숨기는 거 있지. 솔직하게 말해봐. 왜 그러는 거야!“

아빠는 아무것도 모르잖아. 나중에 말해줄게...“

아빠한테 왜 이렇게 숨기는 건데!“

”...“

 

진정하세요. 아버지 딸이 아직 머리가 매우 아플 거예요. 그 이야기는 나중에 하시고 일단 약부터 먹을게요.“

 

나는 아빠에게 말하기가 싫었다. 솔직히 말할 용기가 없었다. 아빠에게 이야기하면 모든 게 망가질 것 같았다. 힘이 없어 보이는 아빠는 의자에 털썩 앉았다.

 

소현이는 잠을 자다가 수분 부족 탈수 증상이 온 것 같아. 많이 놀랐지? 일단 음식과 수분을 공급하고 경황을 지켜보자. 심각한 것은 아니니깐 걱정하지 말고.“

 

의사는 나에게 링거를 꽂아주며 말했다.

 

소현이 혹시 이상한 꿈을 꿨니?“

아니에요.“

혹시 잠을 자다가 이상한 꿈을 꾸게 되면 꼭 말해줘 알겠지?“

.“

나는 그 누구에게도 꿈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다. 이것은 나만 알고 싶었다. 결국 의사는 병실을 떠났다. 그리고 적막한 기류 속에 아빠와 나만 있었다. 몇 시간이 흘렀을까. 한참 동안 서로 말없이 가만히 있었다.

 

화장실 좀 갔다 올게.“

 

답답한 병실을 나와 병원 앞 벤치에 앉았다. 나는 사실 맑은 공기를 맡고 싶었다. 아빠와 단둘이 병실 안에 있을 수가 없었다. 이제야 숨을 쉴 수 있을 것 같다. 이곳은 나무로 둘러싸여 전부가 초록색이었다. 하늘에서는 새소리가 나고 나뭇잎이 바람에 따라 춤을 춘다. 마치 숲속에 온 기분이었다. 정말 이상하다. 머리가 아파도 이렇게 아픈 적은 처음이었다. 혹시나 내가 무슨 병이 걸린 건 아닐까 걱정이 됐다. 그런데 그때 아빠의 목소리가 들렸다.

 

소현이가 이상한 증세가 나타나요. 예전에 무슨 사고라도 났었나요?“

... 그게 아니라...“

괜찮아요. 편하게 말씀해주세요.“

 

이상하다. 나무에 가려져 보이지는 않지만, 이것은 분명 아빠의 목소리다. 마치 나는 알면 안 되는 듯한 비밀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다. 목소리는 떨리고 힘이 없었다. 나는 더욱더 그 목소리에 집중했다.

 

예전에 소현이가 사고가 났었어요.“

무슨 사고요?“

교통사고요...“

... 혹시 기억을 잃었었나요? 소현이가 지금 기억이 점점 되살아나고 있는 것 증세를 보여서요.“

”...“

혹시 소현이는 자신이 기억상실증에 걸린 걸 모르고 있나요?“

...“

그것을 굳이 숨기는 이유가 있는 건가요?“

소현이가 알면 안 돼서요...“

왜죠?“

.

.

.

내가 기억상실증에 걸렸다고?’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 된다. 더는 듣고만 있을 수가 없었다. 나는 당장 뛰쳐나갔다.

 

무슨 소리야. 내가 기억상실증에 걸렸다고?“

소현아! 네가 왜 여기서 나와!“

빨리 제대로 말해봐. 기억상실증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야!“

 

네가 여기 왜... ...“

필요 없고 빨리 말해보라고!“

아니 그게...“

소현아, 진정해봐. 아버지가 다 말씀해주신다잖아.“

 

의사는 나의 어깨를 잡으며 말렸다. 하지만 나는 참을 수가 없었다. 내가 기억상실증이라니. 지금 내가 18살인데 여태 모르고 살았던 게 너무 분하고 화가 났다.

 

빨리 말하라고 빨리!“

다들 진정하시고 들어가서 차근차근 말합시다.“

 

의사는 나와 아빠를 데리고 상담실로 들어갔다. 그제야 아빠는 입을 열었다.

