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0차 창작콘테스트 단편소설 부문 - 오늘, 아내는 나를 잃었다.

by 추녀 posted Jul 09,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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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내는 나를 잃었다.

유지인

 

현관문 손잡이를 돌리다 말고 고개를 꺾어 집안을 둘러보았다. 시간은 새벽 세 시를 조금 넘기고 있었고 주변은 어둡고 고요했다. 오직 안방에서만이 하얀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빛의 주인은 아내의 휴대폰이었다. 휴대폰 화면은 소리 내지 않고 켜지고 꺼지고를 반복했다. 누군가 아내에게 메시지를 보내는 것 같았다. 애써 이를 무시하고 안방에서 눈을 돌려 딸아이의 방을 보았다. 아이의 방 문 옆에는 형이 언제가 연지에게 선물해 준 어항이 있었다. 어항은 뽀글뽀글 소리를 내며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냈다. 이와 달리 연지의 문은 조그마한 틈새 하나 없이 잠겨있었다. 빛 하나 들어오지 않는 방이었다. 저 방문을 열어본 지가 꽤 오래되었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가던 와중 다리에서 핸드폰 진동이 느껴졌다. 그제야 다시 고개를 돌려 현관문 손잡이를 잡았다. 늦게까지 일하고 온 아내가 깨지 않게 조심스럽게 몸을 움직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망설임 없이 문고리를 힘껏 돌렸다. 문을 열자 매서운 바람이 온몸에 스며들었다. 한겨울 새벽은 말 그대로 살 떨리게 추웠다. 온 몸을 한껏 웅크린 채로 주차장을 향해 빠르게 걸어갔다. 차 시트에 앉자 추위 때문에 소름이 돋았다. 손을 재빠르게 움직여 히터를 틀고 시동을 걸었다. 잠시 차가 달궈지길 기다리며 아내와 주변 지인들에게 형의 부고를 알리는 문자를 보냈다. 문자를 보내다 문득 형의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는 사실이 못내 마음이 걸렸다. 아까로부터 한 시간 전, 형수에게 전화가 왔었다. ...형 새벽에 갑자기 조용하게 떠났어. 하도 정신이 없다 보니까. 미안해 도련님. 여기는 내가 대충 정리했으니까 일단 장례식장으로 와. 형수는 잠시 침묵을 지키다 내게 형의 죽음을 알렸다. 오래전이지만 함께했던 사람을 떠나보낸 그녀의 목소리는 침착했다. 형의 죽음이 예견되어있던 것이라 그런 건지 아님 그녀에게 형이 더 이상 아무 의미 없는 사람이 되어버려 그런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형은 위암 4기 판정을 받은 지 일 년 만에 죽어 버렸다. 의사에게 위암 말기라는 판정을 듣고도 형은 실감이 나지 않는다는 듯 실없이 웃기만 했었다. 내 몸에 암 덩어리가 있었다니 너무 신기하지 않냐? 난 정말 아무것도 못 느꼈는데. 정말 아무것도. 형은 한동안 암이 신기한 물건이라도 되는 양 굴었다. 나는 그런 형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 애매한 표정을 지어보이곤 했었다. 너무 슬퍼해서도 너무 아무렇지 않은 척 해서도 안 될 것 같았다. 그러면 형은 그런 내가 재미있다는 듯 더욱 낄낄거렸다. 동민아, 그래도 나는 한편으론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아내는 연락 끊긴 지 오래고 자식도 없구... 가족이 없다는 사실이 이렇게 위안이 되다니. 인생 알다 가도 모를 일이다. 최소한 난 가족들에게 미안해만 하다가 가는 사람들 보다는 나은 거지. 안 그래? 몇 년 전 형은 형수가 집을 나간 후로 모든 사람과의 연락을 끊었다. 그 사람 중엔 나 역시 포함되어 있었다. 형의 심정을 아예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좀 너무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나이를 먹을 만큼 먹은 사람이 어린애처럼 구는 것이 좀 우스웠었다. 내가 형이었다면 어떻게든 형수를 설득했을 것이다. 아이가 없어도 사는 부부가 대한민국에 얼마나 많은지 뭐 이런 얘기를 하며 최소한의 노력이라도 했을 것이다. 형은 뭐든지 쉽게 포기하는 경향이 있었다. 어쨌든 그렇게 한동안 연락을 하지 않던 형은 갑자기 자신이 암에 걸렸다는 소식을 내게 전했다. 형은 병을 알리면서 오랜만에 나와 대화하는 일이 어색했던지 이 이야기는 나에게만 알려주는 것이라며 다른 사람들에겐 비밀이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형은 비밀 이야기라고 말했지만 아마 그는 나 말고 자신의 병을 알릴 사람이 없었을 것이다. 앞서 말했듯 형은 형수님과 도장만 안 찍었을 뿐 거의 이혼한 상태나 마찬가지였고 친구들의 연락은 본인이 먼저 끊었기 때문에 형 성격에 민망해서라도 연락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형은 결국 하나뿐인 혈육, 하나 남은 가족인 나에게 자신의 병을 알렸으리라.