 

예전부터 말해주고 싶었는데 말을 못 했어... 미안하다. 하지만 말을 하지 않으려고 한건 아니야. 정말 아빠를 믿어줘.“

빨리 말했어야지. 18살이 되어서 이 사실을 알게 된 나는 어떨 것 같아? 진짜 너무한 거 아니야?“

미안하다. 예전에 너의 엄마와 네가 사고 난 것을 너에게 알리고 싶지가 않았어.“

사고라니?“

우리 셋이 교통사고가 났었어. 그래서 엄마는 목숨을 잃고 우리 둘만 살았어. 그 사고로 인해 너는 기억을 잃게 되었지. 차라리 나는 네가 기억을 하지 않길 바랐어. 그게 너한테도 더 좋을 줄 알았지...“

그게 말이 돼? 그래서 아빠는 엄마 이야기를 그렇게 싫어한 거야? 엄마라는 단어만 꺼내도 표정이 안 좋아졌잖아. 그 이유는 뭔데?“

그건 혹시나 네가 알게 될까 봐 다 너를 위해...“

 

-

 

나는 쏟아지는 눈물을 닦으며 병실 안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침대 위에 올라가 이불을 뒤집어썼다. 지금, 이 순간이 꿈이길 바랬다. 숨이 안 쉬어질 만큼 목이 막혀왔고 온몸에 식은땀이 났다. 아빠는 얼굴을 보면 구역질이 날 만큼 보기가 싫었다. 이 세상을 믿을 수가 없었고 살고 싶지 않았다. 아빠는 내 마음을 아는지 한동안 병실에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이불에서 나오지 않았다. 자살하고 싶은 마음이 이런 건가. 하루하루가 지옥 같고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프다. 며칠간은 잠을 못 잤다. 꿈속에 있는 엄마를 만나면 아빠의 배신감이 더 생각나서 꿈도 꾸기가 싫었다. 입맛도 없어서 밥도 굶었다. 가끔 아빠가 들어와서 밥 먹으라고 하는데, 나는 이불 속에서 들어가서 대답조차 하지 않았다. 나는 삼일을 괴롭게 지냈다. 정신적인 스트레스로 인해 내가 어떻게 지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면 지금까지 꿈에 나왔던 것은 무엇일까. 어쩌면 나의 꿈속의 이야기가 나에게 신호를 주고 있는 것인가 싶었다. 이것은 꿈이 아니라 나의 기억의 한 장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삼 일째 되는 밤에 제대로 잠을 자기로 결심했다.

 

.

.

.

06

 

오랜만이네. 무슨 일 있었어? 왜 한동안 안 왔어.“

 

그 남자다. 마치 내가 그리고 싶었던 배경 같은 공간에 그 남자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에게 할 말이 있는 듯 무척 반겼다. 오늘은 처음으로 얼굴이 살짝 보였다. 어딘가 모르게 익숙했지만, 상당히 수척한 얼굴이었다.

 

그게...“

괜찮아. 오늘도 너에게 줄 물건을 가져왔는데 한번 볼래?“

 

그 남자는 주섬주섬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바로 아빠의 젊은 시절의 경찰증이었다.

 

... 아빠...“

이걸 보면 기억을 좀 할 수 있을까 싶어서 가져왔어.“

이건 어떻게 가지고 계시죠?“

.

.

.

-

 

쾅 소리와 함께 내 머릿속이 깨질 듯이 아파져 오면서 나는 웅크려졌다.

 

다연아! 소현아!“

 

이곳은 어디일까. 깜깜한 새벽인가 내 눈앞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여보... 나는 괜찮으니까 소현이부터 챙겨줘...“

으앙으앙

여보 빨리... 소현이 데리고 나가! 제발...“

다연아, 조금만 기다려... .“

 

목소리가 어딘가 익숙하다. 바로 내 꿈속에 나왔던 그 남자였다. 나는 그에게 안겨 밖으로 빠져나갔다. 그때 내 눈앞에는 불에 타고 있는 차와 그 옆에는 경찰차가 보였다.

 

소현아 괜찮아? 조금만 참아 아빠가 구해줄게...“

 

아빠?...’

 

나의 아빠라는 그 남자의 머리에는 피가 흐르고 있었다. 나를 안고 있는 피투성이인 몸을 비틀거리며 나를 놓치지 않기 위해 손에 힘을 꽉 줬다. 그리고 그는 땅에 있는 무언가를 잡으려고 몸을 숙였다. 이어서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경찰이 도대체 운전을 어떻게 하는 거야...“

 

-

 

그 순간 총소리와 함께 나를 안고 있는 그 남자는 쓰러졌다.

 

안돼... 소현아...“

 

그리고 경찰복을 입은 사람이 나를 안고 경찰차에 태웠다. 그리고 경찰은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기야 내가 다 미안해...“

 

경찰은 바로 우리 아빠였다. 그 순간 내 눈앞은 캄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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