신호가 걸려 차를 세웠다. 평소의 나라면 개미 새끼 하나 지나다니지 않는 이 새벽에 교통법규를 지킬 리가 만무했지만, 오늘의 나는 웬일인지 천천히 형에게 가고 싶었다. 형은 천천히라는 단어를 참 좋아했었다. 습관적으로 형은 그 말을 내뱉곤 했었다. , 천천히 해. 천천히. 차도 스무스하게 천천히 다뤄줘야 하는 거고, 사람도 마찬가지로 그렇게 대하는 게 좋아. 너 연지한테도 그렇게 다가가 가. 애가 부담스러워하지 않게. 천천히. 여기서 말하는 연지는 내 딸 아이다. 자식이 없던 형은 조카인 연지를 많이 아꼈었다. 형은 나와 연지의 사이를 안타까워하며 종종 이런 말을 해주곤 했었다. 연지와 나는 좋은 부녀지간은 아니었다. 내 딸이지만 연지는 나보다 형을 더 많이 닮았었다. 연지는 형처럼 모든 일에 덤덤하게 반응하면서도 지가 옳다고 여기는 일에는 또 목숨을 걸었다. 형과 연지는 모든 일에 침착하지 못하고 귀가 얇은 나와는 정반대의 사람이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나란 인간은 연지에게 형용할 수 없는 상식 밖에 사람이 되고 있는 것 같았다. 형은 연지에게 천천히 다가가라 했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못했었다. 아이의 대답을 강요했었고 재촉했었다. 아이의 침묵을 기다리지 못하고 멋대로 나를 무시하는 것으로 간주해버렸었다. 나는 도대체 어쩌다 이렇게 된 것일까? 내가 던진 부메랑에 내가 맞은 기분이었다. 내가 원한 것은 그저 아내와 딸의 인정이었는데. 그들에게 바친 나의 젊음과 늙어버려 쓸모없어 져버린 몸뚱어리를 조금 알아줬으면 했던 것뿐이었는데. 그들의 무관심에 나는 화가 났었다. 이게 가족인가. 내가 이런 이들에게 희생당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가장이란 이유만으로? 이렇게는 안 될 것 같았다. 바로 잡아야 했다. 당장 아내의 통금시간은 밤 열시가 되었다. 딸아이는 못 해도 저녁 일곱 시까지는 들어와야 했었다. 아내는 일주일에 한 번 가계부를 내게 제출해야 했었고 아이는 일주일 치 계획표를 탁자에 올려놓아야 했었다. 아내가 친구들과 함께하는 술자리를 아쉬워하는 것도 내 눈치를 보며 가계부를 올리는 것도 또, 아이가 이런 상황을 싫어하는 것도 나는 모두 알고 있었다. 둘은 즐겁게 웃다가도 내가 들어오면 입을 닫아버리곤 했었다. 서운했지만 말로 내뱉을 순 없었다. 그래서 나는 서운만큼 그들에게 나를 강요했었다. 그들이 나의 헌신을 잊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도 나는 떳떳했었다. 남편으로서 아버지로서의 할 역할을 다하고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너 그러다 큰 코 다친다. 정신 차려 인마. 탁자에 둔 아내의 가계부와 아이의 계획표를 보고 형이 한 말이었다. 자식도 없는 사람이 뭘 알겠나하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내뱉진 않았었다. 연지가 생긴 후로 나는 내가 형보다 어른인 것 같다는 착각에 빠져있었다. 형의 말이 맞았다는 것은 나중에야 알 수 있었다. 아이와의 마찰을 날이 갈수록 심해졌고 딸아이가 날 싫어하면 싫어할수록 분한 마음이 더욱 들었었다. 자식새끼가 지 부모를 미워할 때까지 아무것도 하지 않은 아내에게도 화가 났었다. 지 애비를 꼿꼿이 노려보는 아이의 눈초리에 울컥했었고 나중에는 억울하다 못해 원통하다는 생각까지 들기도 했었다. 일평생 그들에게 뼈 빠지게 번 돈을 다 가져다 바쳤는데. 그들이 원하는 모든 것을 해주진 못했지만 정말 못해주는 것 빼곤 다 해주었는데. 그 헌신의 대가가 고작 이딴 대우라니.

파란 불이 켜지는 것을 보자마자 엑셀을 세게 밟고 말았다. 야 이 새끼야! 골로 가고 싶어? 스무 살이 되자마자 운전면허를 딴 이후 나는 몇 주 정도 형에게 운전 연수를 받은 적이 있었다. 나도 모르게 엑셀을 급하게 밟으면 형은 내 머리를 빡 하는 소리가 나게 때리며 니 운전하는 꼬라지를 보면 가는데 순서 없는 옛말이 맞는 것 같다며 잔소리를 해댔었다. 형은 내가 결혼한 이후 항상 자신이 쓰던 차를 수리까지 다 해서 내게 주곤 했었다. 큰돈 들이지 말라는 형의 배려였다. 형은 자기 나름대로 나를 챙겼었다. 형의 완벽하지 않은 배려가 나는 고마웠었다. 나를 챙겨주는 사람이 있긴 하는 마음이었다. 그 마음 때문인지 나는 형의 병원을 매일 찾아가곤 했다. 내가 그에게 해줄 수 있는 배려라곤 그것밖에 없었다. 형은 하루가 다르게 말라갔고 항암치료를 날이 갈수록 버거워했었다. 의사는 형에게 말했었다. 위를 반 이상 잘라내야 한다고. 암 전이 속도가 빠르게 진행되는 것 같다며 수술을 권했었다. 형은 의사의 말에 힘없이 베실 거리며 대꾸했었다. 의사가 자르라는데 잘라야지. 뭐 별수 있겠습니까? 그날 그렇게 웃으며 말하던 형은 많이 울었었다.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도 울지 않던 사람이 새끼를 잃은 짐승처럼 울었다. 형은 손을 벌벌 떨면서 내 옷을 쥐어뜯었다. 동민아. 나 너무 무섭다. 진짜 이렇게 무서울 수가 없어. 내가 죽는다는 게 무서운 게 아니고 내 배가 갈라진다니까. 갈라져서 장기를 다 드러낸다니까. 그게 너무 무서워. 나 좀 낫게 해줘. 더는 아프고 싶지 않아. 동민아. 제발. 그날 나는 형수에게 전화를 걸었었다. 바보 같은 나는 형을 견딜 수가 없었다. 한순간에 와르르 무너지는 형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죽음이 정말 형에게 오고 있다는 것이 실감났다. 형의 마지막이 너무 비참한 것 같아 가슴이 아팠다. 그의 곁에는 나보다 더 강한 사람이 필요했다. 이미 연락이 끊긴지 오래된 사람이었지만 나는 그럼에도 전화를 걸었다. 형은 찾아온 형수를 보고 놀랐지만 다 알고 있다는 표정을 짓는 나를 보곤 이내 형수에게 고맙다는 말을 했다. 마지막으로 이렇게라도 얼굴을 봐서 좋다는 것 같았다. 형을 보는 형수의 얼굴도 나름 편안해보였다.

장례식장 입구 앞에 도착하자 담배를 물고 있는 형수가 보였다. 고생하셨어요. 고생은 뭘. 그래도 이렇게 하니까 맘이 편안하네. 그날 나한테 전화한 거 잘한 짓이야. 뿌연 담배 연기가 그녀의 숨에 따라 허공에 뿌려졌다. 그래도 형 좋은 사람이긴 했나 봐. 새벽인데 꽤 찾아오네. 형수의 말에 너털웃음으로 나는 대답을 대신했다. , 이제 도련님이 가서 상주 노릇 해. 가봐. 형의 식장은 지하였다. 긴 계단을 내려가 옷을 갈아입고 조문객들을 맞이했다. 곧이어 아내가 도착했다. 깨어서 같이 오지 왜 따로 왔냐는 말에 나는 피곤해하는 것 같아서 먼저 왔다고 말했다. 아내와 형수는 사람들에게 음식을 날랐고 나는 형의 친구들과 회사 동료들 등 형과 관련된 모든 사람을 한 자리에서 다 만나는 시간을 가졌다. 많은 위로와 많은 덕담이 오갔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그 많던 사람들이 떠나고 없었다. 형수도 자신의 집으로 돌아갔고 아내는 나의 세면도구와 속옷을 챙기러 나갔다. 형의 영정사진을 바라보며 벽에 기대어 앉았다.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술을 받아먹어 정신이 몽롱했다. 영정사진을 보았다. 그냥 계속 보았다. 형이 저렇게 생겼었나. 얼굴이 좀 비대칭이네. 뭐 이딴 잡생각을 하다 문뜩 내가 정말 혼자가 되었다는 사실에 닭살이 돋았다. 주변은 숨이 막힐 듯 조용했다. 지금 내 옆에 누가 있지? 나이를 먹어도 혼자라는 느낌은 사람 기분을 참 뭣 같게 했다. 나이를 헛먹은 듯했다. 나도 모르게 입에서 앓는 소리가 나왔다. 가슴이 죄어와 몸을 말아 웅크리며 고개를 쳐 박고 끙끙거렸다. 그러다 혼자 간 형이 안쓰럽다는 생각이 들어 울었고 앞으로 형이 없는 세상을 살아야 할 내가 불쌍해 울었다. 내 울음소리가 형과 비슷하단 생각에 더 소리를 내었다. 아내가 이 광경을 보고 서둘러 달려와 나를 감싸 안았다. 아내는 이런 내 모습을 보고 적잖이 놀란 듯 했다. 아내의 치맛자락을 꽉 잡았지만 웬일인지 손에서 자꾸만 치마가 모래처럼 빠져나가는 듯 했다.

아내는 구석에서 웅크리며 잠을 자고 있었다. 집에서 자라는 나의 말에도 아내는 내가 걱정된다며 옆에 있겠다고 했다. 이런 여자인데. 나를 이렇게 아껴주는데. 아내는 항상 새우잠을 청하며 자는 사람이다. 그 남자도 아내의 이런 모습을 보았겠지. 남자는 잠든 아내의 얼굴을 사랑스럽게 바라보며 손을 대었을 것이다. 나에게 익숙해져버린 이 여자를 그 남자는 새로워 했겠지. 내가 아내의 외도를 안 건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병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가벼운 접촉 사고가 났었고 그 일로 차에 달린 블랙박스를 확인하다 아내가 다른 남자와 함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내의 외도를 처음 알았을 때 그 느낌은 뭐랄까 난 다른 남편들처럼 화가 나진 않았던 것 같다. 아내의 밝은 목소리가 너무 낯설어 그 장면만 계속 돌려봤던 것 같다. 아내의 얼굴이 보이진 않았지만, 그녀가 그 순간 충분히 행복해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일 이후 아내의 묘하게 달라진 그 미묘한 변화들이 눈에 띄었다. 휴대폰에는 잠금을 걸어뒀고 전화가 오면 밖에서 받았다. 아내가 여자처럼 구는 모습도 보였다. 아내는 종종 화장을 했고 원피스를 입고 구두를 신었다. 그런 날에는 아내는 묻지도 않았는데 오늘 중요한 고객을 만날 일이 있어 이렇게 입었다며 집 밖을 나갔다. 아내가 텔레마케터 일을 해 고객을 직접 만나는 일이 없음을 알았음에도 나는 아내의 말을 굳이 의심하지 않았다. 형 때문에 그럴 여력이 없기도 했었다. 어쨌든 모든 사실을 다 안 이후에도 나는 아내에게 굳이 이 이 일에 대해서 말하지 않았다. 물론 형이 아픈 와중에 바람이 난 아내에게 배신감이 들기도 했지만 아내가 그 남자 대신 날 선택할 거란 확신 역시 들지 않았다.

형의 얼굴을 보러 갔다. 발인하기 전 마지막으로 보는 형이다. 시체를 처음 보는 것도 아닌데 심장이 떨렸다. 며칠 사이에 형의 얼굴은 창백하다 못해 퍼레져 있었다. 몸은 꼬꼬마 애처럼 비쩍 말라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젊은 시절의 모습 그리고 지금까지의 형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갔다. 사람의 죽음은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그 이가 나의 피할 수 없는 미래이기 때문이라 그런 것일까. 형이 꼭 나와 같아 보였다. 내 미래도 꼭 이렇게 쓸쓸할 것만 같았다. 죽은 사람을 보며 우리는 그 사람의 과거만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많은 것이 떠올랐지만 결국 남은 것은 하나 없는 시간이 지나갔다. 형수는 형을 보다 형의 얼굴에 잠깐 손을 대었고 결국 눈물을 참지 못하고 밖으로 나갔다. 아내에게서도 훌쩍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밖에 나가보니 형수는 아직도 진정이 되질 않았는지 계속해서 울고 있었다. 형이 뭐가 좋았다고 그렇게 울어요. 내가 건넨 휴지를 받으며 형수는 코를 팽하고 풀었다. 그러게 내가 왜 울지. 주책이다 정말. 주책은 무슨 ...나 내일 오지 않을 거야. 이해해 줄 거지? 나 만나는 사람 따로 있거든. 형수가 남자가 있었다는 사실에 놀라 표정 관리가 되지 않았다. 내 표정에 형수는 그 남자와 는 만난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며 내게 변명 아닌 변명을 했다. 다들 내가 형 떠난 줄 알지? 아니야. 형이 이혼하자고 했었어. 형수는 갑자기 뜬금없이 말을 꺼냈다. 형한테 문제가 있어서 애가 안 섰거든. 형이 아이를 얼마나 원했는지 알지? 물론 나도 원했지만. 어쨌든 형이 그때 많이 힘들어했어. 내가 괜찮다고 했는데도 그이는 그게 위로가 되지 않았나 봐. 내가 괜찮아 보이지 않는다나 뭐라나. 형이 나한테 자기 때문에 엄마로서의 인생 놓치지 말고 다른 남자 찾아서 가라고 그렇게 말했었어. 내가 정말 엄마가 되고 싶어 했다는 거 잘 아는 사람이었으니까. 그래도 내가 그 사람을 먼저 떠나진 않았어. 그런데 어느 날, 집에 들어와 보니까 그 사람 짐이 하나두 없는 거야. 연락도 되지 않고. 이혼은 내가 안 해줬어. 내가 그 사람을 미련 때문에 못 끊어 냈었어. 형은 나를 위해서 떠난 거야. 자기 욕심 부리지 않고. 내 행복만 빌어준 사람이야. 형수의 이야기는 내가 알던 것과 정 반대였다. 지금까지 나는 형수가 형을 버리고 간 줄로만 알았다. 형이 먼저 이 관계를 끝내려 했다는 것은 나조차도 처음 듣는 얘기였다. 도련님이랑도 이게 마지막일 거야. 잘 지내. 형수는 내게 끝인사를 하며 이 말을 덧붙였다. 그런데 연지는 뭐 하느라 코빼기도 안 보여?

글쎄다. 연지가 뭐 하고 있는지는 내가 제일 궁금했다. 나의 딸 조연지양은 몇 년 전 집을 나가 그 이후로 단 한 번도 연락 준 적이 없었다. 그 애는 무수히 많은 사건과 이유들로 집을 나갔다. 연지는 지지난해 여름부터 지금까지 내게 자기 소식을 전하지 않았다. 그래, 그 아이가 그렇게 된 것은 다 나 때문이다. 딸과 나의 갈등할 때 마다 아내는 종종 나의 가정환경을 거들먹거리며 딸이 나를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아빠는 사랑을 많이 받을 수 있는 가정환경에서 자라지 못했어. 그래서 사랑 주는 방법을 잘 몰라. 그러니까 네가 이해해줘. 아내의 말에는 어느 정도 일리가 있었다. 형이 스무 살 때 그러니까 내가 열세 살 때쯤 부모님이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 부모님이 워낙 무뚝뚝하셔 평소에도 그렇게 애정가득한 집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부모님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은 달랐다. 형은 나를 보살핀다고 보살폈지만, 그때의 나는 많이 어렸고 형도 나만큼은 아니었지만 나를 챙길 만큼 크진 않았었다. 부모님과 살던 집은 정리 됐고 나는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며 자취를 하던 형과 같이 살았었다. 형과 달리 공부 머리가 있지 않았던 나는 고등학교만 졸업하라는 형의 말을 듣고 딱 그때까지만 참다가 바로 노가다를 뛰었다. 아침에 눈을 떠 현장에 나가고 일이 끝나면 쓰러지듯 소파에 누워 자는 것이 나의 하루였다. 그날은 근육통에 몸이 쑤셔 잠이 잘 오지 않던 하루였다. 저 자고 있는 아는 누구요? 같이 일하는 아저씨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잉 이제 막 스물 된 애인데 부모도 없다고 하고 갈 곳도 없다고 해서 걍 저기서 재우는겨. 그려? 불쌍하네. 그치, 불쌍한 애여. 그 불쌍하다는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그 이후로 나는 내가 불쌍한 애라는 사실에 갇혀버렸다. 세상 살기가 벅찰 때마다 그 소파에 누웠을 때로 돌아가는 듯했다. 노가다 일은 몇 년을 해도 익숙해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힘에 부쳤다. 손은 따 까져 성한 곳이 없었고 발은 물집이 잡힐 틈이 없을 정도로 굳은살로 다 덮여있었다. 얼굴 역시 그때마다 치료하지 못해 상처 자국이 여럿 남았다. 삼겹살과 술과 함께하는 생활도 지긋지긋했다. 그런데도 나는 현장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할 수 있는 일이 그 일밖에 없었다. 그러다 한 아재를 만났는데 그 사람이 포크레인 기사였다. 그는 내게 기술을 배우라 했다. 똑같이 일하면서도 돈은 더 많이 번다고. 그 말에 나는 그때부터 포크레인을 배웠다. 그렇게 잘 먹고 살고 있었는데 문제가 생겼다. 대부분의 직업군이 지금 포화상태인 것처럼 내가 하고 있는 이 일도 그러했다. 내가 아니어도 이 일을 할 사람은 많았다. 사실 그것도 문제였지만 사실상 내 성격이 현장과 맞지 않았다는 것이 크게 문제가 되어 작용했다. 지금은 좀 나아졌지만 나는 옛날부터 사람 상대하는 일을 못했었다. 기계가 하는 일이라 지만은 포크레인 시장 역시 사람들이 모여 굴러가는 곳이었다. 술도 잘 마시지 못하고 평소 샌님소리만 듣는 나에게 일이 점점 들어오지 않는 건 어쩌면 그 바닥에선 당연한 일이었다. 술자리가 싫으면 공사판 소장들에게 뭐라도 찔러주며 잘 보여야 일도 좀 떨어지고 하는데 나는 그만한 돈도 없었고 그렇게 할 뻔뻔함도 없었다. 나는 예전만큼 돈을 잘 벌어오지 못했다.

돈이 들어오는 액수가 확 줄었다. 딸아이의 학원비와 용돈을 대주기도 벅찬 날이 계속되었다. 딸은 용돈이 넉넉하지 않다는 사실에 종종 투정을 부렸었다. 아내가 일하기 시작한 지도 벌써 여러 달이 지났었다. 그날도 나는 살아보겠다고 최대한 굽신거리며 일이 생기지 않았냐고 소장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그는 일이 아직 들어오지 않았다는 말만 늘어놓았었다. 하는 수 없이 재미없는 재방송 영화만 주구장창 보고 있었는데 아내와 딸이 들어왔다. 아내는 누워있는 날 보며 한숨을 쉬었고 딸은 휴대폰을 만지며 내 반대편인 소파 끝자락으로 가 앉았었다. 다들 말이 없었고 텔레비전만 주구장창 요란을 떨 뿐이었다. 나는 소파에서 몸을 움직이다 실수로 딸아이의 다리를 발로 건드렸었다. 그러자 아이는 짜증이 난다는 듯 한숨을 쉬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나는 어이가 없어 저 계집애는 누굴 닮아 성격이 저 모양이냐며 구시렁거렸다. 아내는 한숨을 푹 내쉬더니 이내 자기 할 일을 했다. 이 집안의 여자들은 가장을 개떡으로 알고 있었다. 내가 돈을 지금 좀 벌어오지 못한다고 다들 나를 무시하고 있었다. 아내에게 화가나 요새 회사 사람들이랑 너무 늦게까지 노는 것 같다며 시비를 텄다. 아내 역시 내 말에 열이 받은 듯 그게 무슨 소리냐며 회사에서 회식에 꼭 나오라고 해서 어쩔 수 없었다며 소리를 빽 질렀다. 아내는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그녀가 다니고 있는 회사는 회식이 많아야 한 달에 한번이었다. 그러나 아내가 회식이라 말하며 밤늦게까지 들어오지 않는 날은 주에 한 번 꼴 이었다. 내가 아내의 회사 사정을 잘 아는 것은 그 회사가 내 친구가 아내를 꽂아준 회사였기 때문이었다. 나는 내게 거짓말을 하는 아내를 이해할 수 없었다. 달력을 가져와 아내 앞에 던졌다. 당신이 나한테 회식이라고 말할 때 마다 내가 체크해 한 거야. 회식을 이렇게 많이 하는 회사가 세상천지에 어디 있어! 아내는 땅 바닥에 떨어진 달력을 주어 찬찬히 훑어보더니 나를 경멸스런 눈으로 쳐다보았다. 이걸 다 적고 있었어? 당신 정말 최악이다. 이 정도면 의처증이야. 나한테서 이럴게 아니라 당신은 지금 병원에 가있어야 해! 아내는 말을 마치고 달력을 똑같이 내 앞에 던지고 소파에 가 앉으며 한숨을 쉬었다. 그래, 거짓말 했어. 근데 그게 뭐. 솔직하게 말했으면 당신 이해 못 하잖아. 회사 언니들이랑 좀 놀았어. 그게 뭐? 아내의 적반하장의 태도에 나는 더욱 열이 올랐다. 지금 잘했다는 거야? 잘했다는 게 아니고오...! 아내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그러더니 흐느끼며 소리쳤다. 아니! 나 잘했어! 나 잘못한 거 하나 없어. 나도 내가 돈 벌어서 이제 좀 내 맘대로 살고 싶다는데 그게 무슨 문제가 되는 건데? 이십 평생 조동민 씨 그쪽 비위 맞추고 살았으면 된 거지 내 나이 지금 사십이 넘어가서 하나하나 다 당신한테 검사 맡아야 해? 말문이 막히자 말도 안 되는 소리가 입 밖으로 나왔다. 이혼하자. ? 이혼하자고. 이혼하자는 말에 아내는 울음을 멈추고 나를 올려다보았다. 또 그 소리네. 그래 하자. . 이제 정말 당신이란 사람 지친다. 연지도 성인이고 나도 더는 걸리는 거 없어. 당신이 원하는 대로 해줄게. 도장 찍자. 나는 아까보다 더 당황스러웠다. 옛날의 아내는 내가 이혼하자고 하는 소리를 제일 무서워하는 사람이었다. 나의 이혼하자 소리는 아내에게 쓰는 최후의 방법이었다. 아내보고 나를 이제 멈춰달라는 신호였다. 아내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아내는 이혼을 하자고 한 것이다. 나쁜 년. 나는 부엌으로 가 과도를 가져와 아내에게 다가갔다. 아내는 칼을 보자 사색이 되어 소리를 쳐댔다. 연지야! 연지야! 엄마 좀 살려줘! 연지야! 어찌 된 일인지 딸아이는 나오지 않았다. 나는 더욱더 흥분했다. 너는 말을 아주 싸가지 없게 하는데 재주가 있어. 그게 얼마나 사람 열 받게 하는지 알아? 아내는 내게 살려달라고 빌다가 딸아이의 이름을 외치기도 하며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다. 쌍욕을 퍼붓고 있던 그때 연지가 방에서 나왔다. 연지는 한쪽 귀에서 이어폰을 뺏다. 아이는 말없이 우리를 바라보았다. 나는 아이에게 들어가라고 소리쳤다. 딸은 움찔하더니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아내는 더욱 서럽게 울어재꼈다. 아내의 울음소리가 듣기 싫어 과도를 땅바닥에 던져두고 집을 나갔다. 그렇게 일주일정도 집을 비웠을까. 집에 들어가니 편지 한 장이 있었다. 연지가 우리에게 쓴 편지였다. [엄마는 내가 그날 아빠에게서 자기를 구해줬어야 했다고 나한테 말했어요. 또 내가 자기의 살려달라는 소리를 무시했기 때문에 그때의 날 원망한다고 내가 밉다고 했어요. 아빠를 더는 원망하고 싶지 않아요. 전 그냥 이 집을 벗어나고 싶어요. 두 분이 저 없이 행복하게 사셨으면 좋겠어요. 그동안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돈은 그동안 모아 둔 거 있고 집도 친구를 통해 구했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연지가] 딸의 방에 들어갔다. 침대와 책상, 옷장과 같은 큰 가구는 그대로 있었지만, 그 위에 뒀던 아이의 자질구레한 짐들은 사라진 상태였다. 아이는 원하는 대로 지긋지긋한 나를 떠났다.

형은 자신이 태어난 날과 죽은 날이 적힌 유리병에 들어가 있었다. 형을 두고 유리로 된 창을 닫았다. 이로써 형의 죽음은 완전히 끝이 났다. 그렇게 형은 하나하나 다 타버리고 모두에게 조그마한 기억만을 남기고 떠났다. 집에 와 피곤한 육신을 눕혔다. 나는 이대로 아주 잠깐 쉬고 싶었다. 소파에 누워 고개를 돌리자 어항이 눈에 띄었다. 형이 연지에게 생일 선물로 준 구피가 유유히 헤엄치고 있었다. 언젠가 자다 목이 말라 물을 먹으러 방 밖을 나온 적이 있었는데 연지가 어항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거기서 뭐 하고 있냐는 나의 말에 연지는 구피가 자기 새끼를 잡아먹고 있다고 말했다. 아이의 말에 구피가 산란 통 때문에 자기 새끼를 잡아먹어 잠시 그들을 따로 분리해야 한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나는 남아있는 새끼라도 살리려 어미에게서 그들을 분리했다. 엄마 구피가 자기가 너무 아파서 새끼를 볼 여유가 없나 봐요. 애기 구피만큼 엄마 구피도 불쌍하다. 연지는 분리된 엄마 구피를 보며 정말 안쓰러운 듯 말했다. 지금 저 어항엔 누가 남아있을까. 엄마 구피? 애기 구피?

잠에 얼마나 취해있던 것일까. 몸에는 담요가 덮어져 있었다. 나는 담요를 옆에 두고 부엌으로 갔다. 부엌에서는 아내가 저녁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인기척이 느껴지자 아내는 요리를 하다 말고 뒤를 돌아 나를 보았다. 예민한 사람이 코까지 골며 자는 걸 보니 요 며칠간 정말 피곤하긴 했나보다 생각하며 아내는 나를 깨우지 않고 고대로 나뒀다 했다. 나는 식탁에 앉아 그런 아내의 말에 고개를 주억거리기만 했다. 밥을 다 먹고 일어나려 하는데 아내가 내 손을 잡으며 좀 앉아 있으라 했다. 아내는 무슨 중요한 말을 하려는 듯 했다. 아내가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아내는 내가 화를 내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운을 띄었다. 그 남자 이야기를 하려는 것일까. 멍청이처럼 속아줄 수 있으니 제발 말하지 말라 빌고 싶은 심정이었다. 아내의 손을 더욱 세게 쥐었다. 의외로 아내는 한마디 말도 하지 않고 내게 사진 한 장을 주었다. 사진 속에는 우리의 딸 연지가 있었다. 아이는 뭐가 그렇게 즐거운지 이를 다 보이며 환하게 웃고 있었다. 아이의 웃는 얼굴에서 블랙박스에 찍힌 아내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아내는 연지에게 연락이 왔었다며 애가 돈이 좀 필요해 보인다고 내 눈치를 보며 말했다. - 형이 떠올랐다. 형은 형수를 위해서 그녀를 보내준 것이 아니다. 형은 형을 위해서 형수를 떠난 것이다. 오늘 아내는 나를 잃을 것이다. 내가 그녀를 놓을 것이다. 아내의 손을 놓은 후 나는 어항 앞에 갔다. 어항을 들고 화장실로 갔다. 아내는 멍하니 나를 쳐다보기만 한다. 조그마한 물고기들이 변기로 쏟아진다. 물고기들이 내려간다. 새끼든 어미든 모든 물고기가 한데 모여 다 떠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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